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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성, 이윤, 규율, 그리고 노동조합 시위

한국: 삼성, 이윤, 규율, 그리고 노동조합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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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삼성에서 발생한 노동 쟁의는 인도와 아이티에서 일어난 대규모 투쟁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이 쟁의는 빈곤에 허덕이는 국가에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아니고, 광범위한 민중 봉기의 형태를 띠지도 않았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 중 하나인 삼성에서 벌어지는 노동 쟁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 원인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그 뿌리는 같다. 노동자들의 삶에 가해지는 압박의 증가, 기업의 막대한 이윤, 그리고 에너지 위기, 군사화, 제국주의 경쟁이 빚어낸 세계적 위기가 바로 원인이다.

 

4월 23일, 삼성전자 노동자 수천 명이 평택에 있는 회사 반도체 공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AP 통신에 따르면 노조 관계자는 약 4만 명의 조합원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성과급 인상, 성과급 투명화,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했으며, 협상 결렬 시 5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시위는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을 사상 최고치인 57조 2천억 원으로 전망하고, 반도체 업계 전반이 AI(인공지능) 인프라 붐으로 수혜를 입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한편, 언론은 중동 전쟁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 브롬 등의 원자재 공급 차질을 초래하면서 업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

 

이러한 모순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내는 것을 보면서도 경영진한테는 한계, 신중함, 불확실성에 대해 듣는다. 노동자 관점에서 이 갈등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으로 생활비가 상승하는 가운데, 삼성은 호황을 누리지만, 노동자의 임금과 성과급은 왜 계속 압박을 받아야 하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삼성의 사례는 인도와 아이티의 파업과 같은 세계적 흐름의 일부이다. 전쟁과 위기는 직장 밖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계급적 압력의 형태로 되돌아온다.(2)

 

하지만 갈등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삼성은 현재의 호황에서 이익만 얻는 것이 아니다. AI 붐이 식거나 주문이 변동할 위험, 과잉 투자가 과잉 생산으로 이어질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 로이터 통신은 이달 초 삼성이 AI 데이터 센터 수요에 힘입은 메모리 칩의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 덕분에 사상 최고 실적 전망을 내놓았다고 보도하면서도, 중동 전쟁으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자본 내부에는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두 가지 우려가 생겨났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AI 호황이 지속하고 군사 또는 전략 기술 관련 수요가 증가하여, 삼성이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엄격한 업무 규율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호황이 꺾이고 이익이 감소하여, 경영진이 위기라는 명목으로 해고, 성과급 삭감, 또는 더 엄격한 노동 통제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그 대가는 결국 노동자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3)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대규모 대중 시위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조직적으로 시위를 조직하여 질서 있게 행진을 이끌고, 공인된 교섭 당사자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회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임금과 성과급에 대한 노동자들의 진정한 분노를 표출하는 동시에,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피켓과 구호를 외치며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모습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의해 조직되고 대표되는 모습으로 비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능력을 단순히 시위 조직 능력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직접 주도하는가, 아니면 협상과 압박이라는 틀 안에서 주로 관리되는가이다.

 

이 문제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성은 수십 년 동안 독립적인 노동조합 결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로이터와 연합뉴스는 2024년 삼성의 주요 노조가 임금 및 복리후생 협상이 결렬되자 단기 파업에서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회사의 오랜 ‘무노조 경영’ 모델에 대한 역사적인 도전이었다.  (삼성의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짓밟히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가 유해 물질에 중독되어 백혈병과 각종 희귀암에 걸렸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지금도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은 2023년 반도체 부문 적자를 이유로 성과급을 0%로 책정하면서도 경영진 1,000여 명에게는 총 1,75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삼성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긴급 조정권 발동을 위협하며 자본의 편에 서고 있는데. 이는 최근 실적이 좋은 다른 업종으로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역자>)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삼성에서 발생하는 모든 노동 쟁의는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신감과 경험을 얻고, 모든 결정을 노동자가 직접 내리는 총회를 조직하여 노동조합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분노를 제한적인 교섭과 절제된 상징적 행동으로 이끄는 안정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계급적 관점에서 볼 때, 핵심은 삼성 경영진과 노동조합 지도부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익은 세계적 경쟁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삼성의 이익과는 다르고, 노동 쟁의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것이 역할인 노동조합의 이익과도 다르다.

 

인도, 아이티 노동자 투쟁과의 연관성이 명확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극명하게 다르다. 인도의 광대한 산업 지대에서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노동시간,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투쟁했다. 아이티에서는 섬유 노동자들이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임금에 맞서 싸웠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기술 대기업의 성과급과 보상 문제가 당면 과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 이면에는 같은 토대가 깔려있다. 자본이 노동의 상대적 몫을 줄이는 동안 전쟁, 인플레이션, 세계 시장 위기는 노동자들의 삶에 더욱 큰 압박을 가한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다를지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선택은 단순히 임금 협상이나 회사와의 분쟁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속박된 채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지키고 생산 계급으로서 스스로 대안을 구축해 나갈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러한 대안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경영진에 대한 수동적인 신뢰, 노동조합의 중재에 대한 수동적인 신뢰를 넘어, 자신들이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2026년 4월 26일

프레도코르보(fredocorvo)

 

<주>
1. https://apnews.com/article/korea-samsung-union-strike-ai-38e7a5030d3688850d3e8d8baf240f58

2. https://apnews.com/article/korea-samsung-union-strike-ai-38e7a5030d3688850d3e8d8baf240f58

3. https://www.reuters.com/sustainability/sustainable-finance-reporting/samsung-flags-eight-fold-jump-q1-profit-ai-chip-demand-drives-up-prices-2026-04-06/?utm_source=chatgpt.com

4. https://www.reuters.com/technology/samsung-electronics-union-south-korea-declares-another-strike-2024-07-10/?utm_source=chatgpt.com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4/26/south-korea-samsung-profit-discipline-and-the-union-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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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극우 세력과의 투쟁 그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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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겪는 문제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난 이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성장률 하락’(즉, 이윤율 하락)의 결과에 직면해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담률(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년 넘게 감소해 왔다. 국민건강보험(NHS), 학교 예산, 사회 복지 혜택, 연금 등 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된 자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공공 서비스가 삭감되었다. 국제 시장에서 투기하는 금융 자본주의 기업들이 공공시설을 운영하면서 강과 해안은 하수 오염으로 더러워지고, 결국 우리는 더 높은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영국개혁당(Reform)이나 영국독립당(UKIP) 같은 극우 세력의 거짓말에 귀 기울이면 오직 “영국이 망가졌다”라는 생각만 들게 된다. 그들에게 원인은 간단하다. 모든 것은 이민자와 난민 탓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소영국주의자들(1)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장한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반(反)이슬람, 반(反)이민 성향의 우파 세력은,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이 이끄는 영국수호동맹(EDL)이 ‘왕국 통합’(Unite the Kingdom)으로 변모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손쉬운 동원력, 일론 머스크 같은 재벌들의 막대한 재정 지원과 공개적인 지지에 힘입어, 로빈슨 일당은 지난 3월 런던 중심가에서 수만 명의 “극우 활동가”들을 동원했던 시위를 5월 16일 다시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도발이다. 5월 16일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건국과 1948년 자신들의 땅을 잃은 사건, 즉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규탄하는 전통적인 시위를 벌이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 런던 경찰청은 팔레스타인 측이 매년 제출해 온 행진 허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로빈슨 일당이 런던 중심가를 마음대로 활보하도록 허락했다.

 

선의의 “반(反)파시스트”들과 현 체제가 개혁 가능하다고 믿는 많은 이들은 이미 지난 3월 런던에서 열린 극우 세력에 맞선 대규모 시위를 다시 한번 준비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극우 인종주의자들에 맞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들을 만들어낸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은 특정 정치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전환할 수 있다(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데 가장 유리한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오늘날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의 편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도, 러시아 편도 아니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지만, 그렇다고 이란 국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자지구, 서안지구, 레바논에서 자행되는 시온주의자들의 팽창주의 학살도 지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가 우리에게 빈곤, 극심한 불평등, 그리고 야만적인 전쟁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이를 끝낼 때이다.

 

 

2026년 5월 8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역자 주>

1. 소영국주의자(Little Englander)는 18~19세기 제국주의 팽창에 반대하고, 영국 본토(잉글랜드)의 내실을 기하며 식민지의 독립을 옹호했던 고립주의적 정치 성향을 말한다. 대영제국 건설보다는 영국 자체의 이익과 평화를 우선시한 사상으로, 대외 팽창을 지지했던 '대영제국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8/more-than-a-fight-against-the-far-right-we-need-a-fight-against-capitalism


<참고할 글>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반(反)파시즘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652

 

결정적인 선택 :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5975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인종주의적 분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https://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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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영국은 지금: 자본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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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선택적 전쟁’의 여파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란을 “극도로 강력하게” 타격하면 “매우 빠르게” 끝낼 수 있다는 그의 끊임없는 허세는 점점 더 공허해지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전 세계 사람들(수년간 이슬람 정권에 저항해 온 이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에게는 끔찍한 소식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비료 부족은 이미 기후 변화로 가뭄에 직면한 아프리카 농민들이 올해 작물을 파종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이는 광범위한 기근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유가 상승은 이미 치솟고 있던 생활비에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유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에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2008년 은행 구제금융 이후 수년간 긴축 정책을 펼쳐왔는데, 물가 상승으로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자의 고통이 더 커질 전망이다.

 

노동당은 14년간의 보수당 정권 시기 경제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 덕분에 202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물가 급등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올해 3분기 인플레이션을 3.5%로 예측한 것은 이미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수치로, 이제는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부 부채는 평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채 발행 금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출, 특히 복지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예상된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당에 대한 반대표가 쏟아지는 자리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점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기존 양당 모두 수십 년간 지속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한 정당뿐 아니라 두 개의 ‘신생’ 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2018년 브렉시트 당으로 출발해 현재 크리스토퍼 하본(Christopher Harborne) 같은 재벌들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6명의 의원을 보유한 패라지(Farage)의 ‘영국개혁당’(Reform UK)은 의회 내 ‘우익 포퓰리즘’을 대표한다. 좌파 진영에서는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가 이끄는 녹색당이 2월 26일 고튼 앤 덴튼(Gorton and Denton) 보궐선거에서 '생태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워 승리하며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공약은 "노동자들을 초부유층과 대기업에 맞서게 한다"라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2026년 4월 3일). 이 과정에서 녹색당은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이끄는, 내분으로 얼룩진 ‘좌파 노동당 재출발(당신의 당)’ 진영의 지지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사실상 전 지구적 체제 위기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10일 완료된 잉글랜드 136개 지방의회 선거 개표 결과 영국개혁당은 총 1,453석을 확보했다. 반면 집권 노동당은 1,496석을 잃어 1,068석에 머물렀고, 영국 양당 체제의 다른 한 축인 보수당도 563석이 줄어 801석에 그쳤다. 녹색당은 550여 석을 확보했다. 전체 득표율도 개혁당이 압도적인 1위고, 뒤이어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순으로 나타났다. 개혁당은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도 96석 중 34석을 차지해 웨일스당(43석)에 이은 제2당으로 올라섰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17석을 확보해 스코틀랜드국민당(SNP·58석)에 이어 공동 제2당이 됐다. 개혁당이 웨일스·스코틀랜드 의회에 자력 입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역자>)

 

자본주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끝없는 호황과 불황의 순환을 반복하는 자본주의는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세계 경제가 보유한 막대한 물질적 부는, 그 부를 창출하는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 즉 세계 노동계급이 통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국경 구분에 관심이 없고, 환율 투기(환 투기)에도 관심이 없으며, 무책임한 대표들이 쫓겨날 염려 없이 몇 년간 자리를 지키는 의회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역 사회(아래)에서부터 정상(위)까지 직접 민주주의 기구를 만드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자본주의는 이윤율 위기를 주기적으로 겪는데, 부채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을 통한 파괴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즉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은 누구를 동원해서 싸우고, 죽고,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게 할까? ... 이 세상의 부유층은 아닐 것이다.

 

부유층(재벌) 한 명당 점점 더 가난해지는 수백만 명의 임금 노동자들이 있다.

 

• 2025년에도 가장 부유한 50명이 보유한 4,680억 파운드(947조 원)는 가장 가난한 50%가 보유한 4,660억 파운드를 계속해서 웃돌고 있다. (이퀄리티 트러스트)

• OECD 38개국 중 영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는 9위이다. 상위 20%가 국가 소득의 36%를 차지하고 국가 전체 부의 63%를 소유하지만, 하위 20%는 소득의 8%와 전체 부의 0.5%만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통계청)

• 70만 명이 넘는 대학 졸업생이 실업 상태에 놓여 실업 수당을 받고 있다(이는 현재 룩셈부르크 인구보다 많은 수치다). 한편, 매년 80만 명이 대학을 졸업한다. 정부는 “젊은 세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 2025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영국 내 16세에서 24세 인구 중 약 12.8%(89만 1천 명, 전 분기 대비 1만 1천 명 증가)가 교육, 취업, 훈련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NEET)였다.

 

1978년 영국의 실업자 수는 160만 명에 달해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5~6% 사이였다. 이후 실업률은 대체로 이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25년 4분기 영국의 ‘조정된’ 실업률은 5.2%로, 독일(3.9%)과 미국(4.5%)보다는 높았으나 프랑스(7.9%)보다는 낮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규칙대로 행동하는 한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다.

 

이제 많은 노동자가 이 체제의 지속적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는 데 지쳤다. 의사나 대학 강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조차 임금, 업무량, 취업 기회, 고용 불안 등을 이유로 파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일반 임금 노동자 처지에 놓인 것을 보여준다. 호텔 청소 노동자와 기타 직원, 철도 노동자, 쓰레기 수거 노동자 등 수많은 이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끝이 없다. 노동조합들은 파업 열기를 식히고 냉각기를 두어 노동자들을 서로 고립시키고 있으며, 노조별로, 업종별로, 심지어 사업장별로도 고립시키고 있다.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현재 상황만으로는 주식 시장이 붕괴하거나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정한 위협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위기를 거듭해 온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전쟁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순전한 경제 위기와 더불어, 그로 인해 더 악화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환경 위기다. 이는 기후 변화 그 이상의 문제이지만, 자본주의가 지구에 가하는 치명적인 파괴행위를 막기 위한 미약한 시도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지구의 필수 자원을 둘러싼 치열해지는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더 시급한 문제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오직 국제 노동계급만이 이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정치적 전망이 필요하다. 어느 정당에 투표해야 할지 알려주거나 반(反)파시스트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직면한 이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서 벗어날 길, 즉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의 세계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전망이다. 이 지구에 남아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전 세계 인류가 존엄과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너무 늦기 전에 이 길에 동참하자!

 

2026년 5월 6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Aurora) 75호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5-06/here-in-the-uk-there-s-no-escaping-the-capitalis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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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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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부르주아지가 미국을 국내외에서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이끌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당선이 가능했던 것은 바이든의 정책이 중국을 비롯한 여타 경제·제국주의 경쟁국에 비해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직면한 어려움과 쇠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정책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을 내세운 트럼프의 당선은 자본과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이라는 세계 자본주의 모순의 극적인 심화를 반영한다. 이는 또한, 생산력의 전반적인 과잉생산을 파괴할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과정을 더 가속할 것이다.

 

취임식 당시 기술 기업들은 트럼프의 지시에 따랐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디어 기업들은 MAGA 규범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분위기 전환"을 선언하는 데 열심이었다.[1] 미국 부르주아지는 트럼프와 MAGA가 미국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추세를 반전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의 예상은 맞았을까?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이미 몇 가지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약점은 대선 직후 치러진 특별 선거에서 트럼프의 선거 연합이 승리하지 못한 것과 대법원이 그의 초기 관세 계획을 무효로 한 데서 나타났다. 게다가 MAGA의 고립주의 기조는 예멘의 후티 반군,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 그리고 캐나다와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NATO와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팽창주의 의제로 빠르게 대체되었다.[2]

 

트럼프주의의 모순이 MAGA 운동의 지속성을 위협한다는 징후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에서 나타났다. 국경 순찰대의 "총사령관"이자 트윈 시티(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작전 책임자인 그렉 보비노(Greg Bovino)는 르네 굿(Renee Good)과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 국경 정책 총괄 책임자이자 트럼프 행정부 내 비교적 온건파였던 톰 호먼(Tom Homan)으로 교체되었다.[3] 3월 5일에는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노엠(Kristi Noem) 역시 트윈 시티 사건과 국토안보부(DHS) 예산의 사적 사용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인 후 해임되었다.[4] 이 사건은 처음에는 시카고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 발생했던 다른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이러한 살인 사건으로 트럼프의 인기는 더욱 떨어졌고, 그와 ICE(이민세관집행국)에 대한 항의 운동이 더 거세졌다. ICE는 텍사스 ICE 시설에서 루이스 구스타보 누녜스 카세레스(Luis Gustavo Núñez Cáceres)를 살해하는 등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살해 사건들의 여파와 상황은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미국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고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긴축 재정과 전쟁의 시기에 희생양을 만들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와 같은 인물들은 이상화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낙원을 약속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생활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생활비 상승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전쟁으로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리될 수 없다.[5] 트럼프가 최근 "우리는 이민자들과 전쟁 중이다"라고 발언한 것은 단순히 인종차별적인 선동이 아니라, 반(反)이민 정책과 전쟁 준비가 현재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6]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정책들은 역효과를 낳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종차별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이러한 정책들은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지속적인 부상에서 알 수 있듯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주의의 가장 큰 실패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했다. 마두로 체포에 고무된 듯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 작전’을 감행했다. 즉각적인 승리를 기대했던 미국은, 최근의 불안정한 휴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순식간에 중동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하고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위협까지 가했던 전쟁에 휘말렸다. 이란은 미국, 이스라엘, 걸프 지역 목표물에 대한 보복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해상 패권 신화를 깨고 석유 달러를 약화함으로써, 이란은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 분쟁에서 분명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란 전쟁은 처음부터 이미 대중적 지지가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언뜻 보기에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처럼 보일 수 있다. ICE(이민세관집행국)가 도시와 동네를 급습하여 미국 내 이민자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행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ICE 반대 시위는 단순히 '왕은 없다‘(No Kings) 운동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온건한 행진에만 그치지 않고, 시위대와 ICE 및 국토안보부(DHS) 요원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로도 특징지어진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미국 여러 도시의 주민들은 이주 노동자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 ICE 요원들과 대치했고, 종종 호루라기를 불거나 ICE 요원과 피해자들 사이에 직접 개입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정부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려는 이러한 미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최근 우리가 기억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노동계급의 투쟁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신호이다.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이러한 시위의 한계는 연방 정부의의 대립이 전적으로 강제 추방 문제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이란 전쟁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여파는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부르주아적 '왕은 없다’(No Kings) 시위는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반(反)트럼프 ‘왕은 없다’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운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반(反)트럼프 민주주의 운동이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점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트럼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함한 미국 지배계급 전체가 추구하는 전쟁으로 향하는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진정하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다.[7] 시위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오히려 시위는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 분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를 통제하고 부르주아지가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를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에 가깝다.

 

미국 부르주아지가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반발을 어떻게 이용하려 하는지 이해하려면,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이른바 ‘총파업’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파업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사람들의 불만을 표출하도록 조직한 좌파 집회였다. 시위 참가자들이 파업하지 않은 지하철을 타고 시위 현장에 갈 수 있었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노동조합들은 겉으로는 이 행사를 지지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합원들에게 파업을 촉구하지는 않았다.[8] 계급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였지만, 이 운동의 상당 부분은 사실 과거의 반(反)파시스트 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사회, 정치, 국제적 측면에서 점점 더 많은 실패와 명백한 무능력을 드러내면서, 미국 부르주아지는 이미 트럼프에게 정책 수정을 강요하거나,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그를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러한 초기 단계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통해 미국의 전쟁 기계에 직접 도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불만”을 민주주의·반(反)트럼프 구도로 계속해서 왜곡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를 ‘왕은 없다’(No Kings) 시위와 같은 무력한 배출구로 유도할 것이다. 미국에는 최근 이러한 사례가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투표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더 많은 미국 노동계급을 그들이 이길 수 없는 불공정한 게임으로 끌어들였다.[9] 이러한 부르주아의 승리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선거 정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환상과 코뮤니스트 좌파의 약점 때문에 발생했다. 시위대가 연방 요원들의 업무를 더 어렵게 하거나 전쟁을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와 명백히 결별하고 계급투쟁을 벌여야 한다.

 

미국의 이란 개입으로 인해 연료와 식료품 가격이 치솟고 노동 및 생활 여건이 현저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생활 및 노동 조건에 대한 추가적인 악화, 구매력 상실, 사회 복지 혜택 삭감 등 어떠한 추가적인 희생도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으로서, 파업과 거리 시위, 그리고 지역 투쟁의 확대와 전면화를 통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반격의 첫걸음이며,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과 재앙을 타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가 발전시켜야 할 혁명적 투쟁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지배적인 세력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현재의 흐름을 역전시키고 저항하는 데 있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에게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2026년 4월 10일

프레드(Fred)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전쟁인가 혁명인가」 33호

 

<주>


사진 : 픽사베이

[1] https://www.aei.org/op-eds/the-vibe-shift-hits-hollywood/

[2] 그린란드와 캐나다에 대한 트럼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발언은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화를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다.

[3] https://www.vox.com/politics/477197/tom-homan-cbp-dhs-ice-bovino-noem-trump-minneapolis.

[4] https://www.npr.org/2026/03/05/nx-s1-5667546/kristi-noem-homeland-security-fired.

[5] https://www.nbcnews.com/politics/donald-trump/trump-says-not-possible-us-pay-medicaid-medicare-daycare-re-fighting-w-rcna266381.

[6]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global-trends/trump-declares-us-is-at-war-in-terrifying-seven-word-statement-about-alien-enemies/articleshow/119124668.cms?from=mdr.

[7] https://www.cnn.com/2026/03/28/us/live-news/no-kings-protests-03-28-26.

[8] https://www.wsws.org/en/articles/2026/01/30/pzgh-j30.html.

[9] https://www.nbcnews.com/politics/elections/voter-registration-surged-during-blm-protests-study-finds-n1236331

; https://bsky.app/profile/vickyacab.bsky.social/post/3md7ogi6cmc2k.

「약탈의 옹호」(In Defense of Looting)의 저자인 아나키스트가 BLM 운동이 조 바이든 후보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처>
https://igcl.org/The-Wheels-are-Coming-off-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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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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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해고되었다. 이는 군수 산업을 제외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를 반영한다. IT(유비소프트, 오라클, 캡제미니, IBM), 자동차 산업(애스턴 마틴,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보쉬 및 굿이어와 같은 모든 하청업체), 유리 산업(아크, 베랄리아), 소매업(오샹, 제니퍼), 금융 서비스업(네덜란드의 ABN 암로, 암호화폐 업계의 블록), 물류(아마존, UPS, 지글러), 언론(라 트리뷴,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하이네켄, SEB, 에라스틸, 랑세스, 바스프)가 모두 영향받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생산 공정에 도입되면서, 특히 IT 분야에서 수만 명의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이 실직 상태에 놓였고, 단기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게다가 전 세계 공무원들의 감원도 더해질 전망이며, 트럼프와 머스크는 몇 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Milei)가 '전기톱' 긴축 정책으로 공무원들을 해고했던 사례를 앞장서서 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교육 제도 또한 앞으로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자본주의 전체를 강타하는 구조조정에서 어느 나라 경제도 벗어날 수 없다. 중국 역시 실업 통계가 불투명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독일은 오랫동안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던 산업 부문이 더는 중국에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기계, 화학, 자동차 등 가장 대표적인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대규모 감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과 오펠(Opel)뿐만 아니라 보쉬(Bosch), 아우모비오(Aumovio)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 산업 하청업체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바스프(BASF)는 행정 서비스의 일부를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이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며, 화학 기업 랑세스(Lanxess) 역시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유럽 산업의 중심에서 나온 이 모든 조치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결과다. 독일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주로 시간제이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숙련되고 생산성이 높고 보수가 좋았던 정규직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끝이 없다. 심지어 유엔조차 전 세계적으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해고는 각국 정부의 사회·보건 정책 긴축과 실업자에 대한 감시 강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려고 노동 시장 규제를 더 완화하여, 일일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하고, 휴가 분할 사용을 허용했다. 한편, 벨기에는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제한할 예정이어서, 일부 실업자들은 소득원을 자동으로 잃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변동 금리 학자금 대출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제도로 인해 최근 젊은 졸업생들이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젊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청년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며, 청년 6명 중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다. 청년 실업은 정부의 주요 현안으로 점점 더 부각하고 있으며, ‘35세의 저주’(나이에 따른 해고) 현상과 맞물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해체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모든 공격은 지난 15년여 동안 자본주의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경제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금융 위기(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및 국가 부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 그리고 세계 경제가 전쟁의 소용돌이(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등)로 끌려 들어가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세계정세, 급증하는 군사비 지출로 특징지어지는 전시 경제,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의 관세 인상,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역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그리고 점점 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환경 파괴 비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

 

반면, (군수 산업을 제외한) 세계 경제의 침체가 점점 더 뚜렷해짐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한계가 부각하고 있다. 만성적인 과잉생산, 국가 경제 관리 정책의 한계, 그리고 경쟁국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부르주아지를 점점 더 자멸적인 전략으로 내몰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모든 안전장치와 대책, 즉 시장 개방, 관세 제한, 공통 표준 개발, 조정된 통화 정책 시행과 같은 최소한의 공조 정책들을 모두 해체하고 있다. 과잉생산은 분명히 대규모 해고 사태를 초래하는 현재 진행 중인 위기의 원인이다. 보기를 들어, 중국은 자국의 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결국,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세계 시장과 경쟁국에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의 해체가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근시안적인 국가 정책의 가속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책을 둘러싼 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 심화, 비이성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책(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관세 전쟁과 같은), 그리고 자신들의 특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르주아 분파들의 이념적 맹목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영향을 완화할 만한 일관된 경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해체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상당히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잔혹하고 지속적인 위기의 심화는 매우 심각하다. 부르주아 정치에서 진지하고 포괄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들에서 보이는 파괴는 아마도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겠는가?

 

이러한 공격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기는, 아직 일자리를 가진 운 좋은 노동자들을 점점 더 잔혹하게 착취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냉혹하게 방치되는 경제 체제의 위기이다. 과잉생산은 모든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이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노동계급이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겪는 이 야만적인 현실은, 부르주아지가 그들에게 전쟁, 무자비한 착취, 그리고 비참함 외에는 어떤 희망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멀고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그러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임금 노동, 사유재산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 경제적 요구, 파업, 투쟁 조직을 위한 집회, 거리 시위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점차 자신들의 “힘”인 단결, 연대, 자기 조직화 필요성, 그리고 운동의 목표에 대한 성찰을 재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위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될 진정한 미래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지만, 투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노동계급의 동맹으로 남을 것이다.

 

2026년 4월 9일

HD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 : AP=연합뉴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801/inexorable-descent-crisis-reveals-historic-failure-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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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일으킨 이란과 중동 전역에서의 전쟁은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미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더 심화하고 있다. 이는 주로 전쟁 준비와 현재 진행 중인 전쟁, 특히 이란과 중동에서의 전쟁 때문이다.

 

치명적인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지옥 같은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최강대국 미국 자본주의를 필두로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으로 향하는 속도와 행보를 가속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푸틴, 이 두 사람만 보더라도, 각각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주의 강대국이 스스로 선택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시대의 상징이다. 트럼프의 헛소리는 히틀러가 생전에 쏟아냈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리고 대부분 불길한 그의 기행들은 그 부조리함에서 무솔리니를 능가한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무거운 의미와 비극을 담고 있다. 전쟁의 시기는 무르익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것이라도 국민들은 민족주의적이고 증오에 찬 수사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 강대국들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무력을 동원해 경제적, 정치적, 제국주의적 조건과 지시를 강요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의 자본과 부르주아지는 배가 침몰하기 전에 몇 안 되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심연을 향해 질주하는 이 행진을 멈출 수 있을까?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대응은 결코 평화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겪은 세계대전은 자본의 모순이 극에 달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는 자본, 생산력,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이러한 과잉 생산물을 흡수, 즉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 경쟁을 통한 시장 쟁탈전은 군사력, 제국주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화된 전쟁을 통한 대량 파괴로 이어진다. 전쟁의 논리에 맞서는 일은 평화라는 ‘이상’을 내세워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화란 전쟁 준비 과정의 한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교착 상태와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에는 그뿐만 아니라 다가올 전쟁, 즉 준비해야 할 전쟁, 그리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전쟁,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며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란, 우크라이나에서 피의 강을 흐르게 하는 바로 그 전쟁의 대가까지 치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급격히 둔화하고, 물가가 폭등하며, 해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1] 요컨대, 노동계급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대가까지 치러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봉쇄가 투기꾼, 즉 자본가들, 트럼프, 푸틴, 그들의 추종자들, 나아가 이란의 신정주의자들과 혁명수비대를 부유하게 하고, 그들이 가장 파렴치한 부패와 가장 추악한 사치에 빠질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한 실질적이고 잠재적으로 효과적인 저항은 오직 계급 사이의 물질적·역사적 대립,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을 착취하고 제국주의 세계 재분할의 이득을 챙기는 부르주아지와 지배계급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며 참호로 내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대립이라는 맥락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주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날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을 저지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인도에서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2], 이란 전쟁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에 미치는 물질적 결과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길이다. 임금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수십 년에 걸쳐 악화했고, 전쟁 발발을 앞두고 더 악화하고 있으며, 이란 전쟁의 결과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희생양 삼아 서로를 부추기고 있다

 

오늘의 구호: 전쟁을 위한 희생을 거부하자!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투쟁을 벌이자! 자본주의 국가와 민족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단결을 거부하자!

 

내일의 구호: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 타도!

 

2026년 4월 22일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혁명인가, 전쟁인가」 편집팀

 

<주>

 

사진 : 로이터=뉴스1

 

[1] 투기 거품이 겹겹이 쌓여 광범위한 부채와 연관된 금융 위기의 위험성은 말할 것도 없다. 사모 신용 거품이 가장 먼저 터질 수 있다. 불안해하는 채권자들은 이를 관리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석유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걸프 국가들은 유동성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 자산(주식, 채권, 국채)을 매각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으로 몰려드는 공황 상태가 발생하여 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는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2] 「혁명인가, 전쟁인가」 33호의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직면한 인도 노동계급 투쟁의 물결” 참조. https://igcl.org/Wave-of-Working-Class-Struggles-in

 

<출처>
https://igcl.org/How-to-Resist-and-Halt-the-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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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메이데이 전단]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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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전 세계적으로 무력 충돌의 흐름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의 분쟁중동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곳곳에서 전쟁이 통제 불가능하고 무질서하게 확산하고 있다모든 곳에서 혼돈이 지배하고 있으며미국도유럽도중국도국제기구도어떤 국가도어떤 부르주아 세력도 이를 끝낼 능력이 없다국제 지배계급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끊임없는 평화를 약속하지만 지난 역사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광범위한 전쟁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는 더는 인간 해방의 지평을 제시할 수 없으며야만성을 심화시키고 파괴를 더욱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따라서 전쟁광들이 스스로 전쟁을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평화는 제국주의 경쟁의 연속성 속에서 일시적인 멈춤에 지나지 않으며휴전은 오히려 미래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

 

이 파괴적인 악순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대안은 노동자의 계급투쟁뿐이다노동계급은 지켜야 할 조국이 없으며그들의 이익은 어떤 민족주의 진영이나 제국주의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다따라서 노동계급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규모로 조직되어야 한다자본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전쟁으로 전환하고이 체제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제국주의 전쟁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의 전망을 열어줄 수 있다.

 

일상화 된 자본 축적의 위기

 

지금은 전쟁이 일상화되었다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시기인 전후 호황이 끝난 이후로 계속 쌓여온 자본주의 자체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다일시적 호황이 끝난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과 이윤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국제적 차원의 생산성 향상은 점점 더 미약해지고 있으며인공지능이 이러한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다.

 

미국의 사례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최근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실물 경제는 침체해있는 반면기술 및 금융 부문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이는 실물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성장은 생산적 투자를 반영하는 부분도 있지만사실상 상품 생산에서 인간 노동의 비중을 더욱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술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로봇은 전례 없는 속도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으며로봇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구형 모델만 가진 경쟁업체들을 희생시키면서 로봇 소유주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고 있다로봇이 곳곳에 존재하게 되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과연 잉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대규모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평균 이윤율 하락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결국 성숙한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착취가 심화했음에도 불구하고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 가치는 기업이 투자한 자본금을 보상하기에 더는 충분하지 않다오늘날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이 가속화되고 있으며특히 생산 공정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데 있어 세계 선두 주자이자 완전 자동화 공장이 가장 많은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따라서 중국 제국주의 역시 곧 미래에 그 영향이 명백해질 퇴행적 경로를 걷게 될 것이다.

 

악화하는 체제적 위기가 국가 사이 경쟁 심화와 긴장 고조관세와 제재를 통한 경제 전쟁그리고 예전 세계대전 이전에 발생했던 국제 질서 붕괴를 떠올리게 하는 군사적 침략의 배경이 되고 있다충분한 이윤을 창출할 수 없게 된 국가들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필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경제적 목적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려면 전쟁이 필수적이며국내에서는 전쟁 수행 조건에 반발할 노동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긴축과 탄압이 필요하다.

 

격화되는 제국주의간 대립 상황

 

부채와 사회경제적 위기는 미국 정부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군국주의로 몰아가고 있다트럼프의 세계 무역 갈등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그리고 이란그린란드쿠바멕시코 등에 대한 위협은 쇠퇴하고 부패한호전적인 자본주의 선두 주자인 미국 제국주의 내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이러한 호전적인 분위기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 이러한 모든 요인은 더욱 광범위한 제국주의 열강사이 갈등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으며궁극적으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운명이다노동계급은 이미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이러한 참혹한 시나리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이 제국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인 상품과 자본의 과잉생산은 곧 인간의 과잉생산이기도 하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본주의를 보존하기 위한 제단에 바칠 희생자들 말이다가자지구서안지구레바논시리아이란의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화되는 대중들은 이 사실을 끔찍한 직접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이들은 모두에게 버림받고모두에게 배신당하고모두에게 고문당했을 뿐만 아니라악명 높은 반()역사적 민족주의의 덫에 갇혀버렸다.

 

자본주의의 전쟁성향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징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 질서의 붕괴이다유엔의 영향력 상실은 그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시기에 국제연맹이 무력화되었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트럼프에게 낡은 세계 질서의 이념과 규칙은 미국 권력 행사에 걸림돌일 뿐이다따라서 국제법’, ‘인권’, 제네바 협약, ‘민주주의 확산’ 등은 잊어버리라는 것이다어차피 그 낡은 이념은 닳아 없어졌다이민자 탄압과 베네수엘라·그린란드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트럼프의 실세 보좌관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는 이를 족쇄라고 불렀다그는 CNN 기자에게 세상은 철의 법칙즉 힘으로즉 권력으로 지배된다라고 설명했다양을 잡아먹겠다고 말하는 늑대가 솔직하다는 칭찬을 받는 격이다.

 

노동계급의 역할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맞서 유일한 탈출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뿐이다!

 

노동계급은 어느 편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전 세계 프롤레타리아는 민족주의의 유혹에 굴복하거나 중동이든 다른 곳이든 어느 한쪽편을 들어서는 안된다모든 국가모든 부르주아즉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좌파든 우파든포퓰리즘이든 진보적이든모두 전쟁광들이다문명과 야만선과 악침략자와 피해자를 대립시키는 위선적인 도덕의 허황된 수사에도 불구하고전쟁은 결국 경쟁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충돌에 지나지 않는다끊임없이 격화되는 이러한 갈등속에서언제나 인질로 잡히고억압하고 죽이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바로 착취당하는 이들이다!

 

전쟁을 끝내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역사는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임을 보여주었다. 1917년 러시아와 1918년 독일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것은 바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었다이러한 혁명 운동들은 정부에 휴전을 강요할 수 있었다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세계적 규모로 전복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걸림돌이 많다전쟁의 야만성에 직면하여 많은 이들이 저항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실제로 우리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우리를 혼란과 광범위한 파괴로 몰아넣을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은 종종 자본의 좌파 구호즉 왕은 없다’,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등을 내세우고 있다이러한 구호들은 전쟁의 원인이 특정 지도자트럼프의 광기이스라엘의 식민주의근본주의 유대인의 종교적 망상미국 제국주의 등에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겉으로 드러나는 급진주의 뒤에는즉 평화를 위해인민의 권리를 위해억압받는 자들을 위해라는 연설 뒤에는 언제나 어느 부르주아 진영을 선택해야 할지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숨어 있다미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대는 의회와의 협의 부족과 국제법 존중을 규탄해 왔는데마치 합법적 전쟁이 야만적이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나가며

 

자본 축적의 위기는 세계 재분배를 둘러싼 제국주의 갈등을 촉진하고 있다이러한 갈등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그렇기에 제국주의 전쟁은 단순히 호전적인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른 결과만이 아니다오히려 이들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표현한다각 국가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던 – 자신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든공개적으로 독재적이든평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든노골적으로 전쟁의 깃발을 들든모든 국가는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바로 제국주의 전쟁에서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희생시킨다는 점이다예외 없이 이들 국가는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모두 전쟁 범죄자이다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역시 예외일 수 없다평화와 민주주의라는 허구의 깃발에는 국가주의민족주의라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국주의 분쟁과 마찬가지로우리가 보여줘야 할 대응은 계급전쟁이다계급투쟁을 계속하라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의 힘이다다른 세상은 가능하고 필요하지만자본주의가 파괴된 후에야 전 세계 노동계급이 건설할 수 있다그것은 착취가 아닌전 세계적인 협력과 필요에 따른 생산그리고 노동계급 스스로가 통제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자본주의를 전복하자!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계급전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에서 침략자와 피해자는 없다모두가 침략자이며유일한 피해자는 세계노동자뿐이다.

국가 경제라는 명분으로 경제적사회적 희생을 거부하자.

전쟁에 참여하는 어떤 국가나 전선을 지지하는 모든 편파적 행위(민족주의종교애국주의용병주의인도주의사회주의평화주의 등)를 거부하자.

 

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NWBCW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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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메이데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희생은 없다

2026년 메이데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희생은 없다

- 전쟁과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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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성명>

 

 

자본주의 위기는 점점 더 악화하고, 세계대전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잉여 가치의 부족으로 인한 이 위기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국가 사이의 투쟁으로 확대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제국주의 위계질서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휘말려 있다. 유일한 "탈출구"는 새로운 이윤 창출 주기를 열기 위한 대규모 자본 파괴에 있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뿐이다

 

평화, 휴전, 또는 "평화 위원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전쟁은 우크라이나, 수단, 콩고, 남아시아, 가자 지구, 이란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쿠바를 지속해서 봉쇄하는 것과 같은 "경제 전쟁"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이에 만족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는 군사비 지출을 끊임없이 늘리고 끔찍한 속도로 재무장을 진행하면서 더 큰 학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윤 정체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야만적인 방향으로 체제를 몰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제국주의 동맹과 명확히 규정된 이해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이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이란의 편의 동맹을 해체하려 시도하며 중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중국을 자국의 제국주의 팽창 욕구에 대한 주요 위협으로 여겨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오바마, 바이든 행정부와 대체로 같은 전략적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누가 미국을 이끌든, 중국 경제와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제재, 그리고 중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은 초당적인 미래 전쟁 준비의 일환이다. 제국주의 경쟁의 압력 속에서 미·중 사이의 적대감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윤율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제거하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전쟁 광풍은 결국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준비의 일환이다.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러시아 등 중국의 동맹국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본격적인 전쟁을 위한 준비이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영향력이 꾸준히 확대되어 온 라틴 아메리카에서 트럼프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와 쿠바에 대한 위협 증가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전쟁은 러시아를 압박하고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나토의 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중국에 대한 전략의 소규모 사례로 볼 수 있다. 먼저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과 같은 약한 동맹들을 공격하고, 그다음에는 고립된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며,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자본가는 국가와 상관없이 자본 축적이라는 목표를 따르기 때문에, 계급으로서 그들은 지속적인 경기 침체보다는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극심한 긴축, 빈곤, 죽음, 그리고 강제 이주에 직면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계적 대량 학살을 향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모든 제국주의 전쟁과 야만 행위의 원인인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해결 불가능한) 이윤율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모든 국가는 재무장하며 "버터(복지) 대신 총(국방)"을 선택하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착취에서 얻을 것이 거의 없을 때, 미래의 이윤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총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 예산은 지난 5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했으며, 프랑스는 전쟁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년을 높였다.

 

노동자들은 사회가 붕괴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임금이 물가 상승이나 늘어난 노동량으로 인해 깎여 나갈 때,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을 때, 혹은 강제 퇴거를 당하고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될 때 우리는 매일 이를 절실히 느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른바 ‘조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같은 계급의 형제자매들을 죽이고 싸우라고 강요할 때이다. 당신의 조국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가? ‘우리나라’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 나라에서 노동력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노동력마저도 ‘조국’의 이익을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나라의 상황이다. 세계 자본가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하기 위해 단결해 있다.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이며, 프롤레타리아에게 지속적인 착취, 굴욕, 그리고 희생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는다. 우리 계급의 적(敵)은 죽어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임시방편으로라도 살리기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지지할 국가가 없다. 설령 그들이 "반(反)제국주의" 구호를 내세운다 해도,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은 결국 (전쟁의 양편 중에) 한쪽 자본주의 국가를 선택할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자본주의 국가는 오직 반동적인 역할만 수행하며 자국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자율적 활동은 "국가"(즉, 이윤)를 지키기 위해 억압당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내부적인 탄압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전쟁과 우크라이나, 이란, 가자지구, 중동에서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대응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전쟁을 위해 재무장하는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억압과 외국인 혐오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더 불안정한 노동자 계층을 만들어 내고, 이들을 잔혹하게 착취하고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만이 심화하는 빈곤, 지구 환경 파괴, 그리고 전면전으로 향하는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는 이미 자본주의의 전쟁 추진력과 충돌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더 안전한 작업 환경, 노동 시간 단축, 인력 충원 확대를 위해 투쟁할 때, 자본가와 국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여러 나라에서 정부는 국가 방위라는 명목으로 파업을 불법화하고 있으며, 전쟁 중인 자본주의 국가의 "국내 전선"에서는 노동자들이 전쟁 경제로 인해 비참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격은 직접적인 정치적 성격을 띤다. 노동계급의 방어적 투쟁이 공세적이고 정치적이며 반(反)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될 때, 비로소 제국주의 학살의 악순환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도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대량 학살은 봉기, 반란, 파업으로 종식되었다. 혁명적 패전주의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평의회를 조직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전쟁을 종식했을 때, 그리고 1918년 베를린과 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전쟁을 멈추게 했을 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국제적인 혁명 물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계급의 자발성과 독립적인 행동은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히 전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반(反)자본주의 운동에 정치적 방향과 혁명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화한 혁명 세력이 없다면, 모든 봉기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세력에 흡수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면,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계급 내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은 혁명 정당은 혁명적·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며, 노동계급이 도중에 멈추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 조직화한 혁명가들의 이론적, 실천적 준비가 계급의 투쟁 및 조직 능력과 결합할 때, 이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으며, 세계 코뮤니스트당을 건설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착취의 근본적인 조건은 여전히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국제 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지적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선동 전술이나 당 조직의 특정 과업 수행 전술은 24시간 안에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투쟁과 대중 선동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이라는, 일반적으로 변함없고 절대적인 원칙에 대한 견해를 24시간 안에, 아니 24개월 안에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원칙이 전혀 없는 사람뿐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 변화를 핑계 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투쟁 조직 건설과 정치 선동은 아무리 "침체하고 평화로운" 상황이더라도, 심지어 "혁명 정신이 쇠퇴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히려, 바로 이러한 시기와 상황에서 이러한 종류의 작업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폭발과 봉기의 시기에 조직을 결성하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 당은 언제든 즉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레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1901년)

 

이는 우리 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확고하게 자리 잡은 혁명당의 부재는 1918~1919년 독일 혁명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계급은 실제로 독일 제국을 전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회민주당이라는 또 다른 세력이 정치적 의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을 온건한 "사회주의 대중정당"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노동 운동의 온건 우파가 아니라 자본의 좌파 역할을 했다. 그들은 계급투쟁을 "법과 질서"로, 평의회를 의회로, 혁명을 개혁으로 대체했다. 혁명의 기회가 아직 열려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 정당의 부재는 바로 이런 결과를 낳는다. 사회민주당은 온갖 술수를 통해 노동계급 대다수를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한편, 바이마르 공화국의 핵심 세력으로서 초기 파시스트 자유 군단(Freikorps)에게 급진 세력에 대한 자유로운 탄압을 허용했다. 이 자유 군단의 유혈 테러는 이후 파시스트 독재 정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독일 혁명의 패배는 국제적인 혁명 물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 혁명의 고립은 결국 혁명의 정반대 모습, 즉 모든 반동 세력의 환호를 받으며 "사회주의"로 위장한 독재 국가 자본주의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할 것인가?

 

스탈린주의의 충격적인 경험은 막대한 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념적 선전 무기를 크게 강화했다. 20세기에 겪은 참혹한 패배는 우리 계급의 연대와 투쟁 정신을 약화했고, 그 결과 성공적인 방어 투쟁은 드물고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본의 지배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 정치가 뿌리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국제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정치 조직들은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기껏해야 제한적인 존재감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 계급의 심각한 취약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이자,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성과 혁명 정치의 극심한 취약성을 모두 인식하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혁명가들 사이의 정치적 견해 차이는 현실 문제들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논쟁과 무의미한 토론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무의미하고 방향 없는 비판과 다툼에 매몰되는 대신, 우리가 혁명가들 사이의 논쟁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그 삶을 통해 투쟁이 제기하는 정치적 문제들이 혁명가들 사이의 단결을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이 이론의 "하늘"에서 내려와 계급투쟁이라는 물질적 현실 속에서 검증되거나 반박될 수 있는 것은, (더는 산발적이고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대규모로 펼쳐지는) 구체적인 계급투쟁의 역동성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다.

 

현재 우리 계급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주의 원칙을 옹호하고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이들은 공동의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 계급투쟁은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전쟁 준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는 투쟁, 특히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사 사이에서 국제주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자본주의 전쟁에 맞서는 투쟁을 의제로 삼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국제주의를 기반으로 혁명가들을 결집하고 지역 투쟁에 개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 이 위원회들은 당을 대체하거나 당 건설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지만, 개별 조직의 역량을 뛰어넘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조직할 수 있다.

 

계급에 기반을 둔 입장을 명확히 표방하고, 사회민주주의(과거와 현재 모두)와 스탈린주의 반(反)혁명, 그리고 그 파생물인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를 배제하는 우리의 협력 기반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이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어떠한 민족 부르주아지도, ‘덜 나쁜 악’도,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국가도 지지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 재산, 화폐, 그리고 이윤 추구를 위한 생산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으로 대체되는 사회를 위하여!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맞서 투쟁하자!

● 노동계급의 자율적인 투쟁을 위하여,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 평의회의 결성을 위하여!

● 억압과 착취에 맞서,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우리는 이러한 점에 공감하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모든 이들이 각 지역에 이러한 위원회를 설립하거나 기존 위원회에 참가할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

 

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4-24/may-day-2026-no-sacrifices-for-this-system-against-war-and-all-form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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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5월 1일)은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코뮤니스트 혁명 만세!

노동절(5월 1일)은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코뮤니스트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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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중요한 것은 이재명 정권이 어떠한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더라도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므로 임시방편에 불과하거나, 누군가에게 위기를 떠넘기는 방법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이 이재명 정권 비판을 넘어 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국익'과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재명 정권은 윤석열처럼 세련되지 못한 폭압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고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 정책도 펴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의 개혁은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에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본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자본주의 착취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정책이다. 앞으로 '계급협조' 세력의 동조 아래 이러한 정책이 자리 잡으면 착취의 강도는 높아지고, 노동자들의 분열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정권의 탄생을 도운 진보당-민주노총 자주파는 노동자 운동과 자본가 정부 사이의 가교역할을 넘어 노동자 투쟁을 무장해제시키고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이들이 '내란 종식, 사회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자본가정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시적 연합을 넘어 이미 '계급협조' 노선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우리는 이들을 ‘자본의 좌파’로 규정한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과 계급투쟁의 미래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들 ‘자본의 좌파’와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노동자 운동 진영이 자본가정권에 협조하고 참여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은 분열되고 개별 자본과의 투쟁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현실을 직시하고, 노동계급의 영역(현장)에서 아래로부터의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

 

(2025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 )

 

 

노동절(메이데이)은 지난 수년간 자본주의 세계 전역에서 자본의 다양한 세력이 활개 치는 무대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인 계급투쟁에 뿌리를 둔 노동절을 지배계급과 자본의 좌파가 장악한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거짓 기치를 내걸고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적인 모습을 감추고 견딜만한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급진적인 구호를 내걸고 "붉은 깃발"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노예제 현실을 은폐하려 한다. 매년 5월 1일, 행진과 거리 시위라는 형태로 벌어지는 이 한심한 행사는 기만적인 가면을 쓰고 지배 이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노동절의 정치적·계급적 뿌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지우고, 반(反)자본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내용을 제거하여, 궁극적으로는 노동절이 원래 저항했던 바로 그 착취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만들려 한다.

 

자본주의 중심 국가에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은, 5월 1일 노동절 시위의 선두에 서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투쟁 전통의 대표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세력이 현실 정치 무대에서는 가장 반(反)노동자적 법률과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하면서 노동계급에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은 사실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물질적 역할, 즉 계급투쟁을 자본이 허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한하는 역할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본의 좌파 정치 기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 관계 내에 위치하고 그 제도를 옹호하는 야권 세력으로서 기능하며,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을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해롭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자본주의 주변부 국가에서 자본의 좌파는, 급진적인 기조를 취하며 파업권, 노동자 조직 결성권 등의 요구를 내세워 거리 장악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여주기식 급진주의는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시도이다.

 

실제로 계급투쟁의 발전에 따라 노동조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맞서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보루이자 요새가 되었다. 특히 주변부 국가들에서 나타난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과 그들이 노동조합 및 자본주의 국가와 벌인 급진적인 대립의 경험은 부르주아지와 그 모든 좌파·우파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계급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1917~1923년의 혁명 물결이 좌절된 후, 스탈린주의는 10월 혁명의 폐허와 피로 물든 코뮤니스트들의 시신 위에 권력을 공고히 했다. 10월 혁명을 일으켰던 수천 명의 코뮤니스트와 노동자들이 추방당하고, 투옥되고, 학살당했다.

 

독일혁명의 패배와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및 전위의 한 세대를 학살한 것은 세계혁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고, 패배의 길을 열었다. 부르주아지는 혁명의 살아있는 세력,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문을 억압하고 물리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위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코뮤니스트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살해, 그리고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기관들의 파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무기를 무력화시켰고, 세계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을 국가(애국)주의 깃발 아래 동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량 학살을 자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한때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투쟁의 날이었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부르주아지에 공포를 심어주었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자임하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힘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꺾이고 반(反)혁명이 승리하면서,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수많은 정치적 성과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그 이후로 부르주아지는 5월 1일의 혁명적, 계급적 의미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오염시키고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1920년대 후반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패배는 노동계급이 일시적으로 자본에 의해 패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反)혁명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다. 스탈린주의, 파시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적인 반(反)혁명의 도구로 기능했다.

 

1930년대, 제3 인터내셔널이 프롤레타리아 입장을 완전히 저버리고 러시아 국가 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에서, 오직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 분파만이 국제주의 원칙과 코뮤니스트 입장을 옹호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코뮤니스트 전통의 진정한 연속성은 자본의 좌파 흐름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좌파의 흐름에서 표현되었다.

 

혁명적 맑스주의의 역사적 계승자로서 코뮤니스트 좌파는 계급투쟁이라는 무적의 깃발과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이라는 전망을 지켜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를 영원히 패배시키고 코뮤니스트 혁명의 위협을 제거했다고 믿었다. 군사적 승리와 전쟁의 폐허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노동자의 학살 위에 세워진 상대적인 전후 번영에 도취한 자본주의는 역사적 위기의 종식과 자체 질서의 영속성을 선언했다.

 

이러한 환상은 지난 수십 년간 프롤레타리아트가 겪은 참담한 패배와 오랜 반(反)혁명 시기, 즉 스탈린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시즘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 가두었던 시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이 더는 독립적인 역사적 세력으로 무대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8년 5월은 이러한 환상을 깨뜨렸다.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대대적 파업과 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계급임을 증명했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역할을 은폐하기 위해 1968년 5월 총파업을 "학생 봉기"로 축소하려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분명히 학생 운동은 당시 사회 분위기의 일부였지만, 부르주아지를 뒤흔든 진정한 원동력은 학생들이 아니라 수백만 노동자의 대대적 파업이었다. 바로 이 대대적 파업이 계급투쟁의 부활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을 역사의 중심에 다시금 끌어올린 힘이었다.

 

이 새로운 계급투쟁의 물결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반(反)혁명 시대의 역사적 약점을 극복하고 독립적인 사회·정치 세력으로 다시금 무대에 복귀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68년 5월은 단지 일시적인 폭발이 아니라, 새로운 계급투쟁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 시대에는 노동과 자본의 모순이 다시 한번 공개적이고 확장되는 형태로 드러났다.

 

이러한 부활의 결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투쟁이 확산했다. 광범위한 파업, 대중 투쟁, 그리고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저항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과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급 이익을 수호하고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자본주의 질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현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종말을 선언했던 모든 이념에 대한 결정적인 대응이었다. 그러한 이념들은 노동계급을 자본에 “매수”되어 통합된 존재로 보거나, 아예 노동계급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혁명적 정치 조직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임무를 피상적인 사회학적 관찰로 축소하는 평의회주의, 모더니즘 등과 같이 무미건조하고 일탈적인 해석과 달리,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이론과 방법론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바로 이러한 이론적 연속성 덕분에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과제인 자본주의의 전복을 정치 투쟁의 중심에 둘 수 있었다.

 

“이것은 특정 프롤레타리아, 혹은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지금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역사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1]

 

동유럽 블록의 붕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의 내부 위기와 스탈린주의가 서유럽 블록과 경쟁할 수 없었던 한계의 산물이었다. 스탈린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자 노동계급에 대한 반(反)혁명의 도구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모순의 압력으로 무너졌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 부르주아지가 거대한 이념적 캠페인을 조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탈린주의는 노동자 혁명을 통해 붕괴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의 경쟁 속에서 붕괴했기에, 노동계급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은 더 강화되었고, 계급의식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부르주아지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유세계"가 "전체주의"를 이긴 승리로 포장했다.

 

이 이념적 전략의 목적은 명확했다. 모든 혁명적 노력,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모든 전망, 그리고 이 왜곡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모든 생각은 이미 실패할 운명이라는 것을 노동계급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적 캠페인을 통해 코뮤니즘의 역사적 가능성을 완전히 매장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맞서 싸운 것은 코뮤니스트 좌파였으며,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무너진 것은 코뮤니즘 자체가 아니라, 코뮤니즘의 가장 폭력적인 적(敵) 중 하나인 스탈린주의였다. 코뮤니즘은 결코 모스크바나 당 국가(독재) 체제의 국가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코뮤니즘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투쟁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남았다.

 

현 상황에서, 그리고 자본의 좌파가 계급투쟁 과정에 혼란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정체성 확립을 방해하는 파괴적인 역할을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코뮤니스트 좌파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전투적 코뮤니스트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성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정당과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한 노력은 이 과업의 필수 요소이다. 이 조직은 노동계급의 세계적 투쟁을 의식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필수적인 무기가 될 것이며,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조건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피와 오물, 그리고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자본주의는 전쟁, 위기, 비참함을 의미한다. 이 체제는 노동력 착취와 자본 사이의 무자비한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든 지금, 인류에게 파괴, 빈곤, 그리고 야만성만을 가져다주었다.

 

전쟁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부 논리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쟁을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시켰고, 전 세계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 경제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비용은 긴축, 대량 해고, 임금 삭감, 물가 상승, 그리고 착취의 심화를 통해 노동계급이 부담한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은 독립적인 사회 세력으로서 독자적인 계급투쟁을 벌여, 오직 자신의 역사적, 계급적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 임금 노예제, 착취, 실업, 해고, 빈곤, 물가 상승에 맞서는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겨냥하므로 노동계급에 해방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

 

오직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계급 전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는 코뮤니스트 좌파가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맞서 항상 추구해 온 관점이다.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의 야만성, 빈곤, 전쟁, 파괴를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계급이다. 역사상 그 어떤 계급도 이처럼 막중하고 보편적인 책임을 짊어진 적이 없다. 오늘날 인류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달려 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류를 완전한 파멸로 몰아넣기 전에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제시해 온 대안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코뮤니스트 혁명인가, 인류의 파멸인가!

 

2026년 4월 24일

국제주의자 목소리(IV)

 

<주>

 

1. 맑스, 「신성가족」, 제4장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labour-day-1-may-has-been-captured-by-the-bourgeoisieive-for-working-clas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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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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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거대한 묘지로 변해가고 있다. 몇 주 동안 중동은 다시 한번 화염과 유혈 사태에 휩싸였다. 가자지구 학살에 이어 이번에는 레바논과 이란에 이스라엘-미국의 폭격 세례가 쏟아졌고, 이란 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는 인접 국가들을 향해 로켓, 드론,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폭격 속에서, 모든 교전국의 제국주의 경쟁에 인질로 잡힌 민간인들은 죽음을 피하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잔해와 폐허 사이를 헤매고, 테헤란, 베이루트, 그리고 여러 도시의 거리 곳곳에 널린 시신들을 밟으며 지난다.

 

통제되지 않는 야만성...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수단 내전으로 인해 3년 동안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거의 1,4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최악의 세계 식량 위기를 촉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동안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50만~60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반화하고 확산하거나, 언제든 발발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결과는 죽음, 파괴, 그리고 황폐함뿐이다.

 

자국 영토에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들조차도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2017년 320억 유로에서 2030년 670억 유로 이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급격하고 지속적인 국방비 증가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전쟁 경제라는 암 덩어리는 보건, 교육, 문화 예산 삭감, 그리고 노동 현장의 군사화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은 지옥 같은 노동 환경, 인력 감축, 식량과 에너지 가격 폭등 속에서 임금 삭감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는 국가의 더 큰 이익과 평화를 위해 이러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 그리고 막다른 길

 

우리는 이 야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 세계는 환경을 존중하면서 전 인류에게 의식주와 돌봄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지식과 기술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 세력이 파괴로 내몰리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명령을 내리고 전 세계 노동계급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까?

 

지난 3월, 미국과 스페인에서는 '왕은 없다'와 '전쟁 반대'라는 구호 아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의 진심으로 분노한 사람들이 이 세상의 참혹함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함정에 빠졌다.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많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에 나서려는 많은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있다.

 

보기를 들어, ‘평화주의’라는 이념은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부드러운 선율로 왜곡한다. 마치 착취와 억압의 체제가 전쟁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평화주의 이념이 항상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었다. 그것은 ‘반대편’, ‘전쟁광’, ‘야만인’이 강요한 전쟁이라는 논리였다.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 ‘문명’,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징집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자산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있다. “행복, 번영, 평화를 가져다줄 자본주의의 한 형태... 하지만, 독재는 그것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1] 하지만, 현실에서는 민주주의 역시 야만적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베트남 전쟁의 네이팜탄, 알제리의 전기 고문… 이러한 만행은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저지른 범죄이다. 좌파든 우파든, 민주주의 국가든 권위주의 국가든,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학살, 고문, 추방, 투옥, 기아를 자행한다.

 

1914년 이후, 전쟁과 전쟁 준비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계급의 착취를 심화시켜야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 한 경제 강국이 다른 경제 강국들과 경쟁하는 상황,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립하는 상황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그리고 착취는 죽음과 비참함이다!

 

유일한 길은 계급투쟁이다

 

이 쇠퇴하는 흐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부르주아지가 요구하는 모든 희생에 맞서 싸우고 저항해야 한다. 착취당하는 계급은 투쟁을 통해서만, 지배계급에 맞서 유리한 힘의 균형을 만들 수 있다. 한 부문, 한 국가를 방어하는 경쟁과 분열에 맞서 계급 연대를 통해 힘의 균형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이 썩어가는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은 공격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은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국경을 넘어 공동의 투쟁을 벌이고, 국제적인 계급 연대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탄생한 서구 산업화한 국가들에서는 군국주의의 역동성이 폭발하고 있다. 그곳에서 노동계급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경험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의 함정과 '자유' 노동조합의 방해 공작에 맞서 싸워 왔다. 이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이 만든 끔찍한 생활 조건에 맞서 의식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통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나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이 쇠락하고 야만적인 체제에서 벗어날 대안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의 구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2026년 4월 13일

줄리(Julie)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사진 : 이란 적십자사/UPI

 

1. 프랑스어 기사 “평화주의는 전쟁을 준비한다”, 「Revolution Internationale」 195호(1990) 참조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798/how-can-we-chang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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