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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사람

블로그 대문에 자칭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못하겠다는 이유, 나는 이해한다.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나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 나도 한 명이다.

 

전날 술을 처먹고 아무 생각없이, 테레비를 켰다. "권양숙, 실신". 난 그저 이 분들도 급기야 쑈를 하시는 구나 했다. 그러나 봉하마을 사저가 비치고 뒤 부엉이바위란 걸 클로접하는 장면에서, 아나운서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말을 꺼내자, 갑자기 멍해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의지가 아닌.

 

내가 개인적으로 인간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 정권을 싫어하고 혐오했던 이유는 아직도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한 마디 때문이다.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떨어져, 타, 목매 죽었다. 그 중 알고 있던 김주익 열사가 열사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도 나의 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몇 사업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사업장의 노조 위원장 옆에는 노조 위원장을 감시하는 사람이 하나 붙게 되었다.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하게 만든 노동사회, 그게 10년 전, 20년 전도 아닌 바로 몇 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몽헌씨가 죽었을 때는, 솔직히, 아무 반응도, 미동도 없었다. 신문 한 줄 보고, 내 감정도 끝이 났다. 추모나 애통, 따위의 단어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나는 무미건조했고, 자본가의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냉정했다. 그러나 노무현씨의 서거 소식에는, 그 자체의 애통 뿐만 아니라 분노심이 반사적으로 일었다. 그래서 몸이 시키는대로 나는 거리로 나왔고, 버스는 시청으로, 발은 대한문으로, 손은 전경의 방패를 밀고 있었다.

 

거리로 나온 8할 이상의 동기는 명박기 조가튼 시발 새끼라는 분노심 때문이었다. 조문을 둘러싸고 경찰과 유치한 몸싸움을 하다, 저녁에야 조문이 가능해 졌다. 조문까지 하지 않고, 그냥 애도하는 마음만 보내고 왔다. 그러나 쉽게 분노와 애통함은 가라앉지를 못하고 있다. 왤까. 시발, 이 조까튼 기분은 어디서 출발한 것인가.

 

언론이 노무현씨에 대한 평가, 뭐라고 하든 간에, 죽고 나서 하는 건 별로 듣고 싶지도 관심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죽으면 그냥 끝이다. 우주는 완전히 소멸하고, 모든 것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남는 건 기억 뿐이고, 그 외 모든 것은 그냥 훅 불면 날라가는 먼지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억, 그것이 사람들을, 나를, 거리로 나오게 한 것 아닐까.

 

노무현씨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내가 평가할 실력도 역량도, 시기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의 대통령 이전의 모습은 참으로 다정다감하면서도 박력있고, 멋있는, 근사한 사람이었다고 기억된다. 부산에 살 때, 그가 모든 선거에 낙선하고 지역신문과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요일 아침에는 제 아들과 비디오를 빌려서 보는 걸 좋아합니다. 주로 무협영화를 좋아하고요."

 

그 당시 일요일 아침, 비디오, 무협영화, 이런 것들은 서민들의 정서와 너무나 다르지 않은, 인간 노무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청문회 스타에서 낙선 정치인으로, 하로동선이라는 식당의 웨이터로, 그는 참, 재미나게 살았고, 서민들에게도 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보같아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얻은 명성을, 그리고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는 닮고 싶어했고,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이전은, 더 이전은 가난했고, 돈이 없었으며,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성공하고픈 욕구가 가득한 사내였다. 그리고 출세했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그렇게 가만히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봤고, 다시 시골로 돌아갔다. 그는 그런 면에서 훌륭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그를 보고 싶었다.

 

파병, 에프티에이, 생각만 해도 끔직한 것들을 그가 추진했다는 건, 솔직히, 여전히, 납득도 이해도, 설득도, 인정도 하지 못하는 바이지만, 작통권 회수나 독도 영유권 대응 등에 자주적 태도는 그 어떤 권력자 보다 과감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저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연민으로 대할 에너지가 남아 있고,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낀다. 그를 지지하면서 한 때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도 우리는 위로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게 해야 우리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보를 자청하는 분들이 노무현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그 태도가 야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생각도 존중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들 생각이 옳다. 그러나 조금 부족함을 느낀다. 쪽수에서, 발상에서, 상상력에서가 아니라 태도와 마음에서. 한 때 적이었던 그를, 혹은 그를 옹호하며 밉상을 떨었던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은 아파하고 있다.

 

이들을 진보의 이름으로 함께 안아주지 못한다면, 저 닭장차 뒤에 숨어 쥐새끼마냥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도 두려워하는 명박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줄 수 있으며,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들과 하나되어 광란의 시위를 벌일 수 있겠는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결국, 우익들과 조선일보와 자본가와 경상도 사람들과,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멍청한 국민들 덕분에 결국 "사살"되었다.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 있을 것이다. 물론 돌짱구인 삽옹 명바기는 또 집회할까봐, 사람들 모일까봐 걱정할 것이다. 그게 무섭다는 걸 안다. 그러면 제대로 무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얼굴만 아는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그랬다. 작년에 너무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고. 자기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오직 경찰밖에. 정보보고도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푸른기와 안에서 좆잡고 그저 협심통만 느꼈다고. 그리고 촛불이 끝난 뒤, 제일 먼저 한 것이 국정원장을 날린거라고).

 

조문은 조문대로, 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 하면 될 것이고, 뜻이 있는 사람만 하면 된다. 지금 국면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냐는 것일 뿐. 다만 우리는 조금 침착해야 하고, 차근히 거리로 나올 준비를 해야하며, 적어도 올 한해, 경찰들에게 수십대는 쥐어박힐 각오를 해야 하며, 도망치기 위해 걷기와 뛰기로 하체를 단련하고, 집에는 촛불과 종이컵을 사두고, 가방과 차에도 촛불과 종이컵을 준비해야 한다.

 

잡아가면 갈수록, 저항은 커지고, 민주주의는 더욱 건강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는 온전한 것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물려주어야 할 의무, 잊지 말자.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서, 이민 운운하는 사람들은, 보내주자. 그리고 한국에는 앞으로 오지 못하게끔 막자. 민주주의는 대가를 주지도, 보상을 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고, 그저 희생만을 먹고 사는, 잔인한 그렇게 잔인한 것이기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이후에 까울 것이므로 무임승차는 니 맘대로지만, 무임하차는 니 맘대로 안된다는 알았줬으면.

 

여하간 그 의무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라면. 거리로 나갈 준비, 하자.  자유가 보장되고, 어떠한 형태의 비판과 모임이 가능한 사회,  니들이 말하는 법치주의가 아닌, 헌법적 가치가 보장되는 사회. 경찰이 내가 가는 길을 막지 않으며, 함부러 시민들을 발로 차거나 때리지 않는 사회. 우리의 온전한 의식과 행동을 망가뜨리려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 위해, 우리는 적어도 동네수퍼로 달려가 촛불과 종이컵을 사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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