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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노래칼춤] 검결속에 흐르는 오늘

오늘을 말하기 위해서는 과거, 걸어온 역사를 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좌절과 실수, 판단착오, 승리의 모든 것이 나와 있으니, 100년이 지난, 역사 속의 현장인 동학혁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뜻을 품어 동학에 입문하였으니 조직하고 훈련하는데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 가야할 길은 오로지 하나의 길이었다. 허나, 장대한 뜻을 품고 당당히 출전하였으나 찟겨진 깃발을 들고 침묵하였다.

이제 눈을 돌려 역사에 이름 석자 박았던 장두들이 아닌 동학혁명의 진짜 주역들인 한사람의 농민군과 아낙들을 보라.
역사속 여성은 난을 겪을 때마다 온만신이 부서지는 경험을 가지게 된다. 관군에게 겁탈당하고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한 아낙들은 남정네들보다 더 강하고 질긴 한과 희망을 갖고 있다.

이제 현재의 우리 모습이 담겨져 있는 장으로 가자. 고향을 잃고 병신이 된 광대패들이 다시 찾은 고향에는 밥짓는 따뜻한 풍경은 커녕 효수당한 정다운 이들의 잘려진 목들만 걸려있다.

동학혁명의 큰뜻을 갖고 출정했으나 죽은 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갖고 , 뒷날을 도모해 전쟁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허나, 혁명 속의 다양한 삶과 방식, 길을 보지 못하니. 이것이 지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광대로서의 길을 같이 가자는 '곰배'의 말에 '억수'는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로 일축해버린다.

"죽창 들고 나서는 것도 북을 치는 것도 싸움이고, 장구를 치는 것도 싸움이고, 춤을 추는 것도 싸움이고, 밥 짓는 것도 싸움이다."

넉넉한 싸움의 의미를 아는 '곰배'는 뒷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효수당한 목을 수습해서는 안된다는 '억수'에게 웃음과 함께 "그것도 너의 싸움도 맞고, 목을 거두는 것도 맞다"라며 이웃들의 목을 처연하게 거두다가 죽음을 당한다.

맞다. 싸움이 장두들만의 것이었나? 죽창들고 나섰던 사람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각자의 몫으로 살아냈던 그네들과 우리의 싸움이다. 오히려 죽음이 두렵지 않다라는 말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하는 그 하나의 행동이 진정한 싸움이 아닌가.

이제 '맑은물(청수)' 한동이 들어 절망과 희망의 판씻음 속에서 억울함, 분노, 한을 조금씩 풀어간다. 강요된 희망도 아니요, 주장도 아니다. 그저 이만큼 살아냈으니 또 아픔은 아픔대로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나.

과거에는 그렇게 살아왔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절망스런 현실에 모조리 해체되고 상처받아서 쓰러질 수 밖에 없지만 억울함이, 분노가 어디 가겄나. 내 맘속에 있으니 다독여서 삶을 살아가야지. 삶의 전장터에 의연하게 나가야지.

칼노래 칼춤 속에는 동학혁명만 아니라 광주혁명도 있고, 7, 80년대 민주화 투쟁, 노동운동도 있고, 90년대 이후 분열의 시기에 몸부림치며 싸우는 현재도 있다. 판안에서 함께 싸우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상처도 씻어내고 왔으니 오늘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해진다. 좋은 공연 보고 나면 만든 이들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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