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토욜밤을 꼴딱 새고 일욜 새벽 고향으로 벌초행.

덕분에 밤샘 명목으로 맨유와 토트넘의 경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으나...

 

새벽 5시 10분에 당사를 나가 3시간에 걸쳐 버스타고 전철타고 기차타고 걸어서 고향 도착.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벌초 시작. 어른들은 벌초라고 하지 않고 금초라고 하시는데.

 

제초기로 풀을 베는 것은 일단 빠르다. 빨라서 좋은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김수영이 그랬던가,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이라고.

풀은 제초기보다 빨리 눕는다...

 

제초기로 일단 깎은 곳은 전기바리깡으로 밀어버린 스포츠머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제초기 지난 자리를 갈쿠리로 끌어내면 누웠던 풀들이 일어난다.

결국 군데 군데 삐죽삐죽 풀들이 들고 일어서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낫으로 하면 이런 일이 없다.

 

그러나 낫으로는 하지 않는다. 제초기를 사용한다. 빠르니까...

봉분 하나에 너댓명이 붙어 30~40분을 낫질을 하는 것과 한 명이 제초기를 써서 10분도 되지 않아 봉분삭발을 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낫이 아니라 제초기이리라.

 

벌초 끝내고 3촌, 4촌, 5촌, 6촌이 모여 먹는 밥.

올해는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훨씬 적다.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그렇다는데, 진짜 그런 건지...

 

지평막걸리가 나왔다. 면의 술도가에서 직접 받아온 거란다. 말통에 하나 들어있는 기름기 잘잘 흐르는 지평막걸리, 그 빛깔과 그 향내...

 

술 끊은 것이 웬수다. 저걸 맛도 볼 수 없다뉘... ㅠㅠ

돌아오는 내내 지평막걸리의 향기가 코에 아련하다.

막걸리 퍼먹는 꿈을 꾸다 서울 도착. 다시 당사.

 

올해 벌초 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9/11 11:20 2006/09/11 11:20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hi/trackback/594
  1. 그 향기로운 지평막걸리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듯 하오...안됐구려~ 근데, 술은 도대체 언제까지 끊을셈이요?? 나 죽기전에 행인과 술한번 먹고 죽을수 있을까 하오만...

  2. 아~~~ 안타깝도다!!! 그 막걸리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행인의 마음!!! 아 갑자기 막걸리 생각나네... 저도 술을 끊어볼까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의지박약 때문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서울에 제대로 왔을까 의문이네요... 아~~~ 암만 생각해도 아깝다, 그 막걸리...쩝쩝...

  3. 퍼왔어지... 그냥 오다닝... -,.-

  4. 멒/ 펴~~~엉생이요... ^^;;;

    곰탱이/ 저도 술 끊기 전이었다면 아마 서울 못왔을 겁니다. ㅠㅠ

    말걸기/ 그게 술 끊은 넘에겐 보여주는 것도 아깝다는 거 아녀...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