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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크론슈타트가 남긴 역사적 교훈들

크론슈타트가 남긴 역사적 교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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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국제주의 <시카고 혁명가 네트워크>(이하 CHIREVNET)에서부터 1921 3월 러시아 크론슈타트의 수병들과 노동자들의 혁명적 봉기라는 팸플릿 하나를 받았다우선 우리는 팸플릿 작가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그는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이 있는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그 사건의 교훈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혁명가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이다이 팸플릿은 최근에 영어로 번역된 우리의 책 네덜란드독일 코뮤니스트 좌파를 인용하고 있다이 책은 크론슈타트 봉기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기인하는 혁명운동의 역사에 관한 저작이다그러나 CHIREVNET의 팸플릿은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가 볼셰비키가 반란을 진압한 것을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며 비판한다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이 팸플릿은 우리의 크론슈타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고오해하고 있으며 잘못 표현하고 있다수년 동안, ICC는 계속해서 날카롭게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무력 진압을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며 잘못된 시각을 방어하는 정치 그룹들을 비판해왔다그 비판들은 아래 글이나 국제평론 103호와 제104호에서 두 부분으로 된 연재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CHIREVNET의 팸플릿은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아나키스트적이고 평의회주의적인 크론슈타트에 관한 신화들과 그것에서 나온 교훈을 반영한다이것은 특히 반란을 진압하는데 볼셰비키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만그것만이 아니라 볼셰비키의 가상의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에서 반당적 교훈들 역시 끌어내고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혁명 정당은 아무런 필요도 없다왜냐하면이는 자본주의 선거 놀음에 참여하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대자본가 지배계급에 의한 낡은 자본주의권위주의 독재즉 국가권력을 위한 욕구에 불과하다.” 이 과도하게 단순화된 반당 정치적 결론은 완전히 혁명 정당의 역할과 의식화 과정에서 당과 계급 사이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당의 역할은 부르주아지가 퍼뜨리고 다니는 선거를 신비하게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더욱이팸플릿의 방법론적 준거의 틀은, CHIREVNET이 자주 다른 모든 곳에서 맑스주의 변증법에 호소함에도이 사건들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유효하지 않다보기를 들어, CHIREVNET은 크론슈타트 반란을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그리고 그 저자는 이점을 처음부터 인정한다크론슈타트 반란의 의미와 중요성을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그들 나름의 목적에도 불구하고그 팸플릿은 이 사건을 역사적 전망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그런데 이는 사회정치역사적 사건들을 과학적이고 맑스주의적으로즉 프롤레타리아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이러한 기초지식의 부족 때문에 당연하게도 CHIREVNET은 레닌과 볼셰비키에 관하여 아나키스트적인 도덕주의적 설교에 사로잡혀 있다아나키스트들의 판에 박힌 도덕주의적 근본주의 때문에 그 의미가 희석되어그 팸플릿은 크론슈타트 반란과 자본주의에 맞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러시아 혁명 그 자체의 전반적인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역사적 공과(功過)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이처럼 비판적 준거의 틀이 없기에 그 팸플릿은 크론슈타트 반란 진압이 단지 볼셰비키의 특정한 이론적 오류나 레닌의 ‘대리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비록 이것이 분명 중요한 요인들이기는 하지만-궁극적으로 혁명을 다른 나라로 확산하는 데 실패하고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노동자 대중운동에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요새가 고립되었다는 맥락적 사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이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CHIREVNET에게 러시아 혁명의 퇴보를 낡은 아나키스트적인 도덕주의로 설명하는 것은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 따르면이러한 훗날의 퇴보는 볼셰비키 지도부의 권위주의적 경향 때문이다이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역사상 인물들의 선악 대립으로올바른 도덕적 관점의 소유 또는 부족의 문제로 제한한다즉 이러한 이론은 결국 역사유물론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거부감을 반영한다.

 

이 팸플릿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는 두 편의 기사를 번역하여 출판한다이 기사들은 앞서서 2001 3 ICC 프랑스 지부의 매체인 국제혁명 310호에 실렸다이 기사들은 크론슈타트 반란 진압에 대한 ICC의 입장을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그리고 그 기사는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타락한 제인터내셔널에서 분리한 좌익분파들에 속한 우리의 선배들이 만든러시아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적 대차대조표에 나타난 코뮤니스트 좌파들의 정치적 입장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다.

 

부디 CHIREVNET이 우리의 답변을 동지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그리고 계속해서 논쟁과 토론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논쟁과 토론은 노동자 운동 내에서 정치적 명확화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우리의 독자들이 투고하여 이 논쟁에 개입하고 그들 가운데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키기를 촉구한다이 논쟁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투사들도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한 <로스앤젤레스 노동자의 목소리>(이하, LAWV)가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긴 문서를 발표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게 중요하다여기에서 그들이 과거 알바니아 스탈린주의의 지지자들에서 현재 프롤레타리아 투사들에 대한 기생충 같은 공격으로 다소 정치적 입장이 변화했다는 것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이번 호와 국제주의122호를 보시오.)그것은 LAWV CHIREVNET이 이야기하는 크론슈타트에 대한 분석이 분명히 비슷함에도 불구하고두 그룹이 현재 완전히 다른 정치적 궤적을 그린다는 점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두 출판물의 기사들 모두 비슷하게 심각한 자유주의적이고 아니키스트적인 혼란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CHIREVNET의 입장은 명백히 노동자 투쟁이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치적 명확성을 찾고 있다반면 LAWV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현재 입장은 1917 10월 봉기가 일어난 직후인 1918년부터 러시아 혁명이 타락하였으며 볼셰비키는 반()혁명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러한 주장은 지난 5년 동안 IBRP(혁명당 국제서기국현재의 ICT)와 제휴하면서 그들이 방어했던 코뮤니스트 좌파의 역사적 입장으로부터 확실히 갑작스럽게 퇴보한 것이다.

 

우리는 LAWV가 크론슈타트에 대한 견해에서 자유주의적 정치세력 쪽으로 도약한 이유는 자유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로부터 영향받은 그룹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본다이 그룹들은 현재 ICC IBRP와 같은 코뮤니스트 좌파 조직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기생충 같은 캠페인을 해대고 있다. LAWV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신국제주의자의 최근호 표지로 CHIREVNET의 팸플릿 표지를 다시 사용했다더군다나 같은 제목으로 ICC를 공격하는 그 기사에서 LAWV ICC가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진압을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옹호한다고 아무런 근거 없이 단언하면서그러한 옹호는 ‘우리 자신에서 권력을 부여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위에 군림하는 당-국가 독재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CHIVREVNET이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 오독을 한 반면, LAWV는 뻔뻔스럽게 거짓말하고 중상모략을 저질렀다.

 

우리는 진정으로 노동계급과 관련된 이슈들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과거의 투쟁에서 교훈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그룹들과는 긍정적인 태도로 논쟁하고 싶다그리고 그것은 LAWV처럼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기생충 같은 분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평형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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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3월 크론슈타트 반란 진압 :

노동자 운동에서 비극적인 실수

 

1921년 3, 1917년 10월 혁명으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지 4년이 채 못 되어볼셰비키는 무력으로 페트로그라드에서 30km 떨어진 작은 코틀린섬에 있는 크론슈타트 수비대의 봉기를 진압했다.

 

수년 동안 소비에트 러시아는 여러 해외 열강들의 지원을 받는 백군의 반혁명 책동에 맞선 내전에서 피의 투쟁을 벌여야 했다그런데도 크론슈타트 수비대의 반란은 이러한 반혁명 시도의 일부가 아니었다그것은 10월 혁명의 선두에 섰던 소비에트 정부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같은 노동계급 당파의 반란이었다이 노동자들은 새로운 집권 세력의 수많은 권력남용과 참을 수 없는 탈선을 교정하려는 목적으로 반란에 앞장섰다크론슈타트에 대한 유혈진압은 전반적으로 노동자 운동에 커다란 비극을 일으켰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다그것은 1914~1918년 사이에 벌어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 노동계급의 응답이었던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발전 도상에서 최초의 승리였다. 10월 봉기는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수립 과정의 일부였다볼셰비키는 이 사건을 열정적으로 두둔했다봉기의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즉 부르주아지에 맞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전쟁에서 최초의 결정적인 순간을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고립은 러시아 혁명의 퇴보의 진정한 원인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처음 일어난 혁명은 전()유럽과 다른 곳으로 투쟁을 확산시키려는 노동계급의 여러 노력에도 국제적 차원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 그 자체는 기나긴 피의 내전에 의해서 찢겨나가서 경제는 황폐해졌고소비에트 권력을 떠받드는 기둥인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는 해체되었다.

 

 공장위원회가 제거되고점차 소비에트가 국가기구에 종속되었으며노동자 민병대가 파괴되었다내전 동안 긴장된 시기가 이어지면서 점차 사회 전반이 군사화되었고이와 함께 여러 관료적 위원회들이 만들어졌다이러한 것들 전반이 러시아 혁명이 타락하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내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지라도타락이 만개하여 진행된 것은 그 이후의 시기였다차츰 -국가의 지도부는 노동계급의 자기조직화가 기본적으로 올바르지만현재 당면한 시기에는 반혁명세력에 맞서서 군사적 투쟁을 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발전시켰다. ‘효율성의 원칙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원칙들을 훼손하기 시작했다효율성의 원칙이 지배하면서 국가는 노동의 군사화를 실시하기 시작했다그것은 감시와 극단적인 착취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복종시켰다공장위원회를 이미 약화했기 때문에 국가가 일인 관리와 테일러주의 착취 시스템을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과거에 레닌은 테일러주의 시스템을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비난한 바 있었다전쟁경제의 혼란은 국제적인 고립으로 더욱 증폭되어 국가 전체를 기근의 위기에 빠뜨렸다노동자들은 점점 더 부족해지는 배급에 의존해야만 했으며그조차도 종종 불규칙하게 이루어졌다많은 공업지대가 전반적으로 조업을 중단했고 수천 명의 노동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소유의 자원에 의존해야 했다많은 노동자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시골에서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서 함께 도시를 떠나는 것이었다.

 

내전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동안소비에트 국가는 주민 다수의 지지를 유지했다왜냐하면소비에트 국가는 구()소유계급에 대항한 투쟁으로 자신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노동자미숙련공소농 등 각 부문에 따라서 내전의 고통을 견뎌내는 의지는 상대적이었다그러나 백군을 물리치면서많은 사람이 생활 조건이 앞으로 덜 가혹해질 것이며경제와 사회생활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느슨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볼셰비키 지도부는 항상 전쟁으로 야기된 생산의 파괴에 직면하여사회생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어떠한 조치를 하는 것도 다소 내키지 않아 했다.

 

크론슈타트 봉기

 

1920년 말탐보프주중부 볼가우크라이나서부 시베리아와 다른 지역들을 가로질러 농민봉기가 퍼져나갔다군복 입은 농민인 적군이 빠르게 무장을 해제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와 반란의 불길을 부채질했다이 반란의 주요 요구는 곡물 징발 중단과 농민 스스로 자신의 생산물 처분 결정권을 갖게 하라는 것이었다. 1921년 초반란의 기운은 10월 봉기의 선두에 섰던 페트로그라드모스크바크론슈타트 등 도시의 노동자들에게도 퍼져나갔다.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일련의 중요한 자발적인 파업들이 일어났다공장 집회와 거리 시위에서 식량과 의복 배급 증가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많은 노동자가 추위와 배고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경제적 불만들과 결합하여 다른 좀 더 정치적인 요구들 또한 나타났다노동자들은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제한 조치를 중단하고투옥된 노동자들을 석방하며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원했다틀림없이 몇몇 반혁명 분자들즉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이러한 사건들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그런데도 페트로그라드의 파업 운동은 본질적으로 가혹한 생활조건에 대한 자발적인 프롤레타리아의 반응이었다그러나 볼셰비키 당국은 노동자들이 봉기 이후의 국가그들에 의하면 노동자 국가에 맞서서 파업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파업 노동자들을 선동자게으름뱅이개인주의자로 비난했다.

 

이러한 것들이 크론슈타트에서 수병 반란을 일으켰던러시아그리고 무엇보다도 크론슈타트의 사회적 문제들이었다페트로그라드에서 파업이 일어나기 전에조차트로츠키가 혁명의 영광과 명예라고 묘사했던 크론슈타트 수병들은 이미 관료적 경향과 붉은 함대 내에서의 군사적 규율 강화에 맞서서 저항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그러나 페트로그라드의 반란 소식이 도달하고 계엄령이 선포되면서수병들은 즉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2월 28일에 그들은 페트로그라드 공장들에 대표를 보냈다같은 날 순양함 페트로파블로프스크의 선원들은 회합하고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의 강령이 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이 결의안은 경제적정치적 요구안들을 제출했다특히 요구안에는 가혹한 전시 공산주의’ 방책들의 중단과 연설의 자유출판의 자유그리고 모든 정당 활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속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재선출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3월 1일 두 명의 볼셰비키 대표들은 페트로파블롭스크 승무원들과 만나서 그들의 결의안을 규탄하고 만약 수병들이 그들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즉각 진압에 나설 것이라고 위협했다이 건방지고 자극적인 볼셰비키 지도부의 태도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으로 수병들의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3월 2일에는 크론슈타트 소비에트 재선거를 하였으며, 300명의 대표가 페트로파블롭스크 결의안에 찬성 투표하고 소비에트 정부의 평화로운 재편을 위한 동의안을 채택했다대표들은 시행 정부를 떠맡는 지역 혁명위원회와 어떠한 정부의 무장 개입에라도 맞서기 위한 방어조직을 만들었다이렇게 크론슈타트 코뮌이 탄생했다크론슈타트 코뮌은 그 자신의 이즈베스티야(정부 기관지역자)를 발행하기 시작해서 첫 호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이 나라의 지배자인 코뮤니스트당은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구출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최근에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에서 발생한 셀 수 없는 사건들은 코뮤니스트당이 노동대중의 신뢰를 상실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코뮤니스트당은 노동계급의 요구를 무시한다왜냐하면이러한 불만들이 반혁명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이러한 믿음으로 코뮤니스트당은 심각한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코뮨의 반란은 완전히 고립된 채로 남았다그들이 세 번째 혁명이라고 부른 반란을 확대하기 위한 반란자들의 소집 요청에 응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페트로그라드의 공장들에 대표를 파견했음에도소책자들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결의안을 배포했음에도붉은 함대의 요청은 전체 러시아 노동계급을 결집하는 데 실패했다러시아 노동계급은 반란자들의 강령에 공감했을 수도 있으며 그 반란을 완전히 지지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은 그들의 파업 투쟁을 중단했으며 계엄령 하의 일터로 돌아갔다내전의 혼란은 러시아 노동계급을 파괴하고 사기를 꺾어놓았으며 분해해버렸다.

 

크론슈타트 코뮨의 분쇄

 

반란에 대한 볼셰비키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은 반란을 소비에트 권력에 맞선 반혁명 음모의 일부로 비난하는 것이었다분명히 백군에서 사회혁명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반혁명 세력들은 반란을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시도했으며 원조를 제공했다그런데도 망명객들이 통제하는 러시아 적십자 채널을 통해 제공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 혁명위원회는 반혁명세력의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혁명위원회는 자신들이 전제 정부의 복귀 또는 제헌의회-1918년 초에 혁명의 적들에 의해서 소집된 적이 있다-의 복귀가 아니라 관료적 지배로부터 해방된 소비에트의 재선출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성벽은 소비에트이지 제헌의회가 아니다크론슈타트에서 권력은 수병과 적군 병사혁명적 노동자들의 손에 있다모스크바 라디오가 기만적으로 주장하듯이 권력은 코즐로프스키가 이끄는 백군의 수중에 있지 않다.”라고 크론슈타트 이즈베스티야는 선언했다.

 

해군과 육군 병사의 계급구성뿐만 아니라 반란자들의 강령과 이데올로기에도 소부르주아적 요소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사실상 이 반란은 볼셰비키가 1917년 혁명의 선봉에 섰기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는 자들이 그들의 경멸감을 드러낼 좋은 기회가 되었다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의 존재가 운동 그 자체의 근본적인 성격을 바꾸지는 못한다.

 

볼셰비키 지도부는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해서 극도로 완고한 태도로 대응했다볼셰비키의 완고한 태도 때문에 토론이나 타협의 가능성은 빠르게 사라졌다요새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하는 동안반란을 분쇄하기 위해서 파견된 적군 부대들은 항상 사기가 바닥을 때렸다몇몇 부대들은 반란자들에게 동조했다군대의 충성심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걸출한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그 당시 모스크바에서 열리던 10차 당 대회에서 급파되었다동시에체카의 소총부대들이 어떠한 사기 저하도 퍼져나갈 수 없게 하려고 병사들의 뒤에서 그들을 겨누었다요새가 완전히 함락되었을 때체카는 약식재판으로 처형하거나 빠르게 사형을 선고하는 방식을 일부 반란자들을 학살했다다른 사람들은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다진압은 체계적이었고 무자비했다.

 

이 사건 당시에 백군이 볼셰비키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크론슈타트 반란을 이용할 위험성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볼셰비키 권력 내부의 가장 비판적인 분파들조차도 반란을 분쇄하는데 협력하게 되었다.

 

전체 노동자 운동의 오류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해서 모든 반()레닌주의 조류들이 계속해서 숨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있다면그 당시에 볼셰비키의 오류를 전체 노동자 운동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코민테른으로부터 추방된 코뮤니스트 좌파 분파들과 조류들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볼셰비키 지도부에 대한 반대 분파인 노동자 반대파는 반란 진압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다그리고 이 분파를 이끌었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그녀의 분파 성원들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출병에 앞장서서 지원해야 한다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독일-네덜란드 좌파는 심지어 그들의 입장이 콜론타이처럼 반란의 진압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지만볼셰비키의 정책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았다그러므로 그때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 크론슈타트 반란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반혁명 음모라는 주장을 두둔했으며 진압을 비난하지 않았다네덜란드 좌파의 투사인 헤르만 호르터는 볼셰비키의 방책이 크론슈타트 반란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왜냐하면그는 크론슈타트 반란이 농민들에 의해서 일어난 반혁명 봉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내에서빅토르 세르쥬는비록 그가 크론슈타트 수병들에 맞서서 무장하는 것을 반대했지만당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진압에 맞서서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비극적인 오류는 볼셰비키 당과 그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사실상 볼셰비키는 단지 비극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시행했을 뿐이다다만 이 정책은 당시 전체 노동자 운동이 반혁명은 봉기 이후에 국가 그 자체로부터 자라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해 발생한 당연한 결과였다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917년에 구더기는 이미 과일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 의하면 계급정당의 존재가 언제라도 그 안에 반혁명의 씨앗을 담고 있다그것은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인 고립 때문에 볼셰비키가 국가로 흡수되고국가 그 자체가 자신을 노동계급에 맞선 국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이러한 그 당시의 전체 노동자 운동의 오류는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출현한 제도장치가 프롤레타리아 국가라는 생각을 둘러싸고 일반적인 혼란으로 나타났다.

 

 

 Internationalism, Vol. 123, 2002년 가을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한국어 출처실천」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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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 빅토르 세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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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트로츠키와 크론슈타트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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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1921년 트로츠키와 크론슈타트 봉기

1921년 트로츠키와 크론슈타트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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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3월 크론슈타트 봉기가 격렬하게 진압되고신경제정책(NEP)이 도입되면서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을 통해 성립된 국가 자본주의 체제의 통합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이 이끄는 코뮤니스트 없는 사회주의’ (즉 볼셰비키 없는)를 위한 투쟁은 이른바 평의회(소비에트)를 망가뜨린 '전시-코뮤니즘'이라는 러시아 내전의 압박으로 지배력이 강화된 러시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의 정치적 권력을 재탈환하려는 마지막 시도가 될 것이었다전례 없는 군사화를 통해 '백군'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달성한 후볼셰비키 정권은 남부의 막노브치나(Makhnovchina)처럼 대량 기근과 농민 반란을 초래했던 경제적 수준에서 명백한 재앙에 직면했다크론슈타트 봉기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동조자였던 대중운동의 최고봉이었다패배와 더불어 그에 따른 정치 활동의 억압으로, 1905년 이후 러시아에서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대중파업의 중추는 붕괴하였고볼셰비키당의 반혁명적 퇴축이 봉쇄되었다.

 

(Willy Huhn)의 저서 트로츠키 실패한 스탈린의 다음 장은 1950년대 초볼셰비키당그 지도부특히 이러한 주요 사건들에서 트로츠키의 역할특히 트로츠키주의의 후기 정치적 흐름과 관련하여평의회 코뮤니스트인 윌리 훈(Willy Huhn)은 상세한 분석을 제시한다.

 

 

윌리 훈(Willy Huhn), 트로츠키 – 실패한 스탈린 (1952)」 에서

[1트로츠키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6]

 

 

 

볼셰비키는 크론슈타트 봉기를 반혁명적백군으로 훼손하려 했고안토노프-오브센코(ANTONOV-OVSEYENKO)는 무신론자와 아나키스트당에 대해 말했다그리고 클라라 제트킨 조차도 남러시아 농민 반란과의 연관성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그가 최고 혁명법원 앞에서 코민테른을 대표하여 연설하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재판 기록을 연구한 사회혁명가들의 재판(1922년 여름)에 비추어서 크론스타트 봉기를 본다. 그러나 그는 농민운동(자유무역민간자본과 외국자본의 수용민주적 자유제헌의회)의 요구와는 대조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

 

크론슈타트에서는 "제헌의회 만세 – 그리고 코뮤니스트 없는 자유 소비에트!" 이라고

 

그는 이 요구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반혁명의 공식적인 양보라고 생각한다.(1) 볼셰비키 없는 평의회! 오스카 안바일러(OSKAR ANWEILER)는 이 슬로건이 크론슈타트가 제기한 것이 아니라 이민 온 밀류코브가 먼저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평의회 운동 1905-1921, Leiden 1958, E.J. Brill, 317각주 229). 그러나여기에는 러시아 볼세비키에 있는 파리코뮨의 비밀이 있다보기를 들어노동자 반대파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의 입을 통해 "소비에트와 당 조직에서 동시에 직함을 가지고 있는 주요 인사들의 수를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이제엠마 골드먼(EMMA GOLDMAN)에 이어서루스 피셔(RUTH FISCHER)는 크론슈타트 프로그램의 다섯 번째 요점으로서 인용하였다.(2)

 

모든 소비에트 기관에 당 대표를 위임하는 관행 폐지어떤 당도 사상의 전파에 있어서 특권을 가질 수 없으며 국가의 지원 또한 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1921년 3월 6일의 라디오 메시지에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는 당이 아니라 평의회의 권력을 위해 투쟁한다우리는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자유 선거를 지지한다코뮤니스트(볼셰비키)는 언제나 우리의 요구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그들은 총알로만 응답했다..."

 

다음날레닌과 트로츠키의 명령에 따라 크론슈타트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볼셰비키들이 포탄으로 응했다!

 

우리는 여기서 크론슈타트 봉기에 대해서 몽환적인 설명을 할 의도는 없다알렉산더 버크만(ALEXANDER BERKMAN)은 이미 1년 후에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이 일을 잘했다왜냐하면그는 크론슈타트 노동자와 선원들을 대신하여 지노비예프와 협상했기 때문이다.(3) 우리는 우리의 맥락에 속하는 몇 가지 특징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1921년 2월 말에 페테르부르크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고볼셰비키들은 이 파업을 쿠르산티’(Kursanti, 생도 연구소 학생들)을 시켜서 진압하게 했다그들은 파업 막바지에는 공장 노동자들을 가둬놓고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서 식량 배급을 빼앗았다크론슈타트 선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그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페테르스부르크로 위원을 보냈다이 위원은 1921년 3월 1일 크론슈타트에서 열린 인민총회에 보고했는데이 회의는 발트함대 1여단과 2여단이 공식적으로 소집하고 16,000여 명의 적군함대 선원적군 병사노동자들이 참석했다분개한 총회는 유명한 크론슈타트 결의안을 채택했는데다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부이며 여기에 보충된 것이다.

 

1. 비밀투표로 소비에트의 새로운 선거를 즉시 시행할 것

 

2. 언론의 자유와 노동자와 농민모든 좌파 사회주의정당과 아나키스트들을 위한 언론의 자유;

 

3. 당시 볼셰비키 러시아를 동요시켰던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운동으로 체포 수감하였던 사회주의정당의 모든 정치범 해방은 물론 노동자농민적색 근위대선원들의 해방.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에 크론슈타트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바셀리에브( VASSILYEV) 위원장과 RSFS(4)의 칼리닌(KALININ) 위원장만이 이 결의안에 반대했다총회는 공동의 행동 방침에 대해 그들과 상의하기 위한 페트로그라드의 파업노동자들에게 위원들을 보냈다.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도시로 들어서면서 볼셰비키에 의해 즉시 체포되었다그들은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회의 직후인 1921년 3월 2일 아침레닌과 트로츠키가 서명한 명령이 내려졌는데 크론슈타트 운동이 소비에트(평의회정부에 대항하는 무장봉기(myatosh)라고 선언하였다크론슈타트에서 발트 함대의 수석 보좌관인 쿠즈민(Kuzmin)과 바실리에브(Vasilyev)를 제외하고는 크론슈타트의 볼셰비키가 체포되지 않은 동안트로츠키는 1921년 3월 6일 고약한 저널리즘 중상 캠페인을 마친 후에 크론슈타트 반란군에게 선언했다"나는 너를 꿩처럼 쏘겠다!" 버크먼(Berkman)과 지노비에프의 중재 시도는 실패했다지노비예프 자신은 1921년 3월 4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회의에서 크론스타트에 대한 비난을 전달하였고크론스타트를 반혁명적 선동으로 고발하고 즉각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도입한 것은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인 예브도미코브(YEVDOMIKOV)였다트로츠키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3월 5일 밤에 도착했다그와 스탈린은 크론슈타트 청산 명령을 받았다. 투차체브스키(TUCHACHEVSKY)는 일반 참모 임무를 맡았고트로츠키는 공식적인 군사 영웅 역할을 맡았으며스탈린은 봉기의 진압 임무를 맡았는데 크론슈타트는 10일간의 전투 끝에 패배하였다트로츠키도 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서둘렀다크론슈타트에서 트로츠키스탈린투차체프스키가 승리한 결과는 약 14,000여 구의 시쳇더미였다그래서 1921년 3월 1일의 격렬한 대중 집회 전체를 파괴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원칙적으로 볼셰비키에 대항한 크론슈타트 봉기의 탄압은 당 권력에 찬성하고 소비에트 권력에 반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최종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정치적이고 실천적 결정임을 의미했다. 1918년 11월 9일 저녁 이후당 권력에 찬성하고 독일 소비에트에 반대한 에버트(Ebert)와 노스케(Noske)의 명백한논쟁의 여지가 없는 정치적-실용적 결정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알렉산더 버크먼(Alexander Berkman)이 크론슈타트를 파리 코뮨과 비교했을 때그들과 함께 레닌 그리고 갈리펫(GALLIFET)과 함께 또 다른 비교는 트로츠키 자신을 암시하고 있으며그것을 우리에게 암시한 것은 노스케 자신이다그가 한때 사회민주당 후원하에서 독일군을 재편성하려는 의도를 말했을 때그는 독일의 트로츠키가 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5)

 

크론슈타트 이후, ‘트로츠키주의’ 전체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 트로츠키의 결정과 행위에 대한 사과일 뿐이었고따라서 동시에 볼셰비즘 시대의 신조어였다따라서 1921년 봄 이후또한 이 사과론의 강요 아래트로츠키의 변증법은 이미 젊은 트로츠키를 토론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에 대해서 정당성을 제공했던 쇼펜하우어의 논쟁적인 변증법’ 수준으로 가라앉는다.(6) 마찬가지로 그의 역사학은 자신의 사과 필요에 의한 어떤 결정적인 부분에서 손상을 입게 된다보기를 들어 레닌의 러시아 혁명 개념에 정반대였던 '영구혁명'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보자우리는 이미 10월 혁명의 첫 번째 시기(1917년에서 1920)가 레닌의 원래 개념에 부합하지 않고 1905년 트로츠키의 개념에 부합한다는 마르티노프(Martynov)의 의견을 들었다그는 1905-06년 혁명사에 관한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그것을 발전시켰으며루나츠샤르스키(LUNATSHARSKY)가 한때 그를 레닌보다 더 정통적이라고 묘사했던 것은 정확히 그의 러시아 혁명에 관한 관점과 관련되어 있었다. 10여 년 먼저 트로츠키는 적어도 첫 번째 단계에서는 러시아 혁명의 성격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농민과 부르주아 혁명은 도시 부르주아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영속적으로 유지하는 도시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였다따라서 레닌의 원래 개념은 단순히 역사의 의제에서 제외되었다고 동시에 말들을 한다그리고 자살하기 전(1927년 11월 16아돌프 요제프(ADOLF JOFFES)의 마지막 편지를 인용한 사람은 트로츠키 자신이다.

 

“1905년 이후부터는 항상 정치적으로 옳았는데레닌조차도 인정했다결국나는 종종 내 귀로 그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1905년에는 그가 아닌 당신이 옳았다고죽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나는 오늘 그것을 당신에게 반복한다.”

 

그러나 이 편지를 부록에 수록한 같은 권에서우리는 또한 의견의 실제와 주장된 차이에 관한 부문도 찾을 수 있는데, 18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7)

 

"우리는 전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서 말했다 :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방어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싸웠던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특히 영구혁명과 농민 문제에 대해서 레닌이 옳았다고 인터내셔널에서 말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전체를 위한 이 서술은 스탈린 단체가 인쇄하는 것을 거부한다그것은 계속해서 우리를 트로츠키주의로 비난한다물론 이 서술은 레닌과의 과거 불화를 언급하고 있으며 스탈린과 부하린이 부도덕하게 제기한 불화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1928년 알마 아타(Alma Ata)로 망명한 강제적인 여가 중에 "연필을 손에 들고영구혁명에 관한 옛 저술을 다시 검토했을 때그는 "정확히 그의 개념, ··· 즉 그가 그것이 실현되기 13년 전에 10월 혁명의 필연성을 예측했던 영구혁명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라고 다시 한번 결론짓는다그래서 그는 1905년에 그가 처음 공식화한 영구혁명 이론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추가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항이 있다.(8)

 

나는 내 입장이 실제로 레닌의 입장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그리고 그것이 모든 결정적인 상황에서 레닌의 입장과 어떻게 그리고 왜 일치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사과 방법은 이제 레닌과 트로츠키의 초기 입장과 서로에 관한 예리함(실제로 불일치)을 완화하고본질적으로 그의 저술의 제목과 표제인 다음과 같은 주장을 증명하려는 시도로 구성된다.

 

인터내셔널에서 레닌과 함께’ – 농민 문제에 관해서 레닌과 함께’ – 레닌의 비어있는 권력’ (1919년 7월 트로츠키– 산업 건설에 관해서 레닌과 합의’ – 스탈린라이코프(Rykov), 칼리닌(Kalinin)과 부하린에 대항하여 레닌과 함께’.

 

1917년 이전과 동시에 트로츠키가 레닌에 반대하는 모든 예리함을 나타내기 위해그리고 동시에 트로츠키가 1909년 일찍 볼셰비키 독재 정권의 퇴위를 예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그러나그는 빨라도 1923년까지 그의 권력이 반드시 녹아버린 후에야 그 시작에 주목했다. ‘전시 코뮤니즘의 개념과 신경제정책 시대의 첫해에 우리는 폴란드 정기 간행물 프레제글래드 사회민주주의(Przeglad Social-demokratyczny) - 아마도 1909년에 실린 트로츠키 기사의 몇 문장으로 우리 자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영구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만을 필요로 한다는 트로츠키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 민주 독재에 대한 테제에 반대하며레닌이 승리한 프롤레타리아에게 부르주아-농민 혁명에 대한 제한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방어하고 있다고 비난한다농민들의 협력자 형태로 사회주의 반대자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자제력을 보완하기 위해’ 심지어 옹호하기까지 했다.

 

트로츠키는 레닌이 생각하는 것이 실현될 경우 혁명정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충돌이 임박할 것으로 예상했으며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만을 알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농민당에 의한 노동자들의 길들이기나 후자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이로 인해 볼셰비키가 혁명이 승리하는 순간까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주도하게 되면 농민들이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에 전체의 불행이 있다트로츠키는 당시 혁명에 대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관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멘셰비즘의 반혁명적인 부분들이 지금도 온갖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더 커다란 위험은 혁명적인 승리가 있을 때만 볼셰비즘의 반혁명적 특징에서 위협을 받게 된다.”

 

1909년 이 기사를 인용한 1905년 혁명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그는 1922년 초에 그 말을 덧붙였는데몇 년 후 그의 반대자들에게 "트로츠키주의"의 증거로 제공되었다.

 

"이것은 (볼셰비즘의 반혁명적 위험잘 알려진 바와 같이레닌 동지의 지도 아래에 볼셰비즘이내부 투쟁이 아닌,- 1917년 봄즉 권력을 쟁취하기 전에 이러한 극도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변혁을 구현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가 볼셰비즘으로 건너간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에게 넘어간 볼셰비즘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입증했다.(9)

 

따라서 트로츠키의 사과론의 모든 원리에 대해서 보기를 한번 들어보자:

 

1922 : (트로츠키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권력을 갖고 있다)

그는 1917년 봄 레닌은 '영구혁명'의 입장으로 옮겨갔고옛 볼셰비키(카메네프지노비예프스탈린 등)의 상당한 저항을 극복하며 트로츠키주의적인 의미에서 당을 재편했다는 견해를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1923 : (트로츠키의 권력은 위협받고 흔들린다)

전 멘셰비키 마르티노프(Martynov)는 트로츠키의 관점을 이행한 10월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농민으로부터 떼어내어" 1921년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여 볼셰비키당(신경제)의 광범위한 후퇴를 강요했다고 주장한다그 후 그는 볼셰비키당에 가입했다.

 

1925-1927 : (트로츠키는 권력을 완전히 잃었다)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전체 앞에서 영구혁명이라는 명제에 대해 레닌이 옳았다고 선언한다.

 

1928 : (트로츠키는 알마 아타(Alma Ata)에서 망명 중이다)

트로츠키는 혁명의 과정이 1905년에 그의 예측이었던즉 영구혁명이라는 관점에 해당한다고 다시 한번 주장한다.

 

1930 : (트로츠키는 터키 프린키포(Prinkipo)에 망명 중이다)

트로츠키는 1917년 이전에 레닌과의 차이를 완화하고 모든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레닌과 동의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런 입장을 취했다!

 

스탈린이 10월 혁명의 역사를 위조한 것을 비난하는 글에서 그는 이미 1929년에 선언한다.(10)

 

"레닌과 나의 의견의 불일치는 매우 부수적인 부분에서였고단호한 혁명가로서 나는 볼셰비즘을 향해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점점 더 발전해 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의 활동을 가리킨다그렇다트로츠키가 퇴임했을 때혁명전쟁 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1925년 1월 15퇴임했을 때 그는 심지어 오래전에 자신의 가르침이 청산되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이른바 트로츠키주의라는 관점에서 어떤 문제에 접근할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트로츠키주의는 나에게 있어서 오래전에 청산되었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이 표현이 1917년 10월의 교훈(11)이라는 그의 책의 토론 과정에서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우리는 트로츠키가 적어도 1922년에 그의 이론을 청산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1925년 이후 트로츠키의 정치적원칙적인 태도는 옛 레닌주의자들에 대한 반대와 투쟁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그는 스탈린만이 가지고 있었던 볼셰비키의 '친위대'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인식에 맞서 레닌의 진정한 생각과 의도를 대변하고 옹호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입증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그러나 늦어도 1920/21년 겨울까지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당이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그리고 레닌조차도 농민 운동과 그의 오래된 당 동지들의 압력으로 1921년 트로츠키주의 과정을 수정하고 자신의 원래 개념으로 돌아간 후에 트로츠키의 몰락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레닌조차도 더는 당 다수당에 대항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트로츠키를 지지할 수 없었고트로츠키는 저항 없이 일어났던 결국엔 자신의 개념을 종식한 신경제로 전환을 허락했을 때 이것을 알고 있었다.(12) 그렇다레닌은 1925년까지 살아있었더라도 트로츠키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트로츠키는 전시 코뮤니즘’ 인물이었고그 일을 떠맡았고 또한 그 일에 몰두했다.

 

 

1952년 1월 21

윌리 훈(Willy Huhn,), Berlin-Wan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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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라라 제트킨우리는 고소한다사회 혁명가들의 과정에 기여한 말이다.」 Verlag der Komintern, Hamburg 1923, p. 57.

2. 루스 피셔(Ruth Fischer), 스탈린과 독일 코뮤니즘, US-American edition, Cambridge 1948. 프랑크푸르트/메인(w.y.)의 "프랑크푸르트 헤프트"의 출판소와 독일어 번역. ), p. 203.

3. 알렉산더 버크만(Alexander Berkman), 크론슈타트 러시아의 파리 코뮨!(1922년 3)"생디칼리스트"의 화우드(FAUD)" 4(1952), 11이것은 1951년 "(30)"에 나온 같은 저자의 연장된 에세이 "크론슈타트의 반란"의 원본 버전이다.

4. 공식 지정 : 1918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련 공화국 (RSFSR)의 러시아 사회주의 연맹 (RSFS); 1922년 이후 사회주의 소련 공화국 연합 (USSR)에서 확장되고 재구성되었다. [편집자주]

5. 루스 피셔 인용 99

6. 엘리아스 후르위츠(Elias Hurwicz), 국가와 모험가들위트에서 트로츠키까지의 러시아 초상화 1891-1925라이프치히 1925, p. 319.

7. 레온 트로츠키 루 랜드의 경제위치정식판이다. [독일어빌헬름 크레머의 번역아발룬 출판사 헬러라우 베이 드레스덴 페이지 264-265 (새책 쇼 1929년 6월 6)은 우연한 신문 기사에서 편집된 것이다여기 서베를린에서 트로츠키 문학은 트로츠키 자신이 쓴 "공교롭게도"라는 신문 기사만 실렸다면 아마 트로츠키와 아발룬-베를라그 와의 차이를 넘겨야 할 것이다게다가우리는 그의 "동시의 신문 기사"에 매우 관심이 크다.)

8. 레온 트로츠키영구혁명베를린 윌머스도르프 1930, p. 31.

9. 그리고리 디미트로프 (편집자), 트로츠키 비극, 1925년 베를린, S. 55-56.

10. 레온 트로츠키러시아의 실제 상황페이지 165-166 인용.

11. 그리고리 디미트로프(Grigori Dimitrioff) 54 인용

12. 아서 로젠버그(Arthur Rosenberg), 맑스로부터 현재까지의 볼셰비키의 역사베를린 1932, p. 153.

 

 

2021년 3월 27

A Free Retri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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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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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1921년 크론슈타트 이해하기

1921년 크론슈타트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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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이 10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고 난 뒤 4년째지금(2001)으로부터 80년 전인 1921년 3볼셰비키당은 페트로그라드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핀란드 만의 작은 섬 코틀린에 주둔하고 있는 발트 함대의 크론슈타트 수비대가 일으킨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볼셰비키당은 러시아와 외국 부르주아지의 반혁명 군대에 맞선 몇 년 동안 피로 물든 내전을 치러온 경험이 있었다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비대의 봉기는 새롭고 달랐다이는 소비에트 정권의 노동계급 지지자가 내부로부터 일으킨 봉기였다그들은 10월 혁명의 전위였고이제 여러 가지 참을 수 없는 왜곡과 새로운 권력의 남용을 바로잡으려는 계급의 요구를 들고나왔다.

 

볼셰비키가 이 투쟁을 무력으로 짓누른 것은 그때부터 줄곧 혁명적인 프로젝트가 지닌 뜻을 이해하는 데서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해왔다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에 맑스와 레닌을 스탈린과 굴락(gulag)에 연결하는 끊어질 수 없는 고리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하는 오늘날크론슈타트 사건에 대한 이해는 더욱더 중요하다.

 

우리의 의도는 모든 세세한 내용을 검토하려는 게 아니다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에 실린 이전의 논문들은(“크론슈타트의 교훈들,” International Review n°3과 “1921: 프롤레타리아계급과 이행기 계급,” International Review n°100) 이미 상세하게 그 사건을 다루어왔다.

 

그와 달리 우리는 이번 기념일을 기회로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크론슈타트 봉기에 대한 두 가지 종류의 주장에 집중하려고 한다첫 번째로 아나키스트는 크론슈타트 사건을 맑스주의자와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행동한 당이 지닌 권위주의적 반혁명의 본질을 입증하는 데 사용한다두 번째로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여전히 있는 생각즉 반란을 짓누른 것은 10월 혁명의 성과물을 방어하려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견해

 

아나키스트 역사학자 볼리네(Voline)에 따르면:

 

레닌은 크론슈타트 운동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거나또는 차라리 그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그와 그의 당에 꼭 필요한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맑스주의자권위주의자국가주의자로서볼셰비키는 대중에게 어떠한 자유 또는 독자적인 행동을 허용할 수 없었다볼셰비키는 자유로운 대중을 믿지 않았다볼셰비키는 그들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자신들의 독재가 무너지는 것이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을 무너트리고 혁명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믿었다……

 

크론슈타트는 모든 멍에에서 자신을 해방하고 사회 혁명을 이루려고 하는 인민이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일으킨 시도였다그 시도는 정치적 지도자나 교사 없이 노동계급 자신에 의해서 직접단호하게대담하게 이루어졌다그것은 제3의 혁명사회 혁명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크론슈타트는 무너졌지만크론슈타트에서 봉기한 사람들은 과업을 해냈다바로 그 점이 중요한 것이다봉기에 참여한 대중 앞에 펼쳐진 복잡하고 흐릿한 미로에서크론슈타트는 올바른 길을 밝혀주는 밝은 횃불이었다봉기한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 환경에서 그들이 권력이라는 말과 생각을 모두 없애지 않고 그 대신에 협력과 조직화관리를 말하면서 여전히 권력(소비에트 권력)에 대해 말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그것은 과거에 바친 마지막 찬사였다노동계급 스스로가 토론과 조직화와 행동의 완전한 자유를 얻어낸다면대중이 독자적인 행동에서 참된 길을 찾아낸다면나머지는 자동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볼리네(Voline)가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그들에게 크론슈타트 봉기에 대한 진압은 볼셰비키가 지닌 맑스주의 사상의 당연하고 논리적인 결과였다당의 대리주의프롤레타리아계급 독재를 당 독재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그리고 이행기 국가의 형성은 볼셰비키가 믿지 않았던 대중에 대한 지나친 권력과 권위 욕구를 표현한 것이었다볼리네에 따르면볼셰비즘은 억압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대체한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볼리네는 크론슈타트를 그저 봉기였다고만 여기지 않았다그에게 크론슈타트는 미래를 위한 모델이었다만일 크론슈타트 소비에트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과업(협력조직화관리)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적 과업에 대해 잊었다면(소비에트의 권력에 대한 발언), 그것을 교훈 삼아 우리는 진정한 사회 혁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를테면 지도자 없고당이 없는국가가 없는그리고 어떤 종류의 권력도 없는 사회즉각적이고 완전한 자유의 사회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아나키스트가 끌어낸 첫 번째 교훈은 혁명이 새로운 형태의 폭정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매우 밀접하게 일치한다.

 

아나키스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이러한 견해의 일치는 우연이 아니다양쪽 모두 위계 제도와 폭정과 독재에 맞서는 평등과 연대와 우애라는 추상적 개념에 따라 역사를 평가한다부르주아지는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에 러시아에 맞서 무력으로 개입하고 경제 봉쇄를 이끌었던 반혁명 세력의 잔인성을 정당화하려고 10월 혁명에 반하는 이러한 도덕적 원리를 냉소적이고 위선적으로 이용했다다른 한편 아나키스트가 볼셰비즘에 대한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부딪혀야만 했던 역사적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게 녹여 없애는 순진한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에서 일어난 사건이 확증한 것처럼아나키스트가 지닌 순진성 때문에그들은 맑스가 세운 혁명에 대한 역사 개념을 거부하고 나서 부르주아 진영이 일으킨 실제 반혁명 앞에 어쩔 수 없이 투항하게 되었다.

 

만일 볼셰비키가 볼리네가 주장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권력욕 때문에 근본적으로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하더라도아나키즘은 그와 견주어 볼 때 역사의 진실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만일 볼셰비키가 끝내 권력만을 탐했다면왜 그들은 사회민주당의 다수와는 달리제국주의 전쟁을 규탄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되도록 요구함으로써 1914년과 1917년 사이에 추방당할 운명을 지웠는가왜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과는 달리, 1917년 2월 혁명이 성공하고 난 뒤 러시아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함께 임시 정부를 꾸리는 데 참여하지 않고 그 대신에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을까?

 

왜 볼셰비키는 노동계급이 아주 뒤떨어졌고 부르주아지를 뒤엎기에는 수적으로도 모자란다고 여긴 대부분의 국제 사회민주주의자들과는 달리, 10월에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시작할 수 있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역량을 믿었는가?

 

왜 볼셰비키는 노동계급이 모든 희생을 해서라도 연합국의 봉쇄를 이겨내고 반혁명 군대에 맞서 무기를 들고 저항할 것이라고 믿었는가그리고 그러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고 유지할 수 있었는가?

 

왜 볼셰비키는 유럽과 나머지 세계 전체에서 일어난 혁명의 시도에서 러시아의 지도를 따르도록 세계 노동계급을 고취했는가어떻게 볼셰비키당은 세계적 규모에서 새로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창건을 주도할 수 있었는가?

 

마지막으로 왜 당을 국가 기구로 통합하는 과정과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의 대중 조직에 대한 권리 침탈그리고 마지막으로 계급투쟁에 맞서 무력의 사용은 하룻밤 새에 일어난 게 아니라그저 질질 끌다 일어난 것인가?

 

볼셰비키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더러운 속성을 지녔다는 이론으로는 일반적으로 러시아 혁명의 타락을 또는 구체적으로 크론슈타트를 설명하지 못한다.

 

1921년쯤 러시아에서 혁명그리고 그것을 이끌었던 볼셰비키 당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독일과 다른 국가로 혁명의 확산은 1919년과 견주어 볼 때 훨씬 가망 없는 것으로 보였다세계 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고 독일에서 스파르타쿠스동맹이 일으킨 봉기는 실패했다러시아 안에서 내전을 이겨냈지만반혁명 군대의 거듭된 공격과 국제 부르주아지가 의식적으로 조직한 경제적 질식 때문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공업 기반은 무너져 버렸고노동계급은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에서 희생되었거나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떼지어 몰려갔기 때문에 크게 줄어들었다볼셰비키 정권은 지방에서 일련의 폭동을 일으킨 농민층 사이에서뿐만 아니라또한 무엇보다도 1921년 2월 중순에 페트로그라드에서 파업을 일으켰던 노동계급 사이에서도 점점 더 인기를 얻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크론슈타트가 일어났다.

 

어떻게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특히 유럽의 노동계급 혁명에서 지연된 도움을 기다리면서 세계 혁명의 요새로 남고 노동계급의 불만과 경제적 붕괴를 이겨낼 수 있는가아나키스트는 혁명이 어떻게 타락했는가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그들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정치적 우위권력의 집중화혁명의 국제적 팽창그리고 코뮤니스트 사회로 이행기의 문제에만 집중했다이것은 볼셰비키가 크론슈타트 봉기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노동계급의 저항을 배반과 반혁명 행위로 다루게 한 재앙과도 같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바꾸어 놓지 못한다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오늘날 혁명가들이 지닐 필요가 있는 것처럼 가늠자를 갖지도 못했다그들은 그때 그저 노동자 운동의 이득을 이용할 수 있었다그 노동자 운동은 결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적대적인 자본주의 세계에서 권력을 보유하는 몹시 어려운 과업에 부딪혀야만 했다성공적인 권력 장악 뒤 볼셰비키는 노동계급의 당에 대한 소비에트의 관계도부르주아 국가를 필연적으로 분쇄하게 될 이행기 국가에 대한 이러한 두 계급 조직의 관계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권을 잡고차츰 노동자평의회와 공장위원회를 국가에 통합하면서볼셰비키당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그리고 그때 노동자 운동 안에서 지배적인 의견에 따르면혁명에 대한 주요한 위험은 새로운 국가 기구 밖에서즉 국제 부르주아지와 추방된 소작농과 러시아 부르주아지에서 나왔다비록 볼셰비키당 내부에 그때 정권의 관료화에 맞서 경고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코뮤니스트 운동에서 어떠한 경향들도심지어 좌파도 대안의 전망을 갖지 못했다그러나 그들의 처방은 제한되어 있었고 다른 위험들을 포함하고 있었다콜론타이와 쉴라프니코프의 노동자 반대파는 노동자평의회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 조직으로서 국가를 초월했다는 것을 잊어버린 국가의 과도함에 맞서 노동자를 방어할 것을 노동조합에 요구했다.

 

볼셰비키당 내부에는 봉기를 분쇄하는 데 반대했던 몇몇 사람들이 있다운동에 결합했던 크론슈타트 당원들도 있고 훗날 노동자 그룹을 조직하고 군사적 해결을 반대했던 가브릴 미아니스코프(Gavriil Miasnikov)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당과 코민테른 내 있는 좌파 경향은 볼셰비키 정권을 비판했지만폭력의 사용을 도왔다심지어 노동자 반대파도 진압 세력에 자원했다당의 독재에 반대했던 독일 코뮤니스트당은 크론슈타트 반란에 맞선 군사적 행동에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크론슈타트 소비에트의 요구는볼리네의 의견과는 달리 대안의 전망을 주지 않는다왜냐하면그것들이 즉각적이고 지역적인 맥락 안에서 주로 틀지어졌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요새(보루)와 세계적 상황에 대한 더 폭넓은 내포(함의)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그러한 요구들은 전위당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답변하지 못했다.

 

러시아 혁명의 패배와 그것을 주도했던 혁명적 흐름에서 모든 교훈을 끌어내려고 애쓴 혁명가들이 이 비극적 사건의 진정한 교훈을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어떤 환경에서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그리고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적들에 의한 책략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심지어 인정할 것이다. -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맞서 투쟁할 수도 있다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우리는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계급에 폭력과 강압 때문에 강요될 수 없다는 원칙에서 시작해야만 한다크론슈타트를 잃어버리는 편이 지리적 관점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왜냐하면이러한 승리가 실질적으로 한 가지 결과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즉 바로 그 바탕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했던 행동의 내용을 바꾸는 결과이다

Octobre, 1938, Italian Fraction of the Communist Left 발행

 

코뮤니스트 좌파는 본질적인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다즉 국가가 노동계급에 맞서 폭력을 쓰는 데서 볼셰비키당은 자신을 반혁명의 수장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크론슈타트에서 거둔 승리는 볼셰비키당이 노동계급에 맞서 러시아 국가의 도구로 되었다는 경향을 가속했다이러한 견지에서코뮤니스트 좌파는 또 다른 대담한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전위로 남으려는 코뮤니스트 좌파는 현상을 유지하고 혁명의 과정에 대한 진보를 막으려는 필연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혁명 뒤에 들어선 국가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율성을 지켜야만 한다.

 

보르디가주의자(Bordigist)의 견해

 

그러나 오늘날 코뮤니스트 좌파에서 이러한 결론은 전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사실좌파의 몇몇 부분은특히 보르디가주의자(Bordigist)는 1938년 이탈리아 분파(Italian fraction)의 태도와는 완전히 모순되게레닌과 트로츠키가 크론슈타트를 탄압한 것을 정당화했다.

 

볼셰비키가 어쩔 수 없이 크론슈타트를 진압하게 한 끔찍한 상황을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탄생이나 강화의 과정에서 노동자를 향해 발포할 수 있다는 원칙을 거부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부닥쳐야만 한 끔찍한 문제의 제거는 장밋빛이 감도는 안경과 이러한 반란에 대한 진압이트로츠키에 따르면, ‘비극적 필요였지만 필요이고 심지어 의무였다는 이해를 통해 혁명의 비전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는 것이다

"크론슈타트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Programme Communiste n°88, 국제코뮤니스트당의 이론적 기구, 1982년 5

 

그들이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전통을 회피한보르디가주의 경향은 볼셰비키당의 비타협적인 국제주의를 방어할지 모른다그러나 그 경향은 또한 볼셰비키의 실수를 열정적으로 방어하고당과 혁명이 왜 타락했는지 하는 문제에서 배울 수 없게 한다.

 

그들에 따르면혁명 과정에서 계급과 혁명 뒤에 들어선 국가에 대한 당의 관계는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편의주의의 문제즉 어떻게 각각의 상황에서 혁명적 전위가 자신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커다란 투쟁은 그저 프롤레타리아계급 안에서 끔찍한 긴장을 일으킬 수 있을 뿐이다사실상당이 혁명을 만들 수 없거나 대중없이 또는 대중에 반하여 독재를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다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 의지는 수적 다수’ 또는 심지어 더 모순되는 것으로서 만장일치 합의를 찾기 위해 선거 협의체나 의견 투표(여론 조사)에 의해 나타내지 않는다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 의지는 투쟁의 등장과 좀 더 정확한 투쟁 방향을 통해 표현된다그러한 투쟁은 가장 중요한 분파가 머뭇거리고 우유부단하고필요하다면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이다내전과 독재의 변화 과정에서서로 다른 층위의 태도와 관계는 바뀔 수도 있다그리고 몇몇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의해 노동자-노동자 또는 쁘띠부르주아지의 모든 계층에 대한 똑같은 무게와 똑같은 중요성이 받아들여지기는커녕트로츠키는 자신의 책 테러리즘 또는 코뮤니즘에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기구인 소비에트에 참가할 권리가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태도에 따라 달려있다고 설명한다.

 

어떠한 헌법상의 규칙도 어떠한 민주주의 원칙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내부의 관계를 조화시킬 수 없다어떠한 비책도 지역적 필요와 국제적 혁명의 요구 사이의직접적 필요와 역사적 계급투쟁의 요구 사이에 있는 모순프롤레타리아계급의 다양한 분파의 반대 속에서 드러났던 모순을 풀 수 없다어떠한 형식주의도 계급의 가장 진보적인 분파와 계급의 혁명적 투쟁 조직인 당과지역적이고 직접적인 조건들의 압력을 통해 서로 다른 정도로 영향을 받는 대중 사이의 관계를 분류할 수 없다레닌이 말했듯이, ‘대중의 정신을 관찰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장 훌륭한 당도 때때로 대중에게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야 한다좀 더 정확히당은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찾고 있다. (같은 글)

 

1921년에 볼셰비키당은 그들을 지도할 이전의 경험이나 요소 없이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오늘날 보르디가주의자들은불합리하게도 볼셰비키의 실수에서부터 장점을 끌어오고 원칙은 없다.’고 선언한다보르디가주의자들은 모든 계급의 공통된 지위에 도달하기 위한 형식주의적이고 추상적인 방법을 비웃음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실행하는 문제를 마술로 쫓아버린다.

 

아주 유동적인 상황에서 합의를 세울 수 있는 결코 완벽한 수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만노동자평의회 또는 소비에트가 전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의지를 담아내고 발전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여겨졌다비록 1918년의 독일과 다른 지역에서 드러난 경험이 노동자평의회나 소비에트가 부르주아지에 의한 회복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긴 했다하지만보르디가주의자들은 당이 대중없이 혁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만큼 너그러웠지만당을 통해 그리고 당의 허락하는 것을 빼고는 대중은 전체 계급으로서 그들의 혁명적 의지를 표현할 수단을 지니지 못했다그리고 당은 필요하다면 크론슈타트에서처럼 기관총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바로잡을 수 있다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두 가지 모순적인 표어(슬로건)를 갖는다즉 혁명 전에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 혁명 후에는 : “모든 권력은 당으로.”

 

Octobre의 편집진과 달리보르디가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 혁명과는 대조적으로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과업이 소수집단에 대표될 수 없지만자기 의식적인 다수를 통해 수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잊었다노동자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과업이다.

 

보르디가주의자들은 둘 다마치 기만인 것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모두 거부한다그러나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자본주의의 전복을 위해 자신을 동원하는 수단인 소비에트와 노동자평의회는 프롤레타리아계급 내의 긴장과 차이를 담아내고 조절하는그리고 이행기 국가를 통한 무장 권력을 유지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이어야만 한다당은특정 시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나머지보다 명확히 앞서 있는없어서는 안 될 전위는이러한 권력을 노동계급 자체와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비록 원칙적이지’ 않지만당이 노동자를 쏠 수 있는 권리를 입증하면서보르디가주의자들은마치 이러한 결론의 끔찍함에서 피하려는 것처럼크론슈타트 봉기가 어쨌든 프롤레타리아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그때 레닌의 규정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크론슈타트는 백군 반동 세력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쁘띠부르주아적 반()혁명이었다.

 

모든 종류의 혼란되고 심지어 반동적 생각들이 크론슈타트의 모반자들에 의해 표현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진실이다그리고 몇몇 내용은 강령에 반영되어 있기도 했다반혁명 세력의 조직된 군대가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반란을 이용하려고 애썼다는 것도 진실이다그러나 크론슈타트의 노동자는 그들 자신을 1917년 혁명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고 세계적 규모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의 통합 부분으로서 계속 생각해왔다:

 

 전 세계 노동자에게 소비에트의 권력의 방어자인 우리가사회 혁명의 획득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면서 크론슈타트의 폐허 속에서 이기거나 죽을 것이다. (the Kronstadt Pravda, p. 82)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아무리 혼동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그들이 내건 요구는 또한 비참한 생활 조건국가 관료제의 점점 늘어나는 억압과 쇠퇴한 소비에트에서 정치적 권력의 손실에 부닥쳤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그때 볼셰비키가 반란자를 쁘띠 부르주아지와 반혁명 세력의 정치적 대리인으로서 낙인을 찍은 시도는 물론 힘으로 프롤레타리아계급 안에 있던 끔찍한 위험과 복잡성의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핑계였다.

 

코뮤니스트 좌파가 역사적으로 뒤늦게 알게 된 지혜와 이론적 작업 때문에우리는 일련의 추론이 지닌 기본적 오류를 볼 수 있다즉 볼셰비키가 크론슈타트 반란을 진압했고 반()프롤레타리아 독재즉 자본주의 관료주의의 절대 권력인 스탈린주의가 코뮤니스트를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것이다사실소비에트를 다시 세우려는 크론슈타트 노동자의 노력을 진압하고그들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면서볼셰비키는 알지도 못한 채 스탈린주의로 가는 길을 닦고 있었다볼셰비키는 백군의 복원보다 노동계급에 훨씬 더 끔찍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반혁명 과정의 가속화를 도왔다러시아에서 반혁명 세력은 자신을 코뮤니스트로 선언하면서 승리했다스탈린주의 러시아가 살아있는 사회주의의 체현이며 10월 혁명과 직접적인 연결 선상에 있다는 생각은전 세계에 있는 모든 노동계급 대중에게 끔찍한 혼동과 막대한 혼란을 낳았다우리는 여전히 1989년 이래로 부르주아지가 코뮤니즘의 죽음과 스탈린주의 사망을 같다고 하는 것처럼 실재에 대한 이러한 왜곡의 결과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보르디가주의자들은 이런 경험을 했지만여전히 1921년의 비극적인 실수와 동일시하고 있다그것은 그들에게 거의 비극적’ 필요가 아니라되풀이되어야만 할 코뮤니스트의 의무이다!

 

아나키스트들과 같이보르디가주의자들은 소비에트에서 조직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무장된 의지를 이끌기도 하고 연기하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한 1917년 볼셰비키당과소비에트를 그들의 이전 권력의 그림자로 축소하고 노동계급에 맞선 국가의 폭력으로 전환했던 1921년의 볼셰비키당 사이에 있는 모든 모순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이 그들의 현재 캠페인들에서 볼셰비키를 마키아벨리적인 압제자들로서 묘사함으로써 부르주아지를 돕지만보르디가주의자들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혁명적 비타협의 극치로서 찬양한다.

 

그러나 코뮤니스트 좌파는 볼셰비키 유산에 관계하면서도 그 이름에 걸맞게 실수를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크론슈타트 반란의 진압은 가장 해롭고 끔찍한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International Review, 2001, vol. 104,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한국어 출처실천」 2007년 10월호

 

 

 

<관련 글>

 

30년 뒤, 러시아혁명이 품은 이상과 현실 : 빅토르 세르주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490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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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코뮤니즘 세상에서... 힘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코뮤니즘 세상에서...

힘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편집자 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에 관한 토론이 많아졌다하지만 대부분 코로나19 이전으로의 일상복귀이거나 자본주의 개혁 수준에 머물고 있다일부 사회주의자 자임 세력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자고 주장하지만자본주의 체제 내 최대개혁을 사회주의와의 연결로 착각하게 하는 낡은 과도적 요구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 이후 사회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 글은 스페인의 코뮤니스트 그룹이 작성한 것으로 코뮤니즘 세상에서의 노동과 삶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다우리는 이 글이 자본주의 이후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에 단초를 제공하고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다음 호에는 여기서 제시한 질문에 대한 (확장된)우리의 토론 결과와 입장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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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꺼려하는 일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일은 사회에서 필요하다대부분 그런 일은 가장 운이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지거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그 일을 하도록 강제한다하지만 우리는 혁명 후에도 하수구를 청소해야 한다그렇지 않은가?

 

요즘 시대에는 값싼 노동력이 많아서 위험하고 힘든 많은 직업이 자동화되지 않는다하지만현재에도비엔나 하수구 터널 청소의 많은 부분은 이미 로봇이 수행하고 있으며사실상 유럽 전역에서 쓰레기 재활용 시스템은 모든 가정에서 시작된다더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착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이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보편적 필요성의 (프롤레타리아트독재는 과정을 변화시키고 일부를 자동화하고 다른 것을 사회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그것은 이미 존재하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제약받는 두 가지 경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생산의 사회화와 생산력으로서의 노동의 발전.

 

 

생산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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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uadalinfo 개발자들의 파티무료 소프트웨어 공동체

 

생산력 발전을 위한 필요성으로서 생산의 사회화는 자본주의 사회 관계와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이 충돌해 왔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상승기 발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주식회사 확장을 통해 자본주의적 기업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생산의 자본주의 사회화를 향한 새로운 추진독점의 발전발명의 조직과 기술의 진보계획 수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20세기에 이 제도가 쇠퇴기로 들어서면서 부르주아계급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로 사회화할 정도로 이 과정을 급진화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 축적의 요구를 왜곡하고 종속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구조 아래에서 살고 있다재활용 시스템에서 구글 번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에는 점점 더 많은 공동 작업자가 참여하지만이는 시스템의 주요 목표에 따라 주어진다.

 

구글과 같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번역하는 것은 실제로 이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웹에 게시 한 모든 번역을 사용하는 것이다아파치(Apache : 대부분의 웹 사이트를 지원하는 서버), 워드프레스(WordPress : 대부분의 디지털 출판물을 위한 출판 시스템또는 파이어폭스(Firefox)나 크롬(Chrome) 등의 브라우저와 같은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수십만 명의 사용자와 수백 명때에 따라서는 수천 명의 프로그래머그들 중 상당수는 비전문가인 사람들의 공헌에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화(집단 노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더 많은 부문과 활동이 있다아마존이 거의 모든 제품을 기록적인 시간 안에 배달할 수 있게 하거나 자라(Zara)가 어느 정도의 추가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지, 수요가 가장 많은 상점이 어느 곳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용자와 고객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교한 시스템에 비해쓰레기를 다른 봉투에 분류하고 다른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원시적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데 인간이 필요로 하는 수백만의 시간을 줄이는 사회화의 원칙이기도 하다.

 

 

왜 자본주의는 생산의 사회화를 더 발전시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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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구조 아래 생산의 사회화 발전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이는 모든 디지털 제품에서 매우 명확하게 볼 수 있다자본의 가치를 유지하고 보상()으로 가는 추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르주아지는 20년 이상 지적 재산을 발작 수준으로 왜곡해 왔다.

 

우리는 코비드 백신에서 비극적으로 이것을 보고 있다그 백신들은 이전의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지식국가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자원그리고 전 세계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수십만 명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백신은 소유주가 있다각각의 자본 기금은 수익성 이익을 부과하고사회적 사용을 줄이고가능한 한 생산량을 줄이고백신을 세계의 절반에만 공급해서 그것의 효과를 위태롭게 한다심지어 너무 많은 폐기물과 전체 대륙의 주변화새로운 변종이 출현할 시간을 주고 있다.

 

독점과 국유화가 시장의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키면서 왜 자본주의 혼란과 낭비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한 차원 높이는지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현재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화 원칙은 금융자본 주변의 소유권 집중과 계속 모순된다그것은 소유 관계와 생산의 사회화 사이의 모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보편적인 인간의 필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계급)와 부르주아지(다양한 형태에서 사적기업 또는 국가로부터의 계급사이 모순에 관한 또 하나의 표현이다자본은 노동을 착취하여 이익을 창출하고무슨 일이 있어도 자본 축적의 구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불쾌하고 위험한 일은 사회화된 시스템과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비록 현재로서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일 중 일부는 더는 필요하지 않으며 다른 것들은 자동화되고 사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뮤니스트들은 인간 개입이 거의 없이 석탄을 안전하게 채굴할 수 있는 로봇과 기계를 100년 동안 꿈꿔왔다보기를 들어러시아혁명 기간 동안광산 트랙터를 상상하고 설계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고그 개발은 어느 지점에서 갱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을 피할 것으로 기대되었다그들은 석탄이 한동안 필수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남을 것이라 당연하게 여겼다그러나 오늘날 환경론자들과 다양한 색깔을 가진 생태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그들은 이미 전기의 일반화가 위험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광산 작업의 필요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0년 러시아 소비에트 의회는 차르 군대에 대한 내전과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으로 전국에 걸쳐서 지열 및 수력 발전 계획을 승인했다아니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것은 광업을 성 평등하게 만들려는 것도깨끗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었다그것은 인간 노동과 인류 자체가 갱도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광업을 폐지하려는 의도였다.

 

우리가 역사적 경험에서 배운 것은 기술적인 방법은 가용 수단즉 세계적인 규모에 의존하겠지만노동해방을 통한 정치적 방법은 자본의 설정(=착취)과 경제(=축적)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필요에 따라 표현된 인간의 필요에 의한 과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정반대다.

 

화물 운송의 전기화 및 자동화 또는 인적 견인으로 회귀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생산력은 자본주의 아래에서심지어 쇠퇴기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그렇지 않을 수 없다쇠퇴가 매주기마다 파괴되는 자본이 항상 재평가되는 것을 멈추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단지 위기 경향이 일정해지고 생산 능력의 발전 경향이 자본의 필요에 따라 점점 더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생산과 생산성의 지속적인 감소보다는체제는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생산적 발전을 점점 더 억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자본주의가 생산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모순적이고 점점 더 그렇게 된다자본주의의 상승기 동안상대적으로 쉽게 흑자를 낼 수 있는 첫 번째 세계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윤 측면에서의 생산성의 발전은 물리적 생산성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었다새로운 발견과 대규모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에 의해 촉진된 생산성 향상은 시장을 발견했다그리고 새로운 시장 확장으로 재조정된 짧은 주기적 위기만을 낳았으며이는 결국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했다.

 

상대적 측면에서의 착취(미지불 사회노동 시간의 비율)의 증가는 노동자의 소비 능력 향상과 일치하는 노동시간의 급격한 감소를 동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보기를 들어 스페인에서는 평균 근무일이 1830년 16시간에서 1919년 8시간으로 감소했다내부와 외부 비()자본주의 시장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될 무렵부터시장의 부족은 모든 기술적 개선을예상할 수 있는 노동력의 잉여로 바꾸기 시작했다자본이 생산을 확대하거나 생산한 모든 자본을 기존 생산 장치에 다시 투자하는 것은 수익성이 없기에 모든 노동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다실업과 빈곤은 만성화한다자본 발전과 노동 발전 인간발전 은 점점 더 모순되고 대립한다그리고 이러한 틀에서 자본은 기술 회귀에 투자한다소년이여 페달을 밟아라환경친화적이다!!!. 새로운 수준의 능력 낭비는 각각의 새로운 위기와 새로운 전쟁으로 대표되는 생산 능력을 미친 듯이 파괴하는 와중에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생산력 발전으로 나아가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한다보기를 들어 물류 부문을 살펴보면거의 모든 창고가 전체적인 로봇화생산의 사회화 된 경향 등이 명백해진다맑스가 자본론에서 정식화했듯이이러한 추세는 지배적인 생산 관계와 충돌하거나 다시 말해서 자본의 수익성에 종속되어 있고오늘날 그리고 아마도 한참 동안은 값싼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이러한 추세는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필요에 따라서가 아닌 그리고 다른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빠르게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을 위한 이윤이라는 그 잔인하고 독재적인 족쇄는 인간 보편적 필요 논리를 인계받으면서 사라지는 것이다노동해방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다.: 노동의 변혁적 능력의 개발은 독립적이 되고 자본의 필요에서 해방되고그것에 종속되는 것을 멈추게 한다우리는 노예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그 개발이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다왜냐하면 계급으로서 우리는 노동자들이 갱도 아래로 내려가거나피자 배달을 위해 페달을 밟거나하수도를 청소하기 위해 기어 다니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불쾌하고 위험한 일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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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봇의 하수구 점검

 

일반적으로 현재 모든 경향은 점점 더 사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로봇과 기계가 그 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얘기해준다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마존에게 사회적으로 말하는 방식또는 자유 소프트웨어와 같은 다양한 수준의 자발적 책임을 지고집단으로 유통하는 방식이다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하지 않아도 되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것은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구덩이로 내려갈 필요가 없고, 도시와 시골 사이의 대립에 의해 부과되는 많은 필요가 제거되는 것처럼 자본주의에 의한 발작과 그것의 축적과 집중 논리는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과정이 될 것이다그러나 첫날부터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2021. 02. 16

해방

 

 

<원문 출처>

https://en.communia.blog/in-communism-who-will-do-the-jobs-that-nobody-wants-t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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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4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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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기후위기환경파괴와 종 멸종 위기심화하는 경제위기의 뿌리에는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있다코로나19의 여파로 자본주의 모순은 더욱더 극대화하며 자본의 이윤은 증가하였지만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은 가중되었다자본은 이윤이 된다면 그들이 만든 법과 도덕의 허점을 이용하여 교묘히 빠져나가거나 법 제정과 폐지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게다가 가상화폐 등에 대한 투기 환상선거 환상 등을 통해 현실을 망각시키는 이데올로기와 환상을 퍼뜨리며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자본의 탐욕은 한국 사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이른바 대장동 게이트에서 보듯이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만든 법과 제도마저도 각종 개발이익을 위해서 수정과 폐지는 물론 법꾸라지가 되어 법망을 빠져나갔다자본과 국가의 속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장면이다그럼에도 민주노총과 자본의 좌파 세력(이른바 진보-좌파 정당)은 민중경선사회주의선거공동투쟁본부라는 낡은 선거전술을 반복하고 있다그들의 선거전술은 이미 실패했고 그동안 노동계급의 투쟁에 혼란만 가중하는 역할을 했다.

 

부르주아지의 질서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으며 자본주의 모순을 프롤레타리아에 부과하고 있다하지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부르주아지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코뮤니스트」 14호에서는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 재앙에 맞선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과 팬데믹 이후 전망을 코뮤니스트 원칙에서 제시하려 한다특히 자본주의 재앙에 맞선 유일한 희망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임을 강조하였다.

 

□ 특집기후 위기와 코뮤니스트 대안 최근의 기후 위기를 반영하여 기후 위기에 대한 특집을 마련하여 원인과 대안을 분석하였다기후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다화석 연료의 생산과 소비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필수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결코 통제될 수 없다한편으로 부르주아의 녹색 경제탈 성장 등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고쳐서 사용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며세계시장에서 자본과 국가들이 충돌하는 자본주의는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또 한편으로 생태 정당들스탈린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아나키스트사회민주주의자 등 자본의 좌파들 역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왜냐하면 그들은 계급이 국민으로 희석되고, ‘민주 국가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지의 구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따라서 국제주의적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 쟁점 노동자와 부르주아 선거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를 앞두고 운동세력의 선거전술을 분석하였다그동안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서는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그들의 선거전술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동화되었는지를 통해 모호한 개념의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좌파로 부르주아 질서에 동조했음을 밝힌다.

 

□ 코뮤니스트 정치 자본주의 재앙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임을 강조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글과 부르주아 공정 담론에 대한 비판 글지난 10월 초부터 시작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에 대한 소개 글을 실었다.

 

□ 국제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전쟁기후위기환경파괴 등이 발생하면 고통은 노동계급의 몫이었다하지만 팬데믹 이후 노동계급의 반격은 아직 미미하지만소부르주아의 이해관계와 노동조합의 사보타지를 넘어 투쟁을 조직하고 있는 유럽북미아시아북아프리카중국 등 전 세계 노동계급 스스로 투쟁을 조직하고 있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 팬데믹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전쟁생태적 위기전염병경제사회적 재앙의 진정한 원인으로 주목한노동계급은 계급의식의 약화와 원자화되고 있다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재앙적 미래를 다른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세력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시기 부르주아지는 모든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행동을 사용하길 결코 멈춘 적이 없었는데이는 노동계급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마비시키며대안적 미래가 가능하다는 노동계급의 확신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끝났다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터이다확실히노동계급은 거의 30년 동안 지속된 계급의식의 심각한 후퇴를 여전히 극복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유일하게 혁명적인 계급이다다른 말로자본주의가 만들어낼 재앙적인 미래와 인류를 다른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세력이 노동계급이다이 30년 동안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과 삶의 조건 악화를 수용하길 거부함으로써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할 역량이 있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이 투쟁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에 제한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학습 경험이었다프롤레타리아혁명은 성령의 은혜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사상이 아니다반대로프롤레타리아혁명은노동계급이 패배의 교훈으로부터 학습하고 경험을 축적하여 자신의 혁명적 가능성을 실현시키는구체적이면서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투쟁이다.“ (‘코로나19, 기후위기아프가니스탄의 혼돈...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의 가속’,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스탈린주의 비판 일국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교훈보다 더 심각한 쟁점은 스탈린주의가 국제 부르주아에 의해 악용되고 선전되면서 코뮤니즘에 대한 부정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프롤레타리아에게 스탈린주의는 파괴의 대상이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걸림돌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 이론자본주의의 경제 2차 제국주의 전쟁 이후 미국 중심 세계 경제질서 브레튼 우즈’ 체제에 대한 미국의 배신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자본주의 모순에 따른 자본 위기의 반증임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결과적으로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와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의 열풍은 자본주의 모순에 의한 필연적 과정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에서는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혁명가의 전기를 연재로 실었고국제 코뮤니스트 좌파 연대조직인 국제주의자 전망(IP) 소속 핵심 동지의 추모 기사를 실었다. □ 문화에는 열사 정신을 계승한다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맞이해 열사의 시대가 죽음의 시대 산 자에게라는 주제로 시()를 실었다.

 

백신은 주요 강대국에서도 팬데믹을 통제하지 못했다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책인지역 봉쇄영업시간 제한 등의 모든 법적 안전 조치를 해제하고 있다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일련의 조치는 팬데믹 이전의 정상상태로의 복귀이다그러나 코로나19가 나타나기도 전에이미 수십억은 아니더라도 수억 명이 고통의 나락에서 신음하고 있었다정상은 낙원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착취의 연속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험했듯이 부르주아지는 어떤 해결책도 전망도 없는 무능력 그 자체이다무능력한 부르주아지는 자기가 놓은 덫에 걸려 광란의 폭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오직 세계의 노동자만이 자본주의 재앙으로부터 인류와 지구환경생태계를 구할 수 있다이 쇠퇴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이다이 모든 교착상태와 혼란을 풀 수 있는 실마리 또한 그들의 의식적인 행동에 달려있다.

 

"모든 지배계급을 코뮤니스트 혁명 앞에 떨게 하라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이다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1848코뮤니스트선언

 

 

2021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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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1년 14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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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1년 14호

 

 

차례

 

 

□ 코뮤니스트 14호를 내면서 

"부르주아지의 질서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으며 자본주의 모순을 프롤레타리아에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부르주아지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코뮤니스트」 14호에서는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 재앙에 맞선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과 팬데믹 이후 전망을 코뮤니스트 원칙에서 제시하려 한다. 특히 자본주의 재앙에 맞선 유일한 희망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임을 강조하였다. "

 

 

□ 코뮤니스트 정치

 

▶ 세계의 노동자만이 자본주의 재앙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코비드19가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수십억은 아니더라도 수억 명이 그 안으로 떨어졌었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격찬’에도 백신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팬데믹을 통제하지 못했다.(현재 세계 인구의 6분의 1 미만이 2차 접종을 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감염률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영국에서는 모든 법적 안전 조치가 해제되고 있다. 그들이 도박하는 것은 이윤 창출 기계가 곧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의 역설 

 

▶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을 시작하며 

"2006년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가 열렸다. 2년 뒤인 2008년에는 국제주의 원칙과 코뮤니스트혁명을 전망하는 노동자/활동가들이 독자적인 「좌익공산주의자 그룹」(Left Communist Group, 이하 LCG)을 결성하여 한국 최초로 코뮤니스트 좌파 운동을 시작한다. LCG는 2000년대 초 과거 운동에 대한 근본적 반성 속에서 새로운 운동을 시도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 그룹 「사회주의 정치연합」과 평의회 운동을 독자적으로 전망하던 「노동자민중회의-노동자평의회를 향한 모임」 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 사회와 계급운동에 ‘코뮤니스트 정치’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쟁점. 노동자와 부르주아 선거

 

▶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진보/보수 프레임, 공정과 능력, 반공, 지역주의, 민족주의 등) 이슈의 용광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이슈를 잠재우는 블랙홀 역할이 기본이다. 게다가 부르주아 정당/정치인 사이의 진흙탕 싸움(비리 의혹 공방)으로 정치 무관심이라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계급 착취와 각종 비리의 토대를 제공한다. 결국 부르주아 선거판은 철저히 노동계급의 현실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었다. "

 

▶ 우리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 문화

 

▶ 열사의 시대가 죽음의 시대 산 자에게 : 임성용, 조성웅 시 

"죽어가는 하늘 

- 한진중공업 김주익

가을엔 외롭다고 하지 말자

외로움마저 끊어버린 사람에게

너무 쉽게 외로움을 말하는 건

외로움이 싸움이란 걸 모르는 소리"

 

 

□ 특집. 기후 위기와 코뮤니스트 대안

 

▶ 지구를 구하라 -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 새로운 기후 시위: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다! 

 

▶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도 없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팬데믹; 산불, 가뭄, 홍수 등 기후 재앙의 소용돌이 – 최근 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의 보고서는 세계 지구 온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예측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차례, 네 차례 또는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 그리고 가장 강력한 두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960년대 말 이래로 이미 거의 영구적인 위기에 빠져있던 세계 경제는 이제 팬데믹과 봉쇄로 인해 더욱 경련을 일으키며 인플레이션 상승과 실업, 노동력 부족의 역설적인 조합을 초래하고 있다. 이슬람, 기독교 및 기타 근본주의의 부상을 통해 공공연한 종교적 용어로 표현되거나 지구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반(反)이상향 공상 과학 환상을 통해 묵시적 분위기가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기후-생산-자본 

 

 

□ 국제

 

▶ 이탈리아 총파업 

 

▶ 노동자 투쟁과 노조 사보타지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의 충격과 국가의 인구 봉쇄 및 통제 조치 이후 조금씩, 노동계급은 생활과 노동 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다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 위기가 이미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많은 부분, 특히 덜 "부유한" 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확실하다. 팬데믹 기간 주로 유럽 국가들과 북미에서 채택된 '복지' 조치들이 없어지고 수백만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그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실업, 인플레이션, 특히 빵과 같은 기본적인 식료품 부족 현상, 임금 하락, 노동조건 악화가 거의 모든 곳을 강타하고 있다. 모든 대륙에서, 이란, 레바논, 알제리, 튀니지, 남아프리카공화국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도(몇몇 국가만 언급하면) 빈곤이 영구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은 코비드의 확산과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한 봉쇄조치를 하기 전인, 2019년 가을에 확인된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사회 반란의 국제적 역동성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보이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 호주의 봉쇄 반대 시위와 노동계급 행동 

 

▶ 개혁개방 이후 팬데믹까지, 중국 노동자운동의 현황과 과제 

 

 

□ 팬데믹 이후 세계

 

▶ 코로나19, 기후 위기, 아프가니스탄의 혼돈...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 가속 

"이 시기 부르주아지는 모든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행동을 사용하길 결코 멈춘 적이 없었는데, 이는 노동계급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마비시키며, 대안적 미래가 가능하다는 노동계급의 확신을 약화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끝났다”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터이다. 확실히, 노동계급은 거의 30년 동안 지속된 계급의식의 심각한 후퇴를 여전히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유일하게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낼 재앙적인 미래와 다른 길로 인류를 안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세력이 노동계급이다."

 

▶ 계급 투쟁 전망 

 

 

□ 기획. 스탈린주의 비판

 

▶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Ⅰ 

"맑스가 노동계급에 그 목표를 명확히 이해시켰다면, 스탈린은 그 어떤 개인보다 그 열망의 가장 큰 무덤을 파는 자였다. 스탈린주의가 반(反)혁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지만, 우리가 자주 언급했던 “스탈린주의 반(反)혁명”은 1917년 이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겪었던 고립 과정의 마지막 절정이었다. 스탈린 사망 기념일은 자본주의 선전 기계가 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이 언제나 부르기 좋아했던 “현실 사회주의”가 1917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괴물이었다는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기회에 불과했다."

 

 

□ 이론. 자본주의의 경제 비판

 

▶ 1971-2021: 미국이 브레튼우즈를 배신한 지 50년 

 

▶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 : 고도의 투기적 자본주의의 광기 

"소액 투자자와 상류층 역시 보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주식형 펀드와 부동산을 선호하지만, 백만장자들에게 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암호 화폐는 그것들에 더불어 최근에 선호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비트코인 및 기타 암호 화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기타 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적용되지 않는 분산형 통화로서, 가격 조작과 투기가 거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디지털화된 금의 일종일까? 위험부담이 큰 증권거래소의 대안으로, 더 안전한 자산 저장소인가?"

 

 

□ 역사. 맑스주의와 다윈주의

 

▶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가브릴 미아스니코프,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 혁명의 퇴보Ⅰ

"가브릴 일리치 미아스니코프(Gavriil Il'ich Miasnikov)는 종종 잊힌 볼셰비키의 이름이다. 우랄 출신의 금속 노동자였던 미아스니코프는 그야말로 비타협적인 혁명가였다. 그의 삶은 여러 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최고를 보여주었다. 그는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의 설립을 도왔고, 차르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의 처형에 관여했다. 그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동맹이자 비평가였으며, 지노비예프의 맹렬한 적이었고, 칼 코르쉬, 루스 피셔(Ruth Fischer), 프랑스 아나코-생디칼리스트의 친구였다. 그는 볼셰비키당에서 제명당했고, 미쳤다고 낙인찍히고, 고문을 당하고 추방되었다. 다른 많은 혁명가와 마찬가지로 미아스니코프도 스탈린주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브릴의 신념이 그가 권력자들과 영원히 대립하게 하였다. 그는 노동계급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결정할 권리는, 자신의 당을 포함하여, 노동자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고 믿었다. 그는 추방되었을 때 볼셰비키 내부의 작은 반대파인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을 창립했다. 「노동자 그룹」은 흔히 「노동자 반대파」, 「민주중앙집중주의」, 「좌익 반대파」의 유산에 가려져 있다. 그들은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의 정점에 대한 주변 관계를 고려할 때, 아마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그룹」의 이야기는 코뮤니스트 독재정권에 대한 초기 투쟁에서 그들과 러시아 노동계급과의 관련성을 입증한다. 다른 반대파들이 여전히 당 회의에서 비판하고 속닥이고 있는 동안, 「노동자 그룹」은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

 

▶ 맥 인토시(Mac Intosh) 동지를 추모하며 

 

▶ [맥 인토시]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 :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 

 

 

 

 

지구를 구하라!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해결책은 코뮤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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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15,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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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과 부르주아 대선

촛불광장과 부르주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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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딱히 심상정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정의당이요? 딱히 지지하지 않아요. 뭐랄까, 투표라는 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선택하는 거잖아요. 일상적인 지지와는 다르죠. 그럼에도 심상정을 찍은 이유는, 촛불 정국 이후 마치 문재인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였어요. 이번 대선은 대중적 성취를 토대로 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달랐잖아요. 만약 문재인의 당선으로만 수렴이 되면 과거 대선과는 큰 차이가 없어지는 거죠. 누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치세력이 지지 받는지도 중요하다고 봤어요. 진보정당이자 소수정당인 정의당이 존재를 좀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30대. 남), (「워커스」 31호)

   

그렇다. 부르주아 선거는 정당(정치)에 대한 일상적인 지지와 참여가 아니라 제한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와 지배체제를 유지해주는 근간이다. 선거 메커니즘은 부르주아 정치와 적대적이어야 할 노동자 투쟁마저 포섭한 지 오래다. 대대적인 노동자 투쟁이 부르주아 선거 지형을 바꾸어 독자적 노동자 정치를 실현할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투쟁’은 선거 결과로 수렴되어야만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이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키고 있다.

 

위의 면담자(interviewee)는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세력의 성격을 계급적으로 판단한다. 정의당을 계급으로는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의 진영에 포함된 부르주아 정치 세력(자본의 좌파)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가 혼합한 개량주의 세력으로 규정한다. 대선이 끝나고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노동계급의 의식 흐름을 판단해야 하는 시점이다. 굳이 정의당을 먼저 언급한 것은 선거 거부/기권을 택한 소수를 제외하고 다수의 의식적 노동자와 이른바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차악인 정의당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심상정이 얻은 200만 표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의 표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도 10%대의 저조한 득표를 한 것은 정의당과 민주노총 모두 서로에 아래로부터의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정의당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택과는 별개로 자신의 계급적 성격에 맞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촛불 투쟁에 임했다.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다른 부르주아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득표게임에 뛰어들었다. 정권교체와 권력분점 사이에서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한편의 부르주아 정치 쇼를 흥행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편 노동계급은 촛불 투쟁과 대선에서 양적으로 다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급적인 행동과 자기 권력을 위한 투쟁이 없었기에 이른바 촛불 혁명과 정권교체의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촛불 투쟁에서 ‘시민’이 되어 계급을 잊었고, 대선에서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국민’이 되어 계급을 상실했다. 민주노총은 우여곡절 끝에 대선 방침으로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조합원들의 진보정치? 에 대한 지지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를 실현하거나 대변할 노동자 정치가 부재하자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주었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과 그 성과물인 조기 대선에서 노동자들에게 ‘계급’과 ‘권력투쟁’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계급성을 드러내며 권력 투쟁을 벌였다. 그들에게는 국회를 포함한 부르주아 정치 공간뿐 아니라 촛불 광장(태극기 광장), 언론(여론), SNS, 모든 사적-공적 조직들(풀뿌리 조직 포함) 모든 곳이 치열한 권력투쟁의 장이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은커녕 계급마저 잊은 채 수동적으로 촛불 집회에 수차례 또는 수십 차례 나가는 동안,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손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계급적’으로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것이 촛불 투쟁과 대선의 결과인 정권교체로 나타난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선거와 권력투쟁에서 ‘계급적’이라는 것은 노동계급과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그것을 반영한 정치가 적대적으로 분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르주아계급에게는 그 반대이다. 계급 간의 이해관계 대립과 적대적인 정치를 감추고 정당(정치세력) 간의 경쟁으로 돌리는 것이 ‘계급적’ 정치인 것이다. 그들은 소수의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벌개혁이나 노동 기본권 보장 등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만, 자본가 계급에도 적대적인 정책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홍준표와 한국당 세력은 반()노동조합, 반공, 친자본 이미지를 부각시켰지만, 그것은 내부 결속을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 노동자들의 ‘계급적’ 행동을 억제시킨 것은 정권교체 세력이었다. 결국, 촛불 투쟁과 대선에서 ‘계급적’이지 못했던 민주노총과 노동자 정치세력은 부르주아계급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주었다. 선거 이후에도 노동자 운동의 전망은 일부 낙관론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매우 어둡다고 본다.

 

이른바 자본주의 체제 정상화? 인 ‘적폐청산’을 내걸고 ‘노동 친화적’이지는 않지만, 이전 정권과 같이 ‘노동(운동) 적대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 속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적폐청산에는 재벌개혁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개혁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보진영이 금기처럼 여겨 온 노동시장의 문제, 임금개혁의 문제 해결에 나서야한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2년 전 한 좌담회에서 강조했던 말이다. 옆에 있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문제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거들었다. (2017. 5. 26), (「내일신문」)

 

촛불 투쟁과 대선 기간 나타난 정권교체 환상은 단순히 반(反)박근혜 정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촛불 광장의 요구가 구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는 재벌개혁, 노동존중 등 추상적인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문제까지 파고들어 정권교체 열망으로 수렴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권교체 환상이 걷히지 않는 한 당분간 노동자 운동은 선거기간에 포섭된 것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정부의 품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것을 제어할 ‘계급’과 ‘권력투쟁’이 없었기에 전면적인 내부 투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인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혁명의 기억마저 거의 잊혀 진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선언적인 정권과의 대립각 주장이나 이미 정권에 포섭된 노동자 운동 배신세력에게 남 탓하듯 비난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낡은 운동은 이미 민낯을 드러내다 못해 태생적 본질마저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수의 발본적, 혁명 운동 세력은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계급 운동의 위기에 직면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혹독하고 길었던 반혁명의 암흑기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파시즘 아래에서도 소규모의 혁명가들은 반파시즘 민주주의 투쟁으로 후퇴하지 않고 “미래는 코뮤니스트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실천을 벌여나갔다. 그들에게는 혁명(전통)에 대한 ‘기억’과 투쟁과 실천에서의 ‘인내’와 자기조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촛불 투쟁에서 대선까지의 노동계급

 

촛불 투쟁은 수많은 기록과 역사를 남기며 문재인 정권의 탄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촛불 투쟁이 이렇게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면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위기가 문제의 본질이었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었다.

 

연인원 1,700만 명의 촛불 집회 참가가 다수는 조직적 참가자가 아닌 개별 단위로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촛불 집회는 ‘퇴진행동’이 주최하고 조직노동자(민주노총)가 일부 역할을 했지만, 수십만 명을 넘는 인원이 지속해서 참가한 것은 단체의 조직력보다 자발적인 참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촛불 투쟁의 확산은 자본주의 위기 아래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사회와 일상에서의 기득권세력, 지배계급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표출할 ‘광장’이 필요했고, ‘촛불 집회’가 일부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직노동자들은 예상치 않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에 자극받고 고무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투쟁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 물결에 자신들이 가진 노동자 고유의 무기로 투쟁에 힘을 싣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대응했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편하고 이익이 되는 ‘조직적 집회 참가자’의 길을 택했다. 조직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재벌(대자본)에 맞선 직접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들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현안 해결을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은 박근혜 정권의 반대편에서 정치 권력을 나누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던 국회를 압박해 탄핵소추를 이끌어냈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촛불 투쟁이 만든 박근혜 파면 정세는 선거법에 따라 대선으로 이어졌다. 촛불 투쟁의 성과도 정권교체 민심(?)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민심은 촛불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과 열망의 온전한 표현이 아니라 촛불 투쟁의 한계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결과였다.

 

박근혜 파면 이후 “탄핵은 끝이 아니라 촛불 혁명의 시작이어야 하고, 대통령 교체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촛불로 타올라야 한다.”며 투쟁을 지속하자고 했던 민주노총은 대선 시기 “세상을 바꾸는 대선, 노동존중 평등사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민주노총과 산하 조직들은 대선 시기 대통령 후보와 그들의 정당에 ‘정책 협약’이라는 부탁 또는 압력을 통해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들은 사회연대노동포럼과 같이 문재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부르주아 대선의 본질과 정권교체의 환상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지 않았다. 선거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어려워도 ‘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내자’고 호소하지 않았다. 선거를 넘어 투쟁으로 정세를 돌파하자고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은 가장 어렵고 끈질기게 싸워 온 소수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었다.

 

촛불 대선과 노동계급의 쟁점

 

 촛불 투쟁과 조기 대선에서 수많은 주장과 쟁점과 공약이 있었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안은 주목받지 못하거나 ‘가공된’ 쟁점에 의해 가려졌다. 대선 기간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안은 대선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외면 당했다. 민주노총과 부르주아 야당이 함께 주장한 재벌개혁과 자칭 변혁세력이 주장한 사내유보금 문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의 토론 주제로 자주 거론되었지만, 다수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국가, 사회, 가족, 공동체에서 이중 삼중의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짓밟혔다. 상시적인 생존권 위기와 위험한 생활조건에 처한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은 시혜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현 위기와 모순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나아가지 못했다. 방어적인 노동자 기본권 요구에 머물렀던 노동자 운동 진영은 대선에서도 자신들의 현안과 쟁점을 계급투쟁-권력 투쟁으로 모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 친자본 세력의 ‘강성노조’ 공격이 쟁점이 되었을 때,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지 못하고 억울함과 노동 존중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촛불투쟁의 주역이었다는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대선에서 공세적이지 못했다. 노조 할 권리,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최소한의 방어적 요구도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투쟁으로 쟁취하겠다.'는 계급적 요구가 아니라 '투쟁과 정책협약'을 병행하는 애매모호한 시민적 요구에 그쳤다. 

 

 노동계급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냐, 노동존중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고 생존권을 파탄 낸  ‘부르주아계급의 대리-협력세력에게 권력을 바치는 선거냐, 노동자를 살리고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선으로 세상을 바꾸자면서, 대선이 ‘노동존중 평등사회’를 가져올 거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노동자 투쟁과 단결의 힘이 자본가 권력과 맞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사회’는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과 혁명으로 노동계급이 자기 권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

 

 후보전술을 주장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선거가 노동계급에 중요하거나 선거 공간을 반드시 계급투쟁(권력투쟁)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부르주아 선거라도 계급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요구하고 선거법을 넘어서 투쟁해야 한다. 선거법에 얽매인 선거 유세나 소극적인 투쟁현장 지지방문을 넘어 대중집회, 점거투쟁, 자본의 상징 및 노동권/인권/생존권 탄압 현장 타격,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는 선전선동 등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닌 실제 투쟁을 해야한다. 물론 선거주의자들과 현재의 후보전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내는 공약 발표가 아니라 완전한 파업권, 정치사상의 자유, 노동자 통제(생산수단 몰수), 자본주의 전복 , 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의 필요성을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당장은 실현할 수 없는 주장이더라도 ‘권력’과 ‘국가’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시기에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동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조합원들에게조차 계급의 강령적 요구를 꺼내놓지 못했다.

 

 이른바 좌파 정치세력 중에는 ‘계급의식’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는 곳이 있었고, 지지할 후보가 없다면서 노동자혁명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계급정당-노동자혁명당이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계급에게는 자본가 정권-체제에 맞서 싸우고 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노동자혁명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하는 목적을 갖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혁명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부르주아 선거 참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매번 반복되는 선거에 대한 전술과 입장이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의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후퇴시키는 역할만을 해왔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요원한 혁명당 건설 전망 속에서 선거 때마다 당위로 주장하는 당 건설 주장은 더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인 선거대응을 하는 일이다. 그것은 초기에는 당 없는 선거 대응, 당 건설로 향하는 선거 대응, 소수가 할 수 있는 선거 대응, 선거를 넘어서는 투쟁 창출, 선거를 거부하며 투쟁과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과 자기조직화 전망이 될 것이다.

 

 아무리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고 투쟁의 힘이 지속해서 약해졌어도, 노동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부르주아계급에 밀려있는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이다.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의 방식으로 직접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동계급의 쟁점은 선거공약과 후보검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만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내고 분출하게 하는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판이 아닌 노동자의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자신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면서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선거주의자들에 속지 말고, 선거를 투쟁으로 둔갑시키는 사기 집단을 용납하지 말자.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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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호]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선평가와 정치운동 전망]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어가며

 

2012년 겨울,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국가적 행사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부르주아 대선이 끝났다. 지금은 한 편의 대형 정치쇼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통치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준비에는 늘 수많은 잡음과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슈들이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르주아 권력 재편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선거에서 패배한 쪽에는 정비 기간을 주어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에 대한 환상을 지속하게 한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 정치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나? 노동자 독자후보에서 비판적 지지까지 늘 반복되는 선거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후보, 민주노총의 무능, 저조한 득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등 최악의 선거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부르주아 선거 국면을 노동자정치로 돌파하기는커녕, 노동자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

 

선거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부르주아 선거의 기억은 오래가지 못한다. 문재인은 1,000만 표 이상을 획득했음에도 승자만이 살아남는 정치쇼에서 어느새 잊힌 사람이 되었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안철수의 화려한 복귀의 그 빛 역시 바래고 있다. 노동자 투쟁의 기억은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어 계급투쟁에 도움이 되지만,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한 노동자 후보의 흔적은 금새 지워진다. 이미 부르주아 정치 시스템에 편입된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은 자체 정비 기간을 거쳐 의회 활동, 보궐선거, 각종 사회적 이슈 등을 통해 자연스레 정치무대에 등장하겠지만, 노동자정치는 더욱 잊혀 가거나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계급 고유의 과제마저 넘겨줄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총 상층 관료 상당수는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고, 조합원들은 압도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인을 지지했다. 이것이 2013년 한국 노동자계급의 현실이며, 노동자정치의 출발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진영 내부는 어떠한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은 있었는가, 내부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은 벌어지고 있는가? 이제야말로 낡은 운동과 과감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세력들의 기득권은 여전히 방어되고 있다.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 안에서 아래로부터의 내부혁명이 가능하게 하려면 기존세력이 기득권을 내려놓던가, 전면적인 내부투쟁으로 기득권을 몰수해야 한다. 비정규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모든 단위에서 동등하게 의사결정기구 참여를 보장받아야 한다. 소수 혁명적 정치세력은 모든 대중조직에서 완전한 정치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막강한 부르주아 정치권력에 맞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와 노동자통제를 주장하던 세력들이 왜 노동계급 내부의 문제에는 소극적이거나 부르주아 방식에 머물고 있는가.

 

이에 우리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의 창출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제도(선거) 자체에 적대하는 입장에서 대선을 평가하고 현실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려 한다. 아직 우리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역량과 운동의 방향에 대한 정답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므로 실천 속에서 모든 것을 열어 놓고 토론하고 검증받으면서 새로운 운동 원칙과 조건을 창출해 나갈 것이다.

 


1. 부르주아 선거 평가에 대한 코뮤니스트 관점

 

우리는 작년 부르주아 대선을 맞이하여 '사회주의의 정치의 실종'과 ' 부르주아 선거 자체에 대한 거부'를 주장했었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투쟁하며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함께 내세우고 있는가?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음을 반성하고 있는가? 일부에서 ‘노동자 민중후보’를 내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 제발 좀 반성하자.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

 

(오세철,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11쪽)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2012년 11월)

 

 

이 주장은 단순히 후보전술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코뮤니스트 관점에서 선거를 판단하고,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에서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코뮤니스트 관점의 선거 평가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선거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모든 선거 평가는 표 분석(계층, 계급, 나이, 성별, 지역 등)과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운동 전반(후보자와 정책 포함)에 대한 사회학적, 통계적 분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 자체가 부르주아 선거제도에 포함된 선거 메커니즘의 일부기 때문에, 계급의식 측면에서 노동자 정치의식에 대한 분석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정치의 선택지 안에서의 투표행위는 계급의식을 왜곡해서 반영하기 때문에 득표수를 근거로 노동자 정치의식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계급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하고 지배 권력을 재편하는 것이 본질인 부르주아 선거를 지배계급 대 피지배계급의 계급투쟁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미 부르주아 선거가 모든 대립 구도를 흡수하는 시스템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표 분석이 아닌 장기적으로 선거 이전과 선거 이후 계급의식 변화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선거 국면에서 정치세력들이 계급의식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부르주아 선거제도가 일반화되어, 체제 위기 극복의 필수 요소가 된 지금이 바로 부르주아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관점에서 선거 평가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코뮤니스트 관점에서 선거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선거 시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 환상에 대한 계급의식 수준을 분석해야 한다.

 

둘째, 선거 시기 노동자 대중의 열망이 어떻게 선거에 흡수되는지, 사회주의 정치 세력을 포함한 선거 참여가 대중투쟁과 정치운동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평가해야 한다.
 
셋째, 선거 이후 선거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과 새로운 계급투쟁 창출을 위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 대선평가에서는 계급의식 분석에 대한 사전준비가 부족하여. 문제 제기 수준에서 머물렀다. 앞으로 계급의식에 관한 조사와 연구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될 것이며, 혁명 주체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할 것을 기대한다.

 


2.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정치 노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첫째, 부르주아 정치에 이미 편입되어 있거나 전문적인 선거(의회)주의 세력을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라 부른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에 뿌리를 둔 진보정당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그들과 연합했던 다함께와 같은 정파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의 일부는 특별히 선거 국면에서는 부르주아 정파와 연합하거나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둘째, 의회주의, 수권주의를 거부하는 사회주의 강령을 내걸고도 선거 시기에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했던 사노위와 같은 세력을 사회주의 정치에서 후퇴한 기회주의 정치로 판단한다. 이들은 선거(연합)를 통해 대중투쟁 확산과 정치세력화를 주장했지만, 결국 계급투쟁과 무관하게 선거운동만 한 셈이 되었다.

 

셋째, 노동자(사회주의) 후보를 세워 선거에 참여하려 했으나 현실 조건이 되지 않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다. 이들은 본질에서 후보전술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둘째 세력과 유사하다. 다만 현실에서는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전술에 대해 제한적인지, 적극적인지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

 

넷째,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거나 선거전술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 그룹과 혁명적 사회주의자 개인들인데, 이번 선거에서 모두 후보전술 자체를 반대했다.

 


3. 정치 노선별 대선 참여와 거부의 이유

 

위의 정치세력들이 이번 대선에 참여하거나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는 부르주아 정치인 문재인을 지지하거나 비판적 지지한 세력은 제외한다.)

 

첫째, 변혁모임, 사노위 등은 대선 시기 정세개입(야권연대 반대)을 통해 대중투쟁을 촉진하고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기조하에 후보전술을 구사했다.

 

“‘대선기획단’의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완주하는 노동자민중 독자후보, 당 건설 및 대선 대응 분리”라는 정치적 기조와 ‘변혁모임’의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대통령 독자 후보 출마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통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이러한 정치적 기조에 동의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를 결성했다. 선투본은 논의를 거쳐 2012년 대선투쟁의 기조를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 탐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대선투쟁 /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로 결정하여 2012년 대선투쟁에 임했다.”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보고 및 평가(안), 2013년 1월 25일)


하지만 이러한 정세적인 당위성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노선의 후퇴와 변경, 그리고 변혁모임으로 표현되는 전투적 노조운동의 위기 상황에서 정세개입과 당 건설 당위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 무리한 선거전술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주체역량의 문제를 계급투쟁의 성과로 해결 하려 하지 않고, 통진당 사태 이후 공백이 생긴 진보정당 영역을 선거의 매개로 차지하려 했던 것이 오류의 핵심이다.

 

둘째, 노건투, 해방연대, 사회주의 유기적 지식인 등은 역량 부족, 후보전술 절차와 선거 강령상의 문제, 그리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며 노동자후보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변혁모임의 선거논의 과정에서 독자후보투쟁에 대한 반대 이유를 밝혔고 김소연 후보 선거투쟁에 함께 하지 않았다. 변혁모임은 아직 후보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정치적·조직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정치적으로 정돈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정돈하지도 않고, 조직의 실력을 냉정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선거에 뛰어드는 것은 선거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며 정치적 투기라고 판단했다.”

(이용덕, 노건투, 정세초점, [2012년 대선/ 노동자후보투쟁이 남긴 것], 2012년 12월)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역시 선거로는 안 된다는 식의 반응, 대중운동이 바로서야 한다는 진지하지만 상투적인 반응 등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확인한 것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역량부족 자체였고 그것 이상의 한계는 없다. 선거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선거투쟁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후보가 필요했고, 대중운동이 바로 서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지 못해 대중운동이 지리멸렬한 탓이다.”

 

(김광수, 해방연대, 해방 75호, [낡은 것, 뒤쳐진 것과 단절하고 사회주의 정당 건설하자])

 

 

이들의 후보전술에 대한 비판은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부르주아 선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부르주아 선거참여를 전술의 하나로 판단하는 낡은 사고를 보여주었다. 또한, 강령에 입각한 당 건설이라는 원칙과 낮은 차원의 공동전선 형태인 변혁모임 참여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후퇴하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전술' 문제는 일찍이 코민테른 시절부터 볼셰비키와 코뮤니스트 좌파 사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레닌과 호르터의 논쟁, 트로츠키와 보르디가의 '혁명적 의회전술' 과 '보이콧 전술' 등으로 알려진 선거전술 문제는, 흔히 알려진 대로 ‘부르주아 의회를 통한 혁명 전략의 부정’이나 ‘부르주아 의회(선거)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본질이 아니다.


이것의 본질은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에 오르고 노동자평의회가 현실화되어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의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의 반()의회적 혁명 전략이 대립한 결과이다. 당시의 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계급 일부가 되어 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현재에도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혁명) 조직들은 반의회주의와 선거 거부에 대한 원칙을 강령에 정확히 명시하고, 그에 복무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다. 즉, 부르주아 선거는 전략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 정치 참여(선거전술)'와 '부르주아 정치 전복(선거거부)'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선거전술' 문제를 강령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일반적인 정세에서 선거전술을 사용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 선거거부(보이콧)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거부와 부르주아 정치/국가 전복을 기본 목표로 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도 선거개입은 제한적으로만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국제코뮤니스트전망(ICP)은 부르주아 선거와 후보전술 자체를 반대하였다. 즉,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원칙을 강령 수준으로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하는 투쟁으로만 계급 간의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의 방식으로 직접정치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형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코뮤니스트조직의 정치원칙을 세우며], 44쪽)

 

마지막으로 대선에 참여한 70%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선거제도를 자신의 삶으로 완전히 받아들였는가! 이다. 한국에도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25년간 부르주아 선거제도가 확실히 정착되었다. 즉, 모든 정치가 선거를 통해서만 결실을 보며, 선거 메커니즘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었고, 대중들을 자연스럽게 투표소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선거에 투표율이 높은 것은 계급의식 측면에서 계급적 열망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전면적으로 흡수된 결과이기도 하다.

 


4. 후보전술의 실패와 계급의식의 왜곡

 

지난 대선에서 노동자 후보를 내세운 세력은 왜 실패하였는가?

 

한마디로 기획단계에서부터 모든 과정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였다. 노동자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후보선출과정에서부터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투쟁이라는 목적에 맞는 전술은 부재했다. 특히 짧은 준비 기간은 후보등록 자체를 목표로 만들었고, 선거운동을 치를 역량조차 부족하여 처음부터 (선거 전문) 진보신당의 직간접적 도움이 필요했다. 말로는 ‘구속되는 후보’, ‘투쟁하는 노동자 집단후보군’을 내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히 선거법의 테두리 안에 갇힌 채 선거 유세에 전념해야 했다. 대중 집회, 광장 점거, 자본의 상징 타격 등과 같은 투쟁은 벌이지 못했고, 이들이 공격적으로 타격해야 했던 선거법은 오히려 삼성, 현대차 등 자본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이들의 선거 유세를 방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후보를 내세워 노동자 투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조급성이 후보중심의 전술을 강제하고, 위로부터의 공동전선, 심지어 사민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을 허용하고, 나아가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게 되어, 결국 선거 개입은 항상 대리주의와 선거주의로 귀결되고 만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10여 년 전으로 후퇴하여,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 사민주의 세력과도 기꺼이 연합하면서, 대중투쟁과 직접행동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이형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코뮤니스트조직의 정치원칙을 세우며],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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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치적 퇴행의 근본 원인은 사실은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당면과제가 난관에 봉착하자 이에 대한 해결책을 선거 개입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여전히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코뮤니스트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한 당 건설을 해나가는 원칙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주체의 조건이 아닌 진보 정당류와 노동조합과 같은 주변 변수에 흔들리는 당 건설 노선일 수밖에 없다.

 

김소연 선본은 선거 이후 다음과 같이 자체적인 선거 평가를 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하여 독자적 노동정치 자체를 포기해 버리려 한 현실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얼마 안 되는 좌파 정치 역량으로 2012년 대선을 치러낼 수 있을까 회의하고 우려하는 현실에서!

그래서 노동조합의 일부 상층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등 자유주의진영에 투항해 버리고, 현장 활동가들이 좌절하여 노동조합‘만’으로 후퇴해 버리거나, 좌파 정치 활동가들이 역량 부재를 탓하며 서클정치에 안주해 버린 척박한 노동정치의 현실에서!

그 얼마 안 되는 역량을 가지고,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을 역동적으로 완주함으로써, 독자적 노동자계급정치의 가능성을, 그 꺼져 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냈다.”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 보고 및 평가(안), 2013년 1월 25일)


이러한 평가는 한마디로 총체적인 왜곡과 자기만족형 평가다. 김소연 선본 평가서에서 주장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하여 독자적 노동정치 자체를 포기해 버리려 한 현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민노당 시절부터 노동자 직접정치와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종된 대리주의 정치무대를 떠난 상태였다. 과거 노동자들이 민노당을 지지한 것도 노동자정치 환상과 의회주의 환상이 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졌으나 ‘독자적 노동정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민노당은 처음부터 독자정치가 아닌 민족주의와 연합하여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는 의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김소연 선본을 주도한 사노위 또한 8차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97년 이후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해 노동자·진보정치진영 내에서 형성된 양자택일적이고 왜곡된 대립구도인 ‘선거냐-대중투쟁이냐’의 논쟁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노위 8차 총회 결과, 2013년 1월 12일)


사노위에서 말하는 선거냐-대중투쟁이냐의 논쟁은 왜곡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논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운동진영의 미숙함. 즉 그 동안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근본적인 노선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한편, 현장 투쟁, 현장 복원 등을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세력은, 여전히 전투적 조합주의와 낡은 정치노선(공동전선, 행동강령)을 버리지 못해 계속된 운동의 축소와 한정된 현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예상된다.

 

“이러한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후보들의 선거투쟁은 자본가정당들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조직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의지와 희망을 대변했다. 이 의지와 희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소중한 거름이다.”

 

(이용덕, 노건투, 정세초점, [2012년 대선] 노동자후보투쟁이 남긴 것, 2012년 12월)

 

 

특별히 대선을 지나면서 옛사노련 주축 세력이 혁명당 건설 시기 상조론을, 일부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변혁모임) 참여 결정으로 당 건설 운동 흐름을 사노련 이전으로 후퇴시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사회주의당 건설을 폐기한 세력에 파산을 선고하고 새로운 틀에서 혁명당 건설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후보전술과 무관하게 부르주아 정치인에게 투표한 70%의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계급의식은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우선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앞서 말한 대로 부르주아 선거 메커니즘에 의해 각자의 정치의식에 따라 유리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반정부 의식, 반자본주의 열망은 대중행동이나 선거 거부로 표출되지 못하고, 사람들을 투표소로 향하게 하였다. 선거 국면에서는 모든 열망이 정치적 요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투표행위라는 제한된 여과장치 속에서 모든 것은 가장 큰 이슈나 정권교체라는 목표로 흡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열망을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야권연대로 왜곡시켰다면, 노자후보는 선거에 제한당한 노동자정치로 왜곡시켰다.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부르주아 서커스 쇼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켰다. 하지만 선출된 사람에 대한 통제권과 소환권을 갖지 않는 모든 선거는 부르주아 정치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선거는 정치와 일상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어 스스로 전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 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더 어렵다. 따라서 정치조직은 정세에 따라 원칙을 바꾸면서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 자체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식 자체에 장기적으로 개입하여 계급 고유의 공간에서 직접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5.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거부 입장

 

그렇다면 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거부한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같은 세력은 왜 보이콧에 대한 행동을 기획, 실현하지 못했는가를 해명해야 한다.

 

선거 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건설하자. 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위원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 표현과 투쟁 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의 토대를 만들자!

 

선거 시기에는 더욱더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 사업장, 장애인, 소수자, 빈민, 실업자, 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 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연대’을 실현하자!"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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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정책반대, 인물 반대를 위한 보이콧이 아닌 계급투쟁과 연관된 선거 거부는 대중의 불만과 욕구가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것으로까지 표출되었을 때 가능하다. 여기에는 선거 거부 투쟁의 경험과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장기적 계급의식 관점에서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대중행동을 준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의 입장이 행동을 전제로 할 수 없었다. 대선에 대한 코뮤니스트 노동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량이 실제 부르주아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고, 선거 거부라는 행동 자체가 아직 대중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선거 거부 행동을 위해서는 선거 환상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 노동자 직접정치에 대한 열망, 노동자 민주주의의 수많은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선거 거부를 구호로만 외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기권이 아니라 장기적인 개입조건 창출을 위한 선전활동, 정치원칙 정립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부르주아 선거 환상에 대한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투쟁과 대중행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만, 다음의 선거 국면에서 진정한 노동자 정치의 공간을 아주 작게라도 열릴 것이다.

 


6. 선거 환상의 지속과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의 허구성

 

앞서 우리가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라고 부르는 전문적인 선거(의회)주의 세력은 선거 이후 왜 이합집산하고, 어떻게 선거 환상을 지속시키는가?

 

이들은 본질에서 ‘선거’가 모든 정치의 중심이기 때문에, 선거 주기에 따라 발 빠르게 재편되는 속성이 있다. 더욱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정당이거나 소수 의석의 정당은 경쟁력 확보와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선거를 염두에 둔 이합집산이 필수적이다. 이들 모두는 선거에 지든 이기든 즉시 다음 선거를 위해 선거 환상을 지속시켜야 한다. 2012~13년 이른바 ‘노동중심 정치’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은 본질에서 노동자정치 고유의 계급성과 전투력을 복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통진당 사태 이후 혼란에 빠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다시 한번 끌어내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이것이 상층부 중심의 지지세력 확장으로 이어지던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화로 이어지던 결국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의 결합이기 때문에 낡은 운동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해 11월 구성된 ‘노동정치연석회의’는 넉 달에 걸친 논의 끝에 노동포럼,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자연대다함께, 혁신네트워크가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기존 노동자 정당들의 분열ㆍ분화로 말미암아 조직 노동계급 내에서 정치적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노동계급의 여러 정치 경향들이 연합해 이 공백을 메우자는 것이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취지였다.”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라는 구상은 통합진보당 분당 이후 발생한 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의 분화에서 개혁주의의 정치 공간을 메우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양당이 제도권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국 정치 맥락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여전히 필요하다.(그렇더라도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정당이므로 특정 쟁점을 놓고 사안별 연대를 해야 한다.)”

(김인식, <레프트21> 99호, 2013년 3월 4일, [분열을 넘어설 진보정치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 또한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인 이른바 개혁주의 정치의 공간을 메우려는 사고만 있을 뿐, 파산한 낡은 진보정치와 단절하고 새로운 계급정치를 실현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만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는 개혁주의자들의 본질은 노동계급의 주변에서 현 자본주의 위기 상황을 일시적이거나 주기적 현상으로 이해하면서 자본주의 개혁과 보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노동정치, 진보정치로 포장되어 계급에 환상을 심어주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자본주의에 포섭된 세력이다.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법 제도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고칠 수 있다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조금 더 고통을 견뎌 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본주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혁명을 통해 낡은 체제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직접 사회를 운영하는 것만이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진실을 감추고 오히려 자본주의 회생의 가능성과 환상을 그럴듯하게 유포시키는 이들은 자본주의의 진정한 수호자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반드시 배신할 거라며 추상적이고 종파적으로 비난하는 자세는 틀렸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노동계급의 의식과 운동에 전혀 개입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좌파적 개혁주의 운동과 그것의 성공적 활동을 지지해야 한다.”

(김인식, <레프트21> 99호, 2013년 3월 4일, [분열을 넘어설 진보정치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 수호자인 개혁주의자들을 노동계급의 주변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빈자리에 조합주의와 선거주의를 결합한 낡은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을 앉히려는 행위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는 1920년대 제3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에 맞섰던 호르터의 경고를 오늘날 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른바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에게 오늘날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황폐화하고 노동계급을 오염시키는 기회주의야말로 우리가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만 배 나쁘다는 경고를!

 

“다시 코뮤니스트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의회로 들어갈 것입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들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위해 옹호될 것입니다. 코뮤니즘을 위해 건설하는 당 대신, 관성적으로 정당들을 조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애국주의자들 및 부르주아 분자들과의 의회주의적 타협이 다시금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서유럽에서 모든 혁명은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연설의 자유는 억압당할 것이고, 훌륭한 코뮤니스트들은 모두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던 모든 관행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기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대열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과 힘을 황폐화하는 기회주의가 다시 섞여 들어오는 것은 좌익이 너무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나쁠 것입니다.”

 

(헤르만 호르터, 레닌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920년) 

 

 

 

 

결론

 

이상과 같은 대선평가는 참담한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낡은 것뿐 아니라 운동을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도 있다.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낡은 것과의 단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시켜야 한다. 내부모순의 극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 사상투쟁의 전면화

 

계급의식의 발전은 노동자의식을 파괴하는 조건들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혁명은 오직 노동계급의 절대다수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계급의식의 발전은 사회에서의 노동계급의 조건에 반대하여, 즉 그들의 역사적 혁명적 과업을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방해하고 끊임없이 파괴하는 조건에 반대하여 이루어진다.”

(‘당의 본질과 기능에 대하여’,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e) 38권, 1948년)


낡은 운동과의 단절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사상투쟁이다.  

 

그 이유는 

 

첫째, 노동자 운동이 전체적으로 퇴조하는 현상은 낡은 운동의 몰락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운동 내부까지 침식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전면화된 시기에 노동자 계급의식을 방어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낡은 운동과 단절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을 극복하고 과거 운동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면전인 사상투쟁을 위해서는 계급투쟁의 열쇠인 계급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계급의식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모든 대중투쟁 공간에서 자유롭고 제한 없는 정치토론을 보장받고 확장시켜야 하며, 새로운 노동자 토론문화와 토론 능력 발전을 위한 혁명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 창출

 

“미국 즉 노동력의 88%가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고, 20%가 실직상태이거나 혹은 할 일이 충분치 않아 매일매일 점점 더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으며, 거의 노동조합원에 맞먹을 정도의 많은 프롤레타리아 혹은 후보 프롤레타리아가 감옥에 있는 국가에서, “노동조합을 혁명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발상 즉 혁명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차지한다”는 식의 오늘날 아직도 다양한 그리고 잡다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선전하는 발상들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로렌 골드너.Andy Stern 종말과 현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조합 문제, <반란자노트> 2호, 2010년 10월)


로렌 골드너가 말한 미국의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기나긴 계급투쟁의 침체기를 지나 아큐파이 운동으로 대중투쟁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낡은 운동은 저물었고 새로운 운동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낡은 노동조합, 진보정치를 붙잡고 새로운 운동 창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상투쟁과 함께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계급 스스로 창출해야 하지만, 낡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창조적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과거 투쟁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정세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조합 자체를 넘어서려는 의식적인 투쟁만이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하고,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실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행동그룹이 출현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 투쟁이 한국이라는 지역에 갇히지 않고 국제주의 관점에서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과 새로운 운동의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 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경험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확산시키는 비공인파업, 점령 운동 등 새로운 노동자연대의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지역, 국경을 넘어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국제적 공동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조직 형식은 노동자 민주주의가 철저히 관철되고 수평적인 계급 연대에 기반을 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지역 투쟁평의회와 같은 평의회 형식이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 대중조직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위계질서 없고 선출자를 즉시 소환할 수 있는 수평적 자기 조직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셋,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면화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 코뮤니즘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필요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코뮤니즘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노동계급이 스스로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첫째, 사회주의 당 건설 노선의 파산선언과 새로운 조건에서의 코뮤니스트당 건설 노선 제시할 것이다. 새롭게 건설될 코뮤니스트당은 세계혁명당 건설에 복무하는 국제적 혁명조직이어야 한다.

 

둘째, 중단되었던 강령투쟁을 심화 시켜 국제적 수준의 강령원칙을 정립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혁명세력을 재조직화할 것이다.

 

셋째,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통과 교훈을 계승한 세계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과 교류 연대를 활성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고, 국제주의 행동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자신의 운동 속에서 그동안 투쟁을 패배로 이끈 낡은 것들과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창출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 분출과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합적 존재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 투쟁이 직접 만나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자! 모든 것은 노동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 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코뮤니스트와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렸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코뮤니즘은 실현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과 코뮤니스트 전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2013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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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르주아 선거에 맞선 코뮤니스트 입장 1 - 과거를 반복하는 선거주의자들에 경종을 울리며 -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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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동기구태생적 한계와 선거주의

 

연출이 시작됐다.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공동선거투쟁본부를 제안하면서반자본주의반신자유주의야권연대 반대노동자 민중후보 완주’ 기조로 한 이른바 진보좌파·사회주의 그룹 간의 대선 공동기구는 형식적으로 현실화됐다물론 진보신당의 선거용 임시(가설)정당’ 정치옵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일군의 사회주의 그룹은대선 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전부터, ‘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그 첫 번째가 진보정의당통진당과의 분별 정립이며두 번째는 야권연대 비판공동전선 촉구다여기에 수식어가 첨가되는데다름 아닌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이다.

 

이 답안은 처음부터 가짜였다.

 

첫째진보신당은 총선정국에서 야권연대에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던 세력이 아닌가더구나 진보신당 내 주요 지도부 발언과 상당수 평당원 흐름이 진보정의당 정치 철새인 노회찬심상정류와 통합을 원한다는 것은 운동가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다른 한 축으로 구()사회당 계열은 과거 10여 년간 조직 정체성을 선거주의로 일관해왔는데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 체질이 바뀐다게다가 97년 대선 시기 국민승리21의 페이퍼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신당 가설정당에 대해사회주의 그룹은 공개적인 반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더 나아가일부 사회주의 그룹은 동상이몽적인 일괄타결(대선 기조강령투쟁운운하면서가설정당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 후보 전술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전형적인 선거주의다.

 

둘째과연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를 내세워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가이들은 대중투쟁이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면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생각한다야권연대 정권교체 열망 현상은 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의 결과이자동시에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의 표현이다따라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환상 자체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고 스스로 전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더욱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 어렵다그래서 정치조직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정치투쟁과 강령실천은 소홀히 하면서 손쉬운 선거 개입으로 조직화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많다선거철만 되면 바빠지고 활동력이 높아지는 정치조직이 여기에 속한다투쟁은 회피한 채 선거에서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동자 조직도 여기에 해당한다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지만조직동원과 자금모금으로 표현되는 선거의 조직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그들과 기꺼이 연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변혁모임계급정당 건설?

 

그간 진행된 변혁모임을 보면통진당에 대한 반정립 슬로건만 있을 뿐노동자계급정당 실체’ 논의는 사라지고보통명사인 계급정당만 외치고 있다자신의 전략적 과제와 정치적 전망인 당에 대한 최소한의 강령적 원칙 내용에 대한 토론은 고사하고선거 참여를 해야 한다는 선당위론만이 팽배하다그리고 그들은 선거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하면서대선후보군을 확정했다노동자계급정당의 그간의 정치적 성과와 정치적 강령을 전체 계급에 제출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대선후보군 상층 지도부의 순교자적’ 투쟁만이 요구된다내용 없는 현장변혁계급정당 선거를 역순 한 일정 박기 투쟁선거용 희망버스를 호소한다결국선거정치 희망버스에 동원되는 대중은 자신의 현장 정파적 이해에 맞는 조합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변혁모임 내부에는 당에 대한 다양한 이질적 흐름이 존재하는데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조차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뭉뚱그려 노동자후보만을 얘기하고 있다이들은 단순한 대선 통일전선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강령에 입각하지 않고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자신들을 규정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계급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조합주의를 보호해줄 뿐이다이들이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강령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배후정치와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겠다는 선언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혁명당의 역할은 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계급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지중간에서 활동가(조직)를 통해 배후조종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현재의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최종목표 사이에 어떠한 중간단계나 대리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려있다.

 

혁명당 건설은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코뮤니스트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그런데 운동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사노위 등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조급한 정세 대응으로 일관하거나아니면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후퇴시켜왔다이들은 진공상태에서 당 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변혁모임의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정치방침으로 결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진보정당 운동은 파탄 났다이러한 결과가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해방으로서 이념 부재소위 80년대 소부르주아 이념인 NL(민족해방노선 추구개혁적 사민주의와 선거·의회를 주축으로 한 활동이었다따라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기존의 구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주장이다결국새로운 조직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며」 참고)

 

몇 년 전부터이른바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는 전술적 문제를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는데이 전술적 운용의 실천적인 대립은 선거 시기 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 좌파를 포함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원칙 중심의 전술과 기회주의적 전술을 구분한다한마디로 기회주의 전술의 특징은 단기 목표의 강조현재 시점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기회주의의 모든 전술은미래의 격동을 준비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대신주로 특정 시기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와 실천 운동 역량에만 관심을 둔다반대로 원칙 중심의 전술은 혁명 운동 발전의 총체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운동의 근본적 임무와 계급투쟁의 방향미래를 향한 장기적 실천을 전개한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정세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새롭게 올라오는 대중행동 투쟁이었다전 세계적으로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재구축을 위해 나서고 있다한국 또한 마찬가지다이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오직 분배 정의만을 외치고 있다노동자계급이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코뮤니스트 사회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이제 코뮤니즘이라는 대안 사회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코뮤니즘은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파로 활개를 치고 있다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파로 존재하고 있다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여러 선택지(후보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또한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통진당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또한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사민주의와 동거선거정치 몰입이냐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노동자계급이 자기해방(자본주의 전복과 노동자 권력)의 전망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건설하자. 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위원회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의 토대를 만들!

 

선거 시기에는 더욱더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 사업장, 장애인소수자빈민실업자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연대을 실현하자!

 

선거에 참여하는 대선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대선(정치) 자체에 맞선 분노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자.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부르주아 정치 참여(대선)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선거 이후 계급전쟁 준비를 위한 물리력을 조직하자!

 

 

2012년 12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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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네쿡] 노동조합주의

노동조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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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정규직 대 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자투쟁' 대 '조합주의 걸림돌'

 

 

<편집자 주>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 내부의 걸림돌인 노동조합주의 세력과도 싸우면서, 투쟁의 원칙을 지키고 연대와 단결을 정신을 실천하는 모든 노동자를 지지한다. "노동조합 투쟁의 좁은 영역이 계급 투쟁의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며 이글을 소개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만 하는가이것은 노동자들이 매일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그들은 권력을 장악하고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떤 효율적인 투쟁 수단과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가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어떠한 학문도어떠한 이론도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노동자들은 감각으로 가능성을 느끼고자생적이며직관적으로 투쟁의 방법을 찾았다자본주의가 점점 확장되고지구를 정복하며그 힘을 키워갈수록노동자의 힘도 점점 커졌다더 넓고더 효율적인 새로운 투쟁 양식이 나타났다조건이 바뀌어 감에 따라 투쟁 형식과 계급투쟁 전술 또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노동조합주의는 안정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주요한 형태이다고립된 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항할 힘이 없다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한다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공동 투쟁즉 무기로서의 파업으로 결집한다그럴 때 힘의 균형은 상대적으로 같아지거나때때로 노동자들 편으로 기울고고립된 소()자본가는 강력한 노동조합에 비해 약하게 된다따라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과 자본가들의 조합(협회트러스트주식회사 등)은 적대적으로 싸운다.

 

노동조합주의는 처음에 산업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한 영국에서 등장했다그것이 다른 나라로 널리 퍼진 후에자본주의 산업에 자연스럽게 경쟁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미국에서 특별한 조건이 조성되었다초기에 풍부한 미개척지는 마을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과 상대적인 고임금 및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미국 노동총동맹은 권력을 갖게 되었고점점 그 조합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생활 표준을 유지하게 해 줄 수 있었다.

 

명백히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는 생각이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충분하고꽤 안정된 생활을 보장했다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현재 존재하는 질서에 적대적인분할된 계급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그들은 신대륙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가능한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거기에는 대부분이 유럽에서 건너온 수백만의 사람이 살 공간이 있었다이런 급속한 농업 인구의 증가로 인해에너지와 행운이 함께한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기능공소상인심지어 부유한 자본가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이 필요했다거기에서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노동계급에 널리 유포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여기서는 영국이 세계 상업과 대산업을 독점했고외국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었으며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부유한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자본가계급은 이익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으며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었다물론 우선그들에게 이 진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싸움이 필요했다그러나그 후 그들은 산업 평화를 위해 조합과 고임금을 허락할 수 있었다그래서 여기서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정신에 물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조합주의의 가장 핵심적 특징과 전적으로 부합한다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활동이다그 목표는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 양식으로 교체하는 것에 있지 않고오히려 자본주의 내에서의 좋은 생활 조건을 보장하려는 데에 있다그것의 특성은 혁명성이 아니라 보수성이다.

 

물론노동조합 활동은 계급투쟁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며적대적 계급으로 존재한다자본주의 보수성에 관한 물음뿐만 아니라자본주의 그 자체 내에도자본가는 임금을 삭감하고노동 강도를 강화하며그들의 이윤과 잉여가치를 최대한 증대시키려고 노력한다반면에 노동자는 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을 꾀한다.

 

비록 그것이 최소치는 넘어야 하지만노동력의 가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그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진 자본가에 의해 지급되지도 않는다따라서 이 적대는 진정한 계급투쟁의 대상이 된다이는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기능이다.

 

노동조합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가치곧 조직한 투쟁 정신인 연대를 배우는 최초 학교였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조직화한 힘의 최초 형태를 구현했다초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조합에서 이러한 가치는 종종 경직되었으며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인 협소한 동업조합으로 전락했다그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진정한 존재를 위해 어디서 싸워야 할지그들 조합의 최대 노력이 생계 표준을 거의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강력하고공격적이고확장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힘이 어디서 그들을 공격할지를 알아야 했으며오직 혁명만이 그들을 완전하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주의 사이에는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해야 한다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존재하며그것을 극복하는 전망을 가질 수 없다노동조합주의는 계급투쟁에서 필요하긴 하나단지 협소한 일부분만을 표상할 수 있을 뿐이다그리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더 큰 목표와 충돌하는 측면을 발전시킨다.

 

자본주의와 대산업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도 같이 성장한다노동조합은 모든 도시와 모든 공장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나라 전체로 확장되며거대한 기업이 된다업무를 수행하고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지역과 중앙에서 관료들위원장사무총장재정담당이 임명된다그들은 자본가들과 협상하고이런 일을 통해 특별한 기술을 갖추는 지도자가 된다노동조합 위원장은 자본가만큼이나 큰 힘을 갖게 되고자신과 그리고 동등하게자기 조합원 이익을 논의한다관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직업에서 전문가가 되며공장 일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는 조합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거나 그들을 지시할 수가 없다.

 

노동조합으로서 거대한 기업은 단순한 개별 노동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은그래서 자신의 정책특성정신전통그리고 기능을 갖는 조직체가 된다그것은 노동계급 이익과 괴리된 그 자신의 이익을 갖는 신체가 되며자기 실존을 위해 살고싸우려는 의지를 갖는다만약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해 더는 필요 없다는 것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해도그것은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의 자금조합원그리고 관료들이 모든 것은 즉시 사라지지 않고오히려 조직체 구성요소로서 그들의 실체를 계속 유지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관료들지도자들은 특별한 노동조합 이익의 담지자들이다시초에 공장 노동자였던 그들은 조직 지도자로서 오랜 실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특성을 획득한다일단 특별한 그룹을 형성하기에 충분히 커지기만 한다면각각의 사회적 그룹에서그 작업 본성은 그것의 사회적 특성사고와 행위의 양식을 주조하고결정한다노동조합 관료 기능은 노동자들의 기능과 철저히 다르다그들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으며그들의 존재는 계속된 실업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그들은 사무실에 앉아서꽤 안정된 지위를 누린다그들은 노동조합 일을 처리하며노동자들과 회의를 준비하며기업가들과 협상을 해야 한다물론그들은 노동자 편에 서서 이익을 방어하고자본가들에 반대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어떤 조직에서 임명되어그 조직 구성원들을 대표하여모든 역량을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변호사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계급 출신이기 때문에그들은 임노동과 착취가 의미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그들은 노동계급 일원으로 느끼고그들 내면의 프롤레타리아트 정신이 강한 전통으로 작용한다그러나 그들 삶의 새로운 현실은 계속해서 이 전통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경제적으로 그들은 더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그들은 자본가 이익에 대항하여 노동자 이익을 챙기고임금과 노동 시간에 관해 협상하며 마치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본가들과 협상장에서 대립한다그들은 노동자 위치뿐만 아니라 자본가 위치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그들은 산업의 필요성에 관한 시각을 갖게 되며그것을 중재하는 것을 추구한다물론 개인적인 예외는 있으나대개 그들은 노동자들의 기초적 계급의식을 가지지 못하며그들의 적절한 이익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노동자들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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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노동자 대표?들의 부르주아 정치 참여

 

선진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 지도자 수는 특수한 계급적 특성과 이익을 가지는 특별한 그룹이나 계급이 될 만큼 충분하다노동조합 대표자와 지도자로서 그들은 조합 특성이나 이익을 구체화한다노동조합은 자본주의 필수 요소이며자본주의 사회 유용한 시민인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그렇게 느낀다노동조합의 자본주의적 기능은 계급 갈등을 조절하고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산업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을 그들 의무로 여기고갈등을 중재한다노동조합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진다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지 않는다실존을 위해 애쓰는 노동조합 의지인자기 보존 본능은 노동조합 존재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 지도자들 의지로 구체화한다그들의 존재는 노동조합 존재와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이것은 사소한 의미가 아닌데그들은 노동조합을 위해 싸울 때도 그들 개인적 직업만을 생각한다그들은 삶 전부를 노동조합에 집중하고여기서 그들 일을 찾는다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사회의 가장 필수적 기관이자유일하게 안전과 권력 자원은 노동조합이 된다따라서 노동조합은 모든 가능한 수단들로 보존되고방어되어야만 한다심지어 자본주의 사회 현실이 노동조합의 이러한 지위를 침식할 때도 그렇다이는 자본주의 팽창과 계급투쟁이 점점 날카로워질 때 발생한다.

 

강력한 기업에 자본이 집중되고 거대 금융과 연계는 자본가 지위를 노동자보다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막강한 산업 거물(재벌)들은 거대한 노동자 대중을 지배하는 군주처럼 군림한다그들은 노동자들을 절대적 종속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고, ‘그들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때때로극심하게 착취당하는 임금 노예들이 반역곧 거대한 파업을 일으킨다그들은 더 나은 조건짧은 노동 시간더 인간적인 조건단결권을 갖기를 희망한다노동조합 조직책들은 파업노동자들을 돕는다그러나 그때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사회·정치 권력을 사용한다파업노동자들은 집으로 내쫓기고구사대나 용역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그들의 대표자들은 감옥에 투옥되고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 투쟁은 법원 명령으로 금지된다자본가 언론은 파업노동자 주장을 무질서살인그리고 혁명이라며 비난하고여론도 노동자에 적대적으로 나타난다그러고 나서 비참함과 실망으로 지친 채몇 달 간의 인내와 고난을 겪은 후에철갑과 같은 자본주의 구조에 파열구를 만들지 못한 채파업노동자들은 굴복하고자신의 요구를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노동조합이 강력한 조직체로 존재하는 산업에서노동자 지위는 이와 같은 자본 집중에 떨어진다노동자들이 파업을 위해 모은 대규모 기금은 그들의 적이 가진 금전적 힘과 비교했을 때 무의미하다두 번의 공장폐쇄는 그들을 완전히 고갈시킬 것이다자본주의 기업가들이 임금 삭감과 노동 시간 강화를 통해 아주 심하게 노동자들을 쥐어짜더라도노동조합은 투쟁할 수가 없다계약이 갱신되어야 할 때노동조합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제안하는 나쁜 조건을 수용해야 하고협상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하지만이제 현장조합원과 관련된 근심이 시작된다조합원들은 투쟁을 원한다그들은 싸우기 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싸워서 잃을 것이 많지 않다하지만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재정력과 아마도 노동조합 존재 자체 등 잃을 것이 많다그들은 투쟁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고그들은 희망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조합원에게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설득해야 한다그래서 결국그들은 자본가 조건을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자본가 대변인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정에 반대하며 투쟁을 주장할 때는 더 심해진다그러면 노동조합 힘은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무기처럼 사용된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적 과업의 노예가 된다 비록 그들은 최대한으로 노동자에게 기여하려 하지만이제는 노동자 비용으로 그 일을 한다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가 없고자본주의 관점으로 자본주의 지평선 내에 존재하며투쟁은 쓸모없다는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그 권력의 한계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대안은 있는가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가아마도 그들은 직면한 투쟁 이슈를 잃을 것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다투쟁 없이 복종하지도 않으며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정신을 고무시킬 것이다노동자들은 새로운 이슈를 선언할 것이다그러나 전체 노동계급은 여기에 참가해야만 한다계급 전체와 그들의 동지 모두에게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그들의 미래가 없고노동조합이 아닌단결된 계급으로 투쟁함으로써만 승리할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이것은 혁명 투쟁의 시작을 의미한다그들의 동지들이 이 교훈을 이해하고전면파업을 여러 산업에서 일으킬 때반역 물결이 나라 전체를 뒤덮을 때자본가들의 거만한 가슴에서는 그들의 전능에 대한 의심이 나타날 것이며양보할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왜냐하면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이런 성격 투쟁을 반대한다이런 방식의 반()자본주의 투쟁은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반대를 동시에 의미한다노동조합 지도자는 노동자 반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본가 옆에 선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자본가계급과 투쟁을 벌일 때자본가계급은 그들을 증오하나그들의 힘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는다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투쟁에서 계급 전체 힘을 동원해서 투쟁한다면자본가계급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다노동조합은 그들의 행동이 반역으로 탄압받는 장면그들의 사무실이 구사대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그들의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벌금을 무는 장면그들의 투쟁기금이 몰수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그러나 반대로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조합원들을 투쟁하지 못하도록 한다면자본가계급은 그들이 살아남고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집단으로 여길 것이고지도자들을 대우받을 만한 시민으로 여길 것이다그래서 악마적인 것과 깊고 푸른 심해 사이에서 노동조합이 만약 현명하다면자본가계급은 거짓 투쟁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은 누구의 실수도 아니다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불가결한 결과이다자본주의는 존재하는 한편으로붕괴하고 있다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동시에 유한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고동시에 코뮤니스트적 사고에다소간 분명하고의식적으로깨어있어야 한다그들은 이것이 여전히 필요함을 느끼고때때로 노동조합을 좀 더 투쟁적인 기구로 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노동조합을 유지해야 한다하지만 노동조합주의 정신은 원래 자본주의 정신이지 노동자의 것은 아니다자본주의와 계급투쟁에 있어서 이런 두 경향의 분기는 지금에 있어주요하게는 그 지도자들이 만든노동조합 정신과 그 조합원들의 성장하고 있는 혁명적 느낌 사이 균열로 나타난다이러한 균열은 더 분명해진다.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 영역 내에 존재한다노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번창할 때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만난다그래서 불황기에 노동조합은 경기 회복을 꿈꾸고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계급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번영은 전혀 의미를 갖지 않는다불황 위기로 자본주의가 약화할 때노동자들은 그것을 전복할 최상의 기회를 만나혁명의 기운을 높이며자유를 향한 일보를 내디딘다.

 

자본주의는 외국으로 그 지배권을 확장하고거대 이윤을 위해 그 나라 재화를 강탈한다그것은 식민 지배를 일삼으며원주민들을 종속시키고착취한다종종 끔찍한 대량 학살을 일으키기도 한다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식민 착취를 비난하고반대한다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종종 자본주의 번영의 한 방편으로서의 식민 지배를 지원한다.

 

현대 자본의 거대한 성장에 따라식민지와 국외는 거대한 규모의 자본 투자처로 활용된다그것은 거대 산업 시장으로서원자재 공급지로서 가치 있는 소유물이 된다식민지 획득을 위한 경쟁세계 분할을 위한 이익에 관한 격렬한 갈등은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다이런 제국주의에서 중간계급은 국가의 위대함에 대한 일반적인 숭상을 따라 소용돌이친다노동조합은 자본가계급 편에 서는데왜냐하면그들은 자신 국가의 자본주의 번영이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 투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노동계급에 있어제국주의는 착취자들의 힘과 잔인성 증대를 의미할 뿐이다.

 

민족자본주의 사이 이익을 위한 이런 갈등은 전쟁으로 치닫는다세계 전쟁은 최상의 제국주의 정책이다노동자들에게 전쟁은 국제적 연대 의식의 파괴일 뿐만 아니라또한 자본가 이익을 위한 최상의 폭력적 수탈을 의미한다사회에서 가장 큰 규모이자가장 억압받는 계급인 노동계급은 모든 전쟁의 참사를 견뎌야 한다그들은 자신의 노동력뿐만 아니라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전시에 노동조합은 자본가 편에 선다노동조합 이익은 민족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진심으로 자국의 승리를 기원한다그러므로 노동조합은 강력한 애국심과 타국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돕는다노동조합은 자본계급이 노동자들을 전쟁으로 몰아넣고모든 반대를 깨부수는 것을 돕는다.

 

노동조합주의는 코뮤니즘을 혐오한다코뮤니즘은 그것의 존재 근간을 제거해버린다코뮤니즘에서즉 자본가들이 부재한 상황에서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더는 의미가 없다노동자 집단이 사회주의자들인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기원에서뿐만 아니라환경에 의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 역시 사회주의자이어야 한다하지만 그들은 우파 사회주의자들이고그들의 사회주의는 욕심 많은 자본가를 대신해 정직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산업 생산을 관리하는 복지 이념으로 제한된다.

 

노동조합주의는 혁명을 싫어한다혁명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모든 일상적 관계를 뒤집어엎는다그 격렬한 충돌 속에서모든 세심한 규정은 쓸려 사라지고그 거대한 힘의 투쟁 중에 온건한 협상 기술을 가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그 가치를 잃게 된다전력을 다해 노동조합주의는 혁명과 코뮤니즘 사상에 반대한다.

 

이런 반대는 의미가 없지 않다노동조합주의는 그 자체 힘이 있다노동조합은 자신의 처분권 내에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고그것은 힘의 물질적 요소를 이룬다노동조합은 또한 정신적 힘을 가지는데그것은 힘의 정신적 요소인 정기적인 신문을 통한 지지와 선전을 통해 이루어진다그런데그 권력은 지도자들의 손에 쥐어진다그들은 노동조합의 특수 이익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익과 갈등을 일으킬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한다비록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구성되지만노동조합주의는정부가 민중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듯노동자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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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자 운동에 깊숙이 자리잡은 '사회적 합의주의'

 

노동조합주의 양태는 자본주의 발달의 다른 양태로 인해국가마다 다르다그것은 국가마다 같은 양태로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그것이 서서히 소멸해갈 때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때때로 그것을 변형시키거나새로운 조합주의 형식을 만들어낸다그래서 1880-90년대 영국에서 새로운 조합주의가 이전 직업별 노동조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가난한 부두 노동자다른 저소득층미숙련공에 의해 시작되었다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었으며새로운 산업의 발생과 기계력에 의한 숙련 노동 대체로 최악의 조건에서 생활하는 대규모의 미숙련공이 양산되었다마침내 거대한 반역의 물결과 강력한 파업을 앞두고서 그들은 단결과 계급의식의 길을 발견했다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합주의를 만들었고더욱 발전된 자본주의에 적응해 나갔다물론자본주의는 더욱 강력한 형태로 성장해나갔고새로운 조합주의는 모든 조합주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그것은 이전과 같이 내적 모순에 처했다.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미국의 <세계 산업 노동자총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로 생겨났다. IWW는 자본주의적 팽창의 두 형태에서 기원했다서구의 거대한 산림과 대초원에서자본주의는 맹렬하고 난폭한 착취를 서부 황야(wild west)의 방법을 통해 자연적 부를 획득했다그리고 노동자모험가들은 완강하고열정적인 방어 형태로 응답하였다그리고 동부에서는 새로운 산업이 수백만 명의 가난한 이주노동자들-그들은 저발전국 출신이었으며이제는 땀으로 찬 공장이나 다른 가장 비참한 형태의 노동조건에 종속되었다-에 대한 착취로 만들어졌다.

 

한 공장의 노동자를 여러 개의 개별 노조로 나눈 미국노동연맹(AFL)의 편협한 노조 정신에 맞서 IWW는 한 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고용주에 반대하는 동지로서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고용주에 대항하는 강력한 노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질투와 다툼을 일삼고 있는 수많은 노동조합에 맞서서, IWW는 – 모든 노동자를 위한 하나의 커다란 노조라는 구호 를 내걸었다한 집단의 투쟁이 모든 이유이다전 계급에 걸쳐서 연대는 확대된다조직화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수가 좋은 노련한 미국 숙련 노동자들의 거만한 경멸과 달리, IWW가 투쟁으로 이끈 것은 열악한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였다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높은 수수료를 내고 평범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다그러나 그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 저항했을 때그들에게 투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전국에 걸쳐서 후원금을 모금했으며그들의 주장을 신문과 법정에서 변호한 사람은 바로 IWW였다영광스러운 일련의 대규모 투쟁은 이들 대중의 마음에 조직과 자립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옛 노조들의 거액 자금에 대한 신뢰와는 달리산업 노동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지탱되는 살아있는 연대와 인내의 힘을 신뢰한다낡은 노동조합의 무거운 석조 건물 대신조합원의 변동에 따라 평화 시기에 협상투쟁 자체로 팽창 및 성장하는 유연한 건설 원칙을 가지고 있다노동조합주의의 보수적인 자본주의 정신과는 달리산업 노동자들은 반()자본주의적이었으며 혁명을 상징했다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로부터 극심한 증오와 함께 박해를 받았다그들은 감옥에 갇히고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했다; ‘범죄 생디칼리즘이라는 새로운 범죄가 그들을 대신해서 발명되기까지 했다.

 

자본가계급과 투쟁하는 방법으로서 산업 노조주의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을 위한 세계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그들은 경제 생산 분야에서 고용주로서 자본가들과 싸우지만그들의 정치적 거점인 국가 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그런데도 지금까지 IWW는 미국에서 가장 혁명적인 조직이었다무엇보다 계급의식과 통찰력연대와 단결을 일깨우고 코뮤니즘으로 눈을 돌리고 투쟁력을 갖추는 데 이바지했다.

 

이 모든 투쟁 교훈은 거대한 자본주의에 맞서서 노동조합이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만약 때때로 승리한다면그러한 승리는 일시적인 안도감만을 줄 뿐이다그런데도 이 투쟁은 필요하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마지막까지아니더 나은 최후까지

 

그 이유는 명백하다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고립된 자본가 고용주에 대항하는 투쟁과 같을 수 있다그러나 전체 자본가계급이 지지하는 고용주에 대항하는 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무력하다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국가 권력자본주의 자금력자본주의 언론에 들뜬 중산층 여론이 모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파업자들을 지지할까수백만 명의 다른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자신들의 명분으로 여기지 않는다확실히 그들은 파업자들을 동정하고 종종 돈을 모을 수 있으며판사의 명령에 분배가 금지되지 않는 한이것은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줄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태평한 동정심으로 인해 진정한 투쟁은 파업 집단에게만 맡겨진다수백만의 사람들은 냉담하고 수동적이다따라서 노동계급은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단위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자본가들이 사업상의 이유로 양보를 하는 것을 선호할 때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

 

물론 노동자 대중이 그러한 경쟁을 그들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생각할 때자신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그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파업을 다른 공장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산업 분야로 확대한다면자본주의 권력인 국가 권력은 분열하며분리된 노동자 집단에 전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노동계급의 집단적인 힘에 직면해야 한다.

 

파업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하여 마침내 이루어낸 총파업은 종종 패배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안해 왔다그러나 확실히 이것은 우연히 얻어걸려 승리를 보장받는진정으로 편리한 패턴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만약 그렇다면노동조합은 분명히 그것을 반복하여 일상적인 전술로 사용했을 것이다그것은 단순한 전술적 조치로서 노조 지도부가 마음대로 선언할 수는 없다그것은 대중들의 아주 깊은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표현이어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