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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7회)
1
며칠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작업을 하러 밭으로 가다가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와 부모님이 타신 차가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밭일을 위해 작업용으로 사신 중고 트럭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크게 다치시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는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는 근육통이라고 해서 “천만 다행이다”면서 부모님을 안정시켜 드렸습니다.
평생 운수노동자로 살아오셨던 아버지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차가 완전히 파손될 정도의 사고는 처음이었거든요.
가득이나 나이 많은 두 분이 같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 난 사고라 더 걱정스러웠는데...
사고가 난 다음날은 큰사위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해준 이미자 콘서트를 보러가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 콘서트는 태어나서 처음인 어머니는 막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런데 가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면서 조금은 들떠 있었는데 말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어머니가
이 방송을 보실 일은 없겠지만
어머니의 놀란 가슴과 아쉬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미자의 노래 하나를 듣겠습니다.
‘섬마을 선생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2
주변에 뭔가 큰일이 나면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의 가치가 새롭게 돋보이기도 하지요.
나이 마흔을 넘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가정도 없고, 기술도 없고, 직장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이 3년이 넘게 빈둥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저를 불쌍하게 보거나 우습게 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동생과 매제까지도 은근히 무시하는 눈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런 저를 받아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부모님이 사고를 당해서 집에 누워 있는데
사위들은 사고 수습을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동생들은 병원과 보험처리를 위해 이런 저린 일을 하고
어린 조카들은 재롱을 부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로하는데
저는 제 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TV만 봅니다.
운전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고
만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에 금전적 도움을 줄 여지도 없고
일머리도 없어서 밭일을 혼자서 도맡아서 할 수도 없고
성격도 너무 무뎌져서 다정다감하게 위로를 해주지도 못합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 먹어줬다는 전력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조금 있다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어떤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합니다.
그런 행동들이 저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저는
평소처럼 조용히 제 방에서 TV만 볼 뿐입니다.
3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어린애가 된다고 합니다.
소심한 성격에 착하게만 살아온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더 소심한 어린애가 돼버렸습니다.
가득이나 우울증까지 있어서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었는데
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그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에는 모두가 놀라서 분주하게 사고 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부터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허리 통증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힘겨운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서 묵묵히 있었고
동생과 사위들은 이런 저런 일들을 차분하게 처리하고 있었고
별달리 할 일이 없는 저는 제 방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깨와 옆구리 쪽에 통증이 조금 있는 어머니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간단한 집안일을 하시면서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하시는 것이 표가 났습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불편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진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자 어머니의 증세가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를 위로한다고 하신 말이 오히려 아버지를 짜증나게 해서 분위기가 잠시 삭막해졌는데
잠시 후에는 세 명의 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시면서 울먹이기 시작하면서 집안 분위기는 급속히 무거워져 버렸습니다.
제 방에서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저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울먹이며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애써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으려고 노력하던 감정들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역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있는 저로서는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난 3년여의 기간을 이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동안 무수히 해왔던 일입니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하는 가운데도 어머니의 통화는 계속 됐고
중간 중간 아버지의 볼멘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딸과 통화를 하면서 또다시 어머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는 어머니에게 “제발 좀 그만하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조용해졌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무거운 침묵이 그날 밤을 짓눌렀습니다.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극도로 조심하면서 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쾌활한 척 하지도 않았고
울먹이지도 않았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서 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같은 우울증 환자인 저는 어머니가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큰 일이 생기고 나면 감정조절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더 들쑥날쑥해집니다.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더 깊숙이 자신의 감정을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은 더 심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애써 위로해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옆에서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살며시 그 손을 잡아주는 것뿐인데...
한때 노동운동을 하면서 제가 해왔던 일이고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것이기도 한데...
그런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저는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어머니는 밭에 나가서 조금씩 일을 하시고 있고
저는 어머니 옆에서 밭일을 돕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을 하시면서 애써 조심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심호흡을 깊게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수없이 다짐합니다.
“도망가지 말자!”
4
솔직히 저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엉망이 돼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상황을 피해보려고 도망간다고 해도
허름한 자취방에서 혼자서 술을 먹고 있는 상황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결국 도망갈 곳도 없으면서 “도망가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빠져나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발버둥치는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해쳐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상황이라고
제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입니다.
제 인생이 별 볼일 없는 인생이지만
제 나름대로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 원칙 중의 하나가 “쌩까지 말자”입니다.
내가 힘들 때 말없이 나를 받아주고
지난 3년 동안 묵묵히 지켜줬던 분들이
지금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도망간다는 건 제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고
옆에 있는 어머니는 제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외롭게 부모님만 있는 것보다는
옆에서 간단한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이 조금은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눈치를 살피는 것도
무서워서가 아니라 걱정스러워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별 도움이 안 되는 걱정스러운 아들이고
수시로 짜증을 내면서 그 걱정을 더 키워내고 있지만
자식이라는 존재만으로 의지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라고 생각해봅니다.
5
벌써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다보니 삶의 기술이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비울 수 없는 쓰리기통에 쓰레기를 계속 집어넣는 방법입니다.
“쓰레기통이 차면 비우면 되지”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살다보니까 그런 일도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쓰레기를 마구 집어넣잖아요.
금방 쓰레기통이 차오르면 가볍게 툭툭 칩니다. 그러면 공간이 생겨요.
그래도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곧 차오르면 손으로 눌러서 넣지요.
그러다가 또 차면 발로 눌러서 또 넣고, 그러다 또 차면 신발을 신고 꽉꽉 누르면 공간이 또 생기지요.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또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지면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발로 뻥 차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쓰레기들이 주변에 쏟아지지요. 잠시 그렇게 쓰레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화가 삭혀지면 할 수 없이 다시 쓰레기를 정리해서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류별로 크기별로 정리해서 다시 담으면 또 공간이 생겨요.
그때부터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크기별로 분류해서 잘 포개면서 넣게 되죠.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또 쓰레기가 차거든요. 그러면 쓰레기통을 다시 비워서 쓰레기들을 새롭게 정리해서 넣습니다. 신기하게도 공간이 또 생겨요. 하하하.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들어갈 자리가 계속 생기더라고요.
오늘 방송은 제 넋두리만 계속 늘어놓은 것 같군요. 히히히
이 시점에서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윤시내의 ‘열애’입니다.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우우우우우~~~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우우우우우~~~
6
요즘 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번 방송은 화사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서
또 칙칙한 내용의 방송이 되고 말았습니다.
별 볼일 없이 허접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봄 햇살을 마음껏 즐기는 것도 어려운가 봅니다.
다음 방송은 좀 더 밝은 방송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요 하나 들으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다섯 살이 된 둘째 조카가 세 살 때까지만 해도
제 무릎에 앉아서 ‘방귀대장 뿡뿡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노래가 나오면 같이 부르곤 했습니다.
지금은 시시하다고 뿡뿡이를 더 이상 보지도 않고
그 노래도 부르지만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제 가슴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서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날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와서 빵~ 쏜대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
어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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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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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항시 건강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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