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병 지원

일제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던 당시, 왜정 치하 조선에서 만들어진 단체 중 하나로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라는 것이 있었다. 주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 및 가솔과 중진 여류인사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명칭에서 보듯이 금비녀(金釵) 등 금붙이를 뽑아 전쟁자금으로 헌납하면서 일종의 전쟁독려행위를 한 단체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 중에 김활란이라는 사람이 있다. 모 대학 총장까지 역임하기도 했고 공보처장에 유엔총회 한국대표직을 수행하기도 했고, 1등 수교훈장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훈장은 해방 후 한국에서, 그것도 1970년에 받았다. 그런데 "애국금차회"가 애국의 대상으로 삼았던 조국은 제국 일본이었다.

 

이 사람은 금비녀, 금반지 등 금붙이만 갖다 바친 것이 아니라 전쟁터로 인력을 송출하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잘 알려진 글에서 이 사람은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좋아 죽을라고 한다.

 

거기에 더해 이 사람은 보다 직설적으로 전쟁참여를 독려한다. 예컨대 "학도병 출진의 북은 울렸다. 그대들은 여기에 발맞추어 용약(勇躍) 떠나련다! 가라, 마음놓고! 뒷일은 총후(銃後)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라. 학병 제군 앞에는 양양한 전도가 열리었다. 몸으로 국가에 순(殉)하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되었다."라는 글(조광, 1943. 12)

 

이분은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사셔서 그런지 남의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을 "생의 참뜻"이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신다. 어디 아들들 뿐이랴. 딸들 역시 마찬가진데, 그 심정이 이러하다.

 

"이번 반도 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걸어가야 될 일 ... 싸움이란 반드시 제일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가 앞으로 여자특별연성소 지도원 양성기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생도들도 황국여성으로서 다시 없는 특전이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매일신보 1943. 12. 25)

 

그래서 뭐하라는 것이었을까? 딸같은 자기 학교 학생들에게 진충보국 멸사봉공의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특전"이 뭐라고 소개했을까나?

 

비록 총칼을 들고 제국주의 전쟁의 최전선에 나가 인명을 학살한 것은 아니었으되, 멀쩡한 청춘들을 참화로 몰아넣고 뒤에서 진격나팔을 불어댔던 이 분의 업적은 '리옹의 도살자'로 불렸던 바르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 건국과정에서 많은 공이 있지 않느냐는 일부의 옹호론도 있으나, 이런 사람들이 전쟁터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 중에 만일 살아남았다면 이분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했을 분들도 많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이분에 대한 옹호론은 매우 웃기는 소리일 뿐이다.

 

어쨌건 오늘 갑자기 이분의 화려한 업적이 생각나는 것은 친일인명사전이 출간된 기념 차원에서가 아니라 어떤 분의 같잖은 글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 분은 시시때때로 같잖은 글을 올려주심으로서 행인의 즐거움이 되고 있는 대표 수꼴 중의 한 분이다. 그분의 성함은 김동길.

 

김동길 옹께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제목도 거창하게 "Freedom is Not Free"라고 걸어놓고 하신 말씀은 "전쟁터에 춤추러 갑니까, 노래하러 갑니까. 솔직히 말해서 죽을 결심을 하고 뛰어드는 것이 전쟁터가 아닙니까."라는 것. 뭐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프간 가서 죽자고 선동하는 글 되겠다.

 

김동길 옹께서는 더불어 "우리를 위해 625에 피를 흘린 사람들과 함께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달려가 우리도 피를 흘리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목청을 높인다. 사실 "우리를 위해 625에 피를 흘린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내일 모레 죽을 날이 가까와 있는 사람들이라 이번에 "함께" 가기 어렵다. 게다가 625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번 아프간 전쟁은 "옳은 일"도 아니다. 더 웃기는 건 이분은 지금까지 독신을 고집하면서 사느라고 아프간에 보낼 자제들도 없다. 결국 남의 자식들 죽으러 가라고 재촉하는 거.

 

한 갑자를 격해서 이루어지는 이 묘한 기시감의 원류를 김활란과 김동길 두 사람의 밀접했던 관계의 유추를 통해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기껏해야 누이의 스승이자 제자의 남동생 정도의 관계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넘기는 것은 김동길이 김활란과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면서 그렇게 존경한다고 표현한 것까지 잊으라는 것인데 그건 좀 불편하다.

 

어쨌든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조갑제의 표현대로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일을 한 김활란보다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피를 요구하는 김동길이 더 나쁜 X가 되나?

 

다행인 것은 21세기를 20세기 중반처럼 사고하고 있는 김동길 옹께서 "나 같은 사람도 받아만 준다면 그곳에 달려가 피를 흘리며 싸울 용의가 있습니다"라는 굳은 심경을 밝히셨다는 거. 물론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전에 불귀의 객이 될 가능성이 더 크지만 국익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아쉬운 것은 "받아만 준다면"이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지금이라도 이라크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 맨몸으로 육탄 돌격을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좀 보여주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 거다.

 

솔직히 이 글 보면서 예전에 29만원짜리가 "차라리 내가 대신 인질이 되고 싶다"는 뻘소리를 했던 일이 떠올라 피식했다. 하긴 뭐 그 전에 지가 앞장서 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큰 소리 쳤던 홍싸데기도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살고 있는 와중인지라 좀 식상하기도 하다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남의 목숨 가지고 그렇게 쉽게 왈가왈부 하는 거 아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김동길 옹, 이게 뭡니까... 아... 갑자기 최병서아저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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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15:58 2009/11/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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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저 용기 있는 분을 위해 아프칸 행 비행기표를 구입할 돈을 모금합시다. 연로하신분 맨몸으로 보내시기 보다 국방부에 청원하여 안쓰는 소총이라도 한자루 지원해 주면 어떨지... 너무 신형은 못쓰실테니 어디 칼빈 소총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구요.

  2. 죄 없는 남의 나라 인민들 처죽이는게 '백번 옳은일' 이라니 저 양반이 치매 걸렸나 와 저러는지 참 ㅋㅋ

  3. 모든 국가가 세계사의 보편적 역사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하는데
    그 단계가 앞서있다고 뒤쳐진 국가에게 강요하거나
    그들의 발전에 관여하는건 옳지 못합니다.
    미국의 역사를 개척사라 하는데
    미국의 역사는 오리지널 아메리칸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상태에서
    유럽인이 들어옴으로서 역사발전법칙을 무시하고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졋지요. 즉, 원조를 명목으로 들어오는것조차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선교도 물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