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5)

암튼 이넘의 뚝방이야기를 계속 하다가는 지지리 궁상이었던 집구석 사정이 낱낱이 밝혀질듯 하다. 이게 뭐 자랑이라고(그렇다고 해서 숨기고 감출 것이야 없지만서두) 계속 이렇게 써야할까 잠깐 고민해 봤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까맣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나마라도 추억이라는 것을 간직한 삶이라는 것을 느껴본 것도 아주 오래 전의 일. 언제 다시 이런 회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왕 시작한 거 기억나는 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함 긁적여 볼란다.

 

뚝방 골목 아래 평지 쪽으로는 그래도 판자집보다는 쬐끔 나은 집들이 있었다. 낫다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한 때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일이 있다. 마당 있는 집에 우리 식구만 산 것은 아니고, 거기서도 역시 단칸방 사글세 신세이긴 마찬가지였다.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닌데, 마당이 있고 그 마당을 빙 둘러 집채들이 있었고, 방이 여러 개 있었다. 행인만 보면 좋아라 하던(!) 공장다니던 누나들이 있었고, 외할머니와 같은 연배의 할머니도 한 분 사셨던 거 같고, 제대로 아귀도 맞지 않는 나무문짝마다 사람들이 들어가 앉아 살고 있었다.

 

이 집에서 기억나는 것은 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었다는 것. 뚝방 아래 사는 것과 삶의 질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몇 집이 함께 쓰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침마다 물받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뭐 그 어릴 때는 그게 행복한 것인지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수도꼭지 이외에도 이 집에서 기억나는 것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문과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집채에 쬐끄만 마루가 있었다는 거다. 무슨 대청마루같은 널찍한 마루가 아니라 방마다 방문을 연결하는 좁은 마루였다. 어른 한 사람이 엉덩이를 걸치면 딱 맞을만한 폭의 마루가 집채 이쪽과 저쪽을 길게 이어놓고 있었다.

 

이 마루는 행인의 공연장이었다. 어릴 때 노래에 일가견이 있었던 행인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꼬마 가수노릇을 했던 거다. 물론 사춘기 지나면서 변성기 들어서자 성대가 변하면서 오늘날 요모양이 되었지만...

 

암튼 행인이 그 좁은 마루를 무대삼아 노래를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어른들이 마당에 모여 앉아 멍석깔아놓고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때 노래 한 곡 쫘악 뽑아주면 시원한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먹을 수 있었다는 것. 당시에는 하드통에 하드를 집어넣어가지고 들쳐메고 돌아다니면서 '아이스 케~~키~~'를 외치던 하드장사 아저씨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때였다. 아이스케키라고 해봐야 무슨 분말 쥬스가루에다가 사카린 듬뿍 쳐서 꼬챙이 하나 꽂아가지고 기냥 얼려놓은 것인데, 그 때 하나 20원이었는지 두 개 30원이었는지 어쨌는지 그것도 없어 못먹을 때였으니까.

 

동네 할배와 할매들이 "악아, 니 노래 한 번 하면 아이스케키 사주지"하는 말에 속아 행인은 노래를 불러제꼈더랬다. 당시 행인의 18번은 신중현님의 "미인"... 물론 이제 너댓살 된 넘이 뽕짝도 구성지게 불러댔는데, 어쨌거나 이 "미인"이라는 노래가 어린 행인의 마빡에 꽂혔고, 암튼 이 노래만큼은 누가 뭐래도 자신있게 불렀던 것 같다. 더운 여름 저녁나절, 이렇게 노래 몇 곡 부르면 땀이 삐질거리면서 흘러내리는데, 게다가 행인은 무척 땀이 많은 체질이었던 거다. 지금은 좀 많이 나아졌지만서두...

 

꼬맹이가 땀까지 삐질거리면서 열창을 하면 어르신들 중 한 두 분이 아이스케키를 사주신다. 매일 사주시는 사람은 달라졌다. 땀 빼고 나서 먹는 아이스케키의 맛은 아마 꿀맛이었을 거다. 그러니 그렇게 어른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노랠 불러 제꼈겠지...

 

그러나 꼬맹이의 바램처럼 아이스케키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때가 잘 맞아서 공연이 벌어지던 그 때 마침 "아이스케키 아저씨"가 근처를 지나가야 되는 거였다. 동네 돌아다니다가 진작에 아이스케키가 다 팔렸거나 물건을 떼지 못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제 때 근처를 지나갈지라도 아이스케키 먹기는 다 글른 일이다. 아이스케키 아저씨가 몸이라도 좋질 않아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스케키 아저씨가 제 때를 맞춰 나타나지 않을 때는 시키지도 않은 앵콜을 부르면서 이제나 저제나 아이스케키 아저씨가 나타나기를 바랬던 듯 싶다. 하지만 내처 그러고 있어도 님은 오시지 않고, 밥 때 되서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 버리면 별무 소득 없이 무료공연은 막을 내려야 했다.

 

근데, 지금도 궁금한 건 왜 그 때 "미인"이라는 노래에 삘이 꽂혔을까 하는 거다. 마빡에 피도 안 벗겨진 것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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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7 23:07 2007/01/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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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어린것의 선곡도 참!... 수녀님과 비구니를 싫어 한 이유가 있었구만..ㅎㅎㅎ

  2. 헉 오른쪽에 무서운 이사쿠(?)아저씨가 있네요...ㅋㅋㅋㅋ

  3. libertysunj/ 헉... 그그그그그그 그건 갠적인 비밀인데... 이를 알고 있는 분은 누구... ㄷㄷㄷ

    pilory/ ㅎㅎ

  4. 개토도 이런 추억있었으면 좋겠어요...조낸 따듯한 느낌...산오리님 추억도 멋지던데...행인님 추억도 멋져염...

  5. 개토/ 이게 추억일 때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당해보면 완죤 깓뗌이라는... ㅠㅠ

  6. 이 말했다가 사무실에서 매장당할 뻔 했는데;

    제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의 원장 아들(이자 위층 태권도장 사범-)이 저를 무척 예뻐해서, 매일 아이스크림을 사줬다는...
    근데 그 이유는 제가 장덕이랑 닮았다는 이유였어요.
    사실, 중학교 때도 우리반에 한명이 그렇게 우기는 애가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이 얘기 하니 다들 거품무는 모드-_-;;;
    전 장덕 얼굴도 모른단말에요 ㅠㅠ(이제 대충 감은 오지만)

  7. 스밀/ 아... 장덕... 현이와 덕이의 멤버였고, 참 괜찮은 가수였는데... 스밀의 분위기가 장덕과 비슷하다는 것은... 음... 多言數窮不如守中...

  8. 개명했습니다 라디 새출발

    흑흑 다언수궁불여수중ㅠㅠ
    이미 궁지에 몰리셨어요!

  9. sia/ 저 때에는 數를 '수'라고 읽지 않고 '삭'이라고 읽습니다. ㅎ

  10. ㅠㅠ 저는 행인님의 꽃미모를 항상 칭송해왔건만...부질없어요.
    이럴 때 어울리는 한자는 무엇인가요?

  11. sia/ 그나저나 지난 블로그를 완전히 없앴군요... 아깝다...

  12. sia/ 萬事休矣...

  13. 아웅-
    전 이거 보고 장덕 얼굴 이너넷에서 뒤져보기까지 했다는-
    그치만 요절했다면서요! 샤님, 그분 닮지 마세요-_-;
    그나저나 행인님 꽃미모 맞아요- 우후후훗-

  14. 행인/덧글도 안 다셨으면서...이번에도 안 다시면 또 날릴테요-_-;

  15. 당고/ 덕이는... 왠지 좀 어두운 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요. 노래는 참 밝게 불렀는데도 말이죠. 반면 스밀...이 아니라 샤는 그런 면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닮았다고 하기엔 분위기가 쩜 다르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구요. ㅎㅎ

    그나저나 감솨~~ ^^;;;

    샤/ 오... 덧글 있었을텐뎅... ㅠㅠ

  16. 왠지 기분 좋은데요. 그런 면이 없는 게 나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런 면이 없는 제가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