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은 없었다

판자촌 즐비했던 목동일대의 과거는 아마 그 뚝방의 물난리를 경험해본 몇 명의 기억에나 남아 있을 거다. 고층 아파트의 마천루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강제철거의 고통을 상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다른 목동의 재현이 있기 위해서 과거는 잊혀져야 한다. 어디 목동 뿐이랴. 난곡동도, 상계동도, 난지도도 죄다 망각되어야 한다. 그 후에야 뉴타운은 신성한 미래의 유토피아로 포장될 수 있다.

 

언급되었던 지명들이 간직한 쓰라린 과거에는 반드시 용역깡패와 공권력의 합작이었던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거기에서 '주민'이라는 이름은 철거해야 마땅한 무허가 건물과 같은 폐기처분대상에 불과했다. 그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단지 쓰레기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의미 그대로 그곳의 '주민'들은 쓰레기처럼 쓸려 나갔다.

 

정작 문제는 이 현상이 30여년 전이고, 20여년 전이고, 10여년 전이고, 언제이든 간에 지나간 과거에 있었던 일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처럼 변해버린 철거촌을 지금도 서울 어느 구석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때론 거기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기껏 죽어나간 사람들 역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죽음은 용역깡패와 공권력에 의해 유발되었고, 그들의 주검은 책임을 져야할 사람과 집단으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해가 저물때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용산의 악몽은 그래서 더 아프다. 망각을 요구하는 집단의 농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힘들다. 어쩌면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인다. 불과 몇 달 전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폭력이 이루어졌던 쌍용차의 격렬함이 어느 순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듯이. 용산도 그렇게 사라져버려야 할 운명인지 모르겠다.

 

승전비를 거창하게 남기고자 하는 자치단체장들의 욕심, 당연히 그것은 권력욕일 것인데, 그 권력욕에 알맞게 결합된 자본의 욕구와 그 사이에서 떡고물을 바라는 개발동맹의 일원들은 강고한 결사체로 묶여 움직인다. 그리고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게, 권력과 자본이 결집한 이 동맹군의 전방위 사수대로 검찰과 경찰이 도열해 있다. 무장한 사수대인 검찰과 경찰은 공권력의 집행자라는 탈을 쓰고 개발동맹의 주구로 활약한다.

 

냄새나는 디트로이트를 말끔히 밀어버리고, 휘황찬란한 신도시=뉴타운으로 재개발하려던 OCP에 맞선 것은 다름 아닌 지역 경찰들이었다. 그들에겐 로보캅이라는 지원군도 있었고. 서울시와 용산구는 명목상으로는 사적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다. 그러나 그들이 획책하고 있는 개발의 향연은 디트로이트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려 하던 OCP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자치단체라는 허울은 단지 개발이익을 노리는 자본의 첨병노릇을 하기에 적절한 무기 이상의 의미가 없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이윤추구를 위해선 '주민'들을 물건으로 취급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있다. 개발이익을 도모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주민'은 발끝에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당연히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역시, 자본은 사설경비대,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용역깡패들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청소한다. 이 '청소'는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청소의 행위양식, 즉 치우고 쓸고 닦고 하는 등의 일들과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이루어진다. 두들겨 패고, 협박하고, 불을 지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OCP의 용역들이 '주민'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듯이.

 

한편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대~한민국의 현직 경찰들은 용역깡패와 일심동체가 된다. '주민'을 지키는 '민중의 지팡이'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악몽 그 자체다. 경찰은 컨테이너박스를 동원하고 그 안에 경찰특공대를 실어 화마가 넘실대는 건물의 옥상으로 투하한다. 용역깡패들은 이들이 진입하기 좋도록 길을 내주고. 아마 많은 일당을 받았으리라.

 

더구나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현실에서는 로보캅이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IT강국 대~한민국이 로보캅을 만들지라도, 기계의 부속이 된 머피가 계속해서 겪게되는 정체성의 혼란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로보캅은 철거촌에 등장할 일이 없을 거다. 혹은 반대로 용역깡패에게 줄 일당을 줄이기 위해 자본이 로보캅을 투입할 수는 있겠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총리가 된 정운찬이 한 일이라고는 기껏 용산을 찾아가 자신들의 입장을 재론했을 뿐이다. 알아서들 해보세요... 왜 갔을까? OCP의 부사장 입장으로 찾아간 걸까? 사장 이명박의 입장을 대신해 청소현황을 확인하려고? 뉴타운의 실세 오세훈이 마음놓게 해주려고? 분명한 것은 정운찬이 로보캅 역할을 해주려고 거기 간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주민'들은 다시 절망의 기간을 더 연장받아야 했다는 것.

 

어쩌면 더 오랜 시간동안 이런 일들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진짜 어쩌면 영원히 이런 식의 일들이 무한반복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마저 엄습한다. 이명박이 아니라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든 간에, 뭔가 번쩍이는 것이 발기하듯 뻗어 올라가는 것만이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한, 현실의 OCP는 계속해서 도시를 장악하고 '주민'들을 청소할 거다. 거기에 당연히 로보캅은 나타나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0/09 17:02 2009/10/09 17:02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hi/trackback/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