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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호를 내면서
자본축적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과 기후위기의 일상화는 자본에는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노동계급에는 고통과 죽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 부르주아지는 선거에 대한 환상과 민족주의를 내세워 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체제 유지와 전쟁에 동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레바논 인민 학살을 포함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다. 분쟁 지역 중 여러 곳에서 인종 청소, 공동체 사이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해마다 기후위기 난민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제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겉으로는 녹색으로 포장하고 뒤로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적 관계 보존과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자본의 좌파에 맞선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는 일관되게 혁명적 패전주의와 노동자국제주의를 방어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 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반(反)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편을 드는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 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민족)의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동원되어, 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 국가'든 '억압 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反)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 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이다. 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이다. 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이다. 그들의 실제 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의 대응과 올해 주요 국가에서 치러진 부르주아 선거를 다뤘다. 또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 자본주의 경제적 토대,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등 연재 기사와 코뮤니스트 혁명가 안톤 판네쿡 서평을 실었다. 그 외에도 현 정세에 참고할 만한 글과 흥미진진한 주제가 풍성하게 실렸다.
□ 특집,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에는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학생 시위 : 뒤섞인 신호’를 실었는데, 평화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혁명적 패전주의를 다루었다.
“평화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전쟁이 자본주의 체제에 본질적으로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본주의 내의 평화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계략을 숨기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노동계급을 호도한다. 그들이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평화는 용어상 모순이다. 대신, 전쟁에 대한 유일한 진정한 반대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평화 요구는 전쟁 게임의 일부이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오늘날 혁명적 패전주의는 동지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나요?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혁명가들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의 질문을 전면에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답변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적인 체제이며, 전쟁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세계와 자원을 재분할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사적 해결책을 선호합니다. 전쟁이 가져오는 자본의 파괴는 또한 체제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배계급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편익 동맹(alliances of convenience)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 프로젝트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국) 지배계급이 강대국 파트너의 공범인 약소국은, 강대국의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졸에 불과하며, 전시에는 자신의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도구로 이용하고, 전쟁 후에는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따라서 민족 해방, 민족의 자결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역사적 모순이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에 계급전쟁으로 맞서는 혁명적 패전주의는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의 혁명적 패전주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 코뮤니스트 정치에는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전복의 전망’,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까?’를 실었는데,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된 전쟁의 일상화와 기후위기의 배경과 지배계급의 행태와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체제 유지와 제국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민족주의, 기후위기를 통해 이윤추구의 새로운 방법을 구사하는 자본의 적나라한 모습과 왜 노동계급만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인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더 많은 영역으로 확산할 뿐 인류의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역사는 전쟁이라는 자본가계급의 살인 기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일혁명의 위험 때문에 자본가계급이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이 계급전쟁을 벌일 위험에 처할 때만 전쟁 중단을 고려할 뿐이다. 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이 대대적인 계급투쟁을 즉시 벌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계급투쟁의 확산과 발전만이 그러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제국주의적 긴장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NWBCW 한국위」,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와 비판으로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 신드룸과 박정희 동상을 잠재우기는커녕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과 향수만 자극했다. 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사관의 극복은 한국 민족주의가 아니라 코뮤니즘을 향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국제주의로 가능하다.” (‘노동자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 국제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배계급이 부르주아 선거를 어떻게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환상을 심어주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북미 지역 노동조합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는 노동자 투쟁의 절실함과 볼리바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모든 선거는 위기이며, 자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가 된다. 부르주아지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고 있다”고 선언하며 우리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투표하지 않았으니 불평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공허한 반동적 활동(자본주의 선거에서 투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벌이고, 선거를 집단행동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대안이 있다.
해리스나 트럼프 모두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투표를 통해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는 대신, 누가 당선되든 일어나게 될 경제적 공격과 전쟁 준비에 맞서 스스로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 (‘미국 : 민주·공화 양당, 하나의 썩은 체제’, 「국제주의노동자그룹」)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이미 의문을 제기한 문제이다! ……… 프롤레타리아 여러분, 우리는 이 선거가 우릴 위하여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체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이 모든 것을 거부하자! 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적들에게 투표하지 말자, 그들은 모두 우리를 착취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 선거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가 이긴다!’), 「국제주의혁명그룹」)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내부 논쟁에는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부르주아지가 조직하는 방법’을 실었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 참가 이유와 「국제맑스주의경향」(IMT)에 대한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비판과 포푤리즘에 대한 분석을 소개했다.
”자본주의의 전복과 새로운 코뮤니스트 세계의 토대 구축은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강령을 중심으로 계급을 통합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의 과업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선전을 확산하는 것이며, 이는 나머지 노동계급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운동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신과 이러한 동기로 우리는 더 광범위한 계급 저항을 향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공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다. 이번 호에 보도된 프라하 국제 모임과 아레초에서 열린 소규모 모임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참석했다.” ('혼돈의 시대'인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인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더 오래되고 최근의 이 모든 예는 IMT의 국제주의가 사기이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다고 주장하는 구호가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IMT는 다른 모든 트로츠키주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모든 노동계급의 투쟁을 방해하는 반(反)혁명의 도구다. ……… 그러나 일단 '혁명적 패전주의'에 대한 강령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나면, 그들은 구체적 문제로 넘어가서, 실제로는 기존의 전쟁 전선에 참여하고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학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기 시작한다."[9]. 이는 트로츠키주의에 있어 정치적 입장보다 정치적 실천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실천은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동원에 끊임없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기사에서 CWO가 쓴 것처럼 ‘파산한 정치적 경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트로츠키주의는 노동자 투쟁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영향을 받아 급진화하는 계급 내 소수를 통제하고 탈선시키는 부르주아지의 중요한 도구이며,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더 거대하고 정치화된 계급 대립으로 가는 길을 막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부활하는 IMT의 정책이다.” (‘또 다른 가짜 인터내셔널’,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혁명가에서는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을 조명했다. 안톤 판네쿡(1873-1960년)은 노동자 운동에서 엄청난 기복의 시대,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낸 혁명적 파고를 겪었다. 판네쿡이 그 사건들에 직접 참여한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노동계급 역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겪었던 판네쿡은 평생 맑스주의자로 남았고, 혁명적 변혁의 열쇠는 노동계급 대중의 계급의식 발전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전체적인 전망은 노동계급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의식을 획득한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네쿡은 다른 평의회주의자들과 다르다. 그리고 의식은 조직적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판네쿡은 평의회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지만, 혁명적 계급의식은 노동자들 사이의 논쟁과 토론 없이는 도달할 수 없으므로 그 과정에 기초한 “당”이라는 개념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위대한 시기는 당쟁의 소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여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하고 동지들을 계몽하기 위해 그 생각을 선전한다. 이러한 공통된 의견 그룹을 당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성격은 이전 세계의 정당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의회주의하에서 이 당들은 서로 다르고 상반되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닌 기관이었다. 노동계급 운동에서는 이 당들은 계급을 선도하고, 그 대변자이자 대표로 활동하며, 지도와 지배를 열망하는 조직이었다. 이제 그들의 기능은 정신적 투쟁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실천적 행동을 위해 당이 필요하지 않다. 노동계급은 행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 …… 즉 평의회 조직을 만들었고, 행동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 자체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도 전체 노동자 자체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안톤 판네쿡: 비평’,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 기회주의에 맞선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에서는 헤르만 호르터의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중 의회주의에 관련된 내용을 실었다. 헤르만 호르터는 서유럽과 러시아의 정치, 경제 상황은 다르며, 따라서 의회주의 전술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反)의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방어에 이어, 저는 동지의 의회주의 방어에 대해 자세히 답변하고자 합니다. 동지는 영국과 독일의 의회주의를 (36쪽부터 68쪽까지) 방어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러시아(그리고 극히 일부 다른 동유럽 국가)에만 유효하며, 서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바로 그 점이 동지의 실수입니다. 그것은 동지를 맑스주의자에서 기회주의 지도자로 전락시킵니다. 이에 따라 맑스주의자이자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의 급진적 지도자인 동지가 서유럽과 관련해서는 기회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동지의 전술이 여기서 받아들여진다면, 서유럽 전체를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점은 동지의 주장에 대한 답변에서 자세히 입증하겠습니다.” (헤르만 호르터,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 문화에서는 낯선 땅에서 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하는 소박한 청년의 일상을 소개한 ’나의 스무 살‘과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를 실었다. 조혜영 시인의 시 ’미투‘를 통해 고 박영근 시인이 행한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된 조성웅 시인이 박영근 작품상 반납에 대한 이유와 앞으로의 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은 조혜영 시인의 요청에 대한 제 화답입니다. 일생일대의 결단,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지지와 격려입니다. 문단 내에서 그녀의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고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지켜지기를, 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
저는 조혜영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가 조혜영 시인의 ‘이 한 사람’이 되자고 제안하기 위해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조성웅,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 코뮤니스트좌파 역사에서는 창립 45주년을 맞이한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탄생 배경과 간략한 연표를 실었다.
이번 「코뮤니스트」 20호에는 자본축적의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 분석부터 지배계급의 반동적 전쟁과 여기에 맞서는 국제 코뮤니스트좌파들의 원칙(노동자국제주의), 역사, 투쟁을 깊게 다루었다.
“미래는 노동자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안톤 판네쿡, 1907)
다시 한번 소개하는 안톤 판네쿡의 생애와 사상은 노동계급에 영감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독자와 지지자들의 격려와 다양한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한국-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반대!
자본가 정권 타도! 제국주의 전쟁 타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만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
민족에 맞선 민족이 아니라 계급에 맞선 계급으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4년 11월 9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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