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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0/26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09/27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09/14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09/08
    일곱 교회에 보내라
    살고자하는 마음
  5. 2010/08/31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살고자하는 마음
  6. 2010/08/25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살고자하는 마음
  7. 2010/08/12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살고자하는 마음
  8. 2010/08/04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살고자하는 마음
  9. 2010/07/2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살고자하는 마음
  10. 2010/07/23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살고자하는 마음

짖는 개와 짖지 못하는 개

마지막 때에 한민족의 신실한 자들과 길을 잃은 양들을 위하여

 

1.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한민족의 전쟁과 자연적인 환난들과 3차 세계대전과 짐승의 666으로 인한 온 세상의 하나됨과 대환난의 목 베임과 셋째 세상에 대한 심판과 짐승이 무저갱에 갇히는 일이 순서대로 임한다. 그리고 이런 마지막 때의 일들 가운데 어느 시점에 영과 혼과 육을 보존한 신령한 신부의 들림과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로 은혜 받은 선한 양들은 신랑이신 어린 양을 맞이하기 위하여 죄와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되어 자신과 지체들의 거룩에 애쓰며 동시에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영혼도 죄와 세상의 형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도록 기도함이 마땅하다.

 

2. 한편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이방인보다 먼저 심판하시니 해지기 전에 의인들을 빛으로 이끄시다 저녁이 되면 그들을 세상에서 광야로 불러내시고 새벽이 끝나고 하늘에서 내리시는 유황 비와 땅의 가르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신실한 양들을 세상에 속한 염소들과 구별하시니 한밤중에 세상과 교회 둘로 나뉜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믿는다며 마음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에 빼앗긴 미련한 자들은 늘 아버지의 뜻에 마음과 믿음 없이 행하고 있으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자들이 아직 빛이 있을 동안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께로 마음을 돌이키라고 외친다. 또한 만일 돌이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계시록에 기록된 큰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다고 외치며 그들 가운데서 돌이키는 영혼들이 있기를 바란다.

 

3. 그러다 강한 여자의 나라로 인하여 한민족에 전쟁이 다시 시작되리니 해가 떨어져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영혼들은 적그리스도를 위해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과 음녀와 아버지와 아들께로 마음이 떠나있는 지체들에게 적그리스도와 또한 다가오는 환난들과 또한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심판에 대해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속한 교회를 보호하고 인정하리니 그들이 힘을 얻어 오히려 그리스도의 환난복음을 전하는 영혼들을 더욱더 핍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4. 첫째 핍박기간이 끝날 때에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미워하게 할 것이되 3차대전의 끝에 가짜그리스도가 나타나기 바로 전 또다시 둘째 짐승을 위해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과 음녀와 주님께로 마음이 떠나있는 지체들이 환난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하리니 그리스도의 복음 가진 자들은 오직 살고자하는 영혼들이 왔을 때 말씀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성경을 열어서 말씀과 비교하여 그들의 영혼이 선택할 것이요 그때에도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은혜를 오직 살고자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실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는 자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있는 은혜도 거두신다.

 

5.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을 위해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과 음녀와 주님께로 마음이 떠나있는 지체들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방식은 구약시대나 그리스도의 당시나 일곱교회시대나 이 마지막 때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고 거짓교회라고 칭하며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그들을 핍박하되 끝에는 결국 그들을 법과 세상의 권세가 있는 이방인들에게 넘겨 거룩한 피를 흘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피 흘린 자신이 의롭다 함을 나타내며 또한 옳음을 드러내고자 그 피를 자신과 자신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이 옳음이요 아버지께서는 죽은 자들의 피를 통해 일하시니 그것은 의로운 피를 흘린 아벨과 같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고 그리스도와 같고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같고 바울도 그와 같았고 스데반도 그와 같았고 또한 교회시대에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모든 자들도 그와 같았으니 다가오는 마지막 때에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도 죽은 자는 아버지께서 의롭다 인정하시며 다시 살리시되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죽이는 자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며 가장 큰 심판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마지막 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를 외치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복음이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거룩한 형제자매들과 신령한 신부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참된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들인지 아니면 3차 대전을 일으키고자 올라오는 적그리스도와 사람들의 오른 손과 이마에 사람의 수를 넣어주려고 올라오는 가짜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들인지 분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1. 그들은 공히 마지막 때를 외치되 그들의 혀가 만들어내는 영을 잘 들어보라. 그러므로 거짓된 자들은 교회일치운동, 신부단장, 신사도, 주님 길을 예비하라, 제3성전, 기름부음학교, 하나님의 음성듣기, 성령 춤, 영성, 재정의 기름부음, 재정의 기름부음, 세상에 들어감, 방법 원리 훈련 같은 온갖 달콤한 말들을 이용하되 참된 자는 십자가, 거룩, 죄와 싸움, 세상에서 돌이킴, 세상과 구별됨, 주님께 마음을 돌이킴, 첫사랑, 육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기부인, 고난, 순교 같이 십자가의 은혜와 관계된 신실하고 심령을 찌르는 말을 낸다. 그러므로 똥개들이 도둑을 보고 반갑게 짖어대는 것은 진돗개들의 소리를 못 듣게 함이요 진돗개들이 돌아오는 주인을 보고 애타게 짖어대는 것은 십자가를 붙들게 함이니 잠자는 영혼들은 똥개의 소리를 듣고 두 마음을 유지할 것이되 깨어있는 영혼들은 진돗개의 소리를 듣고 거룩에 애쓸 것이다. 하지만 신실한 자라도 아직은 세상을 등지지 못했거나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에 입술에 좌파 우파 자본주의 공산주의 독재주의 민주주의 김구 이승만 같이 어둠에 속한 말들도 함께 걸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찔림을 받을 때 오히려 깨닫고 돌이킬 것이요 세상에 빠진 자들도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들이다. 물론 어둠과 온전히 구별된 거룩한 자라 할지라도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오직 한 번 있으리니 그때가 바로 십자가 길의 끝에서 피 흘리기 위해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붙들려 법정에 서는 날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과 그리스도와 그의 13제자들과 마지막 때의 144000을 보라.

 

2. 그들은 공히 마지막 때를 외치되 그들의 손이 무엇을 붙들고 있거나 잡으려고 하는지 잘 들여다보라.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으며 손은 그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악하고 교만한 자들의 마음은 아버지의 뜻이 아닌 오직 썩어질 육의 욕심과 사람을 자신에게 이끌어 자기가 높아지는데 있으니 거룩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우상의 형상을 취하고자 그것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선하고 신실한 자들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과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님께 드리겠노라 서원했으니 그들이 공통적으로 당당히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요 음란을 버리는 것입니다.” “돈과 주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외출했을 때 똥개가 밤에 도둑을 보고도 짖지 못함은 도둑이 던져준 고깃덩어리를 뜯어먹느라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요 진돗개는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고 한밤중에 집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짖다 도둑에게 도살당하되 주인이 돌아오면 집을 지킨 진돗개들은 살리고 똥개들은 도둑에게 넘겨준다.

 

3. 그들은 공히 마지막 때를 외치되 시끄럽게 떠들거나 조용히 말하며 영혼들을 과연 누구에게 이끌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있는 거짓예언자들은 자신의 거룩에 애씀은 없고 늘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저들은 배도했으니 지옥 갈 것이고 하나님이 한반도를 심판하실 것이니 도망가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십자가가 아닌 자신의 영으로 이끌되 환난이라는 것은 원수에게는 세상에 속한 자기영혼들을 추수하는 사망의 도구요 주님께는 택하신 자들과 첫사랑을 붙들고 있는 영혼들을 독수리를 통해 모으시어 세상과 구별하시는 기간이다. 또한 마음이 깊은 자들은 첫사랑을 지키고 있는 영혼들이 함께하길 기다리되 오히려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전하며 한 곳에서 적은 수의 무리들과 함께 복음의 빛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자기얼굴과 이름이 드러나는 자들 중에도 몇몇은 조용한 자들이 있으나 자신이 시끄럽게 떠드는 자인지 아니면 조용히 전하고 자인지는 오직 그리스도와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똥개들이 도둑을 보고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은 잠자는 자들과 고깃덩어리를 함께 뜯어먹고 그들을 도둑에게 넘겨주기 위함이되 진돗개들은 도둑을 보고 짖어 깨어있는 자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게 하여 공중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지기 전에 신령한 영혼들을 신랑에게 깨끗한 처녀로 중매하려 함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깨워놓으신 신실하고 정직하고 조용한 영혼들을 위한 것이니 그들은 깨어있기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의 일들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적그리스도에 대해 알리는 것은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 주님을 위하여 인내하며 첫사랑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왔으니 그들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더욱더 깨어 있기를 원함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짓된 자들과 더럽고 악한 자들과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님은 원수는 적그리스도와 자신을 예비하도록 그들의 영혼을 깨워놓았으니 그들의 영혼은 이미 적그리스도와 원수를 참된 그리스도로 알고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은혜를 받아 자기의 마음속에 거하는 죄를 깨닫고 거룩에 이르고자 육과 세상으로부터 주님께 돌이키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도 십자가를 붙드는 영혼에게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은혜가 임하리니 그들은 바울처럼 종교에서 회심하고 바벨론에서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다.

 

첫째 짐승은 둘째 짐승에게 권세를 받아 원수를 예비하는 자이며 원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자다. 그러므로 2천년 전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것처럼 적그리스도의 애미의 이름은 엘리사벳이요 그는 독자로 나타난다. 또한 그는 목수로서 인자의 육의 애비였던 요셉의 이름을 따라야 하니 그의 애비는 엔지니어요 이름은 요셉이다. 또한 전통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30세에 사역을 시작해 33세에 십자가를 받으셨다고 알고 있으니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나타나야 한다. 또한 바벨론에게 인정받은 교회에 속한 자들은 자신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명한 그 반석 위에 서있다고 주장하니 그는 가톨릭교회의 집안에서 나와야 한다. 그는 또한 전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니 UN에서 나오되 세움을 받은 후에는 이리저리 다니며 평화를 외친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평화를 주고자 나온 자가 아니요 겉으로 보기에는 젊고 똑똑하고 아름다워도 2천년 전 세상을 짓밟았던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처럼 이 세상을 3년 반 동안 거칠고 급하게 짓밟을 것이니 그의 이름은 “Man of Sebastia”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이방나라들을 황폐케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찌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나는 주님만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너는 결단하라

 

가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생명나무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1. 생명나무(The Tree of Life)의 의미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참되신 한 분 신이시다.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으니 사람들은 아버지 외에도 다른 신들을 섬긴다. 그러나 그것들은 육과 세상을 구하므로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찾지 못하도록 원수가 만들어 사람들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신들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욕심과 교만을 구하는 자들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취하느라 아버지를 찾지 아니하며 영생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또한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섬기는 그 헛된 신들을 통해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 거짓된 신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신의 생명을 가지고 영원 전부터 홀로 계셨다. 그리고 스스로 있는 신은 사람이나 만물과 달리 창조된 존재가 아니기에 아버지께서는 창조되지 않은 신의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 즉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계신 신이시기에 자신이 가지고 계신 그 생명도 신성한 생명이요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사람에게도 당연히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시다.

 

반면 창조된 생명은 영원히 가지 못한다. 지음을 받은 자는 신이 아니며 그리하여 그의 생명은 신성한 생명이 아니기에 영원히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창조된 생명이 신성한 생명과 합쳐지면 그 창조된 생명도 신성해지며 또한 영원히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육의 부모는 자식을 낳은 후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기를 바라지 않고 늘 자신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이것저것 온갖 좋은 것을 해주며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기 원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그런 부모의 마음을 넣어주신 아버지께서도 지음 받은 생명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그 신성한 생명을 주시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창조된 생명이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과 합쳐져 신성해지며 또한 아버지와 합쳐진 그 생명이 영원히 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여 에덴동산에 심으신 것이 바로 그 생명나무였다.

 

2. 생명나무로서 생명을 전하러 오신 아들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자신의 신성한 생명을 주시기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의 생명을 가지고 의롭고 거룩한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토록 누리기 원하신다. 하지만 창조된 생명이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과 합쳐지므로 신성해져야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 일을 위해 창조된 자가 아닌 오직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 즉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을 가진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과 함께 하도록 잠시 동안 사람과 같이 창조된 그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로 보건대 아들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신성한 생명을 얻도록 생명나무로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을 주러 오신 아들께서는 십자가에서 오히려 그 창조된 육체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아들께서는 생명을 전해주러 오셨으니 그의 죽음은 단지 죽음이 아니요 오히려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을 완전하게 이루어주신 생명의 죽음이다. 즉 사람은 이제 아들의 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은 사람에게 신성한 생명을 주는 희생이요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믿고 따르며 자신의 뜻을 이룬 영혼에게 그 신성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나무를 따르며 거룩에 이른 영혼들은 실제로 그 창조된 육의 죽음 후에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리하여 그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신이신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3. 사람의 영원한 생명

 

이제 아들의 그 십자가 죽음을 통해 누구든지 아들과 합쳐질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은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을 가진 백성이 될 수 있는 은혜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거듭난 후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십자가아래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생명나무의 가지로서 거룩에 이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영혼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빚으신 그 신성한 육체를 입혀주시니 그는 그 생명을 가진 거룩한 자녀가 된다. 이처럼 사람이 아들과 합쳐져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에 큰 비밀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다.

 

한편 한 사람이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신성한 육체의 생명을 얻으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들과 합쳐져 거룩에 이른 그 한 사람과 함께 하신다. 이때 그의 생명은 신성한 생명이니 아버지께서는 신성한 생명을 하나 더 얻으시는 것이다. 즉 거룩한 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그 신성한 생명을 얻은 것이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신성한 생명이 더 풍성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과 합쳐진 그 한 사람은 영원하고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결과를 그 생명나무의 한 열매로서 얻게 된다. 그러므로 신의 생명을 가진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같이 신의 생명을 가진 신성한 자녀들을 많이 얻으시는 것이요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을 가진 자녀가 된 그들이 바로 그 생명나무의 열매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어린양을 끝까지 따라가는 자들은 바로 이 생명나무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거룩하시니 사람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어 거룩에 이른 사람을 자녀로 삼으신다. 자식을 낳고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랑과 훈계를 통해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원하는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 한 부분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영원 전부터 자신의 품에 함께 하셨던 아들을 통해 사람을 창조하신 아버지의 사람에 대한 뜻은 오직 거룩이요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마음과 영혼이 갈급해 바로 이 인생의 목적을 찾다 어느 날 그것을 만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고 세상에서 살다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흘려주신 아들과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듣게 된다. 이때 그는 돈을 바치거나 전도를 하거나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피가 죄들을 사하심을 믿고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니 그는 보혈의 피로 용서받아 거듭난다.

 

그렇다면 거듭남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한 영혼이 마음에 있는 선악의 죄로 인해 범했던 더러운 허물들이 제해지므로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에서 구원받아 깨끗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요 아님 그가 헌금을 바치거나 전도하거나 그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아무리 전도와 선교와 봉사를 해도 그 어떠한 행위를 열심히 해도 거듭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단지 보물지도를 찾았다 하여 보물을 얻는 것이 아니요 이제는 지도를 보고 찾기 위해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보물을 얻는 것처럼 그가 거듭남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여 이미 의와 거룩에 이른 것이 아니니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라 의와 거룩의 길을 한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즉 사람의 마음에는 선악과의 뿌리가 있으니 그는 거듭난 후에도 여전히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범죄한다. 그러나 거룩한 자녀를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시니 거듭나므로 영의 구원을 얻은 그가 이제는 의에도 이르고 혼(생각)의 구원에도 이르러 결국에는 육체의 구원(부활)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그 인생의 목적을 오직 진리를 따르며 진리로 이루도록 계획해두셨다.

 

거룩에 이르는 과정으로써 거듭난 후에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원하는 영혼은 우선 의에 이르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마음이 하나이기에 두 가지를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니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돈과 명예를 위해 헛된 세상을 따르던 것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면 그는 비로소 한 마음을 품은 자이니 그 정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만을 따르며 진리에 순종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울 수 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때에 그 사람의 마음에서 죄의 뿌리를 뽑아주시고 거룩한 자(聖徒)라고 부르신다. 그리하여 죄와 세상을 이긴 결과로써 즉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기에 그가 썩어질 육에서 나왔을 때 심판을 통해 거룩한 육체를 입게 되니 부활에 이른 그가 바로 그 인생의 목적을 이룬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은 한 영혼이 거듭난 후 죄와 싸우는 그 길을 걸어 자신의 안에 있는 죄의 뿌리를 뽑아내고 거룩에 이르는 것이요 아님 중생 후 헌금이나 전도나 선교나 봉사 같은 행위들을 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사람은 그 어떠한 행위를 한다 하여도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는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니 그 누구도 사람의 유전과 규례를 따르는 행위들로는 온전한 구원에 이를 육체가 없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사람의 마음에 선악과의 뿌리를 덧심은 원수는 아버지의 그 뜻에 끝까지 대항하는 자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고 사망의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 거듭남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들어도 핑계를 대며 화를 내며 미루며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거듭남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아버지께서는 원수를 묶어주시고 믿음을 내려주시니 그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므로 그 은혜를 입는다.

 

한편 원수는 이미 중생한 자들에게는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을 가리고자 이런 생각들을 준다. “우리는 거듭날 때 이미 의롭게 되었고 거룩하게 되었고 영광스럽게 되어 온전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상급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나므로 구원에 이르러야 하므로 또한 구원받은 증거로 행위가 있어야 하니 감사하며 열심히 충성봉사를 합시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마음에 죄가 없다는 그 거짓말과 구원받은 자는 행위를 보여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로 인해 거듭나므로 이제는 그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수많은 자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기보다는 거룩을 포기하고 오히려 사람의 유전을 듣고 사람의 규례를 따라 마음 없는 행위들을 열심히 드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말에 속고 어리석음을 함께 취하는 이유는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그 십자가피의 첫사랑과 거룩의 믿음을 잊었기 때문이니 누구든지 첫사랑과 거룩의 믿음을 회복하면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뜻에 따라 그들을 사람의 유전과 규례로부터 건져내시고 진리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신다.

 

반면 원수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악함을 항상 실천하는 자이니 거룩을 깨닫고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의를 따라가고 있는 자는 그 무엇으로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음을 알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세를 받은 사람들과 이 세상을 이용해 고난과 핍박을 준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따르며 오직 자신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하는 정한 마음을 가진 영혼에게는 진리의 영을 통해 진리의 상을 베푸시고 보호하시며 함께하시니 그는 마음에 늘 평화와 기쁨과 소망을 누리며 끝까지 거룩만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택하신 영혼들은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들로서 아들의 몸에 거하며 영과 혼과 육의 거룩함과 정결함에 애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공중과 지상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또한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 피 뿌림의 순간을 바라보며 오직 진리를 따르며 진리에 순종한다. 원수와 세상에게 고난과 핍박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후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시어 맏아들로 인정받으신 것처럼 자신도 인자를 의지해 거룩을 이루므로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거룩한 아들과 딸이 된다는 아버지의 그 권세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살고자하는 마음 하나를 가지고 믿음으로 거듭나고 또한 그 어떤 행위나 자신의 열심이 아니라 역시 살고자하는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의를 따르며 의에 이르고 역시 살고자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진리에 순종하므로 거룩에도 이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아버지께로 부르짖는 기도도 필요하니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구하는 자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다.

 

1. 빛이 임하면 어둠이 스스로 떠나고 진리는 사람을 씻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니 자신의 마음을 다해 아버지의 말씀 하나를 순종하면 그 하나의 불순종하는 어둠이 그에게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의 거룩을 이룬 것이니 거듭남의 말씀에 순종해 거듭남의 약속을 이룬 것도 이와 같다. 마찬가지로 두 개의 말씀에 순종하면 두 개의 거룩을 이룬 것이요 다 순종하면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룬 것이다.

 

2. 인자의 살과 피에는 이미 죄와 세상을 이긴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과 함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말씀에 순종하면 인자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니 그의 몸도 그리스도의 몸처럼 거룩해진다. 그리고 몸이 거룩하니 이제는 비로소 그의 생각과 행위와 입술에서도 거룩한 것이 나오되 마지막에는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 선악의 죄까지 뽑아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새 생명가운데 행하는 자를 성도라 칭하시니 그는 그 몸을 의와 거룩의 병기로 사용해 늘 의롭고 거룩한 열매만을 맺어가게 된다.

 

3.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드리기 원하는 영혼은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있는 병기를 이용해 거룩을 위하여 창자와 목이 끊어지도록 아버지께 부르짖어 강청해야 한다. 이때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위해 부르짖는 그 영혼의 애통함과 원통함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자신의 때와 계획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크신 은혜와 영원한 복을 베풀어 주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사람은 자신의 품에서 낳은 자식이라도 자기욕심과 편리와 유익을 위해 버리거나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혈육을 끊지 못하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아가 되었든 버림을 받았든 이유를 모르든 자신을 낳아주신 육신의 어미와 아비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어 방방곡곡을 두루 찾아 다닌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그들이 셋째하늘로 돌아와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영원히 살도록 생기를 주셨으니 그들을 위해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은혜로 주셨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은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영혼의 아버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라도 자기 스스로가 그 생명의 아버지를 버린 영혼은 더 이상 찾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하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버린 영혼들조차 한 영혼 한 영혼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구원코자 하신다.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찾지 않는 영혼에게도 은혜를 내리시고자 그가 호흡이 있는 동안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부르신다. 구체적으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니 그가 육은 살아있으나 그의 생각이 사망으로 들어간 자라도 큰 질병가운데 있는 자라도 노인이라도 감옥에 묶여 그 육체의 생명이 끝날 날을 기다리는 자라도 끝까지 부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육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셨으며 또한 육으로 쉴 수 있는 시간도 정하셨으나 오직 은혜 받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만큼은 정하시지 아니하셨으니 그것은 사람이 일어나있거나 앉아있거나 심지어 드러누워있을 때에도 또한 어디서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오로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께서 그가 원하는 그 생명의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심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 나온 그 손 마른 자는 아버지의 그 자비하심으로 인해 다음과 같이 생명의 은혜를 얻었다. 그는 늘 자신의 입으로 나는 가난하다 먹을 것이 없다 입을 것이 없다며 자신의 거하는 처소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숨기고 있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보시고 수고한 그의 손을 마르게 하셨으니 그는 더 이상 추수할 곡식을 걷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자들에게 빼앗겼다. 또한 그가 늘 입으로 시인한 것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서서히 빼앗겼다. 그러다 그는 더러운 흑암의 세력들로 인해 그 손에 피가 오랜 세월 들어가지 않아 큰 고통가운데 있었으니 손이 말랐다는 것은 이방인들이 말하는 관절염보다 더 진행된 통풍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나는 죄를 가지고 그냥 빨리 죽겠노라 하지 않고 자신의 그 죄를 알기에 오히려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와서 늘 애통하며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목자라면 그를 위하여 어떻게 해주는 것이 옳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는 안식일이라며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 다른 날들에는 제사를 지냈어도 그의 마른 손이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들이 늘 제사를 드렸으되 그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했던 이유를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악한 자가 깊은 구덩이를 파놓고 자신의 손에 금과 방석을 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어떤 늙은 여자가 그 악한 자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손에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이 구덩이로 들어가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시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악한 자가 그에게 금과 방석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으니 늙은 여자는 어떻게 해야 더 큰 금과 더 높은 방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네 자식을 구덩이로 끌어들이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자기 딸에게 여기가 참 좋으니 들어오라 했고 딸은 크게 아멘하며 뛰어들어갔다. 이에 악한 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붙들고 싶어하니 늙은 여자는 자기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에 악한 자는 네 자식이 거기서 나올 생각을 하지 말고 계속 머물러있게 말을 잘 하라고 시켰다. 그러자 늙은 여자는 자신을 따르는 딸에게 자기가 가진 돈과 명예를 보여주며 너도 기다리면 저 위에서 더 큰 금과 더 높은 방석이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딸의 욕심도 이루어져갔다. 하지만 악한 자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던지며 구덩이에 부드러운 모래도 함께 붓기 시작했으니 딸은 그것을 깨닫자 금과 방석을 버리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웅덩이는 너무 깊어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었으니 어미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도와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되 사실은 자신도 나가는 방법을 몰랐으니 자꾸 요청하면 안에 있어도 밖에 있음을 믿으라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 당시의 목자들은 성전에서 백성들을 데리고 거룩한 행위를 하기는 했으나 그들 자신부터 욕심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룩을 위하여 죄와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품고 있는 그들이 어찌 다른 죄인들을 아버지의 뜻으로 이끌 수 있으리요? 게다가 그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썩어질 욕심뿐만 아니라 존경 받는 자리를 사랑했으니 그들은 손 마른 자보다 더 깊은 죄 가운데 있기에 결코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끌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애통하며 용서받기 원하여 늘 그 성전에 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안에 위치한 가르치는 회당으로 들어가실 때 손 마른 자가 거기서 늘 애통하며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 회당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그 영혼을 치료하시고자 그에게 다가가셨고 손 마른 자는 자신의 원함을 이루어주실 메시아를 만났기에 죄 용서함을 받고자 아버지께로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그의 죄를 사하셨고 더불어 이제는 그의 손에 손을 얹으시니 그의 손에서 피가 묶였던 것이 조금씩 손으로 또한 뼈마디와 뼈들 사이로 들어가므로 그의 손이 곧 회복되어 극심한 고통에서도 나음을 받았다. 그리하여 두루 다니시며 수많은 병자들 가운데서 오직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는 그가 어떤 상황과 시간에 있든 동일한 해방을 안식일에도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착한 일은 이방인의 생각처럼 사람의 육을 고치거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요 범죄한 자의 영혼을 고쳐 그에게 무엇보다도 영생의 은혜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육적인 것을 선한 것이라 생각하니 어리석게 믿는 자들은 지금도 자신의 죄는 회개치 않고 오직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유다처럼 사회사업하는 목자들만 좇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자가 교회를 거룩과 생명으로 이끌지 못함은 자신부터 죄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는 그들을 아버지께서 회복하시리요 원수가 일으키리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손 마른 영혼을 아버지의 뜻으로 이끌어 생명의 은혜를 베푸셨던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안식논쟁을 벌이며 뒤따라오던 성전의 목자들은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그 악한 자들에게는 거룩하고 선한 일을 안식일에 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한편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백성들에게는 아버지의 그 애틋한 자비의 마음을 알리시고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 은혜 받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아니하셨으니 안식일에 어떤 한 백성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애통하며 죄를 고백하고 죄의 사함을 얻기 위하여 있다면 안식일에도 제사를 드리는 것이 더 옳음이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도 또한 어떠한 날에도 또한 어디에서도 함께 계시며 모든 백성들이 그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심을 깨우치기 원하는 도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어떤 사람이 큰 건물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의 입에는 자비와 용서와 회개와 거룩과 헌신과 겸손과 희생과 화목 같은 말들이 항상 붙어 다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하고자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신은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이니 자신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반갑게 웃으며 악수하되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며 고개를 숙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일 때는 누군가 자기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권하길 기다렸고 자기 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하로 알았고 아직 공부하며 그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보조자로 대했고 자기보다 적은 수의 영혼을 이끄는 자를 만났을 때는 나는 설교를 잘하는 능력자이니 부족한 당신은 나의 밑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을 때 그의 마음과 생각이 이러하니 그가 주중에 나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삶이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그는 언제든 어디서든 사람들에게 섬김 받으며 높아지려는 헛된 교만과 또한 자신과 가족의 썩어질 육을 구하는 마음으로 말과 행위를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강하게 하다 다음주가 되니 그런 마음을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 똑같이 예배를 인도하고 나와 동일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키가 작고 어깨가 안쪽으로 숙여진 어떤 가냘픈 사람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그 건물에 들어가 내가 했던 말을 전하고 헌금을 바치고 찬양하고 아버지께로 기도하되 예배를 마친 후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죄악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노라.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몸을 더럽히는 삶을 가증하게 보시니 너희가 오직 죄악 한 가지라도 이기고 거룩하게 되길 원하시는 도다. 또한 먼저 자비를 받은 자로서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니 너희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요 마지막까지 너희의 목숨까지 바쳐 섬기는 자리로 계획하셨노라.” 예배를 인도하는 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이켜야 함을 깨달았으되 자신이 앉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고는 돌이킬 수 없었으니 회개도 섬김도 원치 않는 자들은 하나로 뭉쳐 이렇게 말했다. “죄는 우리가 이 건물 안에서 드리는 예배로 사함 받는 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하되 만일 죄가 있다 해도 아버지는 이미 용서했으니 원수의 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찌 의롭고 거룩한 우리를 돌이키라 하느뇨? 그리고 너는 무슨 권위로 우리에게 돌이키라 하느뇨? 네게 그런 권세가 있다면 증명해 보여라!” 그들은 이렇게 말을 맞춘 후 그를 잡아 죽이고자 했으나 그곳을 들락날락하던 자들 가운데 어떤 영혼은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를 섬기겠노라 약속한 자신의 첫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또한 오직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살아계신 아버지가 두렵고 떨리니 무엇이든 올바르게 행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을 돌이키고 자신이 앉은 가장 엄한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내려와 자신이 죽이려 했던 그를 따르며 자비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그와 하나되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먼저 그 초라한 자를 자신들의 법으로 잡아 죽인 후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를 따르던 동료도 잡아 넘기되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러나 초라한 이의 죽음은 자신이 섬기는 이를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는 죽음이었으니 큰 사랑을 받은 그도 역시 초라한 그를 친구라며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늘 함께 나누었으되 가증한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여긴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하늘의 심판을 받아 그 뜨거운 곳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거하는 죄로 인해 누구나 다 불의하며 범죄한다. 그러나 사람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말씀으로 찔림을 받았을 때 불의하고 죄악된 자신을 돌이킬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스도를 따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그 십자가의 자비를 통하여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똑같이 돌이켜야 함을 깨달았어도 많은 자들이 제자들과 달리 돌이키지 못했으니 그것은 자기욕심과 영광을 구하는 그 악한 뜻을 자신의 손에서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상을 버리지 못한 성전의 목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죄 없으신 인자를 죽이고 영원한 사망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해 잠시 육의 좋은 것을 취하며 잠시 사람들에게 영광 받다 사망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회개와 돌이킴을 통해 얻는 그 영광은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되고 헛된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그곳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이 얻을 그 영광스런 생명과 또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이 당할 그 영원한 형벌을 이미 알고 계셨으되 후자도 돌이켜 그 생명에 이르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의 자비로운 희생으로 거룩하게 하여 아버지와 화평하게 하는 그 메시아가 바로 인자라는 확신을 그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깨우치고자 전하시는 말씀이요 동시에 오직 자기욕심과 명예를 위해 거룩에 마음과 믿음 없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목자들에게는 경고의 말로 쥐어주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비를 받은 자가 제사보다는 자신이 받은 그 자비를 다른 자들에게 전해주므로 자신의 그 허물들을 용서받으며 또한 그 자비로써 자신보다 위에 있는 자들과 더불어 화목을 이루며 또한 아래에 있는 자들과도 더불어 화목을 이루며 하나가 되기를 더 원하시는 도다.”

 

그러나 성전에서 제사를 인도하던 독사새끼들은 자신의 악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으니 죄에 눈이 가려 끝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가까이 온 천국과 회개를 선포하는 인자를 미워하고 시기했으며 네가 무슨 권세로 여호와의 종인 내게 뭐라 하느냐 생각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죄 사함의 권세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자 자신이 바로 십자가에서 자비를 이루는 그 창조자임을 비밀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조차 깨닫지 못함은 아버지께서는 자비를 저버리고 성전에 들어와 마음에 우상을 구하며 제사 드리는 자들에게는 어떤 깨달음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사람은 정해진 법과 규칙이 있어도 그것을 지키지 않거나 옳지 않게 적용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영광과 의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왕과 판사와 법을 만드는 자만이 아니요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의한 자들은 그것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만 뽑아내거나 알면서도 빼거나 바꾸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간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일을 하되 아버지와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육의 욕심과 높아짐을 구하던 목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를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어서 지키며 자신을 의롭게 여겼고 백성들에게도 그것들을 열심히 지키라고 가르치며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성전으로 들어오는 백성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자주 나올수록 자신의 악한 뜻과 계획이 더 빨리 잘 이루어짐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지키고 있던 큰 건물을 참으로 소중히 여기되 그 안에서 열심히 제사 드리며 오직 성전과 짐승제사를 통해 율법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율법과 예언에 따라 모리아산에서 멜기세덱의 의로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께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메시아를 맞이하고자 거룩에 애쓰기보다 오직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품되 그들의 마음은 썩어질 헛된 곳에 있었다. 마치 첫사랑을 잃은 이방인들이 예배장소를 교회라고 칭하며 교회와 목자를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구약성전은 큰 건물이 아니요 백성들의 몸이듯 신약교회도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요 그들의 몸이니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다시 보내는 아들을 맞이하고자 썩어질 육의 욕심과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후 그 깨끗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의지해 거룩을 이루고자 애쓴 신령한 신부의 몸 안에 거하시므로 그들을 성전으로 삼으신다. 또한 그 건물에 들어가므로 거룩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요 사람은 먼저 영이 거듭나야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 영의 생명을 얻고 그 다음으로 중생한 영혼이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 말씀에 순종하여 혼의 거룩에 이르러야 그 거룩한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니 그 생명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과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이다.

 

하지만 전통의 규례와 유전을 따르며 다른 복음에 묶여있는 자들은 자신의 몸이 성전과 교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깨달아도 거룩을 모르면 건물이 아닌 몸이 교회라는 말은 하되 정작 자신이 아버지의 백성과 자녀로서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인정치 못한다. 인정해도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거룩에 애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의 끝인 지금은 그것을 알아서 말하는 자는 있어도 거룩을 행하는 자는 적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성전을 들락날락하며 드리는 제사와 또한 그 변경된 것을 지키므로 거룩해져 그 생명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니 오직 여호와와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그 신령한 율법을 행하며 부족한 것은 순한 피를 의지하므로 거룩하게 된 그들의 안에 아버지께서 거하시니 그들의 몸이 곧 성전이 된다. 그러다 그들이 결국 의로운 피를 드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부활했으니 그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독사의 새끼들에게는 진리의 깨달음과 비밀을 안 주신다. 혹시 주실지라도 그들의 뜻은 악하기에 찔림을 받아도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당시의 목자들도 율법과 여호와와 진리와 거룩과 성전과 제사와 같은 말들을 늘 입에 달고 다녔으나 정작 그 뜻을 모르고 전하며 행하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성전을 소중히 여기며 빠짐없이 제사를 행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아셨기에 칭찬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을 통해 자신이 얻는 욕심과 영광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으니 그들의 눈에는 나사렛에서 난 그 인자가 메시아가 아니요 오히려 부딪히는 돌로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때쯤에는 이미 고소할만한 것들을 다 준비하고 이제는 인자를 잡고자 안식논쟁을 일으켰던 것이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자들이 변경한 의문의 율법과 유전으로 자신을 붙들고자 하는 그들에게 먼저 다윗의 이야기와 더불어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허물이 없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이 말씀을 허락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율법과 계명의 마지막은 아버지와 아들을 자신의 마음과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며 그와 같이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과 끝에서 그것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고 그 중생한 영혼들 가운데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으니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와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는 자들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 전의 유대인들은 그것을 지켜야 부활의 생명에 이른다는 것을 이미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들어서 알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함을 깨닫는 자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되어 있으니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얻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여호와를 따르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이루고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렀던 것이되 눈으로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하는 유대인들은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을 버렸으니 그들은 오직 변경된 율법과 유전을 열심히 지키며 성전의 뜰만 밟았다.

 

이처럼 율법은 오직 멜기세덱의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되 성전을 사모하는 자들은 성전의 제사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모인 자들에게 오직 인자가 율법을 완성시킬 것임을 알리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인자가 율법을 이루는 자임을 뜻하여 자신이 성전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로 이 말씀을 허락하신 것이되 큰 건물에서 욕심과 높아짐을 취하던 목자들은 그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으며 오히려 인자를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그 성전을 허무는 자로 보고 잡아서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을 허락하시니 지성소의 법궤 위에 뿌려지는 피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보며 거룩한 육체의 믿음을 얻는다. 그 이유는 법궤의 안에 있는 십계명과 만나와 싹튼 지팡이의 약속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와 성전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을 가지고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한 자기의 길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정해주신 그 십자가의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초대교회의 몇몇 지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여섯째 날에 함께 모였으니 가장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킨 후 주님의 만찬을 거룩하게 행했다. 거룩한 것을 먹고 마신 후에 온 힘을 다해 자신과 다른 영혼이 거룩에 이르도록 주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아버지께로 부르짖어 구했다. 목자들도 양들도 다 함께 무릎 꿇고 아버지의 거룩하신 말씀을 전하며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성소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여호와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송축했다. 후식을 나누며 주님 나라의 소망을 보고들은 후 거룩하신 영의 탄식에 따라 죽어가는 이웃영혼들의 깨어남과 큰 구원을 위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만찬을 마친 후 모든 지체가 마음과 영혼에 만족을 얻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한 지체가 육의 욕심에 이끌려 범죄한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다 문득 아버지께로 부르짖어 회개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애통하던 그는 소망을 가지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먹을 것 한 가지를 준비해 공동체를 찾아가되 먼저 목자가 거하는 사택의 문을 두드렸다. 목자가 나오자 그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린 후 제사를 드려달라며 참새를 내밀었다. 그러나 목자는 지금은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으니 내일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고개를 떨구며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으나 갈 곳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했다. 잠시 후 다른 한 지체가 자신과 가족의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고민하다 거룩한 공동체에는 아버지께서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과 육의 양식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러므로 목자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자신과 가족들의 영혼이 먹을 것을 조금만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목자는 지금은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으니 당신도 당신의 집에 가서 편안하게 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배고파 울며 이곳 저곳을 방황했으되 그 목자는 자신의 이름과 선함이 알려지는 곳에는 언제든지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편 많은 재물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어떤 한 지체가 어떻게 해야 일이 잘 될까를 고민하다 목자에게 말씀과 기도를 받으면 복 받는 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그 영혼도 제물을 하나 준비하여 부푼 마음을 가지고 사택을 방문했다. 그러자 목자는 그의 형편과 위치를 알고 있으니 그를 반갑게 맞아들이며 그가 가져온 수소와 송아지들을 창고에 묶어두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흔들어 넘치도록 구하되 그의 자손들도 바다에서 수영선수가 되도록 간구했다. 이에 그는 만족하며 하얀 봉투를 기쁘게 건넨 후 발걸음도 가볍게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리고 그 목자는 아예 일년에 한두 번을 정하거나 수시로 지체들의 가정을 돌아다니며 말씀과 기도로 양들을 바다로 인도하며 하얀 봉투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의 다음 날인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괜찮은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것이니 예를 들어 어느 한 백성이 자신의 범한 죄를 깨달아 율법이 정한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찾아와서 제사를 드리고 싶어한다. 이때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오늘은 안식일이니 내일 오시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오직 한 영혼을 위하여서라도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독사자식들은 거룩을 깨닫지 못했기에 누구든 안식일에 제사의 제물을 가지고 오는 자는 안식을 범한 자이니 성전을 찾아온 그 영혼에게는 안식을 범한 죄가 있겠노라며 아무도 받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거룩과 안식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온 그 백성들을 오히려 죄와 세상가운데 늘 머물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목자가 이렇게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이방인의 목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거듭난 한 영혼이 자신의 안에 거하는 그 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고통당하며 애통하고 있다. 그러면 그에게 죄에서 승리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니 인자의 살과 물과 피로 거룩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돌이켜 십자가로 나오도록 인도함이 옳다. 그러나 거룩을 모르는 자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으니 율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믿는 자는 이미 회개했으니 다시 회개하면 믿음이 없고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비록 죄를 범하는 중에도 자유 하는 것이 큰 믿음이다.’라는 무식한 말을 하며 그가 죄와 어둠에서 돌이킴이 아니요 오히려 죄와 세상에 안일하게 머물러있도록 이끈다. 하지만 이런 목자들은 아버지와 양들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노라 서원한적이 없는 거짓양치기들이니 자신은 주님의 사역에 충성하고 있다고 말하되 사실은 자신의 썩어질 육을 아끼고 있는 자들이다.

 

안식을 범해도 죄 없는 또 다른 경우는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율법을 다 이루신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룩한 공동체에 드리고 필요한 만큼만을 받아서 사용하는 교회시대와는 달리 구약시대의 십일조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곡식과 짐승을 얻을 때마다 즉 십 분의 이를 제사장에게 바쳤다. 그러면 제사장은 거기서 반을 아버지께 감사 드리며 취했고 반은 육의 음식을 못 먹는 자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그러다 가난한 자가 왔을 때 이것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니 아버지께로 감사 드리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전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의 전에는 십일조를 통해 여호와의 종들도 먹을 것이 항상 있으며 또한 게으른 자가 아닌 가난한 영혼들도 먹을 것이 항상 넘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육신의 굶주림으로 인해 성전에 와 먹을 것을 좀 구할 때에는 그날이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성전창고와 우리와 외양간을 열어 그 쌓아둔 것들을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심령이 가난한 자가 육의 힘을 얻은 후 거룩에 애쓰므로 새 생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요 자신과 가족의 육과 또한 사람에게 영광을 얻고자 목자의 일을 하던 자는 굶주린 영혼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내어쫓으며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보이고자 '오늘은 안식일이니 너도 저기에 가서 안식을 취하라.'고 말하되 자신들은 늘 배가 불어있었다.

 

그런데 구약과 2천년 전의 이러한 상황은 첫 사랑을 잃은 교회시대 이방인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썩어질 것을 여기저기에 전하되 정작 자신의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아니함은 그들은 자신들의 뜻과 계획에 도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썩어질 것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영의 양식이랴?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자기가족과 부한 자와 높은 자를 위해서는 늘 창고의 문을 열되 가난한 영혼들은 돌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주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배가 불어있는 목자는 육은 있어도 주지 않는 것이요 영은 없어서 못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이 진리라며 앞에서 말씀을 전하되 그들이 만일 십자가의 희생으로 전달되는 진리와 산제사로 이루어지는 거룩을 안다면 그렇게 행하고 있겠는가?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

아벨과 가인이 야곱과 에서가 동일한 애비와 애미의 사이에서 나왔을지라도 아버지께서는 아벨과 야곱은 받으시되 가인과 에서는 받으시지 않으셨다. 한편 밭이 다르되 씨는 동일했을지라도 오직 이삭은 받으시고 이스마엘은 안 받으셨다. 구약의 많은 제사장들을 다 버리시고 몇몇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또한 2천년 전 큰 건물에서 영광을 받던 많은 목자들과 육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한 제자로 인정받던 가룟은 버리시되 11제자와 맛디아와 자신이 영광 받는 자리에서 내려온 바울은 받으셨다. 환난으로 들어가는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을 목자라고 칭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는 불의하신 분이신가? 결코 그럴 수 없으시니 사람이 인격과 이성을 가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

 

사람의 영혼을 이끄는 자의 마음이 육의 욕심과 사람의 영광에 있느냐 아님 영의 욕심과 하늘의 영광에 있느냐가 첫 번째 기준이다. 그러므로 육의 욕심을 품은 자는 진리는 버리고 썩어질 것을 구하며 즐기고 만족하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썩어질 것은 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영원한 것은 포기하고 사람들에게서 높임 받기를 원하되 하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헛된 영광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영원하신 나라를 구하며 아버지께로 의롭다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썩어질 욕심은 사람을 죄로 이끌고 세상의 영광은 불의한 길을 걷는 자에게 주어지되 아버지의 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는 그 길의 끝에서 인정받고 아버지의 그 영광스런 나라는 오직 거룩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떤 길을 걷는 영혼을 받으시어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이끄시겠는가?

 

둘째 그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다. 사람은 마음에서 죄가 나오니 육적인 욕심을 부리거나 불의한 자신을 옳게 여기거나 자신을 높이기 원하면 범죄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떤 자는 죄를 범한 후 상한 심령을 가지고 통회하며 그 죄가 자신에게서 떠나가기 원하되 어떤 자는 주님이 용서했다며 그것을 은밀히 품고 계속 사랑한다. 그러므로 전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되 후자는 버린 자다. 그런데 거룩을 향해 애통하는 마음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과 다른 자를 계속 더럽히겠다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어떤 영혼을 자신의 품에 안으시어 위로해주시겠는가?

 

마지막 기준은 주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마음이다. 누가 거룩한 자인지 깨달을 수 있는 비유로써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바쳐 오직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그들은 한 몸을 이루었으며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늘 만족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는 종이 옷을 입은 남자에게 다리를 벌린 후 자기남편에게 와 사랑한다 말하자 남자는 그것은 당신과 나와 자식들을 더럽히는 것이니 돌이키라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의심이 가득한 마술사에게 벌린 후 남편에게 와 똑같이 말하자 남자는 동일한 말과 함께 또다시 용서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도 부족했으니 이번에는 하체가 큰 이웃집남자에게 벌린 후 똑같은 말을 하자 남자도 동일한 말과 함께 이것이 마지막이라며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거리의 모든 남자를 집으로 불러 부부의 침상에서까지 벌렸으니 남자는 결국 돌이키지 않은 여자를 쫓아냈다. 그러므로 자신이 과거에는 비록 창기였을지라도 목숨까지 바쳐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를 만났다면 그 이후로 그것을 멈추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한 영혼이 거듭나기 전에는 그가 비록 자기생각을 따라 세상과 간음하며 살았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영접한 이후로는 그것을 멈추는 것이 옳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평일에는 다른 남자와 한 몸을 이루며 살다 여섯째 날과 주일의 거룩한 만찬을 통해 자신의 남편과 한 몸을 이룬다면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요 신랑과 다른 지체들까지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과연 어떤 영혼을 거룩하고 신령하게 받으시리요?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모든 영혼을 공평하게 보시며 대하시니 바로 이 기준들로 가까이 혹은 멀리 두셨다. 그러므로 비록 크게 범죄한 다윗이었으나 그는 육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그 소원으로 인해 아버지의 마음에 합했다. 그러나 다윗처럼 똑같은 죄인이었으나 사울은 썩어질 육의 부요와 헛된 세상의 영광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오히려 거룩을 버리고 여호와를 불렀으니 아버지께서는 그의 거짓된 마음을 아시고 폐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을 핍박하며 죽이기 원하되 그와 가까운 자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가인과 에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아벨과 야곱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했고 가룟은 그럴 힘이 있는 성전의 목자들에게 인자를 넘겼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역시 같은 이유로 세상권세를 가진 사울에게 핍박 받으며 도망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은 자신을 따르던 자들과 함께 성소에 들어가 거룩한 떡을 취했으나 그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목자의 일을 하던 구약목자들이 변경한 그 율법과 유전에 따라 다윗은 두 개의 법을 어겼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다윗이 행한 일을 안식일과 성전의 율법을 어긴 것으로 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윗이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거룩한 만찬을 나눈 것으로 보셨다. 즉 그가 광야에서 핍박 받으며 쫓겨 다닌 것은 거룩을 위해서였으니 거룩한 떡을 먹은 것은 육신의 욕심을 채우며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함이 아니요 거룩에 힘을 쓰기 위해서였고 왕이 될 자신을 따르며 함께하는 영혼들에게 오직 여호와의 율법과 도를 가르치므로 그들도 거룩에 애쓰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성소의 그 거룩한 떡을 오직 먹어야 할 자가 먹었기에 다윗에게는 죄가 없는 것으로 보셨으며 오히려 그의 깨끗한 마음을 아시고 자신의 마음에 합당한 그를 계속하여 자신의 오른손으로 붙드셨던 것이다.

 

한편 당시에 자기자신을 위해 목자의 일을 하던 성전의 인도자들은 늘 인자의 뒤를 따라 다니며 이미 고소할만한 것들을 충분히 모아두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들의 율법으로 인자를 붙잡기 위해 기다리던 차에 비로소 제자들이 다윗을 따르던 자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안식일을 범했다며 고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옳음을 보이려면 그들에게 우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다윗은 거룩을 이루기 위해 다니며 그것을 먹었으니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옳게 행한 것임을 알리셔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단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배고플 때 행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셨으니 그 이유와 목적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였다.

 

첫째 아버지께로 합당하지 않은 마음을 품은 그들은 이미 여호와를 알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자들이 아니요 오히려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들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마음은 육의 욕심과 자기가족의 필요와 자신이 높아지는데 있으니 더러운 떡을 상에 올려 제사 드린 후 그것을 먹고 얻은 힘으로 자기유익을 위해 입과 손과 발을 놀리며 양들을 세상으로 흩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반문하는 자들이다. 고로 그들은 성경의 어느 곳을 펴서 보아도 전해도 들어도 오직 자신의 그 유익만을 깨닫게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그 악한 자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신들 그들이 어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요? 오히려 화만 부르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될까 두려워 깨닫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진리를 전해 화를 부르는 대신 입술로는 이것이 주님의 뜻이요 사역이라며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잡아 피 흘리므로 아버지와 멀어지되 그런 자신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려는 그들의 악한 마음을 찌르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전부터 내려오던 율법으로 이제는 인자를 잡으려는 그들에게 그들보다 더 위에 있는 다윗과 구약제사장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를 알리셨던 것이다. 즉 너희가 만일 너희가 가진 법으로 나를 잡는다면 동일한 그 법으로 다윗과 제사장에 대하여는 어떻게 심판을 내리겠느냐는 의미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깨끗한 열매를 보화처럼 여기는 왕이 포도원을 계획하자 그 왕의 아들은 자신의 마음이 아비에게 있었으니 아비의 뜻을 이루고자 햇빛이 잘 드는 산중턱에 땅을 파고 돌들을 거둬내고 악한짐승이 들어와 해치지 못하도록 울타리도 두르고 세심하게 살피며 날마다 열심히 일했다. 아들은 이렇게 6일 동안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포도원을 만들고 7일째에는 쉬면서 극상품포도나무 두 그루를 준비해 8일째가 되자 포도원에 심고는 두 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6일 동안 일한 나에게는 2번의 안식이 남아있으니 너희도 포도나무를 정성껏 가꾸면 아버지께서 5년 후에 그가 맺은 열매에 따라 상급을 주시리니 그에게도 나와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왕처럼 다스리는 안식이 2번 남아있노라.” 아들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첫째 종은 그 왕자가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는 쉬다 8일째 극상품포도나무를 심었던 그 모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왕자가 전해준 언약을 믿고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에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깨끗한 물을 주고 낮에는 땀 흘리며 벌레를 잡아내고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내고 저녁때도 포도원에 나가 둘러보며 열심히 가꾸다 7일째는 쉬었으나 자신의 온 마음이 왕의 뜻에 있었으니 쉬다가도 일어나 포도원에 가서 늘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땀을 흘렸으니 5년 후에는 결국 깨끗한 열매들을 풍성히 따서 왕께 가져갈 수 있었다. 이에 왕은 그가 바친 열매에 맞는 상급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받은 보화는 나의 아들과 함께 즐기며 다스리는 2번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상급이니라.” 한편 둘째 종도 역시 극상품포도나무를 받았으나 그 일은 당장 유익이 없어 보였고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일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의 포도원에다 자기가 원하는 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으나 사과에 빠진 마음으로 인해 보화를 얻은 자에게 주어진 2번의 안식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며 아들이 일하다 7일째 쉬던 모습을 보며 6일을 일하고 7일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게다가 7일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기준을 자신이 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7일째에도 깨끗한 일을 하고 있던 첫째 종을 보자 쉬는 기준을 어기는 그에게 이렇게 꾸짖었다. “6일간은 일해도 7일째에는 아무런 일도 해서는 안 되는데 어찌 너는 종으로서 불순종하느뇨?” 이에 첫째 종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께서 7일째 쉬셨던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5년 동안 오직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고 상급을 받은 자는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왕처럼 다스리는 안식에 2번 참여한다는 뜻이오.” 그는 이렇게 알아듣게 설명해준 후 만일 그러한 상급을 원한다면 안식의 약속을 믿고 주인의 명에 애쓰라고 일러주었으나 그는 깨끗한 열매보다는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열매를 원했으니 그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또한 보화와 남아있는 2번의 안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첫째 종을 향하여 당신은 왕의 말에 불순종하는 거짓된 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왕에게 받았던 극상품포도나무는 제쳐놓고 사과열매를 얻고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했으니 결국 5년이 지난 후 신 포도와 사과를 많이 따서 왕의 앞에 바쳤다. 이에 왕은 약속대로 그가 맺은 만큼의 상급을 베풀었으니 둘째 종은 왕자와 함께 모든 것을 즐기며 다스리는 상급대신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명예와 의를 위해 불순종한 만큼 심판 받고 쫓겨났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율법과 계명을 유대인들에게 주실 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에 애쓴 자들은 자신이 맺은 의롭고 거룩한 열매에 합당한 거룩한 몸을 입을 것이요 부활한 자는 천년왕국에서 안식하며 왕과 제사장이 되어 다스리다 천국의 끝에 그리스도를 따라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는 영원한 안식과 권세가 흰옷을 입은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영광과 권세의 약속이 오직 그 안식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순종한 자들에게 천년 후에도 영원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의 언약을 믿는다 하되 마음이 오직 육적인 욕심과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과 자신의 옳음을 나타내는데 있으면 그는 거룩을 모르는 자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모르면 그가 성경의 어느 곳을 펴서 어떤 말씀을 보아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리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율법과 폐하신 율법이 각각 무엇인지 모르되 교만이 넘치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율법으로 구원을 얻니 못 얻니 아는체하며 서로 싸우고 정죄한다. 믿음과 행함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르는 자들 중에 교만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전에도 당시에도 거룩을 모르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성전에서 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기는 했으나 그 의미를 모르고 행했으며 또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전통에 거하는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니 그들도 늘 말씀을 읽고 또한 주일마다 모여 거룩한 행위를 하되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 행위들을 열심히 행하고 있다.



 

 



 

또한 사람은 아버지께서 갈급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주셨으니 무엇을 모르면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나 원수에게 그 마음을 빼앗기면 오히려 교만하게 변하니 무슨 말씀이든 자신의 유익과 의에 맞게 풀어서 정의를 내린 후 그 변화된 말씀에 따라 언행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전에 교만함이 가득한 목자들은 바로 그 목적을 이루고자 율법과 계명을 해석하고 변경한 후 백성들에게 그것을 지키고 행하게 하며 이것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의문의 율법과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은 지금까지도 안식일에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라 알고 말하고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온전한 율법이 아닌 의문의 율법을 따르는 자들의 기준으로는 즉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들어오고 보아오고 믿어오던 자들의 눈으로는 안식일에 거룩을 이루고자 일정한 거리 이상을 걸어 다니며 만찬을 행하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제자들이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안식일에도 모든 것들을 거룩을 위해 행하도록 가르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셨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해 목자의 일을 행하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제는 제자들이 아닌 그들을 이끌고 있는 그리스도를 구약의 목자들이 변경한 율법과 유전으로 고소하여 붙잡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오직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품에 함께 계셨던 아들이요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요 신령하고 영원한 그 율법을 모세에게 내려주신 분이니 아버지의 뜻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무엇을 말하든 행하든 취하든 어디를 가든 누구와 함께하든 그의 모든 것들은 오직 거룩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를 애통하는 마음과 진리를 깨닫고 싶은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70인과 가난한 백성들에게도 천년왕국의 안식과 셋째하늘의 영원한 안식의 비밀을 가르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그의 제자들도 거룩을 이루고자 어떤 날이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다녔던 것이요 또한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육이 필요한 것들을 그 입으로 넣었던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왜 사나요?-4

사람은 왜 사나요?-4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형제가 연합해 동거할 때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큰 은혜로 묶어주신

 

사랑하는 주님 앞에

 

어저께나 오늘이나

 

지성소에 서리라

 

너 성결키 위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