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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국가, 문재인 정부, 부르주아 정당들의 부동산정책의 계급적 본질
2020년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지난 「코뮤니스트」 12호에 언급했듯이 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이었다. 한마디로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 말로는 집값 상승 억제를 주장했지만, 20여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은 주거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끝없이 수직 상승시켰다. 그 이후에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 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인데도 아파트 공급 확대를 계속 추진했다. 아파트 공급 확대가 자본에 개발 이익을 보장하는 길만 열어주고 집값 억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다. 더 정확하게는 말로는 집값 억제를 떠들 뿐 노골적으로 자본의 개발 이익을 보장하였다. 2017년 시행된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방안’을 통해 취득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온갖 세제 혜택과 더불어 임대사업자에게 집값의 8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 보기이다. 그리고 4⦁7 재보궐 선거 직전 터져 나온 LH 직원들의 개발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및 공기업, 중앙/지자체 부동산 관련 업무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과 정부 자체 조사과정은 부동산 시장에서 문재인 정부와 국가기관이 짜고 치는 거대한 노름판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게다가 부동산가격 폭락 방지책에는 국가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들 역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파트 공급에 대한 표면적 방법은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은 똑같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서로 간 약속이나 한 듯 규제 완화와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기에는 자본의 개발 이익은 보장되어도 집 없는 노동자의 내 집 마련은 끼어들 틈조차 없다. 또한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과정에서 투자 정보는 덤으로 관료와 정치가, 자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래서 부르주아 정당들의 집값 억제대책은 노동자에 대한 기만이고 사기이다. 물론 다른 정책과 국책사업도 마찬가지지만, 집값 폭락 방지에서도 이른바 진보 대 보수의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 부동산 가격 폭락 방지라는 일치된 이해관계뿐이다.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배계급의 정당과 정책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과 노동자의 분노를 의식한 듯 최근 LH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재발 방지대책과 주택공급 확대를 거론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주택공급으로는 주거 안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다. 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 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주거 안정화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가능하다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 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토지 국유화가 부동산 문제의 근본 대책일까?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그대로 둔 채 일부 생산수단만을 국유화하는 것은 코뮤니즘의 사회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자본의 총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는 주장이다.
'국유화'와 '사회화' 관련해서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는 맑스, 엥겔스뿐 아니라 이후의 논쟁과 이론도 검토해야 한다. 칼 코르쉬1)는 모든 사회화가 국유화의 형태로 완성되지 않으며, 단순한 국유화로는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일시에 또는 단계적으로 완성된 사회적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사적소유의 완전한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베른슈타인은 사회정책으로 현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화를 점진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래 소개하는 코르쉬의 이론은 매우 논쟁적이고, 전체 내용(소련의 경험과 규정 차이 포함)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국유화, 사회화, 주택, 도시 문제에 대한 코뮤니스트 전망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제코뮤니스트그룹(G.I.C.), 보르디가 등의 글과 함께 반드시 토론되어야 한다.
코뮤니즘에서 요구되는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를 사회주의적 공동체 경제로 대체하려는 목적을 가진 생산의 새로운 규칙을 의미한다. 사회화의 첫 번째 단계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이로 인하여 실현되는 노동의 해방이며, 두 번째 단계는 노동의 사회화이다. 코르쉬는 생산을 모든 기술적 생산과 연결된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생산관계로 파악한다. 사회화의 새로운 규칙의 대상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의 생산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지배하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과 이러한 적대성에서 유래하는 사회적 계급구분, 계급지배 그리고 계급투쟁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사회주의적 공동소유는 국가 소유와 절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국유화는 사회화의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며, 사회화의 모든 형태는 단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산업 자치’라고 묘사하였던 사회적 생산관계의 규칙에 도달했을 때만, 우리에 의하여 진정한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된다. 모든 집중화된 국유화에 반대하여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이의는 산업 자치의 형태에서의 사회화에 대하여는 근거가 없다. 산업 자치 형태에서의 사회화는 관료적인 획일화와 경직화는 있을 수 없고, 개인적 활력은 절멸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적 활력은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에서는 수행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생산참여자 집단에서 자치로 인하여 그러한 개인적 활력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경제성의 위험은 기껏해야 생산으로부터 사적 소유자를 배제한 결과 사적 이익이 가능한 최고의 경제적 생산을 위하여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멈추는 것에서 발생한다.”2)
코르쉬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의 주택과 토지문제는 '사회주의적 주거권'과 연계하여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즉, 주택과 토지의 공적인 성격과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인 사회화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노동자통제 없는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지만, 사회주의 없는 진정한 노동자통제도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통제의 점진적인 증가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동경영, 참여, 또는 공동결정 같은 말로 치장한 거짓 사회개혁으로 자신들의 절대적인 계급지배를 숨기려는 지배계급의 악선전에 놀아나는 짓일 뿐이다. 노동자통제는 계급 협조를 배제한다. 그것은 자본 생산 체계에 참여할 수 없고 대신에 그것을 폐지한다.” (폴 매틱, 「노동자통제」, 1967년)
또한, (노동자통제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영역의 통제와 사회화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 권력(평의회)과 국가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본의 총체로서 국가가 주체가 되는 국유화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토지 국유화를 통한 주거 안정은 불가능하며, 노동자인민의 주거 안정은 오직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평의회를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소유관계 폐지 없는 토지 국유화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폐지를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과 평의회를 통한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
1. 1920년대와 1930년대 걸쳐 코뮤니스트 좌파로 활동하면서 코르쉬가 굳게 믿었던 맑스주의 혁명이론은 ‘프롤레타리아 실천과 의식’이었다. … 코르쉬에게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안에서 직접 정립되며, 부르주아 사회 제도, 생활양식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조한다. (남궁원, “혁명적 코뮌, 칼 코르쉬”, 「코뮤니스트」2호, 2013)
2. 칼 코르쉬 「사회화란 무엇인가?」
2021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관련 글>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48
코뮤니즘 세상에서... 도시와 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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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말 안정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좋은 정보 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