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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17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3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03/12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03/10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2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02/28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5. 2010/02/25
    비판하지 말라
    살고자하는 마음
  6. 2010/02/25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살고자하는 마음
  7. 2010/02/18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10/02/12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1
    살고자하는 마음
  9. 2010/02/07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살고자하는 마음
  10. 2010/02/0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살고자하는 마음

창조의 근본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하신 나라인 셋째 하늘도 또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올라가신 그 낙원이 있는 둘째 하늘도 또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원수가 갇혀있는 이 첫째 하늘도 또한 그 세 하늘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말씀에 순종해 창조한 종들도 모두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창조를 계획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과 계획에 따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그런데 거룩하신 영께서는 창조의 근본이라는 그 호칭을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며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그 호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을 향하여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한 가지 비유로서 마지막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집에 생명이 있는 나무가 있었고 또한 옆에는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나무는 그 생명이 유지되려면 또한 나중에 많은 열매를 얻으려면 늘 물을 주어야 하며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야 하며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나무에는 많은 땀과 애씀이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옆에 생명이 없는 나무는 물이 필요 없고 가지를 자를 필요가 없고 나쁜 벌레들을 잡아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죽은 나무에는 땀과 애씀이 필요 없되 나중에 당연히 열매도 없다. 그런데 그 집에 거하는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오히려 생명 없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그 집의 사람들은 생명 없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그것을 위해 땀 흘리며 애를 썼으되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열매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수고는 아무런 소용없는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한편 그들의 옆집에도 역시 생명이 있는 나무와 생명이 없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나무를 뽑아내어 던져버리고 생명 있는 나무를 더욱 사랑하며 더욱 아름답게 꾸미며 좇아갔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나무에 자신의 온 마음을 두고 수고하며 애쓴 그 집 사람들은 나중에 추수 때가 되었을 때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것을 함께 먹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니 생명을 좇아간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고자 만물의 창조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생명이 있는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한 마지막 날에는 그 생명을 다 거두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고 또한 자신의 그 거룩한 피로 자신과 같은 생명이 있을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생명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들이 생명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땀 흘리며 애쓰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거듭남의 은혜를 통해 영의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이제는 썩어질 것을 내려놓고 사망으로 들어가는 세상에서 나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땀 흘리며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생명이 있는 것은 버리고 오히려 생명이 없는 것을 더욱더 사랑하며 생명 없는 것을 더 취한다. 이방인들만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생명 있는 것은 버리고 생명 없는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예를 들어 이렇게 행하고 있다.

 

그가 만일 아버지께서 세우신 목자라면 불신자들에게는 거듭남의 은혜를 전하고 거듭난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인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사람이 많이 모이며 건물을 크게 넓히는 것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만일 회개와 고난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자들은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해도 무엇을 해도 오직 그 목적을 마음에 두고 행한다. 심지어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우니 신령한 신부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으는 자들도 있다. 목자들이 이러하니 그들의 밑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양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는다며 육의 필요와 욕심을 채우고자 또한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깊은 바다로 들어가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둔 자들이 말씀을 듣고도 그 마음을 돌이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또한 마음과 육에도 기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가서 각각 자신이 원하는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되 다시는 그들의 예물과 우상들로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과 장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즉 주님과 세상 중 오직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니 늘 아버지께로 나와 예물을 드리며 행위를 드리며 그 대가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우상을 달라고 구하며 있다.

 

이러하니 믿는 자들이 생명 있는 아버지의 일을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하며 또한 그들의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거하는 자들은 오히려 세상의 물결에 타 손을 내밀어 봉투만 내밀고 건물만 짓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교회시대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아셨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누가 수고를 하겠는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창조의 근본이라며 말씀을 시작하신 것이요 또한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진리를 배설물처럼 여기는 마지막 교회시대라 하여도 이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택하신 교회는 그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소망하며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아버지의 일에 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살고자 하는 자들과 갈급한 자들은 어디에 거한다 하여도 택하신 교회를 통해 말씀을 허락하시니 그들도 또한 신령한 교회도 그들과 함께 생명 있는 일에 땀 흘리며 애를 쓰게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생명 있는 나무에 가지로서 붙어있는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시므로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중에 거룩한 열매를 맺은 만큼의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 생명나무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돈의 단위다.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깨닫고 또한 그것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묶어주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를 벌리다 결국 원수처럼 변하게 하는 것임을 경험했으니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있는 제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불의와 죄와 비인격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그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요 거의 모든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은 썩어질 욕심 때문이다.

 

돈은 세상에서 자신이 어느 계층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부유층과 제일 밑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1억일지라도 그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아무리 써도 줄지 않고 쓸수록 더 불어나니 돈 쓰는 재미가 없는 사람과 비싼 것들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과 중산층에 속한 사람과 가파른 피라미드를 올라가고자 달리는 사람과 별다른 재산 없이 매달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과 4인 가족의 법적인 최저생계비를 보며 그럼 우리가족은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과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바벨론에서 나와 광야에 거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리를 먹고 사는 사람이 보는 천원의 가치도 다르되 바벨탑을 짓고 있는 자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신히 꾸려가고 있든지 누구나 다 돈에 매여있다.

 

이처럼 돈은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그리스도 당시의 한 앗사리온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한다고 설명해주어도 계층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니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와 닿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진리는 그가 가난하든 부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지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니 앗사리온의 가치가 어느 정도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든지 어느 계층에 거하고 있든지 누구나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 있으니 네 명의 가족이 한끼식사를 하되 반찬은 포함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쌀만을 구입하는 금액이 바로 한 앗사리온이다. 그리하여 앗사리온은 교회시대의 끝자락에 있는 서민가족에게는 라면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가 있으나 다른 계층에게는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한편 당시 유대인들이 앗사리온 하나나 둘로 참새를 사는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은 큰 고등어로 작은 고등어를 감싸놓는다. 이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고등어가 두 마리에 얼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마리 수의 계산이 아니라 무게의 계산이니 같은 두 마리가 포개져 있어도 작은 것 두 마리 보다 큰 것 두 마리의 가격이 더 비싸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참새를 파는 사람들은 두 마리를 한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는 두 앗사리온에 팔았다. 이렇게 그들은 참새를 마리 수가 아니요 무게로 비교해서 팔았으니 원수가 아버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교만한 독사의 자식들을 통해 더하거나 빼서 바꾼 곳들과는 달리 마태와 누가가 참새의 마리 수에 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말씀은 두 가지 다 옳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니 참새장사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참새들을 가지고 시장에서 가서 사람들을 모아 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새들의 그 재롱을 재미있게 보았으니 참새장사에게 돈을 내거나 또한 자기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몇 마리씩 사서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고로 참새장사들은 참새를 통해 자기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으되 참새장사가 참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주인이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배고프면 담을 넘는다는데 짐승이랴? 그러므로 새들이 때로는 그 새장의 창이 열렸을 때 주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떨치고 나온다. 하지만 주인은 날개 털에다 이미 줄을 묶어놓았으니 새들은 잠시 파닥거리며 날다가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늘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 참새장사와 같지 아니하시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가는 영혼들의 머리털까지 이미 다 세셨다. 그러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마지막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육의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참새들의 주인은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되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유익만이 아니요 모든 영혼들의 그 유익을 위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그 불의하고 죄악된 피라미드에서 마음을 돌이키고 나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니 사막에서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전한다. 이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고자 자신의 손을 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조여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통하여 허락하시고 합한 자가 없는 그 대환난가운데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연을 통해 광야에 거하는 자들을 먹이신다. 그러다 원수가 세상의 권세로 그들을 잡고 법으로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 후 그들의 몸을 성전 삼으시어 영광스럽게 하시므로 그들과 자신 모두에게 그 선한 유익을 끼치신다. 그리하여 약속의 자녀들은 태초부터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아버지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그 악한 자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그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한 셋째하늘에서 죄를 창조한 후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며 아버지께로 대항하다 쫓겨난 원수와 또한 그 사망과 함께 타락한 종들과 또한 죄에 대한 사망권세를 실행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뜻한다. 흑암의 세력은 이미 원수의 사자들에게 세뇌를 받아 악을 행하겠다는 결심과 이 땅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무저갱에서 올라왔으되 ‘너희가 만일 사람들을 죄로 이끌어 사망으로 데려오면 내가 너희를 다시 살린 후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주겠노라.’는 원수의 말은 거짓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욕심과 이익과 높아짐을 위해 불의한 힘의 논리로 세상을 악하게 끌어가고 있는 그 흑암의 세력들은 이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의 뿌리가 되며 바로 그 뿌리를 인해 모든 피조물과 자연이 악한 죄의 영향을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2천년 전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둘 다 무저갱에 멸하시니 육의 사망권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원수의 그 세뇌는 거짓말이다.

 

구체적으로 흑암의 세력은 우선 사람을 질병으로 이끌되 그들이 행사하는 질병의 종류와 한계가 있으니 그 기준은 사람이 범한 죄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키는 자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어떠한 질병도 치유하신다. 그들은 또한 영광의 복음의 빛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의 눈과 귀를 가린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그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다. 또한 사람들의 육안에 가시처럼 거하고 있으니 한 사람을 볼 때 그것이 바로 그를 곤고케 하는 죄의 삯이다. 하지만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듯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회심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에 애쓰는 자에게서는 그들이 스스로 떠나니 성도에게는 그 빛으로 인해 다시금 성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또한 공중권세를 가진 원수의 세뇌를 받아 세상의 모든 지역들을 막고 있으니 인간들이 창조의 기초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수의 지혜를 얻어서 만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도구에 바람을 일으켜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 추수한다. 게다가 그 순간에 그의 육을 붙들고 있는 흑암이 그것을 느끼게 하므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평소에는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늘 두렵게 하므로 그들의 말을 듣게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로 언약을 이루셨으니 회심한 자에게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그를 선한 길로 이끄신다. 그들은 또한 사람뿐만 아니라 각종 피조물과 짐승도 어떻게 사망으로 이끌까 늘 계획을 세우며 자기의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환난 때에 십자가에서 이미 죄를 사한 그리스도를 원수가 이기면 그들이 육을 입고 있을 때 누렸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얻어서 또다시 누릴 수 있다는 헛된 믿음과 또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불의와 죄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흑암의 세력들이 이렇게 수많은 사망의 일을 행하며 그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람이 질병이나 자연재해나 사고나 사람의 실수로 죽는 것을 보기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로 인한 사망은 깨닫지 못한다. 또한 육신의 생각이 아닌 생명의 말씀에 순종코자 하는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어둠의 세력들은 자기들이 주는 생각대로 말하며 행하는 자들에게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즉 오직 자기의 의와 욕심과 이익과 명예와 게으름을 구하는 그 불의와 이기심을 통해 종처럼 부리며 악한 일을 행하게 하므로 그 사람을 정복해간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왜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의 악을 허용하시므로 사람에게 육의 죽음을 겪게 하시는가? 또한 왜 동일한 질병과 자연재해와 사고에서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는가? 그것은 생명나무 선악과의 약속을 이룸이니 각 사람의 죄와 거룩으로 인함이다. 즉 아버지의 그 동일한 창조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이 죄나 혹은 거룩의 한계를 다 채웠기 때문에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는 것이요 그 죽음의 후에 아버지께서 거룩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생명의 부활로 죄에 대해서는 원수를 통해 사망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므로 이미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 상급을 영원토록 베푸시기 위하심이다.

 

예를 들어 원수가 많은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추락시키고자 계획했으니 흑암의 세력들이 갑작스런 바람을 불려고 한다. 이때 그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죄나 거룩의 그 한계를 다 채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후 자신의 심판대에 선 영혼들에게 오직 아버지의 말씀으로 법적인 심판을 내려 생명이나 사망의 상급을 베푸신다. 하지만 만일 그 안에 아직 죄나 거룩을 채우지 않은 자들이 몇 명이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못하게 하시되 원수는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자들까지 죽이고자 불법을 행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한계를 채운 자들은 심판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원수에게 불법을 대한 책임을 물으시되 아직 한계가 차지 않은 그 몇 명의 경우에는 종들을 통해 보호하시니 그들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살면서 거룩을 원하면 거룩을 죄를 원하면 죄를 이루어가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왜 목숨을 건졌는지 깨닫지 못한다. 한편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수의 불법을 막으실 때가 있으시니 그곳에 만일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것들도 못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 의로운 자가 그곳을 떠났을 때는 허락하신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죄에 종 노릇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한 영혼들은 육체에서 나온 후 용암이 끓고 있는 땅속의 무저갱으로 보내주시니 그것이 바로 심판의 부활이요 그들은 거기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다 천년왕국의 끝에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리니 거룩을 거부한 모든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 바로 둘째 부활이다. 또한 자신이 받은 법적인 심판을 인정치 않고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고자 불법을 행한 흑암의 세력에 대해선 그들이 행한 만큼 둘째 부활 때에 형벌을 더하신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후 아버지의 뜻에 애쓰므로 영과 혼과 육의 거룩을 유지한 자들은 원수의 모든 불법에서 지켜주시다 살아있는 채로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옮기시니 그들이 바로 구약시대의 에녹처럼 휴거 받는 영혼들이다. 또한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악한 자들이 비록 선을 행하는 자들의 몸에서 피를 흘려서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을 꺼내시어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니 그들이 바로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므로 이루신 그 약속에 의해 부활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마지막 때의 144000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결국 빛에 의해 물러가는 어둠을 보며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그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몸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과 사망으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거룩에 애쓰는 것이 옳다. 또한 사람이 겪는 육의 죽음은 방법과 모양만 다를 뿐 죄나 거룩의 한계가 차면 단지 시간의 문제이니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아버지께서 영원한 셋째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을 바라보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가며 남아있는 육체의 기회 동안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애쓰는 것이 옳다. 그리하면 그는 결국 죄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날이 오리니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사망을 삼키셨기 때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어떤 나라의 선한 왕이 진주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왕은 자기나라의 백성들이 진주를 참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가진 진주를 가지고 왕궁을 나와서 모든 백성들에게 진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슬리퍼를 신었으니 그 왕도 왕궁 밖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러므로 그 왕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며 자기 나라의 방방곡곡을 다니느라 두 발이 다 부르트고 발바닥에는 굳은 살이 박혔다. 그런데 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백성들 가운데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그 부르트고 굳은 발로 찾아가 주변의 나라에 거하는 백성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그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니 그 왕의 두 발은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의 악한 자와 그의 군사들이 이곳 저곳을 다니며 진주를 나누어주는 그 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주를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왕을 잡아서 더 이상 진주를 나누어주지 못하도록 그 부르트고 굳은 두 발에다 못을 박아서 죽였다. 그러나 그 왕의 수고로 인하여 그 나라와 또한 주변의 나라에서 진주를 원하던 백성들은 모두다 진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수많은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발로 걸어 다니셨다. 그리고 복음을 다 전하신 후에는 십자가에서 그 수고한 발도 못 박히셨다. 하지만 원수가 유대종교와 이 세상의 가장 강한 나라를 통해 그리스도의 발에 못을 박아 죽였을 때는 이미 복음이 다 증거되었으며 또한 아버지의 그 뜻이 다 이루어진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그 충성과 희생을 통하여 생명을 원하던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복음을 듣고 믿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그 뜻을 다 이룬 그 아들에게 거룩하고 새로운 육체를 허락하셨다. 즉 아버지께서 그 수고한 아들의 발을 새롭게 해주셨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빛나는 그 발을 얻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그 새롭고 빛나는 두 발을 요한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셨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 발로 수고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새롭고 빛나는 발을 얻는 것은 초대교회와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모아 자신이 명예를 얻기 위해 유대와 이방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다니는 것도 아니다. 오직 회개와 천국의 복음만을 전하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그 소중한 부활의 생명에 이르도록 온 땅과 인터넷을 두루 다니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수고하는 발을 가진 자들로 인하여 이 마지막 때에도 생명을 원하는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다. 그리고 불의한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새롭고 빛나는 그 두 발로 구름을 타고 이 땅으로 내려오시기 전에 복음이 땅끝까지 다 전해지는 것이요 또한 자신과 한 몸을 이룰 신부가 정결하게 준비되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께서 잘라내시는 발도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어 세상에서 건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발은 아버지께서 잘라내신다.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아버지께서 자르시는 발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잘라내시는 이유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깨닫고 기억하며 순종할 때 한 몸에 유익을 끼칠 수 있다.

 

한 사람의 발이 음란한 곳으로 그의 몸을 이끌었다. 이때 그의 발이 그를 이끌었다 하여 그의 손이 그 음란한 여인을 안지 않겠는가? 또한 그를 그 음란한 곳으로 이끈 것은 그의 발이니 그의 발만 그 여인의 발과 만나되 그의 얼굴은 그 음란한 여자의 얼굴과 만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므로 그곳으로 간 그의 발에만 죄가 있는 게 아니요 온 몸에 죄가 있는 것이다. 또한 말씀에 술 취하지 말라 하였거니와 발이 술을 마시는 곳으로 갔다고 해도 그의 손이 술잔을 들것이요 그의 혀는 술 맛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발과 손과 혀에만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그것이 퍼지므로 그는 어느 한 부분에 죄악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온 몸에 죄악이 가득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자가 만일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두고 그 발로 세상으로 걸어나갈 때 그는 자신만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즉 그는 세상으로 나갔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거룩한 공동체의 안으로 들어오니 그 세상의 것이 다른 몸에도 퍼진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세상에 두 마음을 품은 그 사람과 함께하는 영혼들도 자신의 발을 세상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렇게 한 몸의 발도 손도 혀도 세상과 함께 한다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동체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되 세상으로 그 마음을 향하고 돌이키지 않는 지체들은 한 번 두 번 세 번 말씀하신 후 잘라내신다. 이로 보건대 양들을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으로 들어간 자들은 그가 이미 그리스도께로 잘렸기에 세상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어떤 선한 왕이 생명의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키우는 비법을 알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그 비밀을 아무도 몰랐다. 이에 왕은 그것을 알려주어 백성들도 선한 열매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인격적이고 의롭고 공평한 왕이라 아무에게나 억지로 알려주거나 강제로 나무를 가꾸라고 명하지 않고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보여준 후 누구든지 원하면 선택하길 원했으며 또한 정직하게 땀 흘리며 애쓴 만큼 열매를 나눠주고 싶었다. 왕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어떤 시장에서 사과나무를 팔고 있는 장사꾼들 가운데 새벽이슬 같은 한 젊은 청년을 택해서 인적이 없는 광야로 데리고 가 땅을 파서 그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벌레를 잡는 방법과 또한 가을걷이가 끝난 후 어떤 일이 있을지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눈에 그림을 보여주고 귀에 말로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때가 되었으니 가서 네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저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주어라. 그러면 나의 말을 듣는 자들도 있겠으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저 자들은 내 말을 싫어하리니 너를 잡아서 시장주인에게 넘겨 피 흘려 죽일 것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에게 생명의 열매를 줄 것이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렀다. 왕에게 보냄 받은 청년은 드디어 왕의 말들을 가지고 자기가 사과나무를 팔던 그 시장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오직 사과만을 좋아했으되 그것은 독 사과였으니 그것을 가꾸며 따먹는 자들은 결국 죽음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에 회칠한 어떤 젊은 부녀가 사과나무를 팔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왕의 말씀을 전하겠으니 잘 들으십시오. 우리는 왕께 이미 생명열매를 받았으니 믿으세요. 그리고 왕은 우리가 이제는 사과를 먹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무들을 가꾸며 사과를 먹으면 추수 때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젊은 부녀는 이렇게 자신이 마치 왕을 통해 보고 들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했으나 왕은 그 여자에게 비밀을 보이거나 알린 적이 없었으며 백성들에게 보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부녀가 회칠한 입술을 열어 전하는 모든 말은 그저 자기마음과 생각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으니 전부 거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사과를 좇아 왕을 멀리 떠났으니 오로지 부녀의 달콤한 말을 왕의 말로 믿고 따랐으며 또한 많은 자들이 부녀에게 사과나무를 얻어 가꾸되 생명열매가 달리는 나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청년에게 전한 모든 말들은 자연스레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가 아무리 왕의 뜻을 받들어 왕에게 보고들은 말을 전하며 추수 때 있을 일을 자세히 알려주어도 오직 부녀들의 말을 왕의 말로 확신하는 백성들은 그가 하는 말을 싫어했고 부녀들은 사과나무를 팔아 립스틱을 구입해 입술에 회칠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그 청년을 잡아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왕이 자기에게 준 비밀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끝까지 자신이 보고들은 것만을 전했다.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생명을 원하는 세 사람이 그가 전하는 말에 따라 그 나무를 가꾸었으니 그들은 가을이 되자 왕의 말대로 애쓴 만큼 생명의 열매를 추수했다. 반면 사과나무를 팔던 부녀들은 시장주인에게 그 청년을 넘겨 피를 흘렸고 독 사과만을 좇던 백성들은 모두다 사망을 수확했다. 그러므로 왕은 이것이 왕의 뜻이요 왕의 말씀이라며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자신이 영광을 얻고 돈을 모은 그 모든 부녀들을 추수해 어두운 감옥이나 뜨거운 감옥에 가두었으되 그 청년과 세 명에게는 생명열매를 주어서 먹게 했다. 그리하여 추수 후에는 모든 것이 청년의 말대로 되었으나 오히려 모든 것들이 오직 왕의 뜻과 계획대로 다 이루어졌다.

 

이처럼 아버지의 말씀은 비밀이요 비밀은 먼저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보고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들은 후 아버지의 때가 되었을 때는 온 세상에게 공평하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신 것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 전 즉 아버지의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있을 그 천년왕국의 다스림과 십자가 이후에 이방인을 위한 그 비밀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왔을 때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의 낙원을 이끌고 이 땅에 내려와 다스리는 기간과 일곱 교회시대의 택하신 교회들에게 그 비밀을 전하신다.

 

그런데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늘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며 또한 그것을 얻고자 오직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며 행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그 마지막 때에는 생명과 사망의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도 교회시대도 환난시대의 두 증인도 주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지막에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거룩을 전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결한 처녀가 되고자 또한 그 마지막 때에 산 제사를 드리고자 먼저 자신의 거룩에 애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예비한 신령한 영혼들이 밤중에 들림을 받거나 혹은 침상에서 피의 제사로 순종을 통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자신의 마음이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원하면 그는 그것을 얻고자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스런 복음을 말해주는 거짓선지자들을 따라가되 영이 거듭난 이후에 거룩에서 행위로 돌아선 교만한 자들은 다른 복음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가 따르는 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며 행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든 교회시대에든 거짓된 목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으니 자신의 심령에서 떠오르는 것과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것과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온갖 세상과 사람의 말들을 전한다. 그 말을 통하여 자신과 공동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함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돈의 복을 받아 헌금하고 세상에서 성공해 영향력을 끼치라는 교묘한 말로 양들을 흩어 세상으로 몰아내고 돌아보지 않은 목자들은 마지막 환난 때가 이르면 666을 받게 하고 삯군들은 자신의 목으로 들어오는 칼을 보고 슬그머니 버리고 도망간다. 목자로써 자신이 원하던 것은 양털이지 아버지와 양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되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한 그 우매한 선지자와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마지막에 그들이 즐겼던 이 바벨론과 함께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육의 생각에서 돌이키는 영혼은 자신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에서도 돌이키리니 그런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아버지께서 독수리로 건져내시어 아들이 보낸 자들이 거하는 그 광야로 이끄신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시공간의 밖에서 이 첫째하늘의 모든 것을 보시며 주관하시고 계시는 반면 사람은 썩어질 육의 한계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태초에 정하시고 흐르게 하신 그 시간과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또한 영으로 인하여 짐승과 달리 인격과 살고자하는 마음은 있을지라도 육적인 능력과 감각은 그들보다 더 약하다. 고로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아버지께로 진리를 깨닫고 싶은 마음을 받았으니 어떤 일이든 있었던 그대로 정확히 사실대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저녁 9시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이 발생한 곳에 가 이미 벌어진 후의 상황을 보여주며 전해주는 그 말을 듣고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 일을 했는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911에 뉴욕의 높은 빌딩 두 개와 또 다른 하나의 빌딩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앉도록 해야 하되 자신이 했다는 것을 숨겨야 한다. 그것을 통해 한 두 명이나 몇 천 명이나 몇 만 명이 죽어도 상관없고 오히려 많이 죽어야 자신의 그 뜻이 잘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 몰래 숨어서 치밀하게 준비해 정해진 날에 그 일을 계획대로 실행한다. 이때 소식을 전하는 자들은 누군가 아랍사람들을 시켜서 느린 여객기로 미국의 치밀한 방공망을 뚫고 테러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계속 내보낸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그것을 보고 듣고 대책을 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를 막자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조작해서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와 정황을 통해 알린다. 그 결과 여기저기서 911에 대한 음모를 보고 들은 사람들은 미국정부가 중동에서 나오는 검은 물을 가지기 위해 혹은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보기관을 이용해 백성들 가운데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다고 확신한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의 그 마지막 때의 계획을 알고 있으니 유대인들이 미국정부와 함께 그런 일들을 통해 이루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물론 마지막 때에 가짜그리스도가 666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자기가 택한 자들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끌어 간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은 세상의 임금과 총독들이 그런 일들을 이용해 사람들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가다 3차 대전이 끝나고 여자에게 분노한 용이 나왔을 때 오로지 자유와 평화만을 원하는 사람들의 그 외침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쉽게 하나로 만들 것이요 또한 그 마지막 왕과 짐승의 수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그 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의 한계로 인해 실제의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며 나중에 육의 한계를 가진 자들에게 보고 듣고 판단하는 것들은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바뀌거나 숨기거나 더해지는 소식과 정보도 많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 일을 벌였는지 정확하게 사실대로 알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과거로 돌아가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영화처럼 그대로 다시 보여주면 된다. 그러므로 그 영화에는 그 일을 계획한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등장해야 하며 당시의 상황 장소 시간도 동일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에 동기가 중요하니 그들이 입고 있던 겉옷과 속옷도 비추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과 행동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을 품고 그것을 계획하고 행했는지 알려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눈과 손끝을 한번 깜박이며 움직이는 것도 똑같아야 한다. 즉 누군가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속까지 들여다보는 비디오로 촬영해서 보관해놓아야 정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만일 이렇게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모든 것이 촬영된다면 어떻겠는가?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억울한 일들을 당했어도 올바르게 드러날 것이고 자신이 범하지 않은 죄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혹시 죄 없이 죽었다 할지라도 정확한 재판을 통해 원한과 누명은 벗겨지고 명예가 회복될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하여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거나 숨기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은밀하게 범한 죄나 혹은 아무도 모르게 행한 선행이 드러나지 않아 형벌이나 상급 없이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이렇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니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소 안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극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큰 화면이 있으되 그것은 오로지 한 면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요 세면을 통해 세 곳에서 보는 것이다. 즉 면이 아닌 공간을 통해 실제의 모습을 정면에서 또한 위에서 또한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으며 화질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그 상황과 장소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까지도 그대로 보여주며 각 사람의 그 거룩과 죄의 과정을 일일이 다 말해준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내어 놓은 자들이 그 화면에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땅에서 주님의 은혜와 인도를 받으며 원수와 어둠의 세력들과 세상에 악인들의 방해와 핍박가운데서도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거룩에 애쓴 것과 또한 그리스도께로 받은 인자의 거룩한 살과 피를 드리는 그 마지막 장면까지 나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모든 형제자매들과 백성들과 유황불 못에 있는 죄인들에게까지 그 영혼들이 죄와 세상에 대해 승리한 것을 비추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듭난 후 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이루기전의 죄와 허물은 비추시지 않으심은 이미 말씀의 약속대로 자신의 기억에서 다 지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또한 모든 형제자매들도 다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그것을 본 후에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아버지의 섭리와 아들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다시 한번 소멸하시는 불이신 아버지께로 영광으로 영광의 감사를 올려드린다.

 

두 번째 화면은 유황불 못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것이니 자기의 욕심과 높아짐을 위하여 이 땅에서 늘 범죄하고도 피의 은혜를 거부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되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여긴 자들의 그 악한 모습들과 입에서 나온 말들과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주신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자신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직장과 나라에서 공개적으로나 혹은 은밀하게 범한 불의와 죄악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반란이나 911같은 것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그대로 밝혀진다. 더불어 원수와 그의 사자들이 어둠의 세력들을 이용해 이 세상을 불의한 힘의 논리와 음란과 죄악으로 이끈 모든 것들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거듭남 없이 자신을 의롭게 여긴 그 악한 자들의 모습은 더욱더 부끄럽고 책망스럽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셋째 그 화면을 통해 셋째하늘에 거하는 온전케 된 백성들의 모습도 보여주신다. 그런데 그들은 영이 거듭난 후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따라 말하고 행했어도 온전케 되는 그 과정에서 호리라도 다 갚고 거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약속대로 그들의 불의와 죄악은 비추시지 않으시되 그들이 육을 입고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게을렀던 모습과 그들이 아버지를 섬기되 마음 없이 음란하게 말하며 행했던 태도는 보이신다. 그리하여 그들도 늘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며 항상 선한 마음과 선한 뜻을 끝까지 잊지 않고 그 의로운 길을 영원토록 걷게 하심이다.

 

이와 같이 셋째하늘에서는 그 화면을 통해 각 사람의 영혼이 죄와 거룩을 이루는 과정을 볼 수 있으나 오로지 죄와 세상에 대해 승리한 거룩한 자녀들만 보는 것이 아니요 의의 백성들과 또한 유황불 못에 거하는 어둠의 세력들과 모든 영적인 존재들도 함께 본다. 그러므로 그날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의 감춰진 모든 것이 정면과 아래서부터 위에까지 밝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144000의 피 흘림 후 이 땅에 내려오시어 이 땅을 낙원과 같이 회복시킨 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그 시기부터 이미 조금씩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며 알려지기 시작하다 영원한 셋째하늘에서는 모든 것들이 밝히 드러난다.

 

그런데 진리를 따르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녀들은 모든 것들이 이렇게 밝히 드러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를 소망한다. 또한 원수가 이 세상의 악인들을 통해 무고하고 무참하게 피 흘려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으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영광의 복음을 위해 이미 주님께로 바쳤으며 또한 육신의 호흡이 남아있는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믿는 자들을 죽이고자 이미 법을 세워놓고 핍박하는 이 세상의 권세자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거룩에 애쓰고 있으며 또한 언제 어디서나 끝까지 오직 진리만을 담대히 전하고 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고 구별하기 원할 때 눈을 크게 뜨니 초롱초롱해지며 빛이 난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다 지켜본다는 의미로 불꽃같은 눈을 떴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영을 통하여 자신의 눈을 이렇게 불꽃 같은 눈으로 요한에게 보여주셨다. 비유를 통해 불꽃 같은 눈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자기의 나라는 너무나 크고 아름답고 백성들은 많은데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지라 자기의 백성들 가운데서 자기의 말에 순종하는 몇 명을 뽑기 원했다. 그리고 그 순종하는 자들에게 왕이 입는 옷을 입혀서 자기의 자녀들로 삼은 후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냥 백성으로 거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왕은 자기의 자녀와 백성을 올바르고 공평하게 구별하므로 아무런 불평과 원망이 없고 오히려 우리의 왕은 의롭고 정직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이러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모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누구든지 나의 말에 순종하는 자는 의롭고 깨끗한 사람이 될 것이나 순종은 그렇게 쉽지 않겠노라. 그러나 내가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베푼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자는 나의 뜻과 계획을 깨달을 것이니 그 쉽지 않은 일을 반드시 이루겠노라. 그리고 나의 아들은 그가 얼마나 그 일을 이루는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본 후 다스리는 자와 백성을 의롭고 정직하게 나누겠노라.” 왕의 말이 끝나자 네 사람이 왕의 일을 하겠노라고 약속한 후 왕의 말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왕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순종하며 왕의 뜻과 계획을 끝까지 받들어 섬겼다. 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은 순종하는 게 어려우니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왕의 아들은 그 네 사람이 얼마나 왕의 말대로 행하는지를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았다. 또한 그들의 말과 행위가 어떠한 마음에서 나오는지도 살폈다. 게다가 자신의 종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말하며 행하는 모든 것들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라고 시켰다. 이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 그 네 사람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던 그 아들의 앞으로 나왔다. 그때 첫 번째 사람은 그 아들의 불꽃 같은 눈을 보면서 자신이 왕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느꼈으니 그 아들의 가까이로 갔다. 그리고 그 아들은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룬 그에게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서 왕에게로 데려갔다. 그러나 왕의 말에 불순종한 두 번째 사람은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은혜와 사랑을 깨닫기보다는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깨달았다. 이에 그 아들은 지금이라도 왕의 말에 순종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후 스스로 물러가서 백성들 가운데 거했다. 반면 왕의 말에 불순종한 세 번째 사람도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역시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도 스스로 물러가지 않고 자신에게도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서 왕에게로 데려가 달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에 왕의 종들은 자신들이 촬영한 것을 큰 화면에다 틀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왕의 말에 얼마나 불순종했는지를 확인한 후 부끄러웠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한 후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제일 뒤에 거했다. 한편 왕의 말에 불순종한 네 번째 사람도 그 아들의 눈을 보고 역시 불순종한 자신의 죄책감을 느꼈으나 세 번째 사람과 같은 말과 태도를 보였다. 이에 왕의 종들은 역시 자신들이 촬영한 것을 큰 화면에다 틀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그를 자신의 나라에서 쫓아냈으니 그는 그 아름다운 나라에서 백성으로도 거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불꽃 같은 눈은 육체의 부활을 얻은 자와 육체의 부활을 얻지 못한 자의 구별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하다는 심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그 약속을 이룬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그 영광에 이른 자녀들이 왕과 제사장이 되어 천년왕국과 그 후에 올라가는 영원한 셋째 하늘에서 공의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도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을 따르며 순종치 않은 자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없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자신의 몸으로 받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가 거룩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를 받아주시니 그는 하늘의 형체를 입고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니 부활한 자와 부활하지 못한 자를 구별하실 때 아들을 통하여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의 지성소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하늘의 심판대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이 땅에 거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지켜보신다. 그러다 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 종들을 시켜 심판대로 데려오신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불꽃같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그 그리스도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때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 그에게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자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간다. 그 이유는 그가 썩어질 육을 입고 세상에 거하는 동안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하신 것이 아니요 그 십자가의 길에서 자신과 함께 그것을 메고 끝까지 함께 다니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을 잊고 세상을 따르는 자와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자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그 선악의 죄에 따라 말하고 행하며 자기의 뜻을 이루어가니 죄책감만 쌓인다. 또한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그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척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의 그 불꽃 같은 눈을 보고 자신의 죄책감을 깨닫는 자는 뒤로 물러가되 죄책감이 많은 자는 더욱더 뒤로 물러간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어떤 악한 주인이 오직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한 계획을 세운 후 자기를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 좋은 집을 주겠다며 높은 절벽 위에다 해변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집을 짓고는 한 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일 저 아름다운 집을 원한다면 나를 위해 일해라. 그러면 저 집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되겠노라.” 그런데 그 종은 그 주인의 뜻이 악함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악한 주인처럼 오직 자신의 욕심과 높아짐을 구하는 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자기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인은 자신의 뜻이 잘 이루어져가도록 종이 원하는 것들을 선물해주려고 무엇을 좋아하나 가만히 보니 그는 밤마다 영화를 즐겼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친 한 남자와 그 남자를 따르며 순결한 사랑을 바치는 한 여자의 영원한 사랑을 그린 영화는 거부하고 오히려 남자와 여자가 있는 자들이 다른 남자와 여자를 은밀하게 만나 간음하는 내용을 무지하게 좋아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종에게 음란한 영화를 선물해주었고 그는 밤마다 그것을 재미있게 보며 육의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종은 더 음란하고 더러운 영화를 받기 위해 낮에는 밖에 나가 열심히 불법을 행하되 그런 자신을 의롭고 충성된 종이라고 여겼다. 이에 주인은 종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 큰 힘과 용기를 주고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려주었고 그로 인해 종은 무엇이든 독점해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이미 충분한 돈이 있어도 또한 다른 사람들이 굶고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긁어 모으되 그런 자신을 불의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으며 죽을 때까지 자기의 주인이 맡겨준 일을 행했으니 그의 주인은 스스로를 위해 불법을 행한 그에게 절벽 위의 집을 주었다. 반면 어떤 선한 주인은 자기집에 있는 모든 자식들과 종들을 위해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뜻을 이룬 자들에게 주려고 하늘에 빛나는 집들을 짓고 한 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일 나의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면 저 하늘에 있는 집들 가운데 한 채를 너에게 주되 네가 일한 것을 보고 그에 맞는 빛난 집을 주겠으니 너는 저 집에서 나와 동거하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겠노라.” 그 종은 그 주인의 말을 듣고 주인의 뜻이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함을 깨달았으며 자신도 의와 공평과 정직을 원했으니 주인의 뜻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더욱더 자신의 뜻에 힘쓰며 그 일을 끝까지 이루어가도록 하얀 종이에 하얀 글씨로 써있는 책을 선물해주며 여기에 기록된 말을 깨달으면 네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솟아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종은 기쁨과 만족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썩어질 욕심은 사람을 오히려 죄로 이끈다는 것을 인생을 살며 경험했으니 욕심을 내려놓고 주인의 뜻에 힘쓰자 하얀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기쁨과 만족을 얻으면서 오직 자기주인만 따라갔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더욱더 선한 일에 애쓰도록 때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비누를 선물하며 네 몸이 깨끗해지면 너의 마음에 평화가 임할 것이라고 했고 종도 육에 잠시 쾌락을 주다 부끄럽고 두렵게 만드는 그 때를 벗기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비누로 자기 몸을 열심히 씻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던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니 또한 자기에게 맡겨진 선한 일을 끝까지 다 이룬 후에는 자신이 일한 만큼 빛나는 집을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악한 주인과 선한 주인에 대한 소문이 온 나라로 퍼져가자 악한 주인의 밑으로는 수많은 백성들이 들어갔고 오직 10명이 선한 주인의 부름을 받고 따라갔다. 이에 선한 주인은 자기를 섬기러 온 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주면서 저 악한 종들이 핍박해도 선한 일을 하다 죽으라고 했고 악한 자도 자기 밑으로 기어들어온 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베풀며 저 선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므로 선한 주인의 종들은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얻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 죽을 때까지 오직 주인의 뜻을 행했고 마찬가지로 악한 주인의 종들도 온 힘을 다해 자기의 뜻을 열심히 이루어가며 돈과 명예를 얻다 그 선한 주인의 종들을 향해 오히려 악한 자들이라고 핍박하며 피 흘려 죽였다. 그리하여 선한 자들은 결국 하늘의 집을 악한 자들은 절벽 위의 집을 얻었으되 마지막에 온 땅이 갈라졌으니 악한 자들은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자마자 땅속으로 내려갔고 선한 자들은 하늘의 집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다.

 

이처럼 악한 자들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악을 행하도록 힘과 또한 필요한 것들을 허용한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계속 따르게 하며 또한 마지막 죽음에서도 자신을 따르게 함이되 이 마지막 때에 악한 목자들이 넘쳐나도 분별치 못함은 가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요 죄가 그의 눈을 가릴 수 있음은 원수의 종들처럼 오로지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구하는 그 악한 마음을 회개치 못함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성전에 거하던 거짓된 목자들을 보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원수에게로 썩어질 육신의 부요와 이 세상의 영광을 얻으며 이방인과 같은 기쁨과 만족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자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아 오로지 진리만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잡아 성전안팎에서 의로운 피를 흘렸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의 후손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했기에 그 한 몸의 주인을 바알세불이요 가짜그리스도라며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가 되면 육과 이 세상을 취한 전통의 목자들도 역시 이방인들처럼 그것을 버리지 못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이단이라 정죄하며 666을 가진 그 왕에게 넘겨준다.

 

이렇게 악한 자도 좋은 것으로 자기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이루고자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영혼들을 도우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육과 영에 필요한 양식을 늘 필요한 만큼을 내리시며 진리를 통해 그들의 영과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허락하시고 결국에는 그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어 평화의 복음을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길을 따라 걸으며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도우심과 또한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얻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핍박가운데서도 오직 진리만을 좇아가리니 그 집의 주인처럼 거룩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오직 진리만을 끝까지 따르는 영혼들에게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어 큰 권세와 영광을 영원토록 주시지 아니하시겠는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어떤 늙은이가 하늘로부터 이런 말씀을 받았다. “홍수를 보내어 내가 창조한 피조물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겠노라.” 이에 그 노인은 이렇게 반문했다. “하늘이시여! 사람들은 당신이 허락하신 부부간의 그 거룩한 성관계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기쁨과 더러운 욕심을 위해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아비와 딸이 자식이 어미와 음행하고 있으며 오로지 돈과 자신의 높아짐을 위해 거짓말하며 자기의 이익을 취하고 있나이다. 또한 불의하고 불공평한 이 땅에 죄가 가득하되 저 역시 그러하나이다. 게다가 짐승들도 당신이 예비하신 땅의 곡식과 풀과 과일을 거부하고 자기보다 약한 짐승의 피를 흘리며 자기 배를 채우고 있으니 짐승도 그렇게 하심이 마땅하나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도 세상과 함께 심판하심이 가하시나이까?” 그러자 하늘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잘못을 비는 아이를 때리지 않노라.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자식을 오히려 품에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도다. 그러므로 너는 방주를 지어라. 또한 짓는 동안 땅의 모든 마을들을 다니며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심판을 받으리니 살고자하는 자는 세상에서 나와 내가 너를 통해 예비한 방주로 들어가라고 전하여라. 또한 너와 네 집도 공평한 기회를 얻겠노라.” 하늘의 말을 들은 후 그는 자기의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짓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세상의 모든 곳을 다니며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전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 하늘의 심판을 외치는데 몇 명이 나와서 듣기 싫다며 그의 뺨을 때리고 욕을 퍼부었다. 이에 그는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니 다른 마을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하늘이 그에게 말하길 그 마을에 아직 심판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좀더 머물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좀더 욕을 들으며 뺨을 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많은 무리가 와서 내가 나의 기쁨을 위해 원하는 것을 행하는데 왜 나의 자유와 인권을 구속하느뇨? 나중에 심판을 받든 안 받든 네가 무슨 상관이뇨? 사람은 죽으면 끝이니 심판은 없다며 그를 몽둥이로 때려 피를 흘렸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그 마을의 모든 자들이 심판의 말을 듣고 난 후였으니 그는 비로소 다른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방주가 완성되었으며 또한 세상의 모든 마을에 복음이 다 전해졌다. 그리고 그 노인과 그의 집은 거룩을 원했으니 그들은 세상에 남지 않고 자신들이 함께 지었던 그 방주로 정결한 짐승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의 참고 기다림으로 인해 7일 후에야 물이 내려오기 시작했으나 사람들은 더러움을 기뻐했으니 아무도 타지 않았다. 물 심판을 받은 후 다시금 사람들이 번성해가되 소돔과 고모라의 강포와 패괴는 홍수 때보다 더 중했다. 그러므로 하늘은 어떤 늙은이에게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을 태양의 불로 심판하므로 말세의 사람들이 교훈을 받고 세상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도록 하겠노라.” 이에 입자로 지음을 받은 그 노인이 하늘을 향해 감히 이렇게 고했다. “하늘이시여! 자기명예와 욕심을 위해 행악하는 자들을 불로 심판하심은 마땅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말에 순종해 거기서 나오는 자들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러자 하늘은 티끌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들었을 때 믿고 죄와 세상에서 나오는 자는 생명을 얻겠으나 몸이 나올지라도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그의 마음에 따라 심판 받을 것이니라.” 노인은 하늘의 말을 듣고는 먼저 소돔에 들어가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선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몇 명이 나와서 욕하며 그를 때렸다. 이에 그는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니 고모라로 가려고 했으나 하늘이 그에게 말하길 그곳에 듣지 못한 자가 있으니 좀더 머물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좀더 뺨을 맞고 욕을 들었다. 그러자 더 많은 무리가 찾아와 홍수 때의 악인들과 똑같은 말을 하며 몽둥이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때려 피 흘렸다. 그러나 그때는 돌이킬 자는 이미 다 돌이켰으니 그는 비로소 고모라로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도 동일한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결국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에 탈 자는 탔고 소금기둥으로 변할 자는 변했으니 오직 말씀에 순종한 자들만 생명을 얻었다.

 

이처럼 홍수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도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심판의 말씀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해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평하게 전하셨다. 그러므로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다 그 심판의 말을 들을 때까지 또한 돌이킬 자들은 다 돌이킬 때까지 오직 말세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땅의 어느 곳에 거하든지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와 세상에서 돌이키기 원하는 자들은 모두다 그 천국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처음에 행하셨던 물 심판과 중간에 내리셨던 불 심판은 교회시대가 끝나고 대환난의 끝에 이루실 그 마지막 불 심판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에 있는 낙원을 이끌고 다시 오시는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할 것이로되 아버지께서 이방민족들 가운데 택하신 일곱교회와 유대민족 중에 정하신 교회가 자신의 민족에게 대환난의 복음을 전한다. 즉 감람나무에 붙어있는 두 증인은 세상의 전쟁과 환난의 끝에 온 땅이 갈라졌을 때 인간이 세운 모든 것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에 타며 입을 벌린 무저갱으로 내려갈 것이요 첫사랑을 잃고 세상과 음행하던 자들도 이방인과 함께 엎드러질 것이니 세상과 선악에서 돌이키고 나와 광야의 피난처로 들어가 생명을 얻으라는 심판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한 무리가 핍박을 한다 할 때에는 다른 마을이나 동네로 이사를 하되 오로지 한두 사람이 한다고 하면 조금 더 머무르다 움직이는 것이 옳다. 그리하여 한 영혼 한 영혼이 어디에 거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말씀을 믿고 세상에서 나오는 자가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그 환난복음을 모든 자들이 다 듣게 되며 또한 돌이킬 자들은 다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민족의 경우는 이러하리니 아시아가 그 큰 전쟁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남과 북은 하나되기 위하여 오히려 서로 싸우되 광야로 나간 영혼들은 세상의 전쟁과 환난가운데서도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고 또한 하늘의 소망을 누린다. 그러다 남북이 하나된 후 정해진 시간이 흐르고 3차대전이 일어나지만 그때는 이미 마지막 때다. 그러므로 택하신 일곱교회는 그 큰 전쟁 전에도 또한 후에도 또한 원수가 666을 가지고 나왔을 때에도 온 마을을 다 다니면서 마지막 불 심판을 전하되 회개의 증거로써 불의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돌이켜 반석으로 올라가라고 전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민족도 역시 자신의 민족에게 가서 전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온 마을을 다 다니지 못하셨어도 그리스도의 그 말씀은 이 땅의 온 동네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그들 가운데 주님께로 나올 자들은 다 나오게 되는 것이요 그 후에야 비로소 인자께서 이 땅으로 내려와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 예언의 뜻이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산밑에 있는 깊은 계곡에 모여 재미있게 놀고 있었으나 그곳에는 날카로운 칼이 많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상처를 입었고 자신도 자기가 가진 칼로 다른 사람들을 찔러서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산을 향해 올라가지 아니했으니 자기가 원하는 것들이 그곳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산꼭대기까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다가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속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칼에 찔리거나 또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나와 저 높은 산으로 올라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 산꼭대기에 사람의 육이 아닌 영혼이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요 그것은 영원히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람의 생각은 계곡에 그냥 머무르고 싶어함은 그 칼로 서로를 찌르면서도 자신을 옳게 여기기 때문이요 그 안에는 사람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과 발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그 계곡이 갈라질 것이니 그곳에 머물러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리로 내려갈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자 네 명이 계곡에서 올라왔다. 이에 안내자는 그들의 눈에 묻은 더러움을 닦아준 후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포도주와 떡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내자의 말과 도움을 받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계곡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등산을 시작한 네 명 중에 첫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여기에 이렇게 즐거운 것들이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산을 올라가세요? 조카야! 여기서 서로 칼로 찌르며 상처를 주고 받는 게 옳은데 도대체 어딜 가고 있니? 친구여! 열심히 일해서 계곡에서 성공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 계곡에 있는 것들이 비록 육의 즐거움은 주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욕심을 품고 거짓말하며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하지 않소? 삼촌! 서로 칼로 상처 주는 것은 불의와 죄이니 그 계곡은 곧 지옥과 같습니다. 친구여! 오직 자기의 욕심과 유익만을 생각하는 곳에서의 성공이 무슨 가치가 있겠소? 또한 가정이 깨지는데 인생의 끝에선 다 놓아야 하는데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소?” 그러자 그의 가족 친척 친구들 중에 반이 그에게 등을 돌렸고 그는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셋이 안내자를 따라 올라가는데 둘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을 따라 올라가느라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도 못보고 가고 싶은 곳도 못 가는구나. 돈이 꼭 필요한 만큼만 주어지니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비싼 차와 집도 못 사고 늘 일용할 양식만 얻는구나. 좁은 길을 걸어도 세상의 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는구나. 또한 때로는 음란도 즐기고 혈기도 내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다니! 그리고 네가 만일 이 힘든 길을 계속 가면 나중에 육신이 고통을 당하다 결국 헛되이 죽게 될걸!” 반면 마음에서 이런 감동도 떠올랐다. “대신 안 보이는 것을 보고 안 들리는 것을 듣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는 저 안내자의 인격이 나에게서도 나오겠노라. 또한 저 산꼭대기에 내가 소원하는 반석이 있으니 거기서 의로운 성취감을 얻겠노라. 그러니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나 그 생각은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도전했으며 그가 반석을 향해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손과 발을 붙들고 늘어지며 방해했다. 그러므로 둘째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다시금 계곡에 빠졌다. 육적인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계곡에서 가장 높은 자가 셋째 사람에게는 그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불이익을 주었고 때로는 그의 옷을 벗겨 부끄럽게 했다. 또한 신분증이 없다며 매매도 일도 못하게 했다. 그러다 결국 저 안내자를 부인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니 두려움 때문에 계곡을 이기지 못한 그도 다시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넷째 사람은 첫사랑을 잊지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매이지 않고 육의 욕심도 이기고 오직 그 안내자의 말만을 듣고 믿고 따라갔다. 또한 계곡에 사는 불쌍한 자들에게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며 자신이 보고들은 것만 전했다. 그러므로 계곡의 왕은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마지막에 그를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계곡을 이기고 반석에 이르렀으니 자신이 소원하던 그 선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끝까지 모든 것을 다 견딘 그는 높은 산의 반석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며 영원한 기쁨과 영광과 자유를 누렸다.

 

이처럼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만을 사랑하는 자는 큰 은혜를 받은 자이니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서 주목하시고 감찰하시는 그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인간적인 육적인 세상적인 미움을 견디지 못해 배반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복이 있으리니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와 불의한 이 세상을 이기고 죽지만 아버지의 영께서는 승리한 그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고 다시 살려주신다. 그리하여 자녀 됨의 언약을 이룬 그가 주님의 품에 안겨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영원토록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세 가지를 다 견디고 이긴 후에 영광스런 구원의 복을 얻으리요?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끝까지 그것을 다 견디고 이기리니 그것은 그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더 주님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불의하고 단단한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진리만을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으며 순종하며 따르는 그를 아버지께서 빛과 능력으로 끝까지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나중까지 견디는 것을 보면 그는 택함의 은혜를 받았으며 또한 첫사랑을 잊지 아니하고 있으며 또한 믿음의 결국 큰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