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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에이즈(AIDS)에 대한 단상

[과학] 에이즈(AIDS)에 대한 단상

이훈희 (bompt@hanmail.net)

■ 현대의학의 오류

현대의학이 고칠 수 있는 질병은 단지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은 80%에 달하는 질병의 원인을 모른다는 뜻이다. 내게는 이 점이 가장 의문이다.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라면, 현대의학의 역사가 아직 짧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의학의 역사를 현대와 고대로 나누는 것은 순전히 형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선언을 -히포크라테스 선언은 히포크라테스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사후 그의 이름을 빌려 이름을 알 수 없는 모 의사가 작성한 것이며, 이 선언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개정된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언이 인간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착각이다. 선언은 오직 의사의 입맛에 맞으며, 의사에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다- 아직도 외우는가!

그리고 의학의 역사는 서양의학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의학 역시 그만큼 오랜 기술와 철학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양의학은 고대와 현대를 굳이 나누지 않는다. 동양의학 역시 분명히 의학이며, 어떤 면에서는 현대의학이라고 불리는 서양의학보다 휠씬 기술적으로 앞서있다.

현대의학에 고대와 근대, 현대가 구분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시대 구분이 아니라, 의학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학은 고대의학을 한심하게 여기고 심지어 경멸한다. 현대의학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의학인 것이다.

그러나 고대 의학이 진부하거나 수준이 낮았다고 생각하는 큰 착각이다. 이미 수 천년 전에 뇌수술이 개발되었고, 19세기만 해도 하네만의 동종요법이 전체 의술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현재 동종요법은 대체요법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대와 근대에 의술의 전부이거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의료기법의 이러한 몰락은 현대의학의 탐욕에 있다.

오로지 자본과 정치의 논리에 복종하는 의학, 이것이 바로 -새로 탄생한- 현대의학의 정체이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의학을 개발했으나, 자본은 이윤논리에 따라 의학을 개발했다. 우리가 이용하는 현대의학은 자본의 필요에 불과한 것이다.

자본의 필요에 따라 지배되는 현대의학은 실험실과 수술실과 은행구좌에 의존한다. 그것은 치료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정말로 치료에 의의가 있고, 그것을 위해 봉사했다면 현대의학에 그토록 많은 치명적 범죄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 총기 사망자보다 의료사고 사망자가 더 많은 것처럼.

과학적인 근거와 합리적인 원인 분석만이 올바른 이론을 보장한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훈련받은 전문가 집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추측과 오류만이 의학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오류를 벌이고 있는 지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통해 명백하게 검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체 질병 중 80%의 원인을 모른다는 건 뭔가 철저하게 잘못된 이론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운 모든 파탄이 난 이론들이 그러하듯이.

그 다음에는 원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타난 증상을 억압하기 위한 대중요법이 일반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학은 대중요법이다. 감기가 왜 걸리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열과 기침을 억누르는 항생제를 대량 투입한다. 이것은 면역학의 원리와도 어긋나는 비의료적 행위이다. 이로 인해 인체는 자연치유력을 잃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의사들이 잘못된 이론을 갖고 잘못된 의료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울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백신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이 황당한 이론은 심인성을 중요하게 파악하는 정신분석학의 이론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오로지 바이러스!! 질병의 100%는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저 위험천만한 상상력!!

자, 가정해보자. 눈 앞에 부패한 음식이 있다. 당신은 현미경으로 그 음식을 관찰한다. 무엇이 눈 앞에 보이는가? 대조군의 부패하지 않은 음식과 비교했을 때 뭔가 다른 것이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음식을 부패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인다. 과연 그럴까?

세균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그 어떤 세균에도 당신의 면역력은 끄떡없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잦은 스트레스, 질이 아주 나쁜 음식(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인스턴트 음식 등은 굉장히 질이 나쁜 음식이다)을 섭취할 때 인체는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면역체계는 이를 원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자구책을 쓴다. 이것이 기침이나 열과 같은 것이다. 이때 또 당신이 현미경으로 기침이나 열을 관찰한다. "어~ 이상한 게 보이네!" 그럼으로써 또 바이러스가 창조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면역성의 원리를 완전히 부정한다. 그러나 이 면역성의 원리야말로 히포크라테스가 그토록 주장했던 의학의 정수이다. 그는 환경과 물을 가장 중요한 건강의 판단요소로 보았다. 즉, 현대인의 1/4이 단 돈 1달러로 일주일을 연명하고 있고, 또 굉장히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영양실조나 오염으로 인해 결핵, 폐렴 등에 걸려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만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현대의학은 자본가와 지배계급의 이익에 철저하게 봉사한다. 결핵균에 의해 사망, 폐렴균에 의해 사망, 말라리아균에 의해 사망! 이러한 사망통지서가 남발되는 가운데 질병을 불러 온 진정한 원인은 그만 은폐되고 만다. 즉, 결과를 원인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무한정한 착취는 계속되고, 체제는 안녕을 구가한다. 가끔 빈민들을 동정해주고, 국민성금이나 해외원조를 받으면 그걸로 할 일은 끝났다.

바이러스학은 이처럼 우리의 상식을 압도한다. 썩은 음식이 썩지 않은 음식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바이러스학이기에

■ 파스퇴르의 오류

바이러스 학설은 미생물 발병설에 뿌리를 둔다. 독립된 병원성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은 파스퇴르이다. 육즙의 부패나 포도즙의 발효를 둘러싸고 푸셰와 논쟁을 벌이며 연구를 거듭하던 중 1861년 그는 유기물을 함유한 액체를 멸균한 후 공기와 접촉시켜도, 공기 속의 미생물이나 포자를 적당한 방법으로 없애면(백조머리 플라스크를 이용함) '자연발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미생물 발병설의 주요한 근거가 되는 논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자연발생의 부정에 성공(?)하였다.

놀랍게도 파스퇴르가 고니목 플라스크 안에 넣어둔 영양액은 1백여 년이 넘도록 썩지 않았다. 보통의 자연계에서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파스퇴르식 멸균 우유는 고온에서 몇 달 동안 방치해도 절대 썩지 않으며, 미국 식품의약청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우유의 질과 양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마시도록 권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자연발생설은 지난 2천 년 동안 정설이었다. 탈레스, 아낙시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하비, 레벤후크 등 이름만 봐도 알만한 대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자연발생설을 지지했다. 넓게 포함하면, 물질의 본래 성질은 점차 체계화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물리적 특성이 화학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생물학적으로 되고, 결국에는 사회화한다고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자 엥겔스도 여기에 포함된다. 엥겔스는 생명의 발생이 우연이 아니라 '철의 필연성'을 갖고 있다고 통찰했다.

(고대보다 더 퇴보한 것 같은) 지금의 과학적 수준으로는 누구도 생명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연발생설을 부정한 파스퇴르의 실험만큼 파스퇴르가 얼마나 멍청하고 독선적인 인물이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것도 또 없다고 생각한다.

미생물이 완전히 사라진 영양물은 더 이상 영양물이 아니다. 즉, 영양 원소들의 집합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애당초 영양물을 상대로 한 자연발생 실험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었다. 보기로써, 인간을 아주 잘게 쪼개서 칼륨, 나트륨 등 원소 단위로 구분해보자. 고작 몇 천 원 어치도 안 되는 원소의 집합에 불과할 뿐 생명을 갖고 호흡을 하는 인간으로 불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먹는 국이나 밥은 생기가 있는 것들이다. 이 사실은 전파 실험을 통해 증명된 지 오래이다. 인도의 위대한 과학자인 챤드라 보스는 1900년 국제 물리학 회의에서 <무기물과 생물의 있어서의 전기적 작용으로 야기되는 현상의 공통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자연의 다양성 속에서 보여지는 기본적인 통일성이 생명이며, 생물과 무생물간에는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 같은 큰 차이가 없으며, 서로가 이질적이 아니라는 점을 -수천 번 반복된 실험을 통해- 증명한 바 있다.

생명이 자연발생 했다는 걸 입증하는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파스퇴르의 실험은 유기적인 미생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생명이 발생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 그것은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발생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하나의 큰 근거이다.

지구의 역사는 46억년 가량 되며, 생명의 기원은 40억년까지 거슬려 올라간다. 이 와중 우리 인간이 확인할 수 있었던 대량 멸종(육상이나 해양 지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다양한 생물이 거의 일제히 멸종했다는 것을 의미)된 햇수만 해도 6-7회에 달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생명 발생과 함께 멸종 이후 새로 발생한 생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미생물을 다 없애면 생물이 발생하지도, 썩지도 않는다는 파스퇴르의 이론은 그래서 미생물이 존재하기에 생명이 발생한다는 걸 입증하고 있다. 이것은 미생물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걸 반증한다. 우리 몸의 산소를 공급하는 미토콘트리아가 원래 박테리아였다는 점은 한결 기분을 좋게 만든다.

파스퇴르의 실험은 두 종류의 세력이 선호하는 구미에 맞는 것이었다. 하나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 세력과 또 하나는 화학회사에서 제약회사로 변신하고 있던 자본가들이었다. 기독교는 파스퇴르의 실험을 내보이며, "생명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 인생들, 생명되신 예수님을 통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자본가들은 미생물을 죽이는 화학물질을 개발하여 판매할 수 있었다.

하여튼 파스퇴르의 실험은 현재 과학자들을 온통 혼란 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 엉터리 실험에 의문을 품고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의 전문성은 다시 한 번 재고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이 실험에 대해 흔히 지나쳐 버리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실험이 자연발생이 결코 일어날 수도 또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킴볼 생물학

■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낸 HIV

파스퇴르 자신이 초대 소장이었던 파스퇴르 연구소는 1983년 드디어 엽기적 사건을 터트렸다. 몽타니에 박사 연구진이 동성애자의 림프관에서 추출한 혈액 속에서 레트롤 바이러스 계열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즉 HIV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코흐의 법칙에 따라 HIV를 정제하고 분리하지 않았다. 바이러스학에서는 바이러스 분리가 결정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손에 쥐어지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1984년 HTLV-Ⅲ를 발견했다고 기자회견까지 가진 로버트 갤로마저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 믿는 빽(?)이 있었다.

WHO와 WHO를 사실상 지배하는 미국 정부는 곧 HIV를 정설로 인정했다. 이 믿겨지지 않는 사실은 얼른 전 세계 과학계로 퍼졌다. 1980년대 레트로 바이러스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던 페터 듀스버거 박사 혹은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케리 뮬리스 박사 등은 에이즈 이론이 가설이며 HIV는 증명된 바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으나, 미국정부는 이미 HIV의 팔을 든 상태였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듀스버거 박사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돈으로 매수되었던가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 되었다. 로버트 갤로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제약회사는 도저히 금액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순이익을 맛보았다. HIV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였던 것이다. 미국 정부도 정치적으로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반체제 세력으로 분류되어 있던 흑인과 동성애자를 아주 손쉽게, 너무나 확실하게 공격하였으며, -게이 전용 목욕탕을 폐쇄하고 각 가정에 ‘에이즈의 이해’라는 안내책자를 보냈으며 안전한 성생활을 강조한 결과- 당시만 해도 체제 반항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강했던 SEX를 체제순화 이데올로기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아프리카에 대한 전략적 기득권을 한꺼번에 손에 넣었다. 이 점은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해보자. 하여튼 이 모든 일이 현실화되었고, 그 주역은 HIV라는 이데올로기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몽타니에와 로버트 갤로가 의학계에서 대단한 위치였기는 했지만, 그들만의 힘으로는 아무 증거도 없는 추론을 일약 전 세계적 정설로 믿게끔 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미친 놈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순응케 하려면, 그들의 실험실과 안정적인 생활권을 움직이는 위력적인 달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와 자본의 힘인 것이다.

문제는 HIV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혹시 당신은 이 방법이 실험실에서 수천, 수만의 검증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상상하고 있지 않은가? 절대 아니다.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주장은 에이즈 성병설을 낳았다. 하지만 성병이라고 하기에는 이론이 너무 취약했다. 그래서 성병설은 취소되었다.

HIV 감염 경로를 예상했던 과학자들은 굉장히 이상한 인간 중 하나였다. 아무런 과학적 증명도 안된 상태에서 인체 내 구멍이란 구멍은 다 찾아낸 것이다. 결국 요도와 땀구멍만 빼고, 항문과 입, 질 등이 주요한 감염경로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 황당한 상상력은 마치 1945년 발표된 오슨 웰즈의 라디오 창작물인 <화성인 지구 침략>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 두 명을 삼장마비로 죽게 하고, 수십만 명을 대피하게 하는 소동을 낳았다. 하지만 오슨 웰즈는 이 덕분에 헐리우드 영화 자본의 환대를 받고 인류 역사상 최대 걸작품인 <시민 케인>을 만들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자유주의 시장경제였지만, 이 보이지 않는 손(자본과 정치의 역학관계)은 HIV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쓴 HIV의 역사가 그것이다.

이들은 HIV가 원숭이의 SIV와 유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원숭이가 단 1-2%밖에 차이 안 나는 친척이라는 점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착각말기를! 1%의 차이는 백과사전 수백 권의 분량이며, 이 정도의 차이가 새로운 생물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라는 사실을. 원숭이와 인간은 가깝기는커녕 일본과 한국의 사이 또는 남한과 북한 사이와 같이 멀다.

SIV와 HIV(가 존재한다면?)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그런데 이걸 가깝다고 우기는 건 대중이 정확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여튼 HIV 이론가들은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된 사실(?)을 열거하면서 분명히 아프리카에서 전파되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이렇게 아프리카를 강조한 이유는 HIV가 전염성이 있다고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염경로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 아프리카에서 HIV가 전염되었다는 주장의 오류

HIV 이론가들이 상상해 낸 아프리카 원숭이설은 과학적 합리성보다는 제국주의적 생물학인 사회생물학의 이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에이즈라는 가공할 만한 전염병이 서구가 아닌 저 멀리 타잔과 제인이 사랑을 나누고, 식인종이 해골을 들고 다니는 미개한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인디아나 존슨>같이-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공포감을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아폴로 13호 달 착륙과 같은 이 삼류 각본은 헐리우드 영화가 대중을 사로잡는 각가지 요소, 특히 SEX와 SF를 적절히 배치한다. 인간과 원숭이가 성관계를 나누고, 이때 SIV가 HIV로 진화, 한참 성욕에 불타있는 인간의 몸에 감염되어,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0년대 아프리카가 국제화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게 주요 줄거리이다.

이러한 인종차별적 시나리오는 미국이 철저한 인종차별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있었다. 사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어떤 역사가 있으며, 그 검은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양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HIV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난 사람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에이즈 이론이 충족시켜주는 공포심으로부터 자신은 안전하다는 것과 도덕적 위선에 젖어 사는 것이 전부였다. 사회적 편견은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종되는 현실에 만족했다.

그런데 HIV 이론가들이 크게 실수한 게 바로 이 아프리카설이다. 그들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의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아프리카는 지난 수 천년 동안 서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적어도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던 1501년부터 350년 동안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인구이동(노예매매)의 역사가 있다. 나아가 1960년대야말로 아프리카가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한 해였음을 경제학자라면 상식에 속한다. 차라리 록키 산맥에 가끔 출몰한다는 설인이 피크닉을 즐기던 여성을 납치, HIV를 감염시켰다는 시나리오가 휠씬 반박하기 어렵다는 걸 왜 몰랐을까?

지금 현재 아프리카설은 HIV가 풍토병이었다는 주장과 아프리카가 개발되면서 지금까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HIV가 원숭이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주장으로 나눠지고 있다. 그리고 원숭이와의 성교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처음의 주장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원숭이를 먹는 습성을 가진 원주민이 원숭이에게 공격을 당해 입은 상처에서 발생했다는 설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에이즈가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그 전에 앞서 우리는 노예매매가 이루어지던 시기, 즉 3백50년 동안 무려 4천만명의 노예들이 아메리카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 사냥꾼들은 키가 크고 이가 튼튼한 -한 명당 4000달러씩 받을 수 있는- 흑인을 잡기 위해 아프리카 밀림의 저 오지까지 쳐들어갔다.

이렇게 사냥된 흑인들은 노예선에 실려 목화밭이나 사탕수수밭으로 팔려 나갔고, 만일 HIV 이론가들의 주장대로라면 에이즈 풍토병을 앍고 있던 흑인은 이미 그때 에이즈를 전염시켜야 옳다. 그러나 이 당시 에이즈가 전염되었다는 그 어떤 역사적 문서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4천만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에이즈 풍토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면, 이 확율은 1/40,000,000이다. HIV 풍토병 이론은 수학적으로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이 확율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다음 원숭이의 공격을 받고 HIV에 감염되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언어도단이다. 원숭이를 식용하는 식문화는 아프리카 뿐만이 아니라 원숭이가 서식하는 모든 지역,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도,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왜 이들 나라는 HIV로부터 자유로운가! 침팬지가 없어서?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일찌감치 에이즈로 모조리 사망했어야 했다. 이 역시 1/40,000,000이라는 확률을 견뎌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가 국제화되었다는 1960년대를 살펴보자. 이때는 미국이 항공기 등 하이테크 산업으로 산업구조조정을 하고 있던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미국은 '세계의 굴뚝'이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전 세계 제조업의 70%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엄청난 기술과 노하우는 미국에 의해 '세계적 재분배'된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이 과정에서 소외되고 만다. 제조업을 분배받은 나라는 오늘날 아시아의 세 마리 용이라 불리는 홍콩과 싱가포르, 남한이었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의 각 나라와 남한 등 아시아의 국가는 경제적인 수준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남한은 농민이 70%였고, 1차 산업이 주종인 국가였고, 이 점은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GNP 성장률과 경제성장 속도를 보면 오히려 아프리카가 이들 아시아 국가보다 더욱 유리한 입장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냉전적 사고에 비롯된 군사적 전략 가치가 제조업 재분배의 기준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던 소련을 저지하는 한편 강력한 동북아 블록을 형성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러한 냉전 전략과 군비 증강은 경제적으로 에스컬레이트 효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남한 등 각 아시아 국가에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하고, 일상적 군사활동을 허용 받을 수 있는 떡고물이 필요했다. 이것이 이들 나라에 제조업이 재분업된 실질적인 이유이다.

아프리카는 그 이후 고 인플레이션, 절상된 환율, 자본 이탈, 외부원조 상환금 및 이자 증가로 인한 부채 증가, 공공부문의 경영부실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산업기반이 없는 이유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 전대미문의 기아사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지금 아프리카는 국가에서 지불하는 의료비용이 국민 일인당 2달러에 불과하고, 이조차 원조받은 비용이다. 간단한 치료면 회복되는 말라리아가 아프리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HIV의 아프리카설은 어느 경우에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설에 대해 영화가 참고된 것은 그 당시 헐리우드 영화 산업이 타켓으로 잡은 미개인이 흑인이였고, 아프리카였기 때문이다. 그 뒤 일본인, 아랍인 등으로 바뀌었지만, 영화산업만큼 인종차별적인 의식을 대중에게 주입시키는 매체도 또 없다는 걸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공포심과 적개심, 경멸감(혹은 환상)을 갖고 있었고, 에이즈 이론은 이것을 100% 이용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프리카와 HIV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이 관계야말로 에이즈 이론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인 제국주의 금융자본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위선을 폭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기이기 때문이다.

■ 다국적 제약회사의 탐욕

아프리카를 상대로 저지른 노예 매매는 서구 제국의 갖고 있는 탐욕의 일부분이다. 남아공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들은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땅을 강탈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다이아몬드와 금, 구리 광산을 개발하고, 석유를 퍼 올렸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 중 특히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철저히 흑인들의 고유한 문화와 생활을 파괴하였다. 학교에서는 민족의 고유어를 못 쓰게 탄압하였으며, 끊임없이 흑인들이 열등감을 갖도록 조장하였다. 흑인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서서히 자기 민족이 열등하고, 흑인종이 백인종에 비해 열등하다고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이외에 인체실험 등 흑인 원주민을 대상으로 잔악한 행위는 -심장이 튼튼하지 못한 이상- 단숨에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1744년도 자료에 의하면 노예무역은 당시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던 리버풀 무역 총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1783-1793년의 10년 동안 리버풀의 노예판매 총액은 1천5백만 파운드. 이 중 순수익이 1천2백만 파운드였으니 무려 80%에 이르는 수익률을 보이는 장사였다. 게다가 노예무역은 단순히 노예매매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노예상들에게 큰 매력으로 비쳐졌다. 유럽-아프리카-미국을 잇는 이른바 '노예삼각무역’이 주는 이익은 단순한 노예매매 이상이었다. 이때 벌어들인 돈은 향후 산업혁명기에 요긴하게 쓰인‘초기 축적자본'이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다. 동인도무역에 의해 17세기 말에 들여온 인도산 캘리코 면직물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있어 의료 혁명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면제품의 수요를 자극하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의 부흥은 면직물과 염료를 제공하는 염료산업의 발전을 불러 왔다.

이 중 염료산업에 주목하자. 당시 자본주의는 10년을 주기로 공황을 거듭했다. 불황, 활항, 호황, 공황 등 이러한 경제 부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산업이 바로 면직물 산업이며, 염료회사였고. 수요가 떨어질 때마다 창고에는 염료가 가득 쌓였다.

화학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것을 어떻게 처분하지!'

전염병의 원인균이 분리되고 그 균을 죽일 수 있는 화합물을 시험관에서 실험할 수 있게 되자 당시 독일 염료회사들에서는 자신들이 합성한 염료와 그 중간 물질이 병원균을 죽일 수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균을 죽이는 물질을 발견한다는 것은 염료로 얻는 수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염료회사였던 바이엘이나 훽스트가 제약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동기였다. -[재미있는 약 이야기]

그 당시 유럽에서 약 제조는 개인 약사가 직접 담당했고, 수량은 저조했다. 염료회사는 이 틈을 파고 들어왔다. 이들은 살리실산, 페나세틴, 안티피린 등 의약품에 사용할 수 있는 합성물질을 개발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신물질의 안정성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었다.

제약회사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이처럼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독약 -염료는 독극물이다-을 약으로 둔갑시켜 대량 생산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은 환자가 약을 먹고 죽든 말든 상관 안 한다. 1940년-60년대에 악명 높은 입덧 치료제인 탈리도마이드가 대표적인 보기이다. 처음 영국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탈리도마이드는 그 뒤 20년 동안 유럽에서 판매되었다.

나중에 그 약물을 복용한 임산부들에서 1만2천여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무지증같은 심각한 선천성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판금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약물은 1998년 미국에서 나병치료제로 다시 허가받아 탈로미드(Thalomid)라는 상품명으로 시판 중이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에이즈 치료제로 가장 널리 사용 중인 AZT는 원래 항암제로 개발되었다가 골수파괴 등 그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여 불허되었다가, 에이즈 치료제로 다시 허가 받은 것이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달나라라도 접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원하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윤이다. 이윤은 그것을 수료할 새로운 시장을 의미한다. 새로운 신종 질병이 없는 한 더욱 확장되고 축적될 이윤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러나 에이즈는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 과학적 증명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이 엄청난 시장을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다. 새로운 질병이 만들어지고, 그 이름은 에이즈가 되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는 지옥 같은 이름!

제약회사의 원류인 염료회사는 노예매매를 통해 거둬들인 엄청난 이윤을 갖고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 뛰어들 수 있었다. 그리고 제화회사는 아프리카를 전염병의 원천으로 만들어 또다시 엄청난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HIV와 아프리카의 직접적이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자본은 그 속성상 무한 경쟁을 지향한다. 경쟁을 위한 경쟁, 축적을 위한 축적이 바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윤에 있고, 다국적 제약회사에게 이 이윤은 언제나 새로운 시장을 의미한다. 소위 HIV 바이러스의 신종이 계속 나타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프리카 흑인 시인인 나디에의 '감사합니다, 하나님' 중 일부를 감상해보자. 아프리카의 고난과 절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흑인으로 창조하신 것을 나를 모든 고통의 합계로 만드신 것을
무수한 칼이 내 가슴을 찔렀고 무수한 낙인이 내 몸을 태웠습니다.
나의 피는 모든 골고다 언덕의 눈을 붉게 물들였고 새벽마다 모든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나르는 것에 나는 만족합니다. 나의 짧은 팔에 긴 다리 두툼한 입술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흑인으로 만드신 것을 ...

■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오류

유명한 안티 에이즈 과학자 조직인 펄스 그룹의 회원인 Michael Verney는 <'Virtual Viral Load' Tests>라는 논문에서 HIV를 빗대어 바늘 끝에서 춤추고 있는 천사에 비교했다.(Mediaeval theologians were obsessed with how many angels danced on the head of a pin.)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의학자들이 '에이즈의 돌'을 찾아 환상과 욕망을 창조해내는 정신병적인 현상이다. 사실 중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바늘 한 개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을 출 수 있는가를 놓고 심각하고 유식하게 토론했다.

오늘날에는 HIV란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에이즈 환자가 자살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을 뿐 형이상학적 논의는 끝이 없다. 안티 에이즈 과학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오직 이것 뿐이다. "사실을, 논박할 수 없는 사실을 대라" 또는 "A proxy? Viruses should be seen, not inferred!"

후천성면역결핍증이란 단어 자체가 극단적 언어 폭력이다. 선천적으로 면역 결핍된 상태에서 태어난 사람은 면역체계를 방어할 수 있는 인공물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데 후천적으로 면역이 결핍되었다는 사람이 어떠한 의학적 보조 없이 매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선천적인 면역결핍 상태와 비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선천성에 비교해서 면역결핍 상태라고 한다는 것은 의학적 상태로도 절대 타당한 규정이 아니다.

단어는 가리키는 대상의 개념, 즉 그 대상의 체계와 속성을 의미한다. 가령, 나무와 풀은 체계와 속성이 다르다. 그렇기에 나무를 보고 풀이라고 하면 우리는 언어가 가진 전제인 '사회적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서로가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상대가 잘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래서 언어폭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후천성면역결핍증은 언어의 이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맥락을 위반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AIDS가 '지양(止揚)'이라는 단어와 좀 닮은꼴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독일어 aufheben이 지닌 여러 뜻 중에서 헤겔이 변증법 용어로 쓴 것을 일본 학자가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철학사전]에서는 "변증법에서 사물의 발전은 낮은 단계를 부정하고 높은 단계로 전진하는데, 높은 단계 속에서 낮은 단계의 실질을 보존한다. 이것을 헤겔은 지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AIDS와 지양의 닮은꼴은 이렇다.
(1) 뜻을 모르는 채 사용하고 있다.
(2)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
(3) 잘못 쓰이고 있다.

앞서 단어는 가리키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AIDS는 가리키는 대상이 없다. 추상적인 모든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따라서 간단한 감기증세도 AIDS로 착각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자살까지 한다.

가리키는 대상이 모호하거나 아예 없는 이렇게 추상적인 언어는 독재정권의 마술적 언어기법이기도 하다. 과거 나찌 정권에서 악명 높은 대중 통제를 행사한 히믈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상대방이 어떻게 말해도 그를 처벌할 수 있다. 만일, '히틀러 총독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너는 동성애자다'고 말하면 된다"

그래서 AIDS라는 단어는 저인망 그물과 같다. 폐렴과 결핵, 감기와 두통, 피부병과 요도염 등 갖가지 병의 증상을 모조리 사로잡는다. 그것은 마치 국가보안법의 각 조항을 떠올린다. 짜장면 값이 얼마인지도 3급 국가기밀에 속한다. 이를 조총련계 일본인에게 가르쳐줘도 기밀누수죄가 적용된다. 교보문고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사회과학책도 이적표현물 소지죄이다. 전국 대학교 총학생회의 전국 기구인 한총련이 반국가단체이고, 한총련에 가입했다는 것 자체가 반국가단체 가입이다.

미국은 1950년대 전쟁과 고문에 심리학 기법을 이용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 심리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추상'이다. 고문을 받는 사람들이 자주 받는 유도질문은 대부분 추상적 질문이다. 이처럼 가리키는 대상이 없는 단어 앞에 놓인 사람은 고문을 받는 것과 같은 공포감(답답함, 막연함 등)을 받는다. 잘난 체 하며 현학적 표현을 쓰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피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손에 쥘 수 있는 증거가 없는 논리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목적을 반영한다. AIDS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들은 거짓말이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짓말의 법칙인 '큰 거짓말은 죽을 때까지 속일 수 있다'이다. 그럴 듯한 명분과 과학이라고 이름 붙인 자료, 혹은 일반인들은 전혀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시체와 같은 전문 용어로 포장하면 일단, 합리성은 갖춘 것 같이 보인다.

에이즈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다. 실제 이들의 심리는 고문 피해자의 증상 혹은 후유증과 다를 바 없다. 언어폭력은 이렇게 무섭다.

말은 정확하게 하고 살자. 후천성면역결핍증이란 없다. 그것은 사망한 것과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면역저하는 있다. 현대 사회에 살면서 면역저하를 호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거의 대부분 2-3가지 만성 질병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2-3가지 만성질병을 앓고 있다. 무좀과 충치!

하지만 일시적인 면역저하는 호전현상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항상성 유지 현상'이라고 한다. 정말 위험한 면역저하는 아픈 것도 모르는 상태이다. 흔히 매우 건강하다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말기 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면역성이 무너져 아픈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림프관이 붓고,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증상은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활동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면역성의 메커니즘은 지식과 고통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의 개념은 최상과 최하를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일시적 면역저하는 흔히 있을 수 있고 또 건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앓고 있는 공포증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성기 콤플렉스도 공포증의 일종이며, 신데렐라 콤플렉스도 공포증의 일종이다. 강박관념과 불안함은 이 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이 불러일으킨 정신적 편향일 뿐 현실과 미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러한 공포증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기만이나 또한 집단적 착각 속에서 유발된다는 점이다.

■ 에이즈 증상의 허구성

1981년 6월 5일 미국 연방질병통제센터(CDC)는 젊은 동성애자 남성 5명이 희귀한 폐 감염증인 뉴모시스티스 카리니(주폐포자충) 폐렴에 걸렸다고 보고했다. 의학자들은 이것이 "설명할 수 없는 면역기능 저하증상"이라고 진단했다. 보통 이때부터 에이즈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건 잘못 판단한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면역기능 저하현상은 의학의 역사에 셀 수 없이 많다. 일단, 어떤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가 면역 기능이 약화된 상태이고, 병을 부른 원인을 모르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당뇨병도 원인을 모르는 '설명할 수 없는 면역기능 저하현상'인 셈이다.

에이즈의 역사는 몽타니에가 실험실에서 HIV라고 이름 붙인 가설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동성애에 착안한 몽타니에는 성적인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찾기에 이른다. 이어 동성애자의 림프관에서 발견한 세포(바이러스가 아니라 분명히 세포다!)를 바이러스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들이 말한 에이즈의 증상이 임파선이 붓는 증상을 동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이즈 공식 학설 1 -

에이즈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이다. HIV가 몸 속에 들어오면 세포 중에서 면역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CD4+ 세포(백혈구)를 공격, 세포 안에 들어가 증식을 하게 된다. 혈액 중에 있는 바이러스는 특히 림프계로 옮겨간다.

에이즈 공식 학설 2 -

에이즈에 감염되면 3내지 6주 후에 독감과 비슷한 증상, 다시 말해서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전신이 쑤시고, 구역, 구토, 설사가 나며 몸이 나른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임파선이 붓거나 피부에 붉은 반점이나 두드러기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1내지 2주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 이론은 기존의 면역 체계 시스템을 완전히 뒤집는다. 예컨대, 감기에 걸려 몸이 아팠다가 열이 내리는 등 진정이 되면 회복한 것이지 감기에 걸려 있는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암 진단을 받았어도 치료를 받고 암 세포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암에서 치료되었다고 말하지, 계속 암에 걸려 있는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궤변으로는 수가 안 통한다고 생각했던 지 이들이 마지막으로 고안해 낸 방법은 이것이다.

love4one.com - 에이즈 관련 사이트

AIDS에 감염되면 여러 가지 초기증상들이 나온다고들 많이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에이즈에 감염된 감염인들의 30%에게만 나타나고, 그것도 치료를 하지 않아도 바로 없어지기 때문에 증상으로는 에이즈 감염여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에이즈는 검사만으로 감염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에이즈 검사, 즉 HIV 혈청 검사만이 에이즈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게 오늘날 에이즈 이론의 전부이다. 에이즈에 걸리면 10년 안에 죽으니까 꼭 검사를 받아보라는 협박을 제외하면! 그러니 여기에 겁을 먹은 사람은 검사를 받게 되고 음성이 나와도 평생 포비아의 후유증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 에이즈 이론은 이처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환자가 되게 만든다. 마치, 아이들을 유혹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국립보건원 98년 자료에 의하면, 그 동안 에이즈 검사시행만 88만 건에 달한다. 즉, 88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에이즈 포비아가 된 것이다. 일단, 포비아가 되면 생활은 완전히 황폐해진다. 그 결과를 보자.

자살 사례 -

94년 9월- 에이즈 오인 비관 자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오인한 사람들이 잇달아 자살.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했던 조모씨(44)는 몸무게가 갑자기 줄어드는 등 에이즈 증세가 나타났다며 에이즈 공포증세에 시달리다 목을 매 자살. 같은 해 10월 20일, 회사원 최 모씨(30) 역시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자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오인, 고민 끝에 목을 맸다.

95년 4월- 에이즈 오인 딸과 동반자살: 에이즈로 오인, 딸을 살해한 뒤 동반자살 기도. 전직 중학교 체육교사 화 모씨(36)가 자신과 딸의 몸에 생긴 반점을 에이즈 증세로 오인, 딸(4)의 입을 틀어막아 살해한 뒤 암매장. 자신은 수면제를 먹고 동반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당국의 검진결과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96년 5월- 20대 여성, 에이즈 공포로 투신자살: 재미교포에게 성폭행 당한 20대 여성 정 모씨(26)는 피부의 두드러기 등 몸에 생긴 변화를 성폭행 후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오인하여 투신자살,‘에이즈에 걸린 것 같아 못살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3장 남겼다.

96년 12월- 에이즈 공포증 시달리다 자살: 95년 8월부터 50차례에 걸쳐 보건소에 다니며 에이즈 감염여부를 확인해 오던 이 모씨(27)가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리다 끝내 목을 매어 숨졌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알려지지 않은 자살 사례는 휠씬 많을 것이다. 실제 목숨을 끊지 않았어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유지하는 사람은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에이즈 관련 기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러한 자살사례마저 소위 에이즈 예방을 위한 자료로 사용할 뿐 에이즈 이론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과 그것의 비과학성은 염두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입에 붙이고 다니는 사랑의 정신은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랑일까?

Max-Planck 생화학 연구소의 Heinz Ludwig Sang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까지 HIV의 존재에 대하여 정말로 확신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 리트로 바이러스가 전통적인 바이러스학의 방법에 의하여 분리되었거나 정제된 적조차 없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에이즈에 관한 한 그것은 구체적인 과학적 정보와 합리적인 논증을 전제로 한 토론을 말한다. 하지만 대한에이즈연맹은 토론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무차별 삭제에 항의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수혈 받아 보란 말이야"

■ HIV 혈청 검사의 새빨간 거짓말

HIV 혈청 검사는 에이즈 이론, 아니 가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아지트다. 로버트 갤로가 1984년 개발한 이 HIV 혈청 검사는 사실 '개발했다'는 서술어가 민망하다. 아무리 좋게 설명해도 한 편의 그림 조각 맞추기 퍼즐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이 퍼즐게임에 농락된 사람들은 이것이 '과학'인 것으로 오해한다. 아프리카의 사례는 이들의 왼쪽 뇌, 오른쪽 뇌를 강타하는 입증된 현실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도 모두 이 퍼즐게임의 희생자이다. 나아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비유가 가장 적절한 이 테스트의 본질은 폭로된 지 이미 오래이다.

그 자신이 HIV 검사 전문가인 Roberto Giraldo 교수는 HIV 테스트에서 결정적인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보고서인 "모든 사람이 HIV 양성인가? HIV에 감염된 사람이 있는가?" 중 핵심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분석해보자.

(1) HIV 항체 검사 절차에는 환자 혈청의 매우 높은 희석(1/400)을 규정한 반면, 다른 바이러스 항체 검사에 대한 지시서는 거의 혹은 아예 희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 1/400의 희석은 어느 물질의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가령, 소변 1g을 400g에 희석했을 경우 소변의 특성은 희석수에 섞여 소변 자체의 성분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성분을 찾아볼 수 없는 희석방법을 요구하는 과학적 방법은 몇 안 된다. 그 중 하나가 동종요법의 생체정보 실험이다. 그러나 바이러스 검사에서 이와 같이 과다하게 높은 희석은 과학적 엄밀함과 정확성을 크게 떨어뜨릴 뿐 전혀 필요치 않는다.

(2) 83개의 혈청을 대상으로 검사를 했는데 지시서대로 많이 희석을 할 경우 HIV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희석을 하지 않았을 경우 모든 혈청은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 다시 말하서 100명을 무작위로 뽑아내서 혈청검사를 할 경우, 혈청을 희석하면 100명 모두 음성, 희석 안 하면 HIV 감염 판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혈청 검사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희석에 퍼즐의 비밀이 숨어 있다.

(3) 병원균에 대한 검사를 수행하거나 여타 항원 검사를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결과가 전등이 켜졌거나 꺼진 것처럼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람들의 혈청은 미세하게 반응하지만 양성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 양성, 음성이라는 규정 자체가 비과학적인 언어라는 걸 밝히고 있다.

(4) Gallo팀은 검사 표준을 정했는데 이는 에이즈 질환을 가진 위험 집단 검사 대상 중 88%(49명 중 43), 에이즈 발병 직전 증세를 가진 위험 집단 검사 대상 중 79%(14명 중 11), 에이즈 상태를 보이지 않는 위험 집단 대상 중 40%(22명 중 9). 그리고 공식적인 위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에이즈 미보유 검사 대상 중 1% 미만(164명 중 1)에 대해서 양성 결과를 도출했다.

- 에이즈 이론에서 위험집단을 구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생물학적 구분법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독재국가, 특히 나찌는 이러한 구분법에 따라 숙청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선택했다. 즉, 전자에 속할 수록 더욱 위험한 집단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남녀노소, 인종과 성취향, 계급과 직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에이즈 위험집단 구분법

성적 취향을 나눈다 : 동성애자/이성애자
인종을 구분한다 : 흑인/황인/백인
성별을 구분하다 : 남성/여성
나이를 구분한다 : 어른/아동
직업을 구분한다 : 서비스/육체노동/사무/전문직
질병을 구분한다 : 말라리아/폐렴/결핵
계급을 구분한다 : 노동자 계급/쁘티브루조아계급/브루조아계급

(5) Giraldo 교수는 각각 다른 사람들의 혈청이 다른 양의 희석에 따라 양성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많은 양의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표준 지시서에 따른 매우 높은 희석율에도 불구 양성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들의 혈청을 중간 정도로 희석했을 때 반응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정도만의 항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매우 낮은 수준의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혈청을 전혀 희석하지 않을 경우에만 양성 판정 결과가 나올 것이다.

- 이제 빙고(퍼즐을 풀었을 때 외치는 말)를 외칠 때이다. 정답은 위험집단의 구분과 희석에 있다. 이것은 HIV의 관념, 즉 위험집단에 대한 관념과 희석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HIV 감염 판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HIV 혈청 검사법의 기만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풀리지 않은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희석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도 과학적인 방법이 아닐까요?"라고 물을 수 있다. Giraldo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수년간 나는 의학 서적을 조사했고 이 매우 과다한 희석 요구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 제조자의 문건을 연구했다. 심지어 검사 제조사의 대표에게 전화까지 했다. 가장 자신 있는 답변은 '그 시험은 (원래) 그렇게 표준화되어 있다.’라는 것이었다. (즉, 로버트 갤로가 아무런 과학적 검증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세운 지침이었다.)

끝으로 Giraldo 교수는 "이 검사가 어느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식별하는데 있어 정확성이 있는지를 입증하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무당이 대나무를 흔들면서 칼춤을 추면 귀신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할 지라도 그게 사실인지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아무 것도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지금 푼 HIV 퍼즐은 사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에이즈 가설은 도망갈 곳이 없다. 이들은 어떠한 과학적 입증 자료도 없다. 보여준 것도, 들려준 것도, 쥐어준 것도 없다. 단지, 에이즈란 질병이 존재하는데,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HIV 혈청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토론도 필요 없고(무조건 삭제한다), 논리도 필요 없고(내 피 줄 테니까, 이리와), 입증도 필요 없다. 그렇기에 에이즈 가설이 과학이면 침대도 과학이다.

이제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케리 뮬리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자.

"If there is evidence that HIV causes AIDS,
there should be scientific documents which either singly or collectively demonstrate that fact, at least with a high probability. There is no such document."

만일, HIV가 에이즈를 초래한다라고 하는 증거가 있으면, 높은 가능성을 가진 최소한의 것(검증된 사실)이라도 그 사실을 각각 종합적으로 증명하는 과학적인 문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어떠한 논문도 없다. ”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 모임 : http://www.noaid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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