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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을 들으며

  • 등록일
    2005/01/02 00:57
  • 수정일
    2005/01/02 00:57

집회 장소에서 민중가수들의 씨디를 사는 것 외에 레코드점에서 씨디를 사 본 건 정말 몇 년 만인지도 모른다. 옛날에 락 음악이니 뭐니 찾아서 듣던 추억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눈에 띄어 구입한 음반.

 

박노해, 노동의새벽 20주년 기념 음반.

만 원이 넘는 가격에 조금 망설이다가 뒷면에 "이 음반의 모든 수익금은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쓰여집니다."라는 문구에 '아주 나쁜 건 아니잖아?'하는 생각으로 결국. 샀다.

 

음악적으로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괜찮다.

다만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문득, 박노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다.

또, 마침 자주 들르는 홈페이지 옛날 글들을 뒤적이다가 읽은 글이 있어서다.

 

대학 새내기 시절, 학교 앞 장백 서점에서 처음 내 돈 주고 샀던 책이 바로,

박노해 시집인 "노동의 새벽"이었다.

물론 간간이 술자리에서 선배들로부터 "박노해는 배신자"라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어쨌든 그 시집은 나한테 정말로 소중했다.

혹여 부모님에게 들킬까 책장 깊숙이 깊숙이 넣어 두었지만,

한밤중에 꺼내 읽던 그 시들은 정말 나의 가슴을 울리곤 했다.

손 무덤..

가리봉 시장..

노동의 새벽..

이불을 꿰매면서..

 

학교 생활도서관에서는 아무도 읽지 않는 것 같은

노동해방문학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열정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운동을 제대로 접하고 하게 되면서

그런 것들은 다소간 씁쓸함으로 전환되어 갔다.

박노해는 뭘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가끔 한겨레에 외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백태웅(이정로)의 매끈한 칼럼(?)이 실리곤 했다.

 

그리고 한 2년 전인가?

나는 박노해에 대해서 다시 듣게 되었다.

새내기로 들어온 후배 한 명과 무던히도 친해보려고 애썼는데,

그 녀석이 박노해가 조직한 무슨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눔문화 어쩌고던가.

사실 그 후배를 통해 전해들은 박노해의 모습은, 정말 영 아니었다.

언젠가 그 후배 역시 진지하게 나한테 물어온 적이 있다.

자신이 그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러한 모습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

그리고 이제 2005년이 되었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다.

투쟁의 기억들은 너무나 오래 된 것처럼 느껴질 지 모른다.

하지만, 투쟁은 '기념' 속에 가두어질 그런 것이 아니고

무언가 '옛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분명히 다르니까.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시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차라리.

 

마지막으로 뒤적이던 옛날 글에서 덧붙인다.

 



김규항, , 야간비행, 2001 중

- 달콤 쌉쌀한 초콜릿

["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기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홉', '어떤 집요한 욕망' 을 느낍니다.(.....)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출소 이후의 박노해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져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엣 동료들
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나는 이제 (이미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젼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휴대전화를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풍' 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출소 직후 하루 다섯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 (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호홉'
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는
그 '집요한 욕망' 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게 한다.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 '오늘은 다르게' 광고엔 유흥준을 비롯한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 (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초콜릿을 씹음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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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원 벌금형

  • 등록일
    2004/12/30 16:13
  • 수정일
    2004/12/30 16:13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 번 째 새마을 여승무원 정규직 고용 쟁취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어김없이 오전 10시 반이었다. 다른 날은 한산했는데 내일 모레가 새해고 연휴라 그런지 서울역은 많이 붐볐다. 88명의 철도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대합실 내 농성도 진행되고 있어서 집회에는 굉장히 많은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진행했다. 잘 되야 할텐데. 여승무원들은 일단 해고를 막아내고 재계약을 한 상태지만 이제 겨우 한 숨 돌렸을 뿐이다. 원래의 약속대로, 그리고 원래의 바램대로 정규직 쟁취를 위해 투쟁해 나가야 한다.

 

집회 도중에 휴대폰으로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같은 시각에 남부지방법원에선 비정규 법개악 분쇄와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다가 구속된 두 동지의 재판이 있었다.

 

타워크레인 노조 이수종 위원장 동지에게는 집행유예 2년.

현중하청노조 김주익 동지에게는 벌금 700만원.

 

문자를 딱 받자마자 들었던 생각

"후원주점을 하게 되겠군..."

 

김주익 동지는 지난 박일수 열사 투쟁 때의 크레인 점거 등으로 인해 이미 집행유예 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어 걱정되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놈의 700만원 때문에 분통이 터진다. 700만원이 어디 작은 돈인가. 특히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에서 오락가락하는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년을 꼬박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700만원은 못 받는다. 자본가들의 법제도가 곤봉과 방패로, 수갑으로 때려 잡고, 사상과 언론으로 때려잡더니, 이제는 돈으로 때려잡는다. 몹쓸 것들.

 

하루만 더 지나면 새로운 2005년. 그래도 우리에겐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다. 수줍게 앞에 나와서 발언하는 새마을 여승무원 동지들을 보았을 때, 희망은 분명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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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특별법에 관한 나의 생각.

  • 등록일
    2004/12/10 21:46
  • 수정일
    2004/12/10 21:46

학교 과제물로 제출하기 위한 1쪽짜리 쪽글이라는데..

누군가가 쓴 글이다.

그냥 버리기도 아쉽고 해서...;;

 

 

성매매 특별법 시행에 대한 나의 생각


얼마 전에 용산역 앞을 지나게 되었다. 용산역 주변에도 집창촌이 있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직후에는 한동안 불이 모두 꺼져 있고 어둠이 깔린 골목길이었는데 이제는 가게마다 붉은 빛의 조명이 켜져 있었다. 물론 골목길에 인적은 거의 없었고 평상시와는 다르게 일상복 차림의 여성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아마 경찰의 단속 때문에 예전같이 영업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골목길마다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감금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나왔습니다”

성매매 특별법으로 인한 강력단속이 시행된 직후 한국 사회에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집단적으로 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그녀들의 시위는 단식, 삭발 농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법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허용되어 온 것이 성매매다. 아니, 소극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라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적극적으로 성매매를 조장하였다. 이는 성매매 특별법 시행 반대 논리를 펴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성매매 특별법으로 각종 유흥업의 매출이 타격을 입어서 지역 경제, 크게는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성매매는 없어서는 안 될, 많은 사람들의 생존이 달려있는 ‘필수산업’에 속한다.

그러나 성매매는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만연하고 남녀 간의 위계 질서가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임에 틀림없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것이 얼마든지 돈을 주고 여성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낳고(물론 돈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성매매는 다시금 여성들을 남성보다 하위에 놓게 하는 의식을 생성해 낸다. 따라서 공창제를 시행하여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철저하게 경제적 이윤 논리와 남성중심적 논리에 맞닿아 있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공정한 계약을 맺고, 인권을 보장받으며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성매매 여성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는 언론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주류 여성단체들의 대립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단지 성매매 특별법 시행이 옳으냐, 그르냐가 결론은 아니라고 본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창촌 여성들의 시위가 무엇을 보여주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어떻게 해서 성산업으로 편입되어 가는지를 보라. 여성들은 노동의 기회에서부터 차별받는다. 또한 막상 일자리를 얻더라도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 등에서 남성에 비해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여성들은 사실상 등 떠밀려 성산업으로 편입되어 간다. 행여 커다란 결심으로 성매매로부터 벗어났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정부의 탈성매매 여성 지원 정책 역시 여성이 자립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며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과연 이 고리를 끊어낼 방도는 없는 것일까?

“정리해고 철회하고, 정규직으로 재고용하라!” 얼마 전에 본 한 인터넷 진보 언론 기사의 머리말이었다. 새마을호 열차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여성 승무원들 31명이 정규직화를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통보를 받아 ‘투쟁’이란 것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철도청은 같은 일을 하는 승무원인데도 남성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여성은 2년짜리 계약직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래서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여성들의 노동권을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행동이다. 나는 이렇게 여성들의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이윤 증식을 위해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라면 스스로가 나서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성매매 문제에 대한 추상적일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답이라고 본다. 법을 통해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해도, 탈성매매 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한다고 해도 단기적인 효과 외에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탈성매매 운동을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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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흡연에 관한 다른 시선

  • 등록일
    2004/12/05 01:08
  • 수정일
    2004/12/05 01:08

자히드 동지가 잡혀가다니.

  • 등록일
    2004/12/01 15:31
  • 수정일
    2004/12/01 15:31

방금 피플타임즈에서 새벼리 동지의 글(http://www.peopletimes.net/?menu=SECT&sub=VIEW&start=0&usp_id=8938&cat_id=37&cat_depth=2&kt=&kn=&kc=&seek=&col_id=)을 보았다.

 

이주지부와 명동농성단의 중심이던 자히드 동지가 출입국 관리소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1년 동안 보아 왔던 동지가 그렇게 되었다니 갑자기 어안이 벙벙하다.

 

맨날 술 한 잔 하면서 이주 투쟁 전망에 대한 얘기 좀 같이 해 보자는 그 부탁을 못 들어 드렸었다. 이런저런 일정있고 바쁘다는 이유로 항상 다음에.. 다음에..

마지막 목요 집중집회에는 다른 일 때문에 못 갔고,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집회는 정리집회 할 때쯤 갔다.

그래도 마지막 농성집회인데 싶어서. 일단 인사도 좀 하고, 아예 같이 술먹자고 날짜 약속을 잡을 참이었다. 그런데, 집회 끝나자마자 이주 동지들이 서로 껴앉고 많이 우시고, 다른 약속 시간이 늦어버려서 하는 수 없이 멀찍이서 동지 얼굴 보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농성 해산하자마자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응?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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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나는 내가 무섭다

  • 등록일
    2004/11/19 16:06
  • 수정일
    2004/11/19 16:06

나는 내가 무섭다

16일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한 나는 또 한 명의 동료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나에게 든 생각이란? "이 죽음이 단체교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쳤다. 이제 내가 완전히 미쳐버린 것이다.
'단체교섭' 이라구? 인간답게 살아보자구 외치고 또 외치고, 온몸으로 저항하고 또 저항해도 변함없이 우리를 재물로 삼는 이 현실 앞에 돌아서는 나를 본다.

새벽 6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경부선 수원부근 선로에서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작업을 하던 고 권진원님은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했단다. 살이 튀고 피가 엉키고, 들어누운 바닥은 얼마나 차가웠을까? 칠순 노모와 부인, 5남매에게 사랑한다는 외마디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쉰 둘의 나이에 30년 철도 생활, 청춘을 철도에 바치고, 선로를 떠받치는 침목처럼 마지막도 그렇게 간 것이다.  사람이 없어 6일째 혼자 철야작업 중이었단다.

×팔, 동료를 친 기관사는 또 어떻게 하나? 정신없이 술이라도 퍼먹고 엉엉 울음을 터트릴테지. 그리고 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오늘은 무사히'를 간절히 되내이며 가감간을 잡겠지.

올해만 벌써 8명째다. 하루하루 죽음의 행렬이 길어질수록 감각도 무뎌져 아무 생각없이 근조리본을 찾는다.
아니 어찌됐던 줄어든 거 아닌가? 2001년엔 무려 31명이 죽어나갔고, 사람이 없어 사람이 죽어가는 이 철도 현장을 바꿔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하며 파업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2004년이면 실시한다던 약속도 인원충원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여전히 동료들은 열차에 치여 죽어, 과로로 쓰러져 죽고, 죽음의 대기표를 들고 오늘도 철도 현장으로 출근한다.

철도 10년. 지난 여름 난 2명의 친구를 차가운 철길에 묻었다. 그리고 상가집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한 사무소에서 동고동락하던(24시간 철야맞교대를 하다보니 이틀에 한번은 같은 방에서 잔다) 후배는 안전장치도 없는 전동차 위에서 일하다 떨어져 10여일을 사경을 헤매다 결국 감긴 눈을 뜨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이의 마지막 가는 길은 내가 지켜봤다. 실신한 노모를 부여안고 울부짖던 그이의 아내와 철 모르고 병원을 뛰어다니던 다섯살배기 딸애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닷새동안 '철도청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그이의 아내와 함께 뜬 눈으로 빈소를 지켰다. 그날 내리던 7월의 장마비는 아직도 나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또 얼마 후 열차 사고 뒷수습을 하던 선배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는 비보를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데, 당신들은 당신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울부짖던 형수의 목소리가 나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아직도 철도노동자인 나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통과의례처럼 가슴에 까만 리본을 단다. 이제 슬퍼할 힘도, 분노할 힘도 잃어버렸다. '배부른 노동자'라는 멍에를 쓰고 아직도 내 순번이 되지 않은 것을 위안삼는다. 부정과 불의 앞에서도 '참는 것이 미덕'이란 걸 먼저 배운 탓이리라.
동료의 영결식이 있는 오늘, 거기도 가지 못하는 내가 정말 싫다.
故 권진원님!  이 놈의 미친 땅을 떠나서는 행복하시라...

 

http://nohak.jinbo.net/bbs/zboard.php?id=connection_board&no=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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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음식에는 계급이 있다

  • 등록일
    2004/11/18 01:34
  • 수정일
    2004/11/18 01:34

세계 3대요리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중국 음식.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산업 발전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중국.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와 TV를 켜니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에는 매일같이 높디높은 고층빌딩이 죽죽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이들이 바로 민공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노가다. 건설잡부. 건설일용노동자. 민공들은 농촌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건설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이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다. 이들은 길거리에 앉아 쉬면서 배급을 받는다.

배급받는 것은 밀가루빵 4개, 쌀죽 혹은 배추국 한 그릇, 짠지 한 줌.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 세 끼를 모두 그렇게 떼운다.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민공들은 6개월에서 1년 동안 계약을 맺고 일해서 계속 그것만을 먹으면서 일을 한단다.

민공들의 하루 일당은 약 3000원. 그래서 그들은 가장 싸구려 식당에 가서 밥 한 끼 먹지를 못 한다. 가장 싼 식당-현장소장들이나 가는 식당-의 한 끼 값은 1200원.

돈을 모으면 식당에 갈 수 있지 않을까? 1년에 한 번 쯤은... 민공들은 임금을 계약기간이 끝나고 받는다고 한다. 노예가 아니고 대체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십장과도 같은 현장소장들이 가는 식당은 한 끼에 1200원.

 

화이트칼라나 자영업자들이 가는 식당은 한 끼에 3000원.

 

다큐멘터리는, 어느 나라에나 음식에도 계급이 있다지만, 중국만큼 분명한 곳은 없다며 마무리한다.

 

끝나는 자막이 나오고 나서 나지막히 던져보는 물음.

그래, 계급이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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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공무원노조 광고가?!

  • 등록일
    2004/11/09 22:40
  • 수정일
    2004/11/09 22:40

네이버에 접속해 보니 첫화면에 공무원노조 광고 배너가 떡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놀랬다. 지난 LG칼텍스 파업 때 사측에서 노조원들 복귀시한을 네이버 첫화면 광고로 때리는 걸 보고 경악했었는데.

얼마 전에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서 위 사례를 예로 들며 인터넷 공간도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점점 자유롭지 못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던 글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공무원노조의 배너 광고를 보니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역시 투쟁기금 100억의 위력인가...^^;

 

공무원들의 노동3권 쟁취투쟁은 공무원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이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무시된다.

또한 국가는 그것을 제대로 시행하였던가?

이러한 현실을 돌이켜 보면, 노동3권을 지키는 것은 노동자의 자주적인 투쟁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공무원노조의 투쟁이 승리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쟁취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릴 것이다.

 

공무원도 노동자다! 노동3권 보장하라!

모든 노동자가 힘을 합쳐 비정규직 철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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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 등록일
    2004/11/05 11:43
  • 수정일
    2004/11/05 11:43

한동안 안 마시다가

지난 일요일 이후로 하루 빼놓고 계속 술이다.

옛친구건, 지금 동지건, 혼자이건..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취하는 건 매한가지다.

술이 누적되다 보면 점점 일어나기 힘들어지나보다.

결국 오늘도 땡땡이..

내내 했던 이야기들도 기억이 안 나고.

다만, 총파업이든, 공무원파업이든 뭐든 잘 되는 것만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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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이주노동자? 노동탄압 박살내자!

  • 등록일
    2004/10/30 01:10
  • 수정일
    2004/10/30 01:10

10월 29일 낮.

대통령의 말마따나 광화문 대로에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있는 두 신문사 사이 즈음에서

오랜만에 이주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집회를 열었다.

"이주노동자를 테러리스트로 모는 한나라당, 조선일보 규탄집회"

비록 큰 길 건너편이긴 했어도, 이주노동자들은 힘껏 구호 외치면서 부자들의 신문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바로, 저 멀리 염창동으로 이동.

차떼기를 사죄한답시고 여의도에서 좀 떨어진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 바로 한나라당 당사.

국회의원들은 아마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무총리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전경 애들뿐.

그러나, 다시 힘차게 집회하는 이주노동자들!!

 

 

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반한 활동, 테러 활동이라고 몰아대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다. 곧 있으면,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든 투쟁을 테러로 몰아갈 것이다. 개악된 집시법에다, 테러방지법까지 제정하고 각종 이념 공세로 노동자들을 투쟁하지 못하도록, 전투적으로 싸우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버릴 것이다. 저들은 가장 만만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찍어서 테러리스트로 몰고 있다. 투쟁이다! 탄압을 분쇄하고 우리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생산을 멈추는 강력한 총/파/업/ 투쟁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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