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구로 "돼지털 단지"

청소년기 생양아치짓을 하던 무대였으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철딱서니 없던 공돌이가 첫 봉급을 받아볼라고 마흔이 넘은 회사간부한테 쌍소리를 해대던 곳... 구로공단이다. 그 구로공단 들어가는 입구에 지하철 2호선 '구로공단역'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 '구로공단역'은 '구로 디지털단지 역'이라는 매우 퓨전스러운 제목으로 변해있었다. 그 역 앞에는 예나 지금이나 튀김파는 포장마차며 1000원짜린지 2000원짜린지 자명종 시계 늘어놓은 노점상이 즐비하다. 그런데 그 자명종은 어째 값이 안오를까...

 

* 이 글은 씨앗님의 [구로 '디지털 단지'를 지나며] 에 관련된 글입니다.

첫 직장, 코카콜라(지금은 없어졌다) 뒤편으로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때 신흥정밀이었다가 박영진 선배가 분신하고 난 후 '한국 마이크로'라는 이름으로 변신했던 필기구 제조회사. 지금은 망했단다. 줴길...

 

암튼 집이 시흥에 있었는데, 그 알량한 백 몇 십원 차비를 아끼기 위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고 했던가... 좀 더 빠른 길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지름길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 길은 다름아닌 그 유명했던 "독산동 도살장(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골목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다. 기억에 큰 길 따라 가는 것보다는 한 10분 정도 빨리 갈 수 있는 골목길이었다. 새벽 6시 40분까지는 회사에 도착해야했던 그 당시, 그렇잖아도 아침잠 많은 행인에게 10분은 징글맞게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벽녘에 출근을 할 때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몰랐다. 워낙 아침에 쌕쌕거리면서 허겁지겁 날라가다시피 뛰어 공장을 가는 통에 길에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살펴보질 못했다. 그러다가 그 골목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 것은 야간근무를 들어가게 되면서부터였다.

 

항상 비릿한 피냄새가 베어있던 그 골목길. 그 골목길에 소머리가 수십 수백두씩 쌓여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저 창자 끝에서부터 설날 먹었던 떡국이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길을 피해서 다녔다. 그러나 뭐 어쩌랴, 10분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은 소머리 즐비한 그 골목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젓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비윗장을 길러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까, 그 때부터 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목 아래 몸통부분은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갔을지 모르는 그 소들의 머리... 어떤 놈은 혀를 길게 빼물고 있고, 어떤 놈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고, 어떤 놈은 주둥이로 피를 쏟았는지 턱주변에 핏국이 떡이 져 있고, 어떤 놈은 마치 득도한 놈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고, 어떤 놈은 웃고 있고, 어떤 놈은 울고 있고...

 

그렇게 죽어간 소들의 면상을 쳐다보고 다니다가 그 골목 뒤로 또 다른 골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길이나 뒷길이나 시간상으로는 마찬가진데, 아무튼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지 맘에 들면 그 길이 빠른 길이 되는지라 뒷길에 마음이 간 행인, 그 다음부터 뒷골목의 행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는 돼지 머리가 또 산처럼 쌓여있었다. 소머리를 처음 봤던 때의 충격은 없었다. 워낙에 소머리에 단련이 되어 있었던데다가 어릴적부터 돼지머리는 자주 보아오지 않았던가. 해서 그 뒷골목의 풍경은 소머리가 쌓여 있던 앞골목보다는 별로 살풍경한 것이 아니었고, 돼지들의 표정이 소들의 표정보다 또 더욱 다채로웠다. 이넘들은 웃는 표정도 한결같지가 않다.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웃고 있는 넘도 있었고, 어떤 넘은 엄청 부끄럼을 타는 듯 배시시 웃고 있는 넘도 있었다. 가끔 엄청나게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도 있었는데, 그런 녀석 얼굴을 보면 이 머리는 고사상 올라가기 다 틀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야간근무 주간이라 저녁나절이 되어서 공장을 향해 가고 있는데, 문득 한 구석의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낮동안 벗겨졌었을 돼지 가죽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보통 돼지들은 가죽을 따로 벗기지 않는데, 그날따라 돼지 가죽을 벗겼는지 온통 돼지 껍데기들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뻣뻣한 돼지 털이 저녁햇살을 받으며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랬다. 바로 그 곳이 구로 "돼지털 단지"였던 거다......

 

18 년 전 구로 돼지털 단지는 아직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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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02:12 2005/01/25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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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님 블로그에서 씨앗 글에 관한 트랙백을 보니 무진장 세상이 좁아 보이면서 또 무진장 반갑네요. 씨앗과 저는 그 동네 주민이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씨앗은 하안동, 저는 독산동 주민이지요.) 종종 동네에서 밤늦은 시간 만나 술을 마시거든요. 저희 집은 행인님이 묘사하신, 그 돼지털이 빛나는 우시장 길 근방이에요. 짐작컨대 제가 요즘 보는 그 풍경은, 행인님이 보신 예전의 그 풍경과 그닥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됩니다.

  2. 저는 요즘 우리 동네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숨결을 많이 느끼고 살지요. 수많은 공장들의 일부는 삐까쩍한 디지털 단지로 (이름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또 한켠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요즘도 우리 동네에선 낮시간에 출입국의 단속차가 출몰해서 이주노동자를 가득가득 태워 멀리멀리 실어가고 있지요. 개돼지의 시신들과 함께 인간 취급 못받는 이주노동자들의 몸이 개돼지처럼 끌려가는 걸 목격해야 하는 동네랄까요.

  3. 육순이 넘어서도 봉제공장 노동자의 삶을 사는 울 엄니께서 항상 안타까워하시던 것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었죠. 필리핀에서 왔었던 여성노동자 2명이 울 엄니에게 "엄마, 엄마"하면서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네요. 필리핀 돌아갈 때 어찌나 붙잡고 설피 울던지... 진짜 이산가족 헤어지는 장면 같아서리... 피붙이 가족도 이렇게 불효를 하는데... 아, 그나저나 마님은 블로그도 폐쇄하시고... 이젠 어딜 가야 뵈올런지여??? ㅜ.ㅡ 제 링크블로그 변경해야하는데...

  4. 저도 아침마다 버스로 그 도살장을 지나 출근을 하지요. 마님이 언급한 이주 노동자들의 곤핍한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요. 아침 출근이 언제나 씁쓸해요.

  5. 씨앗/ 우시장골목을 지나면, 꽤 입소문이 났던 고깃집들이 있었는데,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육개장이며, 곱창이며, 암튼 굉장히 신선한 고기들이 테이블을 메우던... 하긴 뭐 요즘은 육식이 별로 땡기질 않아서 그닥 생각이 나진 않습니다만...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꽃필 그날이 꼭 오겠죠. 출근길이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

  6. 저도 결혼전까지 매일 그 길을 지나다녔지요.집이 하안동이라서.가끔 신촌에 나갈 일이 있으면(음..생각해보니 자주 다녔네요) 구로공단역에서 전철을 타곤 했지요.반가워서 아는 척... ^^

  7. 알엠/ 그러고 보니 돼지털 단지쪽에 아는 분들의 족적이 많이 남아 있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