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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 볼 만한 여성학 책 두 권

오늘은 최근 읽은,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여성학 책 두 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교양인 2005)

<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 지음, 청년사 2005)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독특한 근대화 경험을 한 한국 사회 속에서 사회적 성으로서 젠더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장과 발전 중심의 국가주의, 적과 우리를 편가름하는 이분법적 사고, 폭력이 정당화되는 군대 문화, 국가와 가족번영이라는 신기루 속에 소멸된 개인. 아마도 이런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을텐데요. 이 두 책은,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 뿐 아니라,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노인, 그리고 남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럼, 각 권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우선, <페미니즘의 도전>에 대해서는 감히 "제가 지금까지 읽은 여성학 책 중에 최고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지은이인 정희진님이 공부도 오래 하셨지만, '여성의 전화'에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일하신 경험이 있어서 인지,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관찰력과 구체적 사례 제시, 그리고 말 그대로 시원한 분석들이 참 놀랍더군요. 뭐가 좋다고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기가 힘들만큼 군데군데 감동과 깨달음이 넘칩니다. 

 

누구나 이 책을 한 번 읽으면, 작가분의 의견에 동의를 하든 안하든, 어쨌든 생각이 깊어지고 우리 주변 세상에 대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이처럼 선정적으로 지은 출판사에 불만이 좀 있습니다. 사실 오늘 소개하는 두 책 모두에게 불만인데, 무슨 재테크 책도 아니고, <무엇무엇의 도전> 혹은 <대한민국은 뭣이다>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진짜 거부감 팍! 듭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남자분에게 <페미니즘의 도전>을 권했더니, 그 분 왈 "아이고, 페미니즘도 무서운데, 거기에 도전? 난 감당 못해~" 저희 북카페 오신 여자 손님 한 분도 제가 <대한민국은 군대다> 읽는 것 보시더니, "아니, 저 책 읽으시네? 난 저 책 제목 싫어서 안샀는데"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엔 이런 제목의 책, 장사에도 별 도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권인숙님의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앞부분은 좀 실망이었어요. 

 

우선, 박사 논문을 책으로 묶어 내신 듯한데, 제가 논문 심사 위원도 아니고, 말 그대로 논문 투 (그것도 번역 투)의 문장에 깨알만한 각주가 페이지마다 2-3개씩 있는 글을 읽기는 너무 힘듭니다. 게다가, 3장 '한 여성 활동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딱 한 명인데다가 매우 독특한 경우라서...작가분의 주장을 지지해준다기보다는 좀 튄다는 느낌이더군요. 왜 이 분을 선정하셨는지, 그 이유를 샅샅이 찾아보았더니...

 

"1970년대의 시대정신이 잘 드러나는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1980년대 학생운동이 기대했던 이상적인 여성 활동가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155쪽)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작가님이 1970년대 시대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인물의 이야기를 넣기로 하셨는데...그런데, 이 인물이 선택된 이유는 이 인물이 1970년대 시대정신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동어반복이 아닌가요?...게다가 기대했던 여성활동가로 인정을 받았다는 게,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인지...저로서는 잘 감이 안와서...(1980년대 학생운동 하셨던 분들은 다 그냥 아시려나...)   

 

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에 관한 글(5장)은 좋았답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군대 내 성폭력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러나 가정폭력만큼이나 '만연한' 부분이라...이 책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고, 남성에 대해서 또 다른 이해를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     

 

 

두 책 모두에 훌륭한 문장들이 많지만, 여기에선 몇 개만 골라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괄호 안에 '페도'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대군'은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뜻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페도22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페도35쪽)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페도40쪽)

 

"가정 폭력의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생각한다." (페도96쪽)

 

"'양성 평등'은 인간이 두 가지 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인식 체계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양성구유자로 태어나는 사람의 존재를 비가시화하고, 양성의 경계를 문제화하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같은 성적 소수자를 '제3의 성'으로 전락시킨다. '여성의 사회 진출'? 그렇다면 여성이 생활했던 가정은 사회가 아닌가? 가정과 사회를 상호 배타적인 공간으로 상정하는 이러한 논리 때문에 가정에서 여성이 폭력을 당해도 '사회의 질서'인 인권이나 민주주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페도103쪽)

 

"인간과 세계를 a와 not a의 대립 구도로만 보고, 전혀 다른 c의 입장을 a와 not a의 논리로 환원하는...현재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의사소통 방식..."(페도134쪽)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다. 이는 성판매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즉, 성매매는 여성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남성에게 파는 것이다."(페도230쪽) 

 

"이러한 노동이 언제나 여성에게 집중되어 업무의 능률을 훼손할 만큼 심각한 감정 노동을 야기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차별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더러워진 개수대를 보면서 설거지를 할까 말까, 안 하면 일단 더럽고 아침의 갈증을 덜어 줄 차를 못 마시며, 안 하고 놓아둬서 결국 다른 여성이 하게 되는 걸 볼 수도 참을 수도 없는 가정에 가정, 갈등에 갈등을 더하는 그 감정 노동. 손님이 왔을 때 '차를 줄까 말까? 누가 나서지 않을까? 안 나서면 어떻게 하지? 그냥 해 버려, 말어? 냉정해져, 말어? 모르겠다.' 하면서도 '이런 게 내 일로 굳어지면 어떻게 하지? 에이 그냥!' 식으로 반복되는 첨예한 갈등, 질식할 것 같은 감정 노동. 컵이 필요할 때, 필요로 되어질 때 자신이 나설까 말까를 수업이 고민하는 여성들의 감정 노동을 기반으로 남성들이 정치를 얘기하고 정당을 논하며, 논리와 이성, 어설픈 관점에 입각한 쌈박한 논쟁을 하고 있다." (대군180-181쪽)

 

"여성만 강조되어서 진행되었던 군가산점 논란은 여성은 희생도 하지 않고 평등만 원하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반면 장애인들은 논란의 진행 과정 속에서 소외되고 성 대결화되면서 쏟아져 나왔던 논리에 또다시 상처받는 이중의 소외 과정을 겪었다...'가산점 받고 싶으면 군대 가라'는 이들의 반응은 장애우들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대군231쪽)

 

"남성 간 성폭력을 군기 문란으로 보는 시각은...동의에 의한 남성 간 성행위와 동의에 의하지 않은 남성 간 성폭력을 똑같이 추행이라고 범죄화하는 데서도 그 문제점이 드러난다. 성폭력에서의 강제성보다는 계간(남성 같의 성행위를 일컫는 말)같이 동성애 혐오적인 시각에서의 비정상성, 일탈성을 기준으로 군기 문란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대군250쪽)

 

이상, 즐거운 북카페였습니다.

 

대한민국은군대다/페미니즘의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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