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뼈마디에 구멍이 생기시나이까...

휴가 기간 동안 빡시게 굴르고 뒤집어지고 엎어지면서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줸장... 다리 힘 다 빠졌네...

그랬다. 과거의 행인이 아니었던 거다. 허벅지는 웬만한 경사로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비탈에서 엎어지고 계곡에서 자빠지는 와중에 행인의 모든 관절과 근육은 과거의 화려했던 운동신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휴가의 생고생을 통해 또 하나 얻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어느 순간 온 몸의 운동신경이 100% 활용된다는 거다. 평소 생사에 달관한 자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던 행인이었건만, 6시간의 사투가 계속 되는 동안 "아, 이러다 죽는 거 아녀??"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뇌에 빠졌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생사에 달관은 고사하고 죽을까봐 엄청 쫄았었다는 거다. 음... 쪽팔리군...

 

암튼 이러한 사태를 경험한 행인, 더 이상은 체력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다시 런닝을 시작했다. 땡볕 아래서 겨우 약 5km를 달리고 난 후 다시 한 번 행인의 머리속에는 "이러다가 뒈지는 거 아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아... 생사의 거리여, 그 아득함이여.



살아남기 위한 수칙의 제일은 우선 자신의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산중의 생존을 위한 사투와 땡볕 아래서 무너져 내리는 행인 자신을 보며 깨달은 것은 체력의 문제가 단지 운동의 부족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거였다. 그렇다. 평소 섭생을 지나치게 무시했던 과오가 몸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던 것이었다.

 

사실 자취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밀림의 짐승이나 평원의 하이에나 내지 사자와 같은 식성을 갖추게 된다. 용맹성은 전혀 관계 없다. 오직 먹는 것만 국한해서 그러한 짐승들과 같아진다는 거다. 즉, 있을 때 먹고 없으면 굶는다 뭐 이런 식생활 습관이 형성된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메는 하이에나보다는 킬리만자로에서 얼어죽는 표범이 되고 싶다고 쌩 구라를 깐 조용필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21세기가 간절하게 조용필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21세기 되고 보니 조용필도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아자씨가 되어버렸다. 근데 뭔 킬리만자로에 얼어죽을 표범이냐...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

 

자취생활 10여년, 집떠나 홀로 산지 18년만에 형성된 식생활습관은 이렇다.

우선 있을 때는 철저하게 먹어치워야 한다. 뱃가죽이 부풀어올라 손대면 톡하고 터질 지경이 되더라도 이 때 먹어두지 않으면 앞으로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철저하게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눈 앞에 있는 음식 절대 남기면 안 된다.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생존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자취생에게는 이러한 낭만이 통하지 않는다. 남긴 음식은 조만간 후회가 되어 뇌리에 잠복하게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자취생은 절대 음식의 맛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취생이라고 해서 혓바닥의 미각기능이 완전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쥐뿔 가진 거 없는 자취생일지라도 다 같은 인간의 혓바닥이므로 맛 있고 없는 거 안다. 알지만 머리 속으로만 맛의 유무를 따져야할 뿐 그 내용을 주둥이 밖으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먹기도 바쁜데 언제 맛있니 없니 이빨을 까고 있겠는가?

 

다만, 자취생도 두 부류가 있다. 없을 때 깨끗하게 굶는 부류, 그렇지 않고 끊임없이 빈대붙을 물주를 탐색하는 부류. 전자의 경우 무척 고고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는 거의 대부분 주머니에 돈푼이라도 있을 때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진짜 뱃가죽이 등가죽과 접촉현상을 보이게 되도록 허기진 넘이 가진 것도 없을 때는 빈대라도 붙을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도 크나큰 능력이다. 아니 그런 빈대붙을 넘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할렐루야~~인샬라~~나무아미타불 밥세음보살...

 

그러나 벌어먹고 살 능력이 있는 자취생이 그렇지 못한 자취생처럼 산다는 것은 이건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벌어먹고 살 능력이 생기는 순간 먹거리에 관한 야생의 본능은 지가 알아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오늘날 행인처럼 건강을 위한 섭생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개뿔... 가진 것도 없는 넘이...

 

암튼 서론이 길었다. 본문은 별 거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 들렀던 밥집에 대한 짧은 소회가 다니까.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민은행 바로 뒷 건물 지하에 두부집이 있다. 순두부찌게와 두부전골이 주무기인데, 섭생을 생각하기로 한 행인에게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묘한 설레임을 가지게 한다. 그것은 이상의 고뇌와 현실적 한계가 충돌하는데서 비롯된다.

 

이상의 고뇌라는 측면은 이거다.

두부. 이건 완전식품이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 바로 콩으로 만든 절정의 음식이다.

음.. 뭐야 그럼. 소는 걸어다니는 콩고긴가? 암튼.

이 콩의 식품영양학적 가치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별로 이야기할 것이 없다. 사실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만큼 아는 것이 없다. 행인은 식품영양학 전공이 아니다... 헙...

 

암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두부가 뼉다구를 튼튼하게 하는 아주 귀한 음식이라는 거다.

그저 뼉다구 튼튼하게 한다고 뼛국물 우려낸 설렁탕이나 멸치뭉탱이를 계속 먹어치우고, 칼슘 강화된 소젖을 쭉쭉 빨아먹는 사람 많은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 두부를 많이 먹어야 몸 속에서 칼슘의 합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게 쏙쏙 뼉다구로 돌아간다고 한다.

 

더구나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근육을 생성하고 강화하는데 콩만한 음식이 없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콩밥, 콩장, 콩국수는 물론 두부, 비지, 순두부와 같은 콩 가공물과 된장, 청국장과 같은 콩 발효식품을 무진장 개발하여 후손들의 건강생활을 보장해주셨다. 바로 그렇기에 섭생에 신경을 쓰기로 다짐한 행인의 입장에서 이 두부는 언제나 가까이 하고 뱃속으로 보내주어야할 필요식품이라는 이상의 고뇌가 정수리를 후려치고 꼬리뼈를 간지르는 것이다.

 

반대로 현실적 한계라는 것은...

역시 주머니에 쩐이 없다는 거다.

이넘의 여의도는 음식값이 상당히 센 편이다. 겨우 겨우 한 푼 두 푼 모아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항상 집채만큼 져 놓은 부채를 상환해야하는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행인으로서는 한 끼 최소 4500원에서 일단 6000원까지 상회하는 밥값을 감당하기가 영 어려운 처지라는 거다.

 

집에서 두부 사다가 쟁여놓고 허구헌날 씹어먹으면 될 것 같은데, 혼자사는 집구석, 외로운 자취방에 두부 사다가 쟁여놓으면 조만간 쉰내나 퍽퍽 나고 만다. 방구석에서 밥먹을 시간이 영 나오질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 방법은 ...

장가를 가는 거다...

가서 일단 나홀로 자취생활을 청산하고 허구헌날 집에 일찍 가야한다는 핑계로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가서 들어갈 때마다 두부를 사서 두부찌개를 해설랑은 특수동거인관계의 그녀와 맨날맨날 두부를 퍼먹는 거다. 허구헌날 두부를 씹고 앉았는 거다. 두 연넘이 앉아서...

 

그러나 현실성 없는 계획이므로 무효~~!!

나같아도 허구헌날 두부찌개만 먹고 앉았으면 집구석 들어갈 맘 나지 않겠다. 당장 도망가쥐...

줸장... 암튼 오늘도 그 두부찌개 먹었다. 맛은 있다... 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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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23:53 2004/08/09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