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할머니와 구전가요

새벽에 경주에 도착해서 조카들 방에 누웠으나 잠은 아니오고..
생뚱맞게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떤 겨울밤, 할머니가 부르는 옛날 노래를 들으면서 수많은 질문을 했는데 귀찮은 기색없이 낱말 하나하나 설명하던 할머니.
너무 그립다.

"상큼상큼 쌍가락지 호작질로 닦아내어" "할메야, 호작질이 뭔데"
할머니는 마치 가락지를 진짜로 손에 든 것처럼 시늉을 하며 "요래 들고 옷고름으로 살금살금, 요래요래 닦는기를 보고 호작질이라 칸다."
"먼데 보니 달일래라 잩에 보니 처잘래라""할메야 달이 뭐꼬?"
"여자가 결혼을 하모 비녀를 꽂는다 아이가. 비녀 꼬븐 기 꼭 달가타 캐서 결혼한 여자를 달이라꼬 했다 아이가."
"그 처자야 자는 밤에 말소리도 둘이래라 숨소리도 둘이래라.
호랑호랑 오라바시 거짓말쌈 말아주소 동지섣달 그믐달에
문풍지 우는 소릴래라." "오라바시는 뭔데?"
"오라바시는 오래비를 오라바시가 칸다.""오래비는 뭔데?"
"오빠야..오빠야가 오래비고, 오래비가 오라바시다."
"죽고재라 죽고재라 자는 듯이 죽고재라.
내가 죽거덜랑 앞산에도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연대밭에 묻어주소
연꽃이 피거덜랑 연화라 불러주소."
"할매야 연대밭이라 카모 연꽃이 많이 피는 곳이가?"
"맞다. 그라고 이노래가 무슨 노래고 하모. 겨울 섣달 그믐 깜깜한데 달이 흔들흔들 비치니까 처자가 자는 방에 꼭 사람이 있는 거 맨치로 보였던 기라. 그래가 처자 오래비가 처자보고 니는 처잔데 와 남자로 끌여들였노라고 지 동생을 뭐라했는기라. 처자는 마 억울해가 죽었삐고, 죽으면서 연대밭에 묻어달라 유언을 하는기재. 할메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배운 노래다."
"할메야 오래비가 너무 못됐다. 와 동생을 못믿노. 그러니까네 동생이 죽어삤지. 그라고 그 동생은 그런 걸로 죽기는 와 죽노"
"옛날에는 여자들이 결백하다꼬 보일라카모 죽어야 했데이."

어렸을 때 처음 이 노래를 들은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가서도 할머니 댁에 가면 이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이해하면서는 더욱 애잔해졌고, 할머니와 나눈 그 대화를 잊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하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좌우로 흔들흔들 흔들면서 할머니가 부르던 그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 중간중간에 툭툭 끼어들면서 질문했던 그 모습이 생생하기만 하다.
할머니!
나의 얘기 곳간이었고 같이 내 동화책을 나란히 누워서 읽었고, 얘기꺼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유년의 정서를 만들어 주신 고마운 분.
아직도 할머니의 마당에 뛰어들면 "아이고야. 니가 왔나. 우짠일이고." 웃으면서 반겨주실 것만 같은데, 이제 어디에서고 할머니의 흰머리카락 한개 조차 볼 수가 없다.
믿기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