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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자본주의 선거에 대한 계급적 대응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과 노동계급의 대안”을 밝힌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동지들의 과거 기사를 소개한다.)

일부 언론 매체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거부’ 요구를 검열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므로[1], 우리는 선거에서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임무를 스스로 맡는다. 오늘날 어느 국가에서든 진정한 의사결정 과정은 국민 대표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진정한 권력은 의회나 백악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기관 배후에 있는 기구에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자본주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레닌의 "혁명적 의회주의"조차도 본래 목적은 차르 두마(하원)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집권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의 활동은 그들이 지지하는 반동적 자본주의 분파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 활동에 끌려 들어간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부르주아지는 누가 후보 명단에 오르고, 누가 선거에 출마할지 집단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유권자에게 자신의 조건에 맞는 정당에 투표하라고 요구한다. 반면 시민들은 후보 명단에서 가장 덜 악한 거짓말쟁이로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투표한다. 지배계급의 정치적 쇼(선거)를 거부하라는 요구는 결국 일부 자본가들에게 위협이 된다. 실제로 한 주요 소셜 미디어 기업이 그러한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의 원인은 미국 정권을 이끄는 두 분파(민주당, 공화당)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쟁은 너무나 심해서 지배계급이 더 강력한 검열을 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리 코뮌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민주주의의 사례들이 있다. 이는 소수 지배층이 장악한 자본주의 정치 체제에서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는 정치적 꼭두각시가 아니라, 위임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선출자가 소환할 수 있는 대의원(대표)을 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노동자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를 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독재"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들에게 자신들이 배제된 모든 형태의 사회 조직은 독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치 기구인 정당의 등장은 19세기 경찰 조직의 형성과 민족주의의 부상과 함께 나타났다. 계몽주의 혁명의 시대에 ‘당파적인 사람(당원)’이란 민중의 이익보다 자기 정치 분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이는 옛 귀족 계급의 한 분파에 가담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혁명 직후 휘그당과 공화민주당과 같은 느슨한 정치 세력은 19세기 후반에 명확하게 확립된 경직된 정치 구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자본의 좌파 일부는 누구나 부르주아 공화국의 가장 오래된 정치적 득표 획득 기구에 들어가 대중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기구로부터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모든 정치 세력을 이념적으로 압박한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종파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율성을 표출하는 모든 행위를 종파주의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노동자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선거라는 부르주아 정치쇼 참여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선거 과정 자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외는 무관심과 불만으로 나타난다. 이는 강렬한 이념적 공격을 받는 노동자들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거부를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영역에서, 계급의 방식으로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인터넷이라는 주류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을 부르주아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투표소에 가두어, 누구나 부르주아 전쟁광들에게 투표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표현의 제한은 누군가가 금지된 ‘거부’ 주장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주장이 용인되고 무시되곤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위기는 이러한 정치적 각본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했다. 부르주아지는 끝없는 축적의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스스로 반대되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혐오 캠페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모든 반대 의견과 사회적 저항을 경쟁 관계에 있는 제국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몰아 공격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부르주아지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해 나아가면서 사용해 온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것이다. 이는 국외에서 전쟁의 명분을 쌓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탄압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발생한 모든 사회 운동은 제국주의 세계 무대에서 특정 적대 세력이 조장한 분열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경찰의 총격에 시달리는 것이 싫다면 "X"라는 나라에 속았기 때문이고, 전쟁에 지쳤다면 "Y"라는 나라 탓이라는 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급 분열이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국가, 모든 민족 집단, 모든 정체성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부르주아 이념가들은 이러한 계급 구분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계급 분열은 그들의 정체성 정치로도 지울 수 없을 만큼 뿌리 깊다. 미국의 두 주요 부르주아 집단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모두 시민들의 신뢰에 대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그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반동적이다. 달라진 점은, 거대한 소셜 미디어 기구를 장악한 일부 사람들이 선거 거부를 촉구하는 모든 목소리를 금지된 표현으로 규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 선거에서 어떤 투표도 제국주의 전쟁 기계를 정당화하는 행위이다. 이는 부르주아 행정부의 양 진영 모두 해외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확장하고 유지하는 데 전적으로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결국 핵심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충돌로 이어질 영구적인 전쟁 상황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민주적 선택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이 체제의 실체를 폭로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행위원회를 누가 운영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2]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거부는 지배적인 자본주의 세력의 이념적 통제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계급이 스스로 '자신을 위한 계급'으로 자각하기 위해서는 [3] 정치적 단절이 첫걸음이다. 유진 V. 뎁스(Eugene V. Debs)는 민주당에 입당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을 탈당해서 그러했다. 실제로 그는 특히 풀먼(Pullman) 파업의 유혈 사태 이후 민주당 초기 활동을 개인적인 수치의 원천으로 여겼다. 초기 볼셰비키들도 차르의 경찰국가를 개혁하겠다는 목적으로 두마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위를 이용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규탄했고, 의회 연단을 통해 부르주아 정권을 비난했다. 냉전 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이름을 가진, 제국주의 전쟁 지지가 명백히 드러난 우리의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본주의 정당 앞에 우리 모두를 무릎 꿇게 하려고 한다. DSA는 미국 사회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정당으로 전락하여 붕괴한 결과물이다. 그들은 열린 무덤을 응시하며 그것이 요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부르주아 선거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자신의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집권당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는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적 위기를 활용하여 우리의 정치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동자들에게 선거란 착취자들이 자행하는 의례적인 굴욕 행위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 않는다고 외칠 때, 우리는 자본주의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부르주아 선거를 거부하자!
2019년 9월 6일
ASm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주>
[1] 클라이모어(Clymore), A. “페이스북, 미국 유권자들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광고 금지할 예정”. 로이터. 2019년 6월 30일.
https://www.reuters.com/article/us-usa-election-facebook/facebook-will-ban-ads-that-tell-people-in-u-s-not-to-vote-idUSKCN1TV0Y8/
[2] 『코뮤니스트 선언』 제1장, “현대 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맑스)
[3] 『철학의 빈곤』, “따라서 이러한 대중은 이미 자본에 대항하는 계급이지만, 아직 자신을 위한 계급은 아니다.” (맑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9-09-06/abstention-a-class-response-to-capitalist-e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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