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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도착하자

요즘 노래를 만들기 밖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이제 Bob Marley의 라는 옛날 노래의 cover song을 만들고 있고 내 친구 다미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한국 인디미디어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젠더와 성별 이원론을 비판하는 노래도 만든다.

같이 만들래? 노래를 불러서 내가 녹음해도 돼? Keyboard이나 악기 synthesizer 있나?

학교 가기 싫어! 또 오늘 새로운 알바를 시작하기로 해서 죽겠는데 종이 필요하잖아.

요즘 담배들을 진짜 많이 피워서 모든 마약 섞어있는 걸어가는 담배와 같이 되었다. 여기는 오백원입니다. 내 상상력을 충전해주십시오.

왜 고샘도위가 없냐?

폴리아모리(polyamory)에 대한 인터뷰를 해줄래? 폴리아모리적인 관계는 가부장제적인 사회구조가 기우는 문화로부터 탈주해갈 수 있을까? 그럼 왜?    

시간은 돈이나 화폐처럼 잘 열심히 계산해 있다. 아주 큰 눈...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대한 눈...감시로 니 생각을 재배열해가는 거다란 눈...누가 어디로 가기 원하는지 위대한 눈...이런 것 저런 것도 해야 된다는 막대한 눈...니 생활의 모든 순단을 못보지 않은 아주 큰 눈이다.

니 자치권, 자결권을 미워해서 억압하는 순환하는 시간의 배열구조를 파괴해 탈주하자.

늦게 도착하자.

이따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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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흠....

진보넷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며 불로그들을 살펴보기 시작해서 진보라는 말이 무엇, 어떤 듯이냐고 궁금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정치적 혹은 사회적 운동의 한 종류를 대표하는 말으로 여겨진가 봐서 역시 언어에 관한 신경을 좀 쓴다.

미국이나 다른 영어 나라에서도 (진보)과 (진보파)라는 단어도 인기가 많아졌다. 호주, 미국, 카나다, 등에서 진보파들에 따르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우익과 좌익의 이원을 넘어서는 운동이다. 진보의 의미가 역시 아주 넓기 때문에 구체적인 목적을 가리키지 않는다. 실은 정치세계에서 차이점이나 갈등이 심한 사이라도 많은 정파들이 자신의 모호한 아젠다들을 가리키기 위해서 진보라는 단어를 자주 이용한다.

조지 부시도 명박도 아마 히트러나 무소리니도 진보라는 말을 써봤다. 급진적 좌파들도 진보라는 말을 쓴다. 그러지만 진보정치는 기존의 사회체제 혹은 정치체제 안에서 진보라는 것을 합법적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개량운동이다.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기존의 억압적 사회구조의 내부에서 이 사회구조를 고치려는 운동이다. 다 같이 기꺼이 투표하며 정치적 지도자를 당선시켜서 기다린다. 진보정치는 정당의 정치다. 예를 들어 진보신당. 이 정당에 대해 아직 충분히 알고 있지 않지만 누가 당선되어서 기존의 자본경제와 권위주의의 억압체제를 정복할 것은 가능할까? 기존의 정치체계에 열심히 참여하자는 정당의 정치에 대해 내가 부정하다. 사실 무시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봐라. 내 생각에는 한 수단, 한 도구, 한 길, 한 방법을 열심히 써봤자 아무것도 접할 수 없었으면 그 것을 바로 내던져서 다른 방법을 찾아쓰자. 니가 투표해서 지도자들에게 기대하자구? 집회나 시위에 가며 열심히 행진해서 외치는 소리를 정치가, 지배층이 듣는 것을 기대하자구? 경찰들에게 민중을 보호하는 것을 기대하자구? 기존의 사회체계에게 폭력과 억압의 정반대를 기대하자구?

진보라는 말의 함의는 인간사회의 역사는 진보를 점점 접근해가는 단계들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진보파들은 이 직선적(linear) 역사 틀을 따라가는 정파이다. 새로울수록 질적으로 높다는 개념은 현대 자본경제가 기우는 소비의 이데올로기와 비슷하지. 인간사회라는 상품의 품질이 좋게 하려는 진보주의의 개념, 활동, 방법 다 살펴보고 비판적으로 제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진보넷아! 진보넷을 이용하는 아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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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edia 상영회 이번주말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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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Korea IMC already dead?!

I'm worried about the survival of Korea Indymedia.

At our first general meeting, about 20 or 30 people came. Since that time, we've had about 5 general meetings and each time it happens, there are less people than the time before. It seems like the project is dieing one step at a time and that fact is breaking my heart...that fact is a rusty nail slowly driving itself deeper into my heart, one twist at a time.

There were only 5 of us at the last meeting. Because of the major absence of attendees, we were all hesitant to proceed with the meeting and the discussions. Everyone seemed drained of energy, including myself.

We are almost ready to apply to the global network! How can this happen?

It's a rainy day. Time to drink, moan, weep and dream about a lively, active Korea IMC as i feel the rusty nail of heartbreak drive itself deeper into my heart, one rushing thrust at a time.

I'm worried about the survival of Korea Indy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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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생활의 첫날

어젯밤부터 생식을 상식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냐하면 내가 고기와 요리한 음식물을 먹지 않아서 생야채, 생과일, 생땅콩, 생꽃, 생이것, 생저것, 생생생생생.....생식만 먹는다.

또한 담배 피우기를 완전 끊고 술과 커피 마시기를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당뇨병을 회복 정도 하려고 한다. 당뇨병을 회복할 수 없다고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주사맞기, 당뇨수치를 확인하기 및 끊음없는 걱정하기를 내던져 살아갈 수 있으면 당뇨병으로부터의 회복은 얼마나 다르지 않을까?

또 에너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내가 아침이나 낮에 에너지가 없다가 밤에만 에너지를 생겨서 밤새는 습관이 심하다. 이 짜증남 때문에 내가 내 몸과 마음과 심리를 잘 챙겨야지.

또한 야채나 과일을 요리하면 대부분의 영양이 없어지는 것이다. 요리하기는 음식의 영양을 없애는 역할을 취하면서 맛있게 하는가? 아닌가?

또한 요리한 후에만 먹는 한 정상화된 관습(습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주 힘들고 자신의 투쟁이다. 내가 자기자신을 도전한다. 정상화된 무엇에 빠져있기를 도전한다. 본래부터 정상은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가를 제기할래.

그래서 새로운 실험, 새로운 탐험의 출발이다. 같이 식사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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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러브인아시아? 쓰레기 더미에 버리자!

소비주의와 편집자의 특권


최근 23일에 KBS <러브 아시아> 프로그램구경거리로 우리는, 아니, 우리에 대한 심상(이미지) 만들어졌다. 보통 프로그램은 아시아 나라에서 한국으로 이민한 외국인이 한국 사람과 함께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에 대한 초상은 쓰레기 더미 중에 쓸모 있는 것들을 뒤져 찾고 무료로 재분배하는 유별나는 활동을 하는 서양 외국이라고 했다. 이것은 프로그램과 어떻게 관계하는가? 프로그램은 무엇을 제시하고 무엇을 제시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프로그램은 민족 국가의 문화와 생활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같다. 그럼으로 <민족 국가그의 문화> <개인 그들의 선택> 같은 개념을 정형화시키고 주장한다. 방송 외국인이라면 아무도 자기의 얼굴에 국기를 붙이지 않는 상태로 나타날 없다. 자신 스스로가 국가를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분류화되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agEFKJQP9pU).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항상 분명히 제시되지 않아도 - 아마도 때문에 더욱 편재하는 - 대한민국이다. <우리 나라는 어떠냐? 어떻게 되면 좋을까? > <러브 인 아시아> 주요 점일 같다.


우리의 활동에 대해 <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서 하는 행위를 보라. 한국 사람들이 쓸모 있는 물건을 너무 쉽게 버리지 않을까>라고 요약했다.




질문이 숨기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촬영 중 면담을 했을 정말로 여러 시간 동안 되풀이해서 말한 ) 낭비의 구조적인 원인이다. 구조적인 원인을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 단어 자체는 촬영 중에 의도적으로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인데 <편집>이란 것을 당해 버렸지). 한국적인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집행한 것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면, 낭비의 구조적인 원인은 본질적으로나 문화적인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의 예시를 가지 보자. 특히 주식회사는 그러나 소기업조차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가능할수록 이윤을 많이 남기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상품이 차지하는 공간을 많은 이윤을 남길 상품을 위해 쓸 있으면 전자의 상품의 유용성에 상관 없이 바로 버려야 된다. 그러하듯이 경제적인 행위자(기업이나 상인) 소비자들이 자기의 상품을 사게 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광고하기에 구조적으로 격려된다. 누구는 <개인적인 소비 선택>이란 것을 때도 아직 쓸모 있는 물건 을 버리는 아주 이성적인 이유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필요한 부품을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전체를 사는 것이 자주 싸다. 유행에 대해서도 성공하고 정통한 모습을 보이려고 비싸고 새롭고 유행하는 물건을 사는 것은 그리 무리한 전략이 아니고 멸시 될 일도 아니다. 반면에 우리는 모습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는 것 뿐일 것이다. 수동적-방관주의적인 상징적소비에 대한 만족이라는 망상에 대해 비판 할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에 <개인적인 선택>을 구조적 맥락으로부터 무턱대고 분리 시키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도덕적인 의미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초상화되는 것이 싫다. 이것을 도우면 우리는 소비 대신에 도둑질도 한다고 말하고자. 우리는 타인이나 이상을 위해서 우리 자신이나 삶을 희생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거든. 어떤 체계에 동참 안하고 지원하지 않도록 소비를 거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능력 개발과 창조성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와 다른 방식을향한다. 무조건적으로 직접으로 사냥꾼처럼 물건을 찾고 재사용을 창안하기에 만족을 느낀다. 이 모두를 모두와 함께 기꺼이 거리낌없이 아낌없이 공유한다. 유일한 진도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체계에 대한 이론적인 도구와 또다른 길을 보여서 새로운 공간을 열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직접행동을 고무하려고 한다.<러브 인 아시아>를 통해서 받은 인상인가?


우리가 러브인아시아의 촬영을 당하는 중에 촬영자들과 작가의 욕구를 계속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투쟁이였다. 전쟁과 같이 느낀 정도였다. 촬영자들과 작가가 우리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미지를 상품화에 맞추는 것이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떡국을 먹는 장면이 방송에서 나왔지만 우리가 원래 계획하지 않은 것이였다. 촬영자들과 작가가 이 장면에 대해 도모하고 떡국을 요리해주며 우리가 먹어서 그들이 촬영했다. 이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촬영자들이 밖에 먹으러 가자고 요구했다. 우리 집안이 촬영상의 아름다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소비가능 혹은 상품화가능은 이미 상품화나 소비화된 미모기준에 맞추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지래브(기린)가 뒤져다니는 것을 촬영하면서 촬영자들이 괜찮게 보인다는 쓰레기 더미에만 뒤지면 된다고 요구했고 기린이 더러운 더미에 뒤지면서 촬영자들이 잔소리했다. 촬영자들과 작가가 상품화될 수 없는 이미지에 부딪쳤을 때마다 잔소리하거나 이리저리로 가라고, 이리저리 하라고 요구했다. 우리의 이미지가 상품화되도록 작가와 촬영자들이 우리의 이미지를 열심히 인위적으로 조작했다. 텔레비전의 안전한 이미지는 상품화가능에 의존할까? 러브인아시아에서의 우리의 경험이 독립매체 혹은 대안매체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강화하는 뿐이다.

 



바보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실화에 근거된 프로그램(리얼리티 쇼)이라도 대본에 강제된다. 목표적인 시청자 시장이 있고 이를 위해 소비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된다. 우리가 KBS가 정한 대본을 연기하지 않으려니까 얼마나 싸워야 되었는지를 한 번 보시면 좋겠다 (우리는 이 것을 촬영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특권이 편집자에 있어서 우리는 다들 편집자가 되자! 매체가 되자!

Http://indymedia.cast.or.kr


지래프(기린)와 쓰레기 더미를 뒤져 찾는 동지들이 올림

giraffe@riseup.net

 

 

(영어, english version below)

 

Consumerism and the Power of the Editor


On February 3rd, we appeared, or rather an image of us was manufactured, to make content for a show on KBS called Love in Asia. This show usually focuses on family values within the context of married couples in Korea within which one of the partners is an immigrant from a neighboring Asian country. Yet, our portrait was that of Western foreigners doing the particular activity of finding useful stuff within garbage and redistributing it for free. What did our activities have to do with this show? What did the show say and not say? We have something to say about it.


 



It seems that this show is about national culture and lifestyle differences. In doing so, it gives importance and frames concepts like "nation states" (and “their” culture) and "individuals" (and “their” choices). It is impossible for foreigners to appear on this show without a state flag attached to his/her face, even when one does not recognize that state as his/hers (we have tried not to be categorized in certain ways and have failed). (Please see http://www.youtube.com/watch?v=AyyC2CR66iY). Moreover, the main character of the show, not always clearly mentioned yet therefore maybe even more omnipresent, is Korea. "How is Korea and how should it be?" seems the main question of the show.




About our action, what was said is: “Look at these foreigners and what they do in Korea. Are Koreans discarding too much useful stuff?”

 




What this question hides, and what we wanted to highlight (repeating it literally for hours during shooting interviews for the show), is the structural cause of this waste. We name it capitalism(perhaps the most significantly repeated word during the shooting, and it was "edited out"!). It is not about something "Korean" (at least not in the essential and cultural sense), unless you mean by "Korean" merely the policies enforced by the state called Korea.




Let us look at examples of structural causes of waste: to survive competition, that is to make as much profit as possible, corporations, especially, but even family businesses too, have to get rid of merchandise as soon as the space they occupy can be used by another product that will produce more profit, however useful is the discarded stuff. Furthermore, these economic agents are structurally incited to say whatever is necessary in advertisements to make people buy their products. Even when people make their "personal consumption choice", there might be very rational reasons to throw away still useful stuff: its often cheaper to buy a whole new set than just changing the needed part. Even about fashion, striving to look successful and well informed by buying expensive, new and fashionable stuff is not that an irrational strategy and certainly not something to despise. We might just be more privileged in terms of not having to care about our appearance. That is not to say there is nothing to denounce about the delusive claim to satisfaction of symbolic consumption, about passive spectator-ship, but here we don't want to simply separate "individual choice" from structural context.

 





More than anything, we hate to be seen and portrayed as good doers (in any moral sense). If that helps, let us say that we also steal stuff instead of consuming. We are not ascetics who sacrifice ourselves and our life for some ideal or something else. We are not only refusing to co-operate to a system by not consuming, we are choosing a way different than consumption for the sheer joy of empowerment and creativity: experiencing directly and unconditionally satisfaction in obtaining and creatively re-using stuff, developing skills and sharing all of it freely, carelessly. We do not want to show "the way." We just want to open a new space by showing a different way and providing analytical tools about this system and, more than anything, inspiring creative direct action. Was it what you obtained through "Love in Asia"?



In the middle of being filmed by “Love in Asia” camera operators, our continuous rejection to the demands of the camera operators and the director was our struggle. It almost felt like warfare. In order to make our image consumable, the director and camera operators needed to fit our image into the realms of commodification. For example, a scene of us eating rice-cake soup was broadcast, but this wasn’t something that we would have originally been eating or doing. The director and camera operators planned the scene, cooked the rice cake soup and when we ate it, they filmed it. Before they started filming, they asked us to go outside to eat because the inside of our house couldn’t be considered “beautiful” from the viewpoint of their camera lens. The consumability or commodifiability of an image might be dependent on fitting that image into a preconsumed or precommodified standard of beauty. When the camera operators were filming giraffe’s dumpster diving adventures, the camera operators demanded that giraffe only search through trash with “acceptable” appearances and they complained when giraffe dug through piles of dirty trash. Whenever the director and camera operators ran into an unconsumable image, they either complained or demanded to do this or that or go here or there. Until our image was commodified, the director and camera operators spent a lot of energy artificially producing our image. Should television-safe images be dependent on their capability of becoming commodified? Our experiences with “Love in Asia” only strengthens our desire for independent and alternative media.

 



Let us be no fools: this reality show is script-driven. They have a target "market" audience and a consumable product to manufacture for them. You should see (we have images) how much we have fought to not have to act up their script. However, in the end, the power is to the editors, so let’s become the editors! Let’s become the media! http://indymedia.cast.or.kr


Giraffe and dumpster-diving friends

giraffe@riseu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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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시장에 대한 성찰

지난 토요일 1월 23일에 서울역에서 무료시장을 개최하다가 물건들이 잘 나가지 않아서 명동으로 옮겼다가 다 나갔다. 서울역에서 KBS 촬영을 당했다. 서울역 관리자들이 우리의 무료시장은 불법이라고 다른 곳에서 개최하라고 말했지만 우리가 그 강요를 역시 무시했다가 몇시간 동안 누구도 무전소비에 관심이 없고 유용한 물건들을 받고 싶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옮겼다.

내가 무료시장을 개최할 때마다 무료시장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고 꿈을 꾼다. 쓰레기더미 중에서 보물들을 찾아뒤지거나 버릴 물건이 있다면 무료시장을 같이 개최하자는 말이다. 어디서 할까, 언제 할까, 등등을 같이 도모하자.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할수록 자본경제에 의존하는 것을 줄게 하고 자본경제, 즉, 경제적인 억압적인 권력구조에 의심을 강화하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구현할 수 있겠다. 그러다면 좋겠을 텐데. 환상인가? 나는 어리석은 젊은이인가? 우리 생활이자 우리 일상혁명이다. 인간의 탈상품화를 실현하자. 너의 꿈 속에의 거대한 혁명 apocalypse를 기다리지 말고 가존의 사회체제에 의한 사고방식에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단순한 일상영역에서 혁명을 만들자. 우리 생활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거야?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압박하고 논리우월주의를 기계처럼 실천해볼래? 지배질서에 의한 논리이자 기존의 법칙과 윤리질서에 따른 맹종이다.
급진적인 herd instinct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 속에서 거주하는 경찰들을 내던져버리자. 이를 하기 전에 걸거리에서 거주하는 경찰들을 절대 물러날 수 없겠다. 너가 이는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혁명을 보고 싶은 동지들아. 잘 연락하자.

혁명은 창조적인 파괴 뿐만 아니라 본래부터 육성적으로 배려하는 것이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많은 보물들을 찾아뒤져 무료로 재분배하자.



서울역 일월 이십삼일



명동 일월 이십삼일



You want a snowboard? 스노보드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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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6시에 무료시장

그리고 모든 사람을 대환영!

여러 가지 옷들이 많고
가방들이 있고
스피커도 가져갈 것이다.

토요일 23일 6시에 서울역으로 와서 설날 선물들을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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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을 스스로 어떻게 할까?

저번 DIY문신에 대한 영상은 영어로 나와서 번역하고 한국어 배경음악도 제작해서 다시 올린다.

돈이 조금 밖에 없이 문신하기 위한 준비물건, 어떻게 하는지, 하고 나서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영상이다. 기억나야 될 것은 내가 프로페셔날이지 않기 때문에 문신능력이 너와 똑같고 프로페셔날이 전달하는 정보만 믿을 수 있으면 이 영상이 전달하는 문신하기에 대한 길잡이를 믿지 말라. 문신을 해보면 제발 깨끗히 하라. 손을 잘 씻고 문신의 대상영역을 잘 씻고 깨끗한 필요한 물건을 쓰면 된다. 이 영상은 내 이야기이다.

질문이 있다면 이메일을 하면 된다.

http://kr.youtube.com/watch?v=cQqhF0GvZ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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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근아니지: 언어적 제국주의와 소수화

내가 제국에 있었을 때 <언어적 제국주의> 혹은 언어의 영역에서 불평등적 권력관계가 우거지는지 알고 있었지만 한국으로 왔을 때까지 잘 못느꼈다. 제국의 공교육 체제가 외국어에 대한 교육을 조금밖에 제공하지 않은 것을 느끼고 한국어를 공부하기를 시작했을 때도 한국어에 대한 교육의 완전한 없음을 많이 느끼고 신경을 썼다. 그러지만 <언어적 제국주의>라는 것을 당하는 나라, 제국어(제국의 언어)의 피해국(被害國)에서 살지 않아서 제국에서 내국적인 언어의 독점과 원주민의 언어들에 대한 회복투쟁만 느꼈다.


내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직후에 연습을 많이 하려고 했다. 한국어능력이 완전히 없었어도 하려고 했다. 친구의 이름들을 한글으로 쓰는 것인 놀이를 통해 한글을 배우고 나서 독학하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배웠다. 한국어를 배우거나 잘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취미나 놀이로 접근했다. 당연히 즐거웠다. 내가 자신의 저질적인 능력에 대한 상관이 없고 <그냥 잘 못하면 잘 못함을 기꺼이 할 거야>라고 생했다. 지금도 같은 접근성을 취해가고 있다.


알다시피 이런 사고방식은 제국어를 잘 할 수 있고 제국어의 피해자의 투쟁을 무시할 수 있음에 의한 특권의 성과이다. 제가 한국 사람들이 제국어를 억지로 배워야 되며 제국어를 잘 할 필요성을 느껴서 심각한 과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제국어를 배우기를 취미나 놀이로 접근할 수가 없지 않지만 관헌의 탄압에 따른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오늘 밥과 김치를 먹고 벽에 처다보고 언어적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질 들뢰즈와 휘릭스 기타리의 <천개 고원>에서 제시된 다수적 언어의 소수화를 기억나서 이 책을 역시 돌아보게 되었다.


들뢰즈와 기타리에 따르면 다수적 언어와 소수적 언어는 언어의 2가지가 아니라 똑같은 한 언어의 2가지 접근성이나 처우양식이다. 다수는 언어의 균질화, 표준화, 침체된 불변화를 촉진하며 언어적 기존의 기준에 따라 유지하려는 처우양식이다. 소수는 언어의 끊음 없는 변형, 변화, 불령(不逞), 창의나 창조, 혼합, 등의 처우양식인 과정이다. 2가지 처우양식이 문법, 발음, 등의 언어적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불러도 다수와 소수는 양적인 현상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다수와 소수는 무엇이 존재하는 형태를 지적하지도 않는다. 소수와 다수는 과정이다. 또한 이 2가지는 상이하지만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조하는 것이다. 크기가 없으면 작기도 없겠지. 두거움이 없었으면 차가움도 없겠지. 짠 맛이 없었면 매운 맛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딴 맛이 생존했으면 그러겠지ㅋㅋ.


다수적 언어의 소수화는 사투리나 소수자의 언어가 아니다. 어떤 영토에서 사투리의 문법, 발음, 등이 정상화된 <표준어>라고 평가할 수 있거든. 다시 말하듯이 양적인 것이나 권력을 계산하는 식으로 알 수 없다. 언어의 소수화는 정상화된 표준으로부터 끊음 없이 변화되어가는 것이다. 어떤 기존의 언어적 형태를 모방하는 식으로 소수화되지 못한다. 소수적 수던, 기계, 속성들을 혼합해 이용하는 것이다. 다수적 언어가 언어의 소수화되어가는 과정으로부터 불변의 소리, 발음, 문법, 구조, 표현, 말을 뽑는 식으로 작동한다. 소수화는 언어를 끊음 없는 변화과정에 두어서 작동한다.


사람들이 들뢰즈와 기타리의 이론들을 자신에 맞은 식으로 재해석하며 변형시켜서 들뢰즈와 기티리의 이론들의 소수화가 되는가? 무아하하!


제국이라면 제국어가 언어의 소수화되어가는 식으로는 구성된다. 제국이 아니라도 어떤 표준어가 언어의 소수화되어가는 과정으로부터 언어적 속성을 뽑으며 불변의 침체형태에 두어서 구성되며 표준어가 존재한다고 고려할 수 있겠다. 소수화는 자결, 자치, 자율이라고 볼 수 있다. 잉그리시(englishi)라는 컹그리시는 한국이나 한국의 내국적 어디에 맞은 제국어의 한 가지이다. 컹그리시에 독특한 발음, 문법, 소리, 표현, 등들은 컹그리시의 표준어라고 볼 수 있다. Fry은 후라이라고, english은 잉그리시라고, cheese은 치즈라고 부르는 등의 불변의 발음을 뽑아 다수적 언어가 되었다. 언어 제국주의를 저해서 어른 봉숭이, 검은 물 혹은 검은 콩차, 등등을 대안적으로 말하는 것을 원래 좋아했다.


제국어가 한국어를 더럽히고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공교육 체제가 제국어를 다수적 언어로 가르치려면 한국에 독특한 맞춘 컹그리시의 진정한 표준어를 어쩔 수 없이 가르쳐간다. 관헌의 탄압으로 가르쳐간다. 제국어에 대한 불매운동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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