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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 세상에서...
예술, 공예/장인, 전통 작품은?
코뮤니즘에서 사회적 생산력은 향상될 것이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킬 것이고, 경제는 더는 자본 축적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에 기초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 공예/장인, 또는 대량생산을 허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형태의 생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은 규모로 직접 변형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함으로써 소외가 뒷문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예술, 공예 또는 전통적인 생산과 같이 대량 생산이 아닌 형태의 생산은 코뮤니즘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뮤니즘에서... 노동생산성은 각자와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발전한다. 그렇다면 공예/장인, 예술 등의 모든 전통적인 형태의 생산이 그들의 비생산성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까? 사회적 대량 생산과 직접 노동, 개인 노동을 분리함으로써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각 개인의 변화된 역량의 발견으로부터 소외가 되돌아오지 않을까?
코뮤니스트 도덕, 노동생산성, 그리고 희소성의 인위적인 생산에 대한 소부르주아지의 사랑
우리 코뮤니스트는 자본주의가 문명의 위기에 점점 더 자주 의지하게 되면서 인간의 발전과 필요를 불필요하게 일상적으로 거부하는 인위적인 희소성의 창출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체제의 논리에 물들어 있는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소부르주아지는 투기에 참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희소성을 창출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장 최근의 보기는 비용 없이 무제한으로 복제할 수 있고, 암호를 사용하여 독특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디지털 예술가들이 황홀해하는 장면이다. 이에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는 작은 투기 붐.
다른 경우에는 그것을 뻔뻔스럽게 사회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남미 각지의 매우 열악한 ‘골판지 수집으로 생활하는 사람들’(cartoneros, 영어로는 waste picker)이 현지 작가들의 책을 베껴 쓰고 제본하는 카토네라(cartonera) 출판 운동의 경우이다.
가장 위태롭고 빈곤한 노동력 착취에 참여하기 위해 보헤미안적 소부르지아지의 가학적인 쾌락을 넘어 심지어 상징적일지라도, 손으로 무언가를 베끼는 것이 무엇에 필요할까? 독특하고 희귀한 복사본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오늘날 기술은 이미 배포된 새 복사본에 많은 노동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어떤 책의 복사본도 무한대로 제작할 수 있다.
예술과 공예품 생산에 대한 창조적 소부르주아지의 접근은 희소성, 비참함, 인간의 노동력 착취를 통한 즐거움이며, 코뮤니스트 사회는 지금의 이런 경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래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코뮤니즘에는 그런 일과 그런 도덕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코뮤니스트 사회의 풍요와 대량 생산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공동체의 비극’에 대한 거짓 신화. 그리고 코뮤니즘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다.
예술과 공예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더 넓은 견해를 반영한다. 맬서스주의자들(Malthusian)과 생태학자들은 좁고 반동적인 시각에서 풍요를 대규모 농축 공장과 환경 파괴와 연관시킨다. 그들은 심지어 음식에서도,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을 멈추게 하고, 세계는 유한하며, 이미 우리 인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장인적인 형태의 생산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약간의 반동적 메시지이다. 자본주의 이외에 다른 가능한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더라도 실제로 파괴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자가 너무 많고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대신에 그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희생과 박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답답하고 반동적인 자본가의 비전이다.
우리는 이미 이 연재 글의 이전 편에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경향에도 새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코뮤니즘에서의 농업 생산은 생태적일 것이지만,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자동화될 것이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생산력은 엄청날 것이지만,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본 축적이 아닌 만족을 위한 최적의 규모, 그리고 사회적 생산이 변화된 환경과의 공동 대사의 필요에 따라 분배될 것이다.
코뮤니즘의 예술과 공예
반면에 자본주의가 주는 풍요와 직접적인 모순에 빠지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경향은 예술, 공예 또는 전통적 생산의 실종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들은 해체되었고, 아무도 그들의 기본적인 공급에 의존하지 않으며, 더는 축적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예술이 사라진 곳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이다.
책의 보기를 계속해보면 : 오늘날 전자 형식은 실제로는 유통(배포) 단위당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책을 복제할 수 있다. 1,000부 배포에서 10만 부로 늘리는 것은 디지털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사람의 수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풍요를 가장 가깝게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진보적이었을 때 자본주의 재산의 특징인 바로 그 법적 제도에 대한 진정한 변형되고 기괴한 희화화인 지적 재산에 관한 수많은 모순과 모든 괴물 같은 법안을 만들어내는 이유이다.
그러면 물리적 객체와 그 정교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천 명의 사람이 그것에 관심을 두게 되고 기술을 배운다. 책의 제본 및 물리적 생산은 더는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수단이 아니다. 물리적 대상과 그 창조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끝이다. 읽고 싶은 욕구 충족을 넘어서고 싶은 사람들은 그것을 편집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손으로 묶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은 코뮤니스트 도덕이 나타내는 것 이상의 단계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자신과 서로를 위한 목적이 되는 세계를 나타낸다면, 자본주의가 접하는 최소한의 풍요의 경험은 우리가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모든 인간 활동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리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사회화와 임금노동 폐지가 가져올 인간 본성의 급진적 변화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며, 이들과 함께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노동 분업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분업의 종식은 단순한 조직적 사실이 아니라 코뮤니즘에서 사람들의 삶 전체 경험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하고 사회화하기 때문이다.
특정 개인에 대한 예술적 재능의 배타적 집중과 이에 따른 광범위한 대중에 대한 억압은 노동 분업의 결과이다.··· 어쨌든 사회의 코뮤니스트적 조직과 함께, 예술가의 종속이 사라진다. 이는 전적으로 분업에서 비롯되며, 또한 개인의 특정한 예술에 대한 종속은 그를 전적으로 화가, 조각가 등으로 만든다; 바로 그 이름은 그의 직업발전의 한계와 노동 분업에 대한 의존성을 표현하고도 남는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화가가 없고 다른 활동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 있다.
(맑스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1846)
예술과 공예는 삶의 수단에서 해방되고, 소수의 전문적인 활동과 독점은 사라지고 종의 사회적 지식과 의식으로 통합된다. 즉, 코뮤니즘에서는 모든 인간의 활동이 예술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시인들, 예술가들, 장인들... 그들은 그냥 사라질까?
그렇다, 코뮤니즘에서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화가 지식과 지위의 독점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라질 것이다. 위험하거나 유쾌하지 못한 직업이 사회화되는 것처럼 예술작품과 의미 있는 물건의 제작도 사회화될 것이다. 물론 코뮤니스트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진정한 예술가와 시인은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시인은 단지 저주받은 사람일 뿐이다. 현대 사회가 그에게 던지는 이 저주는 그의 혁명적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시인이 완전히 변형되어 시와 과학에 관한 공통된 인간의 기원을 인식하게 될 때, 그가 강요받은 보호구역에서 벗어나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모든 사람의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협력과 함께, 전 세계를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 상태에 올려놓을 의기양양한 신화를 창조할 것이다.
(「Péret tiene la palabra」 ,뱅자맹 페레(Benjamin Péret), 1943)
뱅자맹 페레(Benjamin Péret)
2021년3월21일
해방
<원문 출처>
https://en.communia.blog/in-communism-art-craftsma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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