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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강산제 심청가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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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_강산제 심청가 사설.pdf (902.20 KB) 다운받기]

 

강산제 심청가 사설 dolmin98@hanmail.net 돌민

 

[아니리]
송나라 원풍(元豐) 말년에 황주(黃州) 도화동(桃花洞) 사는 봉사 한 사람이 있난디, 성은 심이오, 이름은 학규였다. 누대명문거족(累代名門巨族)으로 명성이 자자터니, 가운이 불행하여 삼십 전 안맹이라, 낙수청운(落水淸雲)에 발자취 끊어지고 일가친척 멀어져 뉘라서 받드리오? 그러나, 그의 아내 곽씨 부인이 있난디, 주남(周南) 소남(召南) 관저시(關雎詩)를 모르난 것 전혀 없고, 백집사가감(百執事可堪)이라 곽씨 부인이 몸을 버려 품을 팔 제,

 

[단중모리]
삯바느질 관대(冠帶) 도복(道服) 행의(行衣) 창의(氅衣) 직령(直領)이며, 협수(夾袖) 쾌자(快子) 중치막과, 남녀의복(男女衣服)의 잔누비질 상침(上針)질 꺽음질과 외올뜨기 꾓담이며 고두 누비 솔 올리기 망건 꾸미기 갓끈 접기 배자(褙子) 토시 버선 행전(行纏) 포대(布帶) 허리띠 다님 줌치 쌈지 약낭(藥囊) 필낭(筆囊) 휘양 볼끼 복건(幅巾) 풍차(風遮)이며, 천의(薦衣) 주의(周衣) 갖은 금침(衾枕) 베갯모 쌍원앙(雙鴛鴦) 수(繡)도 놓고, 오색(五色) 모사(毛絲) 각대(角帶) 흉배(胸背) 학(鶴) 기리기, 궁초(宮綃 공단(貢緞) 수주(水紬) 선주(線紬) 낭릉(浪綾) 갑사(甲紗) 운문(雲紋) 토주(吐紬) 갑주(甲紬) 분주(盆紬) 표주(表紬) 명주(明紬) 생초(生綃 통견(通絹) 조포(造布) 북포(北布) 황저포(黃苧布) 춘포(春布) 문포(門布) 계추리며 삼베 백저(白苧) 극상(極上) 세목(細木) 삯을 받고 맡아 짜기, 청황(靑黃) 적백(赤白) 침향(沈香) 오색(五色) 각색(各色)으로 다 염색(染色)허기, 초상(初喪)난 집 원삼(圓衫) 제복(祭服), 혼장대사(婚葬大事) 음식(飮食) 숙정(熟正), 갖은 제(祭)편 중계(中桂) 약과(藥果), 박산(薄饊 과잘 다식(茶食) 정과(正果) 냉면(冷麪) 화채(花菜) 신선로(神仙爐)며, 각각 찬수(饌需) 약주(藥酒)빚기 수파련(水波蓮) 봉오림과 배상(排床)허기 고임질을 잠시도 놓지 않고 수족(手足)이 다 진(盡)토록, 품 팔아 모일 적에 푼 모아 돈 짓고 돈 모아 냥(兩) 만들어 냥을 지어 관(貫)돈 되니, 일수(日收) 체계(遞計) 장리변(長利邊)에 이웃집 사람들께 착실한 곳 빚을 주어 실수 없이 받아들여 춘추시향(春秋時享)에 봉제사(奉祭祀), 앞 못 보는 가장(家長) 공경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허니, 상하 인리(鄰里)의 사람들,

 

[아니리]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뉘 아니 칭찬허리. 하로난 심 봉사 먼눈을 뻔덕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전생에 무삼 죄로 이생에 나를 만나 날 이렇게 공대(恭待)허니 나는 편타 할지라도 마누라 고생살이 도리어 불안하오. 그러나 어쩔 것이오. 사는 대로 살아가되 오늘은 지원(至願) 할 일이 있소. 우리 연장 사십이나 슬하 일점혈육(一點血肉) 없어 조상 향화(香火) 끊게 되고, 우리 내외 사후라도 초종장사(初終葬事) 소대기(小大朞)며, 연년이 오난 기일, 어느 뉘라서 받들리까. 우리가 사십이 지났으나, 명산대찰(名山大刹) 신공(申供)이라도 드려, 남녀 간에 낳어 보면 평생 한(恨)을 풀겠구만.” 곽씨 부인 이 말 듣고 공손히 대답허되

 

[창조]
“가군(家君)의 정대(正大)하신 마음 몰라 발설치 못하였더니,

 

[아니리]
지금 말씀 그리허오니 지극 신공(申供)하오리다.”

 

[창조]
“옛글에 허였으되 불효삼천(不孝三千)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였으니

 

[아니리]
품을 팔고 뼈를 간들 무슨 일을 못 하오리까. 거 정성껏 빌어 보오.”

 

[중모리]
곽씨 부인 그날부터 품 팔아 모인 제물 왼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대찰 영신당(靈神堂)과 고묘(古廟) 총사(叢祠) 석왕사(釋王寺)며, 석불(石佛) 미륵(彌勒) 서 계신 디 허유허유 다니시며,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시주(引燈施主), 창호시주(窓糊施主) 십왕(十王) 불공(佛供), 칠성불공(七星佛供) 나한(羅漢) 불공(佛供), 가지가지 다 하오니, 공(功)든 탑(塔)이 무너지며, 심든 남기 꺾어지랴? 갑자(甲子) 사월(四月) 초파일야(初八日夜), 한 꿈을 얻은지라. 서기반공(瑞氣蟠空) 하고 오색(五色) 채운(彩雲) 영롱터니, 하날의 선녀(仙女) 하나 옥경(玉京)으로 내려올 제, 머리 위에 화관(花冠)이요 몸에난 원삼(圓衫)이라. 계화(桂花) 가지 손에 들고 부인(夫人) 전(前) 배례(拜禮)허고, 곁에 와 앉는 거동 뚜렷한 달 정신(情神)이 산상(山上)에 솟아난 듯, 남해관음(南海觀音)이 해중(海中)에 다시 온 듯 심신(心身)이 황홀(恍惚)하여, 진정키 어렵더니 선녀(仙女)의 고운 태도(態度), 호치(皓齒)를 반개(半開)허고 쇄옥성(碎玉聲)으로 말을 헌다. “소녀는 서왕모(西王母) 딸이려니 반도(蟠桃) 진상(進上) 가는 길에, 옥진(玉眞) 비자(妃子) 잠깐 만나 수어(數語) 수작(酬酌)을 허옵다가, 시가 조끔 늦은 고로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허여, 인간(人間)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몰랐더니, 태상노군(太上老君) 후토부인(后土夫人), 제불(諸佛) 보살(菩薩) 석가(釋迦)님이 댁(宅)으로 지시(指示)허여 이리 찾아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품 안에 달려들어 놀래어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아니리]
양주(兩主) 몽사(夢事) 의논(議論)허니, 내외(內外) 꿈이 꼭 같은지라. 그달부터 태기(胎氣)가 있난디,

 

[단중모리]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 이불청음성(耳不聽淫聲)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좌불중석(坐不中席) 십 삭일(朔日)이 찬 연후(然後)에

 

[중중모리]
하루난 해복(解腹) 기미(幾微)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심 봉사 좋아라고, 일변(一邊)은 반갑고 일변은 겁(怯)을 내어 밖으로 우르르 나가더니, 짚 한 줌 쑥쑥 추려 정화수(淨華水) 새 소반(小盤)에 받쳐 놓고, 좌불안석(坐不安席) 급(急)한 마음, 순산(順産) 허기를 기다릴 제, 향취(香臭)가 진동(震動)허고, 채운(彩雲)이 두르더니 혼미(昏迷) 중 탄생(誕生)하니, 선인(仙人) 옥녀(玉女) 딸이라.

 

[아니리]
곽씨 부인 정신 차려, 순산(順産)은 하였으나, “남녀 간에 무엇이오?” 심 봉사가 눈 밝은 사람 같고 보면, 아이를 낳을 때 분간(分揀)을 하련만은 앞 못 보는 맹성(盲姓)이라 거 보아 알 수가 있나, 아이를 만져보려 헐 제, 꼭 유장꾼 종장(終張) 조려 내려가듯 허겄다. “자 어디 보자, 어디, 어이쿠.” 거침새 없이 미끈덕 넘어가니, “아마도 마누라 같은 사람 났는가 보오.”

 

[창조]
“만득(晩得)으로 낳은 자식(子息), 딸이라니 원통(冤痛)하오.”

 

[아니리]
“여보 마누라, 그런 말 마오. 아들도 잘못 두면, 욕급선영(辱及先塋) 하는 것이고 딸도 잘만 두면 아들 주고 바꾸리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禮節) 범절(凡節) 잘 가르치고 침선(針線) 방적(紡績) 잘 시켜,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 좋은 배필, 부귀다남(富貴多男)하고 보면 외손봉사(外孫奉祀)는 못하리까? 그런 말 마오.” 심 봉사 좋아라고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三神床)에 받쳐놓고 비난디, 이런 사람 같으면 오죽 조용히 빌련마는, 앞 못 보는 맹인이라, 팩성질이 있든가 보더라. 삼신제왕(三神帝王)님이 깜짝 놀라 삼 천 구만리(九萬里)나 도망가게 빌어 보는디,

 

[중중모리]
“삼십삼천(三十三天) 도솔천(兜率天) 삼불(三佛) 제석(帝釋) 삼신제왕(三神帝王)님네 화위동심(化爲動心) 하여, 다 굽어보옵소서. 사십(四十) 후(後)에 낳은 자식, 한 달 두 달 이슬 맺어, 석 달의 피 어리고, 넉 달의 인형(人形) 삼겨, 다섯 달 오포(五胞) 나고, 여섯 달 육정(六精) 삼겨, 일곱 달 칠규(七竅) 열려, 여덟 달에 팔 만 사 천 털이 나고, 아홉 달에 구규(九竅) 열려, 열 달 만의 찬김 받어, 금강문(金剛門) 해탈문(解脫門) 고이 열어 순산(順産)허니, 삼신(三神)님 넓으신 덕택 백골난망(白骨難忘) 잊으리까? 다만 독녀(獨女) 딸이오나, 동방삭(東方朔)의 명(命)을 주고 태임(太任)의 덕행(德行)이며 대순(大舜) 증자(曾子) 효행(孝行)이며, 기량(杞梁)의 처(妻) 절행(節行)이며, 반희(班姬)의 재질(才質)이며, 곽분양(郭汾陽)의 복(福)을 주어, 외 붇듯 달 붇듯 잔병 없이 잘 가꾸어 일취월장(日就月將)허게 하옵소서.”

 

[아니리]
그때의 곽씨 부인은 산후 손데 없이 찬물에 빨래를 하였드니, 뜻밖에 산후별증(産後別症)이 일어나는디, 전신을 꼼짝달싹 못하고,

 

[창조]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머리야, 사대삭신 육 천 마디 아니 아픈 데가 전혀 없네.”

 

[아니리]
곽씨 부인 생각허니, 아무리 허여도 살길이 없는지라.

 

[진양조]
가군(家君)의 손길 잡고, 유언(遺言)허고 죽더니라. “아이고 여보, 가장님, 내 평생(平生) 먹은 마음, 앞 못 보는 가장님을, 해로백년(偕老百年) 봉양(奉養)타가, 불행만세(不幸晩歲) 당하오면, 초종장사(初終葬事) 마친 후에 뒤를 좇아 죽자 터니, 천명(天命)이 이뿐인지 인연(因緣)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앞 어둔 우리 가장(家長) 헌옷 뉘라 지어주며, 조석공대(朝夕恭待) 뉘라 하리. 사고무친(四顧無親) 혈혈단신(孑孑單身) 의탁(依託)할 곳 바이없어 지팽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다니시다, 구렁에도 떨어지고 돌에 채여 넘어져서, 신세자탄 우는 모양 내 눈으로 본 듯허고, 기한(飢寒)을 못 이기어 가가문전(家家門前) 다니시며, 밥 좀 주오,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난 듯, 나 죽은 혼백(魂魄)인들 차마 어이 듣고 보리, 명산대찰(名山大刹) 신공(申供)드려,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모르고 죽단 말이 웬 말이오.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멀고 먼 황천(黃泉)길을 눈물 겨워 어이 가며, 앞이 막혀 어이 가리. 여보시오, 가장님. 뒷마을 귀덕 어미, 정친(情親)하게 지냈으니, 저 자식을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허면, 괄세 아니 허오리다.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제 발로 걸커들랑 앞을 세고 길을 물어 내 묘(墓) 앞에 찾아와겨 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분묘로다, 가르쳐, 모녀(母女) 상면(相面)을 허게 허오. 할 말은 무궁(無窮)허나 숨이 가퍼 못 하겄소.”

 

[아니리]
앞 어둔 가장에게 어린 자식 제쳐두고 유언하고 돌아눈다.

 

[중모리]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저 아이 이름일랑 청(淸)이라고 불러주오. 저 주랴 지은 굴레, 오색비단(五色緋緞) 금자(金字) 박어, 진옥판(眞玉板) 홍사(紅絲) 수실, 진주(眞珠) 느림 부전 달아 신행(新行) 함(函)에 넣었으니, 그것도 씌어주고, 나라에서 하사(下賜)하신, 크나큰 은(銀)돈 한 푼, 수복강녕(壽福康寧) 태평안락(泰平安樂) 양편에 새겼기로, 고운 홍전(紅氈) 괴불줌치,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채여주고, 나 찌던 옥지환(玉指環)이 손에 적어 못 찌기로 농 안에 두었으니, 그것도 찌여주오.” 한숨 쉬고 돌아누워 어린아이를 끌어다 낯을 한테 문지르며, “아이고, 내 새끼야. 천지도 무심(無心)허고 귀신(鬼神)도 야속허지, 네가 진작 삼기거나, 내가 조끔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이없는 궁천지통(窮天之痛)을 널로 허여 품게 되니, 죽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生死) 간(間)의 무슨 죄냐. 내 젖 망종(亡終) 많이 먹어라.” 손길을 스르르 놓고, 한숨 기워 부는 바람 삽삽비풍(颯颯悲風) 되어 불고, 눈물 맺어 오는 비는 소소세우(蕭蕭細雨) 되었어라. 포깍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는구나.

 

[아니리]
그때의 심 봉사는 아무런 줄 모르고 “여보 마누라. 사람이 병(病)든다고 다 죽을 리가 있겠소. 나 의가(醫家)에 가서 약(藥)지어 올 터이니, 부디 안심허오.” 심 봉사 급한 마음에 의가에 가서 약을 지어 돌아와, 수일승전반(水一升煎半)에 얼른 짜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여보 마누라, 일어나 약 자시오. 이 약 자시면 즉효(卽效)허리라 허옵디다.” 아무리 부른들 죽은 사람이 대답이 있으리오. “어! 식음을 전폐(全廢)터니 기허(氣虛)허여 이러는가?” 양팔에 힘을 주어 일으키려 만져보니, 허리는 뻣뻣하고 수족은 늘어져 콧궁기 찬김 나니, 그제야 죽은 줄 알고 심 봉사가 뛰고 미치는디, 서럼이라는 게 어지간해야 울음도 울고 눈물도 나는 것이지, 사뭇 아람이 차노면 울도 못허고 뛰고 미치는 법이었다.

 

[중중모리]
심 봉사 기가 막혀 섰다 절컥 주잕지며 들었던 약그릇을 방바닥에다 내던지고, “아이고, 마누라. 허허, 이것이 웬일이요? 약 지러 갔다 오니 그새에 죽었네. 약능활인(藥能活人)이요, 병불능살인(病不能殺人)이라더니, 약이 도리어 원수로다. 죽을 줄 알았으면 약 지러도 가지 말고 마누라 곁에 앉어, 서천서역(西天西域) 연화세계(蓮花世界) 환생차(環生次)로 진언(眞言) 외고 염불(念佛)이나 허여 줄걸 절통(切痛)하고 분하여라.” 가삼 쾅쾅 뚜다려,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마누라, 저걸 두고 죽단 말이요? 동지(冬至)섣달 설한풍(雪寒風)에 무얼 입혀 길러내며 뉘 젖 먹여 길러낼거나.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마누라 한번 가면 어느 년(年) 어느 때 어느 시절에 오랴나. 삼천벽도(三千碧桃) 요지연(瑤池宴)의 서왕모(西王母)를 따라가, 황릉묘(黃陵廟) 이비(二妃) 함께 회포(懷抱) 말을 허러가, 천상(天上)에 죄(罪)를 짓고, 공(功)을 닦고 올라가. 나는 뉘를 따라 갈거나.” 밖으로 우루루 나가더니 마당에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동네사람들! 차소위(此所謂) 계집 추는 놈은 미친놈이라 허였으되, 현철(賢哲)하고 얌전한 우리 각시가 죽었소!” 방으로 더듬더듬 더듬더듬 들어가 마누라 목을 덥석 안고 낯을 대고 문지르며, “아이고, 마누라, 재담(才談)으로 이러나, 농담(弄談)으로 이러나. 실담(失談)으로 이러는가. 이 지경이 웬일이여. 내 신세는 어쩌라고 이 죽엄이 웬일이오!”

 

[아니리]
동리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보시오, 봉사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죽은 사람 따라 가면 어린 자식 어쩌시랴오?”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동리 남녀노소 모아들어 초종지례(初終之禮)를 마치난디, 곽씨 시체 소방상(小方牀) 대뜰 위에 덩그렇게 올려놓고, 명정(銘旌) 공포(功布) 삽선(翣扇) 등물(等物) 좌우로 갈라 세우고 거리제를 지내는디,

 

[창조]
영이기가(靈輀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 재진견례(載陳遣禮) 영결종천(永訣終天) 관음보살(觀音菩薩). 춘초(春草)는 연년이 푸르건만 왕손(王孫)도 귀불귀(歸不歸)라. 관음보살.

 

[중모리]
요령은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허 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북망산천(北邙山川)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안산(案山)이 북망이로구나. 어 넘차 너화너. 새벽 종다리 쉰 길 떠  서천(西天) 명월(明月)이 다 밝아온다. 어 넘차 너화너, 인제 가면 언제나 올라요 오시난 날을 일러 주오. 어너 어허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물가 가재는 뒷걸음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디, 원산(遠山) 호랑이 술주정을 허네. 어 넘차 너화너. 인경 치고 파루(罷漏)를 치니 각댁(各宅) 하님이 개문(開門)을 헌다. 어 넘차 너화너. 어너 어너 어허너 어허너 어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그때의 심 봉사는 어린 아이를 강보(襁褓)에 싸 귀덕 어미에게 맡겨두고, 곧 죽어도 굴관제복(屈冠祭服) 지어 입고, 상부 뒤채를 검쳐 잡고, “아이고 마누라,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나허고 가세, 나허고 가세! 산첩첩(山疊疊) 노망망(路茫茫)에 다리가 아퍼서 어이 가며, 일침침(日沈沈) 운명명(雲冥冥)에 주점(酒店)이 없어서 어이 가리. 부창부수(夫唱婦隨) 우리 정분(情分) 날과 함께 가사이다.” 상여(喪輿)는 그대로 나가며 어허 넘차 너화너.

 

[중중모리]
어너 어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여보소 친구네들, 세상사가 허망허네. 자네가 죽어도 이 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 팔자로다. 어넘차 너화너. 현철허신 곽씨 부인 불쌍허게 떠나셨네. 어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어,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아니리]
산천에 올라가 깊이 파고 안장(安葬) 후에 평토제(平土祭)를 지낼 적에, 심 봉사가 이십 후 안맹(眼盲)이라 배운 것이 있어 그전 글이 문장(文章)이었든가 보더라. 축문(祝文)을 지어 신세 자탄으로 독축(讀祝)을 허는디.

 

[창조]
“차호부인(嗟乎夫人), 차호부인, 요차요조숙녀혜(邀此窈窕淑女兮)여, 상불고이고인(尙不孤而故人)이라, 기백년이해로(期百年而偕老)터니 홀연몰혜언귀(忽然沒兮焉歸)오. 유치자이영서(有稚子而永逝)허니, 이걸 어이 길러 내며, 누삼삼이첨금혜(淚滲滲而沾襟兮)여, 지는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이소혼혜(心耿耿而消魂兮)여, 살길이 전이 없네.

 

[진양조]
주과포혜(酒果脯醯) 박전(薄奠) 허나, 만사(萬事)를 모두 잊고 많이 먹고 돌아가오.” 무덤을 검쳐 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이 벗이 되어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허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四窮) 중에 첫머리요, 아들 없고 눈 못 보니, 몇 가지 궁(窮)이 되단 말가?” 무덤을 검쳐 안고 내리둥굴 치둥굴며, 함께 죽기로만 작정을 헌다.

 

[아니리]
동네사람들이 만류하며, “죽은 사람 따라가면, 어린 자식 어쩌랴오. 어서어서 가옵시다.”

 

[창조]
심 봉사 하릴없어, 동인(洞人)들께 붙들리어

 

[중모리]
집이라고 들어오니, 부엌은 적막허고, 방안은 텅 비었난디. 심 봉사 실성발광(失性發狂) 미치는디, 얼싸덜싸 춤도 추고, 허허, 웃어도 보며, 지팽막대 흩어 짚고 이웃집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혹 우리 마누라 여기 안 왔소?” 아무리 부르고 다녀도 종적(蹤迹)이 바이없네. 집으로 돌아와서 부엌을 굽어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방으로 들어가서 쑥내 향내 피워 놓고 마누라를 부르면서 통곡으로 울음 울 제. 그때의 귀덕 어미 아이를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 아이를 보시드래도, 그만 진정 하시오.” “허허, 귀덕 이넨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 어미는 건너가고, 아이 안고 자탄할 제. 강보(襁褓)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심 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새끼야, 너의 모친 먼 디 갔다. 낙양동촌이화정(洛陽東村梨花亭)에 숙(淑) 낭자(娘子)를 보러 갔다. 죽상체루(竹上涕淚) 오신 혼백(魂魄) 이비(二妃) 부인(夫人)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울음을 우느냐? 강목수생(剛木水生)이로구나. 내가 젖을 두고 안 주느냐, 그저 응아, 응아, 응아!” 심 봉사 화가 나서 안었던 아이를 방바닥에다 밀어 놓고 “죽거라, 썩 죽어라!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아 그 초칠(初七) 안에 어미를 잃어야? 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으면 너도 못 살리라.” 아이를 도로 안고, “아가 우지마라, 어서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 먹여주마. 우지마라 내 새끼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린아이는 기진(氣盡)허고, 어둔 눈은 더욱 침침하여 날 새기를 기다릴 제,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적에, 한 품에 아이를 안고 한손에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우물가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초칠 안에 어미 잃고 기허(氣虛)허여 죽게 되니,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우물가에 오신 부인 철석(鐵石)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跖 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기가 있고, 저 집에도 아기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 말고 자주자주 다니시면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 굶기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허허, 고맙소, 수복강녕(壽福康寧)허옵소서.” 이 집 저 집 다닐 적에 삼베길쌈 허노라고 흐히 하히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 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기음 매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아가서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白石淸灘) 시냇가에 빨래하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아가서,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 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 되씩 떠 주며 “맘 쌀이나 허여주오.” 심 봉사 좋아라고 “어허 고맙소. 수복강녕(壽福康寧)허옵소서.”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 올 제, 어덕 밑에 쭈푸려 앉어 아이를 어룬다. “아이고, 내 딸 배부르다. 배가 뺑뺑하구나!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하면 부귀다남(富貴多男)을 한다더라. 너도 어서어서 자라나서, 너의 모친 닮아 현철허고, 얌전허여 애비 귀염을 보이어라.

 

[단중모리]
둥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백미(白米) 닷 섬에 뉘 하나, 열 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이야. 어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이리 보아도 내 딸, 저리 보아도 내 딸.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엄쥐엄, 자깡자깡 섬마 둥둥 내 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하나 얻어다, 두룸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감은 새앙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한쪽이 남았기에 한쪽은 내가 먹고 한쪽은 너를 주마, 우루루루루루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아이 안고 집으로 돌아와 보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 차로 나갈 적에,

 

[단중모리]
삼베 전대(纏帶) 외동 지어 왼 어깨 들어 메고, 동냥 차로 나간다. 여름이면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동냥, 어린아이 맘죽 차로 쌀 얻고 감을 사, 허유허유 돌아올 제. 그때의 심청이난, 하늘의 도움이라 일취월장(日就月將) 자라날 제, 십여 세가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忌祭祀)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父親)의 공양사(供養事)를 의법(依法)이 허여가니, 무정세월(無情歲月)이 아니냐.

 

[아니리]
하로난 심청이 부친 전에 단정(端正)히 앉아, “아버지!” “왜야?” “아버지 오날부터는 아무 데도 가지 마옵시고 집에 가만히 계시오면,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朝夕供養)하오리다.” “여보아라, 청아. 내 아무리 곤궁헌들 무남독녀 너 하나를 밥을 빈단 말이 될 말이냐? 워라 워라, 그런 말 마라.”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난 현인(賢人)으로, 백리(百里)에 부미(負米) 허고, 순우의(淳于意) 딸 제영(緹縈 이난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贖罪)허고, 말 못하는 까마귀도 공림(空林) 저문 날에 반포보은(反哺報恩)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微物)만 못하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할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디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여봐라, 청아. 너 이제 허는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 너의 어머니 뱃속에서 배워가지고 나왔느냐, 네 성의가 그럴진대, 한 두어 집만 다녀오너라.”

 

[늦은 중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밥 빌러 나갈 적에, 헌 베 중의(中衣) 다님 매고 말만 남은 헌 초마에, 깃 없난 헌 저고리, 목만 남은 질 보선에, 청목(靑木) 휘양 눌러 쓰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맞은 병신처럼 옆걸음 쳐 나갈 적에, 원산(遠山)의 해 비치고, 건너 마을 연기(煙氣) 일 제, 주적주적 건너가 부엌문전 다다르며 애근이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저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 먹여, 요만큼이나 자랐으나,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구완헐 길 전혀 없어 밥 빌러 왔사오니 한 술씩만 덜 잡숫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주옵시면, 치운 방 우리 부친 구완을 허겄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슬퍼허리. 그릇 밥 김치, 장을 애끼잖고 후히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저 혼자만 먹사리까, 부친 전에 가 먹겄내다.” 한두 집이 족헌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 올 제,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원산(遠山)의 해가 조금 비쳤더니 벌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半日)이 되었구나.”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에 들어서며 “아버지, 칩긴들 아니 허며 시장킨들 안 허리까. 더운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 밥이요, 저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갈치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 봉사 기가 막혀 딸의 손을 부여다 입에 대고 훅, 훅, 훅 불며 “아이고, 내 딸 칩다. 불 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냐. 너의 모친이 살았으면, 이런 일이 있겠느냐?”

 

[아니리]
부친을 위로허여 진지를 잡수시게 한 후, 세월(歲月)이 여류(如流)허여, 심청 나이 벌써 십오 세가 되었구나. 효행(孝行)이 출천(出天)하고 얼굴이 일색(一色)이라, 이렇단 소문이 원근(遠近)에 낭자(狼藉)허니, 하로난 무릉촌(武陵村) 장 승상(丞相) 댁 부인이 시비(侍婢)를 보내어 심청을 청(請)하였구나. 심청이 부친 전 여짜오되, “아버지.” “왜야?” “무릉촌, 장 승상 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사오니 어찌 하오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이 애 청아, 그 댁 부인과 너의 모친과는 별친(別親)하게 지내었다. 네가 진즉(趁卽) 가서 뵈올 것을 이제 청하도록 있었구나. 어서 건너가되, 아미(蛾眉)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허고 수이 다녀오너라.” 부친의 허락을 받고,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간다. 무릉촌을 당도허여, 승상 댁을 찾어가니, 좌편(左便)은 청송(靑松)이요, 우편(右便)은 녹죽(綠竹)이라. 정하(庭下)의 섰난 반송(盤松) 광풍(狂風)이 건듯 불면, 노룡(老龍)이 굼니난 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취 일어나서 나래를 땅의다 지르르르르 끌며, 뚜루루루 낄룩 징검징검 알연성(戛然聲)이 거이허구나.

 

[중중모리]
계상(階上)의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座)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은지라, “무릉에 내가 있고 도화동(桃花洞)에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개화(開化)로다. 니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 일찍 기세(棄世)허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皇城) 가 미환(未還) 허고 어린 자식 손자 없어, 적적(寂寂)한 빈 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는 것 고서(古書)로다. 네 신세를 생각허면 양반의 후예(後裔)로 저렇듯 곤궁(困窮)허니, 나의 수양딸이 되어 여공(女功)도 숭상(崇尙)허고, 문필(文筆)도 학습허여 말년(末年) 재미를 볼까 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아니리]
심청이 여짜오되, “모친 별세한 후, 앞 못 보는 아버지는 저를 아들 겸 믿사옵고, 저는 부친을 모친 겸 믿사오니, 분명 대답 못하겠내다.” “기특타, 내 딸이야. 나는 너를 딸로 아니, 너는 나를 어미로 알아다오.” 심청이 여짜오되,

 

[창조]
“치운 방 우리 부친 저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겼네다.”

 

[아니리]
부인이 허락허고, 비단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 함께 보내겄다. 그때의 심 봉사는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한기(寒氣) 들 제, 먼 데 절 쇠북 소리, 날 저문 줄 짐작하고,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어찌하여 못 오느냐, 부인이 잡고 만류(挽留)허느냐, 길에 오다 욕(辱)을 보나? 백설은 펼펄 흩날린디, 후후 불고 앉었느냐?” 새만 푸루루루, 날아들어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낙엽만 버썩, 떨어져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아무리 부르고 기다려도 적막공산(寂寞空山)에 인적이 끊쳤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놈의 노릇을 어찌를 할거나, 신세(身世) 자탄(自歎)으로 울음을 운다.

 

[자진모리]
“이래서는 못 쓰겄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가면서 심청을 부르난디 “청아, 오느냐? 어찌허여 못 오느냐?” 그때의 심 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 가만히 앉아 먹어노니, 도랑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 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나가다가, 길 넘어 개천 물에 한 발 자칫 미끄러져 거꾸로 물에가 풍! “아이고, 사람 살려! 어푸, 도화동 사람들 심학규 죽네!”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려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그저 점점 들어가니, “아이고 잘 죽는다. 정신도 말끔허고 숨도 잘 쉬고 아픈 데 없이 잘 죽는다.”

 

[아니리]
한참 이리 요란헐 제.

 

[엇모리]
중 하나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온디, 이 중은 올라간다. 이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夢恩寺) 화주승(化主僧)이라. 절을 중창(重創)허랴 하고 시주(施主) 집 내려왔다, 날이 우연히 저물어져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저 중의 맵시 보소. 굴갓 쓰고, 장삼(長衫) 입고, 백팔염주(百八念珠) 목에 걸고, 단주(短珠) 팔에 걸어,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철 툭탁 짚고,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중이라 허는 게 속가(俗家)에 가도 염불, 절에서도 염불. 염불을 많이 허면 극락세계(極樂世界) 간다더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원산(遠山)은 암암(暗暗)허고 설월(雪月)이 돋아오는디, 백저포(白紵布) 장삼은 바람결에 펄렁펄렁 염불을 허는디, “아, 어허, 아, 아. 상래소수불공덕(上來所修佛功德) 회향삼처실원만(回向三處悉圓滿)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제궁종실각안녕(諸宮宗室各安寧)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허고 올라갈 제, 한곳 당도하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리거늘.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馬嵬驛) 저문 날의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陽太眞)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호가 변화하여 날 홀리는 울음인거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竹杖)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끼웃거리고 올라갈 제 한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이 개천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자진엇모리]
저 중의 급한 마음, 저 중의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내던지고, 버선, 행전, 다님 끄르고, 고두 누비바지 가래 따달 딸딸 걷어 자개미 딱 붙여, 무논의 백로(白鷺) 격으로, 징검징검 징검거리고 들어가 심 봉사 꼬드래 상투를 에뚜루미 쳐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보던 심 봉사라.

 

[아니리]
심 봉사 정신 차려, “죽을 사람을 살려주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 거 뉘가 날 살렸소?”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이온데, 시주 집 내려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봉사님을 구하였소.” “허허, 활인지불(活人之佛)이라더니 대사가 나를 살렸소그려.” “그 중이 허는 말이 여보 봉사님. 꼭 내 말을 들으면 두 눈을 뜰 것이오마는······.” 심 봉사가 눈 뜬다는 말을 듣더니 “아니 그 어쩐 말이오?”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만 우리 절에 시주하면 삼 년 내로 눈을 뜨오리다.” 심 봉사가 눈 뜬단 말에 후사(後事)는 생각지 않고 대번 일을 저지르난디, “여, 대사, 자네 말이 그러할진대,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勸善文)에 적소 적어.”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세력을 헤아리면 삼백 석은 말고 삼백 주먹이 없는 이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오?” 심 봉사 화를 내어 “자네가 내 수단을 어찌 아는가, 잔말 말고 적게 적어!” 저 중이 권선에 적은 후에 “여보시오 봉사님, 부처님을 속이면 앉은뱅이가 될 것이니 부디 명심(銘心)하오.”

 

[창조]
중은 올라가고 심 봉사는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허니 이런 실(實)없는 일이 없든가 보드라.

 

[중모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사(邪) 들렸네. 공양미 삼백 석을 내가 어찌 구하리오. 살림을 팔자 허니 단돈 열 냥을 누가 주며, 내 몸을 팔자 허니, 앞 못 보는 병신 몸을 단돈 서푼을 누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면은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 놈이 앉은뱅이가 되거드면, 꼼짝없이 내가 죽었구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될지라도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어 내가 후회로구나, 저기 가는 대사, 권선의 쌀 삼백 석 에우고 가소, 대사!” 실성발광(失性發狂) 기가 막혀 혼자 앉어 탄식헌다.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에 들어서며 “아버지.”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라 발 구르며 “이것이 웬일이오?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 웬일이며, 솜 없는 헌 의복에 물 흔적이 웬일이오. 나를 찾아 나오시다, 개천에 넘어져서 이 지경을 당하였소. 승상 댁 노부인(老婦人)이 굳이 잡고 만류허여 어언간(於焉間) 더디었소. 말을 허오 말을 허오 말을 허여, 답답허여 못 살겄소.”

 

[아니리]
심 봉사 하릴없어 “여보아라, 청아. 너를 기다리다 못하여 더듬더듬 나가다가 이 앞 개천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난디, 뜻밖에 몽은사 화주승이 올라가다 나를 구해주고, 날더러 공양미 삼백 석만 몽은사 불전(佛前)에 시주(施主)하면 삼 년 내로 눈을 뜬다 허더구나. 그리하여 후사는 생각지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에 적어 주었으니 이를 어쩔거나. 아무리 생각허여도 백계무책(百計無策)이로구나.”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王祥)은 고빙(叩氷) 허여 얼음 궁기 잉어 얻고, 맹종(孟宗)은 읍죽(泣竹) 허여 눈 속에 죽순 얻어 양친(兩親) 성효(誠孝)를 하였으며, 곽거(郭巨)라는 옛 사람은 부모 반찬허여 놓으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고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효도(事親之孝道)가 옛사람만 못하여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부친을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 정(淨)히 허고 지극정성(至極精誠)을 드리난디,

 

[진양조]
후원(後園)에 단을 뭇고 북두칠성횡야반(北斗七星橫夜半)에 촛불을 돋워 켜고, 정화수를 받쳐 놓고, 두 손 합장 무릎을 꿇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 비나이다. 천지지신(天地之神) 일월성신(日月星辰) 화의동심(和議動心) 하옵소서. 무자(戊子) 생(生) 소녀 아비, 삼십 전 안맹(眼盲)허여 오십이 장근(將近)토록 시물(視物)을 못하오니,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아비 눈을 밝히소서. 인간의 충효지심(忠孝之心) 천신(天神) 어이 모르리까. 칠 일 안에 어미 잃고 앞 어둔 부친에게 겨우겨우 자라나서 십오 세가 되었으나, 욕보지덕(慾報之德)인데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부친 눈을 뜬다허니, 명천(明天)이 감동허여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급(支給)허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렇다시 빌어갈 제,

 

[중중모리]
하루난 문전의 웨난 소리 “우리는 남경(南京) 장사 선인으로 인당수(印塘水) 인(人) 제수(祭需)를 드리고저, 십오 세나 십육 세나 먹은 처녀(處女)를 사려허니, 몸 팔 일이 뉘 있습나? 있으면 있다 대답을 허시오. 아 아”

 

[아니리]
심청이 이 말을 듣더니 천재일시(千載一時)의 좋은 기회(機會)로구나, 이웃사람 알지 않게 몸을 은신(隱身)하고, 선인 한 사람을 청(請)하여 여짜오되,

 

[창조]
“소녀난 당년(當年) 십오 세인데 부친을 위하여 몸을 팔려 하오니

 

[아니리]
나를 사 가심이 어떠하오?” 선인이 좋아라고, “출천지대효(出天之大孝)로고, 값은 얼마나 주오리까?”

 

[창조]
“더도 덜도 말고 공양미 삼백 석만 내월(來月) 십오일 내로 몽은사로 올려주오.”

 

[아니리]
“참으로 효녀로고, 그리하오, 염려 마오. 그러나 우리도 내월 십오일이 행선(行船) 날이오니 어찌 하오리까?”

 

[창조]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아니리]
피차(彼此) 약속을 정하고 방으로 들어와 생각허니, 아무리 허여도 부친을 아니 속일 수가 없는지라, 심청 같은 효녀가 부친을 속일 리가 있으리오마는, 속인 것도 또한 효성이라, 부친을 속이는디, “아버지, 오늘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게 되었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 봉사 깜짝 놀라 “아가, 거 웬 말이냐?” “아버지, 전일에 승상 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말씀한 걸 분명 대답 못 했지요.” “그래서?” “오날 제가 건너가 아버지 사정을 여쭈오니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시고 저를 수양딸로 데려간다 하옵디다.” “아가, 그 일 참 잘되었다. 그러면 언제 가기로 하였느냐?” “내월 십오 일에 가기로 하였네다.” “그러면 나는 어쩌고?” “아버지도 모시고 가기로 하였네다.” “그렇지, 눈먼 놈 나 혼자만 둘 것이냐, 잘되었다. 아따, 야야, 그 일 참 잘되었다.” 부친의 맺힌 근심을 위로하고 행선 날을 기다릴 제, 

 

[진양조]
눈 어둔 백발(白髮) 부친 생존 시에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 십오 세의 죽을 일을 생각허니, 정신이 막막허고 흉중(胸中)이 답답허여 하염없는 서름이 간장(肝腸)으로 솟아난다. 부친의 사시(四時) 의복 빨래허여 농 안에 담어두고, 갓 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행선 일을 생각허니, 하룻밤이 격(隔)한지라, 모친 분묘(墳墓) 찾어가서, 주과포혜 차려놓고, “아이고, 어머니. 불효(不孝) 여식(女息) 심청이난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 몸이 팔려 제수로 가게 되니, 불쌍헌 아버지를 차마 어이 잊고 가며, 분묘의 돋난 풀을 뉘 손으로 벌초(伐草)하며, 연년(年年)이 오난 기일(忌日) 뉘라서 받들리까? 내 손으로 부은 술을 망종(亡終) 흠향(歆饗)허옵소서.” 사배하직(四拜下直)허고 집으로 돌아와, 부친을 위로하고 밤 적적(寂寂) 삼경이 되니, 부친이 잠든지라 후원으로 돌아가서 사당 문을 가만히 열고 분향사배 우난 말이 “불효여식 청이는 선영향화(先塋香火)를 끊게 되니 불승영모(不勝永慕) 허옵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부친이 잠들어 아무런 줄 모르거날 심청이 기가 막혀 크게 울든 못허고 속으로 느끼난디 “아이고 아버지, 아버지를 어찌허고 가리. 이내 한 몸 없어지면 동네 걸인이 또 될 것이니, 어찌 잊고 돌아가리,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밤이 몇 밤이며, 날 볼 날이 몇 날이오.” 얼굴도 대어보고 수족(手足)도 만지면서 “아버지, 오늘밤 오경(五更) 시를 함지(咸池)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扶桑)에다 맬 양이면, 불쌍허신 아부지를 일시라도 더 뵈련마는 인력(人力)으로 어이 허리.” 천지가 사정이 없어 벌써 닭이 “꼬끼오.” “닭아 우지마라. 반야(半夜) 진관(秦關)의 맹상군(孟嘗君)이 아니어든 니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을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중모리]
하량낙일수운기(河梁落日愁雲起)는 소통국(蘇通國)의 모자 이별, 용산(龍山)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이라. 상봉(相逢)헐 날이 있건마는 우리 부친 이별이야 어느 때나 다시 보리.

 

[아니리]
벌써 동방(東方)이 밝아지니, 심청이 하릴없어 정신을 다시 차려 “이래서는, 못쓰겠다. 부친 망종이나 지으리라.” 부엌으로 나오니 벌써 문밖에 선인들이 늘어섰거늘, 심청이 빨리 나가 “여보시오 선인네들, 부친 진지나 잡수시게 허고 떠나는 게 어떠하오.” 선인이 허락허니 아침밥을 얼른 지어 소반(小盤) 위에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일어나 진지 잡수세요.” “얘, 오늘 아침밥은 매우 일구나. 그런데 청아 간밤에 내가 묘한 꿈을 꾸었느니라. 니가 수레를 타고 끝없는 바다로 한없이 가 보이드구나. 그래서 내가 뛰고 궁글고 야단(惹端)법석을 쳤는디, 수레라 허는 것은 귀인이 타는 것이여. 내가 꿈 해몽을 허여 보았지. 꿈에 눈물은 생시에 술이라. 오늘 장 승상 댁 부인이 너를 다려 가려고 가마를 보내실란가 보다. 오늘 장 승상 댁에서 술에다 고기에다 떡에다 잘 먹을 꿈인가부다.” 심청이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허고, “아버지 그 꿈이 장(壯)히 좋습니다. 진지 잡수세요.” “아가, 오늘 아침 반찬이 매우 걸구나, 뉘댁에 제사 지냈더냐?” 진지 상을 물리치고, 담배 붙여 올린 후에,

 

[창조]
심청이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머니 앉었다가,

 

[아니리]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제는 부친을 더 속일 수가 없는지라.

 

[자진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부친 앞으로 우르르르 “아이고, 아버지!” 한 번 부르더니 말 못 허고 기절한다. 심 봉사 깜짝 놀라 “아이고, 이거 웬일이냐. 어허, 이거 웬 일이여. 아니 얘가 급체(急滯)하였는가, 아가 정신 차려라, 누가 봉사 딸이라고 정가하드냐.”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은 아버지를 속였소.” “아, 이놈아, 속였으면 무슨 큰일을 속였난디 이렇게 아비를 놀라게 한단 말이냐? 말하여라, 답답허다. 말하여라.”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의 제수로 오늘이 행선 날이요. 어느 때나 뵈오리까.”

 

[아니리]
그때의 심 봉사는 눈 뜨기는커녕, 눈 빠질 말을 들었으니, 이 일이 어찌 되겄느냐? 심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고 “에이”

 

[휘중중모리]
“허허 이것 웬 말이냐? 못 허지야 못 하여 아이고 청아! 애비보고 묻도 않고, 너 이것이 웬일, 못 허지야 못 하여, 눈을 팔아 너를 살디 너 팔아 눈을 뜬들 무엇 보자 눈을 뜨랴. 철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 설움을 너 들어라. 너의 모친 너를 낳고 칠 일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본 늙은 애비가 품안에 너를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동냥젖 얻어 먹여 이만큼이나 장성(長成) 묵은 근심 햇근심을 널로 하여 잊었더니, 이것이 웬일이냐. 나를 죽여 묻고 가면 갔지, 살려두고는 못 가리라.” 그때의 선인들이 문밖에 늘어서 “심 낭자 물때 늦어 가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 봉사 이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 “에이, 무지한 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사서 제지낸 디 어디서 보았느냐? 옛글을 모르느냐?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물 적에 탕 임군 어진 마음 사람 잡아 빌랴허니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몸으로 희생되어 전조단발(剪爪斷髮) 신영백모(身嬰白茅) 상림(桑林) 뜰에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大雨方數千里)에 풍년이 들었단다. 나도 오늘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아이고,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 딸 심청 어린 것을 꼬염 꼬염 꼬여다가 인당수 제수 허면 네 이놈들 잘될쏘냐?”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이게 웬일이여?” 심청이 기가 막혀 부친을 부여안고 “아이고 아버지, 지중한 부녀(父女) 천륜(天倫)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리까? 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좋은 디 장가들어 칠십 생남(生男) 하옵소서.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아니리]
선인들이 이 정상(情狀)을 보고, 전곡(錢穀)을 따로 내여 동인들께 부탁허되, 심 봉사 평생 먹고 입을 것을 내어 주었구나. 그때에 무릉촌 장 승상 댁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거날 심청이 부친 전 여짜오되 “아버지 장 승상 댁 부인이 청하였사오니 어찌하오리까?”

 

[창조]
“어따, 그 댁에난 열 번이라도 가고 백 번이라도 가거라.”

 

[아니리]
선인들께도 말허고 무릉촌을 건너갈 제,

 

[세마치]
시비 따라 건너간다. 울며불며 건너갈 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양친(兩親)이 구존(俱存)허여 부귀영화로 잘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허여 십오 세의 이 세상을 떠나는고.” 그렁저렁 길을 걸어 무릉촌을 당도허니, 부인이 영접하여 “예이 천하 무정한 사람아! 나는 너를 딸로 여기는디 너는 나를 속였느냐? 효성은 지극허나 앞 못 본 너의 부친 뉘게 의탁(依託)허랴느냐?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금 내가 줄 터이니, 선인들과 해약(解約)하라.” 심청이 여짜오되, “장사하는 선인들께 수삭(數朔) 만의 해약허면 선인들도 낭패오니, 이제 후회 쓸데 있소. 값을 받고 팔린 몸이 이제 두말 허오리까?” 부인이 심청의 기색을 보고 다시 두말 못허시고 “니 진정 그럴진대, 너의 화상이나 그려 널 본 듯이 보겠노라.” 화공을 즉시 불러 심 낭자 생긴 형용 역력(歷歷)히 잘 그려라. 화공이 영을 듣고 오색단청 풀어놓고 화용월태(花容月態) 고운 얼굴 모란화 한 송이가 세우 중에 젖인 듯이, 난초 같은 푸른 머리 두 귀밑에 따인 것과 녹의홍상 입은 태도 낱낱이 그려내어 족자(簇子) 떨어 걸어 놓으니, 심청이가 둘이로다. 부인이 화제(畵題)를 쓰시난디, 생기사귀일몽간(生奇死歸一夢間)허여 연장하필누삼삼(姸粧何必淚滲滲 고 세간(世間)의 최유단장처(最有斷腸處)에 초록강남인미환(草綠江南人未歸)이라. 부인이 심청을 부여안고 “인제 가면 언제나 올거나 오는 날이나 일러다오.”

 

[아니리]
심청이 일어서며

 

[창조]
“물때가 늦어가니 어서 건너가겄네다.”

 

[아니리]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선인들은 재촉하고 부친은 뛰고 우니, 심청이 하릴없이 동네 어른들께 부친을 의탁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따라간다.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 자락을 거듬거듬 걷어안고 비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친다. 엎더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天方地軸) 따라갈 제, 건넛마을 바라보며 “이진사댁 작은 아가 작년 오월 단오야(端午夜)의 앵두 따고 노던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七夕夜)의 함께 걸교(乞巧)하잤드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는 양친이 구존허니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슬하(膝下)를 떠나 죽으러 가는 길이로다.” 동네 남녀노소(男女老少) 없이 눈이 붓게 모도 울고 하느님이 아옵신지 백일(白日)은 어디 가고 음운(陰雲)이 자욱허여 청산(靑山)도 찡그난 듯 초목(草木)도 눈물진 듯 휘늘어져 곱던 꽃이 이울고저 빛을 잃고 춘조(春鳥)는 다정(多情)허여 백반제송(百般啼送) 허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허였간디 환우성(喚友聲) 지어 울고, 뜻밖의 두견(杜鵑)이난 귀촉도(歸蜀道)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 가지 위에 앉어 울겄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가 어이 돌아오리. 한곳을 당도허니, 광풍이 일어나며 해당화(海棠花) 한 송이가 떨어져 심청 얼굴에 부딪치니 꽃을 들고 하는 말이 “약도춘풍불해의(若道春風不解意)면 하인취송낙화래(何因吹送落花來)라, 송(宋) 무제(武帝) 수양공주(壽陽公主) 매화장(梅花粧)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언제 다시 돌아오리. 죽고 싶어 죽으랴마는 수원수구(誰怨誰咎) 어이허리.” 걷는 줄을 모르고 울며불며 길을 걸어 강변을 당도허니, 선두(船頭)에다 도판(渡板)을 놓고 심청을 인도허는구나.

 

[아니리]
이때의 심청이는 세상사(世上事)를 하직허고 공선(供船)의 몸을 싣고 동서남북 지향 없이 만경창파(萬頃蒼波) 높이 떠서 영원히 돌아가는구나.

 

[진양조]
범피중류(泛彼中流)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茫茫)한 창해(滄海)이며, 탕탕(蕩蕩)헌 물결이라.  백빈주(白蘋洲) 갈매기는 홍료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삼강(三江)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만 돌아든다. 요량(嘹喨)한 남은 소리 어적(魚笛)이언마는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의 수봉(數峰)만 푸르렀다. 관내성중만고심(欵乃聲中萬古心)은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長沙)를 지내가니 가태부(賈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泊羅水)를 바라보니 굴삼려(屈三閭)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도 허시든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當到)하니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鄉關何處是)요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는 최호(崔顥) 유적(遺跡)인가. 봉황대(鳳凰台)를 돌아드니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青天外)요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는 태백(太白)이 노던데요. 심양강(潯陽江)을 당도허니 백낙천(白樂天) 일거(一去) 후(後)에 비파성(琵琶聲)도 끊어지고 적벽강(赤壁江)을 돌아드니 소동파(蘇東坡) 노던 풍월(風月) 의구(依舊)허여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 일세지웅(一世之雄) 이금(而今)에 안재재(安在哉)요. 월락오제(月落烏帝) 깊은 밤에 고소성외(姑蘇城外)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소리 객선(客船)에 뎅 뎅 들리거늘, 진회수(秦淮水)를 바라보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亡國恨)을 모르고서 연롱한수(煙籠寒水) 월롱사(月籠沙)에 후정화(後庭花)만 부르더라.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이 호상에 솟아난 듯 무산(巫山)의 돋는 달은 동정호(洞庭湖)로 비쳐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이 거울 속에 푸르렀다. 창오산(蒼梧山)이 아득허니 황릉묘 잠겼어라. 삼협(三峽)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遷客) 소인(騷人)이 눈물을 몇몇이나 뿌렸든고. 팔경(八景)을 다 본 후에,

 

[중모리]
한곳을 당도허니 향풍(香風)이 일어나며, 죽림(竹林) 사이로 옥패(玉佩) 소리 들리더니 어떠한 두 부인(婦人)이 선관(仙冠)을 높이 쓰고 신음(呻吟) 거려 나오면서 “저기 가는 심 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창오산붕상수절(蒼梧山崩湘水絕) 허여 죽상지루내가멸(竹上之淚乃可滅)이라. 천추(千秋)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오늘날 출천대효(出天大孝) 너를 보니 오죽이나 흠전(欽傳)허랴. 요순(堯舜) 후(後) 기천(幾千) 년(年)의 지금의 천자(天子) 어느 뉘며 오현금(五絃琴) 남풍시(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수로(水路) 먼먼 길을 조심허여 잘 가거라.” 이는 뉜고 허니, 요녀순처(堯女舜妻) 만고열녀(萬古烈女) 이비(二妃)로다. 소상강을 바삐 건너 오강(烏江)을 당도허니 한사람이 나오난디, 키는 구 척(尺)이나 되고 면여거륜(面如車輪)허여 미간이(眉間) 광활(廣闊)허고 두 눈을 감고 가죽을 무릅쓰고 우루루루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 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슬프다. 우리 오왕(吳王)! 백비(伯嚭) 의 참소(讒訴) 듣고 촉루검(屬鏤劍)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에 가죽으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더니, 장부의 원통함이 월(越) 범려(范蠡) 멸오(滅吳) 함을 내 일찍 눈을 빼어 동문 상에 걸고 왔네. 세상에 나가거든 내 눈 찾어 전해다오, 천추에 원통함이 눈 없는 것이 한이로세.” 이는 뉜고 허니 오(吳)나라 충신 오자서(伍子胥)로다. 오강을 바삐 건너 멱라수를 당도허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澤畔)으로 나오드니 슬피 탄식 우는 말이 진(秦)나라 속임 입어 삼 년 무관(武關)에 고국을 바라보며 미귀혼(未歸魂)이 되었더니 박랑퇴성(博浪槌聲) 반기 듣고 속절없는 동정(洞庭) 달에 헛춤만 추었노라. 뒤에 오난 한 사람은 안색(顔色)이 초췌(憔悴)하고 형용(形容)이 고고(枯槁)허니 이난 초(楚)나라 굴원이라. 죽은 지 수천 년의 정백(精魄)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와 보이니 이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다.

 

[진양조]
배의 밤이 몇 밤이며 물의 날이 몇 날이나 되든고, 무정한 사오(四五) 삭(朔)을 물과 같이 흘러가니, 추풍삽이석기(秋風颯以夕起)하고 옥우곽기쟁영(玉宇廓其崢嶸)이라.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강한(江漢)에 귤농(橘濃) 황금(黃金)이 천편(千片) 노화(蘆花)의 풍기(風起)허니 백설(白雪)이 만점(滿點)(萬霑)이라. 신포세류(新蒲細柳) 지는 잎은 만강추풍(滿江秋風) 흐날리고 옥로청풍(玉露靑楓)은 불었난디, 외로울사 어선(漁船)들은 등불을 돋워 켜고 어가(漁歌)로 화답(和答)허니 돋우난이 수심(愁心)이요, 해반청산(海畔靑山)은 봉봉(峰峰)이 칼날되어 베이나니 간장(肝腸)이라.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하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吊湘君)고 송옥(宋玉)의 비추부(悲秋賦)가 이에서 슬프리요. 동녀(童女)를 실었으니 진시황(秦始皇)의 채약(採藥) 밴가, 방사(方士)는 없었으나 한(漢) 무제(武帝)의 구선(求仙) 밴가. 지레 내가 죽자 허니 선인들이 수직(守直)하고, 살아 실려 가자하니 고국(故國)이 창망(蒼茫)이라. 죽도 살도 못 허는 신세야, 아이고 이 일 어찌허리.

 

[엇모리]
한곳 당도허니 이는 곧 인당수(印塘水)라. 대천(大川)바다 한 가운데 바람 불고 물결쳐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나 남고 사면(四面)이 검어 어둑 점글어져 천지(天地) 적막(寂寞)헌디 간치뉘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물결은 와르르르 출렁출렁. 도사공(都沙工) 영좌(領座) 이하 황황급급(遑遑急急)허여 고사(告祀) 기계(器械)를 차릴 제, 섬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우 술 오색탕수(五色湯水) 삼색실과(三色實果)를 방위(方位) 찾어 갈라놓고 산 돝 잡어 큰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 놓고 도사공 거동(擧動)봐라.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허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자진모리]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헌원씨(軒轅氏) 배를 모아 이제불통(以濟不通)한 연후에 후생(後生)이 본을 받어 다 각기 위업(爲業)하니 막대(莫大)한 공이 아니냐. 하우씨(夏禹氏) 구년지수(九年之水) 배를 타고 다스릴 제 오복(五服)에 정한 공수(貢輸) 구주(九州)로 돌아들고 오자서(吳子胥) 분오(奔吳) 헐 제 노가(蘆歌)로 건네주고, 해성(垓城)에 패(敗)한 장수(將帥) 오강으로 돌아들어 의선대위(檥船待謂) 건네주고 공명(孔明)의 탈조화(奪造化)는 동남풍(東南風) 빌어 내어 조조(曹操)의 백만(百萬) 대병(大兵) 주유(周瑜)로 화공(火攻)허니 배 아니면 어이하리.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주요요이경양(舟遙遙以輕颺 허니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 해활(海闊) 허니 고범지(孤帆遲)난 장한(張翰)의 강동거(江東去)요,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七月)의 소동파 놀아 있고 지국총 총 어사와 허니 고예승류무정거(鼓枻乘流無定居)난 어부(漁父) 질검 계도란요하장포(桂棹蘭橈下長浦)는 오희월녀(吳姬越女) 채련주(採蓮舟)요 타고발선하군랑(打鼓發船何郡郞)의 상고선(商賈船)이 이 아니냐. 우리 선인 스물네 명 상고(商賈)로 위업(爲業)허여 경세우경년(經歲又經年)의 표박서남(漂泊西南)을 다니더니 오늘날 인당수(印塘水)에 인 제수를 드리고저 동해신(東海神) 아명(阿明)이며 서해신(西海神) 축량(祝良)이며 남해신(南海神) 축융(祝融)이며 북해신(北海神) 옹강(禺强)이며 강한지장(江漢之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하감(下瞰)허여 보옵소서.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비렴(飛廉)으로 바람 주고 해약(海若)으로 인도허여 환난(患難)없이 도우시고 백천만금(百千萬金) 퇴(退)를 내어 돛대 위에 봉기(鳳旗) 꽂고 봉기 우에 연화(蓮花) 받게 점지허여 주옵소서. 고사를 다 지낸 후에 “심 낭자 물에 들라.” 심청이 죽으란 말을 듣더니마는 “여보시오 선인님네, 도화동이 어디쯤이나 있소?” 도사공이 나서더니 손을 들어서 가르키난디 “도화동이 저기 운애(雲靉 만 자욱한 디가 도화동일세.” 심청이 기가 막혀 사배(四拜)하고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은 요만끔도 생각마옵시고 사시는 대로 사시다가 어서어서 눈을 떠서 대명천지 다시 보고 좋은데 장가들어 칠십(七十) 생남(生男)허옵소서. 여보시요 선인님네 억십만금(億十萬金) 퇴(退)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돌아가시거든 불쌍헌 우리 부친 위로허여 주옵소서.” “글랑은 염려 말고 어서 급히 물에 들라.”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청이 거동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초마폭을 무릅쓰고 뱃전으로 우루루루 만경창파(萬頃蒼波) 갈매기 격(格)으로 떴다 물에가 풍!

 

[진양조]
해당(海棠)은 광풍(光風)의 날리고 명월(明月)은 해문(海門)에 잠겼도다. 영좌도 울고 사공(沙工)도 울고, 격군(格軍) 화장(火匠)이 모두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年年)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에다 넣고 가니  후사(後事)가 어이 좋을 리가 있겠느냐. 닻 감어라 어기야, 어기야, 어기어. 어기야, 어허기야, 우후청강(雨後淸江) 좋은 흥(興)을 묻노라 저 백구(白鷗)야 홍료월색(紅蓼月色)이 어느 곳고, 일강소우노평생(一江疎雨鷺平生)의 너는 어이 한가허드냐, 범피창파(泛彼蒼波) 높이 떠서 도용도용(滔溶滔溶) 떠나간다. 

 

[아니리]
그때에 이러한 출천지대효녀(出天之大孝女)를 하늘이 그저 둘 리 있겠느냐?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불러 하교(下敎)하시되 “오늘 묘시(卯時)에 유리국(琉璃國) 심 소저가 인당수에 들 터이니 착실히 뫼셨다가 인당수로 환송하라.” 용왕이 수명(受命)하고 내려와 용궁(龍宮) 시녀(侍女)들을 불러 “너 이제 백옥교(白玉轎)를 가지고 인당수 빨리 나가 묘시를 기다리면 인간의 심 소저가 들 터이니 착실히 모셔 오너라.” 각궁(各宮) 선녀(仙女)들이 수명허고 인당수를 당도허니 때마침 묘시 초라. 그때의 심 소저는 물에 들듯 말듯 천지 명랑(明朗)허고 일월이 조림(照臨)커날 뜻밖에 팔선녀(八仙女)들이 백옥교를 앞에 놓고 예(禮)하며 여짜오되 “저희들은 용궁(龍宮) 시녀로서 부왕(父王)의 분부(分付) 듣고 소저를 뫼시고자 왔사오니 옥교를 타옵소서.” 심청이 여짜오되 “인간의 미천한 사람으로 어찌 옥교를 타오리까?” “만일 아니 타면 상제께서 수궁(水宮) 대죄(大罪)를 내릴 테니 사양치 마옵소서.” 심 소저 마지 못허여 옥교에 앉으니 수궁 풍류(風流)가 낭자(狼藉)헐 제

 

[엇모리]
위의(威儀)도 장할시구, 천상(天上) 선관(仙官) 선녀들이 심 소저를 보려 허고 태을진(太乙眞) 학(鶴)을 타고 안기생(安期生) 난(鸞) 타고 고래 탄 이적선(李謫仙) 청의동자(靑衣童子) 황의동자(黃衣童子) 쌍쌍(雙雙)이 모였네. 월궁항아(月宮姮娥) 마고선녀(麻姑仙女) 남악부인(南岳夫人) 팔선녀들이 좌우로 벌렸는듸, 풍악(風樂)을 갖추울 제 왕자진(王子晋)의 봉(鳳) 피리 니나니나 니나누, 곽(郭) 처사(處士) 죽장구 찌지렁 쿵 쩡 쿵, 장자방(張子房)의 옥(玉)퉁소 띳띠루 띠루, 성련자(成連子) 거문고 슬기덩지 둥덩덩, 혜강(嵆康)의 혜금(嵆康)이며 수궁이 진동헌다. 괘룡골이위량(挂龍骨以爲梁)허니 영광(靈光)이 요일(耀日)이요, 집어린이작와(緝魚鱗而作瓦)허니 서기반공(瑞氣蟠空)이라. 주궁패궐(珠宮貝闕)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요, 곤의수상(袞衣繡裳)은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산호(珊瑚) 주렴(珠簾) 백옥 안상(白玉案床) 광채(光彩)도 찬란허구나. 주찬(酒饌)을 드릴 적에 세상 음식이 아니라 유리잔(琉璃盞) 호박병(琥珀甁)의 천일주(千日酒) 가득 담고 한가운데 삼천벽도(三千碧桃)를 덩그렇게 괴었으니 세상의 못 본 바라, 삼일(三日)의 소연(小宴)허고, 오일(五日)에 대연(大宴)허여 극진히 봉공(奉供) 헌다.

 

[아니리]
하루는 천상에서 옥진부인(玉眞夫人) 내려오난디, 이는 뉜고 하니 심 봉사 아내 곽씨 부인이 죽어 천상의 광한전(廣寒殿) 옥진부인이 되었난디, 심청이가 수궁에 왔단 말을 듣고 모녀 상봉 차로 하강하시것다.

 

[진양조]
오색(五色) 채단(彩緞)을 기린(麒麟)의 가득 싣고 벽도화(碧桃花) 단계화(丹桂花)를 사면에 내려 꼽고 청학(靑鶴) 백학(白鶴)은 전배(前倍) 서고 수궁에 내려오니 용왕도 황겁(惶怯)하여 문전(門前)에 배회(徘徊)할 제, 옥진부인이 들어와 심청 손을 부여잡고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세상에서 너를 낳은 곽씨로다. 너의 부친 많이 늙었으리라. 나는 죽어 귀인(貴人) 되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었으나 너는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이곳으로 들어왔다 허기로 너를 보러 내 왔노라. 세상에서 못 먹던 젖 이제 많이 먹어 보아라.” 심청 얼굴 끌어다 가슴에다 문지르며 “아이고 내 자식아, 꿈이면 깰까 염려로다.” 심청이 그제야 모친인 줄 짐작(斟酌)허고 부인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이것이 꿈이요 생시요. 불효여식 심청이는 앞 어둔 백발 부친 홀로 두고 나왔는디, 외로우신 아버지는 뉘를 의지허오리까?” 부인이 만류(挽留)허며 “내 딸 청아 우지마라. 너는 일후(日後)에 너의 부친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광한전 맡은 일이 직분(職分)이 허다(許多)하여 오래 지체(遲滯) 어려워라. 요령(鐃鈴) 소리가 쟁쟁(錚錚) 나더니 오색(五色) 채운(彩雲)으로 올라가니 심청이 하릴없어 따라 갈 수도 없고 가는 모친을 우두머니 바라보며 모녀 작별이 또 되는구나.

 

[아니리]
하루는 옥황상제께서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불러 하교(下敎)하시되, 심 소저 방연(芳緣)이 가까오니 인당수로 환송(還送)허여 인간의 좋은 배필(配匹)을 정해 주라. 용왕이 수명(受命)하고 심청을 환송헐 제, 꽃 한 봉을 조화(調和)있게 만들어 그 가운데 뫼시고 양대 선녀로 시위(侍衛)하고, 조석지공(朝夕之供)과 찬수(饌需) 범절(凡節), 금주보패(金珠寶貝)를 많이 넣고 용왕과 각궁 선녀 모두를  나와 작별허고 돌아서니 이는 곧 인당수라. 용왕의 조화인지라 꿈같이 번뜻 떠서 바람이 분들 흔들리며  비가 온들 젖을소냐. 주야로 덩실 떠 있을 때, 그때의 남경(南京) 갔던 선인들이 억십만금 퇴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돌아 올 제, 인당수를 당도하니 심 소저의 효행이 홀연히 감동(感動)되는지라. 제물을 정히 차려놓고, 심 소저의 넋을 위로(慰勞)하는디,

 

[중모리]
북을 두리둥 둥 울리면서 슬픈 말로 제(祭) 지낸다.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 넋이냐. 오장원(五丈原)의 낙성(落星)허던 공명(孔明)의 넋도 아니요, 삼 년 무관의 초 회왕의 넋도 아니요, 부친 눈을 띄우라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 되신 심 낭자의 넋이로다. 넋이라도 오셨거던 많이 흠향(歆饗)하옵소서.” 제물(祭物)을 물에 풀고 눈물 씻고 바라보니 무엇이 떠 있는디, 세상의 못 본 바라. 도사공이 허는 말이 “저것이 무엇이냐, 금(金)이냐?” “금이란 말씀 당치 않소. 옛날 진평(陳平)이가 범아부(范亞夫)를 잡으랴고 황금 사만 근(斤)을 흩었으니 금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옥(玉)이냐?” “옥이란 말이 당치 않소. 옥출곤강(玉出崑崗) 아니어든 옥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해당화(海棠花)냐?” “해당화란 말씀 당치 않소.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아니거든 해당화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저게 무엇이냐? 가까이 가서 보자. 저어라 저어라,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차.” 가까이 가서 보니 향기(香氣) 진동(振動)허고 오색(五色) 채운(彩雲)이 어렸거날,

 

[아니리]
배에 건져 싣고 보니 크기가 수레 같고 향기가 진동커날 본국으로 돌아와 허다히 남은 재물(財物) 각기 저 쓸 만큼 나눌 제 도선주 무슨 마음인지 재물은 마다허고 꽃봉만 차지하였구나. 그때는 어느 땐고 허니, 송(宋) 천자(天子)께서 황후(皇后) 홀연(忽然) 붕(崩)하신 후 납비(納妃)를 아니 허시고 세상의 기화요초(琪花瑤草)를 구하여 황극전(皇極殿) 넓은 뜰에 가득히 심어 두고 조석(朝夕)으로 화초를 구경허실 제,

 

[중중모리]
화초(花草)도 많고 많다. 팔월 부용(芙蓉)의 군자용(君子容), 만당추수(滿塘秋水)에 홍련화(紅蓮華),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소식(消息) 전(傳)튼 한매화(寒梅花), 진시유랑거후재(儘是劉郎去後栽)는 붉어 있다고 복성꽃, 구월구일용산음(九月九日龍山飮) 소축신(笑逐臣) 국화꽃, 삼천제자(三千弟子)를 강론(講論)하니 행단춘풍(杏壇春風)의 은행(銀杏)꽃. 이화만지불개문(梨花滿地不開門)허니 장신궁(長信宮) 중(中) 배꽃이요, 천태산(天台山) 들어가니 양변개(兩邊開) 작약(芍藥)이요, 원정(怨情) 부지(不知) 이별(離別)허니 옥창오견(玉窓五見)의 앵도화(櫻桃花). 촉국한(蜀國恨)을 못 이기어 제혈(啼血)허던 두견화(杜鵑花), 이화(李花) 도화(桃花) 계관화(鷄冠花) 홍국(紅菊) 백국(白菊) 사계화(四季花)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월중단계(月中丹桂) 무삼경(無三更) 달 가운데 계수(桂樹)나무 백일홍(百日紅) 영산홍(映山紅) 왜(倭)철쭉 진달화 난초(蘭草) 파초(芭蕉) 오미자(五味子) 치자(梔子) 감자(柑子) 유자(柚子) 석류(石榴) 능낭 능금 포도 머루 어름 대추 각색(各色) 화초 갖은 향과(香果) 좌우(左右)로 심었난디 향풍(香風)이 건듯 불며 벌 나비 새 짐생들이 지지 울며 노닌다.

 

[아니리]
이때의 도선주는 천자께서 화초를 구하신단 소문을 듣고 인당수에 떴던 꽃을 어전(御前)에 진상(進上)허니 천자(天子) 보시고 세상(世上)에는 없는 꽃이라 선인을 입시하여 치하(致賀)하시고  무릉 태수(太守)를 봉하였구나. 그 꽃을 후궁(後宮) 화계(花階) 상(上)에 심어 놓고 조석(朝夕)으로 화초를 구경하실 제,

 

[중모리]
천자 보시고 반기허여 요지(瑤池) 벽도화(碧桃花)를 동방삭(東方朔)이 따온 지가 삼천 년이 못 다되니 벽도화(碧桃花)도 아니요, 극락세계(極樂世界) 연화(蓮花) 꽃이 떨어져 해상의 떠왔던지 그 꽃 이름은 강선화(降仙花)라 지으시고 조석으로 화초를 구경할 제 일야(一夜)는 천자 심신(心身)이 황홀하야 화계 상을 거니난디 뜻밖에 강선화 벌어지며 선녀들이 서 있거날 천자 괴이 여겨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선녀 예하고 여짜오되 “남해용궁(南海龍宮) 시녀로서 심 소저를 모시고 세상(世上)에 나왔다가 불의(不意)에 천안(天顔)을 범(犯)하였사오니 황공무지(惶恐無地)하오이다.”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고 한 선녀 서 있거날

 

[아니리]
황제 반신반의(半信半疑) 하야 대강 연유(緣由)를 탐문(探問)한 바 세상의 심 소저라. 궁녀로 시위(侍衛)하여 별궁(別宮)으로 모셔놓고 이튿날 조회(朝會) 끝에 만조백관(滿朝百官)에게 간밤 꽃봉 사연(事緣)을 말씀하니 만조제신(滿朝諸臣)이 여짜오되 “국모(國母) 없음을 하느님이 아옵시고 배필을 인도하심이니 천여불취(天與不取)면 반수기구(反受其咎)이라. 인연으로 정하소서.” 그 말이 옳다 허고 그 날로 택일(擇日)허여 놓으니 오월(五月) 오일(五日) 갑자(甲子) 시(時)라. 심 황후 입궁 후에 연년(年年)이 풍년이요, 가가(家家)이 태평(太平)이라.

 

[창조]
그때여 심 황후 부귀 무쌍(無雙)허나 다만 부친 생각뿐이로다.

 

[아니리]
하루는 옥난간(玉欄干)에 높이 앉어,

 

[진양조]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허여 산호(珊瑚) 주렴(珠簾) 비쳐들 제, 청천(靑天)의 외기러기는 월하(月下)에 높이 떠서 뚜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 황후 반기 듣고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北海上)에 편지 전턴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헌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 장(張) 전하여라.” 편지를 쓰랴 헐 제. 한 자(字) 쓰고 눈물짓고 두 자 쓰고 한숨 쉬니 눈물이 먼저 떨어져서 글자가 수묵(水墨)이 되니 언어(言語)가 도착(倒錯)이로구나. 편지 접어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보니 기럭은 간 곳 없고 창망(滄茫)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았구나.

 

[아니리]
이때에 황제 내궁(內宮)에 들어와 황후(皇后)를 살피시니 수심이 띄었거늘 황제 물으시되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심 황후 여짜오되 “솔토지빈(率土之濱)이 막비왕신(莫非王臣)라, 이 세상에 불쌍한 게 맹인이라 천지일월(天地日月)을 못 보니 적포지한(積抱之恨)을 한때라도 풀어 주심이 신첩(臣妾)의 평생 원(願)이로소이다.” 황제 칭찬하시고, 맹인 잔치를 여시는디 “각도각읍(各道各邑)으로 행관(行關)하되 대소(大小) 인민(人民) 간의 맹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라, 만일 빠진 맹인(盲人)이 있으면 그 고을 수령(守令)은 봉고파직(封庫罷職) 하리라”하고 각처(各處)로 전하였구나.

 

[진양조]
그때의 심 봉사는 모진 목숨 죽지도 않고 근근도생(僅僅圖生) 지내갈 제 무릉촌 승상 부인이 심 소저를 보내시고 강두(江頭)에 망사대(望思臺)를 지어 놓고 춘추로 제향헐 제, 도화동 사람들도 심 소저의 효성이 감동되어 망사대 곁에 타루비(墮淚碑)를 세워놓니 비문(碑文)에 허였으되 “지위노친평생한(至爲老親平生恨)허여 살신성효행선거(殺身成孝行船去)라, 연파만리상심벽(煙波萬里傷心碧)허니 방초년년환불귀(芳草年年還不歸)라.” 이렇다 비를 허여 세워놓니, 오고가는 행인들도 뉘 아니 슬퍼하리. 심 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팡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찾아가서 비문을 안고 우드니라. 일일(一日)은 심 봉사 마음이 산란하여 딸의 비를 찾아가서 “후유 후유 아이고 내 자식아, 내가 왔다. 너는 아비 눈을 띄우랴고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 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산신(山神) 부락귀(部落鬼)야, 날 잡어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찬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 앞에 가 엎더져 내려둥글 치둥굴며 머리도 찧고 가삼 꽝꽝 두발을 굴러 남지서지(南之西之)를 가리키는구나.

 

[창조]
낮이면 강두(江頭)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와 울고

 

[아니리]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적에 심 봉사가 의식은 겨우 견디나 사고무친 수족(手足) 없어 사람하나를 구하랴 헐 제 마침 본촌에 뺑덕이라는 여자가 있어 심 봉사가 전곡(錢穀) 있단 말을 듣고 동네사람도 모르게 살짝 자원(自願) 출가(出嫁)하였난디 이 뺑덕이네가 심 봉사 재산을 꼭 먹성질로 망허겄다.

 

[자진모리]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사먹고, 벼 퍼주고, 고기 사먹고,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행인 잡고 패악(悖惡)허고 이웃집에 밥 붙이기 잠자면 이 갈기와 배 끓고 발목 떨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가는 행인들께 담배 달라 실랑허고, 정자 밑에 낮잠 자고, 남이 혼인허랴 허고, 단단히 믿었는디 해담(害談)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자는디 가만가만 가만가만 뒤로 살짝 돌아가 봉창(封窓)에 입을 대고 “불이여!”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하고, 삐쭉허면 빼쭉허고, 빼쭉하면 삐쭉허고, 이년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 봉사는 아무런 줄을 모르고 아조 뺑파에게 콱 미쳤겄다.

 

[아니리]
하로난 관가에서 심 봉사를 불러 들어가니, 사또 허신 말씀 “지금 황성서 맹인 잔치가 있는디 잔치 참여 아니 하면 그 고을 수령을 봉고파직한다고 관자(關子)가 내렸으니 즉시 올라가라.” 노자(路資)까지 후이 주겄다. 심 봉사 대답허고 집으로 돌아와 “여보 뺑덕이네, 오늘 관가에 가니 황성 맹인 잔치를 가라허니 나 혼자 어찌 갈게.”

 

[창조]
“아이고 여보 영감, 황성 천리 먼먼 길을

 

[아니리]
영감 혼자 어찌 가신단 말이요.

 

[창조]
여필종부(女必從夫)라니 천리라도 가고 만 리라도 같이 가지요.”

 

[아니리]
“열, 열, 열녀로다. 그렇지, 아 다 보아도 우리 뺑파 같은 사람은 못 보았고, 그러면 돈 냥이나 있는 것 뉘게다 맡기고 갈꼬?” “아이고 저러기에 외정(外丁)은 살림 속을 몰라. 낳도 못허는 아이 선다고 살구 값, 팥죽 값, 떡 값, 그리저리 제하면 무슨 돈 있겄소?” “그래 잘 먹었다.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니 그만두고 황성길이나 떠나세.” 심 봉사가 뺑덕이네 앞세우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이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오라느냐.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데 가 잘고. 유황숙(劉皇叔)의 단계(檀溪) 뛰던 적로마(的盧馬)나 있거드면 이날 이 시(時)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병신 몸이 몇 날을 걸어 황성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자룡(子龍) 타고 월강(越江)허던 청총마(靑驄馬)나 있거드면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여보소 뺑덕이네.” “예.” “길소리나 좀 메겨 주소. 다리 아퍼 못 가겄네.” 뺑덕이네가 길소리를 메기난디 어디서 들었다던지 전라도 김매기 반 경상도 메나리조(調)로 한번 메겨 보난디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가리. 날개 돋친 학이나 되면 펄 펄 수루루 날아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가리.”

 

[아니리]
한곳을 당도허니 봉사 수십 명이 모였거늘 “자, 우리가 이렇게 모였으니 벽돌림 시조나 한 장씩 불러 봅시다.” 심 봉사가 시조를 시주로 잘못 알아듣고 “아이고 내 앞에서 시주 말 내도 마시오. 내 딸 심청이가 시주 속으로 죽었소.” 여러 봉사 대소(大笑)허고 길을 떠나 갈 제,

 

[중모리]
이렇다시 길을 가다 주막에 들어서 잠을 잘 제, 근처 사는 황 봉사라는 봉사가 주인과 약속을 하고 뺑덕이네를 꼬여 밤중에 도망을 하였난디, 심 봉사는 아무 물색을 모르고 첫 새벽에 일어나서 뺑덕이네를 찾는구나.

 

[아니리]
심 봉사가 깜짝 놀라 방 네 구석을 더듬어 보니 뺑덕이네가 가고 없네. “여보 주인, 혹 우리 마누라 안에 들어갔소?” “밤중쯤 되어서 새파란 봉사 한 사람하고 새벽질 떠난다고 벌써 갔소.”

 

[창조]
심 봉사가 그제야 뺑덕이네가 도망친 줄 짐작허고

 

[진양조]
“허허, 뺑덕이네가 갔네 그려. 덕이네,덕이네, 덕이네, 뺑덕이네. 뺑덕이네가 도망을 갔네. 당초에 니가 버릴 테면 있던 곳에서 마다허지, 수백 리 타향에다가 나를 두고 니가 무엇이 잘 되겠느냐. 귀신이라도 못 되리라 요년아, 너 그런 줄 내몰랐다. 아서라, 니까짓 것 생각하는 놈이 시러베아들 놈이제. 현철허신 곽씨도 죽고 살고 출천대효 내 딸 청이도 생이별을 하였는디, 너까짓 년 생각하는 내가 미친놈이로구나.”

 

[중모리]
날이 차차 밝아지니 황성 길을 올라간다. 주막 밖을 나서더니 그래도 생각나서 “뺑덕이네 덕이네,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눈뜬 가장 배반키도 사람치고는 못 할 터인데, 눈 어둔 날 버리고 니가 무엇이 잘 되겠느냐. 새서방 따라서 잘 가거라.” 새만 푸르르르 날아가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고 바람만 우루루루 불어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네. 그렁저렁 올라갈 제, 이때는 어느 땐고. 오뉴월 삼복(三伏) 성염(盛炎)이라. 태양은 불볕 같고 더운 땀을 휘뿌릴 제, 한곳을 점점 내려가니

 

[중중모리]
시내 유수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르르르 저 골 물이 꽐꽐, 열에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合水)쳐 천방(天方)자 지방(地方)자 월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끔져 건넌 병풍석(屛風石)에다 마주 쾅쾅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치(景致)가 또 있나. 심 봉사 좋아라고 물소리 듣고 반긴다.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내려가서 의복을 훨훨 벗어 놓고 물에 가 풍덩 들어앉으며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 물 한주먹을 덥석 쥐어 양치질도 퀄퀄하고 또 한주먹을 덥석 집어 겨드랑도 문지르며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 삼각산(三角山)을 올라선들 이어서 시원하며 동해(東海) 유수(流水)를 다 마신들 이어서 시원허리.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툼벙툼벙 좋을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리]
목욕허고 나와 보니 의관(衣冠) 행장(行裝)이 없거날

 

[창조]
심 봉사 기가 막혀 “아 이 좀도둑놈들아 내 옷 가져 오너라. 내 옷 갖다 입은 놈들은 열두 대 떼 봉사 날 것이다.

 

[중모리]
허허 이제는 영 죽었네. 허허 이게 웬일이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백수(白首) 풍신(風神) 늙은 몸이 의복이 없었으니 황성길을 어이 가리.” 위아래를 훨씬 벗고 더듬더듬 올라갈 제, 체면 있는 양반이라 두 손으로 앞가리고 “내 앞에 부인네 오시거든 돌아서서 가시오, 나 벗었소.”

 

[아니리]
한곳을 당도허니

 

[창조]
에이찌루 에이찌루 어라.

 

[아니리]
심 봉사 반기 여겨 “옳다 어디서 관장이 오나부다 관(官)은 민지부모(民之父母)라니, 억지나 좀 써보리라.” 두 손으로 앞을 가리고 기엄기엄 들어가며 “아뢰어라, 아뢰어라 급창(及唱) 아뢰어라. 황성 가는 봉사로써 배알(拜謁) 차로 아뢰어라.” 행차가 머물드니 “어데 사는 소경이며 어찌하여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랴는고?”

 

[창조]
“예, 소맹은 황주 도화동 사옵는디 황성 잔치 가는 길에 날이 하 더웁기로 이곳에서 목욕을 허다 의관의복을 잃었으니

 

[아니리]
찾아주고 가옵거나 별반(別般) 처분(處分)을 하옵소서.”

 

[중모리]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하였으니 태수장(太守丈) 덕택의 살려주오.”

 

[아니리]
이 행차는 무릉 태수라 수배(隨陪) 불러 의복 한 벌 내어주라, 급창 불러 갓 망근 내어주라. 노비(路費)까지 후이 주며 잘 가라 하니, “황송한 말씀이오나, 그 무지한 놈들이 담뱃대까지 가져갔사오니 어찌 하오리까.” 태수 허허 웃고 담뱃대까지 내어 주었것다. 심 봉사가 좋아라고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 백배사례(百拜謝禮) 하직허고 황성 길을 올라갈 제, 녹수경(綠樹京)을 지내어 낙수교(洛水橋)를 건너, 한곳을 다다르니 방아집이 있거늘 여인들이 모여 방아를 찧는디 심 봉사를 보고 조롱을 허겄다. “근래 봉사들 한 시기 좋더구. 저 봉사도 황성 잔치에 가는 봉사인가부지. 거기 앉어 있지 말고 이리 와서 방아나 좀 찧어주고 가시오.” 심 봉사가 그 말 듣고 “점심만 줄 테면 방아 찧어주지요.” “아, 드리고말고요. 술도 주고 밥도 주고 고기도 줄 터이니 방아나 좀 찧어 주시오.” “허, 실없이 여러 가지 것 많이 준다.” 심 봉사가 점심을 얻어먹을 양으로 방아를 한번 찧어 보는디,

 

[중중모리]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떨크렁 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는 이목덕(以木德)으로 왕하였으니 남기 아니 중헐소냐 어유화 방아요. 유소씨(有巢氏) 구목위소(構木爲巢) 이 남기로 집지셨나. 어유화 방아요. 신농씨(神農氏) 만든 쟁기 이 남기로 따부 했나. 어유화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아냐 강태공(姜太公)의 조작(造作)이로다 어유화 방아요. 방아 만든 태도를 보니 사람을 비양(比樣)튼가 이상하고도 맹랑하다 어유화 방아요. 옥빈홍안(玉鬢紅顔) 태도(態度)런가 가는 허리에 잠(簪)이 질렸구나 어유화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楚王) 궁인(宮人) 허리런가 어유화 방아요. 덜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머리 들어 오르는 양 창해(滄海) 노룡(老龍)이 성을 낸듯 어유화 방아요. 머리 숙여 내리는 양 주(周) 난왕(赧王)의 돈수(頓首)런가 어유화 방아요. 오고대부(五羖大夫) 죽은 후에  방아 소리를 끊쳤더니, 우리 성상(聖上) 즉위(卽位)허사 국태민안(國泰民安) 하옵시니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古今)에 없는지라.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 방아소리나 하여보자. 어유화 방아요.”

 

[자진모리]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한 다리 치어 들고, 한 다리 내려딛고, 오리락내리락 허는 모양 사람보기 이상허구나. 어유화 방아요. 황성천리 가는 길에 이 방아를 만들었나. 어유화 방아요. 고소하구나 깨방아, 찐득찐득 찰떡 방아. 어유화 방아요. 재채기난다 고추 방아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보리쌀 뜨물에 풋호박 국 끓여라. 우리 방애꾼 배 충분허자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 떵떵 자주 찧어라. 점심때가 늦어간다. 어유화 방아요.

 

[아니리]
이렇다 방아를 찧고 점심밥 얻어먹은 후에 그렁저렁 길을 걸어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여인이 문밖에 섰다. 심 봉사를 청하거늘 심 봉사 내념(內念)의 이곳은 나 알 이가 없겄마는 이상한 일이로다. 여인을 따라가니 외당(外堂)에 앉히고 저녁밥을 드리거날 석반(夕飯) 먹고 있노라니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內堂)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심 봉사 깜짝 놀래 “댁이 무슨 의단(疑團) 있소. 나는 독경(讀經) 못하는 봉사요.” “다른 걱정 말으시고, 내당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여인을 따라 내당으로 들어가니 어떠한 부인이 좌를 주어 앉히면서 그 부인 하는 말이 “당신이 심 봉사요?” “어찌 아시니까?” “아는 도리가 있나이다.”

 

[중모리]
이 부인이 말씀허되 “저는 안 가(家)로써 황성에 사옵더니 부모 일찍 기세(棄世)허고 저도 또한 맹인이 되어 복술(卜術)을 배워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이십오 세에 길연(吉緣)이 있는디, 지금 제가 이십오 세일 뿐더러 간밤에 꿈을 꾸니 하늘에 일월(日月)이 떨어져 물에 잠겨 보이니 심 씨 맹인 만날 줄을 짐작허고 지내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 가옵더니 천우신조하여(天佑神助) 이제야 만났으니 인연(因緣)인가 하옵니다.”

 

[아니리]
심 봉사 좋아라고 맘이야 좋건마는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허는 소리 내게는 하나도 불관(不關)이오. 어찌되었든 간에 그날 밤 동방화촉(洞房華燭)에 호접몽(蝴蝶夢)을 이뤘것다.

 

[진양조]
그때여 심 황후는 부친 생각 간절허여 자탄(自歎)으로 울음을 울 제, "이 잔치를 배설(排設)키는 부친을 위함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고? 내가 영영 인당수에 죽은 줄 알으시고 애통(哀痛)허시다, 세상을 버리셨나? 부처님의 영험(靈驗)으로 완연(宛然)히 눈을 떠 맹인 축에 빠지신가? 당년(當年) 칠십 노환(老患)으로 병이 들어 못 오신거나? 오시다가 노변(路邊)에서 무슨 낭패(狼狽) 당허신가? 오늘 잔치 망종(亡終)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다시 자탄을 하시다 예부상서(禮部尙書) 불러 분부하시되, “오늘도 오는 소경이 있거든 성명을 낱낱이 받아 올리되 황주 도화동 사는 심학규라 하는 이 있거든 별전으로 모셔 드려라.” 그때에 심 봉사는 안 씨 부인과 인연을 정한 후에 잠을 자고 일어나드니 수심이 가득 하였거늘 안 씨 부인 물어 허는 말이,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창조]
간밤에 꿈을 꾸니 내가 불 속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베껴 북을 메어 보이고,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어 보이니

 

[아니리]
그 아니 흉몽이오?” 안 씨 부인 듣고 꿈 해몽을 하는디,

 

[창조]
“신입화(身入火)하니 화락(和樂)할 꿈이요, 거피작고(去皮作鼓)허니 큰소리 날 꿈이요, 낙엽(落葉)이 귀근(歸根)하니, 자녀를 상봉이라.

 

[아니리]
그 꿈 대단히 좋사오니, 오날 궐문 안을 들어가면 좋은 일 있으오리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내게난 하나도 불관이요.” 아침밥을 먹고 궐내에 들어가는디,

 

[중중모리]
정원사령(政院使令)이 나온다. 정원사령(政院使令)이 나온다. “각도각읍(各道各邑) 소경님네, 오늘 맹인 잔치 망종이니 잔치 참례(參禮)하옵소서.”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렇다 외난 소리, 원근산천(遠近山川)이 떠드렇게 들린다. “한 맹인도 빠짐없이 다 참례 하옵소서.”

 

[아니리]
그때여 수백 명 봉사들이 궐문 안에 들어가 앉었을 제 심 봉사는 제일 말석(末席)에 참례(參禮)하였것다. 봉사의 성명을 차례로 물어 갈 제, 심 봉사 앞에 당도하야 "이 봉사 성명이 무엇이요?" "예, 나는 심학규요." "심맹인 여기 계시다!" 심 봉사를 뫼시고 별궁(別宮) 으로 들어가니 심 봉사가 일향 죄가 있난지라. "아이고 어쩌려고 이러시오. 허허 이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 들어왔다." 내궁에 들으니 그때 심 황후는 언간 용궁에 삼 년이 되었고 심 봉사는 딸 생각에 어찌 울고 세월을 보냈던지 더욱 백수(白首) 되었구나! 심 황후 물으시되

 

[창조]
"거주성명(居住姓名)이 무엇이며 처자 있는가를 물어 보아라." 심 봉사가 처자(妻子) 말을 듣더니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뚝뚝 떨어지며

 

[중모리]
"예, 예, 아뢰리다. 예, 소맹(小盲)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故土)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 년 삼월 달에 산후탈로 상처(喪妻)허고 어미 잃은 딸자식을 강보(襁褓)에 싸서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겨우 길러내어 십오 세가 되었으되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출천하야 그 애가 밥을 빌어 근근도생(僅僅圖生) 지내 갈 제, 우연히 중이 찾어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시주허면 소맹이 눈을 뜬다 허니 효성 있는 딸자식이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수로 죽은 지가 삼 년이요, 눈도 뜨지 못 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 두어 쓸 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아니리]
심 황후가 부친을 모를 리가 없지마는 소리를 허자니 자연즉 늦게 알었든가 부드라.

 

[자진모리]
심 황후 거동 봐라. 이말이 지듯 마듯 산호 주렴 걷혀버리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아이고 아버지!"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 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아버지라니 누구여,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于今) 삼 년인디, 아버지라니 이거 웬 말이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不孝) 여식(女息)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청이를 보옵소서."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예이 이것 웬 말이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난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아이고 갑갑허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해작해작허구나! 심 봉사 눈 뜬 바람에 만좌(滿座) 맹인이 모도 일시에 눈을 뜨는디, 눈 뜨는 데도 장단이 있든가 보더라.

 

[자진모리]
만자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 갈모 띄는 소리라, 쫙쫙 쫙 허더니마는 모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 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가던 봉사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한 맹인 중로(中路)에서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모도 일시에 눈을 뜨는디,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헤매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졸다 번듯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가 뜨고, 눈을 부벼 보느라고 뜨고, 지어비금주수(至於飛禽走獸)라도 눈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光明天地)가 되었구나. 

 

[아니리]
심 봉사가 그제야 정신차려 딸을 자세히 살펴보니, 칠보금관(七寶金冠) 황홀허여 딸이라니 딸인 줄 알지 전후불견(前後不見) 초면(初面)이로구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마는

 

[중모리]
옳제, 인제 알겄구나. 내가 분명 알겄구나. 갑자(甲子) 사월(四月) 초파일야(初八日夜) 꿈 속에 보던 얼굴 분명헌 내 딸이라. 죽은 딸을 다시 보니,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허였는가 내가 죽어 따라 왔나, 이것이 꿈이냐 이것이 생시(生時)냐. 꿈과 생시 분별(分別)을 못 허겠네.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좋을씨구. 어제까지도 내가 맹인이 되어 지팽이를 짚고 나서면 어데로 갈 줄을 아느냐 올 줄을 아느냐. 오날부터 새 세상이 되었으니 지팽이 너도 고생 많이 허였다. 피루루루루루 내던지고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자자자 좋을씨구.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둡던 눈을 뜨고 보니 황성궁궐(皇城宮闕)이 웬 일이며, 궁안을 살펴보니 창해만리(滄海萬里) 먼 먼 길, 인당수 죽은 몸이 환세상(還世上) 황후(皇后) 되어 천천만만(千千萬萬) 뜻밖이라. 얼씨구나 절씨구. 어둠침침 빈방 안에 불킨 듯이 반갑고, 산양수(山陽水) 큰 싸움에 자룡(子龍) 본 듯이 반갑네. 흥진비래(興盡悲來) 고진감래(苦盡甘來) 날로 두고 이름인가. 여러 봉사들도 좋아라고 춤을 추며 노닌다.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태곳적 시절 이래로 봉사 눈 떴단 말 처음이로구나. 얼씨구나 절씨구 일월이 밝아 중복허니 요순천지(堯舜天地)가 되었네. 송천자(宋天子) 폐하(陛下)도 만만세(萬萬歲). 심 황후 폐하도 만만세(萬萬歲). 천천만만세(千千萬萬歲) 태평(太平)으로만 누리소서,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리]
여러 봉사들도 심 부원군과 함께 춤을 추고 노는디, 그 중의 눈 못 뜬 봉사 하나가 아무 물색도 모르고 함부로 뛰놀다가 여러 봉사 눈 뜬 것을 듣더니마는 한편에 가 울고 있구나. 심 황후 보시고 분부 허시되, “지어비금주수까지도 눈을 떴난디, 저 봉사는 무슨 죄가 지중(至重)허여 홀로 눈을 못 뜨는고? 사실을 알아 들여라.”

 

[창조]
황 봉사가 아뢰난디

 

[중모리]
“예, 예 아뢰리다. 소맹의 죄를 아뢰리다. 심 부원군 행차 시에 뺑덕이네라 하는 여인을  앞세우고 오시다가 주막에 숙소할 제, 한밤중에 유인하여 함께 도망을 허였는디, 그날 밤 오경시(五更時)에 심부원군(沈府院君) 우는 소리, 구천(九泉)에 사무쳐서 명천(明天)이 아신 바라. 눈도 뜨지 못하옵고 이런 천하 못 쓸 놈을 살려 두어 쓸데 있소? 비수검 드는 칼로 당장에 목숨을 끊어 주오.”

 

[아니리]
심 황후 들으시고 “네 죄를 생각허면 죽여 마땅허나 네 죄를 네가 알고 말하기로 특히 살리노라.” 어명허여 노니 황 봉사는 눈을 하나 밖에 못 뜬 것이 마치 총 놓기 좋게 되었구나. 이런 일을 보드래도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어찌 천도(天道)가 없다 하리요.

 

[엇중모리]
그때의 심 생원은 부원군(府院君)을 봉허시고 안 씨 부인 교지(敎旨)를 내려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허시고, 무릉촌 승상 부인은 별급상사(別給賞賜) 시키시고 그 아들을 직품(職品)을 돋우어 예부상서 시키시고 화주승은 불러 올려 당상(堂上)을 시키시고, 젖먹이던 부인들과 귀덕 어미는 천금상을 내리시고 무릉 태수 형주 자사는 내직으로 입시허고, 도화동 백성들은 세역(稅役)을 없앴으니 천천만만세(千千萬萬歲)를 누리더라. 어화 여러 벗님네들 이 소리를 허망이 듣지 말고 심청 같은 효성으로 천추유전(千秋遺傳) 허옵시다. 그 뒤야 뉘가 알랴? 호가(好歌)도 장창불락(長唱不樂)이라. 그만 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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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제 심청가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사설 모음입니다.

 

[20221208_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사설.pdf (455.29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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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_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pdf (238.45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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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_강산제 심청가 사설.pdf (902.20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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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m_no=1&sq=51119&thread=001001000&sec=2


판소리에 담긴 '억압에 맞선 여성', 눈으로 읽다

김경아 명창, '심청가', '춘향가', '유관순 열사가' 사설 담긴 도서 출판
19-11-01 09:20ㅣ 윤종환 기자 (un24102@nate.com) 

 

인천의 대표적 소리꾼 '김경아' 명창이 판소리 세 바탕을 담은 두 권의 도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김경아, 범우사, 2019)', '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김경아 외 편저, 범우사, 2019)'를 출간했다.

출간된 책에는 3·1운동 100주기를 맞아 '억압에 맞선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세 인물(유관순 열사, 성춘향, 심청)에 대한 판소리 사설이 담겼다.

오는 2020년이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주기이며, 최근 사회적으로 뜨겁게 진행중인 여성운동 등과 시기를 맞춰 출간했다.

도서엔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유관순 열사가'의 사설이 담겼다. 차용된 한시는 부록으로 묶어서 해설했으며 장단에 따라 소리 마디를 나누어, 책을 통해서도 판소리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김경아 명창은 지난 1998년 인천에 정착하여 인천지역 판소리 보급과 제자 양성에 매진해왔다.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선정됐고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와 '사)우리소리'를 설립하여 인천의 독자적인 판소리 활동 발판을 마련했다.

김경아 명창이 직접 기획·참여한 대표적 인천 판소리 공연으론 지난 2016년에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아 진행한 <청어람 - 판소리 다섯바탕 공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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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newsjournal.com/news/articleList.html?sc_area=I&sc_word=sisa2018

 

소리꾼 김경아, 판소리 세 바탕을 출간
  
 민하늘 기자 sisa2018@daum.net
| 승인 2019.11.01 07:30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김경아 편저, 범우사)
 '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김경아 외 편저, 범우사)

 

 [시사뉴스저널] 민하늘 기자 =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고 유관순 열사 순국 99주기이다. 열사 순국 100주기가 되는 2020년을 앞두고, 김경아 명창이 유관순 열사가와 심청가와 춘향가 사설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성춘향과 심청과 유관순이 82년생은 아니고 ‘유관순’은 실존 인물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억압에 맞선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구나 춘향가, 심청가, 유관순 열사가에 공통적인 판소리라는 형식 또한 조선의 천만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중성과 사회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 세 바탕의 판소리에서 억압에 맞서는 슬기를 새삼 배워보자!

이를 위해 이 책은 자세한 주석을 달았고, 차용된 한시를 부록으로 묶어서 해설했다. 그리고 장단에 따라 소리 마디를 나누어 판소리의 맛을 살렸다.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2016년 촛불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1987년 6월 투사들이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에게 그랬을 것처럼, 1919년 3·1운동가들은 1894년의 동학농민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유관순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착한 사람들을, 3·1운동가들과 6월 투사들과 촛불들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유관순 열사가’는 박동실 –> 장월중선 –> 정순임 명창을 거쳐 소리꾼 김경아에게 이어진 것으로, 해방 직후에 창작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추모곡이다.

 

“[진양조 장단] 사후 영결허신 우리 부모님 초상장례를 뉘 했으며 철모르는 어린 동생들은 뉘 집에서 자라날꼬. 분하고 내가 원통한 사정을 어느 누게다가 하소를 허리”(“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217쪽)

 

강산제 심청가

 

심청가의 마지막 눈대목(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심 봉사가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동시에 시각 장애인인 심 봉사가 개안(開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로, 심 봉사가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눈 뜨는 대목’이다.

 

“[중머리 장단] 눈도 뜨지 못 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 두어 쓸 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

[자진모리 장단]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 아이고 갑갑하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176~178쪽)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단중머리 장단]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불경이부절을 본받고자 허옵난디 사또도 난시를 당하면 적하에 무릎을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잇가?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천기 자식이라 그리 마오. 어서 급히 죽여주옵소서.”(“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110~111쪽)

 

“[중머리 장단] 선악을 구별허로 다니시는 어사옵지, 한 낭군 섬기랴는 춘향 잡으러 오신 사또시오? 마음은 본관과 동심허여, 똑같이 먹은 명관들이오. 죽여주오 죽여주오.”(“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184쪽)

 

앞에 인용한 것은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까칠한’ 지적이다. 뒤의 것은 자신이 아닌 척하며 어사또 수청이니 들라고 춘향을 시험하는 이몽룡에 대한 춘향의 ‘지적질’이다. 변학도나 어사또나 천한 기생을 차별하려는 마음을 ‘똑같이 먹은’ 자들이라며, 그들과 달리 성춘향 자신은 ‘한 낭군 섬기려는’ 사랑꾼임을 커밍아웃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춘향은 차라리 죽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이 반복될 때마다 살고 싶다고 같이 살자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얼마나 ‘슬기'로운 환청인가? 청각 장애인가?

 

김경아는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다. 고 성우향 명창을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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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625339

 

[신간]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9.07.29 08:43

시조가 국민 가요였다면 판소리는 천만 영화였다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판소리는 한사람의 천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지면서 만들어 온 민족문화의 정수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중견 소리꾼인 김경아 명창이 이를 다시 다듬어 책으로 내놓았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크게 보아 대마디, 대장단의 선이 굵은 동편제에 속하는 소리로,  조선 후기 8대 명창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김세종에 의해 시작된 소리이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찬업, 정응민을 거쳐 김경아 명창의 스승인 성우향으로 이어져 왔다.

 

중견 소리꾼 김경아 명창은 '김세종제 춘향가'를 쉽게 소개하기 위해 두 가지의 타임캡슐을 이용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춘향가가 생기던 300여 년 전으로 갈 수는 없지만, 150여 년 전 광대들의 사설이 책으로 남아 있고(‘춘향전 전집’ 1~17, 김진영 외 편저, 박이정출판사, 1997~2004)  100여 년 전 광대들의 소리가 유성기 음반으로 남아 있다.

이 두 가지 나침반을 들고 김경아 명창은 '판소리 춘향가'를 다시 한번 다듬었다. 이번에 발간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는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춘향가 사설을 정성들여 정리했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한자어와 고사성어에 주석을 달아 그 맥락을 문학적으로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는 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창본(소리책)으로 쓸 수 있도록 장단에 따른 소리 마디를 구분하여 편집한 부분이다. 정간보나 오선지로도 표현할 수 없는 판소리의 음률을 자신만의 악보로 만들어 직접 소리꾼이 되어 춘향가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사설에 인용된 한시에 대한 해석과 해설을 달아, 춘향가에 차용된 한시 원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동양 인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 나오는 수많은 한시는 그것을 음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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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20221116_강산제 심청가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정오표.pdf (151.57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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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_강산제 심청가 사설.pdf (902.20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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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는 첨부파일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20240124_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pdf (238.45 KB) 다운받기]

 

[20240124_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hwp (46.00 KB) 다운받기]

 

박동실제(朴東實制) 유관순(柳寬順) 열사가(烈士歌)
박동실 작(作) 장월중선(張月中仙) 전(傳) 정순임(鄭順任) 소리
dolmin98@hanmail.net 김석민

 

[아니리]

때는 1904년 국운이 불행하야 조정은 편벽(偏僻)되고, 왜적이 침입하니 간신이 득세(得勢)로다. 보호조약(保護條約) 억지 하니 억울한 한일합병(韓日合倂) 뉘가 아니 분개(憤慨)허며 간신들의 매국적 부귀탐욕 일시(一時) 영화(榮華) 꿈을 꾸어 조국을 어찌 돌아보리. 반만년 우리 역사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무너지고 삼천만 분한 설움 삼월 일일 폭발되니 피 끓는 독립투사 도처마다 일어나 의를 세워 분투(奮鬪)헐 제, 유관순(柳寬順)은 누구든고 십육 세 어린 처녀 근본부터 이를진대,
 

[진양조]

충남 천안 삼거리에 수양청청(垂楊靑靑) 능수버들은 우리나라에 유명커든 지기상합(志氣相合) 다시 부르려 구 목천(木川) 지령리에 평화로운 유 씨 가정 관순 처녀 태어나니 일대명전(一代名傳) 순국(殉國) 처녀(處女) 도움 없이 삼겼으랴. 계룡산수 창[壯]헌 기운 지령리에 어려 있고 금강수 흐르난 물은 낙화암(落花巖)을 돌고 도니 삼천궁녀(三天宮女) 후인인지 귀인자태 아름답고, 월궁항아(月宮姮娥) 환생헌지 뚜렷한 그 얼굴은 의중지심(意中至心)이 굳고 굳어 미간(眉間)에가 어렸으니 일대영양(一代令孃)이 분명쿠나.

 

[아니리]

그의 부친 유중권(柳重權) 씨는 성심이 청렴하사 부귀를 원치 않고 농업장생 글을 읽어 가는 세월을 소유(溯游)허니 정대(正大)한 예문은 군자의 덕행이요, 그의 아내 이 씨 부인 또한 만사가 민첩하사 예국예절이 능란허니 뉘 아니 정대[敬待]허리오. 자녀 간의 사남매를 금옥같이 길러내어 부모의 유전인지 모두 다 현숙한지라 더욱이 관순이는,

 

[단중모리]

어려서부터 커날 적에 다른 아이들과 다른지라. 부모으게 효도하고 동기으게 화목허기, 예의염치 귀염좌립[起居坐立] 뉘 아니 칭찬하며, 유다른 그 인정은 사랑홉고 따뜻하야 사람마다 정복되고 정대한 그 마음은 신의가 분명쿠나. 때는 마참 봄이 되어 동지들과 어깨 끼고 꽃노래 나물 캐기 밤이면 술래잡기 가는 세월 어느덧이 곱게 곱게 자라날 제,

 

[아니리]

음력 11월 17일은 관순 처녀 생일이라 관순을 옆에 앉혀 좋은 음식을 먹일 제,

 

[창조]

바라보던 그 부친은 별안간 한숨을 길게 쉬며 나라 없는 장탄수심(長歎愁心)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흐르며

 

[아니리]

영특한 관순이는 부친의 뜻을 어찌 모르랴. 부친을 만단(萬端)으로 위로하고 그날부터 어린 가슴 애국정열 굳고 굳어 가슴속에 맺힌지라. 세월은 흘러가고 관순은 차차 장성하여 소학과를 마치고 서울 이화학당(梨花學堂) 고등과에 입학허니 이곳은 번화한지라. 세계 여론과 유언비어가 떠돌고 매국한 무리들은 왜놈의 세력의 힘을 믿고 의기가 양양하여지니 뜻이 있는 지사들은 일성장탄(一聲長歎)에 해외로 망명을 연속하고 이 강산 이 땅은 흉몽 중에 잠겼더라. 그때여 관순은 이화학당 후원에 홀로 앉아 자탄을 허는디,

 

[진양조]

“창창(蒼蒼)한 만리건곤(萬里乾坤) 호호망망(浩浩茫茫) 멀어 있고, 애달플사 이 강산에 청춘남녀를 부르건마는 힘이 없는 우리 민족 호소할 곳 바이없어 아무리 슬피 운들 주인 없는 이 강산에 나라 없는 백성이라. 옛 성현이 이르기를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중한 법은 오륜 중의 으뜸이요, 부자유친(父子有親) 천륜으로 앞을 서지 못했으니 이 모두가 대의분별 하심이라. 내가 비록 여잘 망정 배달 혈통이 그 아닌가. 천창만검(千槍萬劍) 살기 중에 진을 둘러 싸우기는 장부같이 못하여도 내 한 목숨이 끊어져서 국민의무를 지키는 것을 어찌 남녀가 다를쏘냐. 울울(鬱鬱)한 이내 심사 하느님께 맹세하고 처참난유[千斬萬戮] 될지라도 한번 먹은 이내 심사는 변할 리가 없으리라.”

 

[아니리]

이렇닷이 슬피우니 두 눈에 눈물만 흘러 앞섶을 다 적시고 구곡간장 타는 가슴 혼문수탐 되었더라. 이화학당으로 돌아와 관순이 생각허기를 우리가 배움이 없어 내 나라를 잃었으니 많은 연구와 공부에 열중하리라.

 

[휘중중모리]

천성이 본래 활발하야 만사를 달통하고 뛰어난 그 총명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일을 깨우치고 한번 일러 허는 말은 일호차책[一毫差錯]이 없는지라. 이화학당 새 봄빛은 꽃다운 우리처녀 동방예의가 분명하고 언정이순(言正理順) 그의 덕은 여러 선생 칭찬이요, 자비한 그 인정은 동무들게 감탄이라. 휴가일에는 빨래하기 새이새이 자습이요, 기숙사 실내 안을 남의 손 댈 새 없이 거울같이 소제(掃除)허니, 일향처사(一向處事) 맘과 같이 정결하고 깨끗허다. 위생에 중한 책임 건강의 관념이요, 부녀부(婦女部) 정결함은 온 가정의 근본이라. 이 강산 이 땅 위에 부족한 우리 위생, 관순은 미리 알고 여유시간 소제함을 의무라고 생각헌다.

 

[아니리]

이렇듯 세월은 흘러 관순 나이 십육 세라. 그때여 고종(高宗) 황제께서는 조선조 제26대 왕으로서 선왕인 철종(哲宗)이 세자 없이 돌아가시자 조대비(趙大妃)가 옥새를 잡고 영조(英祖)의 현손(玄孫)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둘째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디, 고종은 왕위에 있으면서 너무나 많은 전쟁을 치루어야 했던 것이었다. 이때에 일본은 강압적으로 우리나라를 빼앗고 고종 황제를 덕수궁에 머무르게 하야 세월을 보내는디, 그것도 모자란 일본은 그 후 1910년에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완전히 저희 손아귀에다가 넣고 고종 황제를 죽일 음모를 꾀하는 중,

 

[휘중중모리]

그때여 고종 황제께서는 오백 년 사직을 잃고 분함이 충천(衝天)하되, 강약을 이미 아신 고로 백성의 생명을 더욱 아껴 갖은 지옥[恥辱] 십 년간에 외로운 덕수궁(德壽宮)에 세월을 보내실 제 우리나라 간신들은 왜놈의 세력을 더욱 추세(趨勢)하여 공훈이 씩씩 올라가고 이완용(李完用), 송병준(宋秉畯) 만고역적(萬古逆賊) 놈들 부귀가 더욱이 혁혁(奕奕)하여지되 심중에 있는 근심은 고종 황제 생존하심이라. 기회를 자주 엿보더니, 슬프다 고종 황제 우연히 득병하시니 이완용 정성이 있는 체하고 좌우를 물린 후에 탕약을 이완용 손에 거쳐 고종 황제 잡수시니 그 가운데는 무슨 음모와 비밀이 있는지라. 병세는 더욱 위중하여 눕고 일지 못하시더니 그대로 황제는 붕(崩)하신다. 삼천리 이 강산에 군부상사(君父喪事) 슬픈 설움 원한이 가득허고 팔도각골 면면촌촌 국상이 발표되니 곡반(哭班) 참배 소위 백관 예악예절(禮樂禮節)이 분분, 인산(因山) 위문을 허랴고 구름같이 모아들 제 전조(前朝) 제신들은 대한문 너른 거리에 꺼적자리에 베옷입고 곡반 통곡하며 “원통하오 원통하오.” 애끓는 슬픈 울음 원한이 한데 뭉쳐 만호장안(萬戶長安)의 백성들은 분기가 만면, 혈기방장 청년 학도 주먹이 불끈불끈 어깨가 으씩으씩 그저 장안은 수군수군 “여보 이게 웬일이오. 고종 황제께선 암만 생각하여도 간신의 피해를 받으셨지 이놈들 죽여야지.” 가가호호(家家戶戶) 거리거리 의견이 분분 일어날 제 각처 교실 내외선 무슨 비밀이 갔다 왔다 수선수선 무거운 침묵 속에 민족자결(民族自決)을 응하여, 독립운동 시위 행렬 전국적으로 일어날 제 손병희 씨 선두 되고 여러 수반 의인들은 차서(次序)를 분별하야 태극기 선언서(宣言書)를 만단같이 준비한 후 삼월 일일 열두 시에 거사허자는 약속이라.

 

[아니리]

때는 2월 28일 민족대표 서른세 명이 손병희 씨 댁에 모두 모여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의논허고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에 서명을 헌 연후에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의 각국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보내고 대의 날을 기다릴 제,

 

[자진머리]

때는 벌써 이월 그믐 밤이 적적 깊었난디 각처 수반 의인들은 잠을 이루지 못허고 명일 거사 준비헐 제, 어느새 먼동이 희번 원산이 쭝긋쭝긋 동녘에 해가 뜨니 삼월 일일이 오날이라. 파고다 공원 앞으로서 구름같이 모어들어서 약속시간 기다릴 제 벌써 열두 시 정각을 땡땡. 선언이 끝이 나자 태극기 번뜩 북악산이 우루루루루 “대한독립만세 만세!” 장안이 으근으근으근 남산이 뒤끓어 삼각산이 떠나갈 듯 의분기창(義憤氣脹) 청년학도 솟을 듯이 나아갈 제 어디서 총소리 쾅 칼날이 번뜩, 쓰러지는 우리 동포 죽어가면서도 독립만세. 산지사방(散地四方) 만세소리 연속하여 일어나고 포악무도 일본헌병 거리거리 길을 막고 함부로 난타하야 총으로 쏘고 칼로 쳐서 선(先)머리 턱턱 쓰러져도 그저 물밀듯이 피 끓는 청년들은 주먹 쥐고 우루루루루, 왜놈들 냅다질 꺼꾸러 쳐 좌우에 총소리 쾅 쾅. 슬프구나 어흐어 우리나라 당당헌 의무련마는 무도한 왜놈들은 함부로 총을 쏘니 주검이 여기저기 수라장이 되었구나.

 

[아니리]

이렇듯 수라장 속에 몇몇 학생들이 빠져나와 이화학당으로 돌아오니 그때여 교장 프레이(Frey) 미국 선생이 창백한 얼굴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학생들을 반기하며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준 것이 무엇보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여러분들은 아주 장한 일들을 하였소. 일본은 언젠가는 큰 벌을 받을 것이오.” 한참 이럴 쯤에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쳐 독립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을 찾아내라고 독촉을 하는 한편 총독부에서는 각 학교 임시 휴학의 명령을 내렸겄다. 관순이도 하릴없이 저의 고향으로 내려가는디,

 

[중모리]

그날 즉시 길을 떠나 구 목천 지령리 지체 없이 내려와서 부모님께 아뢴 후에 근동 사람 모두 모아 선언서를 발표한 후 우리는 때가 왔으니 앞을 서서 나갑시다. 모인 중 조인원(趙仁元)이 주먹을 들고 일어나고 관순은 각처 연락 곤한 줄도 모르고 천안읍 김구응(金球應)을 찾으니 이 또한 동지라. 여러 학교를 충동(衝動)하고 청주 진천 유림대표 모두 찾어 약속한 후 면면촌촌 가가호호 방문하여 부인들을 충동(衝動)하느라 주야배도(晝夜倍道)허는구나. 

 

[아니리]

이렇듯 활동헐 제 이러한 결과로 동지들을 얻어 음력 삼월 일일로 정하고 관순은 그날 밤 매봉산에 올라가 봉화를 놓아 군호를 올린 후에 홀연히 앉아 자탄을 허는디,

 

[진양조]

“적적히 홀로 앉어 오날 일을 생각허니 무인공산(無人空山)에 밤이 이미 깊었난디 밤새소리는 부웅부웅 바람은 나뭇가지를 쓱 스쳐간다. 묻나니 청산이여 고국흥망을 뉘랴 알리로다. 반만년 우리 역사 일조일석에 무너지고 갖은 지옥[恥辱] 십 년간에 호소할 곳이 바이 없이 명일 대의를 잡어 일어나니 천지신명은 살피소서.” 이리 앉어 자탄을 허되 무심한 청산은 아무 대답이 없고 서천(西天)하늘에 별빛만 기울어졌네. 아이고 원통하여라 구곡간장 장탄으로 밤이 깊어 가는 줄을 모르는구나.

 

[아니리]

이렇닷이 자탄을 헐 제 먼촌에 개 짖는 소리 들릴 적에

 

[자진머리]

날이 차차 밝아지니 음력 삼월 첫날이라 아우내장 네거리에 십육 세 어린처녀가 무엇을 옆에다 끼고 왔다갔다 수천 명 군중들은 연속하여 모어들고, 한편 지령리에서 태극기 서로서로 조용조용히 나누어 줄 제, 어느새 오후 한 시라. 유관순이 높이 서서 선언서를 낭독헌다. 반만년 우리역사 왜놈들게 무고히 뺏긴 십 년에 민족자결을 응하야 독립운동 시위행렬 허자는 선언이 끝이 나자 태극기 높이 들어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천지가 뒤덮는 듯 강산이 뒤끓어 매봉산이 떠나갈 듯 수천 명 군중들은 시위행렬 전진헐 제 어디서 총소리 쾅 김구응 꺼꾸러지니 관중은 더욱이 열이 복받쳐 “이놈아 이놈아 개 같은 놈들아 총은 너희가 왜 쏘느냐 저놈들 죽여라.” 우우우 달려들어 파견소 문짝을 후닥닥 지끈 와지끈 때려 부수니 왜놈이 겁내어 담 너머로 도망가고 어디서 자동차 소리가 우루루루루루루루 천안 헌병본부에서 응원대 쫓아 들오며 총소리 쾅 쾅 유중권 내외가 꺼꾸러지고 조인원이 쓰러지니 관순이 눈이 캄캄 우루루루루루루루 달려들다 칼날이 번뜩 또 쓰러지니 관순이 기가 막혀,

 

[자진중중모리]

"허허, 이것이 웬일이냐 야 이 몹쓸 왜놈들아 우리 민족 빈손으로 독립허자 허였거늘 무삼 일로 총을 쏘아 이 모양이 웬일이냐. 섰다 꺼꾸러져 때그르르르 궁굴어 보고 가슴을 쾅쾅 머리도 지끈지끈 부모님 시체를 안고 “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천추 원한 품으시고 영결종천(永訣終天) 하셨으니, 장엄한 이 죽음은 국민의무가 당연허나 철천지 맺힌 한을 어느 때나 풀으리까. 예끼 천하 몹쓸 놈들 금수만도 못하구나, 포악무도(暴惡無道) 기장구(豈長久)허리야. 나도 마저 죽여라.” 우루루루루

 

[아니리]

달려들다 헌병 발길에 건뜻 채여 꺼꾸러졌겄다. 관순이 분한 마음에 부모님 시체를 안고 죽기로 작정허니 그 때 마침 우리 동지 하나가 관순을 피신시켜 놓으니, 관순이 거기서 빠져나와 저의 집으로 돌아와 관복과 관석 두 동생을 만난 후에 헌병들에게 발각되어 여러 동지들과 하릴없이 끌려가는디,

 

[늦은중모리]

붙들리어 가는구나, 끌리는 포승줄은 앞뒤로 얽어매고 손에는 수갑이라. 흐트러진 머리채는 두 귀 밑에 늘어지고 피와 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친다. 아우내 장터 사람들은 모두 나와 울음을 울고 세상을 모르고 누워있는 여러 동지 부모양친은 고요히 잠이 들어 아무런 줄을 모르는구나. 관순이 망극하여, “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불효여식 관순이는 사세부득 끌려가오니 죄를 용서하옵소서.” 애끓어 슬피 우니 흘린 눈물 비가 되고 한숨은 모아서 청풍(淸風)이라. 청산도 느끼난 듯 관순은 오열하여 휘늘어져 곱든 꽃은 이울어져 빛을 잃고 뜻밖의 두견이는 피를 내어 슬피 울어 야월공산(夜月空山) 얻다 두고 진정제송단장성(盡情啼送斷腸聲) 촉국한이 깊었으니, 니 아무리 미물이나 사정은 날과 같이 천추 원한 운다마는 사세가 부득이 되니 수원수구를 어이 허리. 이렇닷이 울음을 울 제 표독한 일본헌병 성화같이 재촉헌다. 백여 명 동지들은 칼 맞어 팔 못 쓰는 사람, 총을 맞고 다리 절어 전동전동거리고 끌려간다. 의분은 창천(蒼天)에 닿아 있고 슬픔은 산하에 찼다. 어느새 일모도궁(日暮途窮)하여 박모(薄暮)에 들어설 제 천안읍을 당도터니 이곳은 헌병본부이니라. 위엄이 늠름 살기가 일어나고 의기가 만면허여 호령이 추상같은지라, 관순은 노려보며 태연히 들어간다.

 

[아니리]

그때여 헌병 대장이 관순의 목에 총을 딱 대고, “너 이년, 조그만헌 년으로 이런 범란(汎瀾)한 짓을 할 리가 없고 반드시 네 뒤에는 지도자가 있을 터이니, 지도자가 누구인지 바른대로 말하여라. 그러면은 니 목숨만은 살려주마.”

 

[단중모리]

“이놈아 니 나를 어찌 보느냐 내 나이 십육 세라 오천 년 배달민족 우리 한국 처녀여든 죽는 것을 두려하야 개와 같은 네놈 앞에 살기를 구할쏘냐. 총으로 쏘든 칼로 치든지 양단간에 하려무나. 나 죽은 혼이라도 너희 나라 혼비중천(魂飛中天) 떠다니며 너희들을 몰살시켜 원한을 풀어 보리라. 아나 이놈아 나를 썩 죽여라.” 앞니를 와드득 와드득 두 주먹 벌벌 떨며 “선도자는 내로다. 무도한 왜놈들아 어서 급히 죽이어라.”

 

[아니리]

이렇듯 포악을 해노니 헌병대장 어이없어 관순을 다시 결박허여 공주 검사국으로 넘겼겄다. 그때여 관옥(寬玉)이도 시위행렬허다 붙들려 들어와 그곳에 신문(訊問)을 받으러 왔다 형제 만나게 되었구나.

 

[창조]

관순이 기가 막혀,

 

[중모리]

섰다 절컥 버썩 주잕더니 “아이고 원통하여라 원통하네 나라 없는 외로운 몸이 부모까지 이별허고 형제는 각기 감금되니 어린 동생들을 어이하리. 아이고 이 일을 어찌를 헐그나.” 복통 단장성으로 울음 우니 그때여 관옥이는 아무런 줄을 모르다, “이 애 관순아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고 오라버니 아우내 장터 행렬 시에 양친이 다 돌아가셨소.” “무엇 어째.” 관옥이 정신 상망(喪亡)허여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꺼지난 듯 목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허고,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그저 퍼버리고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듯 두 형제 붙들고 울음 우니 악독한 일본 헌병들이 달려들어 두 형제를 띠어 각각 감옥으로 끌고 가는디,

 

[중중모리]

그때여 관순이는 검사국에 신문받고 백여 명 동지들과 옥으로 나려갈 제 악독한 일본헌병 총칼을 매고 새이새이 끼어 서 감금이 엄숙하여 공주교를 얼풋 지나 좌우를 둘러보니 남녀노소 수십 명이 거리거리 늘어서서 혀도 차고 눈물 흘려 장하다고 탄식헌다. 그곳을 지나 감옥 앞을 당도허니 간수는 문을 열어 죄수를 받고 서류를 모아 명록 대신 번호를 써서 앞섶에다가 붙여 각기 분방을 시킬 제 그때여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각처에 벌어져 시위 행렬이 연속이라. 포악무도 일본 헌병 총으로 쏘고 칼로 쳐서 함부로 얽어 묶어 끌어갈 제 분함 하늘에가 사무치고 장엄한 그 죽엄은 도처마다 물을 들여 흘린 피로 물들으니 아름다운 애국정열 장하고도 씩씩허다.

 

[아니리]

이때여 우리 동포들 각처에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붙들리어 들어와 모진 고문과 악형으로 죽어가는 동지들이 수도 없이 많은지라. 관순도 또한 공주 검사국에 불복허고 경성 복심법원에 상소(上訴)를 허였는디, 이리하여 경성 복심법원으로 옮겨지니 관순이는 서대문 미결 감옥에 처허는지라. 그 후 며칠이 지난 후에 관순이 재판 날이 돌아왔는디,

 

[진양조]

위엄이 늠름허다. 예복(禮服)을 입은 일본 검판사는 층계 위에 높이 앉았으니 교만(驕慢)과 살기(殺氣)가 만면(滿面)이라. 좌우편의 변호사는 우리 동포 죄를 감소시키려고 법률 책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니 이는 선인이 분명하고 모아 앉은 방청객은 겹겹이 모두 늘어앉어 체형(體刑) 언도(言渡)를 볼 양으로 담담허니 앉었구나.

 

[아니리]

그때여 검사가 의기가 양양하게 관순을 쏘아 보며, “네 이년 너는 죄인의 몸으로서 감방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그 또한 큰 죄이려니와 대 일본국 천황 폐하를 무시한 죄 더더욱 큰 죄로다.” 관순이 듣고 문답허되, “너희들에게는 천황 폐하로되 나에게는 대철천지 원수로다.” “저런 저런 저런 발칙한 년. 네 이년 네 죄를 생각하면 당장에 이 자리에서 처형할 일이로되 너 아직 어린 고로 징역 칠 년을 구형하노라.”

 

[엇머리]

관순이 분기 충천하야, “이놈 무엇이 어째여, 우리 민족 빈손으로 독립허자 허였거늘 무삼 일로 총살허고 감금수옥헌단 말이 네 입에서 나오느냐.” 앉았던 의자 번쩍 들어 우에를 보고 냅다 치니 의분은 충천 법정은 뒤죽박죽이 되야 검판사 넋을 잃고 좌우 간수들도 어찌할 줄 모를 적에 모아 앉은 방청객은 의분이 복받치어서 주먹만 벌벌 떨고 무슨 말이 나올 듯 입만 딸싹딸싹.

 

[아니리]

하마터라면 여기서도 큰일 날 뻔허였던가 보더라. 이리하여 관순을 다시 결박허여 감옥으로 끌고 가는디.

 

[창조]

그때여 관순이 적막 옥방 홀로 앉아 옥창 밖을 내다보니 만리장공(萬里長空)에 구름만 담담허고 흐트러진 나라 근심과 원통하게 돌아가신 부모양친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허니 추연(惆然)히 눈물을 흘리며,

 

[진양조]

“내 죄가 무삼 죈고 부모불효 하였느냐? 살인강도헌 일 없이 음양작죄(陰陽作罪) 아니어든 감금수옥(監禁囚獄)이 웬일이냐. 죄가 있고 이럴진대 아무 여한이 없으련마는 나라 없는 민족이 제 나라 찾자는 게 그게 무슨 죄란 말이냐. 당당한 의무련마는 세사가 모두 이렇던가. 아이고 원통하여라 이제 내가 죽어져서 외로운 혼백이 만리장공에 흩어지고 만수청산에 일분토가 되면 만사를 모두 잊으련마는 무엇을 바래고 내 여태 살아 있어 이 모양을 당하는구나. 옛날 고려 포은 선생은 나라 위하여 죽어 있고 단종 때 성삼문 씨 독야청청 절(節)을 지켜 충직지(忠直旨) 임명허니 군신유의 중한지고. 진주 논개 평양 계월 나라에 몸을 바쳐 대의를 위하여 죽었으니, 나도 또한 사람이라 고인만은 못해여도 인신지본의(人臣之本義)를 왜 모르랴. 이제 내가 죽는 것은 섧잖으나 사후 영결허신 부모님 초상장례를 뉘 했으며 철모르는 어린 동생들은 뉘 집에서 자라날꼬. 분하고 내가 원통한 사정을 어느 으 누게다가 하소를 허리.”

 

[아니리]

이렇듯 슬피 울다 의분이 복받치어 옥창문(獄窓門)을 두다리며 독립 만세를 삼창으로 부르난디,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이렇듯 냅다 질러 놓으니, 그때여 우리나라 동지들이 수도 없이 붙들려 들어와 각각 감방에 감금되었는지라. 관순이 외치는 소리에 여기에서 그 소리를 듣고 같이 합창으로 불러노니 감옥 안이 발끈 뒤집혔던가 보더라. 황급한 간수들은 관순을 잡아 끌어내어 다시 신문을 하는디,

 

[중모리]

좌우에 일본 간수들은 관순을 잡아내고 전옥(典獄) 이하 간수장들은 일제히 늘어앉어 추상같이 호령을 한다. “어 이년 너는 일국의 백성이 되어 국법을 무시하느냐?” “미친 도적놈들 말 들어라. 당초에 너희 놈들이 보호조약을 억지 하여 위협적 침략정책 우리나라를 짓밟어 뺏고도 무삼 면목에 낯을 들어 그런 말을 허느냐? 나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너희 법을 부인하노라.” “허허 그년 당돌허다. 니가 어찌 당초 근본을 알겠느냐. 내 자세히 일러주지.” “무엇, 근본? 흥 어디 말해봐라.” “너희 나라에 당파가 있어 보전할 길이 없는 고로 우리 병력을 다하여서 일청(日淸) 일로(日露) 전쟁함이 그게 모두 너희를 위함이라.” “오 그 일로 말할진데 너희 놈들이 간흉(奸凶)하여 우리나라를 도적허자 근본이니 그건 더욱 흉측허지.” “무엇 어째. 이년 또 들어봐라. 너희 군신이 합배(合拜)하여 보호를 부탁하였고 합병(合倂)을 하자는 것도 그게 모두 너희를 위함이라.” “어허 어찌여 뻔뻔허구나 왜놈들아. 그것은 너희 놈들이 우리나라 역적들과 공모하여 너희들 맘대로 허였으니 우리 의사 안중근(安重根) 씨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죽인 후로 여순(旅順) 감옥에서 사(死)허시고 이준(李儁) 선생은 배를 갈라 만국회(萬國會)에다 피를 뿌려 세계만국 경탄이요, 우리 동포 흘린 피는 도처마다 물을 들여 천추 원한 맺힌 한을 너희도 응당 알 것이다. 쥐와 같이 간사헌 놈들 포악무도 일삼으니 아니 망허고는 안 되지야.” “에잇 그년 천하에 독한 년이로다. 당장에 말 못 허게 치려무나.” 때리고 달고 치고 물을 퍼 씌어놔도 꼼짝달싹 않고 더욱 정신이 씩씩하여지며 “얻다 이 흉폭한 왜놈들아 너희가 나를 쫙쫙 찢어 육장(肉醬)을 만들든지 동동이 가르든지 너희들 맘대로 하려니와 나의 굳은 마음은 못 뺏지야. 옛글에 이르기를 적국지수(敵國之首)는 아국지수(我國之讐)요 아국지수(我國之首)는 적국지수(敵國之讐)라. 너희 놈들이 나를 죽이는 것은 흉폭한 너희 목적이요, 나는 이 자리 죽난 건 당당한 나의 의무라 헐 것이니 당장에 목숨을 끊으려므나.” “에잇 그년 천하에 독한 년이로다.” 화덕에다가 불을 피워 쇠끝이에다 불을 붉게 달아서 살을 푹푹 찌르니 기름이 끓고 살이 타져도 꼼짝달싹 않고 여전히 포악을 허는구나. “에잇 그년 단칼에 쳐 죽여라.” 칼로 찌르고, 살을 점점 헤쳐노니, 아깝구나 우리 관순 악형을 못 이기어 죽어가면서도 포악이라. 입만 딸싹딸싹 천추 원한 품에 품고 아주 깜박 명진(命盡)허니 피는 흘러 땅에 그득허고 피육은 점점 흩어졌네. 장하구나 순국처녀 몸은 죽탕이 되었으되 의혈(義血)만은 살아 있어 깨끗한 그 영혼은 만리장공에 높이 떴구나. 창천도 느끼난 듯 일광도 빛이 없고 날아가는 새짐생도 허공중천 떠돌고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넋을 일고 고요허니 서서 있다. 여보시오 여러 동포 이팔청춘 어린 처녀 나라에 몸을 바쳐 순국열사 허였단 말 나는 고금천지 처음이요, 반만년 역사 중에 아름다운 이 이름은 명전천추(名傳千秋) 그 아닌가. 어화 세상 사람들아 만세 의혼께 축배허세.

 

[중중모리]

어화 청춘 소년들아 관순 씨의 본을 받어 나라 위하여 일합시다. 인생은 최귀(最貴)하요, 만물의 영장이니 대의지신 굳게 뭉쳐 각기 의무를 지킬지라. 예로부터 충의절은 이 나라의 기둥이요 간인(奸人) 중의 탐욕자는 만세추명(萬歲醜名)이 한심쿠나. 부귀는 지내가고 공명은 부운(浮雲)이라 일시(一時) 허영(虛榮) 부린 지신[侈心] 추호도 두지 말고 정의를 바로 하야 이 강산 이 땅 위에 만세영화(萬歲榮華) 빛내기는 여러 청춘들의 책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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