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자의 자아비판
소속되어 있는 학회에서 정기적으로 간행물이 발간된다. '민주법학'이라는 학술지다. 올해 마지막 학술지가 발간된다. 연구회장이 권두언을 올린다. 현 회장이 올린 권두언이 가슴 아프다.
제목과는 달리 내용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속해 있는 연구회의 역사, 회한, 한계, 그리고 거기 소속되어 있는 회원으로서의 역사, 반성이 주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은 이 글은 왜 신자유주의가 죽지 않는지를 처절하게 폭로한다.
용기 없는 나는 이 일기장에 지난 조국 사태 당시 속해 있는 학회에서 있었던 일들의 일부 편린들을 '주어' 없이 옮기면서 혼자 분을 삭였다.
권두언 역시 '주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사건을 경유하면서 연구회 내부에서는 "입장과 개념은 어긋났고, 민주법연이 자기문제에서 더 이상 하나의 선언도 발표할 수 없는 조직이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며, 그 진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조국이 기초했던 출범선언문을 패러디해서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 선언문을 보면 당장이라도 세상을 뒤집어 엎을 것 같은 분노와 패기가 끓어 오른다. 하지만 역시나 "그 당시에도 어쩌면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다짐이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초안을 기초한 자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다짐을 걸어놓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허덕이던 게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선언의 무게와는 별개로 초기에 연구회를 결성하고 활동했던 사람들은 가릴 것 없이 기득권에 편입했다. 민주적 법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요구했던 선언문을 함께 낭독했을 그들은 그저 이론에서만 좌파였을 뿐 삶의 모습은 자유주의의 그것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 한계가 드러난 것이 바로 이번의 사달이었다.
내가, 우리가 이렇게 위축되고 자지러지고 있는 동안, 우리가 그토록 문제시했고 적대시했고 전복해야 할 대상이라 규정하였고 마치 당장이라도 온 몸을 부딪쳐 깨야 할 것처럼 비난했던 신자유주의는 건재하게 살아 남았다.
그리고 남은 건 이 반성문 같은 권두언이다. 짧은 권두언에 조목조목 세세하게 문제들을 일일이 따지고 뜯어내지는 못하겠지만, "비틀거림도 새로운 전진도 새 술과 새 부대에게 넘기겠"다는 그 말 한 마디로 이 답답하고 지친 심정들을 토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 이 기회에 바로 이러한 사정을 나의 reset을 위한 변명으로 만들 수 있겠다. 다 떨치고 잊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