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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6
    20년 후(6)
    빈집

20년 후

“놀러와 어서와 놀러와 어서와
못말리는 장기투숙객들
지렁이도 밥 같이 먹는
빈집이에요
2호 3호 남산터널
자전거를 타고 오세요
빈집이에요
다녀와 어서와 빈집이에요
다녀와 어서와 주막 마루로도 변신
- <빈집쏭>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2008년 봄에 처음으로 생긴 "빈집1호-남산집"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지금이야 한국에만 수천채의 빈집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집계도 안된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만, 초창기에 빈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이런 곳이 있다니, 게다가 서울에!" 이러며 신기해했다고 전해진다. 띄엄띄엄 전해지는 민담과 기록에 의해 재구성해본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만큼 어색하고 귀엽다. 도대체 이런 것을 그땐 왜 그렇게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을까? 하지만 사실 언제나 뭐든 처음에는 그렇게 느끼는게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빈집네트워크가 연결되어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3년전 주류 언론들은 "빈집 한류"라 그 이름을 붙이며 선정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20년 전만해도 한국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서로가 단절되어 있고,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서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굳게 문을 잠그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불과 20년 동안 "빈집 열풍"이 불어 이제는 너도 나도 자신들의 집을 "비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하게끔 되었다.

20년이 지나고, 그때 어린아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그 동안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는 이런 환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 가끔 사람들끼리 벽을 굳게 세우고 문을 걸어잠근채 교류 없이 살아가는 저 괴팍한 몇몇 동네 이야기를 들으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잠시 머물곳을 찾지 못해 너무나 먼 길을 가야하고, 비싼 돈을 지불해야 잠시 지친 몸을 쉴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글쓴이도 지금도 기분은 그닥 좋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열중 일고여덟은 필시 말하는 사람이 짖궂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가볍게 넘기고, 한 두명 정도는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아이는 무서운 얘기를 들은 것처럼 서로를 꼭 부둥켜 잡는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가 없고 외로운 삶을 사람들이 견뎌낼 수 있었나요?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할 수 있었을까. 옛날 영화와 드라마들이 그토록 죄다 공포스러웠던 이유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 당시 사람들의 각박한, 끊임 없이 국가와 자본에 눌리고 빼앗기는 여유 없는 삶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빈집 최장기투숙객인 "윤택"에게 처음 빈집을 열때의 심정을 물었다.
"ㅎㅎ 처음에요? 아.. 그땐 모든게 서툴고 어려웠지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싶은 것을 실제로 해나가는게 분명 큰 즐거움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후원해주긴 했는데, 역시 그런 공간을 오랫동안 꾸려가고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냥 훌쩍 집을 비우고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실제로 6달동안 다시 전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돌아오기도 했죠. 그렇게 언제든 떠나고 싶을때 떠나고, 다시 돌아왔을때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게 좋았어요."
또 다른 초장기투숙객 "정균"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기사에 내지 않는 조건으로 얘기를 시작했으나 결국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돌아섰다.
"흠흠..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다른 건 다 좋은데~, 사실 이.. 이 먹는 문제가 좀 그랬어. 거... 내가 고기를 좀 많이 좋아하거든 큼큼. 아 물론 채식 식단에 만족해. 하지만 왜 그런 말 있잖아 '사람은 채소만으로 살 수 없다'" "그건 빵 아닌가요?" "어? 그랬나. 우리 동네는 좀 달랐는데.. 여튼, 이제는 고기 생각도 안나. 그때 조금 그랬다는 거지"

"남산 빈집"에 대해서는 사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화제가 됐던 것이라 자세한 얘기는 할 필요조차 없을 거라고 본다. 여기서는 본 기자가 단독 입수한 당시 문건을 하나 싣는 것으로 이번 호 연재를 마치려 한다. 이 글은 "지각생"이라는 초기 장기투숙객이 쓴 글로 보이는데 지각생은 그 후 별명을 바꾸고 살았다고 한다. 대체 누가 지각생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그가 지금도 한국의 어느 빈집에서 장기투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시아 어느 곳에 있는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세계의 빈집을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알려진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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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꾹. 이제는 버튼이 잘 눌러지지도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이 버튼을 눌렀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이 자물쇠를 치워버릴 수 있을까. 한참을 꾹꾹 눌러 결국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며 오늘은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잠깐 상상해본다. 오늘도 늦게 퇴근하는 길, 다른 집들은 거의 불이 꺼진 시간이지만 빈집은 이맘때까지도 항상 밝게 불이 켜져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신발들. 이 시간때면 보통 모기 때문에 안쪽 현관문을 닫아 놓기 때문에, 신발들이 "늦게 온" 손님들을 맞는다. 이제 왔니 어서 너도 들어와~ 하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내 신발을 벗어놓을 공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신발이 있다. 눈에 익은 신발도 있고, 처음 보는 신발도 있다. 그런 신발들이 마구 뒤섞여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오늘도 적어도 일곱이군. 훗. 현관문을 열며 오늘은 또 누가 와 있나 시선을 마루로 던진다. 그리고 인사한다 "다녀왔어". 빈집의 공식 인사말. 처음 왔던 자주와 살던, 다시 오던 언제 올지 모르던 간에 모든 사람은 "다녀올께"-"다녀와", "다녀왔어"-"어서와"로 인사한다.

오늘도 역시 익숙한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재밌게 놀고 있다. 윤택, 정균, 짱난, 그리고 우리 냐옹이 "러니"가 날 반갑게 맞는다. 오늘도 이미 한잔씩 걸쳐 불그스레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벌써 며칠짼가. 생각해보니 장기투숙객끼리만 밤을 보낸, "처음 온 손님"이 없는 날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달쯤 됐던가? 아니 좀 더 된 것도 같고. 매일 다른 손님들을 맞느라 매일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 술마시고 밤늦게까지 노는 건 쉬운 일은 아냐. 노는 것도 지친다. ㅋ 요즘엔 계속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 사람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오늘도 슬쩍 남방으로 들어가 몇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먼저 자야겠다. 씻고, 양말 빨아 널고, 슬쩍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술 한잔 마신다. 하루의 긴장이 풀린다. 오늘은 어느 동호회 사람들이 밤새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는 차가 끊겨 쉴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어제는 어느 단체에서 열명이 엠티를 오고. 그제는 그냥 소문 듣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놀러 왔다. 같은 공간, 같은 가재 도구들이지만 여기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빈집도 언제나 날마다 새롭다. 사실 같은 사람이라해도 어제와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과 있고,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언제나 달라지긴 하지만, 아예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계속 만나는 것만큼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을터다. 그것이 무척 즐겁지만 사실 때로는 피곤하다.

빈집에 처음 들어왔을때는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문을 열때마다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집이랄까. 마치 판타지 소설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현실에 있다. 올 봄 무척 힘들고 외로웠던 탓에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런 외로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차츰 그런 것도 익숙해지는 걸까. 문을 열때의 설레임과 기대는 여전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곤함도 쌓여 간다. 그들은 잠시 스쳤다 가지만, 장기투숙객들은 이곳에 남아 이 공간을 가꿔나가야 한다. 한 두 사람이 사는 살림이 아닌데다 여럿이 거쳐가는 공간인 탓에 사실 해야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 공간 속에서 실험하고자 했던 많은 일들은 일부는 시도가 돼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다. 피로가 쌓이고, 익숙해지고, 못하는게 많아지면서 조금씩 스스로 지쳐가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나는 이런 말할 처지가 아닐지 모른다. 요즘 계속 바빠서 집안일도 거의 못하고, 집에 있을때도 귀찮고 몸이 안 움직이고 마냥 쉬고 싶거나, 아직 못 끝낸 일을 마저 해놓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른 장기투숙객들에게 짐을 많이 떠넘기고 있으니. 설사라도 그치면 몸이라도 가벼워지려나. 그래도 다들 힘들텐데 불평 안하고 최대한 이해해주며 짐을 덜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고맙고, 미안하다.

잠깐 같이 섞여 술 한잔 하고 슬쩍 빠져 나와 남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늦게까지 손님들과 재밌게 놀고 싶지만 이제 슬슬 다음날의 압박이 커진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출근하고 나면 오전 내내 멍할때도 있다. 요즘 같이 더울때 점심 먹고 들어와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졸음이 살살 오기도 한다. 이럴때 한잠 자면 좋을텐데 그러긴 쉽지 않다. "어제 밤에 안자고 뭐했어!" "손님들이 와서 놀았어요" "그 전날은? 또 그 전날은? 맨날 손님 와서 늦게까지 노니?" "네.." "... 개기냐 -_-" 사람들에게 "서울 한복판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얘기하면 어떤이는 신기해하며 가보고 싶어하지만 어떤이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주: 앞에서 얘기했듯 이때는 이런 문화가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꾹 참고 와서 못다한 일을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인데... 바깥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내 맘을 흔들고 내 귀를 당기며 내 엉덩이를 들었다 놓는다. 까르르 와하하 ㅋㅋㅋ ... 아 미치겠다. 안돼 안돼 오늘은... 흠... 마음을 다잡지만 사실 그 웃음소리 한방에 이미 무너져 있다. 다시 와핫핫 히히히.. 결국 잠깐의 투쟁으로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어주고 슬그머니 방을 나간다. 화장실 가고 싶네. 물이나 한잔 마시자. 물을 마시고 컵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 슬그머니 마루로 가서 엉덩이를 붙인다. 바로 그 컵은 맥주가 채워진다. 그래, 인생 뭐 있냐. 이렇게 사는 거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언젠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여유를 다시 찾고 대안적인 삶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겠지. 이 집이 있고, 내가 여기에 살고, 언제나 정다운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게 잘 될 거야.

2008. 7. 10 지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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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보복덕방(http://culturalaction.org/housing) 에 올린 "빈집이야기4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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