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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lone, or daylife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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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호]혼자 걷는 길, 그 발걸음을 찬양하라
(고동 / 언니네트워크 회원 , editor@unninetwork.net)
 

매거진 채널[넷] FF의 준비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언니네트워크 편집팀

"이번에 아시아를 6개월 간 여행했어요."
"누구랑요?"
"혼자서 다녔죠."
"허걱 진짜요?! 여자 혼자서 위험하지 않아요?"

 

혼자 하는 여행 얘기를 누군가(=여성주의자가 아닌 사람들. 특히 남자들.)에게 풀어놓으면 이처럼 항상 예상할 수 있는 대사들이 나온다. 여자 혼자 위험하지 않느냐, 난 무서울 것 같다, 그래도 혼자 그걸 감행(?)하다니 멋지다 등등.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발끈하기보다 왜 사람들은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한 (특히 여성이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한) 공포증이 저리도 대단할까 싶은 호기심이 앞선다.

그 공포증의 본질은 물론 '여성은 보호 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관념, '아버지의 지붕 밑에서 안전하게 운신을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가부장적 문화의 선심(?)에서 비롯된다. 익숙지 않은 공간에 홀로 뚝 떨어졌을 때 여성이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비좁은 노파심, 여성이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는 그 놈의 못된 우월감 탓이다. 그렇지만 한번 길을 떠나면 의외로 수많은 '나홀로' 여성여행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 문제 없이 즐거운 여행을 심지어 아주 장기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론 이건 여성(주의자) 여행자들이 아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오래된 이야기이다. 여성은 충분히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짚어주었다. 이것을 막는 가부장들의 목소리도 열심히 반박 혹은 무시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이 왜 혼자 여행하는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고 싶다.

 

사실 여성주의자가 혼자 여행해야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여성주의자들의 성격상(?) 자연스럽게 혼자 여행하게 되는 일이 많아질 뿐이다. 내 경우 생애 최초로 혼자 여행한 것은 스물 두 살 때 보름 간 스페인을 돌아다녔던 일이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공중전화박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나 혼자예요"라고 고백했던 일이 기억난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는 친구와 함께 간다고 거짓말을 했던 참이었다. 혼자 스페인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셨다나 뭐라나.) 다른 이들과 일정과 동선을 함께 짜야 하거나 이것저것 간섭받는 일이 차라리 번거롭고 버거워서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있어 홀로 여행한다는 것은 결국엔 일종의 테스트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길에서 "어린 동양 여자애"로 무시 당하지 않고 혼자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야 했다.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일에 울렁증이 심하고 최악의 길치인데다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나로서는 일종의 비위강화훈련의 일환이기도 했다.

 

스스로 진행한 훈련은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즐겁게 끝났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스페인 여행 이후로 혼자서 제법 많은 여행을 다녔다. 한 달 간의 베트남-라오스 여행, 휴가를 내서 잠시 다녀온 일본 여행, 그리고 긴 연휴가 있을 때 KTX를 타고 통영으로, 천안으로, 부산으로 쏘다녔다. 그리고 작년에는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 간 장기 아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나홀로 여행은 혼자 해냈다는 성취감과 해방감을 주기도 하지만, 더불어 중요한 것은 나의 위치를 스스로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혼자 길을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때 다가와 '좋은 데 데려다줄게'라며 손짓하는 오토바이 탄 남성들, 혼자라는 것이 '나 외로워요'를 온 몸으로 외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원나잇을 노리는 서양 남자 여행자들, 그리고 한국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을 고깝게 보거나 혹은 두려워 하는 한국인 남자 여행자 무리들, 성추행을 시도하는 인도 경찰관 아저씨들...이들을 만나는 일련의 경험들 속에서 나는 '너 따위 것들을 두려워할 쏘냐'라는 내공(?)을 쌓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맺기하는데 있어서의 전략들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길 잃고 헤매는 한국 남자 여행자 무리에게 오히려 길을 알려주는 선배 여행자로서의 통쾌함을 맛보기도 하고, 깊은 산 속에서 단 둘이 트래킹을 하다가 '라오스 남자친구 필요하지 않으세요?'라며 흑심을 내보인 가이드에게 호통을 치며 쫄게 만드는 스스로의 강인함을 확인함과 동시에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세계 공통으로 어떤 대상물로 역할하는지 다시 한번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그리고 동양인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현지 언니들과 스스럼 없이 친구가 되고 '알고 보니 너도 페미니스트였구나!'라는 '커밍아웃'으로 전세계 각지의 페미니스트 여행자들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경험은 여성주의자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때로는 위험하고 피곤할 일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의 스펙트럼을 통해 그보다 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여성여행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이자 정보공유사이트인 저니워먼(www.journeywoman.com)은 '여성들은 평소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고 자기 운신의 폭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남성 여행자들보다 사고를 당할 확률이 작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한 제한의 틀이 여지 없이 전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또한 남성들이 말하는 '위험한 길'이 실은 나를 일개 '여자애'로 간주하는 한국의 일상 공간을 벗어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는 '대안의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것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당신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해요'라는 당당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자학하며 혼자 여행 갈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여성주의자 언니들, 어머니, 자매, 기타 여행길에서 만난 ‘여행자 유전자’를 지닌 다양한 여성들과 마음이 맞는다면 그 여행이 혼자이건 둘이건 열이건 무슨 상관이랴. 여행 3개월 째인 베트남에서 외로움에 지쳐 터덜거리며 까페에 들어가 앉았을 때 목격한 (복장(?)과 수다의 내용으로 봐서는 영락 없는) 3~40대 페미니스트 여행자 무리를 보며 나이가 들면 여러 여성주의자들과 장기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새로이 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여행 목적지를 상상하며 그리는 그림 속에는 여전히 나 혼자다. 더 부딪혀보고 만족스러울 때까지 내공을 쌓아서 ‘훌륭하고 든든한 여자어른’이 되는 장래희망을 실현하는 걸 한번 더 스스로 시험해볼 작정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타인과 여행하며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길들여야 하는 배려심이 여전히 고집스럽게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유가 어찌되었건 아직까지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당분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긍정적인 해방감과 에너지를 선사하는 길을 떠나는 것이라면, 혼자 하는 발걸음이 그리 두렵지는 않으리라는 얼마간의 믿음이 쌓인 덕이다. 그리고 혼자 나서는 길에 마초들이 달려들고 험난한 여정이 지속되어도 언젠가는 동료 여성 여행자들을 만나 위안을 얻으리라는 기대감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러니 나에게, 그리고 아직도 혼자 나서는 길을 두려워하는 많은 언니들에게 고한다. 혼자 떠나라. 온통 예측불가능한 멋진 가능성들, 그리고 돌아와 좀더 내공 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점.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 글을 퍼 가실 때에는 출처를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언니네 채널넷(www.unninet.net) 2009년 9월 특집 '언니들, 여행을 떠나다' 中

 

女性も一人で旅行できる者だと言ったらちょっとおかしいかな、

一人旅行の理由、予測できない素晴らしい可能性たち、戻って来るともっと成長している自分を発見する事になる、んだろうの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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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15:47 2009/09/17 15:47

댓글1 Comments (+add yours?)

  1. Nari 2009/09/18 08:10

    한겨레 특집기사 '냄새나는 한국의 인종차별'
    옮기고 싶지도 않은 내용이지만 역시 공감한 건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만나서 최악인 건 한국 남잔가.
    모델 선발 프로그램에서 '동양인의 미를 전하겠다'고 했으나 '한국 남자와는 결혼하기 싫다'고 한 한국계 모델에게 '모순된다'고 말했던 타이라뱅크스는 이런 사실을 몰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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