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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만났던 그사람들

문득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이 났다.
엄마는 신부전증으로 95년부터 현재까지 투석을 하면서 병과 싸우고 있다. 초반기인 95, 96년에는 자주 입원을 했고 대학생이었던 내가 엄마 병수발을 들었던 기간이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인데 오늘 유난히 기억이 새롭게 난다.
엄마와 같은 병을 앓고 있던 그언니는 나보다 3~4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결혼한지 2년 정도 된 새댁이었고 아기가 있었다.
신부전증 환자들은 노폐물을 일반인들보다 걸러내는 일이 힘들어서 얼굴색이 거멓게 변하는데 그언니는 얼굴색이 우유빛이었다.
남편은 트럭운전사였고 언니와 같은 병실에 2달인가를 있었는데 내가 얼굴을 본 것은 2번이 다였다.
알고보니 언니와의 결혼생활에 진력을 내고 있던 중이었던가 본데 병실에 와서도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잠자기에 바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난폭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 없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언니는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으로 가끔 혼자 울기도 했고 병수발을 들고 있는 어머니에게 성질을 내기도 했다. 남편이 왔다가 간 날은 더했다. 언니의 어머니는 계속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 했기 때문인지.
어느날 나도 낮잠에 까무라져서 깼더니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모습이 참 잊혀지지가 않는다. 신부전증이라는 병은 행동반경을 조이고 불치병이기 때문에 평생 투석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그언니는 신부전증의 가장 큰 적인 당뇨병까지 있었으니.
결혼해서 행복한 신혼을 맛보기도 전에 힘든 몸으로 아기를 낳고 무심한 남편때문에 맘이 상하고 늙은 어머니가 젊은 딸 병수발을 들고 있으니 그 맘이 오죽하랴 싶었다.
퇴원하고 싶다고 보채는 언니때문에 억지로 퇴원을 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엄마가 다른 큰 병원에 가는 바람에 6개월 넘게 만나지 못했다.
다시 엄마가 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응급실에 실려온 언니를 만났다. 넋놓고 있다가 하루에 4번 해야 하는 투석을 두번이나 빼먹고는 쇼크가 와서 응급실에 들어왔다고 했다. 병실에 올라온 언니를 향해 언니의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 애도 아니고 말이야..여행 못가게 한다고 그러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언니는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었는데 그 표정은 실수가 아니라 세상만사 다 포기한채 투석 안해버릴 거야 라며 때를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니가 먼저 퇴원하고 우리도 퇴원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못만났는데 그언니의 하얀 얼굴과 표정이 가끔 떠올라 궁금해진다.
언니의 귀여운 아기(나는 무료함을 아기와 놀면서 지우기도 했다.) 후덕해보이던 언니의 어머니.
그 사람들은 어떻게 또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아니 그 전에 IMF가 터지고 민생고 심해졌을 때 특정한 수입이 없는 언니네는 어떻게 살아냈을까.
궁금해졌다. 사실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신부전증과 유아당뇨를 가지고 있는 언니는 위태위태한 수준이라서 혹 생명이 다하지는 않았을까, 무심한 남편이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을까, 아기는 학교에 들어갔을까.

(2001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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