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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9
    <대추리 전쟁> - 박선영 리뷰
    독립영화비평

<대추리 전쟁> - 박선영 리뷰

 
약육강식

- <대추리 전쟁>/ 정일건 감독/ 2006

 


박선영

 

 약육강식 법칙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약자는 언제쯤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대추리 전쟁>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2003년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대추리 사람들은 과거 자신의 논밭 옆에 미군 기지가 세워졌을 때 국가가 하는 일이니까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살아갈 땅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의 논밭을 빼앗지 않는 이상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국가는 그들에게 미군기지 확장을 주장하며 대추리를 떠나 땅을 비워 줄 것을 요구했다. 갈 곳도 갈 돈도 없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기 시작한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가 아닌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그들은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들의 투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배고팠을 시절, 그들이 도와줬으니까 땅도 내주고 했지만 이제는 빚 다 갚았어. 그러니까 나가라고 해. 죽든 말든 이제는 우리끼리 알아서 해.

국가에서 다른 좋은 일 하는 것이면 기꺼이 돕겠지만 미국 놈들 돕는 거면 절대 안 돼.

 


세월의 흔적을 얼굴 위 깊은 주름으로 고스란히 간직한 할아버지들은 말한다. 그들은 요즘 세대와는 다르게 전체주의, 애국주의를 운운하며 평생을 국가를 위해 살아왔다. 그들은 국가가 지은 빚을 자신의 빚처럼 생각하며 언제나 빚쟁이 같은 심정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지금에 와서야 그들은 허리 좀 피고 살아 보려고 하지만 나라는 그들을 도와주지도 보호해주지도 않는다. 늙고 힘 없는 그들에게 국가가 보여주는 태도는 고마움은 커녕 배은망덕함이었다. 누가 지켜 온 국가이며, 누구를 위한 국가인데 국가는 그 누구를 간과하고, 돈 있고 힘있는 자에 의해, 강한 자를 향해 굽실거리며 휘둘리고 있으니 여기서 비롯되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내 땅 내가 지킨다는데 왜 지랄들이여.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곡식 밟지마. 곡식 밟으면 너희들 가만 안 둘꺼야. 밟기만 해.

 


그들이 애써 가꿔 온 생명이, 삶의 터전이 전경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전경들은 풀조각을 밟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대추리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의 모든 삶이 짓밟히는 것과 같다. 그들의 투쟁은 살기 위한 것이고 그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봐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늘 그렇듯이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잡아 먹히더라도 당당히 싸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강자와 타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추리의 160가구 가운데 16가구가 그러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들을 욕할 수는 없다.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하는 일은 대통령 빽이라도 안 돼.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고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거야.

국가가 있은 다음에 내가 있지. 국가가 없어봐. 내가 존재할 수 있나.

 


하지만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정부는 그들 마저 잡아 먹고 만다. 타협하면 잡아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은 국가의 뒤통수 때리기 작전에 휘말리고 말았고, 그들은 정말로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그들은 국가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의 땅을 빼앗겨야 하는 현실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집단 농성에 들어간다. 할머니들은 6살짜리 꼬마 아이가 부르는 투쟁 노래 앞에서 마냥 즐겁다. 그들은 힘든 삶을 웃음으로 견뎌온 것처럼 힘든 투쟁 또한 웃음으로 견딘다. 하지만 웃음은 이내 억장이 무너지는 눈물로 변하고 만다.

 


다리가 떨려서 못 서있겠어(I can't stay here).

 


서울까지 먼 걸음을 한 대추리 마을의 한 할머니는 촛불시위 현장에서 꺼질 듯 흔들리는 촛불처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린다.

자본주의의, 산업사회의 무시무시하고도 잔인한 손, 포크레인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는 나무 앞에서, 폐교 앞에서 대추리 사람들 역시 처참히 무너진다. 포크레인이 끊어버린 것은 나무가 아닌 대추리 사람들의 생명이었다.


더 이상 살 수 없는,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한 땅, 대추리를 떠나는 사람들. 이제 대추리에는 60여개 가구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들 역시 언제 떠날지는 모를 일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평화 운동가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빈자리를 메꾸고 있지만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타협할 수 없어 보이는 대추리는 버려져 가고 있었다.

2007년 3월, 대추리는 미군기지 확장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합의하에 공동 이주를 했다. 이렇게 강자는 손쉽게 약자들을 물리치고 땅따먹기에서 승리했다.

강자들의 땅따먹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약자가 사라져 버린 곳에서 강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봄,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다.

여름,

새싹이 자라다. 그러나 힘들게 자란 그것들은 이내 짓밟히고 만다.

그러나 가을,

살아남은 벼들은 잘도 자라 수확된다.

겨울,

언제 또다시 짓밟힐지 모르는 그 땅에 또다시 씨를 뿌려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들은,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대추리 영농학교를 개설하여 다음 해를 준비한다.

또다시 봄,

삭막한 땅에 씨를 뿌린다.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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