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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18
    트랙백을 어떻게 '써야'하나요?(4)
    파수꾼
  2. 2004/10/15
    일상속의 사기(1)
    파수꾼
  3. 2004/10/14
    진압의 추억(3)
    파수꾼
  4. 2004/10/13
    초보블로거를 위하여^^
    파수꾼
  5. 2004/09/30
    후유증
    파수꾼
  6. 2004/09/24
    웃기는 이야기(2)
    파수꾼
  7. 2004/09/2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2)
    파수꾼
  8. 2004/09/23
    슬픈 이야기
    파수꾼
  9. 2004/09/22
    왜 게시판의 글들은 -_-
    파수꾼
  10. 2004/09/06
    발랄하게 살아라(2)
    파수꾼

트랙백을 어떻게 '써야'하나요?

 이리저리 포스트를 읽으며 소일하다가 네라님Trackback 해오다?? 는 대체.라는 포스트를 읽에 되었습니다.

 '트랙백을 해오다''트랙백을 걸다''트랙백 되다''트랙백이다'

등등 트랙백과 관련된 행위를 표현하는 말들이 여러가지로 쓰이고 있는데.. 어떤 것이 맞는 걸까요?

 우리 진보불로그에서 진보불로그 식구의 글에 트랙백핑을 보내면 자동으로 '이글은 XX님의 [XXX]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라고 글머리에 쓰이죠.. 이것도 네라님의 글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맞는 표현같진 않는데요..

 혹시 이런 논의자체가 별 필요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드는군요.. 획일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초보블로거 분노의 생각은 '이글루스'처럼 "누구누구님의 뭐뭐글에 대한 관련글입니다."라는 표현이 괜찮치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어색한가여?-_-

 

 블로그는 아직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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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의 사기

*이 글은 우리두리님의 포스트 나 사기 당한 건가?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몇해 전 비디오 대여점 알바하던 때의 일이다.

 

 알바자리 구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좀 어리버리 하던 당시에 한 사람좋아보이는 손님 한분이 대여점에 들어 왔더랬다. 그 사람은 가게 구석에 놓여진 탁자에 스스럼 없이 앉더니 아주 친근하게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안계시니?"

"네, 아직 안나오셨는데요.."

 

 그 사람은 아주 익숙하게

 

"아 그래? 이거 야단인데..오늘 만나자고 해놓고 안오시면 어떻게 해.."

 

라고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장님이 약속을 잊으셨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는 척하던 그사람은 역시나 아주 익숙하게 카운터로 오더니 말했다.

 

"안되겠다. 니네 사장한테 전화좀 걸어야겠다"

 

그러더니 카운터에 있는 가게 전화를 자연스럽게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후..

 

"아.. 사장님..네..아..깜빡하셨나보네요..아..괜찮습니다. 하하.. 네. 네. 예 그럼 아르바이트생한테 받아가겠습니다.. 아니요 뭘 죄송하기까지야 하하 네 그럼 다음에 또 들르겟습니다."

 

이렇게 수화기를 들고 사장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때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그 날 사장님이 전화 못 받는 곳에 가니까 전화하지말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 것이다. 상황이 잘못되어간다는 걸 느끼고 있을때 그사람이 예의 그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바야. 니네 사장이 저번에 차수리비 5만원 안주신거 받아가랜다. 그냥 카운터에서 꺼내주면돼"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이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나..당신 사기꾼이지 하고 대들었다가 칼이라도 꺼내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아저씨, 제가 사장님께 한번 다시전화드려보고 드릴게요"

 

라고 말하고 나 역시 사장님한테 전화하는 척을 했다. 그걸 보더니 그 사람이

 

"어 그래 전화확인해보고..어 잠깐만 좀 나갔다올게 확인전화해놔라"

 

라고 말을하더니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후에 그 사람은 돈을찾으러 오지않았다.

 

 

 

험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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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의 추억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갈지마 갈지말란말이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재수 없게도 내가 뽑은 제비는 허고 많은 부대들 중 전경부대였다.

 

내가 전경으로 배속된걸 안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군대 가지말라고 말했던 선배의 얼굴을 위병소 면회장이 아닌 집회장소에서 만났을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질문이었다.

내 친구들을 연행하라고 고참이 말하면 어떤 꽁수를 써서 풀어줘야하나 같은 낭만적인 고민을 할 새도 없이 전경들만의 후반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부대에 배치되자 마자 가장먼저 배우는 것은 중형진압봉술과 방패술, 체포술과 진압대형이다.

이 우스꽝스럽고 또는 소름끼치는 이름들의 훈련은 육군 훈련이 끝나고 이제 좀 살만할까 싶었던 신병들에겐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훈련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에 울리는 비상벨(진짜로 비상벨이 울린다)소리에 나는 최초의 집압출동을 나가게 된다.

처음 입어보는 진압복이라  헐래벌떡 웃도리부터 줏어입었지만 이어지는건 고참의 타박.. 진압복은 아랫도리를 꼭 먼저 입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눈치껏 다시 갈아입고 닭장차에 올라탔다.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 싶은 참담한 마음을 숨기고 창밖을 내다 보지만 그때는 정말 두려웠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공격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행히도 시청 항방을 왔던 농민분들은 시청입구에서 서성이다 돌아들 가셨고 전경들은 아무일 없이 부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부대로 차출되어 진압부대에서의 일은 말그대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아무일 없이 돌아올때 고참들이 지어보였던 아무일 없음을 아쉬워하던 광기어린 표정들. 내가 거기에 더 있었더라면 나도 저런 짐승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더 공포스런 상상이 나를 주눅들게 했었다. 휘두르면 어디한군대 어디 한군데 부러질 것 같은 묵직한 방패와 사람패기 딱 좋을 정도의 무게와 탄성을 가진 진압봉, 그리고 온몸을 촘촘히 두른 대나무살로 보호되는 진압복 과 철인28호를 연상케하는 화이바까지..

시간날때마다 틈틈히 갈고 있는 방패날과 그보다 날카롭게 간 시위대에 대한 증오들.. 그때의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도..

 

(내 개인적인 경험은 그들도 피해자일 뿐이라는 이성의 외침을 조용히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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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블로거를 위하여^^

* 이 글은 문식님의 [ [이용방법] 이 평등게시판을 이용하기 위하여...]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ㅎㅎ 우선 웃어서 미안

내가 문식이 글을 보면서 잼있었던건 블로그를 잘 모르는 니가 웃겨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한달전 모습이었기 때문이지^^;;

 

지금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중이지만서도 첨엔 알다가도 모르겠는게 이 블로그라는 것인것 같다.

 

먼저, 문식이의 블로그가 활발한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많은 사람이 네 블로그에 찾아와 덧글을 남긴다든가 어떤 의견을 남겨주길 기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블로거의 마인드는 아닌 것 같아. 그런 기능들은 기존의 카페나 커뮤니티, 싸이월드의 게시판이 담당할 수 있는 것이겠지.

 

블로그는 소통의(또는 정보의) 광장이라기 보다는 소통하는 네트워크의 단말기(노드)로써의 기능이러고 나는 이해했다. 물론 틀릴수도^^;;

 

따라서 혹시 너랑 비슷한 의견이나 또는 반대의 의견을 가진 니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니 블로그에 글을 담기기보다는 특랙백을 걸어서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트를 올리고 너는 트랙백을 관리하면서 '아.. 이런사람이 내의견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구나..'라고 알 수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블로그에서는 니가 원하는 평등게시판의 역할이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는 뜻^^

 

쉽게 정리가 잘 안되네.. 아마도 내가 많이 알지 못해서 그렇겠지.

 

그래서 귀감이 될만한 블로그를 내 나름대로 링크시켜 볼게.  함보고 블로그가 어떤건지 잘 배워나가시길..

 

아참 그리고 블로그 용어가 참 어렵지? 아래에 링크한 진보네의 블로그에서 검색창에 모르는 용어를 한번 쳐봐 ^^

 

 

* 블로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많이 담긴 유용한 블로그, 진보네

* 아주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멋진 블로그, 달군님 블로그

* 소통이 활발하고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재미나는 블로그, 아샬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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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연휴의 끝은 항상 허무함이었던 것 같다. 진짜 진짜 푹 한번 쉬어봐야지 했던 각오와 다짐들은 어디로 갔는지 간데없고 남은 건 피로함과 연휴 전보다 더 무거워진 몸뚱아리 밖에..

 

쌓여있는 팩스들과 일정들은 줄어들질 않는구나.. 점심먹고 하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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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이야기

이 글은 극우 또라이 인터넷 신문 '젊고 강한 독립신문'에서 퍼온 글입니다. 글 쓴사람의 기발한 상상력이 묻어 나오는 글이네요. 웃다가 지쳤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사무실 업무가 널럴하다보니 무쟈게 포스트 올리는 군요.. 죄송합니다
 
서태지 7집 라이브와이어 가사검열

이 노래 제목인 Live wire는 휴전선의 철책을 의미한다.
이는 뮤직비디오 첫장면에 철조망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명백하다.
즉, wire는 대한민국의 분단현실과 안보의 최후 보루를 가리키며,
Live를 붙인 것은 wire,즉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wire가 누굴위해 살아움직이냐는 것이다.

이젠 설렌 마음이
내게 다시 시작되는걸
느껴 내 속에 삼킨
Live Wire@

이는 wire를 자기 지배하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보겠다.

도대체 너희가 뭔데
나에게
대체 어떤 권리에
내 자유에
나의 마이크에
네 판단에 제재하는데

헌법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으며,
헌법재판소도 이에 의해 국가보안법을 합헌이라 하였다.
하지만 친북세력과 이의 사주를 받은 인권단체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wire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와 유엔이 이 문제를 들먹이는건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분단현실에서 표현의 자유 주장은 곧 공산화의 지름길이다.
그런 위험한 주장을 서태지가 하고 있다.

집어치워 이젠 나의삶에
소중한 나의 어떤
꿈도 이젠
잃어버릴 순 없어
내겐 전부였던
결박되어 버린 기억속에
잊혀져 버린
이 큰 울림을 알리러
난 오늘 경계선을
넘을게

'경계선'은 휴전선을 의미함이 분명하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서태지는 가수활동중에도 일본진출을 명분으로 일본출입을 하였으며
최근에는 북괴에 대사관까지 개설한 인도에 출국하여 체류하고 있다.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3국에서 북괴의 지령을 받거나 '정말로'경계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인도에서의 행적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상쾌한 내 샤워같은
소리로
이 메마른 땅위에
비를 내려 적시네
이젠 설렌 마음이
내게 다시 시작되는걸
느껴 내 속에 삼킨
Live Wire@

뮤직비디오에서는 물이 등장하며, 촬영장소 또한 한남대교 확장구간이다.
이는 북괴의 수공, 금강산댐 폭발을 의미한다.
서태지는 북의 침략이 곧 미제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노래 가사에서 명백히 밝혀지고 있다.

그 누구도 어떤 이도
TV 속의 뉴스도
이 혼란속에 지친 내겐
위로가 된 적은 없어
단지 내겐 열두 음의
멜로디만이
나의 마음속에
위로가 되어주었던
유일함이었어

서양음악은 7음계다. 락이라고 다르지 않다.
왜 열두음인가? 혹시 북괴의 고정간첩 12명이 아닌가?
아니면 북괴의 특수부대원들을 이미하는 것인가?
왜 12음인가?

향긋한 바람과 함께
쿠데탈 외쳐
내 열두 개 멜로디로
난 오늘 경계선을
넘을게

쿠데타는 프랑스어로 '국가에 대한 일격'을 의미한다.
80년 5월 광주사태와 같은 폭동을 선동할 뜻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결국 넌 날 못 다듬어
어떤 탄압이라도 내겐
내 마지막 남은
자부심으로
이 거리를
(내 마음껏)
내 마음껏
걸으려 해

친북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결국 넌 날 못 다듬어'는 수사관의 자백요구에도 끝까지 버티고
수감생활중의 교화 및 전향요구를 철저히 거부하는 사상범들이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거리를(내 마음껏)내 마음껏 걸으려 해'는
국가보안법 폐지 이후 수배자와 수감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곧, 서태지는 북괴 간첩 등의 사상범을 자신과 동일시 하고 있다.
또한 국가안보 최후이 보루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선동하고 있다.

상쾌한 내 샤워같은
소리로
이 메마른 땅위에
비를 내려 적시네
이젠 설렌 마음이
내게 다시 시작되는걸
느껴 내 속에 삼킨
Live Wire

물의 이미지가 또다시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wire를지배하고, 무너뜨려
결국 북괴의 남침으로 미제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그런 위험한 사상을 전파시키고 있다.

That's right
오늘을 반드시
우리의 독립기념일로
나 만들겠어@

'독립기념일'이란 미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그러나 그 '해방'은 북괴와 친북세력의 것이지
대한민국 자유시민은 무한한 고통의 사작일 것이다.

이처험 서태지의 Live Wire에는 친북성이 명백하다.
서태지가 지금 인도에 있는데,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국정원이 소상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노래를 유통하고, 방송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 및 처벌을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송국 폐쇄, 음반 소지자 수사, 음악계로 수사확대를 해야한다.
국가안보에는 한치의 빈틈도 허용할 수 없으며,
한번 위험해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것이 국가안보이다.
그 어떠한 위협이라도, 그 정도와 파급효과에 상과없이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며 조그마한 위협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이런 노골적인 이적표현물이 수십만장 팔려나갔고
음악방송에서는 수도없이 뮤직비디오를 틀어댔습니다.
이적표현물을 접한 선량한 자유시민들을 위해서
서태지는 반드시 처단되어야 하며, 가요계 전반으로 수사를 해야 합니다.
독립신문 여러분! 제 글을 토대로 더욱 구체적이고 정교한 기사를 써주십시오.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는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괴뢰도당들에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궐기합시다! 합법 비합법을 가리지 맙시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인간이 미국 영주권 반납하고 개대중이랑 노닥거릴때부터 정체를 알아봤어요. 아니 서태지와 아이들때부터, 정확히 말하면 발해를 꿈꾸며 때부터.

그인간의 정체를 알려주는 관련기사.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했던 것은 정치적인 외압 때문이었다.
 
지난 96년 1월 서태지는 은퇴 기자 회견을 통해 창조의 고통이 너무 심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홀연히 팬들을 떠났으며 이후 그에 대해서는 그 이상도 그이하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서태지를 밀어낸 것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같은 충격적 사실은 서태지의 최측근 관계자가 최근 본지 기자에게 털어놓아 알려지게 됐다.
 
익명을 요구하는 그는 지난 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했을 때부터 서태지가 본의 아니게 정치권과 연관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최고로 치솟아 있었고 발해를 꿈꾸며는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로, 사랑 타령을 가사로 하던 여타 가수들과 확실히 차별화돼 있었다. 때마침 같은 해 1월 설립된 아태평화재단은 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외교와 대북 정책을 생산하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공개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서태지를 꼽으며 극찬했다. 발해를 꿈꾸며 콘서트를 가졌을 때는 "기특한 젊은이"라 평하며 축전과 화환을 보냈고 시대 유감이라는 곡이 공윤심의에 문제가 됐을 때도 당내에 서태지 음반관련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지원하기도 했다. 대선을 앞둔 선거기간에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김대중 홍보의 TV 광고에 출연해달라는 제의까지 한 바 있다.
 
자생적으로 생긴 서태지의 일부 팬클럽들에는 언제부터인가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서태지를 자신들의 상징적 존재로 삼기도 했다.
 
서태지 관계자는 "어떻게 압력을 넣었는지 정확히 말은 않았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29일 4년 7개월만에 컴백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OZ201편 1등석을 타고 미국에서 귀국하던 서태지는 김포공항을 거의 다 도착할 무렵 뒤에서 다가온 5명의 건장한 남성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라는 인삿말이었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 출발지인 LA공항부터 같은 비행기에 올라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다.
 
서태지가 정치적인 회오리로 인해 고심했던 것에 대해 주변인물들조차 정확한 ‘몸통’을 모르고 있었다. 속이 여리고 내성적인 서태지인만큼 혼자 속으로 삭혀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이주노는 "〈발해를 꿈꾸며〉를 내놓고 활동하던 시절 어느날 연습실에서 태지가 잠시 보자고 했어요. 지친 표정의 그가 다음 앨범을 마지막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워낙 말이 없는 친구라 속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고심하고 있는 흔적은 있었어요 "라고 답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과거 매니저였던 이상철씨는 "정치권으로부터 손짓을 받았던 적은 있었으나 사양했었다"고 밝혔다.
 
서태지의 ARS담당자인 채송아씨는 "서태지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슷한 내용의 문의가 가끔 올라온 것은 보았지만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홍성규 기자 saint@hot.co.kr 2004-09-20


게다가 victim 가사는 더 가관입니다.

빨갱이 서태지와 역시 빨간물이 든 서태지 빠순이들이 그렇게 방송불가를 풀어달라고 외치는 victim의 가사이다.

Just Another Victim
너는 네 엄마에게 네 아빠에게
단지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건만
결국 퍼런 가위에 처참히 찢겨 버린
테러리즘에 지워진 아이야

No more murder Stop the slaughter

* Sexual Assault
넌 타인의 미친 법에 저무는가
Sexual Assault
넌 넥타이에 목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

Just Another Attendant
바로 네 이름 앞엔 이제 곧 어느새
너의 기를 제압할 호칭이 붙겠지
국가 통제 체계적인 학대 속에
너를 옭아맬 또 다른 절망에

No more 통제 They are not hers

그 소녀의 동화 속엔

반 토막 난 이야기 뿐
이제 네가 잃어버린
너를 찾아 싸워야 해

싸늘한 너의 가슴 속은 소리 없지만
너는 또다시 바로 바로
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거야

---------------------------------------------

노무효의 탄핵을 미리 예견하고 이를 비난하는 가사이다. 너를 옭아맬 또 다른 절망이 실제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 이회창님을 뜻하지 않는가?

그인간 때문에 음반사전심의제를 없앰으로 인해서 저질가수들만 쏟아져 나오고 오히려 좋은 가수들이 다 죽었고 박진영 같은 개.새.끼는 아예 Sex is Game 이라고 x랄을 하고 있어요. 음반사전심의제는 부활해야 합니다.

서태지, 베이징대 석좌교수 임명된다
[연합뉴스 2004-09-19 18:27]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가수 서태지가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특좌교수 (석좌교수)로 임명된다.
베이징대는 19일 "서태지와 청룽(成龍), 장이머우(張藝謨), 궁리(鞏利) 등을 예 술학원(예술대) 특좌교수로 임명할 계획"이라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문화대통령' 으로 떠받들고 있는 서태지를 10월초 초청, 특좌교수 임명장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베이징대학 쉬즈홍(許智宏) 교장(총장)은 예술학원 승격을 기념해 개교 10 6년 역사상 처음으로 특좌교수제를 신설, 각국을 대표하는 분야별 저명 인사를 임명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베이징대 예술학원 예랑(葉朗) 원장은 1차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4대 명인으로 서태지와 장이머우 감독, 영화배우 청룽, 궁리를 선정했다. 청룽은 19일 오후 2시 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특좌교수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베이징대는 2005년 12월 완공 예정인 이 대학 예술학원 본관 신축건물에 이들의 개인별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학교측은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와 삶, 예술과 사상 등을 조명.연구하고 관련 자료들을 영구보존해 상설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ouble@yna.co.kr

왜 하필 중공인가? 중공을 통해서 '경계선'을 넘으려는 것 아닐까? 너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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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예전에 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5대가 넘는 가족사 자체가 카톨릭의 역사였던 바,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천주교신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진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던 그때에 힘없는 자들의 안식처와 같았던 명동성당 들머리의 이미지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약상과 발언들은 가톨릭을 종교로 가지고 있는 나에겐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주일에 성당보다는 술집에 다니기 바쁘던 시절부터 였을까..

 

갈 곳없는 이주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성직자들의 모습과 가진자들에게 사악한 진언을 간하는 박홍 총장의 말씀.. 내가 동경하던 천주교의 진보적 이미지는 한국 천주교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란 것을 알아버리고 난 다음부터 그런 환상은 그렇게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KNCC의 한 목사님의 성적소수자 지지발언을 듣게 되었다. 찾아들어간 관련 게시판에는 차마 종교를 가진사람들의 언사라고는 믿기 어려운(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쌍욕들이 기대한대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목사님은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연대를 말했고, 그에 적대적인 사람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그 성직자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처넣어 버렸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종교적인 판단에 의해 진보를 말하는 성직자들이라.. 나에겐 신선한 무언가 였다.

 

최근 어처구니없는 김수환 추기경의 개념없는 발언에 대해 따끔한 한소리를 한 신부님이 계시더군..그 분도 종교적인 이유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의 말씀대로 보안법폐지라..

 

아무튼 멋진 분들이다.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경의를 표한다. 오직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만 경의를 표한다. 

 

 

* 이 글은 모험가님의 [[펌글] 김추기경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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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지갑을 잃어버렸다.

 

된장..

 

더욱 슬픈건 돈 한푼 들어있지 않은 내 지갑을 줏어간 불쌍한 인간에 대한 감상이다.

 

딸랑 만원있던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어 겜방비 3000원을 낸것이 행운이라면 행운-_-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은 덕에 더 큰 손실을 막았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겠지. 귀찬은게 문제일 뿐..

 

다만 여자친구 사진을 잃어버린건 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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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게시판의 글들은 -_-

게시판에 평소보다 장문의 글을 쓰고 나서 확인을 클릭하면 로그인이 안됐다는 로그인 메뉴가 뜨고, 또 로그인을 하고 나면 방금 썼던 글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ㅠ.ㅠ

 

짧은 글들은 쓸때는 그런일이 없는데..

 

이것도 인터넷 시대의 머피의 법칙인가?

 

짜증 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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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게 살아라

예전에 군대있을때,(참고로 예전에..로 시작하는 말머리와 군대있을때...로 시작하는 말머리 둘다 내가 싫어하는 말머리다..) 아니 훈련소에 있을때 '수양록'이란 걸 써본적이있다. 일종의 정신 교육 훈련방법으로 매일 일기형식의 글을 나눠주는 공책에 적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조교들이 검사를 할 줄로 철썩같이 믿고 쓰기 시작했는데(검사는 하지 않더군-_-)나중에는 힘든 훈련소 기간을 지내게 해준 고마운 놀잇감이 되었다.

 

그런데 요 수양록이 라는 것이 요상해서  일기처럼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글들이 대부분인데 그 진실성에는 일정한 조건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거기에 쓰는 글들은 모두 남들이 볼 것이라는 가정하에 작성하는 글들이라는 것이었다.

 

군생활의 어려움을 써나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동료 훈령병들이나 조교들이 볼 것을 바탕에 깔고 글을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그곳에 쓰인 글들을 동기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이놈의 블로그라는 것도 나에겐 그런 것이었다.

 

생각나는 데로 주저리 주저리 남이 읽어주길 바라는 쓰잘데 없는 잡담을 늘어 놓을 수있는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이런종류의 웹 컨텐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주위사람들이 너도 나도 소위 싸이질을 하기 시작할때 부터 생겼던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상대적인 박탈감 등등의 정신적 내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도 할 수있다"를 모토로 억지로 시작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여기 진보넷의 블로그들중 어느 한 분의 포스트를 읽게 되었다.

 

소통과 연대의 방법론으로서 블로그를 사고하는 논쟁이 진행중인 포스트였다.(수많은 트랙백으로 활발히 토론중인)

 

"오호, 이런 것까지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구만.."

 

내가 블로그에서 싸이질을 하고 허접한 그림으로 게시판을 채우고 의미없는 가십을 퍼나르는 동안 다른곳에서는 블로그로 연대와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더더욱 나는 진보넷에 오기가 어려웠다. 그곳에는 아직도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외치지 못한 희망들이 넘쳐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돈번답시고 시작한 비정규직 알바자리에서 몸을 빼지도 못하고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농담아니다) 하는일이라곤 온라인게임 빠져 사는 것과 연애질 밖에 없는 전직 학생 운동권의 넋두리를 늘어 놓기엔 그곳에 있는 빛나는 언어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우리같은 놈들도 있어야지.."

 

나와 거의 비슷한 질의 인생을 살고있는(물론 그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도 모른다 ㅎㅎ최소한 그는 현재 학생이니까 )한 선배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같은 놈도 있어야지.."

 

진보넷의 다양성을 위해 나같은 허접한 초보불로거도 있으면 좋지 않겠나.. 그래야 당신들의 아름다운 땀과 눈물과 투쟁의 이야기들이 더 빛날 수있지 않을까..

 

그래서 솔직하게 내가 살고있는 얘기들을 하기로 했다. 진보넷에서 쉽게 보기힘든 게임폐인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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