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그것을 얻는 길
- 살고자하는 마음
15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그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는 혼인날까지 정절을 지키겠노라 마음먹었다. 이제 남자는 여자를 위해 혼인예식과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떠났다. 그리고 여자는 그때부터 자신의 남자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며 기다리는 동안 남자 없는 연약한 여자로서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랬다. 또한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어디든지 남자와 함께 다니며 늘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게 간절한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오직 남자가 돌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남자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돌아오며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그 여자는 남자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 매우 기뻐하며 집에서 뛰어나와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다리며 당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키느라 수고했소. 순결한 당신을 위해 영광스런 혼인예식과 성대한 혼인잔치를 준비했소. 그러니 우리 함께 한 몸을 이루어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쁘고 행복하게 삽시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 여자는 남자와 기쁨으로 한 몸을 이룬 후 준비된 혼인잔치에 참여해 신랑과 함께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후에도 늘 남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거하며 함께 다니며 함께 기쁨과 안식을 누렸다. 그리하여 순결을 지킨 그 여자는 자신이 간직했던 간절한 마음과 소망들을 다 이루었다.
이와 같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다시 오셨을 때에 그 안에 있는 낙원에서 실제로 있을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의미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을 이끌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시기 전에 먼저 과정에 있던 그 영혼들이 종들과 함께 혼인잔치준비를 공중에다 다 차린다. 그런 후 아들의 일곱 종들이 내려와서 잔치가 빠짐없이 준비되었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다시 아들에게 가 준비가 다 되었음을 전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때가 되었도다. 너의 신부를 맞이하라.’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비로서 하늘 문을 열고 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신다.
바로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그 일곱 종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영혼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몸을 육과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과 혼과 육을 정결하게 지킨 신부들을 이미 다 찾아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개 영혼아 오너라.’하시면 그 영혼이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알고 나온다. 그러면 종들은 장막에서 나온 그 영혼을 데리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운 자를 먼저 맞이하여 그를 껴안고 ‘수고하였도다. 아름다운 나의 몸이 되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 영혼도 똑같이 한 몸으로 맞이하시니 이렇게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예식이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아니하고 슬픈 것을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신의 신랑과 함께하며 영원히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정결한 영혼들이 신랑과 한자리에 앉아서 함께 잔치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기쁨을 누리니 그것이 바로 혼인잔치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정결한 한 영혼을 부르시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영혼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하되 오직 부름을 받은 영혼들은 신랑의 그 음성을 듣고 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음성을 들을 때에는 그 영혼이 매우 기뻐하며 그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며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잊고 오히려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얻으며 그때부터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있을 그 환난이 임박한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얼마나 가까이 오셨나? 먼저 두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둘째 하늘과 이 첫째 하늘의 문을 열고 오직 자신에게 마음을 드린 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영혼의 속에 들어가고 그는 자신의 속에 들어와 자신의 신부가 되리라는 그 약속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현재 얼마나 가까이 오셨는가 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 문을 여시고자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셨다. 그러므로 어느 때든지 그가 열고 나오실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져 먹고 마시고 있으니 신랑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으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하얀 종이를 보면 하얀색으로 보이지만 만일 빨간색안경을 끼고 보면 빨간색으로 파란색을 끼면 파랗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빨간색과 파란색이라고 주장해도 그 종이는 변함없이 하얀색이되 부끄러움을 모른다. 또한 색안경을 끼거나 벗는 것과 어떤 색을 택할까 하는 결정은 누가 시켜서 따르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나 인격체는 그 안경을 벗지 않으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알고 따르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반대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은 인생에서 생명 없는 곳으로 끌려 다니며 생명 없는 일을 하다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가되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빛을 본 자는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일을 하다 결국에는 생명의 부활에 이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구원의 시작인 거듭남을 자기가 원하는 색안경을 끼고 보니 교회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목사나 선교사의 일을 한다고 하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거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신했다고 병에서 나았다고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천국이나 지옥을 보았다고 전엔 무신론자였지만 지금은 창조자를 믿는 다고 귀신의 정체를 안다고 죽음까지 갔다 살았다고 사람이 죽은 후 심판이 있음을 안다고 교회개혁을 외친다고 모태신앙이라고 전도와 봉사를 많이 한다고 주여 주여를 부르며 기도한다고 신랑의 재림과 휴거를 준비한다고 방언과 예언을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무엇을 왜 믿는지도 모르고 믿음으로 간다고 주장하며 교만한 자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행함도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는 자신이 범한 허물들을 피를 믿고 회개했으되 늘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그 믿음으로 자신의 죄들을 다 회개하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들을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이 세 가지를 마음을 다해 다 마쳐야만 비로소 영의 거듭남을 얻고 또한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의 길을 걸어 혼의 거룩함에 이른 자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자녀의 약속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색깔의 안경을 골라서 끼고 그 기준으로 본다. 또한 자신과 같은 색을 끼고 있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사람이 중생하지 못하면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없고 그리하여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으므로 누구라도 만일 자신이 골라 낀 안경을 벗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것이니 사람을 사망으로 이끄는 것은 곧 죄다. 그러므로 색안경을 통해 거듭남과 중생 후의 온전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여 각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이되 그 죄가 골라준 안경을 끼는 자는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이 말씀도 사람들이 갖가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중생할 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고 어떤 이는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어떤 이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어떤 이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거나 나타내는 것을 어떤 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을 시인으로 본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충성스런 마음과 확실한 믿음을 보이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니 그런 것들과는 다른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인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입이 큰 사람과 눈이 큰 사람이 동일한 성경을 보니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살면 산다고 되어있었다. 또한 육의 영은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으로 이끌되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감동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 그들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어려움에 처했으니 생명의 영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면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감동을 육신의 영은 예수를 믿으면 병도 낫고 부자가 된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자는 후자의 감동을 버리고 전자를 따랐으나 입 큰 자는 반대로 행했다. 잠시 후 그들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목자를 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아들의 영은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니 마지막에 네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육의 영은 사람을 많이 모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감동을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눈 큰 자는 전자의 감동을 입 큰 자는 후자를 따라갔다. 그들이 이제 개척을 시작하자 진리의 영은 사람과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의롭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려면 너의 가정에서부터 땀을 흘리되 일용할 양식은 아버지께서 합당한 자를 통해 주신다는 감동을 육의 영은 먹고 살아야 하니 후원자와 또한 지금 있는 교회에서 널 따르는 사람들을 알아보라는 감동을 주자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감동을 따랐다. 그들은 또한 부흥을 원했으되 거룩하신 영은 사람의 수가 많아도 그 안에 거룩함이 없으면 아버지께서 거하시지 아니하시니 그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부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 설교 전도하고 각종세미나와 집회에 다니라는 생각을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감동을 따라 세월을 아끼다 어느덧 그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정결한 영은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피난처에서 더욱더 거룩함에 애쓰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헌금이 줄면 어떻게 교회가 유지되느냐며 교인들이 세상에 들어가 각자 맡은 일을 끝까지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감동을 주었다. 그러다 마지막 전쟁 후에 666이 나오자 주의 영은 그것을 받으면 영원한 사망이니 너는 끝까지 복음을 전한 후 목숨 바칠 준비를 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그것을 네 몸에 넣지 않고서야 어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칼 앞에 섰으니 생명의 영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라는 감동을 육의 영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감동을 주었다. 이에 눈이 큰 목자는 평소처럼 보혜사의 감동에 따라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죽었으나 입 큰 목자는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며 끝까지 사망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몇 년을 더 살다 영원히 죽었다.
이처럼 시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니 이 말씀은 양들을 오직 진리로만 이끌다 마지막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택함 받은 교회의 목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또한 3차 세계대전 후에 온 세상이 하나가 되었을 때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이미 정해진 그 세상의 법으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그 법정에 서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시인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인정하시니 십자가의 길 끝에서 산 제사로 영광을 드린 자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러나 대환난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믿음이 아니요 시인이니 누구든지 마지막에 거룩하신 영께서 주시는 그 감동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성령을 훼방한 자는 육이 잠시 동안은 살겠으나 잠시 후엔 영원한 사망에 거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누가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따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아버지께 서원을 갚고 그 생명에 이르며 누가 육의 영이 주는 감동을 따라 사망으로 들어가리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육과 자기의 뜻에 있느냐 아님 영과 아버지의 뜻에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육의 귀를 가진 자는 이미 환난 전부터 자기의 입을 위하여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니 마지막 때에도 원수의 그 말을 듣되 아버지의 영께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라고 외치셔도 그 영혼은 두려움에 오직 그의 육신이 살고자 하여 평소에 듣던 육의 감동에 귀 기울이며 그 말을 따라간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영의 귀를 가지고 있으니 이미 환난 전부터 거룩하신 영의 감동을 듣고 따르다 그 마지막 때에도 역시 생명의 영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생명에 이른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이제는 진리를 따라 거룩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영혼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한 번 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순종할 것이로되 한 번 불순종한 영혼은 끝까지 불순종하리니 비록 자신의 생각을 돌이킴이 죽음보다 더 두렵고 말씀과 생명의 영의 감동에 처음 순종이 어려울지라도 그 한 번의 처음 돌이킴에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초대교회 당시 이방지역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지체들과 이 마지막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책망과 징계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깨닫는 영혼은 환난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왜 책망과 징계를 받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작은 진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주는 크기는 비록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진주는 아무리 높은 사람도 가질 수 없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얻을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이렇게 소중한 진주를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값없이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것을 작은 상자에다 넣고 하얀 종이로 포장했다. 한편 어떤 여자가 자신이 아끼는 바보상자를 가지고 그 남자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바보상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앉아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컸다. 그런데 그 여자도 자신이 아끼는 여자에게 그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택배박스로 포장을 하고 나니 상자가 엄청나게 컸다. 이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각각 작은 선물과 큰 선물을 들고 자기가 아는 여자를 찾아가서 자기가 준비한 상자를 주며 이것은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다. 이에 여자는 남자의 선물은 크기가 작은 것을 보고 실망하며 풀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의 선물이 큰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기대에 부풀어 뜯어보았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모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즐기며 허송세월 했다. 그러나 남자가 준 작은 상자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으니 텔레비전에 빠져 끝까지 뜯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을 풀어보고 그 안의 내용을 보아야 그가 기뻐할 터인데 그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장 작은 박스를 보고는 실망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주장으로 말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듣는 자들도 그 말이 그 말이라며 자신의 믿음을 쌓아 올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판단한다.
게다가 갈급한 마음이 없는 그들은 가장 큰 박스를 보고는 기뻐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많은 돈이 나오며 큰 건물로 들어가기 원한다. 그러므로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는 한 거룩한 공동체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들어와도 상관없다. 오직 사람의 수가 많으면 그저 좋다. 그 물질을 내는 자가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아도 혹은 그것이 어떤 물질이라도 많이 내면 무조건 좋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건물들이 땅속으로 내려가도 또한 눈앞으로 다가온 한민족의 환난에서 큰 도시들의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내려도 상관없다. 오직 무너지게 될 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짓되 이것이 교회요 성전이니 그 일에 복이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생명 없는 곳으로 열심히 이끌고 있다. 전쟁의 전날까지 그럴 것이요 전쟁이 끝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하니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어찌 아버지와 아들께 책망과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훈계를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장에서도 누구나 다 책망과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요 또한 그것을 받았다 하여 다 돌이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생자이며 누가 참 아들인지 즉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와 사랑하시지 아니하시는 자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아비가 두 아들을 데리고 있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오직 일만 열심히 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바깥에 나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밭을 가꾸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일은 열심히 많이 오래하되 늘 아버지가 원치 않는 엉뚱한 일들을 벌였다. 반면 둘째 아이는 늘 아비의 품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거하는 시간이 많기에 자연히 책망을 많이 듣고 훈계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둘째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오직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다. 그리하여 아비의 마음도 늘 둘째에게 있었다. 결국 그 아비는 첫째가 일을 하고 들어오면 그에게 잘했다고 칭찬한 후 그가 일한 만큼에 맞는 상급을 주었다. 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선 꾸지람을 주었다. 그러나 늘 아비의 품에서 아비의 마음을 알고 행한 둘째는 나중에 오직 칭찬과 상급만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가지고 불의와 죄악이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와 자신의 거룩한 품 안에 거하는 영혼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를 통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한 몸 안에 거하는 영혼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도록 늘 책망과 훈계를 주시되 그것은 마음을 찌르는 것이요 채찍질같이 아프다. 하지만 부모에게 매를 맞을 때 잘못했다고 빌며 사랑의 품에 안기는 자식이 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가지고 책망과 훈계를 받은 영혼은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거룩을 이룬 자들이 거룩한 육체를입고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서그리스도와 형제자매로서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동일하게 매를 맞아도 부모를 원망하며 그 품에서 도망가는 자식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거하는 영혼은 책망과 훈계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책망과 훈계가 없으니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자녀 됨의 약속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그가 아무리 크고 많은 일들을 이루었어도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칭찬대신 오히려 책망을 받는다. 거룩을거부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위는 오직 자신의 욕심과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농부가 포도나무장사에게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얻어서 자신의 정원에 심었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깨끗한 물을 주었다. 또한 땀을 흘리며 웃자란 가지를 쳐내고 나쁜 벌레들도 잡아냈다. 그렇게 정성껏 가꾸며 어느덧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그 작던 나무는 이제 깨끗한 포도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었다. 그러므로 그 농부는 포도를 따먹으며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것들을 다 잊었다. 또한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또한 깨끗한 포도를 많이 맺기 원하는 일곱 명의 농부들이 찾아와 어떻게 포도나무를 가꾸는지 그 방법을 배웠다. 한편 그 농부의 옆에 있던 다른 한 농부도 똑같이 작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얻어서 역시 자신의 정원에 심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포도나무가 작은 것을 보고 소홀히 여기며 땀을 흘리거나 정성을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른 농부들의 포도원을 부럽게 바라보기도하며 잠을 자기도 했다. 때로는 포도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손바닥을 비볐다. 그러다 갑자기 땅속에서 매우 큰 포도나무가 올라오더니 종류가 다른 포도를 주렁주렁 맺은 후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 먹으며 또한 그것으로 포도주를 담가 마시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가 심었던 작은 포도나무를 점점 죽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농부를 찾아와 어떻게 땅속에서 포도나무가 올라오는지 그 방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그 두 농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둘째 농부를 보고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축복을 받았다고 했으나 첫째 농부를 향해서는 어리석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농부에게 가서 어떻게 해야 땅속에서 큰 포도나무가 올라오는지 그 방법을 배우려고 했다. 이에 그 두 농부에게 포도나무를 주었던 장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그 사람의 두 눈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장사는 그에게 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눈이 반 정도 감긴 사람은 포도나무장사가 시키는 대로 눈약을 사서 발랐다. 그랬더니 반 정도 감겼던 자신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이때 포도나무장사는 완전히 눈을 뜬 사람에게 포도나무를 가꾼 그 두 농부를 다시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이 각각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결과를 이루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눈이 감겨졌을 때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으나 눈을 뜬 후에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즉 첫 번째 농부는 성실하고 정직한 길을 걸었으나 두 번째 농부는 게으르고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정직한 농부를 따라다니며 자신에게 있는 작은 포도나무 가꾸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눈을 뜬 그 사람도5년 후에는 깨끗한 포도열매들을 풍성히 맺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눈이 반 정도 감겨져 있으며 귀도 반 정도 막혀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의 상태를 보고 듣되 그 상태에까지 이른 과정은 보고 듣지 않고 오직 그 결과만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많은 자들이 자신도 어떻게 하든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십자가로 아버지의 그 뜻을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영혼이 셋째 하늘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기 위하여 평생에 가야 할 길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오직12명을 데리고 목회하셨고 그 중에 한 명은 마지막에 배신했고 나머지는 그저 따라다니는 군중이었다. 그러다 그 길의 끝에서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거룩을 다 이루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과 충성을 다한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입혀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시므로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되 살고자 하는 마음과갈급함이 없는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생명의 길을 보지 못한다. 혹 그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십자가의 길과 진리를 참으로 어리석고 험하게 보이며 들리니 그의 눈과 귀가 반쯤 감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러한 자들이 교회시대에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 그들을 어리석고 잘못된 자들로 여기되 사람의 길과 세상의 길은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된 길로 보이며 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당신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루아침에 성공했도다.” “폭발적인 부흥이로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도다.” “뜨겁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도다.” 많은 목자들이 영혼을 인도하며 혹은 영혼의 목자들을 따라가며 바로 이러한 말을 듣고 싶어하며 또한 보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죄와 세상으로 인하여 눈이 반 정도 감기고 귀가 반 정도 닫힌 자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그 거짓된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옳고 거룩한 길을 따르기 원하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의 끝에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입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어 아버지의 가까이에 앉아 영원히 다스리는 권세가 약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놓은 그 고난과 영광의 길을 보도록 하심이다. 즉 그들이 썩어질 육의 부요와 사망으로 들어가는 세상의 헛된 영광스런 길을 보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길을 보고 따라오라는 의미로서 그들에게 전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을가진 영혼들에게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사 그 거룩한 육체의 영광과 권세를 얻은 그리스도를 보고 듣게 하시되 그 전에 그가 사람의 육을 입고 어떠한 길을 걸어 그곳에 이르렀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광을 원하는 자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세상의 길도 보지 않는다. 오직 주님께서 걸으신 그 길만을 본다. 또한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듣는다. 그러므로 그 옳은 생명의 길을 보고 진리를 들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을 따라나가고 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자기들이 가르치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갈 때마다 그 무엇보다 먼저 돈을 챙겼다. 또한 천국은 힘과 능력으로 못 들어간다고 가르쳤으나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또한 행위나 노력으로도 못 간다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일성수를 잘하고 찬양과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떤 꼬마아이가 그의 말과 행위가 가르침과 다른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돈에 있어요? 또 힘과 능력으로 행위와 노력으로도 가지 못하는데 왜 선생님의 마음은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얻기 원하면서도 주일에는 마음 없이 하나님의 앞에 나와서 찬양과 기도를 하세요? 차라리 교회를 나오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요?” 꼬마의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으니까 돈이나 힘과 능력이나 행위와 노력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으로서 당연히 필요한 것이란다.” 그러나 그 꼬마는 선생님의 마음이 세상에 있음을 알았기에 그것이 거짓말임을 눈치챘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직 주님께 대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전부다 그의 가르침이 좋다며 따랐다. 그러므로 그 교사를 따라간 아이들도 다 그와 같이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 교사가 목자가 되어 어른들의 앞에 서서 옷을 다 벗고 이런 찬양을 인도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한편 성가대도 옷을 다 벗고 일어나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라는 찬양을 했다. 이제 설교시간이 되자 그 목자는 자기처럼 벌거벗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물질이 있어야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세상의 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빠지지 말고 하세요. 물질을 자녀들에게 남겨두지 말고 천국에다 심으세요.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 상급을 받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은 거룩하게 지키고 교회의 모든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세요. 또한 세상에 들어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세요. 그러면 여러분과 자녀들에게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어떤 여자가 그의 가르침들이 찬양과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또한 그 목자와 교인들의 벗은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신랑이 다시 올 때 정결한 신부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세상과 마음 없는 행위에서 돌이켜 두렵고 떨림으로 옷을 빨아야 하지 않나요?” 벌거벗은 그 목자는 여자의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강대상에서 내려와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흰옷을 입고 있으니 이제는 구원받은 증거로서 또한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행위와 열심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물질과 세상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 거룩한 자녀들의 권세를 누리며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벌거벗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여자는 그 목자의 마음이 어두운 세상에 있음을 알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 오직 흰옷을 입고 자기의 신랑을 맞이하고자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이 입은 옷을 열심히 빨았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은 그 목자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따라갔으니 그 목자도 또한 그를 따른 모든 양들도 홀딱 벗고 신랑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자신의 부끄럼을 깨닫고 스스로 뒤로 물러갔으나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상급을 달라며 혼인잔치까지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신랑은 벌거벗은 자들을 그 혼인잔치에서 다 쫓아냈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돈으로도 못 가요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나라 하며 노래를 가르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오직 돈으로만 갈 수 있어요 하나님나라 오직 열심히 하는 자만 갈 수 있어요 하며 가르친다. 그러므로 전통에 묶인 영혼들은 거룩을 포기하고 오직 돈을 내어 놓고 있으며 돈이 없는 자들은 대신 마음 없는 행위와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없는 것은 더러운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곳에는 거하시지 아니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은 것들을 다 버리시고 오직 그 사람의 거룩함을 보시고 거룩한 옷을 입히신다.
그런데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아버지께로 가증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지키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영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는 참으로 흰옷을 아버지께서는 아주 싸게 거룩을 조금 유지한 자들에게도 다 입히시되 거룩을 유지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아주 안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이르는 자들이 적은 것은 마지막 때에는 모든 자들이 세상에 빠져있으니 아버지와 아들께는 마음과 믿음을 조금만 드리는 그것조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나라의 왕이 어떤 보석가게의 주인에게 말하길 금반지를 만들어서 자기에게 바치면 큰 상급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가게의 주인에게는 금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게 앞에다 왕을 위한 질 좋은 금이 필요하다는 알림판을 붙여놓았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가게로 들어와 아주 작은 금을 내밀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작다고 돌려보내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보았다. 그랬더니 여자가 내놓은 금은 크기는 비록 작지만 순금반지 한 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여자를 반갑게 맞이해 자리에 앉히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금을 녹여서 금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반지를 다 만든 후 여자에게 금반지를 건네주며 왕에게 가서 황금빛이 나는 이 금반지를 바치면 왕이 큰 상급을 내릴 거라고 말했다. 이에 작지만 무거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가서 그 순금반지를 바쳤다. 그러므로 왕은 금반지를 받아서 자세히 살펴본 후 여자에게 공주가 입는 옷을 입히고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한 여자가 이번에는 아주 큰 금을 가지고 가게로 자랑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자기의 금을 보여주며 가게주인과 왕이 자신을 매우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은 금이 크다고 좋아하거나 곧바로 금반지를 만들지 않고 그 여자의 금을 저울에 올렸다. 그랬더니 그 금은 크기는 비록 크지만 녹였을 때 실 반지 하나는커녕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가 나왔다. 그러므로 주인은 금반지를 만들려면 금의 크기에 상관없이 무거워야 하는데 당신의 금은 가벼워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며 돌려보냈다. 그러자 여자는 큰 금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주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보석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때마침 그 보석가게의 뒤에 있는 다른 보석가게의 주인이 그 여자가 가진 큰 금을 보더니 자신의 가게로 들어오라며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여자가 들어오자 싱글벙글하며 여자의 금을 저울에 달아보지도 않고 왕은 당신의 금을 참 좋아할 거라며 곧바로 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의 금은 크기만 컸지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으니 실 반지 하나도 만들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거기다 쇠를 녹여서 넣고 노란 물을 부어 금반지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에게 주며 그 앞에 있던 주인과 동일한 말을 했다. 이에 크지만 가벼운 금을 내놓은 여자는 왕에게 나아가 가짜 반지를 바쳤다. 하지만 왕은 반지가 녹슨 것을 보고는 여자를 왕궁에서 쫓아내고 가짜 보석가게의 주인은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충성스런 보석가게의 주인은 왕궁으로 불러서 왕자가 입는 옷을 입혀 공주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속의 내용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눈에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사람들은 네가 크니 내가 크니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재보기도 한다. 그러나 금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금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한다. 금은 크기에는 상관이 없고 그 금의 무게에 값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요 거룩의 믿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목자들은 불로 연단한 금을 보지 못하며 원치도 않는다. 오직 한 영혼 한 영혼을 이용해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원하되 그의 뜻과 계획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그 건물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이 충만한 양들은 원치 아니하고 오직 큰 것만을 원한다. 또한 한 영혼을 바라볼 때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상대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계산하며 오직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또한 그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 지를 유심히 본다. 그러므로 이렇게 육과 세상의 부요를 구하는 목자들과 양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의 그 뜻을이루어가리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일곱 교회의 목자들은 큰 것을 바라거나 혹은 큰 것을 보고 좌우되지 아니한다. 오직 그 사람의 속이 금으로 가득 찬 조그만 것을 얻고자 사모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영혼이 세상의 어떤 재물을 가지고 오건 혹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건 혹은 빈손으로 오건 그의 외모에 치우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할 때는 누구든지 반가이 맞이한다. 공동체가 거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불로 연단한 금처럼 변치 않는 그 마음과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사람이 아주 작고 아름다운 집에 살다 자신의 집을 더 크고 높게 넓히고 싶었다. 그러므로 가게를 열어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가게를 차리려면 천 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었으니 그저 고민만 하고 앉아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제안하길 그 작은 집을 자기에게 맡기면 천 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기뻐하며 하지만 조금 염려하며 자기의 집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고 천 만원을 받아서 작은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 가게가 장사가 잘되어 일 억짜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가게를 팔아서 다른 것들을 다 제하고 빚을 갚으면 오직 자기의 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과 똑같이 작은 집 한 채만이 자기의 것이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에게 말하길 너는 이제 부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일 억짜리 가게를 이루었으니 자기 스스로도 일 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욕심이 더 생겨 더 큰 가게를 열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가게를 맡기고 더 큰 돈을 빌려서 기쁨과 확신을 갖고 더 큰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 가게도 잘되어 십 억짜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큰 가게를 팔고 다른 모든 것들을 다 제하고 빚을 갚으면 여전히 원래 있던 자기의 작은 집만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긴 세월 동안 많은 일들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작은 집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은 그에게 너는 이제 더 큰 부자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큰 가게를 일구어 가지고 있으니 자신은 십 억의 재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도 그는 큰 가게와 십 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는 작은 집에 살 때보다 모든 것이 실제로 더 풍성하고 부유해졌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작은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부유하게 여겼으며 자신은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여유롭게 지내던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 언제까지 주기로 약속했던 돈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계속되다 결국에는 그 큰 가게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한 푼도 남지 않았으되 처음에 자기에게 있었던 그 작은 집만이 똑같이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스스로 부유하게 여기며 또한 자신은 모자란 것이 없다고 여겼던 그의 모든 수고와 애씀은 참으로 헛된 것들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나중에는 원래 있던 그 작고 아름다운 집마저 빼앗길 형편에 처했다.
이와 같이 다른 시대와 달리 마지막 교회시대에는 원수가 믿는 자들의 마음에 이용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니 자신이 조그만 것을 누구에게 맡기고 맡긴 만큼의 지불을 받아 더 큰 것을 벌인다. 그리고 큰 것이 완성되면 그것을 누구에게 맡기고 더 큰 것을 한다. 그러므로 겉의 껍데기가 계속 불어나니 사람의 눈으로는 부유하고 모자랄 것이 없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제일처음 조그만 것과 똑같이 있으니 허무하고 허무하다.
구체적으로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아버지의 뜻에 마음과 믿음을 두고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돈도 많아지고 건물도 아름다워진다. 또한 때로는 사람의 칭찬과 영광도 얻고 자기의 육도 부유해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부유함과 높아짐으로 인하여 마음 없는 그 행위들에서 돌이키지를 못하게 된다.
원수는 이렇게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오로지 겉의 것을 계속 늘려가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의 부요는 늘 늘어나되 그들의 영은 늘 가난함으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육이 불어나는 것을 보며 육적으로 더 신경을 쓰며 좇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라는 말씀을 기억하되 자기의 영이 가난한 것을 보고 나는 복된 사람이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죄 가운데 있는 자가 죄를 애통하거나 이기려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는 나의 친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처음에 거듭난 그대로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헛된 것을 따르며 헛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으니 영을 먹일 수 있는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혼은 부유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요 오히려 늘 배고픔 가운데 있었다. 즉 영혼이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옷을 입지 못하여 늘 벌거벗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오직 거듭남하나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니 의롭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거듭난 후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신을 보아서가 아니요 오직 자기에게 있는 육의 풍성함과 그 동안 자신이 행한 것과 높아진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혼의 배고픔 가운데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부자라고 했으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이 이와 같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사람이 하늘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때에 땅을 갈라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을 단 한 번에 심판하겠노라. 하지만 악한 자는 나의 심판 전에 처처에 전쟁과 재해를 일으켜 자신과 같은 자들을 추수할 것이니라.” 그 사람은 하늘의 말을 듣고 난 후 의로운 자도 불의한 자와 함께 심판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늘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내가 다 구원하겠노라. 그러니 너는 비행기를 만들고 그 안에 먹을 양식과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라. 또한 내가 시키는 대로 만들면 그 비행기는 항상 안전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며 악한 자가 일으키는 환난과 내가 마지막에 내리는 심판을 피할 수 있겠노라.” 그는 하늘이 시키는 대로 비행기를 완성했다. 그리고 큰 건물에서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봉사와 선교를 열심히 행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당신들이 만일 하늘의 뜻을 거역하며 그런 행위들을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곧 전쟁과 재해가 다가올 것이되 이 비행기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늘이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위들을 멈추고 거기서 나와 이 비행기안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가십시오.” 그는 하늘의 말을 전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서 가족들을 이끌고 비행기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반은 건물에서는 그 행위를 계속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자신의 욕심과 돈만을 위해 살며 술과 담배와 음란과 거짓을 행했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그 행위들을 했다. 한편 나머지 반은 건물 안에서 그 행위를 열심히 행하며 세상을 즐기는 그들을 부러워했으나 세상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의 말대로 이곳 저곳에 전쟁과 재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는 하늘을 날며 아무런 피해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다. 또한 사다리를 내려주며 사람들을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이 어려움만 지나면 내가 하던 일들을 다시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그 사다리를 잡지 않았다. 결국 악한 자의 환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늘의 심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며 처음과 동일한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오직 한 명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전과 같았으니 말과 행위도 전과 동일했다. 이제 그가 전할 말을 다 알리자 이번에도 비행기는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므로 하늘의 말대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다리를 붙들지 않았다. 결국 건물 안에서 열심히 행하던 자들은 육신의 죽음 후에 창조자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상급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그들의 마음을 찢고 보니 더러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고 어두운 곳에 가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면 내가 받아주겠노라고 말했다. 한편 건물 안에서는 그 행위를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이방인들과 동일한 삶을 반복한 자들은 심판대에서 나는 믿음이 있으니 좋은 곳에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창조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라며 그들을 쫓아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입에서 토하여 내신다는 심판은 은혜를 받은 후 세상을 사랑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물러간 자들 가운데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지 않는 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즉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 아니요 오직 믿는 자들 가운데서 미지근한 자들이 받을 심판이다. 그러므로 유황불 못의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는 거짓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라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거짓된 양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다 다시 토하여 내침을 받은 이 심판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있었으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그들의 행위로 나오고 말로 나온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그들의 마음이 더러운 것을 보신다. 하지만 그들은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기에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유황불 못으로 보내지 않고 온전케 되는 과정에 들여보내신다. 그러면 거기서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는 자들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은혜시대라 불리는 교회시대에 이러한 자들이 많이 있다.
둘째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마음은 육과 세상에 두고 오직 입술로만 믿는다며 아버지의 앞에 나와 여러 가지 거룩한 말과 행위를 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배를 마친 후 세상에 들어갔을 때는 이방인과 똑같은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 그리하여 그들과 이방인의 차이는 오직 한 가지니 일주일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에 큰 건물로 들어갔다 끝나면 다시 나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움으로 가득한 자들이 단지 주여 주여 불렀다하여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나라에 거하겠는가?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나라에 거하지 못하는 자들을 그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미지근함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토하여 내침을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그들과 한 몸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몸과 통한 몸을 얻어 주님과 영원히 거한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보니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고 기록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의미를 알고자 어떤 목자를 찾아갔다. 이에 그 목자는 이것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며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사막의 한가운데로 군인들이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세워져 있었고 그 그림 뒤로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좁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으나 그 길을 따라 기쁨과 소망과 겸손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좁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낙원과 같이 좋은 곳이 펼쳐져 있었다. 반면 왼쪽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길이라는 푯말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멋진 자동차와 좋은 집과 놀이동산과 나이트클럽과 술집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창녀들이 슬픔과 낙심과 교만과 억압과 두려움을 주는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넓은 문이라는 푯말이 서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살아있을 때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속이고 헐뜯고 싸우고 죽인 자들이 함께 모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여자군인이 자기의 가족들과 함께 사막 길을 걷다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자 모든 푯말을 읽더니 자기의 가족들을 이끌고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 여자와 가족들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다 마지막에는 그 넓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한 다른 여자군인들도 계속해서 왼쪽 길로만 들어섰다. 그러나 어떤 남자군인은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해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남자의 아내는 그 좁은 문 뒤에 있는 낙원같이 좋은 곳에 가고는 싶었으나 다리가 약해서 잘 걷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아내를 부축하고 자녀들을 이끌고 그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와 가족은 그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다 마지막에는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낙원에서 모든 것을 즐기며 안식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군인도 자기의 아내와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푯말을 읽은 후 왼쪽 길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또한 오른쪽 길로 가려다가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 그냥 주저앉았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을 다 죽이기 위해 날카롭고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좁은 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에는 그 악한 자가 가지고 있는 칼보다 더 날카롭고 큰 칼을 가진 사람이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그 좁은 문을 나오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좁은 길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결국 그 악한 자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넓은 문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그 길에 있는 창녀들의 옷을 벗겨 차례차례 칼로 베어 죽이며 갈림길에 앉아있는 그 가족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살륙을 위해 날카롭게 마광된 그 칼을 보고 무서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가려다 멈추고 갈림길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가만히 서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맞아 죽음을 당했다. 이제 영화가 끝난 후 목자를 찾아갔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사막과 갈림길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대머리를 한 남자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길로 가려다 멈추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았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가족도 그곳에 가만히 있다 그 악한 자의 칼에 죽음을 당했다.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는 자들은 자신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가고 싶어도 스스로 멈추었다. 또한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처럼 그의 살과 피를 드리라 하면 죽음이 두려워 그것도 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으로 들어갈 헛된 세상도 좇지 못하며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도 하지 못하여 그저 그 가운데 그대로 주저앉아있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시대가운데 마지막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믿는다고 말하면서 한 발은 그리스도께 두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는 자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첫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즉 주님과 세상에 대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또한 아버지의 그 뜻과 거룩한 육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대해 마음이 뜨거운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 그 좁은 문 앞에서 그들은 이렇게 행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있을 앞날의 일이니 그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십자가 군사들이 그 마지막 영적전쟁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외침이니 그들은 바로 이 말을 하며 피를 흘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그 뜨거운 피가 자기의 말한 것들을 정확히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