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전태일을 조영래로 만들어주나?

행인님의 [입학정원논의가 아닌, 시스템으로 로스쿨을 이야기하라!] 에 관련된 글.

민주노총에서 한 자리 하고 계신 허영구씨가 당게시판에 "교육부의 로스쿨 정원은 반노동자 시각의 반영"이라는 글을 올렸다. 2007년 10월 24일 열린 토론회에서 토론문으로 내놓은 글인갑다. 이 글에 대한 소회를 결론적으로 밝히자면 허영구씨, 로스쿨이 뭔지 모르면서 제발 이런 글 좀 쓰지 않았으면 한다.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짧게 덧글을 달았더니 그거 확인도 하지 않았나보다. 게다가 허영구씨, 원래 민주노동당 당론이 로스쿨 반대라는 사실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줄기차게 당게에다가 로스쿨 관련 글을 올린다. 허영구씨 당원 아닌가?

 

허영구씨가 엉뚱하게 새사회연대나 법대학장회의 같은 곳의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면서 노동자 중심의 로스쿨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은 부라퀴 이빨빼는 소리로 헐리웃 점령하겠다던 영구의 허영심과 유사한 일이다. 최근 모 신문에서 전혀 다른 필자 두 사람이 쓴 칼럼에 연속적으로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로스쿨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 한국사회]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는 로스쿨/정정훈

 

[시민편집인칼럼] 노동자가 변호사가 될 수 없는 나라/김형태

 

공교롭게도 칼럼 필자 두 분 다 변호사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것은 이거다. 당신들은 전태일인 적이 있었나?

 

여기서 행인의 개인사를 잠깐 언급하자. 공고출신으로 공장에 들어가 '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해서 공장생활을 했다. "반공민주정신의 투철한 애국애족정신"으로 무장했던 행인, 노조활동하는 사람을 "빨갱이"와 똑같이 바라봤던 때도 있었을 정도로 일하는데만 급급하며 살았다. 왜?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까.

 

그러다가 갑작스레 정신이 훼까닥 돌아서 대학이라는 곳엘 들어왔다. 가난한 집구석 덕분에 일찌감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각성을 한 행인, 노가다판을 전전하면서 학비 벌어 겨우 4년제 대학을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항상 모자랐고, 환갑이 넘어서도 미싱을 밟고 있는 어머니와 지 벌이도 바쁜 동생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이라는 곳을 다녔다. 은행 대출을 하고 지도교수 연구활동에 꼽사리 껴가면서 학비를 마련했고, 겨우 겨우 과정을 마쳤다. 공부만 충실히 해서 장학금 받아가며 학교를 다녀도 모자란 판에 성질 솟구치게 하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같잖은 일에 신경 쓰느라 장학금은 꿈도 꾸지 못했다.

 

행인은 그래도 잘나간 편이다. 행인처럼 어려운 환경에 실업계 고등학교 나와 지 입에 풀칠은 지가 알아서 하는 수많은 현장의 노동자들, 언감생심 행인처럼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대학 갈 엄두도 내기 어렵다. 자기 월급봉투를 바라보는 사람이 지 혼자면 모를까, 부양가족이라도 있는 판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대학은 무슨 얼어죽을...

 

잠깐 계산을 해보자. 어림잡아 행인이 대학 4년을 다니고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는데까지 들어간 돈이 얼마일까? 학비 이외에 교재비며 식비며 차비며 잡비며 생활비 일체를 월 30만원씩만 쳐도 그것만 연간 360만원이다. 해마다 등록금 오른 거 계산해서 평균만 잡아도 6년(대학 4년 + 대학원 2년) 간 연 평균 700만원을 치면 학창생활 6년 동안 해마다 연 평균 순전히 1000만원이라는 돈이 공부하는데만 들어갔다.

 

자, 이 땅의 전태일들에게 물어보자. 잘 다니던 직장 때려 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연간 1000만원을 써가면서 7년(대학 4년 + 로스쿨 3년)간 학업을 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용~!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로스쿨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대학 4년은 어떻게 다닐 건가? 부양가족은 어떻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현행 제도에 따라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가능성은 몇 %나 될까? 로스쿨 지지자들은 '전태일'을 '조영래'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로스쿨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예컨대 모 대학 교수께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국제경쟁력 있는 변호사의 양성, 다양한 학부 경험자의 전문법조인으로의 진출 기회 보장,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귀족법조 영역에의 진입통로를 개방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서" 로스쿨이 출발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따라서 정원제한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왜곡된 사법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법률서비스형태를 추구하자는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로스쿨을 만들자는 "국민적 공감대"였나? 사회적 취약계층을 어떻게 로스쿨로 유입시키겠다는 것인가? 법령에서 이야기하는 20%의 장학금 제도로? 그 장학금제도가 과연 누구한테 돌아갈까?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전태일'에게? 천만의 말씀이다. 적어도 4년제 대학을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현장의 '전태일'이 로스쿨의 장학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 그 4년간 대학다닐 돈은 누가 주나? 로스쿨이?

 

로스쿨법 찬반론이 원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을 당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는 위 칼럼이 실린 신문사와 함께 "로스쿨 지지자들의 편지"라는 릴레이 기고를 한 바가 있다. 그 기고 중에 박경신 교수가 쓴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글이 있다. 그 충정은 이해하겠으나, 박경신 교수는 뭔가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 아니라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거기 관심 둘 여력이 없다. 최소한 '근로기준법'이 자신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태일'이 다니던 공장을 때려 치우고 4년제 대학을 다닌 후 '로스쿨'에 들어가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밟을까?

 

현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전태일'은 어떻게 해서든 악착같이 돈을 벌어 자식들을 로스쿨에 집어 넣던지, 아니면 자식마저 로스쿨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소주나 한 잔 빨던지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마치 '전태일'이 '조영래'가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로스쿨 입학정원을 늘리면 무수한 '전태일'들이 '조영래'가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호도한다. 정작 자신들은 '전태일'이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며, 허영구씨 같은 경우는 자신이 '조영래'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런 소리들을 하고 있을까?

 

적어도 위에서 언급되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로스쿨을 이야기하고 정원증원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막무가내로 비난받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단 로스쿨이라는 새로운 학제의 도입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비록 정정훈 변호사의 경우 '전태일'일 '조영래'가 된다는 전제 하에서만 로스쿨을 찬성한다는 단서를 달고는 있으나 그런 전제가 거의 실현가능성 없는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을 것이다.

 

또다른 '전태일'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하여 미리 '조영래'같은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사법제도개혁의 골자라고 한다면, 진입장벽을 하염없이 높여버리는 로스쿨이라는 제도는 원천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제도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면서, 여기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본전생각일랑 접어놓고 '조영래'가 되어 '전태일'을 찾으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국 대학이 국공립대학이 되고, 학비걱정 없이 누구나 원하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그 때는 '조영래'로 변신하는 '전태일'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로스쿨이 도입되면 갑자기 '전태일'이 '조영래'가 된다고 주장하거나, 입학정원을 늘리면 무수한 '전태일'이 '조영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황되다.

 

다시 묻는다. 그런 주장하시는 분들, 당신들은 과연 '전태일'이었던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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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11:54 2007/10/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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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26 21:45

    행인님의 [로스쿨은 전태일을 조영래로 만들어주나?] 에 관련된 글.   트랙백을 걸은 위 포스팅에서 행인은 예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로스쿨 지지자들의 편지'를 인터넷 한겨레에 연재하는 과정에 고려대학교 박경신 교수가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전혀 이분의 의견에 동의하지도 않거니와 만일 전태일 선배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