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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심화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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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해고되었다. 이는 군수 산업을 제외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를 반영한다. IT(유비소프트, 오라클, 캡제미니, IBM), 자동차 산업(애스턴 마틴,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보쉬 및 굿이어와 같은 모든 하청업체), 유리 산업(아크, 베랄리아), 소매업(오샹, 제니퍼), 금융 서비스업(네덜란드의 ABN 암로, 암호화폐 업계의 블록), 물류(아마존, UPS, 지글러), 언론(라 트리뷴,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하이네켄, SEB, 에라스틸, 랑세스, 바스프)가 모두 영향받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생산 공정에 도입되면서, 특히 IT 분야에서 수만 명의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이 실직 상태에 놓였고, 단기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게다가 전 세계 공무원들의 감원도 더해질 전망이며, 트럼프와 머스크는 몇 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Milei)가 '전기톱' 긴축 정책으로 공무원들을 해고했던 사례를 앞장서서 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교육 제도 또한 앞으로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자본주의 전체를 강타하는 구조조정에서 어느 나라 경제도 벗어날 수 없다. 중국 역시 실업 통계가 불투명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독일은 오랫동안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왔던 산업 부문이 더는 중국에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기계, 화학, 자동차 등 가장 대표적인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대규모 감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과 오펠(Opel)뿐만 아니라 보쉬(Bosch), 아우모비오(Aumovio)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 산업 하청업체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바스프(BASF)는 행정 서비스의 일부를 인도와 말레이시아로 이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며, 화학 기업 랑세스(Lanxess) 역시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유럽 산업의 중심에서 나온 이 모든 조치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결과다. 독일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주로 시간제이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숙련되고 생산성이 높고 보수가 좋았던 정규직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끝이 없다. 심지어 유엔조차 전 세계적으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해고는 각국 정부의 사회·보건 정책 긴축과 실업자에 대한 감시 강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려고 노동 시장 규제를 더 완화하여, 일일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연장하고, 휴가 분할 사용을 허용했다. 한편, 벨기에는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제한할 예정이어서, 일부 실업자들은 소득원을 자동으로 잃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변동 금리 학자금 대출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제도로 인해 최근 젊은 졸업생들이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젊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청년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며, 청년 6명 중 1명 이상이 실업 상태다. 청년 실업은 정부의 주요 현안으로 점점 더 부각하고 있으며, ‘35세의 저주’(나이에 따른 해고) 현상과 맞물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해체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모든 공격은 지난 15년여 동안 자본주의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경제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금융 위기(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및 국가 부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 그리고 세계 경제가 전쟁의 소용돌이(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등)로 끌려 들어가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세계정세, 급증하는 군사비 지출로 특징지어지는 전시 경제,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의 관세 인상,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역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그리고 점점 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환경 파괴 비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

 

반면, (군수 산업을 제외한) 세계 경제의 침체가 점점 더 뚜렷해짐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한계가 부각하고 있다. 만성적인 과잉생산, 국가 경제 관리 정책의 한계, 그리고 경쟁국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부르주아지를 점점 더 자멸적인 전략으로 내몰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모든 안전장치와 대책, 즉 시장 개방, 관세 제한, 공통 표준 개발, 조정된 통화 정책 시행과 같은 최소한의 공조 정책들을 모두 해체하고 있다. 과잉생산은 분명히 대규모 해고 사태를 초래하는 현재 진행 중인 위기의 원인이다. 보기를 들어, 중국은 자국의 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결국,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세계 시장과 경쟁국에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자본주의의 해체가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근시안적인 국가 정책의 가속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책을 둘러싼 각국 부르주아지의 분열 심화, 비이성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책(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관세 전쟁과 같은), 그리고 자신들의 특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르주아 분파들의 이념적 맹목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영향을 완화할 만한 일관된 경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해체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상당히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잔혹하고 지속적인 위기의 심화는 매우 심각하다. 부르주아 정치에서 진지하고 포괄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들에서 보이는 파괴는 아마도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겠는가?

 

이러한 공격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위기는, 아직 일자리를 가진 운 좋은 노동자들을 점점 더 잔혹하게 착취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냉혹하게 방치되는 경제 체제의 위기이다. 과잉생산은 모든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이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노동계급이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겪는 이 야만적인 현실은, 부르주아지가 그들에게 전쟁, 무자비한 착취, 그리고 비참함 외에는 어떤 희망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멀고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그러나 위기의 영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임금 노동, 사유재산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 경제적 요구, 파업, 투쟁 조직을 위한 집회, 거리 시위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점차 자신들의 “힘”인 단결, 연대, 자기 조직화 필요성, 그리고 운동의 목표에 대한 성찰을 재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위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맞이하게 될 진정한 미래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지만, 투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노동계급의 동맹으로 남을 것이다.

 

2026년 4월 9일

HD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 : AP=연합뉴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801/inexorable-descent-crisis-reveals-historic-failure-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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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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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일으킨 이란과 중동 전역에서의 전쟁은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미 심각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더 심화하고 있다. 이는 주로 전쟁 준비와 현재 진행 중인 전쟁, 특히 이란과 중동에서의 전쟁 때문이다.

 

치명적인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지옥 같은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최강대국 미국 자본주의를 필두로 세계 자본주의는 전쟁으로 향하는 속도와 행보를 가속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푸틴, 이 두 사람만 보더라도, 각각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주의 강대국이 스스로 선택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시대의 상징이다. 트럼프의 헛소리는 히틀러가 생전에 쏟아냈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리고 대부분 불길한 그의 기행들은 그 부조리함에서 무솔리니를 능가한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무거운 의미와 비극을 담고 있다. 전쟁의 시기는 무르익었다. 아무리 어리석은 것이라도 국민들은 민족주의적이고 증오에 찬 수사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 강대국들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무력을 동원해 경제적, 정치적, 제국주의적 조건과 지시를 강요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의 자본과 부르주아지는 배가 침몰하기 전에 몇 안 되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심연을 향해 질주하는 이 행진을 멈출 수 있을까?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대응은 결코 평화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겪은 세계대전은 자본의 모순이 극에 달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는 자본, 생산력,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이러한 과잉 생산물을 흡수, 즉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 경쟁을 통한 시장 쟁탈전은 군사력, 제국주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화된 전쟁을 통한 대량 파괴로 이어진다. 전쟁의 논리에 맞서는 일은 평화라는 ‘이상’을 내세워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화란 전쟁 준비 과정의 한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교착 상태와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에는 그뿐만 아니라 다가올 전쟁, 즉 준비해야 할 전쟁, 그리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전쟁,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며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란, 우크라이나에서 피의 강을 흐르게 하는 바로 그 전쟁의 대가까지 치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급격히 둔화하고, 물가가 폭등하며, 해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1] 요컨대, 노동계급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대가까지 치러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봉쇄가 투기꾼, 즉 자본가들, 트럼프, 푸틴, 그들의 추종자들, 나아가 이란의 신정주의자들과 혁명수비대를 부유하게 하고, 그들이 가장 파렴치한 부패와 가장 추악한 사치에 빠질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한 실질적이고 잠재적으로 효과적인 저항은 오직 계급 사이의 물질적·역사적 대립,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을 착취하고 제국주의 세계 재분할의 이득을 챙기는 부르주아지와 지배계급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며 참호로 내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대립이라는 맥락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주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날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을 저지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인도에서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2], 이란 전쟁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에 미치는 물질적 결과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길이다. 임금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수십 년에 걸쳐 악화했고, 전쟁 발발을 앞두고 더 악화하고 있으며, 이란 전쟁의 결과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희생양 삼아 서로를 부추기고 있다

 

오늘의 구호: 전쟁을 위한 희생을 거부하자!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투쟁을 벌이자! 자본주의 국가와 민족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단결을 거부하자!

 

내일의 구호: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 타도!

 

2026년 4월 22일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혁명인가, 전쟁인가」 편집팀

 

<주>

 

사진 : 로이터=뉴스1

 

[1] 투기 거품이 겹겹이 쌓여 광범위한 부채와 연관된 금융 위기의 위험성은 말할 것도 없다. 사모 신용 거품이 가장 먼저 터질 수 있다. 불안해하는 채권자들은 이를 관리하는 헤지펀드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석유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걸프 국가들은 유동성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 자산(주식, 채권, 국채)을 매각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으로 몰려드는 공황 상태가 발생하여 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는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2] 「혁명인가, 전쟁인가」 33호의 “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에 직면한 인도 노동계급 투쟁의 물결” 참조. https://igcl.org/Wave-of-Working-Class-Struggles-in

 

<출처>
https://igcl.org/How-to-Resist-and-Halt-the-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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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메이데이 전단]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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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전 세계적으로 무력 충돌의 흐름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의 분쟁중동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곳곳에서 전쟁이 통제 불가능하고 무질서하게 확산하고 있다모든 곳에서 혼돈이 지배하고 있으며미국도유럽도중국도국제기구도어떤 국가도어떤 부르주아 세력도 이를 끝낼 능력이 없다국제 지배계급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끊임없는 평화를 약속하지만 지난 역사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광범위한 전쟁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는 더는 인간 해방의 지평을 제시할 수 없으며야만성을 심화시키고 파괴를 더욱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따라서 전쟁광들이 스스로 전쟁을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평화는 제국주의 경쟁의 연속성 속에서 일시적인 멈춤에 지나지 않으며휴전은 오히려 미래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

 

이 파괴적인 악순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대안은 노동자의 계급투쟁뿐이다노동계급은 지켜야 할 조국이 없으며그들의 이익은 어떤 민족주의 진영이나 제국주의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다따라서 노동계급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규모로 조직되어야 한다자본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전쟁으로 전환하고이 체제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제국주의 전쟁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의 전망을 열어줄 수 있다.

 

일상화 된 자본 축적의 위기

 

지금은 전쟁이 일상화되었다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시기인 전후 호황이 끝난 이후로 계속 쌓여온 자본주의 자체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다일시적 호황이 끝난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과 이윤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국제적 차원의 생산성 향상은 점점 더 미약해지고 있으며인공지능이 이러한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다.

 

미국의 사례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최근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실물 경제는 침체해있는 반면기술 및 금융 부문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이는 실물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성장은 생산적 투자를 반영하는 부분도 있지만사실상 상품 생산에서 인간 노동의 비중을 더욱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술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로봇은 전례 없는 속도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으며로봇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구형 모델만 가진 경쟁업체들을 희생시키면서 로봇 소유주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고 있다로봇이 곳곳에 존재하게 되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과연 잉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대규모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평균 이윤율 하락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결국 성숙한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착취가 심화했음에도 불구하고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 가치는 기업이 투자한 자본금을 보상하기에 더는 충분하지 않다오늘날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이 가속화되고 있으며특히 생산 공정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데 있어 세계 선두 주자이자 완전 자동화 공장이 가장 많은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따라서 중국 제국주의 역시 곧 미래에 그 영향이 명백해질 퇴행적 경로를 걷게 될 것이다.

 

악화하는 체제적 위기가 국가 사이 경쟁 심화와 긴장 고조관세와 제재를 통한 경제 전쟁그리고 예전 세계대전 이전에 발생했던 국제 질서 붕괴를 떠올리게 하는 군사적 침략의 배경이 되고 있다충분한 이윤을 창출할 수 없게 된 국가들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필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경제적 목적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려면 전쟁이 필수적이며국내에서는 전쟁 수행 조건에 반발할 노동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긴축과 탄압이 필요하다.

 

격화되는 제국주의간 대립 상황

 

부채와 사회경제적 위기는 미국 정부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군국주의로 몰아가고 있다트럼프의 세계 무역 갈등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그리고 이란그린란드쿠바멕시코 등에 대한 위협은 쇠퇴하고 부패한호전적인 자본주의 선두 주자인 미국 제국주의 내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이러한 호전적인 분위기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 이러한 모든 요인은 더욱 광범위한 제국주의 열강사이 갈등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으며궁극적으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운명이다노동계급은 이미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이러한 참혹한 시나리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이 제국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인 상품과 자본의 과잉생산은 곧 인간의 과잉생산이기도 하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본주의를 보존하기 위한 제단에 바칠 희생자들 말이다가자지구서안지구레바논시리아이란의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화되는 대중들은 이 사실을 끔찍한 직접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이들은 모두에게 버림받고모두에게 배신당하고모두에게 고문당했을 뿐만 아니라악명 높은 반()역사적 민족주의의 덫에 갇혀버렸다.

 

자본주의의 전쟁성향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징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 질서의 붕괴이다유엔의 영향력 상실은 그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시기에 국제연맹이 무력화되었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트럼프에게 낡은 세계 질서의 이념과 규칙은 미국 권력 행사에 걸림돌일 뿐이다따라서 국제법’, ‘인권’, 제네바 협약, ‘민주주의 확산’ 등은 잊어버리라는 것이다어차피 그 낡은 이념은 닳아 없어졌다이민자 탄압과 베네수엘라·그린란드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트럼프의 실세 보좌관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는 이를 족쇄라고 불렀다그는 CNN 기자에게 세상은 철의 법칙즉 힘으로즉 권력으로 지배된다라고 설명했다양을 잡아먹겠다고 말하는 늑대가 솔직하다는 칭찬을 받는 격이다.

 

노동계급의 역할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맞서 유일한 탈출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뿐이다!

 

노동계급은 어느 편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전 세계 프롤레타리아는 민족주의의 유혹에 굴복하거나 중동이든 다른 곳이든 어느 한쪽편을 들어서는 안된다모든 국가모든 부르주아즉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좌파든 우파든포퓰리즘이든 진보적이든모두 전쟁광들이다문명과 야만선과 악침략자와 피해자를 대립시키는 위선적인 도덕의 허황된 수사에도 불구하고전쟁은 결국 경쟁하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충돌에 지나지 않는다끊임없이 격화되는 이러한 갈등속에서언제나 인질로 잡히고억압하고 죽이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바로 착취당하는 이들이다!

 

전쟁을 끝내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역사는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임을 보여주었다. 1917년 러시아와 1918년 독일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것은 바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었다이러한 혁명 운동들은 정부에 휴전을 강요할 수 있었다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세계적 규모로 전복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걸림돌이 많다전쟁의 야만성에 직면하여 많은 이들이 저항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실제로 우리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우리를 혼란과 광범위한 파괴로 몰아넣을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은 종종 자본의 좌파 구호즉 왕은 없다’,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등을 내세우고 있다이러한 구호들은 전쟁의 원인이 특정 지도자트럼프의 광기이스라엘의 식민주의근본주의 유대인의 종교적 망상미국 제국주의 등에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겉으로 드러나는 급진주의 뒤에는즉 평화를 위해인민의 권리를 위해억압받는 자들을 위해라는 연설 뒤에는 언제나 어느 부르주아 진영을 선택해야 할지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숨어 있다미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대는 의회와의 협의 부족과 국제법 존중을 규탄해 왔는데마치 합법적 전쟁이 야만적이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나가며

 

자본 축적의 위기는 세계 재분배를 둘러싼 제국주의 갈등을 촉진하고 있다이러한 갈등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그렇기에 제국주의 전쟁은 단순히 호전적인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른 결과만이 아니다오히려 이들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표현한다각 국가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던 – 자신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든공개적으로 독재적이든평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든노골적으로 전쟁의 깃발을 들든모든 국가는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바로 제국주의 전쟁에서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희생시킨다는 점이다예외 없이 이들 국가는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모두 전쟁 범죄자이다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역시 예외일 수 없다평화와 민주주의라는 허구의 깃발에는 국가주의민족주의라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국주의 분쟁과 마찬가지로우리가 보여줘야 할 대응은 계급전쟁이다계급투쟁을 계속하라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의 힘이다다른 세상은 가능하고 필요하지만자본주의가 파괴된 후에야 전 세계 노동계급이 건설할 수 있다그것은 착취가 아닌전 세계적인 협력과 필요에 따른 생산그리고 노동계급 스스로가 통제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자본주의를 전복하자!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계급전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에서 침략자와 피해자는 없다모두가 침략자이며유일한 피해자는 세계노동자뿐이다.

국가 경제라는 명분으로 경제적사회적 희생을 거부하자.

전쟁에 참여하는 어떤 국가나 전선을 지지하는 모든 편파적 행위(민족주의종교애국주의용병주의인도주의사회주의평화주의 등)를 거부하자.

 

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NWBCW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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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메이데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희생은 없다

2026년 메이데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희생은 없다

- 전쟁과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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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성명>

 

 

자본주의 위기는 점점 더 악화하고, 세계대전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잉여 가치의 부족으로 인한 이 위기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국가 사이의 투쟁으로 확대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제국주의 위계질서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휘말려 있다. 유일한 "탈출구"는 새로운 이윤 창출 주기를 열기 위한 대규모 자본 파괴에 있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뿐이다

 

평화, 휴전, 또는 "평화 위원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전쟁은 우크라이나, 수단, 콩고, 남아시아, 가자 지구, 이란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쿠바를 지속해서 봉쇄하는 것과 같은 "경제 전쟁"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이에 만족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는 군사비 지출을 끊임없이 늘리고 끔찍한 속도로 재무장을 진행하면서 더 큰 학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윤 정체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야만적인 방향으로 체제를 몰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제국주의 동맹과 명확히 규정된 이해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이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이란의 편의 동맹을 해체하려 시도하며 중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중국을 자국의 제국주의 팽창 욕구에 대한 주요 위협으로 여겨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오바마, 바이든 행정부와 대체로 같은 전략적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누가 미국을 이끌든, 중국 경제와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제재, 그리고 중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은 초당적인 미래 전쟁 준비의 일환이다. 제국주의 경쟁의 압력 속에서 미·중 사이의 적대감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윤율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제거하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전쟁 광풍은 결국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준비의 일환이다.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러시아 등 중국의 동맹국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본격적인 전쟁을 위한 준비이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영향력이 꾸준히 확대되어 온 라틴 아메리카에서 트럼프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와 쿠바에 대한 위협 증가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전쟁은 러시아를 압박하고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나토의 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중국에 대한 전략의 소규모 사례로 볼 수 있다. 먼저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과 같은 약한 동맹들을 공격하고, 그다음에는 고립된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며,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자본가는 국가와 상관없이 자본 축적이라는 목표를 따르기 때문에, 계급으로서 그들은 지속적인 경기 침체보다는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극심한 긴축, 빈곤, 죽음, 그리고 강제 이주에 직면하고 있으며, 또 다른 세계적 대량 학살을 향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모든 제국주의 전쟁과 야만 행위의 원인인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해결 불가능한) 이윤율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모든 국가는 재무장하며 "버터(복지) 대신 총(국방)"을 선택하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착취에서 얻을 것이 거의 없을 때, 미래의 이윤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총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 예산은 지난 5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했으며, 프랑스는 전쟁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년을 높였다.

 

노동자들은 사회가 붕괴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임금이 물가 상승이나 늘어난 노동량으로 인해 깎여 나갈 때,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을 때, 혹은 강제 퇴거를 당하고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될 때 우리는 매일 이를 절실히 느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른바 ‘조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같은 계급의 형제자매들을 죽이고 싸우라고 강요할 때이다. 당신의 조국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가? ‘우리나라’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 나라에서 노동력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노동력마저도 ‘조국’의 이익을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나라의 상황이다. 세계 자본가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착취하기 위해 단결해 있다.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이며, 프롤레타리아에게 지속적인 착취, 굴욕, 그리고 희생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는다. 우리 계급의 적(敵)은 죽어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임시방편으로라도 살리기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지지할 국가가 없다. 설령 그들이 "반(反)제국주의" 구호를 내세운다 해도,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은 결국 (전쟁의 양편 중에) 한쪽 자본주의 국가를 선택할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자본주의 국가는 오직 반동적인 역할만 수행하며 자국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자율적 활동은 "국가"(즉, 이윤)를 지키기 위해 억압당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내부적인 탄압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전쟁과 우크라이나, 이란, 가자지구, 중동에서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대응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전쟁을 위해 재무장하는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억압과 외국인 혐오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더 불안정한 노동자 계층을 만들어 내고, 이들을 잔혹하게 착취하고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만이 심화하는 빈곤, 지구 환경 파괴, 그리고 전면전으로 향하는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는 이미 자본주의의 전쟁 추진력과 충돌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더 안전한 작업 환경, 노동 시간 단축, 인력 충원 확대를 위해 투쟁할 때, 자본가와 국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여러 나라에서 정부는 국가 방위라는 명목으로 파업을 불법화하고 있으며, 전쟁 중인 자본주의 국가의 "국내 전선"에서는 노동자들이 전쟁 경제로 인해 비참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격은 직접적인 정치적 성격을 띤다. 노동계급의 방어적 투쟁이 공세적이고 정치적이며 반(反)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될 때, 비로소 제국주의 학살의 악순환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도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대량 학살은 봉기, 반란, 파업으로 종식되었다. 혁명적 패전주의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평의회를 조직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전쟁을 종식했을 때, 그리고 1918년 베를린과 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전쟁을 멈추게 했을 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국제적인 혁명 물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계급의 자발성과 독립적인 행동은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히 전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반(反)자본주의 운동에 정치적 방향과 혁명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화한 혁명 세력이 없다면, 모든 봉기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세력에 흡수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면,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계급 내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은 혁명 정당은 혁명적·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며, 노동계급이 도중에 멈추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 조직화한 혁명가들의 이론적, 실천적 준비가 계급의 투쟁 및 조직 능력과 결합할 때, 이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으며, 세계 코뮤니스트당을 건설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착취의 근본적인 조건은 여전히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국제 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지적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선동 전술이나 당 조직의 특정 과업 수행 전술은 24시간 안에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투쟁과 대중 선동을 위한 조직의 필요성이라는, 일반적으로 변함없고 절대적인 원칙에 대한 견해를 24시간 안에, 아니 24개월 안에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원칙이 전혀 없는 사람뿐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 변화를 핑계 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투쟁 조직 건설과 정치 선동은 아무리 "침체하고 평화로운" 상황이더라도, 심지어 "혁명 정신이 쇠퇴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히려, 바로 이러한 시기와 상황에서 이러한 종류의 작업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폭발과 봉기의 시기에 조직을 결성하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 당은 언제든 즉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레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1901년)

 

이는 우리 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확고하게 자리 잡은 혁명당의 부재는 1918~1919년 독일 혁명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계급은 실제로 독일 제국을 전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회민주당이라는 또 다른 세력이 정치적 의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을 온건한 "사회주의 대중정당"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노동 운동의 온건 우파가 아니라 자본의 좌파 역할을 했다. 그들은 계급투쟁을 "법과 질서"로, 평의회를 의회로, 혁명을 개혁으로 대체했다. 혁명의 기회가 아직 열려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 정당의 부재는 바로 이런 결과를 낳는다. 사회민주당은 온갖 술수를 통해 노동계급 대다수를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한편, 바이마르 공화국의 핵심 세력으로서 초기 파시스트 자유 군단(Freikorps)에게 급진 세력에 대한 자유로운 탄압을 허용했다. 이 자유 군단의 유혈 테러는 이후 파시스트 독재 정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독일 혁명의 패배는 국제적인 혁명 물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 혁명의 고립은 결국 혁명의 정반대 모습, 즉 모든 반동 세력의 환호를 받으며 "사회주의"로 위장한 독재 국가 자본주의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할 것인가?

 

스탈린주의의 충격적인 경험은 막대한 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념적 선전 무기를 크게 강화했다. 20세기에 겪은 참혹한 패배는 우리 계급의 연대와 투쟁 정신을 약화했고, 그 결과 성공적인 방어 투쟁은 드물고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본의 지배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 정치가 뿌리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국제주의 원칙을 옹호하는 정치 조직들은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기껏해야 제한적인 존재감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 계급의 심각한 취약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이자,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성과 혁명 정치의 극심한 취약성을 모두 인식하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혁명가들 사이의 정치적 견해 차이는 현실 문제들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논쟁과 무의미한 토론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무의미하고 방향 없는 비판과 다툼에 매몰되는 대신, 우리가 혁명가들 사이의 논쟁을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그 삶을 통해 투쟁이 제기하는 정치적 문제들이 혁명가들 사이의 단결을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이 이론의 "하늘"에서 내려와 계급투쟁이라는 물질적 현실 속에서 검증되거나 반박될 수 있는 것은, (더는 산발적이고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대규모로 펼쳐지는) 구체적인 계급투쟁의 역동성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다.

 

현재 우리 계급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주의 원칙을 옹호하고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이들은 공동의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 계급투쟁은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전쟁 준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는 투쟁, 특히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사 사이에서 국제주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자본주의 전쟁에 맞서는 투쟁을 의제로 삼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국제주의를 기반으로 혁명가들을 결집하고 지역 투쟁에 개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 이 위원회들은 당을 대체하거나 당 건설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지만, 개별 조직의 역량을 뛰어넘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조직할 수 있다.

 

계급에 기반을 둔 입장을 명확히 표방하고, 사회민주주의(과거와 현재 모두)와 스탈린주의 반(反)혁명, 그리고 그 파생물인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를 배제하는 우리의 협력 기반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이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어떠한 민족 부르주아지도, ‘덜 나쁜 악’도,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국가도 지지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 재산, 화폐, 그리고 이윤 추구를 위한 생산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으로 대체되는 사회를 위하여!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맞서 투쟁하자!

● 노동계급의 자율적인 투쟁을 위하여,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 평의회의 결성을 위하여!

● 억압과 착취에 맞서,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우리는 이러한 점에 공감하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모든 이들이 각 지역에 이러한 위원회를 설립하거나 기존 위원회에 참가할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

 

2026년 메이데이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4-24/may-day-2026-no-sacrifices-for-this-system-against-war-and-all-form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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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5월 1일)은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코뮤니스트 혁명 만세!

노동절(5월 1일)은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코뮤니스트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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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중요한 것은 이재명 정권이 어떠한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더라도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므로 임시방편에 불과하거나, 누군가에게 위기를 떠넘기는 방법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이 이재명 정권 비판을 넘어 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국익'과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재명 정권은 윤석열처럼 세련되지 못한 폭압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고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 정책도 펴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의 개혁은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에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본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자본주의 착취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정책이다. 앞으로 '계급협조' 세력의 동조 아래 이러한 정책이 자리 잡으면 착취의 강도는 높아지고, 노동자들의 분열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정권의 탄생을 도운 진보당-민주노총 자주파는 노동자 운동과 자본가 정부 사이의 가교역할을 넘어 노동자 투쟁을 무장해제시키고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이들이 '내란 종식, 사회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자본가정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시적 연합을 넘어 이미 '계급협조' 노선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우리는 이들을 ‘자본의 좌파’로 규정한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과 계급투쟁의 미래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들 ‘자본의 좌파’와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노동자 운동 진영이 자본가정권에 협조하고 참여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은 분열되고 개별 자본과의 투쟁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현실을 직시하고, 노동계급의 영역(현장)에서 아래로부터의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

 

(2025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전단,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 )

 

 

노동절(메이데이)은 지난 수년간 자본주의 세계 전역에서 자본의 다양한 세력이 활개 치는 무대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인 계급투쟁에 뿌리를 둔 노동절을 지배계급과 자본의 좌파가 장악한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거짓 기치를 내걸고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적인 모습을 감추고 견딜만한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급진적인 구호를 내걸고 "붉은 깃발"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노예제 현실을 은폐하려 한다. 매년 5월 1일, 행진과 거리 시위라는 형태로 벌어지는 이 한심한 행사는 기만적인 가면을 쓰고 지배 이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노동절의 정치적·계급적 뿌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지우고, 반(反)자본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내용을 제거하여, 궁극적으로는 노동절이 원래 저항했던 바로 그 착취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만들려 한다.

 

자본주의 중심 국가에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은, 5월 1일 노동절 시위의 선두에 서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투쟁 전통의 대표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세력이 현실 정치 무대에서는 가장 반(反)노동자적 법률과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하면서 노동계급에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은 사실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물질적 역할, 즉 계급투쟁을 자본이 허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한하는 역할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본의 좌파 정치 기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 관계 내에 위치하고 그 제도를 옹호하는 야권 세력으로서 기능하며,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을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해롭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자본주의 주변부 국가에서 자본의 좌파는, 급진적인 기조를 취하며 파업권, 노동자 조직 결성권 등의 요구를 내세워 거리 장악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여주기식 급진주의는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시도이다.

 

실제로 계급투쟁의 발전에 따라 노동조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맞서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보루이자 요새가 되었다. 특히 주변부 국가들에서 나타난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과 그들이 노동조합 및 자본주의 국가와 벌인 급진적인 대립의 경험은 부르주아지와 그 모든 좌파·우파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계급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1917~1923년의 혁명 물결이 좌절된 후, 스탈린주의는 10월 혁명의 폐허와 피로 물든 코뮤니스트들의 시신 위에 권력을 공고히 했다. 10월 혁명을 일으켰던 수천 명의 코뮤니스트와 노동자들이 추방당하고, 투옥되고, 학살당했다.

 

독일혁명의 패배와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및 전위의 한 세대를 학살한 것은 세계혁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고, 패배의 길을 열었다. 부르주아지는 혁명의 살아있는 세력,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문을 억압하고 물리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위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코뮤니스트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살해, 그리고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기관들의 파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무기를 무력화시켰고, 세계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을 국가(애국)주의 깃발 아래 동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량 학살을 자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한때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투쟁의 날이었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부르주아지에 공포를 심어주었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자임하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힘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꺾이고 반(反)혁명이 승리하면서,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수많은 정치적 성과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그 이후로 부르주아지는 5월 1일의 혁명적, 계급적 의미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오염시키고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1920년대 후반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패배는 노동계급이 일시적으로 자본에 의해 패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反)혁명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다. 스탈린주의, 파시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적인 반(反)혁명의 도구로 기능했다.

 

1930년대, 제3 인터내셔널이 프롤레타리아 입장을 완전히 저버리고 러시아 국가 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에서, 오직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 분파만이 국제주의 원칙과 코뮤니스트 입장을 옹호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코뮤니스트 전통의 진정한 연속성은 자본의 좌파 흐름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좌파의 흐름에서 표현되었다.

 

혁명적 맑스주의의 역사적 계승자로서 코뮤니스트 좌파는 계급투쟁이라는 무적의 깃발과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이라는 전망을 지켜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를 영원히 패배시키고 코뮤니스트 혁명의 위협을 제거했다고 믿었다. 군사적 승리와 전쟁의 폐허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노동자의 학살 위에 세워진 상대적인 전후 번영에 도취한 자본주의는 역사적 위기의 종식과 자체 질서의 영속성을 선언했다.

 

이러한 환상은 지난 수십 년간 프롤레타리아트가 겪은 참담한 패배와 오랜 반(反)혁명 시기, 즉 스탈린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시즘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 가두었던 시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이 더는 독립적인 역사적 세력으로 무대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8년 5월은 이러한 환상을 깨뜨렸다.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대대적 파업과 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계급임을 증명했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역할을 은폐하기 위해 1968년 5월 총파업을 "학생 봉기"로 축소하려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분명히 학생 운동은 당시 사회 분위기의 일부였지만, 부르주아지를 뒤흔든 진정한 원동력은 학생들이 아니라 수백만 노동자의 대대적 파업이었다. 바로 이 대대적 파업이 계급투쟁의 부활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을 역사의 중심에 다시금 끌어올린 힘이었다.

 

이 새로운 계급투쟁의 물결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반(反)혁명 시대의 역사적 약점을 극복하고 독립적인 사회·정치 세력으로 다시금 무대에 복귀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68년 5월은 단지 일시적인 폭발이 아니라, 새로운 계급투쟁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 시대에는 노동과 자본의 모순이 다시 한번 공개적이고 확장되는 형태로 드러났다.

 

이러한 부활의 결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투쟁이 확산했다. 광범위한 파업, 대중 투쟁, 그리고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저항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과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급 이익을 수호하고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자본주의 질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현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종말을 선언했던 모든 이념에 대한 결정적인 대응이었다. 그러한 이념들은 노동계급을 자본에 “매수”되어 통합된 존재로 보거나, 아예 노동계급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혁명적 정치 조직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임무를 피상적인 사회학적 관찰로 축소하는 평의회주의, 모더니즘 등과 같이 무미건조하고 일탈적인 해석과 달리,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이론과 방법론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바로 이러한 이론적 연속성 덕분에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과제인 자본주의의 전복을 정치 투쟁의 중심에 둘 수 있었다.

 

“이것은 특정 프롤레타리아, 혹은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지금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역사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1]

 

동유럽 블록의 붕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의 내부 위기와 스탈린주의가 서유럽 블록과 경쟁할 수 없었던 한계의 산물이었다. 스탈린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자 노동계급에 대한 반(反)혁명의 도구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모순의 압력으로 무너졌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 부르주아지가 거대한 이념적 캠페인을 조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탈린주의는 노동자 혁명을 통해 붕괴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의 경쟁 속에서 붕괴했기에, 노동계급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은 더 강화되었고, 계급의식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부르주아지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유세계"가 "전체주의"를 이긴 승리로 포장했다.

 

이 이념적 전략의 목적은 명확했다. 모든 혁명적 노력,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모든 전망, 그리고 이 왜곡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모든 생각은 이미 실패할 운명이라는 것을 노동계급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적 캠페인을 통해 코뮤니즘의 역사적 가능성을 완전히 매장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맞서 싸운 것은 코뮤니스트 좌파였으며,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무너진 것은 코뮤니즘 자체가 아니라, 코뮤니즘의 가장 폭력적인 적(敵) 중 하나인 스탈린주의였다. 코뮤니즘은 결코 모스크바나 당 국가(독재) 체제의 국가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코뮤니즘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투쟁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남았다.

 

현 상황에서, 그리고 자본의 좌파가 계급투쟁 과정에 혼란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정체성 확립을 방해하는 파괴적인 역할을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코뮤니스트 좌파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전투적 코뮤니스트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성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정당과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한 노력은 이 과업의 필수 요소이다. 이 조직은 노동계급의 세계적 투쟁을 의식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필수적인 무기가 될 것이며,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조건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피와 오물, 그리고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자본주의는 전쟁, 위기, 비참함을 의미한다. 이 체제는 노동력 착취와 자본 사이의 무자비한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든 지금, 인류에게 파괴, 빈곤, 그리고 야만성만을 가져다주었다.

 

전쟁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부 논리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쟁을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시켰고, 전 세계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 경제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비용은 긴축, 대량 해고, 임금 삭감, 물가 상승, 그리고 착취의 심화를 통해 노동계급이 부담한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은 독립적인 사회 세력으로서 독자적인 계급투쟁을 벌여, 오직 자신의 역사적, 계급적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 임금 노예제, 착취, 실업, 해고, 빈곤, 물가 상승에 맞서는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겨냥하므로 노동계급에 해방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

 

오직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계급 전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는 코뮤니스트 좌파가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맞서 항상 추구해 온 관점이다.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의 야만성, 빈곤, 전쟁, 파괴를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계급이다. 역사상 그 어떤 계급도 이처럼 막중하고 보편적인 책임을 짊어진 적이 없다. 오늘날 인류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달려 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류를 완전한 파멸로 몰아넣기 전에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제시해 온 대안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코뮤니스트 혁명인가, 인류의 파멸인가!

 

2026년 4월 24일

국제주의자 목소리(IV)

 

<주>

 

1. 맑스, 「신성가족」, 제4장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labour-day-1-may-has-been-captured-by-the-bourgeoisieive-for-working-clas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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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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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거대한 묘지로 변해가고 있다. 몇 주 동안 중동은 다시 한번 화염과 유혈 사태에 휩싸였다. 가자지구 학살에 이어 이번에는 레바논과 이란에 이스라엘-미국의 폭격 세례가 쏟아졌고, 이란 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는 인접 국가들을 향해 로켓, 드론,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폭격 속에서, 모든 교전국의 제국주의 경쟁에 인질로 잡힌 민간인들은 죽음을 피하려 필사적으로 애쓰며, 잔해와 폐허 사이를 헤매고, 테헤란, 베이루트, 그리고 여러 도시의 거리 곳곳에 널린 시신들을 밟으며 지난다.

 

통제되지 않는 야만성...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수단 내전으로 인해 3년 동안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거의 1,4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최악의 세계 식량 위기를 촉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동안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50만~60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반화하고 확산하거나, 언제든 발발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결과는 죽음, 파괴, 그리고 황폐함뿐이다.

 

자국 영토에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들조차도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2017년 320억 유로에서 2030년 670억 유로 이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급격하고 지속적인 국방비 증가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전쟁 경제라는 암 덩어리는 보건, 교육, 문화 예산 삭감, 그리고 노동 현장의 군사화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은 지옥 같은 노동 환경, 인력 감축, 식량과 에너지 가격 폭등 속에서 임금 삭감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는 국가의 더 큰 이익과 평화를 위해 이러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 그리고 막다른 길

 

우리는 이 야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 세계는 환경을 존중하면서 전 인류에게 의식주와 돌봄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지식과 기술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 세력이 파괴로 내몰리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명령을 내리고 전 세계 노동계급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까?

 

지난 3월, 미국과 스페인에서는 '왕은 없다'와 '전쟁 반대'라는 구호 아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의 진심으로 분노한 사람들이 이 세상의 참혹함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함정에 빠졌다.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많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에 나서려는 많은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있다.

 

보기를 들어, ‘평화주의’라는 이념은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부드러운 선율로 왜곡한다. 마치 착취와 억압의 체제가 전쟁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평화주의 이념이 항상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었다. 그것은 ‘반대편’, ‘전쟁광’, ‘야만인’이 강요한 전쟁이라는 논리였다.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 ‘문명’,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징집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자산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있다. “행복, 번영, 평화를 가져다줄 자본주의의 한 형태... 하지만, 독재는 그것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1] 하지만, 현실에서는 민주주의 역시 야만적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베트남 전쟁의 네이팜탄, 알제리의 전기 고문… 이러한 만행은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저지른 범죄이다. 좌파든 우파든, 민주주의 국가든 권위주의 국가든,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학살, 고문, 추방, 투옥, 기아를 자행한다.

 

1914년 이후, 전쟁과 전쟁 준비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계급의 착취를 심화시켜야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 한 경제 강국이 다른 경제 강국들과 경쟁하는 상황,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립하는 상황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그리고 착취는 죽음과 비참함이다!

 

유일한 길은 계급투쟁이다

 

이 쇠퇴하는 흐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부르주아지가 요구하는 모든 희생에 맞서 싸우고 저항해야 한다. 착취당하는 계급은 투쟁을 통해서만, 지배계급에 맞서 유리한 힘의 균형을 만들 수 있다. 한 부문, 한 국가를 방어하는 경쟁과 분열에 맞서 계급 연대를 통해 힘의 균형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이 썩어가는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은 공격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은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국경을 넘어 공동의 투쟁을 벌이고, 국제적인 계급 연대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탄생한 서구 산업화한 국가들에서는 군국주의의 역동성이 폭발하고 있다. 그곳에서 노동계급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경험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의 함정과 '자유' 노동조합의 방해 공작에 맞서 싸워 왔다. 이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이 만든 끔찍한 생활 조건에 맞서 의식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통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나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이 쇠락하고 야만적인 체제에서 벗어날 대안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의 구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2026년 4월 13일

줄리(Julie)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사진 : 이란 적십자사/UPI

 

1. 프랑스어 기사 “평화주의는 전쟁을 준비한다”, 「Revolution Internationale」 195호(1990) 참조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798/how-can-we-chang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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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대규모 파업: 인도와 아이티

두 개의 대규모 파업: 인도와 아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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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상 반대 시위와 노동계급의 분노에 대한 후속 분석

 

최근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시위는 연료비 상승이 농민, 운전자 및 다른 부문을 어떻게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두 가지 투쟁이 있다. 바로 뉴델리 인근 산업 단지의 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와 아이티 섬유 노동자들의 시위이다.

 

이 두 사례는 매우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 인도는 급성장하는 거대 산업국이며, 거대한 공장, 대규모 이주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불안정한 치안, 갱단 폭력, 그리고 저임금 수출 생산 의존도가 특징이다. 그러나 이 두 투쟁은 공통된 형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임금, 계약, 지역, 법적 지위, 성별, 이주 상태,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 등으로 노동자들을 나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또한 이러한 분리된 집단들을 정기적으로 공통된 압력 아래 몰아넣기도 한다. 물가 상승, 연료비 상승, 식료품 가격 급등, 노동 불안정은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바로 생존 비용이 임금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인도와 아이티에서 발생한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투쟁들은 세계적인 위기가 어떻게 계급적 압력으로 나타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인도: 노이다(Noida)와 뉴델리(New Delhi) 인근 산업 단지

 

삼성 공장이 위치한 노이다 산업 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 노동 착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최저임금 인상, 8시간 노동제, 그리고 악화하는 노동 환경으로부터의 보호였다.

 

4월 13일, 시위는 격렬해졌다. 충돌, 방화, 차량 공격까지 발생했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무시당하면, 투쟁은 단순한 청원이나 형식적인 시위를 넘어설 수 있다. 분노가 쌓이는 이유는 문제가 단순히 악덕 사장이나 지역적인 실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개 과정은 노동 갈등 자체에 내재해 있다.

 

이후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정부는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이는 일종의 양보였다. 시위가 효과를 발휘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최저임금 인상은 대규모 시위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노이다의 노동자들은 이주 노동 제도, 하청, 불균등한 노동법 집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법은 국가가 현대화로 포장했지만, 현실에서 많은 노동자는 다른 것을 경험했다. 더 큰 불안, 해고 요건 완화, 파업에 대한 더욱 엄격한 제한, 그리고 법적 약속과 현실 사이의 격차 확대였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국가는 효율성과 형식적인 권리라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생산은 여전히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에 의존하며, 종종 노동자와 회사 사이에 중재자가 개입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서류상으로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개혁조차도 더 큰 통제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노이다 시위는 또한 노동계급이 단지 잘못된 생각이나 허황된 믿음 때문에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계급은 물질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자본은 공장, 법, 고용 과정, 공급망, 그리고 경찰의 대응까지 통제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수년 동안 같은 체제 아래에서 함께 행동하지 않고 살다가, 물가 상승과 노동 조건 악화로 일상생활이 견딜 수 없게 되면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다.

 

아이티: 섬유 노동자와 생존 비용

 

아이티의 시위는 같은 모순을 더 날카롭고 빈곤한 형태로 보여준다.

 

4월 20일,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에서 수천 명의 섬유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에 3,000 구르드(gourdes)의 최저임금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현재 그들의 임금은 685 구르드인데, 이는 가장 흔한 연료인 휘발유 1갤런 가격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수많은 연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는 임금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위대는 또한 주거, 교통, 교육, 그리고 생필품에 대한 지원도 요구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단순히 임금 인상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삶의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외치고 있었다.

 

아이티의 섬유 산업은 수출 생산을 목표로 하는 자유 무역 지대 모델에 따라 운영된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노동자들은 남반구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 환경 중 하나에 속하면서도 세계 시장을 위해 생산한다, 그들의 임금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낮게 유지된다. 하지만 연료와 식품 가격이 오르면 이러한 모델 전체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은 또한 불안정한 치안 상황과 국가 권력과 무장 갱단 사이의 유착 관계를 규탄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아이티에서 계급투쟁은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시민 사회 환경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갱단의 영향력, 국가의 취약성, 공포, 그리고 경제적 고통이 결합한 광범위한 사회 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이러한 배경은 아이티 운동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임금을 위한 투쟁이자, 사회적 존재 조건 자체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자본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저임금, 불안정한 치안, 그리고 정치적 침묵이 서로를 강화하는 사회 질서 전체와 싸우고 있다.

 

전쟁, 위기, 그리고 일상생활의 압력으로 돌아옴

 

이 두 가지 투쟁은 개별 국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의 서로 연결된 순간들이다. 전쟁은 단순히 미사일과 군대의 충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가 상승, 공급 위기, 재정 압박, 비상조치, 그리고 더 가혹한 조건에서 노동력을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동 전쟁은 에너지 가격을 올리고 운송로를 마비시켰다. 이는 결국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의 연료비, 식량 가격, 그리고 노동 쟁의에 반영된다.

 

그래서 인도와 아이티의 노동자들은 단지 지역적인 부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과정에도 반응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쟁과 제재는 계급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상생활에 다시금 영향을 미친다. 석유 경로, 해상 운송로, 전략적 경쟁을 둘러싼 일들이 결국 주방, 버스, 임대료, 공장 구내식당, 미납 청구서에 반영된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의식적이고 투쟁적인 세력들이 제국주의가 현대 계급투쟁의 세계적 조건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노동계급은 단지 지역 자본가들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노동, 물가, 무역, 군사화, 위기가 국제적으로 조직된 세계 체제와 맞서 싸우고 있다. 동시에 각국의 자본과 국가 블록들은 지역 전쟁을 벌이며, 쇠퇴하는 제국주의 강대국인 미국과 떠오르는 제국주의 강대국인 중국 사이의 제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인류 파괴에 대한 이러한 위협은 오직 세계 노동계급만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압력, 다른 형태

 

두 파업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인도의 투쟁은 세계 생산, 특히 전자, 자동차 부품 및 기타 제조업 부문과 밀접하게 연결된 거대한 산업 단지에서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지역 불평등, 하청, 그리고 노동 보호를 약화하는 새로운 노동 규정에 직면했다. 정부는 여전히 양보와 질서 유지를 통해 대응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티의 투쟁은 훨씬 더 취약한 환경에서 벌어졌다. 문제는 저임금뿐 아니라 불안정한 치안과 경제 붕괴에 시달리는 도시에서 생존하는 것이었다. 아이티에서는 수출 모델이 매우 저렴한 노동력에 더 노골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양보 여지도 훨씬 적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압력을 보편화하지만, 모든 곳에서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 곳에서는 산업 현대화 과정에서 임금 투쟁이 벌어졌고, 다른 곳에서는 붕괴하는 사회 질서 속에서 기아 수준의 임금에 맞서는 직접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투쟁들은 조직화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러한 운동들은 조직화 문제도 제기한다.

 

노동조합이나 유사한 단체들은 이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때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로서 노동자들이 방어적 투쟁을 조직화하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도 있다. 때로는 주로 안전한 경로 안에서 노동자의 분노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질문은 누가 투쟁을 통제하는지, 의사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운동이 정해진 법적 한계를 넘어 확장되는지 여부이다.

 

인도와 아이티 모두에서 첫 투쟁은 방어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그리고 물가 상승으로부터의 구제를 요구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투쟁은 방어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고립되거나 지역적이거나 노조가 엄격히 관리한다면 흡수될 수 있다. 한 지역이나 한 부문의 임금 인상은 다른 지역 노동자들의 상황을 바꾸지 않고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 노동 시장은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적이고 국제적이다. 그래서 확장이 중요하다. 산업 부문을 넘어, 법적 범주를 넘어, 이주 노동자와 시민-정주 노동자를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인도처럼 주 경계를 넘어서는 확장이 필요하다.

 

노동자 투쟁의 가장 발전된 형태는 투쟁이 없는 상황, 즉 노동자들이 아무런 힘을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상설 사무실이 아니다. 진정한 발전은 대중 집회, 직접 통제되는 위원회, 선출 및 소환 가능한 대의원, 투쟁 자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형태들은 오직 투쟁 속에서만 존재하며, 투쟁 속에서 사라지다가, 혁명 직전 상태와 같이 투쟁이 영구화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단계는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방어적 투쟁으로는 제한적인 목표조차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념적 걸림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이 행동할 때조차도 빈 들판 위에서 걷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환상, 지도자에 대한 신뢰, 국가에 대한 신뢰, 노동자 집단 사이의 경쟁, 합법주의, 그리고 두려움은 모두 독립적인 행동을 약화한다. 인도에서는 지역, 연방 주, 사회적 지위, 그리고 노동 체제에 따른 분열이 노동자 집단을 고립시킬 수 있다. 아이티에서는 불안정한 치안과 사회 붕괴가 집단 조직화를 훨씬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악화하는 상황이 자동으로 단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쇠퇴가 그 자체로 혁명적 의식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단지 노동자들이 분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뿐이다.

 

그래서 이론은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첫 번째 잘못된 생각은 고통만으로도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개혁이나 일시적인 개선으로 착취가 제거된다는 것이다.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양보를 허용하면서도 여전히 지배력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1929년처럼 효과적인 공동 투쟁을 일으키지 못한 채 노동자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최종 결론

 

인도와 아이티의 파업은 하나의 세계적 과정의 일부이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를 보여준다.

 

두 투쟁 모두 물가 상승, 연료비 상승, 임금 압력 등을 통해 세계적 위기가 일상생활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열시키지만, 동시에 주기적으로 서로 다른 부문을 공통의 압력 아래 놓이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전쟁과 위기가 노동자 투쟁의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을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두 투쟁은 고통에서 단결로 이어지는 자동적인 경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방어적으로 투쟁을 시작한다. 그들은 임금, 노동 시간, 교통, 식량, 주거,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싸운다. 이러한 투쟁이 지역적이고 제한적인 것에 그칠지, 아니면 더 넓고 자율적인 계급 조직으로 발전할지는 투쟁의 확장, 자기 조직화, 그리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이념에 대한 투쟁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핵심 교훈은 간단하다. 제국주의 위기의 사회적 영향은 점점 더 일반화하고 있지만, 노동계급의 대응은 여전히 불균형하다. 바로 이 모순이 현재를 규정짓는다. 압력은 보편화하고 있다. 계급의식을 가진 소수 노동자 조직처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중 조직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6년 4월 21일

프레도 코르보(fredocorvo)

 

<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4/21/two-mass-strikes-india-and-haiti/

 

 

<참고할 글>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인도의 노동자 봉기

https://blog.jinbo.net/iscralee/840

 

노이다(Noida) 파업에 관하여

https://blog.jinbo.net/iscralee/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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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노이다(Noida) 파업에 관하여

노이다(Noida) 파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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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인도 노이다(Noida)에서 약 4만에서 6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노동계급이 보여준 압도적인 힘의 발현은 산업 단지 전체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의 혹독한 교대 근무와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의 저임금이라는 참담한 현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며 일제히 작업장을 떠났다. 그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저 임금인 2만 루피를 요구하며, 자본가들이 제시한 고작 350루피 인상이라는 모욕적이고 오만한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러한 대규모 집단행동의 위력은 자본가들과 주 정부 모두에게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하나로 뭉쳐 행동할 때, 이윤 추구 체제 전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달았다. 노동자들을 달래거나 더 이상의 착취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었던 정부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잔혹한 탄압에 나섰다. 수백 명의 중무장한 경찰과 보안 요원이 거리로 투입되었다. 그들은 곤봉과 최루가스로 시위대를 공격하며, 사실상 산업 단지를 군사 봉쇄 상태로 만들었다. 경찰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노동자들은 모이거나, 발언하거나,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가 어려워졌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구금되었고, 여러 지역이 철저히 봉쇄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대의에 대한 배신은 외부 탄압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기성 노동조합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당면한 요구를 사실상 외면했다. 시위대의 규모가 거의 6만 명에 달해 경찰이 처음에는 당황하며 후퇴할 정도였을 때, 노동조합 지도부는 투쟁을 확대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방향으로 개입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행동을 중단하고, 소극적인 시위로 축소하며, 모든 주도권을 포기하고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허가와 지시를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순간을 통제된 노조 관료제 안으로 돌려놓아, 그 파괴적인 잠재력을 무력화시켰다.

 

이러한 대응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위한 도구 기능을 상실하고 자본의 중재자로 전락한 데서 비롯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들의 역할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규제하고, 사용자 측과 미약한 타협을 중재하며, 갈등이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독립적인 대중 운동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노동자들의 진정한 계급적 이익을 지지하기보다는 오히려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투쟁은 노이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구르가온(Gurgaon), 파리다바드(Faridabad), 파니파트(Panipat), 가자바드(Ghaziabad)를 포함한 국가수도지역(NCR) 여러 산업 중심지에서 노동자들은 이미 임금과 노동 조건을 둘러싸고 지속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초기 투쟁들은 대체로 국지적이고 분산된 양상을 띠었지만, 이 지역 전반에 걸쳐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열악한 노동 체제가 공존한다는 공통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더 광범위한 지역 운동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식민지 시대의 144조를 계승한 인도국민보호법(Bharatiya Nagarik Suraksha Sanhita) 163조가 여러 지역에 적용되어 공공 집회를 제한하고 노동자들이 모여 조직적으로 집단행동을 지속하는 것을 막았다. 체포와 경찰력 배치와 함께 이러한 조치들은 노동자들의 시위 확대를 크게 억제하여 수도권 전역에 걸친 더 광범위하고 통일된 투쟁으로 발전할 여지를 없앴다.

 

경찰 차량 200여 대를 동원하고 공장, 지하철역 및 주변 지역마다 평균 4명의 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되었음에도, 기존 파업이 진행되는 틈을 타 새로운 파업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가사 노동자들이 용감하게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여 동참하려 하자, 정부는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해 돌을 던지게 하고 경찰의 진압을 유도하여 많은 사람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계속되는 소요 사태에 공포에 질린 정부는 당황한 나머지, 노동자 대표들과의 공식 회담조차 열기 전에, 노이다 지역 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러운 임금 인상을 발표해 버렸다. 이는 정부가 시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부스러기 몇 조각을 던져주는 절박한 최후의 발악이었다. 동시에 정부는 외부 선동가, 외국, 그리고 파키스탄의 자금 지원과 지역 내 마오주의 반군 활동 등 극단주의 세력의 음모 탓으로 돌리는 대규모 허위 선전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는 파업이 굶주림, 열악한 공장 환경, 그리고 극단적인 자본주의 착취로 인한 일상적인 굴욕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노이다와 주변 산업 단지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동자들이 조직화하면, 국가는 곤봉을 휘두른다. 운동이 확산하면, 집회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한다. 탄압만으로는 효과가 없을 때, 국가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양보만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중상모략과 거짓을 퍼뜨린다. 그리고 모든 수단이 실패하면 노동조합 관료주의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다시 수동적인 상태로 몰아넣는다. 법적, 사법적, 정치적, 물리적 권력의 모든 수단은 오직 하나의 이익, 즉 전체 체제가 의존하는 착취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들은 모든 지역과 모든 산업을 아우르며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똑같은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이다에서의 투쟁은 지배계급에 대한 분명한 경고이자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자발적인 봉기와 순수한 용기는 고무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해체하기 전에 먼저 그 체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얻어야 한다. 정부, 경찰, 자본가, 그리고 공식 노조들은 우연히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논리 아래에서 함께 움직인다. 직장에서 작고 일상적인 개선을 위한 투쟁은 필요한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결코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임금"이라는 방어적인 요구에 투쟁을 국한하는 것은 함정이다. 이 체제에서 일시적인 금전적 이득은 물가 상승, 노동강도 증가, 또는 대량 해고로 인해 금세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현재 거리에서 목격되는 놀라운 용기는 임금 쟁취 투쟁을 넘어서, 임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전(全) 계급적인 정치 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투쟁은 고립된 상태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1)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통합된 네트워크이다. 노동자들은 민족주의의 덫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투쟁이 국제적인 투쟁임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국경을 넘어 단결하여, 그들을 억압하는 국가 기구와 착취 체제 자체를 전복시켜야 한다.

 

2026년 4월 20일

토파즈와 아세라(Topaz & Asherah)

계급전쟁 (남아시아)

 

<주>

사진: 노이다 산업 단지의 통행금지

 

(1) 「계급전쟁 남아시아」 동지들은 파업 중인 가사 노동자 및 비정규 노동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노이다(Noida), 특히 62번 구역 주변에서 직접 현장 개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주 정부의 강경한 경찰 봉쇄, 중앙예비경찰(CRPF)의 대규모 배치, 그리고 노동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보복성 공장 폐쇄로 인해 물리적 개입과 전단 배포는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즉각적인 전술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입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의 지역적 고립을 깨고, 공식 노동조합의 평화주의적 영향력에 맞서 싸우며, 투쟁을 더 ​​넓은 노동계급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이러한 자발적 봉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04-21/on-the-noida-strike

 

<참고할 글>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인도의 노동자 봉기
https://blog.jinbo.net/iscralee/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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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들의 일시적 휴전: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막간극

전범들의 일시적 휴전: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막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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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7일(미국 시각 4월 8일)부터 중동 전쟁에 일시적 휴전이 발효되었다. 레바논에서는 여전히 교전 중이지만, 이 휴전은 2026년 4월 21일경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휴전 발표 이후, 최근 중동 전쟁의 세 주요 당사자인 이스라엘, 미국, 이란은 각각 스스로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진정한 군사적 승리라기보다는, 이 제국주의 갈등의 모든 측에 있는 지배계급의 일부 정치적 성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교전국들이 주장하는 군사적 성과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노동계급으로부터 심각하거나 조직적인 저항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일시적 휴전은 전쟁이 진정으로 중단되었다기보다는, 관련 당사자들이 단기적, 장기적으로 제국주의 갈등을 지속하기 위해 군사력을 재건하고 전쟁 정책을 재조정할 기회에 가깝다.

 

한편, 이란의 범죄 조직들은 모든 전선에서 휴전이 이루어질 때만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레바논 국민은 휴전이 자국에도 적용될 것이라 믿으며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이스라엘군은 10분 만에 수십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신속하게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 이 폭격의 규모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가장 격렬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으며, 하루 만에 수백 명이 사망하고 천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범죄자 네타냐후는 ‘레바논에는 휴전이 없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슬람 부르주아지에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이란의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전제 조건과는 달리, 자국의 제국주의 이익을 위해 협상에 참여했는데, 이는 심지어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헤즈볼라는 테헤란에 가해지는 압박을 덜어주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현재 레바논 전선은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지만, 이란은 사실상 일시적 휴전 상태, 혹은 비(非)군사적 대립 상태에 놓여 있다. 만약 이란이 대응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대리 세력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자국의 억지 모델이 조건부라는 사실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

 

반면, 이란이 휴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계속 약화시킨다면, 이란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되어 협상에서의 입지가 약화할 것이다. 반대로, 이란이 대응에 나설 경우, 어떤 성과도 거두기 전에 휴전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2026년 4월 1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과 미국은 임시 휴전 협정 체결에 따라 회담을 시작했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이 협상 이전에 미국 측은 15개 조항의 요구 사항 목록을 제시했고, 이란 측 역시 잠재적 합의를 위한 10개 조항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에 참여한 전문가 대표단의 일원이자 국회의원인 마흐무드 나바비안(Mahmoud Nabavian)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원인으로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의 이익을 이란과 공동으로 분배하자는 미국의 요구, 둘째,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 반출 요구, 셋째,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지는 이란의 20년간 우라늄 농축 완전 중단, 즉 무(無)농축 우라늄 수용이다. 그는 이러한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호르무즈 해협의 이익을 이란과 공동으로 분배하자는 미국의 요구.

2.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 반출 요구.

3. 이란의 우라늄 농축권 20년간 박탈 요구.[1]

 

적어도 이란과 이스라엘에는 일시적 휴전에 반대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 세력이 있다. 이스라엘의 칸 TV는 한 고위 안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재개할 의향이 있으며 새로운 공격을 개시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을 재개하기를 원하며 도널드 트럼프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2]

 

실제로 전쟁이 모든 전선에서 멈춘 것은 아니다. 레바논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다른 전선에서는 휴전 기간 해상 봉쇄, 사이버 공격, 그 밖의 긴장 고조 등 비(非)군사적 대립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전쟁이 다시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전쟁은 멈추지 않았으며, 단지 다른 형태로, 더 분산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휴전 상황과 휴전 이후의 지역 정세에 대해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란 휴전은 전쟁을 분산시켰을 뿐이다. 현재의 합의는 전투를 종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3]

 

부르주아 평화주의를 둘러싼 선전, 즉 모든 측에서 휴전을 유지하고 이를 지속적인 평화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주장과는 달리, 현실은 세계가 더욱 심각한 군사적 긴장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 휴전은 제국주의 전쟁의 과정에서 잠시 멈춰가는 것에 불과하다. 군사적 긴장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선동과는 달리, 우리는 서구 부르주아지와 지역 동맹국들, 그리고 이란 부르주아지 사이의 갈등이 근본적으로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입증해 왔다. 명백한 보기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식 명칭이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인 파키스탄이다. 이는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과 비교할 수 있는데, 두 경우 모두 이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란이 어떤 면에서는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세속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도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적(敵)으로 간주한다. 그런데도 서구 부르주아지는 파키스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이란 부르주아지가 지역 강대국 지위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며, 파키스탄은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지역 강대국으로서 행동하려는 이러한 제국주의 야망은 1979년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있는데, 당시 이란은 이 지역에서 서방의 주요 동맹국으로 여겨졌으며 서방 열강들도 이러한 역할을 인정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방과 동맹국들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지역 강대국으로서의 제국주의 야망을 인정하지 않고, 이란이 약하고 순응적인 국가로 전락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 부르주아지의 장기적 목표라는 맥락에서도 분석될 수도 있다.

 

중동 전쟁 초기, 트럼프는 ‘무조건 항복’이라는 수사를 동원하며 이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호전적인 태도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이 실현되지 않자, 그의 어조와 구호는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식의 주장에서 ‘이란 문명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라는 위협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극도로 광범위하고 불안정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에, 이후 접근 방식은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라는 선택지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26년 4월 13일 해상 봉쇄를 시작했으며, 이 조치의 결과는 아래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봉쇄 조치는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위치한 모든 이란 항구를 포함하여, 이란의 항구 및 연안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국가의 선박에 공정하게 적용할 것이다.”[4]

 

미 중부사령부는 이슬람 부르주아지를 모욕하려는 노골적인 의도로 ‘페르시아만’ 대신 ‘아라비아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에 대응하여,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주둔하며 이 주요 수로의 통행을 통제하는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미국이 가한 해상 봉쇄를 ‘해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할 경우 어떤 항구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란군 중앙 작전 사령부(Khatam al-Anbiya)는 다음과 같은 위협을 발표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군대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항구의 안전은 모두를 위한 것이거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페르시아만과 오만해에 있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 항구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의 어떤 항구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5]

 

사실 이란은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항상 지역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세계정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국제 해상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이란은 정치적, 경제적 흐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그 영향력의 강도는 시대에 따라 변동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 중 하나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 세계 석유와 가스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하며, 이 해협의 수송 차질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향력은 이란의 지역 정책에서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여겨진다.

 

일부 서방 언론 매체와 뉴스 네트워크는 이란의 권력 구조 중 다른 요소들과 비교했을 때,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세계 경제에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을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핵 프로그램보다 더 효과적인 제국주의 정책의 핵심 수단 중 하나로 규정하기도 한다.

 

“‘핵 프로그램보다 더 가치 있는 것’ :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새로운 힘을 과시한다. 이란은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을’ 수 있는 무기를 발견했으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쟁 계획이 실패했음을 드러낸다.”[6]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아직 판매되지 않은 상당량의 원유를 생산해 두었다. 이 원유는 유조선과 미국 해군 봉쇄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 저장되어 있으며, 중국이 주요 구매자이다. 이 비축량의 규모는 약 1억 6천만 배럴로 추산된다. [7]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 덕분에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하르그 섬의 수출이 중단되고 미국의 해상 봉쇄가 지속하더라도 2026년 7월까지 석유 판매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해상 봉쇄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 조치가 완전히 이행되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운 데이터에 따르면, 봉쇄 조치 이틀째 되는 날 이란 항구에 기항했던 선박 2척을 포함해 최소 4척의 이란 관련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 적절한 대비 부족이나 선박 추적 시스템의 장애와 같은 요인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미국이 실제로 전면적인 해상 봉쇄를 시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지는 아직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가 더 강화될 경우,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직접적으로 또는 대리 세력을 통해 바브 엘 만데브(Bab el-Mandeb) 해협을 봉쇄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조치는 세계 해운 업계에 새로운 압박을 가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보기를 들어, 부시 태스크 그룹(Bush task group)이 예멘의 안사르 알라(Ansar Allah) 반군의 미사일 공격 위험을 피하고자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는 더 긴 경로를 선택해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과정에서 최소 2,70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이를 근거로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유엔(UN) 주재 대사는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등 역내 국가들의 책임 문제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서한은 이들 국가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를 통해 국제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으며, 따라서 국제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가한 피해에 대해 완전한 배상을 해야 하며, 여기에는 국제법 위반 행위로 인한 모든 물질적·정신적 손실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전쟁이 끝난 후 중동, 특히 걸프 연안 국가들의 상황이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란의 호전주의자들은 일시적인 휴전 직전, 걸프 국가들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에 "미국이 떠나면 우리와 당신만 남을 것이다"와 같은 문구를 적어 넣었다. 미사일에 새겨진 이 메시지는 전쟁의 지속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관점에서 바라본 미래상을 보여준다.

 

일시적인 대립을 넘어 장기화할 이 전쟁의 결과는 해당 지역의 지정학적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걸프 국가들의 입지와 세력 균형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들 국가는 수조 달러를 군사 장비 구매에 쏟아붓고 수많은 미국, 프랑스, ​​영국 기지를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단만으로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 중 이 무기들과 기지들이 표적이 되면서 기존 권력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이제는 이슬람 부르주아 세력으로부터 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위험에까지 직면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미국의 입지가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추세는 중동 전쟁으로 인해 더 심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걸프 국가들이 누려왔던 상대적인 안정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긴장은 더는 대리전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이들 국가는 직접적인 분쟁에 휘말리면서 경제 및 사회기반시설뿐 아니라 정치, 안보, 사회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 부르주아지로부터 비롯된 위협은 이들 국가를 끊임없는 악몽처럼 짓누를 것이며, 이는 더 넓은 지역 및 세계 자본주의 질서 내부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일시적인 휴전은 지속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미국, 이스라엘, 이란 지도자들의 의지나 호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제국주의 대립을 일으킨 근본적인 조건에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조건들은 전쟁의 발발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더욱 복잡해지고 심각해졌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부르주아지의 지배계급 일부가 이번 휴전에 불만을 품고 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데 실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이 부르주아지는 현재 상황에서 약화했지만, 여전히 지역적 야망을 추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걸프 지역 국가들에 있는 미국, 이스라엘 및 동맹국들의 이익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그 결과, 이슬람 부르주아지는 현재 지역 내 입지를 재건하고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이 과정은 새로운 긴장 고조를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광들 사이의 휴전은 지속적인 평화로 이어질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러한 평화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특정 정치 지도자들의 호전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논리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쟁은 더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히 자본주의 쇠퇴기에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휴전은 향후 더 큰 전쟁으로 향하는 길에서 일시적인 멈춤에 불과하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드러내며,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특성으로 인해 그 여파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에서든, 유럽과 미국에서든, 모두 노동계급을 겨냥한 것이다. 중동의 노동계급은 이 전쟁의 대가로 목숨을 바치고 있으며, 세계 다른 지역의 노동계급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난과 그로 인한 긴축 정책으로 대규모 실업과 생활 수준 저하와 같은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 특히 코뮤니스트 좌파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고히 수호하고 이러한 전쟁의 제국주의 본질을 일관되게 폭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르주아 진영과의 어떠한 연대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립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제도 수호"라는 수사를 통해 노동계급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희생이 자본주의 관계의 재생산과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지속을 위해 이용된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사회 세력으로서 부르주아 국가의 호전적인 정책에 진정으로 맞설 수 있다. 지름길은 없다.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은 투쟁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계급적 이익과 목표를 기반으로, 독립적인 계급적 토대 위에서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총회, 공장 위원회, 지역 위원회와 같은 조직 형태를 통해 조직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노동계급은 이러한 자기 조직화와 독립적인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만 호전적인 정책뿐만 아니라 전쟁을 추구하는 국가 자체에도 맞설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정한 평화는 전 세계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전쟁으로 전환하고, 계급투쟁을 국제적으로 확장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아무리 강력하고 광범위한 계급투쟁이라 할지라도 한 국가 안에 갇혀있다면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을 종식하고 인류를 위한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것은 전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전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목표의 실현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달려 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제국주의 전쟁을 타도하라!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 만세!

 

2026년 4월 15일

국제주의자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주>

사진 : 미군에 나포된 이란 화물선 투스카호 [로이터=연합뉴스]

 

 

1. Tabnak
https://www.tabnak.ir/fa/news/1366848/%D8%B3%D9%87-%D8%AE%D9%88%D8%A7%D8%B3%D8%AA%D9%87-%D8%A2%D9%85%D8%B1%DB%8C%DA%A9%D8%A7-%DA%A9%D9%87-%D8%A8%D8%A7%D8%B9%D8%AB-%D8%B4%DA%A9%D8%B3%D8%AA-%D9%85%D8%B0%D8%A7%DA%A9%D8%B1%D8%A7%D8%AA-%D8%B4%D8%AF

2. Kan News

https://x.com/W0lverineupdate/status/2043376523550626217

3. https://foreignpolicy.com/2026/04/09/iran-cease-fire-lebanon-war-pakistan-talks/

4. https://www.navalnews.com/naval-news/2026/04/u-s-to-blockade-ships-entering-or-exiting-iranian-ports/https://www.navalnews.com/naval-news/2026/04/u-s-to-blockade-ships-entering-or-exiting-iranian-ports/

5. https://www.irna.ir/amp/86126428/

6. https://www.ms.now/news/iran-strait-hormuz-closed-ceasefire

7. https://www.wsj.com/livecoverage/iran-us-cease-fire-talks-stalled-2026/card/china-and-iran-can-wait-out-a-blockade-CkgynAUc99nauwzYw5z5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tvoice.org/war-criminals-temporary-ceasefire-an-interlude-in-the-generalised-imperialist-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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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이란 전쟁의 여파에 맞선 첫 번째 방어적 대규모 파업

[인도] 이란 전쟁의 여파에 맞선 첫 번째 방어적 대규모 파업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인도의 노동자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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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부터 델리(Delhi) 남부 산업 지역에서 대규모 노동자 봉기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초부터 산업 중심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해 온 노동자 시위의 일환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초과근무 수당 인상, 체불 임금 지급, 그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동등한 노동 조건을 요구했다.

 

배경: 노란 안전모 시위와 물가 상승

 

2026년 1월부터 3월 사이, 인도 전역에서 최소 28건의 대규모 파업과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으며, 대부분은 산업 건설 현장에서 일어났다. 「이주 노동자 연대 네트워크」(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가 발간한 팸플릿은 시위대 대부분이 노란색 안전모를 착용한 건설, 석유, 철강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 운동을 ‘노란 안전모’ 운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요구 사항은 임금 인상, 안전 조치 개선, 그리고 하루 최대 8시간으로의 노동 시간 단축이었다. 보기를 들어, 파니파트(Panipat)에서는 작업장 사고로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자, 인도 최대 정유 공장의 파견 노동자 3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차량을 파손했다. 하자라(Hazara)에서는 2,000명 이상의 철강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며 파니파트 정유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과 직접적인 연대를 표명했다. 임금 인상과 8시간 노동 요구는 특히 건설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파업을 촉발하는 효과를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섬유 및 에너지 산업으로까지 확산했다. 구자라트(Gujarat)주에서는 알록 텍스타일(Alok Textiles) 노동자들이, 문드라(Mundra)에서는 인도 최대의 석탄 화력 발전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란 전쟁은 아시아에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고, 이는 인도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자들이 취사에 사용하는 LPG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은 이제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해졌다. 지방 정부는 2026년 4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35%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이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거나 인상 폭이 너무 미미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3월 초,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주에서는 수천 명의 간호사들이 최저임금 두 배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4월 3일에는 마네사르(Manesar)에 있는 혼다(Honda)와 스쿠터 인디아(Scooter India)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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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다(Noida) 봉기

 

4월 8일, 델리(Delhi) 교외에 있는 인구 65만 명의 노이다(Noida)에서 노동자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자동차 부품 및 전자 산업 분야를 포함한 수천 개의 산업체가 밀집해 있는 노이다와 델리 광역 산업 지대는 아시아 최대의 산업 중심지 중 하나다. 노동자들은 3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일주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4월 13일, 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4만에서 4만 5천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월요일, 노이다 산업 단지의 수십 개 공장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돌을 던지고 차량을 파손했으며, 그중 몇 대에 불을 질렀다”라고 보도했다. 공장 건물들도 불에 탔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여러 차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직접 올린 영상에는 시위대가 공장 내부를 행진하며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건물을 철거하고 있다. 또 다른 영상에는 IT 사무실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4월 14일에는 가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고, 4월 15일에는 비정규 플랫폼(gig) 노동자들이 모여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 봉기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여, 구르가온(Gurgaon)에서 파리다바드(Faridabad)를 거쳐 노이다(Noida)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는 2014~2015년 이후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파업 물결이다. 그리고 당시와 달리, 이번 파업은 섬유 및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14~2015년과 현재의 차이점 중 하나는, 공장 점거가 아닌 거리 봉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봉기가 확산한 흥미로운 요인 중 하나는 여러 기업이 서로 다른, 그것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산업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차(Richa) 의류 회사의 노동자들이 마네사르(Manesar)에서 파업에 돌입했을 때 경찰의 공격을 받고 보복 조치를 당하자, 노이다(NOIDA)에 있는 리차 공장 노동자들이 이에 대응해 파업을 시작했다. 모더슨(Mothersons) 공장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먼저 노이다(NOIDA)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고, 그 뒤를 이어 파리다바드(Faridabad)와 라자스탄(Rajasthan) 주에 있는 비와디(Bhiwadi)의 모더슨 공장 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비와디(Bhiwadi)는 노이다(NOIDA)에서 약 90km 떨어진 곳이다.

 

현지 동지들은 운동 기간 몇 가지 ‘평등주의적’ 정서가 지배적이었다고 전했다: “우리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왜 ‘관리자들’(경영진, 사무직)이 모든 돈을 가져가는가?” 그리고 “왜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른가?” [이 산업 단지는 여러 주로 나뉘어 있다. 델리(Delhi) 주는 자체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노이다(NOIDA)는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의 임금을, 구르가온(Gurgaon)이나 마네사르(Manesar)는 하리아나(Haryana) 주의 임금을, 비와디(Bhiwadi) 노동자들은 라자스탄(Rajasthan)주의 최저임금을 받는다. 임금 격차는 상당히 클 수 있다.]

 

지방 정부는 초기 대응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로서는 3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집회를 금지하는 ‘제163조’를 발동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제 주 정부는 소셜 미디어(특히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인스타그램)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제한적인 효과만 거두고 있다. 경찰의 보호 아래 회사 경영진은 노동자들에게 시행할 개선 사항과 임금 인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현재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 단체들은 사람들에게 평화롭게 행동하고 '무정부 상태를 확산시키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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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조립한?

 

이번 노동자 봉기, 특히 노동 시간 단축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흐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중국 폭스콘(Foxconn) 노동자들의 코로나19 관련 파업 이후, 특히 애플은 미국과 인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생산 시설의 상당 부분을 인도로 이전하고 '중국 조립'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2024~25년경 인도 전자 산업계에서 발생한 첫 번째 투쟁과 조직화 성공 사례들은 이러한 계획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인도 노동자들은 ‘세계적인 초저가(저임금) 경쟁’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2026년 4월

와일드캣(Wildcat)

 

* 「와일드캣」(Wildcat)의 “우리의 요구를 들어라! – 인도의 노동자 봉기” 독일어 원문을 「분노한 노동자들」(AngryWorkers)이 영어로 번역하고 내용을 추가함.

 

 

 

<독일어 원문 출처>

https://www.wildcat-www.de/aktuell/a129_indien.html

 

<영어 출처>

https://www.angryworkers.org/2026/04/15/meet-our-demands-workers-uprising-in-india/ (내용 추가)

 

https://leftdis.wordpress.com/2026/04/16/india-first-defensive-mass-strike-against-the-consequences-of-the-iran-war/ (제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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