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노블레스오블리주

노무현이 대연정을 이야기했을 때, 그게 한나라당을 향한 구애의 손길이라는 것임은 애들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나라당이야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입만 열면 지지율이 하락하는 노무현 및 열우당과 연정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당시에는 노무현 혼자만 애달픈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노무현의 일방적 프로포즈에 대해 겉으로는 시큰둥한 한나라당이었지만 속마음이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평소 철천지 원수같이 지내던 노무현측에서 대연정을 이야기한 것은 일단 한 수 접고 들어오겠다는 일종의 항복선언이었던데다가 어차피 공중분해될 열우당의 실질적 수장이 무릎을 꿇는데야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나?

 

노무현의 애타던 바램은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싸고 성취가 될 모양이다. 전여옥은 한미 FTA의 비준을 위해 노무현과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똥고집으로 똘똘 뭉친 노무현이 일자주름 진하게 그리면서 "닥치고 FTA!"를 외치는 이 순간 전국은 FTA 반대투쟁으로 달아오르고 이건 곧장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돌변한다.

 

지난 4년 간 치적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던 노무현, 임기 내내 칼국수 먹고 뻘타만 치던 YS가 OECD가입을 최대의 치적으로 삼고 있는 전범을 따라, 정치적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미 FTA를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고자 분투하고 있다. 이 와중에 든든한 후원자로 전여옥이 나선 것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소원성취, 전여옥으로서는 정치적 선전으로 그만. 이 와중에 의심스러운 것은 세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전여옥이 박근혜 진영에 심어놓은 이명박의 'X맨'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정황상 그럴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새록새록 드는 순간인데, 이건 별개로 하고...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한 노동자에 대해 전여옥, "막장인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렵게 살아오신 분이라는 표현을 적나라하게 하느라 그랬던 모양인데, 사실 이 표현을 쓰려면 전여옥은 자신과 한나라당이 해온 짓을 돌이켜보아야할 것이다. 누가 그 사람을 일용직노동자, 택시노동자의 삶을 살도록 만들었던가? 그 사람을 "막장인생"으로 몰아 넣었던 자들이 도대체 누굴까?

 

그보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왜 택시노동자가 "막장인생" 취급을 당해야 할까? 택시노동자도 엄연히 자기 힘을 들여 노동을 하고 그 돈으로 세금도 내고 먹고 산다. 이번에 분신한 노동자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이 꿈꾸던 새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까지 했다. 그런 사람을 "막장인생"이라고?

 

이 사회에서 "막장인생"이란 말은 갈데까지 가다가 결국 광산노동자가 된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고 언제나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환경에서 노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빗댄 말이었던 거다. 그런데, 항상 궁금한 것은 왜 이들의 노동과 이들의 삶이 막장인생이 되어야 했는가? 그들이 자신의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다른 누구보다도 보람을 얻으며 살 수 있도록 했다면, 그리하여 광부라는 직업이,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 어느 직업에 비추어 보더라도 손색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면 그들이 스스로, 주변에서 그들을 "막장인생"이라고 불렀을까?

 

전여옥은 가당찮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분신한 노동자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고 전제한 그는 "왜 온갖 불우한 일을 겪은 15년 막장인생, 벼랑끝 인생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고 비통해했단다. 그런데 전여옥이 막장인생론을 꺼내든 이유는 분신노동자의 처지를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여옥은 이 말을 전제하고 "좌파들은 늘 우파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요하면서 왜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좌파 지도자들은 대오각성,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남보다 앞장서서 분신하란 말인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전여옥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요즘 들어 "막장"이라는 말이 조금 다른 용도로 쓰인다. '갈 데까지 간' 이란 의미도 있지만 요즘은 '함부로 마구 나대는'이라는 의미로 인터넷 은어가 되어 돌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를 막장인생으로 몰아가며, 지는 안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남에게 강요하는 전여옥이야 말로 인터넷에 유행하는 의미에서 '막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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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11:33 2007/04/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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