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5/08/11 00:01

음... 거리도 멀고, 미술관 만든 이도 맘에 안 들고, 고전예술에 혹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이유로 호암미술관은 평생 안 가볼 줄 알았는데... 어떻든 가봤다.

 

[연꽃전]---------------------------------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제목은 연꽃전.

예쁘게 생긴데다가 물도 정화시킨다는 연꽃,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19세기초에 그려졌다는 [수련도 십곡병]. 물 위에 떠있는 연꽃이 그려진 10폭짜리 병풍이다.

가만히 보면 꽃은 평면이고 간략한데, 연잎은 화려하고 정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감동이다.




아래 그림은 역시 19세기 조선시대 그려졌다는 [연압도].

연꽃과 오리 그림이다.

오리가 물살을 헤치는 모습이 마치 모래 위를 헤집고 다니는 듯해서 웃긴다.

 

이 [연압도]의 연꽃과 연잎도 참 섬세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현재 심사정이라는 사람이 그린 [연지쌍압도]는 더 섬세한데다가 무척 화려하다. 평면인데도 이파리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아래 그림은 김홍도가 그린 [연해도]. 화첩에 그려진 건데, 담백 그 자체.

크기로 봐서는 연잎위에 연꽃, 그 위에 게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반대라도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그림 근처에는 정선이 그린 [삼승정도]가 있었는데, 인왕산 동쪽 기슭의 세심대와 옥류동 사이를 그린 산수화다.

그림 한 가운데 작은 집과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못 위에 떠있는 연잎들이 마치 커다란 물방울 같아보인다.

 

 

18세기 김두량이라는 사람이 그린 [화조도]도 참 고왔는데, 물위로 고개를 떨군 연잎 사이로 오리가 헤엄쳐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니 왠지 자연은 종족을 떠나 모두 어울릴 수 있는 대단한 존재다 싶다.

 

14세기 고려때 만들어졌다던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권10변상도].

오른쪽엔 보현보살이 제자들에게 비로자나불의 화장체계를 설법하고 있고,

그 설법 그대로 왼쪽에 화장체계가 구현되어 있다.

세상의 가장 밑엔 풍륜이란게 있고 그 위에 향수해가 있고 그 속에 큰 연꽃이 있는데,

그 연꽃 안이 화장세계란다. 그 주위는 아름다운 금강륜산이 둘러싸여있다.

화장세계란 연꽃속에 있는 일체의 만물을 뜻한다는데,

연꽃 안에는 꼬마 부처들(내 생각에)이 연잎 줄기를 따라가보면 그 끝에 연결되어 잔뜩 앉아 있다.

왠지 이정애 만화의 [안녕 유리카]에 나오는 미래인들의 존재 그 자체같기도 하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강하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전시회에는 그림 뿐만 아니라 조각이나 도자기도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 [업경대]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험상궂은 사자(내지는 해태)위에 연꽃장식의 기둥이 있고, 그 위에 화염에 둘러싸여있는 거울이 있다. 이 거울은 명부에 끌려간 자를 비추면 업이 얼마나 되는 지 보여준댄다. 그에 따라 윤회시키겠지?

 

[2층]---------------------------------

연꽃전과는 관계없이 2층에는 항상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이 있었다.

별 생각없이 돌아보려다가 그 중 2개의 병풍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호피장막도 8곡병]과 [철산읍지도 8곡병]였다.

 

보통 병풍은 일관된 주제나 한폭한폭마다 십장생을 그린다던지 그러던데,

[호피장막도 8곡병]은 전체 8폭에 호피가 드리워져있고 3번째 폭과 4번째 폭에 호피가 살짝 들어 올려져있다.

그 사이로 서재의 모습이 보인다. 책상도 보이고 안경도 보이고... 정말 특이한 병풍이었다.

 

[철산읍지도 8곡병]도 한 '개성'하는데, 오른쪽 5폭은 그야말로 흔한 산수풍경이었지만 왼쪽 3폭은 도성 모습이 성냥갑 쌓아올린 것처럼 그려져있다. 마치 현대의 도심 속 같다. 심지어 새들도 빌딩 꼭대기에 모여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완전 포스트모던!

 

병풍 말고 재미있었던 그림중 하나는 [금강산도]였는데, 진짜 초등학생 정도가 그린 보물지도처럼 생겼다. 만화영화에서 많이 본 지도 그림이다..^^

 

[잠깐, 그림 본 전반적인 느낌]------------

전시회엔 도자기나 조형물도 많았는데 나는 그림에 관심이 많이 갔다.

 

옛날 그림들, 식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특이한 그림 몇가지가 나를 빙그레 웃게 해주었다.

특히 민화는 - 몇 작품 안되어 참 아쉬웠지만 - 정말 독창적.(O_O)b

(이미지파일이라도 남기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당.)

학교 미술책에선 민화는 그저 덜 섬세한 그림 정도였던 것 같은데 왠지 대한민국 교육에 다시 한번 속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고전도 새롭다. 

확실히 빛바랬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바람 한번 휙 불면 찰랑찰랑 움직일 것 같다. '생동감 넘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또 하나 느낀 점은 그림을 보고 있으니 뭔가 계속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 연잎 쓴 아이는 이제 무얼 할까?

두 아저씨는 앞뜰에서 무슨 수다를 떠는 걸까?

연잎을 헤쳐나온 오리는 무리들쪽으로 움직일까? 재미있다고 다시 연잎으로 들어갈까?

머리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그것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가 가능한 그런 무한한 이야기를...

 

 

[외부]---------------------------------

호암미술관은 외부에 넓은 정원과 호수를 볼 수 있는데, 약간 인공 냄새가 나긴 하지만 한적하고 탁 트여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비가 약간 와서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런지, 한산하기도 하고 풀, 나무들도 싱그러워보였다.

 


 


 

 


 

* 사족

(혹시 갈 사람 있나 싶어서) 호암미술관을 어떻게 갔냐하면...

사당역에서 1500-2번 타고 80분 -> 에버랜드에서 무료셔틀버스 이용(5분)

에버랜드에서 호암미술관까지 셔틀버스는 오전 10시부터 16시까지 매시정각에 출발.

 

* 사진출처 : 호암미술관(http://www.hoammuseum.org) + 직접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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