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쩜셋을 기다리며...

(가칭)국민참여정당이 차곡차곡 창당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어제는 '시민주권'이라는 모임이 창립대회를 했다. 지난달에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이 출범했는데, 이 세 조직이 전부 '친노'를 표방하고 있는 단체라는 점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안희정이 예언처럼 주장하듯이 과연 "'친노'라는 말이 21세기 대한민국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될지는 모르겠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그럴 일 전혀 없다는 생각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노무현' 사상의 계승발전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출몰한다. 전후사정 여하 간에 기왕 만든 거 건승을 빈다. "100년 가는 정당" 운운하다가 홀라당 말아먹은 전철만 밟지 않아도 대성공일 거다.

무튼 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시민주권' 창립대회에서 이 단체 대표를 맡은 이해찬 전 총리의 발언이다. 이해찬은 매우 진부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긴절한 용어가 되어버린 '연대'라는 화두를 꺼내놓는다. 긴 말 덧붙일 필요도 없이, 이명박 정권을 넘어 수구기득권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선 진보적 시민사회가 혼연일체 총화단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라는 말이 그토록 진부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절절하게 사무치는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동안 소위 '연대'라는 말은 너무나 쉽게 이야기되어 왔고, 너무나 쉽게 당연한 가치로 인정되어 왔다. 그 적실한 예로 기억되는 구호는 바로 이거다. "닥치고 대동단결"

기회있을 때마다 이야기했던 거지만, 지금까지 주장되어왔던 "통 큰 단결"이라는, 즉 '연대'의 보다 대중영합적인 그 표현은 사실상 "군 말 하지 말고 내 밑으로 집합"이라는 뜻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함의에 부합하는 논리적 추론에 따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는 의미에서 '연대'라는 것은 "통 큰 단결"을 주장하는 측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었다. 연대라는 것이 단지 이것 저것 잡다한 것을 한 덩어리로 묶어놓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이에 대한 수용과 각개약진을 위한 배려는 연대의 전제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 우리 앞에 나타났던 그 많은 연대체들이, 특히 현실정치와 '선거'를 위한 연대체들이 얼마나 차이에 대한 수용과 각개약진을 위한 배려를 제공했던가?

몸담고 있는 정당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지만, 지금 진보신당이 안산 상록에서 임종인을 밀어주면서 보이고 있는 행태 역시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이해찬이 이야기하는 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항의지 하나로 연대를 이야기했다면, 진보신당은 임종인과 김영환 둘 중 한 사람에 대한 선택에서 김영환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진보신당이 민주당까지 한나라당과 같은 반열에 놓고 대적해야 할 적대세력으로 규정한다면 그동안 주장해왔던 바대로 민주대연합이라는 낡아빠진 구도를 정면에서 거부하는 몸짓을 우선 보였어야 한다.

여기에서 항상적으로 개별주체의 발목을 잡았던 왜곡된 '연대'의 모습이 재현된다. 왜 그토록 허술한 '연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건 곧 본연의 연대, 즉 "차이를 수용하고 각개약진을 배려하는" 차원의 연대를 솔선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갖지 못했다는 원초적인 한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시민주권 회원번호 1번은 노무현입니다"라는 창립대회장의 초라한 소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친노'라는 공허한 주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자유주의 세력의 빈곤과 이런 빈한한 자들과 '연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진보좌파의 무능력이다.

어차피 정치의 알파와 오메가가 '안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해찬의 발언과 그 자리에 모인 '친노'가 주장하는 연대는 또다른 버전의 "닥치고 대동단결"임이 분명함에도, 실제 선거연합이라는 허울에 만족하면서 당장 준비되고 있는 것은 반MB에 국한된다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다.

이명박 정권을 "역사의 반동"으로 규정하는 이해찬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현 정치권을 향해 ▲ 4년 중임제 개헌 완수 ▲ 중대선거구제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의한 지역주의 극복 ▲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원안 추진 ▲ 6·15, 10·4 선언 전면적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 등을 촉구한다. 더불어 이 '촉구'의 내용은 그대로 이해찬이 요청하는 '연대'의 내용이기도 하다. 뭘 하자는 걸까?(솔까말 그 '촉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데?) 이러한 '촉구'의 내용을 위해 현 정권을 뒤엎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걸까? 반대로 이렇게 질문해보도록 하자. 이러한 '촉구'를 현정권이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 텐가? 현 정권과 연대할 것인가?

빈한한 주체의 공허한 외침은 언제나 허공을 맴돌던 메아리로 남아 기껏 자기 귀에 꽂힐 뿐이다. 이따위 연대를 이야기할 바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시민사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희망과 대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주접들 싸지 말고 니들 맘에 드는 정당에 가입해서 그 정당 소속으로 움직이세요." 얼치기같은 '연대'를 이야기하느니 차라리 그 편이 훨씬 현실정치에 적합한 모습일 거다.

이명박 정권을 "역사의 반동"이라고 규정하는 이해찬의 발상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기어코 "통 큰 단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해찬 역시 반동을 획책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해야겠다.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반동의 물결을 거스르기 위해 각개약진하자.

'친노'라 이름붙여진, 아니 스스로 그렇게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자유주의 우파들은 그들대로, 자신을 좌파라 생각하고 있는 자들은 또 그 나름대로, '중도실용'정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역시 그들 재량껏 각개약진 하자. 그게 오히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보다 실효성 있는 대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