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와 문명
- (1)
- 희랍어 시간 _ 한강
- (2)
사람들 말 사이로,
누군가 또 스스로 목숨을 놓았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잠깐 한 눈을 팔고 있으면,
모든 게,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지금에서야 유서를 읽고, 마음이 시큰해진다.
한 발짝이다.
그 한 발짝 비껴서면, 세상은 별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아니, 내 삶이. 내 삶이 별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내 주변 이들의 아픔도 마찬가지겠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되뇌어 보지만,
죄책감을 덜려는 자기 기만은 아닐까..
지난 금요일 수계를 받았다.
음음.
법명은 碧野.
이런 의식은 천주교나 불교나 비슷한 것 같다.
그간의 업보를 끊는다는 의미일 걸로 추정되는,
향으로 팔에 점을 찍는 의식이 있었고,
그리고 새벽예불까지 철야였다.
중간에 죽 먹는 시간이 있었는데,
먹으면서 떠올려보니,
싯다르타가 고행 끝에 지쳐있는데,
죽을 먹고 힘을 차려 깨달았다고-
그래서 붓다는 고행이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 말했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걸 재현하는 거구나.
내가 동의하겠는 말들과 그렇지 않은 말들을 갸늠하며,
이것이 내 아집은 아닌지, 또 돌아보며,
아침을 맞고. 용산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에 의해서이다.
그 행동이 만들어지기 위해 가치관/세계관이 바뀌어야겠지만,
가치관/세계관은 역시 그 행동 속에서 변할 수 있다.
무엇이 먼저라고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걸리적거림.
추가.
향으로 팔에 자국을 남기는 걸 연비燃譬라고 한단다. 수계식 때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연비를 할 때 참회진언(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을 외웠었다.
처음 듣는 진언이어서 따라하기까지 여러차례 버벅였다.
어제부터 느낀건데,
일을 하다 보면 호흡과 동작 사이가 뭔가 어색하다.
매번 동작을 마치기 위해서 호흡을 한참 기다려야 한다.
기운이 없어서 그런가 ㅋ
내 최면감수성은 참 높았었다.
팔이 풍선이라고 최면걸고 나니까 손이 저혼자 둥실둥실.
같이 한 사람들 중에 압권이었는데.
벌써 1년 다되가네.
중간중간 좀 연습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요즘은 쉬운 미적분책을 읽고 있다.
아직 읽은부분까지는 따라갈 만하다.
뒤에 삼각함수 미분, 편미분 등등은 어쩌려나..
여러 해 전에 모아놓은 음악 MP3파일들을 정리했다.
이번엔 주로 클래식들인데,
모두 모아놓고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것들이다.
특히 글렌굴드 음악이 많은데,
받아만 놨지 파일만 봐선
이게 무슨 음반에 있던 건지도 모르고 뭘 연주한 건지도 모르겠더라.
겨우겨우 찾아서 정리를 해놨는데
참 욕심만 많다 싶다.
한 번 들어보지도 않을 거, 뭐 그리 많이 받아놨는지.
지금와서, 파일들 정리하는 건 또 무슨 욕심인지.
이왕 정리해놨으니 한 번은 들어봐야할텐데..
진보마켓에서 몇개 주문했다.
잠깐의 수고로움이 귀찮아서
신용카드 결제로 자꾸 손이 갔다.
참.. 이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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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엔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오늘은 청소노동자 분이 청소를 하시다 외치신다.
여기 누가 뭐 했죠, 걸레가 다 알아! 여긴 이렇게 잘 밀리는데 여긴 뻑뻑하잖아
누가 뭐 했어요. 오줌쌌구만!
옆자리 할아버지가 내가 내 자리 옆에다 오줌싸겠냐며 아니라고 하셨다.
난 처음엔, 설마 오줌이겠어, 뭐 음식 흘렸겠지, 싶었다.
그런데, 방 안에 계신 분들이 오줌이라는 데 별로 부정을 안하시는 거다.
다들 난 아니야, 라고 말하지만, 뭔가 정말 아닌 것 같지 않은 분위기.
나중에 나중에, 그 옆자리 할아버지가, 거기 궤짝이 있으니까 화장실 같잖아, 라신다.
그래도 결코 자기는 아니란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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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있는 습진이 또 도졌다.
한 1달이 좀 넘었나.
근근이 괜찮더니, 다시 이런다.
요즘은 손에 물 닿는 게 무서워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근데 이게 좀 아물어 가는 가 싶다가, 어제부터 다시 심해졌는데,
되짚어 보니 엊그제 저녁, 과자를 몽땅 먹었다.
!! 이게 인과관계가 꽤 확실하구나.
근 10년전에 읽었던 책, 문득 떠올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근래에 나카자와 신이치의 어떤 책을 읽으면서, 아스트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대한 호감은 대단히 맹목적이었던 것 같다.
다윈의 대답2를 읽으면서, 신화가 인류의 장기적인 기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훑었다.
먼저 요약하면
나카자와 신이치는 후기구석기를 지나면서 인간의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현재 인류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됐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 변화를 거치며 언어가 탄생하는데, 태초의 언어는 시나 음악과 같이 비유(은유, 환유)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최초의 의식은 시를 감상하듯이 세계를 이해했고, 세계는 '상징의 숲'이다.
신화는 바로 이 '시'와 같은 차원에 있다. 저자는 세계를 비유와 상징으로 인식했던 것이 신화라고 바라본다. 신화시대에는 문화와 자연이 구분되어 있고, 문화 덕분에 인간은 욕망을 억누르고 절제된 행동을 한다. 이 때에는 문화와 자연 사이에 대칭성이 유지되고 있지만 자연의 힘을 흡수하면서 문화는 문명으로 변한다. 이제 문명에 미달하는 것을 야만으로 몰아부치지만, 실상 대칭성의 사회에서는 현재의 문명이야말로 야만이다.
털가죽을 뒤집어 쓰면 동물로도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사냥으로 식량을 얻더라도 선물 받은 것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예리한 검, 총이 들어오면서 자연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이 비대칭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약자의 테러가 행해진다.
대칭성의 사회에서는 문화 안에 자연이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장벽을 두는데, 제의/식인은 이런 절차를 표현한다. 사회의 수장은 자연의 권력을 가진 샤먼, 전사와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 내부로 자연의 권력이 들어오게 되면서 수장을 대체하는 '왕'이 등장하고 국가가 만들어진다.
식인은 문화가 부여해주는 인간의 의미를 먹어치우는 것인데, 자아를 부정하는 불교의 공(空)은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식인이다. 불교에는 국가와 문명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고,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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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대답2와 연관지어서 생각났던 게,
전업사냥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피식자의 개체수를 유지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점과 파트타임 농부가 등장한 뒤에는 수렵 이외의 다른 생존방법이 생겼기 때문에 더 잔혹한 포식자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든 생각은, 결국 대칭성의 사고라는 것도 토대에 기반하지 않느냐는 거다. 곰을 과하게 사냥해서 절멸시킨다면, 인간도 죽는다. 소위 대칭성이 깨진 사건도 파트타임 농부의 출현에 대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이 자연의 권력을 획득했다기 보다, 그것을 제한할 필요가 없어진 인간의 살육.
이렇게 보면, 나카자와 신이치가 대칭성의 사고를 회복하자고 주문을 외는 것은 대단히 허망하다. 대칭성의 사고가 깨진 것은 생존양식이 변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지, 원인이 아니다. 야만적인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칭성의 사고를 회복시켜야 겠다면, 사고의 전환이 아니라 토대의 전환을 도모해야하지 않을까.
결국 결과를 원인으로 두고 분석하는 꼴이다 싶은데, 이런 게 관념론의 한 형태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을 못들면, 여러 느낌이 드는데,
그 중 하나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락감이다.
잠들기 위해 누워서 불안에 떠는,
이런 시간을 계속 겪어야한다고 생각하면,
반복될 이 삶이 아득해지면서
자신없어진다.
다른 땐 그다지 이러지 않은데, 잠 자려 누울 때만.
삶의 덧없음이 절절해진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
하지만 그 꿈은 이토록 생생해,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언어는 정점을 찍었을 때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규칙들을 갖는다.
하지만, 그 정교함이 완전한 전달을 보장하진 못한다.
세상은 희랍식 논증 방식으로 증명되지 않고, 삶은 매순간 성립 불가능한 오류.
말은 얼마나 불완전한지.
언어가 세계와 결합하는 회로는 아슬아슬하다.
술어가 주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희랍어의 중간태.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문장은,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 영향을 받아 변한다는 의미이기도.
언어 이전-
말이 사물과 대응하기 이전-
숱한 감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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