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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김예슬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4/14
    불편함을 변증법으로(71)
    혁사무당파
  2. 2010/04/09
    김예슬,박지연,천안함 희생자..(3)
    혁사무당파
  3. 2010/03/31
    김예슬과 책상좌파(12)
    혁사무당파

불편함을 변증법으로

 '김예슬 선언' 후 한 인터뷰에서 예슬이 사죄했다.

"대학문을 넘지 않아서

수많은 차별을 감내하고 사는

농촌, 노동현장의 수많은 분들에게

나의 선언이 또다른 상처가 되었다면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다.."


삼성반도체 박지연씨의 죽음에 비해

자신이 상대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지적한

학벌카스트와 유관한 일각의 애정어린 비판에

예슬은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었다.

나이하고 철드는 것 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더니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 블로그는 애초 불편함을 목적으로 개설했다.

해서, 내부모순을 하나하나 펼쳐나갈 때마다

이를 못견뎌하는 친구들의 모난 짱돌이 예쁘고 

넉넉한 소통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이 반갑다.

바램이 있다면

아무리 버겁거나 매서운 논리라 하더라도

겸허의 미덕과 변증법적 사유로 나아갔으면 하는 것.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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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박지연,천안함 희생자..

간만에 정곡을 꿰뚫는 글이 하나 나왔다. 9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김예슬 vs 故 박지연 vs 천안함 희생자…공통점은?” 제하의 노정태씨 문건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자’며 진보를 말하는 우리들의 오류에 딴지를 걸었다. 김예슬의 용감한 결의는 그것대로 훌륭한 것이지만, 박지연과 천암함 희생자들에게도 우리의 시선은 공평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진보진영의 단골손님인 우석훈의 등록금 인하책이 대학 변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20대 담론'이 철저하게 대학생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과연 또 있을까?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은 자퇴만 해도 화제가 되고 저항하는 20대로 승격된다. 고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젊은이는 죽어서도 투쟁의 주체가 아닌 산업 재해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 가령 이번에 침몰한 천안함 사건을 되짚어보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에 간다. 그 군대는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권의 사각지대이며 누군가가 애꿎은 생명을 잃어도 속 시원한 해명 한마디 내주지 않는다.“>

 

진보진영은 삶의 태도에서 노동자민중들과 더불어 호흡하고 있는가?

진보진영은 실제로 노동자민중들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두 가지 질문 앞에 진보진영에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우리가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유추하는 다수는 기업대학을 포함해 자본의 과소비 아이템에 깊이 침윤된 채 학벌카스트를 누리는 화이트칼라들이다. 그들이 몸담은 영역이 정당이건 시민사회단체건 개인이건 말이다.

 

해서 그들의 눈빛은 예슬과 지연에게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천안함 관련 사태(천안함: 사망 2명 실종 44명, 금양호: 사망 2명, 실종 7명)에 대해 촛불시민보다도 더딘 진보진영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참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이제 '20대 담론'같은.. 부문운동 이벤트 활동가들로 득실거리는 두루뭉실한 진보는 그만 끝장내고, 정확하게 정리된 좌파가 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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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과 책상좌파

김예슬(고려대)의 ‘사회적 자퇴운동’을 통한 기업의 하청업체인 대학과의 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29일 채상원(서울대)도 대자보를 통해 이 운동에 동참할 뜻을 밝혔는데 학내에 남아서 투쟁하겠다는 점이 김과 차이점이다. 고려대 정경대학 담벼락에는 약 10여 개의 지지 대자보가 줄을 잇고 있으며, 누리꾼들이 만든 '김예슬 선언' 온라인 까페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학벌카스트’ 혁파운동이 변혁운동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위치했던 점을 돌이켜 보면, 김예슬과 채상원 등으로 이어지는 이 운동이 향후 좌파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거칠게 말해 ‘학벌카스트’는 그간 진보진영 내에서도 하청기업의 논리 그대로 '책상좌파' 등을 통해 매우 유효하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김예슬 등의 충격파가 일반사회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변혁운동의 전위라 할 수 있는 좌파들의 계급적 모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 내부모순에 누락된 학벌카스트 추가함.) 

 

[ 위 본문에 대한 zzz님의 덧글반론] ---------

zzz  2010/03/31    #

별 영향없으니까 신경 꺼도 될 듯. 왜냐고? 당신부터 책상좌파니까. 화면 옆구리에 써놓은 글들 보니 누워서 침뱉는 듯. 너같은 넘이 더 역겨워. 고대서울대 들어갈 머리가 있는 김예슬채상원은 책상좌파 아니고 그럼 기계앞 좌파가 될 것 같나 보지? 꿈 깨라. 강남좌파가 책상좌파라는 것 자체가 큰 허상이고 현실이 아닌 책상 앞에서만 상상하는 못된 버릇이지. 그렇게 따지면 맑스는 기계앞 좌파였냐? 강남좌파는 책상좌파라는 말 자체가 현장을 전혀 모르는, 그야말로 네가 말하는 책상좌파적 발언이란다. 정신차려라. 강남에 가서 활동 한번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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