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청소년인권에 연대하는 것부터~!

- 2014.4.18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고민나누기 워크숍

<워크숍 일정표>

10:00~

12:00

여는 강의: 2014 십대 '밑바닥노동'의파노라마와 노동인권교육의 응답

강사: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12:00~

13:00

중식(식사)

13:00~

15:00

교육사례 발표 및 현황 교류 시연1) 청소년 노동법 교육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시연2) 노동인권 감수성 교육 (두근두근 인권탐험대)

15:00~

17:00

Session별 토론

노동인권교육과 지역 청소년 노동인권활동 / 노동법교육 /

노동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노동인권교육

이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신문의 스케치 기사처럼 일정표 넣고서 몇 명 참여했고,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어떤 평가들이 있었는지를 챙겨 써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 무수하게 맴도는데도 뭔가 체계 없이 뒤죽박죽이라 끄적거린 글은 A4용지로 서너 페이지를 들락날락. 이 정체 모를 맥락상실이 무얼까 며칠 동안 컴퓨터를 붙들고 밤을 새기 직전 겨우 잠들 만큼 씨름을 해댔다.

 

그런데 오늘(5/20)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터졌다. 어떤 사람이 내 옆에 서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내 우는 꼴을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회의 중에 논의한 여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심정, 그 억울한 모멸감에 너무 심하게 공감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겪었을 모든 일상에서 그들을 곤경에 빠뜨린 못된 사람과 시스템에 화가 났다. ‘미안하고 부끄럽네.’ 하는 혼잣말이 나오려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월호로 인한 세상의 반응과 나의 혼잣말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번쩍.

 

장래희망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1년 전쯤의 마음은 이랬다. ‘나도 이제서야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발견했다. 그동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노동자로서 요구하고 싸워도 되는 줄 몰랐다. 그냥 사회 생활하려는 힘없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인 줄 알고 외면하곤 했다. 아직 공부만 하고 있는 그대들이 나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할거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래희망인가.’

 

그런 마음을 품고 내달려 온지 1년이다. ‘이제는 나도 활동가라고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도 움찔거리곤 했지만. 나의 첫 마음도 지금 다시 보면 오류투성이다. 청소년들은 공부만 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노동자이고, 이미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권리주체이다. 아동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고 비청소년이 된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도 숱하게 당해온 부당한 처사에 분노했음에도, ‘어른’ 행세를 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고민한다. 청소년 노동인권과 청소년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비청소년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안간힘.

 

워크숍 얘기를 써야 하는데 딴 소리만 하고 있는 것같지만 절대 그렇진 않다. 그날의 워크숍은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이 마주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였으니까.

 

최근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라는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노동3권으로 대표되는 노동법 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비가시화된 권리문제를 제기하는 교육이기도 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과격한 귀족노동자들의 싸움으로 격하된 ‘노동’운동의 외연을 순화하고 싶은 의도를 담은 교육이기도 하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법이 보장한 권리를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노동 관련법 조항 교육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이틀, 장애인 송국현씨가 숨진 지 하루가 지난 4월 18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렸던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고민나누기 워크숍-청소년 노동인권교육,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는 애당초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진행해온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공감하는 주체들이 모여 점차 확대되어 가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누고자 기획 추진되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묘하게 규모는 커졌고 고민은 깊어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면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또 당신은) 노동법을 몰라서 그 숱한 마음과 몸의 고생을 고스란히 감내해가며 일을 해왔던가? 우리가 십대 밑바닥 노동이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의 노동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근로기준법? 우리 회사에서 그런 말은 씨도 안 먹히지.’ 하고 포기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연차, 생리휴가, 상여금, 각종 수당을 챙겨 받고 13월의 용돈이라는 연말정산도 한다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게 뭥미?’하는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다면 당신도 나처럼 노동관계법령들이 적용되지 못하는 영세한 사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본 적이 있는 거다.

내가 노동자라는 자각을 한 순간부터 노동3권, 노조중심의 운동이 아닌 ‘노동인권’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을 체험했다는 얘기다. 물론 일반노조가 있고 다종다양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작은 사업장-사장 말고 직원은 나 하나인 작은 사업장-에서 그런 모색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여직원이기 때문에 전화는 당연히 내가 받았으며, 커피를 타고 사무실 책상을 걸레질하고 바닥을 쓸어야 했고, 늘 상냥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다. 비청소년이고 여성인 나도 숱한 모멸의 순간들을 버티며 노동하느라 욕쟁이가 될 지경이었는데 청소년들의 노동은 더더욱 고단하지 않을까.

 

시인 백무산은 자신의 시 <감수성>에서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라고 말했다.

학습노동자이거나 단기간 노동자이거나 십대 청소년들의 노동이 밑바닥에 머물기는 매한가지. (학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청소년들의 일과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서 생각해 보시길. 무급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휴가는 아예 없고, 매일 초과근무, 강제야근…ㅠㅜ)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의 성과로 지하철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모두의 편의를증진시켜 준 것처럼, 가장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은 결국 나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경쟁구도 속에서 나는 사회에서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소수자로 낙인을 찍어 사회 밖에 내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청소년과 함께 분노하고, 청소년이 노동을 비롯한 생활 모든 영역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획득할 힘을 갖도록 지원하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나누기 워크숍은 어찌 보면 자기 할 바를 다 한 것도 같다. 나를 깊숙한 고민에 빠뜨렸으니 말이다.

 

<워크숍에 참가했던 일부 참가자들의 평가-김성호 노무사 정리>

  • 법률의 틀을 넘은 감수성교육이 지역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
  • “노동부에 직접 신고하는 경험도 필요하다”↔“청소년이 권리침해에 대해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가 논쟁이 치열했다.
  • 청소년들이 노동법 교육을 듣고 나면 “나와는 상관 없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법망으로부터의 소외감
  • 노동법 교육도 감수성의 영역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
  • 법으로 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 “최저임금 0000원”이 아니라 “생활에 어느 정도의 수입이 필요한가?”의 질문처럼 열린 질문이 필요하다.
  • 안정적인 소통을 위한 최소 2시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 자신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인 것 같다. 그런 뒤에 저항을 조직할 수 있지 않을까?
  •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분리 운영하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 예절이나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들이 인권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교육활동가 준비가 필요하다.
  • 지역, 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만큼 내용과 실천 방식이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 흐름을 묶어내는 틀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 배경내의 여는 강의에 깊이 공감했다.
  • 노동법과 노동감수성 융합된 교안이 필요한 것도 같다.
  • 일회성 교육을 위한 강사단 양성이 아니라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풀이 있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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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11:23 2014/08/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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