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 22년

#1

 

이분들만 보면 괜히 답답해진다. 노구를 이끌고 투쟁의 현장마다 제일 앞에 서지만,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애를 쓰지만, 투쟁 현장에서 한 마디씩 하는 '원로'들의 대접을 받는 일은 그닥 흔치 않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하시는 일들이 아니겠지만서도 왠지 서글프다.

 

창립 22주년. 아이가 태어나 청년이 될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당연히 존재하는 그 자체로 슬픔의 모순일 수밖에 없는 민가협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회원들의 주름살이 해가 바뀔 때마다 깊어지고, 갈수록 거동 불편한 모습이 역력한데 이분들이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진다.

 

#2

 

지난 해 인권콘서트. 성소수자들이 무대에 올라갔다. 민가협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이런 사건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민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름에서 벌써 알 수 있듯이 이 조직은 그 근원이 가족이다. 그것도 "정상가족".

 

이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회원들은 자기 자식이, 일가가 무도한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감옥에 간 사람들이다. 이분들이 운동을 시작한 근원은, 물론 이를 정형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었고, 소중한 가족을 감옥으로 보낸 권력에 대한 분노였다.

 

이분들에게 성소수자 문제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종의 교란이었을 게다. 그러나 민가협의 인권을 향한 이상은 이러한 혼란조차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이라는 틀에 지극한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왔던 분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던 그 틀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분들은 가당찮은 '이해'를 운운하기 보다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에 동의했다.

 

#3

 

민가협이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못해도 줄잡아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초창기에는 많은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민가협에서 성소수자의 인권문제까지 신경써야할 이유가 있는가 등등의 비판이 외부에서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민가협은 단순히 '감옥에 들어간 내 자식'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영역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어찌 보면 끊임 없이 사회의 모순을 발견해내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이분들이 이 사회에서 가장 "젊은" 분들이 아닌가 싶다.

 

#4

 

창립 22주면 행사는 무척 조촐하게 치루어졌다. 식순은 보통 다른 행사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과정은 따뜻하고 생동감 있게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진 않았다. 대부분이 직접 활동을 하고 있거나 또는 민가협과 관련을 맺었던 분들이었다. 그리고 또 거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매우 연로하신 분들이었다.

 

어디 행사만 있다고 하면 부리나케 달려가던 정치인들도 보이지 않았고, 한 자리 한다는 사람들 역시 보이지 않았고, 하다못해 그 흔한 시민단체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FTA 반대투쟁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괜히 서운했다. 한 때 운동했다는 사람치고 민가협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당에서조차 아무도 오지 않았다. 행인이야 뭐 기냥 그런데 가는 사람이고 마침 연락까지 주셔서 기분 좋게 달려갔지만, 적어도 당은 이런 날을 기억하고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민가협에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어쨌든 당에서도 민가협의 창립총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거 같아 씁쓸하다.

 

#5

 

인권단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민가협도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2006년 결산을 보니 상근자 한 사람이 월 50만원 전도의 활동비를 받으면서 민가협을 꾸려갔고, 그나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상근활동가 한 사람을 휴직으로 처리하고 인건비 없이 활동을 계속 했다고 한다.

 

총회를 진행하는 어머니들과 활동가들의 맑은 웃음을 보면서 속이 더 아려왔던 것은 주머니 사정 훤히 보이는 상근비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사람들이 더 활기차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로또라도 맞아야 하는 걸까...

 

민가협. 모든 분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민가협이 하루 속히 해체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인권콘서트도, 총회도 더 이상 하지 않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그 날은 이 땅에 박해받는 이들이 없는 날일 것이다. 신념으로 인해 감옥살이하는 사람이 없는 날일 것이다. 그리하여 민가협 모든 회원들이 기쁘게 웃으면서 해체를 선언하는 날일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결코 아프시지도 마시고 쓰러지지도 마시고 그렇게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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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12:25 2007/04/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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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또가 된다면 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도 같죠.^^;; 일정기간에 한 곳씩 후원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다음엔 민가협에 후원하는걸 고민해봐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인님도 역시, 아프지마세요.

  2. 박노인/ 맞습니다. 아프지 말아야 할 분들이 단지 민가협의 어르신들만은 아닐테죠. 저도 아프지 말아야겠구요. 박노인님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