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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일상 속에서 문득 시간을 낸 짜투리 여행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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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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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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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소리
  3. 2008/05/12
    태종대(3)
    풀소리

마곡사

지난 토요일(9일)

공주 가는 길에 마곡사에 들렸다.

 

입장료가 2,000원.

뭔 절이 입장료를 다 받는다냐???

 

일행은 주저없이 입구 밑 계곡으로 향했다.

나는 그래도 미련이 남아 '대표선수'를 자임하며 절로 향했다.

 

마곡사는 충청도 지역 60여개 사찰을 관장하는 절이란다.

그래서인지 규모 또한 큰 편이다.

 

절은 물길이 휘감아 돌아가는 산속 분지에

넓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흔한 안내서도 없이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다녔다.

날씨는 죽이도록 더웠다.

 



입구 사하촌 식당입구에 심어놓은 '으름'

 

포도/ 알갱이마다 익는 순서가 다르다. 예전에 집에 있던 포도덩굴이 생각나 정겹기만 하다.

 

마곡사 가는길/ 제법 시원하다.

 


계곡도 맑고 시원한 물이 수량도 제법 많았다.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해탈문/ 해탈을 꼭 하고싶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해탈문 옆 영산전 입구/ 담장이 예쁘다.

 

영산전/ 유명한 목조불상과 천불이 있다고 하는데,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현판을 세조임금이 썼다고 전해진단다.

 

500살은 넘었을 것 같은 당당한 향나무

 

먹이 주는 곳에 모여 있는 잉어들/ 해탈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을 가기 전에 있는 돌다리에서 바라다본 풍경/ 사람들이 가끔 팥알 크기의 먹이를 준다. 아마 절내에서 파는 듯...

 

대광보전/ 앞에 있는 탑이 라마교 양식이라서 보물로 지정됐다고 하고, 뒤에 있는 높은 집이 대웅보전이다. 대광보전 현판은 강세황이 썼다고 한다.

 

대광보전 문창살/ 2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문창살에 앉아 쉬는 잠자리

 

해강 김규진이 쓴 현판/ 글씨를 잘 모르는 내게 단연 눈에 띄는 글씨였다.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던 분이 써서 그런지 글씨 양쪽으로 그림을 그려 양각되어 있다.

 

절 용품 판매장 앞에 키우는 항아리 연꽃

 


돌아서 나오는 길에 산이 포근해 카메라를 들었는데 가을빛이 벌써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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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저수지

- prologue

제목을 무심코 '강동냉장'이라고 쓰려다가

수없이 댓글이 달렸던 지난 포스팅이 생각나 바로 바꿨다.

뭐하는 짓인지...

 

닭장차로 사방 바리케이트를 친 강동냉장 창고

 

 

1.

다시 지난 6월 30일 얘기다.

9시 30분 쯤 우리가 도착했을 땐

경찰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취재진들 숫자도 우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이래저래 회의를 거치고 하면서

오후 2시 조합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결론을 내리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2시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연행은 예상되었지만 마음은 한가로웠다.

 

난 몸 상태도 별로인지라 해바라기를 할 겸

좋아하는 산책을 할 겸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안 되는 우리 일행과 건너편 취재를 준비중인 많은 기자들이 대조적이다.

 

냉동창고 바로 옆에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고

다리에서 내려다보니 커다란 부들이 꽃이 이제 막 진채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생각같아선 내려가보고도 싶었지만,

투쟁하러 와서 다들 보는 앞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다리를 천천히 건너며 느릿한 눈길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맑지 않은 물길이지만, 그 물을 먹고 자라는 풀들은

왜 그리도 싱그럽게 자라는지...

 

 

2.

문득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보니

조그만 동산 사이로 높다란 탑들이 보였다.

뭔가 하고 보니 그건 탑이 아니라 수문이었다.

 

오호라. 수문이라.

그럼 저 위는 뭐가 있을까?

저수지?

 

기흥저수지 오르는 길목의 비포장길

 

짬을 보아 수문 쪽으로 길을 잡았다.

입구는 전경들이 가득 있었는데,

굳이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부딪치는 것 자체가 싫어서

슬며시 돌아 올라갔다.

 

 

3.

조금 오르니 비포장길이 나왔다.

그래. 이 근처 길들이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이런 모습이었겠지...

 

비포장길 옆 야산에는 외래종인 자리공 등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기도 하지만,

여러종류의 잔대들이 듬성듬성 길 바로 옆까지 자라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간섭이 없나보다.

 

좀 더 오르니 커다란 집이 나오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끊겼다.

 

관리사무소 옆 샛길

 

커다란 집은 저수지 관리사무소였다.

사무소 간판 덕에 드디어 저수지 이름을 알아냈다.

'기흥저수지'

 

사무소 옆으로 작은 샛길이 하나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커다란 저수지가 나왔다.

자세히 보니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늘 보던 저수지였다.

고속도로에서 보는 모습하고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은 언제 보아도 매혹적이다.

다만 가까이 하지 못함이 안따까울 뿐이다.

 

둑에서 바라본 기흥저수지/ 배를 띄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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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태종대

오랫동안 그곳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것 같다.

부산에서 몇 시간 동안 짬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태종대에 가보고 싶었다.

 

태종대에 다시 가는 계기가 됐던 5월 10일 화물연대본부 총력투쟁결의대회

 

서투름과 열정이 동시에 지나치게 넘쳐나던 20대 시절

태종대는 나에게 일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 지 모르지만

결정을 못해 크게 망설이거나 마음을 정리 못해 혼란스러울 때면

나는 늘 태종대를 찾았다.

 

물론 지금은 새로운 역사가 들어섰지만, 부산역은 생각만 하여도 설레는 곳이기도 했었다.

 

태종대를 혼자 거닐고

속까지 비치는 푸른 물결을 보고

촛대바위 옆 커다란 바위에 앉아서 먼 바다를 한 없이 바라보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정리되곤 했었다.

 

산책로 시작지점의 철쭉

 

인적이 드문 산책로/ 전체 길이가 약 4Km쯤 되는 것 같다.

 

막 피어나는 아카시아꽃/ 찬 바닷바람 때문인지 꽃이 피는 건 서울보다 늦은 것 같다.

 

당시 무궁화호를 타고도 5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30분쯤 더 가니

차타는 시간만 해도 11시간이 넘는 길이었다.

 

시간도, 돈도 내 처지에선 만만치 않은 것이었지만,

꽤 여러번 들렀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산책길을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바다./ 난 바다가 너무 좋다.

 

영도 섬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서 그런지 이곳에는 많은 배들이 입항을 기다리며 쉬고 있다.

 

태종대 입구에선 바람이 무척 쎘었는데, 이곳은 고요하기만 하다.

 

등대섬과 컨테이너선/ 몇 모퉁이를 도니 바람이 불고, 파도기 높다.

 

이번에 태종대를 한바퀴 돌면서 가만히 옛 기억을 더듬어봤다.

나는 왜 태종대까지 와서 마음을 정리하곤 했을까 하고...

 

무엇보다 먼저 부산에선 자유의 냄새가 났던 것 같다.

그곳에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부산이 실제로도 자유로운 곳인지는 알지 못했었다.

다만, 항구라는 외부로 열린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관념에는 '부산' = '자유'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었다.

 

오붓한 산책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끼리열차 비슷한 열차를 타고가니 이 좋은 산책길이 텅 비어있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요거를 타 산책길이 한가롭다./ 물론 나는 텅 빈 길이 더 좋으니 땡큐다.

 

숲도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굳이 태종대가 아니어도 기차를 타고 오는 긴 시간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불어로 바다는 엄마와 발음이 같다.

어쩜 엄마처럼 안기고 싶은 심정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이후에는 엄마에게 기댄 기억이 없으니 이것도 순전히 관념일 뿐이다.)

 

자살바위 앞의 모자상/ 일설에는 자살하려고 이곳에 온 사람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세웠졌다고 한다.

 

자살바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자살바위 위엔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말 이곳에서 떨어지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

 

자살바위 옆 단애/ 파도가 거세 해안 옆 바다는 완전 뒤집어져 혼탁하게 보인다. 내가 여러번 이곳에 왔었어도 오늘처럼 파도가 거센 적이 없었다.

 

그리고 태종대 바다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풍부한 여행을 하지 못했던 내게 태종대 바다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동해바다는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하기는 한데 시선이 수평선과 너무 가까워 그 맑은 물결이 오히려 흐리게 보인다.

서해바다는 물론 탁하게만 보이고...

(물론 지금은 서해바다도 참 좋아한다.)

태종대 바다는 수평선이 훤하게 보이면서도 높다란 단애 위에서 보아서 그런지 속깊이까지 보일정도로 푸른빛이 맑았다.

 

촛대바위/ 20대 시절 앞에 있는 넓은 바위에 앉아 먼 바다를 한없이 보기도 했었다.

 

촛대바위 옆엔 등대가 새로 생겼고, 저런 조형물도 생겼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자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 살을 뚫고 박힌 가시처럼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담 태종대에서 마음을 정리한 결과는 어땠을까?

글쎄...

기로에 놓였던 여러 갈래의 삶과

지금 내 삶이 어떤지 가치판단이 잘 안 된다.

 

 

촛대바위 근처는 날아갈듯 바람이 거세다./ 거센 바람에 활엽수 잎이 뒤집어져 흰빛이 넘쳐난다.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다만, 물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뒤늦게 알았지만, 그 예쁜 얼굴에 대학시절 내내 연애 한번 하지 못할 정도로 한 친구에게 깊은 상처를 준 일도 있었으니

태종대에서 한 결정이 모두 잘 됐던 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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