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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불편한가"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들여오느냐 마느냐,의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단순하다면 "내가" 안먹으면 된다. 싫은 사람이 조심하고 피해서 미국산 쇠고기 안먹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건 우스운 주장이지만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다. 생산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은 식당이나 공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사용하고 싶어할 것이다. 원산지를 국산이라고 거짓으로 표기해 얼마든지 팔아먹을 수 있다(지금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자본이 미덕의 꼭지점에 올라앉아 있는 사회에서 비단 개별 식당이나 공장 주인들의 이기심만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할 수 있긴 한데 그걸로 해결되는 건 무엇이 있나.
(서민들이 비싼 쇠고기 많이 먹게 됐으니 좋아할 일 아니냐고? 헐.)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이 낮은 것은 "대량 생산"되기 때문이고, 인간들은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해 기꺼이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물만 먹인다든가, 어린 송아지들이 많이 움직이면 고기가 질겨지니까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좁디 좁은 우리에 가둬놓는다거나. 광우병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동물성 사료도 이걸 먹이면 소들이 살도 잘 오르니 축산업자들이 마다하지 않고 먹였다.
닭이나 돼지도 마찬가지고, 이러한 폭력은 미국의 일만도 아니다.

가축을 기르고 도살하는 방식과 그들을 그렇게까지 꼭 먹어야 하는지 등의 물음이 가능하다. 전세계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호되는 그 "폭력"에 대해 대항할 수 있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걸 생각하던데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대항은 시작된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구호를 보면 가끔 숨이 턱 막힌다(라고 하면 또 그 구호 만든 분들께선 내 진심을 몰라줬다고 화내실 건가요?). 내가 안먹고 너만 먹으면 괜찮은 것도 아니고(이런 뜻으로 만들었다고는 저도 생각지 않아요 하하), 그냥 "미친 소"를 안먹으면 그만인 것도 아니다. "미친 소"라는 명명도 소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다. 누가 그 병을 만들어 냈는가. 왜 그런 문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가. 왜 우리는 무엇이든 "많이" "빠르게" "생산"해내야 좋은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가.
이렇게, 최상의 미덕으로 이야기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봉에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정부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복해 선전했다. 어떤 전문가들은 다른 주장을 했고, "과학적 근거"도 제시했다.
정부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문제가 있고 없고도 중요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나왔을 때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하다. 그저 일부 전문가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일축해버리고는 다른 사람들 무서운 줄 모르고 하고 싶은 건 하겠다(내지는 해야 하는 건 하겠다, 였을까?)고 고집을 부렸으니 이 지경까지 온 거다.
(그걸 "이명박 대통령의 추진력 또는 고집"이라고 불러선 안된다. 그런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에 '추진력'은 물론이거니와 '고집'이라는 단어도 아깝다. 제대로 명명해주어야 한다. 그건 오만불손한 독선이고 아집일 뿐이다.)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나서야 "그게 국민의 뜻이라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 않겠다"고 말한다. 국정브리핑을 보고 그야말로 헐-인 심정이 됐다. 그걸 이제까진 몰랐냐는 거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니 겨우 알아듣는 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애당초 귀 기울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집회를 폭력적으로 막고, "집회가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자유민주주의의 질서를 흐뜨린다"고도 호도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든다. 나는 각자가 가진 다양한 고민의 지점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논의되는 자리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쓴 종이 카드를 들고 나오고, 어떤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오고, 어떤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주저앉아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의사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고,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폭력적인 집회 해산에 분노하는 것도 이런 최소한의 믿음 때문 아닌가.)

자유롭게 이뤄지다 보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무리에서 "이끄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킁). 여기로 가보자 저렇게 해보자 동을 뜨거나,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이러저러하게 움직이자고 택을 짤 수도 있다. 그건 그들의 자유고, 그것에 응하든 응하지 않든 철저히 각자의 자유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위험하고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까 저렇게 해보자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이어야지, 명령이나 일방적인 지도일 수는 없다.
자신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희생하고" 있기 때문에 명령하고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일 뿐이다. "보호"라는 "아름다운" 이유를 대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금 당신은 명령하고 지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왜 그렇게까지 "불편한가". 어떤 행동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증오와 멸시의 대상"으로 만든 것인가. 선의로 한 것이니 조금의 불평도 하지 말라는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이게 도대체, 본심을 몰라준다고 화를 내고 할 문제인가.
(이에 관해 이야기했던 달군의 블로거에는 "호의를 몰라주는 것도 나쁘다"는 댓글도 달려있다. 호의라는 건 어차피 자기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도 호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와 나의 생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지,라고 논의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다못해 아 "나는 보호해주려고 했는데 상대는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구나" 정도라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적어도, 차이를 존중하고 소통할 의지가 있다면.

여기서 스크럼 짤 때 여자들은 힘이 없어서 방해만 된다(헐-_-)라든가 사수대가 필요하냐 아니냐 등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위계와 통제에 관련되어 더 논의해볼 수 있다.
우선은 집회를 하러 온 시민이 국가 권력과 대응해 힘으로 부딪혀야만 하는 근본적인 부조리가 있고, 여기에 대항할 때 육체적인 힘에 따른 우열이 생긴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고, 누군가는 배제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코 둔감해지지 않는 것일 게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여자들은 뒤로, 사수대는 앞으로!"로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부분들을 당연하다거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놓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애쓰는 건 또 어떻게 하자는 거냐? 그건 같이 고민해보고 얘기해보면 된다. 똑 떨어진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논의해볼 수는 있다.


나는 이런 모든 종류의 논의들이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데 이런 문제 제기로 힘 뺀다는 주장에는 코웃음도 치지 않겠다. 더 많은 힘을 모으기 위해 이런 소통과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같은 편끼리(누가 누구와 같은 편이란 말인가) 욕하면서 분열시킨다"는 말로 이런 소통과 논의를 막으려는 발상이야말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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