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학생회 단상

MinorGood님의 [학생회운동에 거는 딴지] 에 관련된 글.

 

내가 겪어왔던 학생회 관련된 일들, 생각들. 떠오르는 대로. 짧게. 답없는 글.

 

 

내가 학생회일을 직접 했던 건, 총학생회 1년, 단대학생회 1년.

총학생회는 2학년 때 맡았었고, 그 때도 몇 안되는 사람들로 허덕이며 운영했었다. 그래도 총학생회 이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다 총학생회 경험 속에서 학생회에 대한 실망에 부딪혔을 때(구체적인 실망의 근거들을 나열하려고 생각해보니 너무 장황해지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던 것들이고, 지금 내가 쓰려는 글과 별 상관 없는 내용이어서 뺀다.), 맨처음 가졌던 건 학생회가 자치의 가능성을 내리누르고 있고, 그것을 벗겨내면 만인에 의한 자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이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과 대중에게 내재되어 있는 역능을 대립시키면서 그 둘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아우또노미아를 소개하는 그룹에게서 끌어오려 했었고, 지금와서 보면 결론을 내려놓은 채 근거를 뒤적이는 매우 글러먹은 태도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에서 해봤던 게 선거반대운동이었는데 기호0번-자신의 이름을 찍자는 이야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꽤 좋았었다. 이 때에도 선거는 소위 비권-반권의 이권다툼이었고, 어느 편이 당선되든 학교에 변할일이 없다는 건 객관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호가 그 개인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제안이지 않았고, 결국 정치에서  자신을 분리시켜내는 걸 정당화시키는 효과를 남길 것이라는 반성을 요즘 와서 깊이 하고 있다. 선본들의 공약에 대한 비판과 정책제안 같은 활동이 당위적인 풀뿌리 민주주의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런 시도들을 거치고, 단대학생회는 사실 별다른 준비 없이 함께 하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이 없어서 내내 허덕거렸다. 옆에서 보면 즉흥적인 결정으로 보이기도 하겠으나, 항상 머리속의 반절은 대학사회(특히 학생회)를 어떻게 개조시키면 좋을까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계획들로 차있었고, 내가 단대학생회에 들어가게 될 상황과 조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계산이 있던 터였다. 몇 해전에 실패했던 걸 극복해보고 싶던 욕심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학생회의 조건도 무너지는 걸 실감했다. 이름만 '학생회', 손에 잡히는 물적인 토대가 너무 없었다.  그 때도 선도투만 머리속에 있던 것 같은데, 한창 한미fta정세가 있을 때여서 학생회 힘을 동원해 실천단을 꾸리기도 했지만, 정작 fta에 대한 대중적인 선전은 꽝이었다. 학생회를 자치공간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학생들 불러모아 매일 밥해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내가 구상한 사업에 사람들을 끼워맞추는 식이었다. 학생회 임기 안에 하려고 했던 것 중 하나가 학생회칙을 바꿔 누구나 학생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일종의 평의회를 실현하려고 했는데, 결국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적극적인 반대자 몇명에게 밀려 무산되었다. 그 해 해봤던 모든 것들은 정말 몰정세적 선도투라고 이름 붙일 수 밖에 없도록 낯부끄러웠다.

학생회를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삶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것과 꼭 같은 만큼 학생회도, 동아리도 축소되어가고 있었다. 학생회가 강력해지면 동아리가 죽는 대립관계/인과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것에 의한 효과가 반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 인과관계를 고민하는 동안 학교에서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모든 자치기구들이 비가역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고민은 여기까지인데, 그래서, 그걸 넘어설 방법은? - 도저히 답을 못찾고 있다. 지금 당장은 하고 있는 활동 유지하기도 벅차다. 그 활동마저 언제나 위태위태하다. 주변 대학들에서 활동하던 단위가 하나 둘 문닫더니 이제 내가 다니는 학교 밖에 남지 않았다. 푸념이 별로 도움될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온다. 처참한 현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일. 그래서 요즘은 학생회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었다.

2009/12/16 00:25 2009/12/16 00:25

지나간다이해

다른 이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걔중 가장 진절머리 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생각해보면, 어리다고 비겁한건 아니니 말이 맞지 않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인간이면 바뀔 여지라도 있을텐데, 그런 반성이 없는 사람은 바뀔 여지도 없으니 더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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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며 모임을 정리했던 아이가 스키장 간다는 걸 보고 드는 생각이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 아이가 말했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허술하게 살면 안된다.
물론 나름대로 그 이상을 추구하겠지. 하지만 그게 자기 삶의 목적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지금의 생활이 낯부끄럽지 않을까?
이건 어떤 삶을 추구하든지, 그 방향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꼭 지고지순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삶의 목표라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그것을 위해 현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 해야하지 않느냐는 거다. 활동가에게도, 다른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말한 큰 이상이란 것도 정말 그 이상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기 보다는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합리화시키는 겉치레로 보인다. 자신의 안녕에 대한 욕망을 그렇게 큰 이상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다. 그런 욕망이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없어져야할 것도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까를 궁리하지 말고, 수많은 삶들의 숭고함을 경외하며 묵묵히 살아가면 될일이다. 성인입네 하면서 할거 다하는 인간들이 가장 저질이지 않던가.
뭐, 다른 사람을 마음을 속속들이 알수는 없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너무 쉽게 합리화하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게 합리화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 누구는 자기가 부끄럽다는 걸 안다고 말해서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2009/12/15 23:00 2009/12/15 23:00

지나간다컨닝

 

내 점수를 올리기 위해 처음 했던 컨닝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국어시험에 맞춤법을 물어보는 문제가 있었다. 헷갈려서 답을 못정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답을 써야한다는 강박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빈틈을 안남기려는 강박증은 뿌리 가 깊은 것 같다. 그 무렵에도 컨닝이란 건 학교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반사회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어있는 답을 메우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컨닝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걸렸을 때 겪게될 일들이 두려웠을 따름이었다. 내가 한문제를 더 맞는다 해서 누군가에게 별다른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고, 설사 죄책감이 들었다 해도 비어있는 답안란을 놓아두는 것보다는 그 죄책감을 마음에 이는 것이 차라리 더 홀가분했다.

 

그 땐 책상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시험을 치뤘었는데, 컨닝을 못하게 막기위한 의식이지만 사실 이건 컨닝에 매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준다. 다른 사람 것을 보고적기야 힘들겠지만, 자기 책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가려지니 말이다.

시험과 관련된 책들은 다 치웠기 때문에 책상에 참고할 만한게 없었는데, 서랍을 뒤적이다 눈에 들어왔던게 얇은 한영사전이었다. 빈약해보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쟤도 사전이니 표준어대로 실려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가방을 병풍삼아 재빨리 단어를 찾았다. 그렇게 답을 찾아 적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그 뒤로도 컨닝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미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음에도, 100점이 아닌 시험지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고, 100점에 대한 강박이 컸다. 점수는 등수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집착했던 것은, 아닌 척 해도 스스로를 서열화된 경쟁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서술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무렵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등수를 얻고 있었고, 그 이상의 등수가 필요하다는 욕심을 낸 적은 없다. 시험이 절대평가이길 항상 바랬으며 대학입시에는 절대평가로 계산된 내신성적이 반영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1등을 하든 20등을 하든 90점만 넘기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컨닝은 등수를 올리는 것 보다는 비어있는 답안지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결벽증에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옳다.

 

대학에 와서도 컨닝은 때때로 이어졌고, 이 때의 컨닝은 생존을 위한 컨닝이었다. 유급을 면하기 위한 - ......

 

나중에 더 써야지.;;

 

 

 

 

그런 결벽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Pass 시험이고 충분히 통과할 만큼 답안을 작성했더라도, 남은 여백을 채우기 위해 끙끙대며 컨닝이라도 할 방법을 강구한다. 시험에서 뿐만 아니라, 레포트를 쓸 때도, 다른 글을 쓸 때도, 어떤 사업을 할 때도 - 여백이 보이면 그것이 머리에 끊임없이 떠올라 손댈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여백을 못견디는 건 그렇다쳐도, 그 여백을 메우기 위해 그만큼 절실하게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컨닝과 비슷한 방법을 시도해서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그냥 놓아둔다. 어차피 내가 노력하지 않았던 부분이니, 성공하면 덤이고, 안되도 손해볼 건 없다고 여겨버리는 것이다. 완벽에 대한 결벽증과 내 삶을 소진시키고 싶지 않은 얄팍한 마음은 샛길을 찾아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잡을 수 없는 공을 잡으려 해야하느냐는 질문은 정당하다. 거기에는 공을 잡아내야 하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후자의 질문을 빼놓고서, 떨어진 공을 주워 글러브에 담아놓고는,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지만 공은 잡는다고 얘기하는 꼴이다.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내가 본래는 어느 편에 가까운 인간인지 알수없게한다.

 

100 점짜리 시험지에도, 성공한 삶에도, 멋진 인간관계에도, 어느것에도 얽매이기 싫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얽매이지는 않되, 그것을 놓아버리지는 못한다. 놓지는 안되, 잡지도 않기 때문에 되면 그만, 안되도 그만이다. 결국 내 진심을 다하는 것이지 않다. 내 모든 걸 던지는 삶을 동경하지만, 일상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에게는 정작 그러지 못한다. 내 삶을 던지지 못하면 잡지 않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마음일 뿐이다.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깝다.

2009/12/13 11:08 2009/12/13 11:08

지나간다아픔

나만 아픈 게 아니다.
아픈 사람은 참 많다. 아픔의 종류도 다양하다.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위로가 된다.
공감받지 못할까봐, 동정받을까봐 두려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꺼낼 수 있다.

비슷한 류의 사람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는 것 같다.
나 의 상처는 나의 온존재를 걸었던 무언가가 무너졌을 때 생긴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내가 죽을 수 있어야 했다. 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내가 죽을 수 있었다. 그 칼날이 나를 베었다. 내 주변의 아픈 사람들도, 보통 그래서 아프다. 자신의 모든 걸 던졌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데 대한 상실감.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하게 아프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다. 자신이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아픔을 나누고 싶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다. 내가 겪은 아픔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연민이 든다. 쓰다듬어 준다. 그 사람도 나를 쓰다듬어 준다. 동정하는 게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느낌이 좋다.

2009/12/12 00:48 2009/12/12 00:48

지나간다포털 댓글

포털 메인에 있는 뉴스기사를 누르다 보면 달려있는 댓글들도 같이 읽게 되는데, 말그대로 개념 물말아 드신 댓글도 있지만, 요즘들어 상당히 정확한  인식을 담은 댓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예를들면,
이번 철도 파업에 대한 기사를 보면
파 업이 당연한 권리이고, 공기업 선진화가 민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 민영화를 통해 얻어지는 일자리래봐야 불안정한 삶을 확대하는 것일 뿐,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는 댓글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런 댓글들이 가장 추천을 많이 받아 위쪽에 올라와있다.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이게 어느정도의 여론인걸까? 왜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 느껴지질 않지..? 신뢰할 수 있는걸까?

그런 댓글에 담긴 말 몇 마디로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판단하기는 어려운거고, 너무 쉽게 긍정하거나 비관하지 말아야지. 어쨋든, 예전엔 욕지거리 하기 싫어서 댓글에는 눈길을 안줬는데, 요즘엔 읽을만한 댓글이 많네...

2009/12/11 08:16 2009/12/11 08:16

지나간다갑사

계룡산 밑자락에서 시험공부하고 있다. 단체로 합숙중인데, 이것도 며칠지나니 긴장이 풀려 매일 댕강댕강이다. 그래도 산밑에 있어서인지 나를 돌아보는 게 잘된다.

밤 에 일과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갑사를 올라가봤다. 밤중에, 가로등이 모두 꺼져 캄캄한 길을 별빛과 달빛이 희미하게 밝혀줬다. 별빛도 어두운 길에선 꽤나 밝다. 옛날엔 더 밝았겠지? 이 추운 날, 츄리닝 차림으로 걸어올라갔더니 얼굴, 손, 다리가 꽁꽁 어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올라가서 절은 너무 조용했고, 감히 경내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근처에 약사여래상이 있대서 거길 찾아가봤다. 고려 때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는 약사여래상은 비바람에 많이 닳아있었다.

작 년 초, 실상사에 들렀을 때, 그 때도 약사여래불 앞에서 여러 서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 날의 서원을 흐트러트리지 않기를 서원했다. 약사여래와 인연이 깊은가보다. 몇 번 절을 하다, 너무 추워 손에 감각도 없어지고 해서 돌아서 내려왔다.

난 언제나, 작고 약하다. 그리고 작고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내 약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때이다.

그나저나 공부는 제대로 안하고, 큰일이네..

2009/12/11 08:16 2009/12/11 08:16

김약국의 딸들

읽으려고 맘먹고 일은 건 아니고, 시험공부 하기 싫어서 딴 짓하다 텍스트 파일로 있는 걸 핸드폰에 받아서 읽었다. 하필이면 자기전에 농땡이 피울 궁리를 하다 붙잡고 읽은 거여서 새벽 4시가 넘어 잤더니 다음날까지 엉망진창이었다. -_-

 

특별한 갈등구도도 없고, 문체가 구수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주제나 사건의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한다. 무엇이 그렇게 궁금증을 만들어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의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

 

'토지'에서처럼 '김약국의 딸들'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의 폭이 매우 넓다. 하지만 숫자로 바꿔놓고 보면 100년이 채 안되는 시간이고 수백 수천년 쯤은 쉽사리 넘나드는 현대 소설에 비해 시간의 폭이 넓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폭이 넓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속 시간대 안에 갸늠할 수 있는 3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에 500년, 1000년이었다면 내가 동감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손에 잡히는 규모의 시간대를 한 이야기 안에 엮어놓는 데에서 그 시간대가 위압감 있게 다가온다. 역사 앞에 섰을 때 겸손해지는 것도 그 역사가 갸늠이 가능할 때이다. 그 역사 안에 살았을 사람들의 삶이 두리뭉실하나마 만져질 수 있을 것 같을 때.

 

이땅에는 예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아내면 그 사람수만큼 소설들이 나올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고 살다가,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으면 이전에 살았을 불가사의한 숫자의 생명들이 머리속에 펼쳐진다. 이럴 때 느끼는 어떤 감정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하고, 삶을 담담하게 대할 수 있게도 해준다.

 

박경리의 '토지'는 정작 토지에 발딛고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정말 '토지'에 대해 쓰려했다면 시점이 달랐어야 했다고. 고등학교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그 땐 '토지'를 그저 재밌게 읽기만 했던 터라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대학교 와서는 '토지'를 다시 펼쳐볼 염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은 기억만 해두던 터였다. 그런데 '김약국의 딸들'을 읽다 보니 좀 느껴지는 게 있다. '평범'이라고 상정되어진 모델에 맞게 살아간다 해도 그것이 결코 평범한 삶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도 덜중요할 건 없지만, 박경리의 촛점은 그렇게 무난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무난해 보이는 이들의 삶이 결코 무난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중립적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평균적인 아픔들. '모든 사람이 저 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요'라는 말 앞에서 아픔의 불균등함은 외발로 서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형태.

2009/11/28 21:49 2009/11/28 21:49

지나간다잡기

삶아먹으려고 사놓은 바지락이 냉장고에 있는데,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무심코 바지락이 담긴 비닐봉지를 보니 바지락이 꿈틀거렸다. 잘못본게 아닌가 싶어 계속 지켜보니까 그 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 순간 마음이 찡해지면서 내가 이것들을 먹어도 될것인지에 대해 자못 진지한 의문이 생겼다. 떠올려보면 대야 가득 살아있는 바지락을 삶아 먹기도 했었는데, 냉장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바지락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걸까. 이 억척스러운 곳에서 살려고 바둥거리는 몸짓이 내가 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의 이들의 몸짓과 닮아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 항상 동동거리는 것은 내가 제대로 알 수 없는 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몸짓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파리도, 그냥 지나가고 나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괴롭힌다. 더 생각해보면, 내가 위해를 가했는지 여부가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위해를 가하는 순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그 위해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존재의 모습을 깨달을 때 마음이 무너내린다.(내 눈에 보이지 않게 내가 상처입힌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이런 거스럭거림이 자기만족을 위한 알량한 치장에 불과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나 에게 원죄같이 따라붙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래전에 할머니가 꾸셨다던 꿈의 장면이다. 어디론가 먼길을 떠나는 나에게 색동옷을 입은 아이가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같이가면 안될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난 그 아이를 내치지 못하고 데리고 떠난다. 할머니는 그 꿈 이야기를 하시며, 저걸 떼어놓아야하는 데 못 떼어놓았다며 애석해 하셨다. 내가 꾼 꿈도 아니지만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나에게 입혀져 원형인 것 마냥 나의 한 조각으로 엉켜있다. 내가 이번 생에서 풀거나 지고 가야할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정보라 글로 풀어놓기가 어렵지만, 나의 원형이 내가 어떤 자극을 수용했을 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붙들어 매는 것 같다는 거다.

 

 

 

 

 

 

 

;;;;;; 그래서 난 융심리학에 관심이 많고, 핵심감정 이론도 공부해보고 싶다.

참고로 핵심감정은 자궁에 있을 때 혹은 그 이전부터 형성되어 평생동안 가장 밑바닥에서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다. 프로이트 무의식과는 근거가 다른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개체(주로 모체)로 인해 핵심감정이 형성되는 것이고 때로는 자신이 발생하기 전이 이미 핵심감정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융의 원형, 집단무의식과 더 가까울 듯..
2009/11/27 09:56 2009/11/27 09:56

지나간다시간대를 좀 길게 가질 것

하루, 일주일, 이렇게 짧은 시간대를 살면서 그 안에서 겪는 것들을 세상의 전부인양 기뻐하고 체념하고, 그렇게 끄달릴 필요는 없다. 그것들이 과정들로서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 밖의 것들도 세상엔 많이 있으니까.

 

학교 안에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내가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데, 설사 잃어간들 또 어떠하고,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시간대를 짧게 두기 때문인 것이니까.

 

어차피, 지금은, 나를 ......

2009/11/19 13:32 2009/11/19 13:32

지나간다배앓이

왠일인지, 지난주부터 계속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설사야 워낙 자주 겪는 것이다 보니, 좀 지나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이제 시험공부도 시작해야 하는데, 왜 자꾸 게으름 피울 거리가 생기는 건지, 원.

공부하기 싫으니까, 몸이 알아서 아픈걸까?

 

병원에 가거나, 뭔가 약을 먹어야할 것 같은데..

움직이기도 귀찮고, 더군다나 춥다.

 

평소 신경이 가지 않던 곳이 이렇게 아프면, 저혼자 싹싹빌곤 한다. 이런 모습이 우스꽝스러운데, 딱히 할 수 있는 다른게 없으니 빌기라도 해야지. 사람이 곤조가 없다. 막 대하려면 곤조있게 막 대해야지. 간사스럽게.

 

 

 

 

 

 

 

아플 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했는데,

난 후자 쪽인 것 같다. 관계에서 얻는 병은 아니라는 거겠지.

혹시 효험이 있을까 하여, 메밀차를 마시고 있지만 별무소용인 것 같다.

 

2009/11/16 21:02 2009/11/16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