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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6/27
    사노위와 해방연대..(1)
    혁사무당파
  2. 2010/04/09
    김예슬,박지연,천안함 희생자..(3)
    혁사무당파

사노위와 해방연대..

[관점] 천안함 관련, 사노위와 해방연대의 입장차이를 말한다

 

천안함과 관련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사노위 http://swc.jinbo.net/ )와 노동해방실천연대 (해방연대 http://www.hbyd.org/ )의 입장차이가 논란이다.

 

사노위는 5월 22일자 성명 「투쟁을 멈출 수 없다! 정권과 자본의 전쟁위협 책동을 규탄한다」결론부이다.

지금은 단순히 ‘평화!’를 추상적으로 요구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든 ‘사회적 평화!’든 ‘계급 평화!’든 ‘평화’를 지금 말하는 것은 투쟁의 유보와 포기를 뜻할 뿐이다. 우리가 진정 평화를 바란다면 지배계급이 우리를 향해 벌이는 계급전쟁에 맞서 어떠한 유보 없이 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평화란 없다. 자본가계급의 전쟁위기 책동과 경제위기 고통전가 책동에 맞서 우리의 투쟁을 전면화하자!”

 

해방연대 5월 20일자 성명 「천안함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확립하라」에서 사노위와 상충부분을 보자.

46명의 젊은이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건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공안 정국에 활용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한과 북한의 대립관계에 있다. 이 대립 관계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남한과 북한의 민중은 언제나 전쟁의 위협과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공안 정국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한과 북한의 대립관계를 끝내기 위해 평화협정 체결 등을 통해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위 두 문건만 보자면, 사노위는 아마도 해방연대의 ‘평화협정 체결’ 부분을 추상적 요구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럼 ‘투쟁’을 강조하는 사노위에 비해 해방연대는 ‘투쟁’을 기피하는 관점을 지닌 것일까. 해방연대의 결론부다.

천안함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6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한반도에서 대립과 전시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대하는 이명박 정권과 미국 정부의 태도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는 부르주아 정권에 의해 쟁취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전쟁 상황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한의 모든 노동자와 민중이 투쟁에 나서야 한다.”

 

해방연대도 역시 ‘투쟁’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견해 차이가 없다. 문제는 “천안함 사태를 대하는 이명박 정권과 미국 정부의 태도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는 부르주아 정권에 의해 쟁취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라는 부분인데, 사노위 입장에서는 과연 “‘쟁취될 수 없‘는 요구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형용모순으로 볼 수도 있다.

 

해방연대가 “쟁취될 수 없는 요구”를 한 것은 전술적 관점에서 있을 수 있는 표현이다. 전위와 대중운동이 완전 별개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임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방연대가 투쟁 원칙을 방기한 채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면 사노위가 ‘추상적’이라며 준엄하게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 공간에서 해방연대의 실천적 행동을 감안하면 사노위가 “투쟁의 유보와 포기”라고 성급하게 단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열정이, ‘원칙’을 벗어나 동지들에 대한 ‘말초적 신경 건드리기’로 나타나는 이런저런 현상들은 운동의 진전을 방해한다. 그 점에서는 이번 사노위 성명이 그렇고 지난시기 행동에서 해방연대 쪽 동지들도 자유롭지 않다. 동지들을 아끼자. 경직된 관성을 버리고 만나자 소통하자. 써클 단위가 아니라,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한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정치사업인가. 선수들끼리 불필요하게 에너지 낭비하면.. 갸들만 좋아진다.

 

[관련성명 전문]

사노위   http://swc.jinbo.net/board/bbs/board.php?bo_table=sub0201&wr_id=8

해방연대   http://www.hbyd.org/zboard/zboard.php?id=hbyd_notice&no=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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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박지연,천안함 희생자..

간만에 정곡을 꿰뚫는 글이 하나 나왔다. 9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김예슬 vs 故 박지연 vs 천안함 희생자…공통점은?” 제하의 노정태씨 문건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자’며 진보를 말하는 우리들의 오류에 딴지를 걸었다. 김예슬의 용감한 결의는 그것대로 훌륭한 것이지만, 박지연과 천암함 희생자들에게도 우리의 시선은 공평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진보진영의 단골손님인 우석훈의 등록금 인하책이 대학 변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20대 담론'이 철저하게 대학생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과연 또 있을까?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은 자퇴만 해도 화제가 되고 저항하는 20대로 승격된다. 고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젊은이는 죽어서도 투쟁의 주체가 아닌 산업 재해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 가령 이번에 침몰한 천안함 사건을 되짚어보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에 간다. 그 군대는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권의 사각지대이며 누군가가 애꿎은 생명을 잃어도 속 시원한 해명 한마디 내주지 않는다.“>

 

진보진영은 삶의 태도에서 노동자민중들과 더불어 호흡하고 있는가?

진보진영은 실제로 노동자민중들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두 가지 질문 앞에 진보진영에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우리가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유추하는 다수는 기업대학을 포함해 자본의 과소비 아이템에 깊이 침윤된 채 학벌카스트를 누리는 화이트칼라들이다. 그들이 몸담은 영역이 정당이건 시민사회단체건 개인이건 말이다.

 

해서 그들의 눈빛은 예슬과 지연에게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천안함 관련 사태(천안함: 사망 2명 실종 44명, 금양호: 사망 2명, 실종 7명)에 대해 촛불시민보다도 더딘 진보진영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참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이제 '20대 담론'같은.. 부문운동 이벤트 활동가들로 득실거리는 두루뭉실한 진보는 그만 끝장내고, 정확하게 정리된 좌파가 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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