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법"?

최진실이라는 연예인은 우리 시대에 일종의 아이콘이었던 듯 싶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깜찍한 멘트 하나로 선명하게 각인되었던 CF의 여왕 최진실. 그녀가 갔다. 일단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진실이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인데 특히 일부 네티즌들의 악플때문이라는 견해가 대센가보다. 그렇잖아도 이혼 이후 우울증에 시달렸던 최진실이 최근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해 여러 루머에 시달렸단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괴담이 번지고 각종 악플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결과 극단의 선택을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고인의 주변과 경찰의 입장인가보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통망법에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법안을 소위 "최진실 법"이라고 하겠단다. 정치권의 발빠른 대응마련이 눈에 띈다. 그런데 좀 역겹다.

 

이 기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있다. 배달호, 박일수, 김주익, 곽재규... 이들이 죽었을 때, 지금 "최진실 법" 만들겠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는 정치인들 중 이들의 영정 앞에 달려가 무릎꿇고 눈물을 흘렸다는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이들이 목숨을 내던져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을 때, 부당한 구조조정 피해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면서 죽어간 이들의 이름이 붙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저기 있었던가?

 

품위있는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법안을 설명하는 나경원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거다. 바로 저런 사람들이 "판사출신"이라고 뻗대는 통에 이 나라 사법부가 불신을 받게 된다. 법원은 나경원의원을 사법부 "모욕죄"로 고발하지 않겠지? 원래 가재는 게편이니까.

 

사실 법안에 이름을 붙이려면, "최진실 법"이 아니라 "나경원 법"이라고 하던지 "홍준표 법"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 애꿎은 최진실의 이름을 거기다 붙여 두고 두고 최진실을 욕먹게 만드려고 하는가? 욕을 처먹으려면 지들이 먹으면 되지.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만든 법안의 사례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메건 법(Megan's Law)"이다. 1994년 미국의 뉴저지주에서는 겨우 7살에 불과했던 메건 캔커라는 어린이가 이웃에 살던 성폭행 전과범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폭행범의 신원을 공개하는 법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에 피해자인 메건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린이 성폭행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이렇게 피해아동의 이름을 붙인 법안발의가 논의되기도 했었다. 바로 "혜진, 예슬법"이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혜진이와 예슬이 같은 어린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법률이 있냐 없냐, 혹은 처벌의 강도가 세냐 약하냐가 아니다.

 

전자발찌를 찬 사람들이 이제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는데, 이들이 전자발찌를 차고 다닌다고 해서 성범죄가 줄어들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그런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조차도 믿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성범죄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도 19세기 수준인데다가 사법부의 양형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만큼 관대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피해를 공공연하게 알릴 수 없도록 수치심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정책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넘의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걍 알로 먹으면서 지 이름만 휘날리고자 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법안마련의 취지가 달성되기는 커녕 역효과가 발생한다. 메건법 덕분에 미국의 아동 성폭력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법률에 근거하여 신원이 공개된 성폭력 전과자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보고된 바가 있다.

 

"최진실 법"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이 이미 밝힌 것처럼 모욕죄라는 것은 형법에도 그 처벌의 근거가 있고,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법안은 아예 인터넷 상에서 손꾸락 하나도 깝작거리지 말라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럴 거 같으면 아예 포털업체들을 폐쇄하던지, 포털에서 언론기사를 띄우지 못하도록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포털 전체에 댓글기능을 달지 못하게 하던지 하는 것이 낫다. 차라리 과속의 우려가 있으니 모든 차량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말라고 법을 만들던가 아님 음주운전의 우려가 있으니 차량소지자는 술을 처먹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어떨까? 주먹쥐고 다니는 넘들은 죄다 폭행미수로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던가...

 

정히 누구의 이름을 붙여 법률안을 발의하고 싶으면 "나경원 법"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공포된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점들을 면밀히 분석한 후, 누구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대한민국 모든 유권자가 다 알 수 있도록 하자. 어영부영 그렇잖아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이름을 덧씌워서 두고 두고 천추의 한이 맺히도록 할 생각은 아예 접어놓고 말이다. 나경원 의원, 그럴 자신 있나? 홍준표 의원, 그럴 자신 있어? 당신들 임기 3년 좀 넘게 남았는데, "나경원 법", "홍준표 법" 이렇게 할 자신 있어?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거기다 왜 "최진실 법"이란 이름 붙이려는 건가? 이것들이 상도덕도 없고...

 

악플러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알바"고 다른 하나는 무개념 인생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약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개념은 탯줄과 함께 떼어버린 중생들의 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류의 인간들이 올리는 덧글에 초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줄을 굵게 만드는 트레이닝을 하는 편이 훨씬 지구온난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한편 '알바'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대응에 필요한 법률은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 괜히 "나경원법" 같은 쓰레기법률을 더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런데 '알바'들에 대해 성전을 선포하게 되면 상당히 곤란해지는 부류들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 각종 언론사 홈페이지에 기생하는 한나라당 알바들 얼마나 많은가? 아, 요샌 좀 들어갔나? 정권도 잡았으니. 차라리 법률안을 만들려면 '알바'를 사주한 인간들을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하는 법률이나 만들지. 그런데 나경원이나 홍준표는 절대 이런 법률 안 만들 거다. 지들 목에 칼 디미는 법률을 만들 생각이나 있겠나?

 

속이 훤히 보이는 잔대가리 굴리면서 죽은 사람 욕보이는 짓은 그만 하기 바란다. 그게 하루 아침에 이승을 떠나게 된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덧) 최진실이 수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던 이야긴갑다. 그런데 그렇게 장기간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에 병원치료를 받게 해주던지, 우울증이 치료되도록 같이 뭘 하던지 해야할 사람들이 최진실이 그렇게 자주 음주를 했다는데 거기 같이 맞장구쳐준 건 뭐람? 우울증 환자가 술까지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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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13:28 2008/10/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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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8/10/04 15:32

    '최진실법'이라구?이봐~ 그거 너무 빤히 속 보이잖아.나름 민첩하기는 했지만그래도 그렇지. 어찌 이렇게 얄팍한 발상을...조심해~'최진실법'이라는 명칭 자체로 나중에 최진실씨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될 수도 있어.'실명제' 꽤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이런 악법 이름도 직접 추진한 국회의원 실명을 붙이는게 어때?그건 자기 이름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까봐 꺼리는건가?한나라당은 저 추악한 인터넷 통제법에그녀의 이름 석자를 함부로 붙이지 말라! Cre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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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10/05 18:05

    가급적 최진실씨의 죽음과 관련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 때 최씨의 사진을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로 사용했을 정도로 우리 사이에 그가 인기 있었기에, 이후로도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기를 이어 오면서 톱스타임에도 마치 우리 옆에서 살던 이웃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왔기에, 너무나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또 이슈에 '묻어가면서' 트래픽을 올리려는 의도가 보이는 몇몇 포스팅에 불쾌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급적 송원섭 기자의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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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10/05 21:42

    한나라당은 3일 "최진실씨 사건 등에서 인터넷 폐해가 드러나 익명성 뒤에 숨은 건강하지 못한 인터넷의 종양을 치료해야 한다"며 사이버모욕죄, 인터넷실명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최진실법>이라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한나라당 나경원 제6정조위원장은 "고소가 없어도 수사가 즉시 이뤄져서 피해를 예방하고 그러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그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이버모욕죄'의 신설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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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10/05 21:45

    행인님의 [&quot;최진실 법&quot;?] 에 관련된 글. 한나라당은 기필코 &quot;나경원 법&quot;을 만드려 한다. 이 법에 대해 저들이 아무리 &quot;최진실 법&quot;이라고 너스레를 떨더라도 나는 악착같이 &quot;나경원 법&quot;이라는 말을 쓰련다. 나중에 이 법이 통과된 이후 나경원이 혹시라도 이 글을 발견한 후 지가 만든 법에 의거해 &quot;사이버 모욕죄&quot;를 걸어 고소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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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10/05 22:21

      두 말도 필요없이, 훌륭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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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10/22 12:57

    댓글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온라인과 함께 발전한 다른 커뮤니케이션과는 아주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메일은 1대1, 1대다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1대1의 속성이 강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애초에 1대1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던 우편 역시 1대다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1년이면 엄청난 분량의 광고 우편이 각 개인들에게 쏟아졌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많이 줄었지만, 내가 미국에 잠시 머물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1. 왜 딴나라당 저것들이 정통법에 관해 법을 더 개악하려고 발버둥 안 치나 했더니... ㅉㅉ... 벌써 했군요... 돌아가신 양반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욕되게 하는 저것들(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한낱 사물이나 물건처럼 보여서리...) 때문에 아마도 인면수심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네요...

  2. 곰탱이/ 이미 망법 개정에 대한 언급은 지난 7월에도 했다가 욕만 엄청 처먹고 쑥 들어간 적이 있었죠. 쟤들이 인면수심이란 말을 알았으면 아마도 국회의원자리 해먹으려고 저 난리를 치진 않았겠죠. ㅡ.ㅡ;;;

  3. 다시 읽어보는데, 역시 명문이고만요. : )

  4. 민노씨/ 어익후... 별말씀을... ^^;;;

  5. 민노햇님네서 읽고 요기까지 넘어왔습니다. ㅎㅎ
    제 개인적으로는 최진실법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를 분노스럽게 생각하거든요. 굳이 부르고 싶다면 나경원법이 맞는거겠지요.
    얼마전에 티부이에서 나경원이 나와서 그 법안에 대해 나불(!!)거리는거 보고 정말...젓가락을 꺼꾸로 쥐게 되더군요.
    제발...님하 개념촘!!!!!!!

    우리는, 더욱더 힘내서 즐겁고 가늘고 길게 저들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이상 이런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꺼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하시길~!!!

    첫방문에 너무 수다가 늘어졌습니다..ㅎㅎ 멋진 글, 감사합니다^^

  6. 속이 다 후련하네요.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네 번째 단락이 마음에 깊히 와 닿는군요...

  7. 명이/ 어서오세요~!!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더욱더 힘내서 즐겁고 가늘고 길게 저들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진정 기뻐할 수 있겠죠. 감사하구요. 그리고 제 블로그에 덧글은 본글보다 더 길게 다셔도 무방합니다. ㅎㅎ

  8. meru/ 고맙습니다. 명박쓰 혼쭐 내주는 일이 성공하면 더 속이 후련할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