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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교정: 사회주의 생산양식 (20)」 『총명한 유물론』 제3집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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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VI.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사회주의 생산양식의 확립
소련에서 사회주의 공업화와 농업 집산화의 성공은 소련 내부 경제 구조와 계급 세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사회주의가 유리해지게 하고 자본주의에 불리해지게 하였다. 1929년 하반기까지 자본주의 제 세력에 대한 단호한 공세는 주로 도시에서 이루어졌었다. 부농 계급의 청산과 전반적 집산화로 나아가면서, 이 공세는 농촌 지역까지 확산되어 보편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방을 따라 사회주의의 전격적인 진격이 전개되었다. 대다수 농민 대중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소규모 상품 생산이라는 기반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1930년경에는 사회주의 진영이 이미 국민경제 전반의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업 분야에서 완전한 지배적 지위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농업 부문에서도 규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소련이 사회주의 시대로 진입했음의 증거였다.
사회주의 시대로의 진입이 이행기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과업이 완전히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이행기의 마지막 단계였다. 신경제정책 초기에는 자본주의가 다소 부활했지만, 이제 신경제정책의 마지막 단계, 즉 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일소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회주의가 모든 전선에 걸쳐 진전됨에 따라 계급투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이 난관들은 공업과 농업의 근본적인 재건, 그리고 국민경제 전체의 기술적 재편과 관련되어 있었다. 농업 재건은 낡은 경제 구조의 동시적인 재조직화, 농장의 집산화 그리고 농촌에서 자본주의를 뿌리 뽑는 것 없이는 불가능헀다. 사회주의의 진전은 필연적으로 몰락해 가는 착취 계급의 필사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은 자본주의적 잔재(capitalist environment)의 보조 속에서 파괴, 사보타주, 방해 공작, 테러 행위를 자행했다.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움은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한 어려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가 상승과 실업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이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한 본성이다.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움은 성장, 부흥 그리고 발전의 어려움이며, 따라서 이는 극복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소련에서 제1차 5개년 계획이 완료되면서 사회주의 공업과 현대 기술을 갖춘 대규모 집산 농업이라는, 사회주의 경제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공업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는 일소되었다. 나라의 주요 농업 지역에서는 집산화가 대체로 이루어졌고, 부농은 비록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주요 투쟁에서] 패배하였다. 소비에트 무역, 즉 자본가가 존재하지 않는 무역으로의 이행이 완료되었다. 민간 무역은 정부 주도의 협동조합 및 집단농장 무역에 의해 완전히 밀려났다.
제2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될 무렵, 소련은 혼합 경제(mixed economy)를 더는 유지하지 않았다. 국민경제의 다섯 부문 중 사적 자본주의 경제, 국가자본주의 경제, 가부장적 농민 경제라는 세 개 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소상품 생산 부문은 부차적인 지위로 전락했고, 사회주의 부문은 국민경제 전체에서 완전히 지배적이고 유일한 주도적인 세력이 되었다. 이는 소비에트 정부가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의 사회주의적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했다.
제2차 5개년 계획에서 국민경제 전반의 기술적 재건이 완료되었다. 소련은 필요한 기술 장비는 자체적으로 확보하여 경제와 국방 수요를 충당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나라가 되었다. 새로운 기술을 성공적으로 습득한 수많은 인재가 국민경제의 전 분야에서 양성되었다.
“제2차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이행의 결과로써 ⋯ 제2차 5개년 계획의 주요 역사적 과업, 즉 모든 착취 계급의 최종적 일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원인의 완전한 일소 그리고 사회를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나누는 구조의 완전한 일소가 달성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가장 어려운 과업이 완수되었다. 농업 집산화가 완료되었고 집단농장 제도가 마침내 공고해졌다.”1
집산화가 완료되면서 자본주의는 경제에서 뿌리 뽑혔다. 농민 계층의 분화와 자본주의적 요소의 부활은 종식되었다.
이행기의 주요 모순, 즉 성장하는 사회주의와 전복되었지만, 초기에는 여전히 강력했던 소생산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이의 모순은 극복되었다.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라는 물음은 사회주의의 승리로 끝맺었다. 레닌은 신경제정책의 목적, 즉 경제의 사회주의적 형태의 승리가 달성되었다고 하면서, 신경제정책은 진지하게 오랫동안 도입될 것이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 신경제정책 하 러시아는 [종국에는] 사회주의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레닌의 과학적 선견지명은 완전히 입증되었다. 사회주의의 승리는 이행기의 종말, 신경제정책의 종식을 의미했다.
1936년까지 경제의 사회주의적 형태는 전체 생산수단의 98.7%를 차지했으며 그중 공업 부문은 99.95%, 농업 부문은 96.3%를 차지했다. 1923-4년과 1936년 사이에 경제의 사회주의적 형태의 비중은 다음과 같이 증가했다: 총공업생산은 76.3%에서 99.8%로, 총농업생산(집단농장원의 개인 부수 경제 포함)은 1.5%에서 97.7%로, 총소매무역액은 43%에서 100%로, 국민소득은 1924-5년의 35%에서 1936년의 99.1%로 증가했다.
이처럼 소련의 이행기를 거치면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이는 소련 내에서 노동계급과 농민의 동맹이라는, 사회성원 대다수를 결집시키는 강력한 사회 세력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노동계급은 농민과 동맹하여 생산관계의 생산력에의 필연적 조응 법칙을 이용하면서, 낡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를 전복하고 국민경제에 새로운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 법칙에 반하는 이해관계를 추구하던 부르주아의 저항은 좌절되었다.
소련에서 이행기에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생산양식 중 가장 진보적인 방식이 확립되었다. 이것이 사회주의 생산양식이었다. 공업과 농업이라는 새롭고도 강력한 생산력이 발달되었다. 이로써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완전한 승리와 그것이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공고히 자리 잡을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완비되었다. 결과적으로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승리한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생산력 발전을 위한 넓은 장을 열었고, 생산의 지속적이고 빠른 성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을 확보했다. 사회주의 건설만이 러시아의 오랜 기술적·경제적 낙후성을 탈피하고, 나라를 외국의 속박에서 구해내며, 민족 독립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역사상 극히 짧은 기간 내에 소련은 강력한 공업 및 집단농장 강국으로 성장했다. 소련의 노동계급, 즉 노동 대중은 공산당의 영도 하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여러 세대를 걸친 노동자들의 염원을 실현하였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로, 국가(공공) 소유와 협동조합 또는 집단농장 소유라는 두 가지 형태를 띤다. 이 체제에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다. 국민경제는 계획적으로 발전되어, 선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생산 증대와 노동에 따른 분배 원칙의 실현을 통해 노동 대중의 증가하는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혁명적 전환이었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6년 7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