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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71회)

~들리세요? (71회)

 


1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저는 성민입니다.


올 겨울에는 눈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가나 싶었는데
제주도에 갑작스럽게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냥 눈만 내린 것이 아니라
기온도 영하로 뚝 떨어지고
바람도 엄청 불어댑니다.


한라산 중산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은
영화 러브레터에서 봤던 훗카이도의 어느 외진 산장의 느낌과 비슷해졌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렇지만
수도는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고
보일러를 틀어도 방 안에 찬공기가 가득해서 입김이 나오고
반찬은 여유가 없어서 아껴 먹어야 합니다.
사랑이는 춥지도 않은지 집 밖으로 나와서 눈을 먹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안에 박혀서 할 일도 없는 일요일 오후
목도리를 하고 이불로 무릎을 덥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읽는 라디오 ‘들리세요?’ 71회 방송 원고는 이렇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오늘 첫곡으로는 주저없이 이 노래를 선곡했습니다.
김추자가 부릅니다.
‘눈이 내리네’

 


https://www.youtube.com/watch?v=Q2ZZKMbEA7g

 


창밖에 쌓여있는 흰눈을 보며 김추자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냥 이유없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감상적인 분위기에 빠져서 노래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박인수가 부른 ‘봄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9X5zCndhA

 


2


제주도는 눈이 수북히 쌓였다는데
제가 있는 서울은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꼬마인형이에요.


성민이가 한껏 분위기 살려놨는데
분위기 죽이지 않고 이어가야 하는데...


아, 오늘 방송은 음악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날씨도 추운데 좋은 노래 들으면서 겨울을 이겨보자구요.
성민이랑 제가 엄선한 노래를 번갈아 소개할테니까
여러분은 따뜻한 차 한 잔씩 마시면서 편하게 즐겨주세요.


성민이가 아주 분위기 있는 노래로 시작했는데요
저도 제 기준에서 분위기 있는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들어보실래요.

 


https://www.youtube.com/watch?v=UalVWw1tT0w
(정란의 ‘Siren’)

 


3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원고를 쓰는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늦습니다.
원고 쓰고 노래 선곡하고 하다보니 벌써 한 시간이 흘렀고
손이 차가워져서 입김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좀 전에는 햇볕이 비췄는데
지금은 다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사랑이도 집안으로 들어갔네요.


이렇게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떨어지는 기온만큼 몸도 마음도 차가운 분들이 많겠지요.


날씨가 추워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온몸으로 추위를 견디시는 분들에게는
마음의 추위도 더 심할텐데
그런 분들과 함께 들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차가운 마음을 더 차갑게 얼려줄 노래지요.
김윤아의 ‘가만히 두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Rgd_zLmnCiM

 


4


읽는 라디오 ‘들리세요?’의 주제곡 같은 노래가 있는데요
비올레타 파라의 ‘삶의 감사해’라는 노래랍니다.
이 방송에서만 벌써 세 번이나 나왔으니 들어보신 분들도 계시죠?
오늘은 이 분의 노래 중에 ‘열일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Volver a los 17)’이라는 노래를 소개해드리려고해요.


한국말로 번역된 가사를 먼저 보실래요.

 


한 세기를 살고 열일곱 살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명한 현자는 아니지만 암호들을 풀어내는 것과 같고
문득 찰나같이 연약한 존재로 되돌아가
신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깊숙이 느끼는 것이네
이것이 바로 이 풍요로운 순간 내가 느끼는 것


당신들의 걸음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내 걸음은 뒤로 물러났지만
하나됨의 활이 내 둥지를 관통해
그 풍요로운 색채는 내 혈관을 물들였네
우리를 묶는 운명의 단단한 사슬마저도
내 고요한 영혼을 비추는
순정한 다이아몬드 같기만 하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감정으로는 가능한 그것
지식으로도 불가능했었고,
가장 명확한 행동으로도,
가장 넓은 사고로도 어찌할 수 없었네
그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의
관대한 마법은 우리를 부드럽게
증오와 폭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네
단지 사랑만이 그 기지로 우리를
그다지도 순수하게 되돌려놓네


사랑은 원초의 순수함을 지닌 회오리바람
광폭한 짐승조차도 그 부드러운 떨림을 속삭이고
순례자의 발길을 붙잡고,
죄수들을 자유로이 해방하네
그 광채로 사랑은 노인을 아이로 되돌리고
단지 애정만으로 악인을 순수하고 신실하게 만드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마법처럼 창문이 활짝 열리자
망토를 걸친 사랑이 망설이는 아침처럼 들어왔네
아름다운 기상나팔에 맞추어
사랑은 자스민을 싹 틔우고,
사랑의 대천사는 날아오르며
하늘에 귀걸이를 걸었네
그러자 아기천사는
내 나이를 열일곱으로 되돌려놓았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엄청 철학적이죠.
사랑을 하면 순수했던 열일곱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인데
저는 열일곱살 때 자살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좀 묘해요.
그런데도 ‘삶에 감사해’만큼 매력이 있는 노래예요.
그 매력이 아마 비올레타 파라라는 분의 인생때문인 것 같아요.


이 분은 1917년 칠레의 촌동네에서 태어났는데요
기타 치면서 한량으로 지냈던 아빠가 갑자기 죽어서
열 일곱 살때부터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동냥을 했데요.
그 열 일곱 살로 돌아가자고 노래하는 거네요. 후후후


나중에는 도시로 나와서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성질이 사나와서 집적대는 남자가 있으면 기타로 후려갈기기도 했다네요.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서른 다섯 살때부터는 칠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칠레 민속음악들을 배우고 수집하고 그랬데요.
가난한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그랬데요.


이렇게 고생고생 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외국에서 초청도 받게 되는 유명인사가 됐는데
그럴수록 더 칠레 민속음악을 알리려고 노력했는데요
해외 공연을 하다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고 하고
남편과 이혼을 하기도 했데요.


그런데도 칠레 민속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계속 해서 외국에서는 성공했지만
정작 칠레에서는 변두리에서 천막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렇게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애인이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을 하고 말았어요.
그때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다네요.


참 슬프죠?
칠레에서 독재정권이 수 만 명을 죽였는데요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해’였데요.
이 얘기도 슬프네요.


에고 에고, 얘기가 너무 길어져버렸네요.
‘열일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이라는 노래는 ‘삶에 감사해’만큼 유명한 노래라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https://www.youtube.com/watch?v=TdLlkZW58SI

 


5


시간이 지날수록 눈보라가 더욱 거세져서
지금은 거의 태풍에 가까울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날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고요.


이 밤만 지나면 내일부터는 조금씩 기온이 오른다고 하고
이 방송을 내보낼 목요일에는 추위가 물러갔겠지만
지금 당장의 추위가 몸과 마음을 많이 움츠러들게 합니다.


가끔씩 밖으로 나와 짖어주는 사랑이가 있어서 의지가 되네요.
아무리 개라지만 이 추위를 밖에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밤에는 창고에 데리고 가서 거기서 자게 해줘야겠습니다.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
안녕들 하셔야 할텐데...


어쿠스틱 콜라보가 부른 ‘소녀와 가로등’ 들으면서
따뜻한 온기를 여러분에게 전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EXvfBNnm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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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하나


성민이가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성민이 꿈은 ‘혁명 휴양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곳’이
‘치유 속에 혁명이 씨를 뿌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성민이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이 꿈을 이루려면 적어도 10년은 노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10년의 호흡으로 혁명 휴양소를 같이 만들어가실 분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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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둘


성민이 부모님이 4남매를 키우던 집이 자식들이 하나 둘 씩 떠나면서 휑해져버렸습니다.
그 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리모델링해서 민박으로 바뀌었습니다.
민박집 컨셉이 ‘부모님과 제주여행’이랍니다.
블로그를 만들었으니 한 번 구경와보세요.
여기 -> http://joeun0954.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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