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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9회)
1
오늘은 동화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동화책을 마지막으로 읽어본 적이 언제인가요?
저는 어린 조카들이 있어서 가끔 조카들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러 가곤 합니다.
동화책 코너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는데 막상 그 내용들을 보면 예쁜 공주나 멋있는 왕자들의 얘기들이 수두룩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꿈과 낭만 가득한 책들만 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조카들에게 냉혹한 현실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지만, 동화 속의 세상은 현실과 너무 달라도 한참 달라서 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공주나 왕자는 젊고 잘 생기고 부자인데 하녀나 마녀는 늙고 못 생기고 가난한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동화를 읽다보면 나이 들고 못 생기고 가난하고 성격도 더러운 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동화책을 조카들에게 읽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유치한 콤플렉스인가요? 히히히
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를 조카들에게 읽어주다 보면 오히려 저를 위한 동화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동화들과 달리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못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옵니다. 엄지아가씨와 외다리 장난감 병정은 장애인이 주인공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도 못 생기고 성격도 비뚤어진 어린 오리의 얘기이고, 인어공주는 사람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닌 불완전한 인어가 벙어리 인간이 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이고,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한 아이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죽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동화 속에서는 하인이나 악당으로 나오는 이들을 안데르센은 주인공으로 삼아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얘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이 이런 동화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가난하고 소외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못 생긴 외모와 각종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 사랑을 이뤄보지 못한 그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저와 같은 허접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 아픔을 달래주는 동화들을 썼던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나 엄지 아가씨처럼 행복한 결말로 끝나면서 용기를 주는 동화도 있지만,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나 외다리 장난감 병정처럼 냉혹한 현실에서 죽음으로 끝을 맞는 슬픈 동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데르센의 동화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년에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죽은 사연이 전해진 적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갔던 그는 옆집 문에 “창피하지만,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조그만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 뉴스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음이 먹먹해져 있었는데, MBC라디오 여성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인 강석우씨가 “그 작가가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병으로 죽은 것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강석우씨는 그 작가의 죽음이 알려지기 몇 달 전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다 왔다고 방송에서 자랑을 하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 시나리오 작가나 강석우씨도 어렸을 때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었겠지요.
오늘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성냥팔이 소녀’를 읽어볼까 합니다.
어느 겨울날 밤에 있었던 이야기다. 추운 날씨 탓에 거리에는 일찌감치 인적이 끊기고 매서운 겨울바람만이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눈마저 내려 거리는 온통 하얀빛이었다.
“성냥 사세요.”
성냥팔이 소녀가 가냘프게 외쳤다. 소녀의 맨발은 검붉게 얼어 있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앞치마에서 성냥을 꺼내 들며 소녀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성냥 사세요.”
소녀의 외침은 너무 작아 금방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팔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성냥은 한 다발도 팔지 못했다. 게다가 성냥을 파는 소녀를 누구 하나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성냥을 팔지 못했다고 아버지한테 혼이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 있는 것이나 거리에 있는 것이나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집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들의 창문에서는 밝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으며, 거위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소녀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창문 안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소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걸어 다녔던 것이다.
다리가 몹시 아팠던 소녀는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자 소녀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아! 내게 성냥이 있지.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언 손을 조금 녹일 수 있을 거야.’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직’소리와 함께 성냥개비가 탔다. 불꽃은 작았지만 무척 밝았다. 소녀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주 큰 난롯가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소녀는 두 발도 녹이기로 했다. 그래서 두 발을 뻗었는데, 그만 성냥불이 꺼져 버렸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잘 차려진 식탁이 보였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거위와 탐스러운 온갖 과일들, 초콜릿 비스킷, 크림이 듬뿍 얹혀진 조각 케이크가 둥근 식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소녀는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조각 케이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가네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다.
성냥팔이 소녀는 아쉬워하며 자기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만하지 않았다면 조각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소녀는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서 있었다. 트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촛불들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느 부잣집에 성냥을 팔러 갔다가 우연히 본 그 트리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소녀가 큰 별 하나를 트리 꼭대기에 얹으려고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순간 성냥불이 꺼졌다.
소녀는 밤 하늘을 쳐다보았다. 트리에 꽂혀 있던 수많은 촛불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듯, 별은 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때 별 하나가 떨어졌다. 소녀는 별을 쳐다보다가 할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란다.”
소녀는 누군가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자 환한 불빛 속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가 소녀를 보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할머니! 할머니 곁에 있고 싶어요. 제발 사라지지 마세요. 제발요.”
소녀는 할머니가 난로처럼, 잘 차려진 식탁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남아 있는 성냥을 모두 꺼내 불을 붙였다. 불꽃이 그렇게 크고 환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따뜻한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추위도 배고픔도 없는 세상으로 손녀를 데려갔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모여 웅성댔다.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얼어 죽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한 손에는 타 버린 성냥다발을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녀가 몸을 녹이려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며 가여워했다. 아무도 소녀가 작은 불빛을 통해 자신을 가장 아껴 주는 사람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2
한국에도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분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도 권정생 선생의 책들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줍니다.
특히, 6.25 전쟁통에 배다른 동생들을 돌보면서 힘들게 살아갔던 절름발이 소녀인 몽실이의 얘기인 ‘몽실언니’는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온갖 아픔들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착하기만 한 몽실언니가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권정생 선생의 글들은 주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글들이 많지만 정말 내공이 장난이 아닙니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차별 속에 살아가다가 해방 후에 돌아온 조국에서도 가난과 병으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야 했던 권정생 선생은 평생을 그런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결핵 때문에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거지로 살아가다가 1967년부터 어느 조그만 마을 교회의 종지기로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쓴 동화가 ‘강아지똥’이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서 그냥 버리는 개똥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 개똥을 보면서 자신이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머리말에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 못 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개 같은 인생’이라고 한탄하는 이들보다 더 못한 ‘개똥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강아지똥’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였습니다. 바로 앞으로 소달구지 바퀴 자국이 나있습니다.
추운 겨울,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이어서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금방 식어 버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오들오들 추워집니다.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강아지똥 곁에 앉더니 주둥이로 콕! 쪼아 보고, 퉤퉤 침을 뱉고는,
"똥 똥 똥 ······에그 더러워!"
쫑알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강아지똥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똥이라니? 그리고 더럽다니?"
무척 속상합니다. 참새가 날아간 쪽을 보고 눈을 힘껏 흘겨 줍니다. 밉고 밉고 또 밉습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강아지똥이 그렇게 잔뜩 화가 나서 있는데,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뒹굴고 있던 흙덩이가 바라보고 빙긋 웃습니다.
"뭣 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이 골난 목소리로 대듭니다.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고 부르니?"
흙덩이는 능글맞게 히죽 웃으며 되묻습니다.
강아지똥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목 안에 가득 치미는 분통을 억지로 참습니다. 그러다가,
"똥이면 어떠니? 어떠니!"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 지릅니다. 눈물이 글썽해집니다. 흙덩이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는 용용 죽겠지 하듯이 쳐다봅니다.
강아지똥은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울면서 쫑알거렸습니다.
"그럼, 너는 뭐야? 울퉁불퉁하고, 시커멓고, 마치 도둑놈같이·····."
이번에는 흙덩이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멀뚱해진 채 강아지똥이 쫑알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실컷 울다가 골목길 담벽에 노랗게 햇빛이 비칠 때야 겨우 울음을 그쳤습니다. 코를 홀찌락 씻고는 뾰로통 딴 데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던 흙덩이가 나직이,
"강아지똥아·····."
하고 부릅니다. 무척 부드럽고 정답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똥은 못들은 체 대답을 않습니다. 대답은커녕 더욱 얄밉다 싶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도둑놈만큼 나빴어."
흙덩이는 정색을 하고 용서를 빕니다.
강아지똥은 그래도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깜짝 않습니다.
"내가 괜히 그래 봤지 뭐야. 정말은 나도 너처럼 못 생기고, 더럽고, 버림 받은 몸이란다. 오히려 마음속은 너보다 더 흉측할지 모를 거야."
흙덩이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제 신세타령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가 본래 살던 곳은 저쪽 산 밑 따뜻한 양지였어. 거기서 난 아기 감자 기르기도 하고, 기장과 조도 가꿨어. 여름에는 자주빛과 하얀 감자꽃을 곱게 피우며 정말 즐거웠어. 하느님께서 내게 시키신 일을 그렇게 부지런히 했단다. 그러던 것을 어제, 밭 임자가 소달구지를 끌고 와서 흙을 파 실었어. 집 짓는데 쓴다지 않니. 나는 무척 기뻤어. 밭에서 곡식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집을 짓는 것도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니. 집은 사람들을 따듯하게 재워주고 짐승들을 키우는 곳이 거든. 그래서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딴 애들과 함께 달구지에 실려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멈춘 흙덩이가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강아지똥이 놀라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어쨌니?"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뜩 뿔었던 화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가 나 혼자 달구지에서 떨어져 버렸단다."
"어머나!"
"난 이젠 그만이야. 조금 있으면 달구지가 이리로 또 지나갈 거야. 그러면 바퀴에 콱 치이고 말지.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단다."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다니?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걸로 끝이야."
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흙덩이가 다시,
"누구라도 죽는 일은 정말 슬퍼. 더욱이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괴로움이 더 하단다."
하고는 또 한 번 한숨을 들이킵니다.
강아지똥을 쳐다보고,
"그럼, 너도 나쁜 짓을 했니? 그래서 괴로우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나도 나쁜 짓을 했어. 그래서 정말 괴롭구나. 어느 여름이야. 햇볕이 쨍쨍 쬐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목이 무척 탔어. 그런데, 내가 가꾸던 아기 고추나무가 견디다 못해 말라 죽고 말았단다. 그게 나쁘지 뭐야. 왜 불쌍한 아기 고추나무를 살려 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괴롭단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니? 햇볕이 그토록 따갑게 쪼이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말라 죽은 것 아냐?"
강아지똥은 흙덩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고추나무는 내 몸뚱이에다 온통 뿌리를 박고 나만 의지하고 있었단다."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제 잘못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 것을 그 죄 값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기 고추나무가 못살게 제 몸뚱이의 물기를 빨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마음으로는 그만 죽어버려라 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 흙덩이는 괴로운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다시 밭으로 갈수만 있다면 이제부터는 열심히 곡식을 가꾸리라 싶습니다. 그러나 이건 헛된 꿈입니다. 언제 달구지 바퀴에 치여 죽어 비릴지 모르는 운명인 것입니다. 흙덩이의 눈에 핑 눈물이 젖어듭니다.
그때, 과연 저쪽에서 요란한 소달구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나는 이제 그만이다.'
흙덩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똥아, 난 그만 죽는다. 부디 너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나 같은 더러운 게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니?"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소달구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흙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강아지똥은 그만 자기도 한몫에 치여 죽고 싶었습니다.
으르릉·····쾅!
그런데 갑자기 굴러오던 소달구지가 뚝 멈추었습니다.
"이건 우리 밭 흙이 아냐? 어제 이리로 가다가 떨어뜨린 게로군."
소달구지를 몰고 오던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는 흙덩이를 조심스레 주워듭니다.
"우리 밭에 도루 갖다 놔야겠어. 아주 좋은 흙이거든."
흙덩이는 무어가 무언지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달구지 한편에 얌전히 올라앉아, 방긋방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밭으로 도로 돌아가게 된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소달구지가 멀리 가 버린 다음, 아직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채 빙그레 웃던 강아지똥이 혼자서 쓸쓸해졌습니다.
'그 애가 죽지 않고 도로 살던 곳에 가게 된 것이 참말 다행이야. 그럼 난 혼자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
강아지똥은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합니다.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조금 전에 흙덩이가 일러 준 말을 되뇌어 봅니다.
'정말 나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
해가 저물도록 웅크리고 앉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검은 구름떼가 몰려와 하늘 가득히 덮었습니다.
이내 사뿐사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솜이불처럼 강아지똥을 따뜻하게 덮어 줍니다.
눈 속에 묻혀, 강아지똥은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긴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깔리고 골목길에 눈이 녹았습니다. 봄노래가 어디에나 흥겹게 들렸습니다. 꽁꽁 얼었던 강아지똥도 몸뚱이가 축 늘어지고 노곤해졌습니다. 껌벅껌벅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사방을 둘러 봤습니다. 겨울에 보던 것 보다 모두가 다릅니다.
예쁜 새가 날아갑니다. 꽃고무신을 신고 애들이 골목길을 뛰어갑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힐끗 돌아보니 병아리 떼를 데린 엄마 닭이 분주히 걸어옵니다.
'저건 걸어 다니는 새들이구나.'
강아지똥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엄마 닭이 강아지똥 곁에까지 와서 기웃이 들여다봅니다.
"왜 그렇게 보셔요? 걸어 다니는 새님."
강아지똥은 조금 겁이 났기 때문에 무척 공손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걸어 다니는 새님이라고? 기막혀라. 이래봬도 난 여덟 마리의 아들과 다섯 마리의 딸을 데린 어엿한 병아리 어머니야."
엄마 닭은 조금 화가 난 듯, 그러나 젊잖게 신분을 밝혔습니다.
강아지똥은 코가 빨갛게 되어,
"병아리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셔요."
하고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옳지, 아이들은 역시 잘못했을 때는 곧장 용서를 비는 것이 좋아."
이렇게 엄마 닭은 지나치게 위엄을 보이고는 이어서,
"널 들여다 본 것은 행여나 우리 아기들의 점심 요기라도 될까 싶어서 본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어쩌면 소름이 쫙 끼칠 만큼 무서운 말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
"점심으로 나를 먹어주시겠다는 거죠? 좋아요, 모두 맛나게 먹어 주어요."
하고는 샛노란 열세 마리의 병아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귀여운 아기들의 점심밥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기꺼이 제 몸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 닭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우리에게 아무 필요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인 걸."
그러고는 병아리를 데리고 저쪽으로 가 버립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강아지똥은 또 풀이 죽었습니다.
'나는 역시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인가 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눈물이 나오고 ·····.
강아지똥은 그만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모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입니다.
봄날의 하루 해가 무척 지루합니다.
느리게 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이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쁜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온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따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3
일본작가가 쓴 ‘창가의 토토’라는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들 이상이 읽을 만한 책입니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강추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토토라는 꼬마가 도모에학원이라는 조그만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아주 밝게 쓴 책입니다. 도모에학원은 요즘 개념으로 하면 장애인 대안학교 같은 곳인데 모두 조금씩 불편함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합니다.
약간 삐딱하게 보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식민지 착취를 일삼던 일본 제국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중산층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식민지 문제나 가난한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는 하지만, 어린 꼬마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약간 무리이기는 하겠지요.
밟고 착하게 조금은 불편한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망가진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DJ DOC의 노래 가사처럼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토토가 친구랑 같이 벌였던 대모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강당에서 야영을 한 다음 날은, 그야말로 토토가 대모험을 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사실 토토는 야스아키와 어떤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또 야스아키네 식구들에게도 비밀이었는데, 다름 아닌 ‘토토의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 하는 것이었다.
도모에 학원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교정에 서 있는 나무들 중 한 그루씩을 자기만 올라탈 수 있는 나무로 지정해 놓고 있었다.
토토의 나무는 교정 저 끝, 구혼부츠로 가는 좁은 길과 울타리 사이에 서 있었다. 그 나무는 가지도 굵고 오를 때는 미끈미끈하지만, 기어서 오르면 아래에서 2미터 정도 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으며, 그 갈라진 부분이 해먹처럼 넉넉했다. 그래서 토토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곧잘 그곳에 걸터앉아 먼 데를 구경하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길 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곤 했었다.
이런 식으로 제각기 자기 나무를 지정해 둔 탓에, 행여 다른 아이의 나무에 올라가고 싶을 때는 반드시
“계십니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기 나무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야스아키는 소아마비였기 때문에 나무에 올라가 본 적도 없었고 또 자기 나무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토토는 오늘 자기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하기로 마음먹고 야스아키와 약속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용의주도하게 모두가 반대할 것에 대비하여 비밀로 삼기까지 하였다.
토토는 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덴엔쵸후에 있는 야스아키네 집에 다녀올게요.”
이 순간만큼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라서, 토토는 되도록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신발끈 쪽만 열심히 쳐다봤다. 그런데 역까지 따라 나온 로키에게는 헤어질 때 그만 사실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실은 야스아키를 내 나무에 초대했어!”
토토가 목에 맨 정액권을 펄럭거리며 학교에 도착하자, 여름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교정의 화단 옆에 누군가가 벌써 와 있었다. 토토 보다 한 살 위였지만 언제나 훨씬 큰 아이처럼 말하곤 하는, 바로 야스아키였다.
야스아키는 토토가 눈에 띄자, 다리를 질질 끌면서 팔을 앞쪽으로 내미는듯한 자세로 토토 쪽으로 달려왔다. 토토는 아무도 모르는 모험을 지금부터 한다고 생각하자, 너무도 즐거워서 야스아키의 얼굴을 보며
“후후후”
하고 웃고 말았다. 야스아키도 따라 웃었다.
토토는 우선 자기 나무가 있는 곳으로 야스아키를 데려간 다음, 엊저녁부터 궁리한대로 사환아저씨의 헛간으로 달려가 사다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에 기대어 세운 다음 척척 올라가, 위에서 그것을 누르면서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됐어, 올라와 봐!”
하지만 야스아키는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서는 도저히 한 계단도 올라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토토는 휙! 뒤로 돌아 사다리를 씩씩거리며 내려오더니, 이번에는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뒤에서 밀어 위로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토토는 몸집이 작고 깡마른 아이였기 때문에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미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휘청거리는 사다리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야스아키는 사다리에 올랐던 다리를 도로 내리고선,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인 채 사다리 앞에 서 있었다. 그제서야 토토는 이 모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임을 알았다.
(어떡하지...)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야스아키의 기대를 이루어주고 싶었다. 토토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야스아키의 앞쪽으로 돌아가서, 우선 입안에다 공기를 잔뜩 집어넣고 뺨을 부풀려 재미있는 표정을 지은 다음 기운차게 말했다.
“기다려 봐,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고는 다시 헛간으로 달려갔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토토는 이것저것 차례차례 끄집어 내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접사다리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라면 흔들거리지 않으니까 잡고 있지 않아도 될 거야!)
토토는 그 접사다리를 질질 끌고 나왔다.
(와아! 내가 이렇게 힘이 센 줄은 정말 몰랐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힘이었다.
접사다리를 세워보니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진 지점까지 거의 닿았다. 토토는 마치 야스아키의 누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지? 하나도 안 무서워. 이젠 흔들거리지 않으니까.”
야스아키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접사다리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담에 흠뻑 젖은 토토를 바라보았다. 야스아키도 땀이 비 오듯 했다.
야스아키는 천천히 나무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듯 첫 번째 단에 천천히 발을 올렸다. 그때부터 야스아키가 접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는 두 사람도 알지 못했다. 내리 쬐는 여름 땡볕 아래서 둘 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단지 무슨 수를 써서든 야스아키가 접사다리 위까지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 외에는...
토토는 야스아키의 다리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다리를 들어올리며, 머리로는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받쳤다. 야스아키도 있는 힘을 다해 마침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다.
“만세!”
그런데 그 다음이 또 절망적이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곳으로 뛰어오른 토토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접사다리 위에 있는 야스아키를 나무 위로 옮겨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스아키는 접사다리 끝을 꽉 잡은 채 토토를 쳐다봤다. 갑자기 토토는 울고 싶어졌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내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토토는 울지 않았다. 행여 자기가 울면 덩달아 야스아키까지 울어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토토는 소아마비로 손가락이 들러붙은 야스아키의 손을 잡았다 자기 손보다 훨씬 손가락이 길고 커다란 그 손을... 토토는 그 손을 한참동안 잡고 있다가 말했다.
“한번 누워볼래? 잡아당겨 보게.”
이때 만약 접사다리 위에 엎드린 야스아키를 나무 위에 서서 잡아당기기 시작한 토토를, 지나가는 어른이 봤다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을 게 분명하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스아키는 완전히 토토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때 토토도 자기의 온 생명을 걸고 야스아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토토는 조그마한 손으로 야스아키의 손을 꽉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를 계속했다. 지나가던 소나기구름이 때로 강한 햇볕을 가려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나무 위에서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토토는 땀에 흠뻑 젖은 옆 가르마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말했다.
“어서 오세요.”
야스아키는 나무에 기댄 자세로 약간 쑥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실례합니다.”
야스아키는 처음 보는 경치에 너무도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듯 했다.
“나무에 오르는 기분이 어떤 건지, 이젠 알겠어!”
그로부터 두 사람은 한참동안 나무 위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야스아키는 열띤 목소리로 이런 얘기도 했다.
“미국에 사는 누나한테 들었는데, 미국에서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대! 그게 일본에 들어오면 집에 편안히 앉아서도 국기관에서 하는 씨름을 볼 수 있다는 거야! 꼭 상자처럼 생겼다던데.”
하지만 먼 곳에 가기가 힘든 야스아키가 집에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직 토토로서는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자 안에서 씨름을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씨름선수들은 덩치가 큰데. 어떻게 집까지 와서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얘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때가지 아무도 텔레비전이라는 걸 모르던 시절의 일이었으니... 결국 토토에게 최초로 텔레비전 얘기를 해 준 사람이 바로 이 야스아키였다.
매미가 여기저기서 울고 있었다. 나무 위의 두 아이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나 야스아키한테는 이때 나무에 오른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무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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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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