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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 도덕성

 

 

혹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민주노총이 갈데까지 갔다, 쪽팔린다고 얘기한다.

좀 더 고상하게 얘기하면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도덕적 해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을 접하는 이런 식의 도덕성 담론에

나는 사실 불편함을 느낀다.

 

조직의 도덕적인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대표적인 예시로 '돈문제와 여자문제'를 함께 얘기하는 류의 인간들.

성폭력을 여자문제로 치환하는 작자들에 대한 분노는 치우고서라도

강승규와 김상완 사건을 모두 '도덕성'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총연맹은 지도부 총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하다.

물론 사건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그를 도려내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직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슨 목적으로, 무슨 내용 하에 이루어지느냐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혹자가 말하듯 이 사건은 어디까지 '부도덕한 개인'의 문제인데

왜 지도부 전체가 책임을 져야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 사건이 진정으로 '조직적인' 문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언어를 빌리자면 민주노총이 정말 '창피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총사퇴는 해당 사건을 시급히 마무리하려는 면피용이 될 수도 있다.

왜 사퇴하는가?

어느 부도덕한 인간이 간부였기 때문에 아랫사람의 과오에 조직의 대표자가

사퇴하는 것이라면 사퇴는 책임이란

우리 애 잘못은 애비인 내가 책임지겠소, 하는 또다른 가부장적 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명서에 나온 이번 사건의 전말은 처음부터 조직적인 문제였다.

남성 위원장을 여성 조합원의 집에 은닉했다는 그 사실 자체부터

피해자에게 은닉죄를 모두 전가하려고 했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단 무마해보고자 상부에 보고조차 않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조직 외부의 지인에게 도움을 청할수밖에 없었다는

이 사건의 전말 자체가 모두 엄청나게 조직적인 문제이다.

80만 조합원이 있다고 하는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여전히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자본과 보수언론에 역공을 당할 '빌미'로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위한 어떤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고 있었는가,

(그랬다면 사무총장이 개인적으로 피해자를 만났을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의 조직문화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왜 이 사건이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 진보운동의 도덕성 문제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김상완 같은 작자가 민주노조 운동의 도덕성을 갑자기 땅에 떨어지게 했다거나,

요즘 활동가들의 도덕적인 기강이 해이해져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는 식의 얘기들.

솔직히 말해서 현장에서 술먹고 단란주점 가고, "여자끼고 노는 건"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이런 사건이 발발했을 때만 운운하는 도덕성은 위선에 불과하다.

그리고 '운동의 도덕적인 기강'과 '활동가의 도덕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일견 나아보이지만, 사실은 마찬가지로 위험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 

도덕성이라는 건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합의된 일련의 윤리적 가치를 말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도덕성이라는 건 기존의 것, 매우 보수적인 선/악 가치판단에 가깝다.

보수적인 기독교와 레닌같은 (금욕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교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상적으로 양극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여성주의를 보수적이며 남성중심적인 도덕적 가치에서 성적 급진주의라고 비난하고,

성과 관련된 일련의 사안들에서 공통적으로 도덕적인 금지주의 입장을 가진다.)

 

도덕성은 지켜져야할 가치가 아니라, 논쟁되고 논쟁되어져야 하는 가치여야한다.

그리고 성폭력은 도덕성이 아닌 피해자의 인권과 권력관계,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노동운동과 조직문화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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