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5/12/23 14:01

* 지난 20일에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이 모여 집회 한바탕했는데, 이젠 아주 대놓고 이빨을 드러낸다.

기껏 낮춰놓은 교사대 아동 비율을 다시 높이라느니, 벌칙 규정이 너무 과하니 삭제하라느니 요구도 참 자본가스럽다. 이렇게 돈 보고 보육에 뛰어든 이런 인간들이 운영하는 민간시설이 줄잡아 24,000여개에 달한다.

 

------------------------------------------------------

 

노골화된 어린이집 원장들의 영리 추구 목소리, 사라지는 아동인권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는 요즘, 한 언론매체가 교수들에게 2005년 올해에 걸맞는 사자성어를 물어본 결과 "上火下澤(상화하택)"이 선정되었다. "上火下澤"은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이라는 주역에 나온 사자성어로,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뜻한다.
표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올 한해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사태와 반목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모든 사태는 대한민국의 일반 민중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민중들은 그저 광경을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반과 분열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최근 일어난 황우석 교수 사태는 그야말로 진실을 숨기는 자, 서로 진실이라 말하는 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발뺌하는 자들에 의해, 단순히 과학계에서 일어난 분쟁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삶의 태도까지 훼손시켜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안겨주었다.
생명공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신중히 연구하고 진실을 밝혀내고 널리 알려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진실을 은폐, 왜곡하여 사회구성원들끼리 가져야할 최소한의 배려와 상식조차 져버린 꼴이다.
여러 가지 현상들이 반복되면서 민중들은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진심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성과주의에 놀아나면서 각종 의혹 속에서 혼돈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통탄스럽게도 보육계 역시 보육의 진정한 현실을 알리고 인권보육 실현에 앞장서야 할 이들이 기본적인 아동인권조차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윤 추구에만 경도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요구야말로 반인권적 행위이다!
지난 12월 20일 종묘공원에서 (사)한국보육시설연합회(이하 '한보련')는 민간분과위원회 주관으로 '보육현장에 맞는 영유아보육법령 개정 촉구 결의대회'를 주최하였다.
주로 민간어린이집 원장들로 구성된 그들은 만3세 아동의 교사 대 아동 비율을 1:20에서 1:15로 줄이는 것에 대해 '대책 없는 정원축소'라며 전면 유예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재해대비시설 설치에 대해서도 5년간 유예를 촉구하였다.
아동의 보육받을 권리를 언급할 때 가정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교사 대 아동 비율이다. 그동안 5세(만3세) 아동은 6,7세와의 연령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1:20이라는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유지해왔다. 이렇게 한 교사가 담당하는 아동의 수가 증가할수록 아동에 대한 보육이 질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이다. 더 줄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그나마 개선되고 있는 사항을 유예하라는 것은 보육에 임하는 그들의 기본 자세를 의심하게 만든다. 또한 수많은 아동들이 하루 중 꽤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는 보육공간에 비상재해대비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인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한보련이 5년간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충격적이다.
일련의 요구들 속에 나타난 한보련의 모습은 도저히 보육현장에 존재하는 보육인의 그것이라 볼 수 없다. 그저 그동안 추구했던 이윤에 대한 손실을 두려워하는 자본가의 모습일 뿐이다.

 

빈약하기 이를 때 없는 벌칙규정, 과연 무엇이 과도한가?
그들은 또한 ‘과도한 벌칙규정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유아보육법 제 9 장 벌칙 조항을 살펴보면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과도한 벌칙규정이 무엇인지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현재 벌칙 조항 중 가장 강력한 벌칙 부과는 보조금 횡령, 유용 시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보조금은 국가의 일반세에서 지급되는 국민들의 혈세이다. 한편 저소득층 자녀 우선보육을 지키지 않았거나, 영유아 및 보육노동자의 정기 건강 진단을 하지 않았거나 ‘영유아에게 질병·사고 또는 재해 등으로 인하여 위급상태가 발생’했는데도 응급의료기관에 이송하지 않으면 그저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뿐이다. 그밖에 무인가, 정지, 폐쇄 명령 등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 특정 신고 없이 마음대로 시설 폐원 또는 운영 재개하는 경우, 양벌규정 등이 벌칙규정의 전부이다.
아동이 다쳐서 병원에 이동시키지 않았더라도 그저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과태료 규정만 있는 벌칙 규정이 과연 과도하다고 볼 수 있는가?

 

부모와 보육노동자는 시설 운영에 신경쓰지 마라?
영유아보육법 제25조에 의하면 보육시설의 장은 보육시설운영위원회를 만들고, 보육시설 종사자와 보호자, 지역사회인사 등이 모여 보육시설의 운영 규정, 예결산, 건강 및 안전, 기타 시설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보육시설운영위원회는 그동안 은밀하게 감추어져왔던 수많은 비리의 외화와 해결, 보다 실효성 있는 시설 운영의 감시활동에 영향을 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한보련은 ‘보육시설운영위원회 의무조항 삭제’를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한보련은 끊임없이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 호소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호소를 뒷받침할만한 시설 운영의 어떠한 근거자료도 제시한 바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여기저기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시설 비리들은 정원초과, 부실 급간식, 아동학대, 지원금 횡령 등 다양한 내용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보육현장은 노동자에게 있어서 저임금과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속에 근속년수 2,3년을 넘기지 못하는 가장 열악한 사업장 중 하나로 전락했다.
오히려 이번 보육시설운영위원회 설치를 계기로 보육노동자와 보호자, 지역사회를 참여자로 만들고, 시설 자체의 투명한 운영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 보육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자 그들이 말하는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는 길일 것이다.

 

최저임금도 안주면서 보육교사 처우개선이라니!
보육노동자의 근심이 잔뜩 서려있는 보육노조의 상담게시판에는 하루 10~11시간 노동에 월 65만원 받는 보육노동자의 이야기가 마치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버젓이 적혀있다. 최근 들어 몇몇 지자체에서는 어린이집의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조사를 했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보육현장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현장이 이러할진대, 한보련은 시설운영위원회 설치조차 거부하고 적지 않은 시설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월급을 보육노동자에게 지급하면서, 과연 교사들의 처우개선을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교사의 처우개선을 요구한다면 지금 당장 시설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육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착취 고리를 끊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적정임금을 지불하여야 한다.

 

10여년 이상 보육의 공공성을 영유아보육법에 담아내기 위해 법 개정 투쟁을 하던 보육운동단체와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기대에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부 법안이나마 개정되어 이를 토대로 보육현장의 개혁을 가속해 나가야할 이때, 한보련은 보육의 공공성과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벗어나려는 안간힘 속에 낯 부끄러운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한보련은 끊임없이 재정적 어려움과 현장의 열악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이 근거로 보여준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보육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앞세워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보육의 공공성을 인지한다면 반드시 주장해야할 국공립시설 확보나 전환에 대한 요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심지어 투명한 지원 확보에 선행되어야 할 최소한의 관리감독조차 시설운영위원회 의무설치조항 삭제를 요구하며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밖으로는 이윤 추구를 통해 파행과 비리로 얼룩진 현장의 모습만이 보호자나 보육노동자의 애절한 양심 선언에 의존하여 알려질 뿐이다.
누구나 보육의 공공성 확보에 고개를 끄덕이는 요즘, 진정 현장의 열악함을 타파하고자 한다면 ‘좀 더 돈을 벌게 내버려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육의 공공성 확보의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12/23 14:01 2005/12/23 14:01
TAG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jineeya/trackback/302
PREV 1 ... 32 33 34 35 36 37 38 39 40 ... 8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