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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대강, 죽음으로 막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3406.html

 

http://www.vop.co.kr/A00000299278.html

 

1. 어제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해, 오늘까지 온 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이 온 몸에 가득하다. 몸 하나, 혹은 그 일부가 아프다는 건 살려는 의지 때문이고,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내 몸 속 전투가 치열하면 치열해질수록 몸에서 전달되는 고통의 크기는 점점 더 확대된다. 어느 한 쪽이 죽이려는 만큼 살려는 저항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투가 일방의 승리로 끝나면 우리는 건강을 되찾거나 혹은 만년 질병이나 심지어 죽음으로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기도 한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몸은 ‘건강하다’는 것과 ‘아프다’는 중간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또 그것을 몸의 중립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몸은 어떻게 되었든 건강해야 하는 것이고, 아프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몸 자체가 본래 지향하는 상태이다.

 

2. 자연이라고 다를 건 없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중립 지대, 허구다. 자연보호는 인간이 자연을 해치기 시작하면서 나온 것이지 자연 스스로가 주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있는 그대로가 바로 자연이 지향하는 상태다. 다만 조금 아프면 보철을 하면 되고, 좀 더 아프면 아예 중환자실에 넣어 아예 방문을 못하게 해야지, 멀쩡한 사람을 수술대에 올리는 것과 지금이 뭐가 다른가.

  

3. 유마힐이 아파 몸져 누웠을 때, 문수보살만이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갔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병이 어떠한가'라고 묻자, 유마힐은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중생의 탐욕이라는 병이 남아있는 한 내 병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라고 한 바 있다. 병문안 갔다, 도리어 깨달음을, 아니 질문하는 사람의 병까지 밝혀낸 격이다. 병문안을 간 자들이, 사실 환자인 경우가 더욱 많을 게다. 진실로 자신의 병은 모른 채 남의 병만 측은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그렇다. 그게 우리 모습인지도 모른다.

  

4. 오늘 한 스님께서 '소신공양'을 하셨다는 뉴스를 접하고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 뭐라도 한 마디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한 편에선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용납되지 않는 뭔가가 있더라.

 

"소신까지 하셔야 했나 "

  

5. 이 정부에게 죽음으로 대적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그래서 살아서 끝까지 싸우거나, 아니면 살아서 그들을 동조하지만 않는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걸릴 뿐,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그 신념만이 우리가 이 엄혹한 시절을 견디는 진통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허나 이 질문이 본질은 아니다.

  

한 편 "이명박이 살아있을 동안 내 죽을 일은 없다"고 하신 이소선 어머니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생명이라는 가치에 보다는 자신의 가치가 4각 '보로꾸'에 갇혀 있는 이 정부의 수장에게 생명을 던지는 건, 계란으로 보로꾸 치기와 다름 없다. 아니 그저 '빈번한 안전사고'에 불과한 일인지도 모른다.

 

6. 그러기 때문에 더욱 더 살았어야 했다. 선방에서 나와 대중과 같이 호흡하셨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인간의 일을 부처님께 맡기고 떠났다는 건, 지혜의 지존인 '문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서운하고, 미안하다. 떠나신 분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존경으로 승화하기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을 하시는 바람에 더욱 불편하기 그지 없다. 아시지 않나.

  

7. 이 정부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용산에서 성대가 불에 타 더 이상 절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5명의 열사, 아니 아저씨들. 그들은 기억해 보라.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도, 자비는 커녕, A4 한 장이 들어갈 인간적인 틈도 없다. 그러니 일말의 사과도 없다. 사람에게도 이럴진대, 저 푸른 남한강에 우리가 지어줘야 할 이름없는 들풀들과 꽃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토건족은 단양쑥부쟁이가, 꾸구리가 4대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그들에게 전달한 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엇이든 살아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절규한다. 지금 4대강으로 인해 쑥부쟁이가, 꾸구리는 그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절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것을 듣는데, 스머프들은 당최 그 소릴 못듣고 있다.

 

결국 그들, 그것들의 절규가 '문수'의 목소리로 우리와 그들에게 전달된 것은, 분명하다. kbs와 sbs 빼고. 대자연과 귀 구녕에 부산오뎅을 양쪽에 틀어 박아놓은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목숨으로 댓가를 치뤄도 비엔나 소시지로 또 다시 귀떼기를 틀어 박는 놈들이 바로 이 정부다.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한다.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8. 마지막으로.....총무원 특히 '자승'은 똑똑히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명진 스님이 어떤 분이지는 모른다. 둘 사이 어떤 관계가 되었든간에 그건 나와 관계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자승은 총무원장에, 소위 불교계의 장관격인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가사를 두르고 장로 옆에서 얼쩡대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그가 한나라당이라는 정치권과 일정한 맥이 닿아 있다는 소문도 그리 달갑지 않다.

 

http://savenature.tistory.com/4543

 

물론 다른 당이라고 좋을 것도 없다(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당대표는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ㅋ). 그러나 권력을 쥐고 있는 이 정권이 사람의 목숨을, 그것도 종단 소속의 선승 하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엄연히 책임과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할 것이다. 권력을 쫒거나 중생과 같이 하거나.

 

이미 법정스님께서도 4대강의 중단을 피력하신 바 있다. 죽음으로 대신한 법문과 말씀들이 산 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살아 있는 승려가 아닌 죽은 승려가 중생을 위로하고 있다. 이게 불교인가. 권력이 아닌 대중에게로 만행을 시작하기 바란다. 구라 치지 말고, 대중에게 진정 법이 무엇인지 설명하라. 당신들의 업은 중생을 구제하는데 있지, 안상수를 구제하거나, 장로님의 똥구멍을 핥아주라는데 있지 않다.

 

자승을 비롯한, 정권과 살을 맞대고 있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시는 정치권과 인연을 끊는 것이다. 그게 최고의 보살행이자, 포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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