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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논평을 논하자면

 

이게 자랑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랑질'을 좀 하자면, 나는 20대 후반 한 운동단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성명서를 쓰는 일을 했다. 물론 그게 내 일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성명서란 어떠한 사건에 대해 단체의 입장을 밝히는 글로 그 단체의 정체성과 정책, 그리고 그 사안에 대한 통찰을 전제로 한다. 물론 그 당시 내가 쓴 성명서들이 그랬다는 건 아니다.^^  

 

30대 초반에는 한 시민단체에서 성명서와 논평 초안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때 나는 거의 실시간으로 연합뉴스 속보를 모니터링하며 우리 단체가 입장을 표해야 할 사안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논평은 성명서를 내야 할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일일이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리기 싫어서 간략하게 코멘트를 하는 수준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민주노총의 논평에 대해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최저임금 하루체험을 하면서 황제식사 운운한 것에 대해 민주노총이 논평을 냈는데 거기에 들어간 '개드립', '오버질' 등등의 용어, 논평의 논조 등에 대해 동아일보는 물론 여러 군데에서 말들이 나온다고 한다.  

 

 

민주노총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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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공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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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드립'이 어때서 - 민주노총 논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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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을 묻는다면, 기회주의자답게(기회주의자는 내 대학 시절 별명같은 거였다--;) 박상훈의 칼럼이나 민주노노총 부대변인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식상하지만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갑는다"고도 하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다. 나는 이 두 속담의 의미를 말이란 상대가 있는, 소통을 전제로 한, 그 이상의, 공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한다. 소통을 하지 않을 바에, 공감이 불가능 상태에서 말이란 술주정같은 자기만족에 그치거나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평이나 성명서의 상대는 누구일까? 일단은 기자와 언론이다. 어떤 단체의 성명서와 논평을 직접 일반인이 접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다보니 기자들 눈높이에서 성명이 써지고 논평이 나온다. 그런데 기자들이 대부분 먹물이다보니 노동단체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먹물의 언어를 빌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시도는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성명과 논평은 언론을 매개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그런 점에서 비평가를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그렇듯 기자만을 생각하고 쓰는 성명과 논평은 지적 유희가 되기 십상이다. 가서 꽂혀야 하는 것은 대중이기에 성명과 논평도 기자(비평가)를 고려하되 끊임없이 대중(독자)에 대한 말걸기가 되어야 하고 그들의 가슴에 닿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민주노총의 논평은 과연 노동자의 말투로 쓰여진 노동자의 목소리일까? 물론 노동자는 무식하고 단순하다는 편견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개드립'이니 '오버질'이니 하는 용어를 쓰는 노동자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럼 이번 논평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을 수 있을까? 네티즌들은 열광을 한다지만 이런 비아냥이라면 굳이 민주노총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에 무수한 글을 찾을 수 있다. '아,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이렇게 보는구나'라는 지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린 이렇게 발랄하기도 하다는 이벤트로 비춰지지나 않을까?

 

어쩌면 개드림, 오버질 같은 이런 용어 또한 21세기 먹물들의 신조어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말의 민주화, 글의 민주화는 대단히 중요한 숙제이지만 그게 단순히 대중이 많이, 자주 쓰는 용어를 쓴다고,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말투를 따라 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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