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원전은 불가피하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녹색당을 선택했다. 생활 방식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달라진다. 온 산과 들판이 붉게 물들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쉽게 붉게 물들지 않는 것 같다. 녹색은 생명이다. 그러나 생명의 피는 붉다.

 

[목수정의 파리통신]에바 졸리, 원전 감축의 ‘녹색요정’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의존국 프랑스가 비로소 탈핵으로 가는 첫 궤도에 들어서게 됐다. 지난 주, 프랑스 사회당과 녹색당이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공조에 합의한 것이다. 이들은 2025년까지 원자로 24기를 폐쇄해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를 현재의 75% 수준에서 50%까지 낮추기로 했다. 비록 원전의 전면 폐쇄를 주장해 온 녹색당의 기존 입장에서는 크게 후퇴한 것이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기존의 원자력 에너지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천명해 온 프랑스가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의미심장한 합의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이들의 합의가 발효되려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의 62%가 원자력 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원하며, 원전정책 불변을 외치는 사르코지보다 사회당 대선후보 올랑드의 지지도가 앞서는 상황에서, 이는 실천 의지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원전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 자체가 터부시돼오던 상황에서, 이를 대선의 핵심 이슈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프랑스 녹색당의 대선 후보 에바 졸리다. 그녀는 11월19일까지 프랑스 내 원자력 발전소 폐쇄에 사회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대선을 위한 그 어떤 정책연대도 없을 것이라며 강력하게 사회당을 압박했다.

에바 졸리. 노르웨이 출신인 그녀는 프랑스 정가에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말, 프랑스 거대 석유회사 엘프사의 뇌물사건을 포함한 잇따른 대형 사건들에서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해 부패척결에 앞장선 청렴 판사로 이름을 날린 바 있으나, 사건 해결 직후인 2002년 법복을 벗고 프랑스를 떠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건 지난 해. 1년 만에 녹색당 내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로 당선된다.

후보가 되자마자 그녀는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군대의 행진을 걷어치우고 대신 혁명의 주체인 시민들이 행진을 하도록 하자”는 발언을 던져,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그녀의 발언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를 지적하는 소년의 목소리처럼 너무도 정확하게 프랑스의 기만을 조준했다.

민주사회의 첫 씨앗을 뿌린 1789혁명의 주체는 농민과 노동자, 수공업자 등 소시민들이었다. 군인들은 그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로 지배권력의 충복으로, 반란세력이었을 혁명세력들을 탄압했던 집단이 아니던가. 모두가 아는 이 명백한 기만을 건드린 그녀. 피용 총리는 그녀가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발끈했고, 은근히 그녀가 노르웨이 출신임을 공격했다. 하지만 헝가리 출신의 대통령을 모시는 총리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 맹랑한 여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삯바느질, 세탁소, 빵집, 조선소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학교를 다녔고, 18세에 미스 노르웨이로 선발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뒤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에서도 베이비시터, 옷수선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며 법학을 공부하다가 38세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된다.

에바 졸리의 인생은 매순간 믿을 수 없는 동화적 장면으로 가득하다. 유럽 최고, 최후의 원전국가 프랑스가 그 어리석은 국운의 향방을 돌리게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해놓고, 잠시 공식석상에서 사라져 있는 에바 졸리. 바로 옆집에서 일어난 참상을 적나라하게 지켜보면서도 대표 수출산업으로 원전을 육성하겠다고, 당당히 발표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인류애적 충고를 한마디 날려주시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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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3 13:54 2011/11/2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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